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가도

산 사람이랑 같이 타는 건 오랜만이네.

신입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기지 출장가는 건 처음일 거고. 나야 뭐 운송요원이 일이니까, 기지 오가면서 시체 실었다 내렸다 하는게 일이라. 우리나라 웬만한 기지 물류실은 다 가봤지만. 시체가 든 차로 나라 반을 지나는 게 딱히 재밌는 일은 아니라 말이야. 평소에는 라디오로 음악이나 듣고 하는데, 질릴 때가 찾아오기도 하잖아. 이번에는 얘기 나눌 사람도 있고 하니. 그냥 적적하진 않아서 좋다고.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냐.

말했다시피 난 시체 운송 전담이잖아? 매일 영구차 운전만 하다 보니까. 뭐라 해야 하지, 사람이 썩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익숙해지면 별 감흥 없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좀 무섭긴 하잖아. 뒤에 시체를 달고 운전하는 게. 공포감이 드는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혼자 있으면 좀 무섭기도 하거든. 거기다 재단 기지란게 원래 외딴 곳에 세워두는 게 보통이잖아. 비포장도로로 한 참 동안 가야 나오는 기지도 몇몇 있고, 웬 첩첩산중 속에 있거나 아예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기지도 있단 말야. 거기다 뭔 사고라도 나면 시체 때문에 수습할 때 곤란해진단 말이지. 특히 재단 고위직 인사 시신이면.

그래서 그러는 건데, 나도 신입한테 이런 부탁 하기는 조금 뭐한 일인 건 알긴 하지만, 다음 휴게소에서 자리 좀 바꿔줄 수 있어? 딱 10분만 좀 부탁할 테니까. 이상하게 난 요 앞 도로에서는 운전이 잘 안되더라고. 옛날에 여기서 내가 대충 변칙적인 사고? 비스무리한 거에 좀 휘말린 적이 있거든. 그 때 서류를 엄청나게 써야 했어서 말이야. 오늘 가야 하는 기지 쪽은 그 길로밖에 못 가서. 어쩔 수 없다고나 할까. 그 사고 이후론 이 근방에만 가면 운전이 잘 안돼서 일부러 이 기지 가는 담당은 피하고 다녔단 말이지. 근데 오늘 남는 인원이 나밖에 없어서 걸려버렸지 뭐야. 내가 운전하면 트라우마가 도질것 같아서 그래. 응, 고맙다. 그러면 내가 호두과자라도 사 줄게.

…아. 터널이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터널은 꽤 길어서 라디오가 자주 끊기더라. 옛날에 내가 사고난 곳도 터널인데. 뭔 사고인지 한 번 들어볼래? 아니, 네가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말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원래 좀 수다스러운 성격이니까, 일단은 나는 외근직이라서 딴 사람이랑 대화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부서장님이 신입이기도 하니 가는 김에 너 태워서 운송 쪽 일 설명이라도 해주라고 시키셨거든.

그 때는 내가 이쯤에서 라디오 들으면서 운전하고 있었단 말이지? 채널 바꾸려고 라디오 패널을 건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충격이랑 같이 기절해버렸지 뭐야…


법의학과 운송팀장, 김종비 요원은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지도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자, 그의 앞에 보인 것은 매캐한 흙먼지로 뿌옇게 된 눈앞이었다. 차량이 시신을 싣고 터널에 들어섰다. 한창 터널을 지나던 도중, 땅이 흔들리더니 의식을 잃고, 정신을 차리자 지금 이 상황.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찐득한 피가 흐르는 이마를 짚으며 생각하던 김종비 요원은 하나의 간단한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은 지금 무너진 터널 속에 갇혀 있다는 결론에.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간신히 차 문을 연 김종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이었다. 김종비가 비틀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살펴본 차의 상태는 자동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가 봐도 한눈에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앞유리 창은 아마 천장에서 떨어졌을 파편들에 맞아 산산조각났고, 차체 역시 어딘가에 세게 부딪치기라도 한 것인지 볼품없이 찌그러져 있으며, 운전석은 자신에게서 흘러내렸을 피가 묻어있다. 조수석 방향에는 같이 타고 있던 부하가 쓰러져 있다. 이 상황에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한 김종비는 허리춤의 재단 연락용 무전기를 집어들어 교신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직거리는 잡음뿐이었다. 휴대전화를 켜자 처음 눈에 띈 것 역시 화면 맨 위에 써진 78%라는 글자와 흰색의 배터리 이미지, 그리고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금지 표지판과 비슷하게 생긴 아이콘이었다.

