누가누가 더 엿같냐 2: 겨울모기는 꽤나 강력하다

/* These two arguments are in a quirked-up CSS Module (rather than the main code block) so users can feed Wikidot variables into them. */
 
#header h1 a::before {
    content: "극한";
    color: black;
}
 
#header h2 span::before {
    content: "얼어붙은 세상, 버텨가는 마음";
    color: black;
}

세상이 얼어붙었다.

말 그대로다, 세상이 얼어붙었다.

언제부터였더라? 아무튼 엄청 오래 전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세상이 추워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추위는 급속도로 우릴 덮쳤고 결국 - 세계는 멸망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멸망한건 아니다. 요주의 인물들과 여러 변칙 단체들은 초상기술을 이용하여 민간인들과 함께 살아났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재단은 격리를, 연합은 파괴를, 그리고 다른 단체들은 그들만의 많은 여러 목표를 잠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런 추위는-

"예. 그러면 제50차 앞골목 고민토로 게시판 정모 시작하겠습니다."

인터넷 폐인들의 정모를 막지 못 했다.

앞골목 고민토로 게시판. 말 그대로 여러 초상직장에서의 고민을 토로하는 게시판이다. 물론 앞골목이니만큼 여러 구라와 기만, 그리고 아주 가끔 적대 단체를 향한 IV급 정신간섭성 재해인자들이 오고갔지만 결국 게시판은 게시판이기에, 진심으로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인 게시판은 점점 성장해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이 얼어붙어 갈라지기 전, 아주 따뜻했던 어느 날, 기억도 나지 않는 한 사람이 말했다.

게시판도 이렇게 커졌는데, 모임이나 한번 열어보자고.

그리고 그 정모의 전통은 몇 년동안 비밀리에 구비전승되어 이어지고 이어졌으며, 세상이 이따구로 서리가 끼어 조각날 때까지 이어졌고, 인터넷 폐인들이 정모 장소(였던) 폐건물에 모여 다같이 수다나 떠는 신세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이다.

"다들 진짜 모이셨네요? 세상 돌아가는게 이래서 못 오실 줄 알았는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옆에는 대략 8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있었는데, 그 많던 정모 인원들이 단숨에 이렇게 줄어버린 것이 여간 어이없는 광경이 아니었다. 모닥불이 불똥을 내보내며 일렁일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확실하게 보였다.

"신청했던 참가자 9명에 지금 모인 사람들 8명… 한 명 빼고는 다 모였네요. 제비꽃 소속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오다가 조난당하셨나?"

가장 먼저 보이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지금 정모를 진행하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이었다. 그 사람은 칙칙한 검은색의 롱패딩을 두 겹이나 껴입고 있었고, 또 머리 위에는 반짝이는 주황 고글을 쓰고 있었는데, 볼 때마다 어릴 적에 좋아했던 스키점핑 선수가 생각나는 외형이었다.

"아무튼 정모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오셨네요? 날씨가 이런데." 진행자가 말했다.

"당연히 오죠. 내가 여기서 받은 도움이 얼만데."

"혹시 누구신가요..?"

"삼도천서퍼입니다."

순간 놀란 나는 옆을 돌아봤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언가 있긴 했다. 평소 느껴지던 살떨리는 한기와 다른 - 인간성이 느껴지듯 부드러운 - 무언가가 옆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반쯤 액체같고 기체같기도 한 것이 마치 예전에 구름을 보며 상상했던 촉감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형체가 없는걸 깜빡했네요."

…아무래도 심령독립체였던 모양이다.

"유령 같으신데, 어디 소속이신가요?"

"심야클럽이라고, 요즘 죽은 사람들 모아서 일하는 단체가 하나 있습니다. 요즘 사망자가 많다 보니까 규모가 엄청 커졌더라고요. 거기 외교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진행하던 사람이 다시 말을 시작하려고 숨을 들이쉬는 순간, 중간에 반쯤 부숴진 소파에 누워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 남자는 SCP 재단 마크가 새겨진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슈트 측면에는 "표준형 재단 온도유지복" 이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슈트의 뒷면에는 반쯤 지워진 기적술 룬이 불똥을 튀기며 빛나고 있었다. 조잡한 모양을 봐서는 아무래도 그가 직접 그려넣은 듯 했다.

"이야, 심야클럽 회원도 왔네. 저도 이런거 잘 압니다. 예로부터 삶의 좆같음은 모든 요주의 단체를 단합시켰죠. 저도 예전에는 누가누가 제일 엿같냐 대회 진행자였는데 김완이라고 이름만 대면-"

"무슨 대회요?"

침묵.

"누가누가 제일 엿같냐 대회요. 메카네교나 연합 하급 인원들끼리 모여서 하하호호 얘기 나누는 모임입니다. 한 34차까지 갔었는데 중간에 제가 기지 물자 삥땅치는걸 걸려서 해산됐어요."

"기지 이전이라면, 재단 소속이시군요."

"원래 무진이라고 엄청 먼 곳에 있었는데, 전북으로 이전했습니다. 지금 여기는 길Way열어서 온 거고요."

또 다른 침묵. 이번엔 조금 길었다.

"…그래서 저희 무슨 얘기 하러 모인겁니까? 주황색 고글 쓰신 분, 진행자로 보이시는데. 뭐 계획 있어요?" 옆에 서있던 작은 체구의 사람이 말했다. 눈과 서리에 풍화되어 보이진 않았지만, 가운데에 작은 시그마 모양이 보이는 것을 보니 엔트로피를 넘어서 소속인 듯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골목길 운영자가 생존자 네트워크로 바꾼다고 원래 있던 게시물을 다 삭제해버려서 미리 짜놓은 계획도 볼 수가 없네요."

"아 뭐야, 그런건 어떻게 알았어요? 와이파이는 다 끊어진거 아닌가요?" 김완이 말했다.

"운영자가 뭔 변칙 네트워크를 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와이파이가 매우 느리지만 작동합니다. 대부분의 서버는 파괴되서 사실상 일부 초상 커뮤니티밖에 볼 곳이 없다는게 문제지만요."

"아니 그런 와이파이를 그냥 무료로 뿌려요? 호구 아니야 그거…"

"운영자 말로는 비밀번호 설정하는 작업을 까먹고 iptime으로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뭐가 됐든 잘 된 일이죠."

"잠시만요, 거기 엔트로피 소속 분!"

"네?"

"귀 옆에 뭐 있지 않아요?"

짝!

"아 시발 모기!" 엔트로피 마크가 소리쳤다.

"뭐야! 뭐예요 그거!"

"하… 씁. 모기가 이거 겨울이라고 진화했는지 여기까지 와서 제 얼굴에 달라붙네요."

"아니, 엔트로피를 넘어서 소속이면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거 아니예요?" 김완이 비아냥거렸다.

"일단 지 생명부터 소중히 여겨야지… 어?"

"왜 그러시는데요?"

"아니… 이거 좀… 이상한데요?"

"왜요?"

"손에 뭐가 잡혀요. 사람 시체같은거랑 인장같이 생긴거. 이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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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제비꽃 인장 아닌가요?"

"시발."

그렇게 인터넷 폐인들의 정모는 끝났고, 한 마리는 살해당했으며, 한 명은 살충마가 되었다.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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