자력으로 나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 구조요청 역시 현재로서는 무리라는 상황을 깨달은 김종비는 그저 누군가가 이 무너진 터널 속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내고 구조작업을 시작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김종비는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로 다시 운송차량에 올라타 지금 필요한, 아니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조리 끌어모았다.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만을 지닌 채.


교신기록 - 145██-PE


<교신 시작>
연락관: 법의학과 맞으십니까?

법의학과: 제145K기지 법의학과장이네.

연락관: 예. 제██K기지 비상연락 담당관입니다.

법의학과: 어, 무슨 일로 전화했나?

연락관: 법의학과 소속 시신 운송용 차량 및 탑승 인원이 현재 터널 붕괴로 인해 내부에 고립되었습니다. 업무에 차질 생기지 않으시게끔 알려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법의학과: 아, 알아들었네. 그러면, 터널에 갇힌 게 제██K기지로 가던 차량 맞나?

연락관: 그렇습니다. 제██K기지 근처에 위치한 터널이어서 지금 경찰 및 구조대와 협력해 이곳 기지 측에서도 구출 방법을 강구 중에 있습니다.

법의학과: 곤란한데. 하필 운송팀장이 탑승해 있던 차량인데 이렇게 되면. 우리 부서도 지장이 생겨서. 혹시 요주의 인물이나 단체에 의한 테러 가능성은 없나?

연락관: 사고에 대해 전달받은지 얼마 안 되어 현재 파악 중에 있습니다. 원인은 근방에서 일어난 약진으로 추정 중입니다.

법의학과: 뭔 놈의 약진이… 구출 성공했을 때, 아니지. 구조대 측에 역정보는 어떻게 처리할 예정은 어떻게 되고?

연락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규약대로 차량이 운구차라고 일러 두었다고 합니다.

법의학과: 그건… 다행이군. 그러면 운송 요원 편성 재조정하고, 새 요원을 다른 경로로 다시 보내도록 하지. 요원 구출은 진전이 있는 대로 그쪽 기지에서 다시 연락 주시면 고맙겠네. 잠시만, 그렇지, 재단 측 구조 책임자한테로 회선 좀 변경해 줄 수 있나?

연락관: 그건 불가능하고, 책임자님께 나중에 법의학과로 전화 드리라고 연락 요청해보겠습니다.

법의학과: 알겠네. 그럼 이만 끊지.
<교신 종료>


김종비 요원은 빈 생수 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터널에 갇힌 지는 사, 나흘쯤. 최대한 물자를 아끼며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김종비가 자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일은, 타는 듯한 목에 물 한 방울을 흘려넣어 잠시동안만이라도 적셔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실없는 잡생각이라도 떠올리며 배고픔을 잊어보려 해도 복부가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이 들며 뇌가 그것을 방해한다. 필사적으로 먹을 것을 요구하는 김종비의 몸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시점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생수뿐이다. 더군다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 에너지 면에서 더 낫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터널을 몇 번이나 배회하고 만 김종비는 자신이 퍼뜩 정신을 차릴 때면 언제나 차량의 후미 부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회상하며, 차량 뒤편에 있는 것 중에 무언가 먹을 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왜인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차량 후미, 시신을 보관하는 곳. 구급차와 유사한 형태의 차량은 법의학과 특성상 뒤에 저전력 온도 유지기―흔히 직원들은 이를 실제와는 전혀 다르게 '에어컨'이라고 불렀다―가 달려있어 시신의 부패를 막는다. 당연히, 아무리 온도가 찔끔씩만 내려간다고 해도 터널의 내부보다는 나았을 것이고, 김종비는 그날 밤도 조금이나마 더 시원한 그 차량 바닥에 누워, 필사적으로 옆의 '동침자'를 무시하려 노력하며 잠을 청했다.


아니, 이 놈의 라디오는 뭐가 이리 자주 끊긴담. 차 좀 좋은거로 주면 어디 덧나는 것도 아니잖아, 이런 고물딱지같은 자동차를 주고 시신 옮기라고 굴리는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솔직히 말해봐, 너도 이 차 앞자리 너무 좁아터졌다고 생각하지? 그렇다고 신입, 어, 그러니까 너를 말야, 저기 시신 있는 뒷자리에 태울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응? 안 그래도 쬐끄만 차에 시신 집어넣고 다니게 한다고 이상한 짓거리를 해놔서 시신 넣는 데만 사람이 5명은 들어갈 정도로 넓어요, 심지어 에어컨도 저쪽이 더 시원해.

어, 근데 나 어디까지 말했었지? 아. 그래, 맞다. 차에서 잠든 부분
까지였지. …아니, 그렇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말야. 지금까지 실컷 얘기한 내가 머쓱해지는데 말이지. 듣기 싫으면 말을 해줘.

…와, 너 진짜 말이 없구나. 그럼 상관 없는 거로 알게. 그러면- 다음 날 깨어나서부터 얘기하면 되나?


요즈음 김종비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나날이 최악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라고 해도 딱히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상쾌하게 먼지 바스라진 공기를 들이쉬며 일어날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전날 잠을 청한 장소에 따라 끈적하게 늘어붙어 느릿하게 식은 온몸의 땀방울이거나, 코를 찌르는 듯 풍겨오는 매캐한 추깃물 내음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었으니.

이곳에 갇힌지 며칠이 지났던가, 일주일, 아니 이주일이었던가? 날짜를 세는 것 조차 포기하고 체념해 있는 김종비는 진즉에 온도 유지기의 전력이 고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차량 후미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시작은 터널 붕괴 후 앞자리에 두면 공간이 차지되다 보니 후미에 가져다 놓은 기억소거제가 한 통 줄어들어 있는 것을 김종비가 발견했을 때부터이리라. 기억소거제가 사라진 건 자신이 기억소거제를 들이마시면 허기를 잊을 수 있는지 따위를 실험하는데 쓰고는 깡그리 잊어버렸다거나 하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이유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김종비는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어쨌건, 그날 이후 김종비는 기억소거제에, 살면서 가져본 제일 큰 크기의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 행동의 이면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악취를 풍기며 자신이 점점 부패해간다는 것을 알리는 시신이 한몫했다는 것을 본인은 알지 못한 채.


시신 썩는 냄새 말이야. 의외로 재단 법의학자들은 맡게 되는 일이 많이 없대. 시신 방부나 보존 처리를 전담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따로 있어서 그렇다나 봐? 그런 점은 좀 부럽더라고. 처음 시신 수습할 때 풍겨오는 악취가… 어우, 그거 진짜 한 번 기억에 남으면 악몽에서 맡게 될 정도라니까. 내가 그 사고 나고 거의 반강제로 매일 밤 맡아야 했을 때는 정말이지… 에휴, 다시 떠올리기도 싫네. 정말이지 살면서 가장 끔찍했던 때야.

날짜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라… 잔해 때문에 그 때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거든 내가. 좁디좁은 앞자리에 처박혀있을 수도 없으니까, 뒤에서 다리라도 뻗기로 했는데. 시체를 간과했었지, 응. 같이 갇힌 선배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비명을 지르더라니까? 그 선배도 참 이상했어. 터널에 갇혀서 갈 데도 없으면서 맨날 어디 밖에를 돌아다니고. 한 번은 배고픔을 잊겠다면서 기억소거제를 자기한테 들이붓기도 했다니까? 역시 극한 상황에 몰리면 사람은 정신이 이상해지는가 봐.


"이 시체 좀 그냥 밖으로 치우면 안 돼요?"

"안 돼."

차화영 요원의 간절한 부탁―이번 부탁이 오늘로 6번째였다―을 또다시 매몰차게 거절한 김종비는 차화영 요원의 애써 지은 애달픈 눈빛을 무시하려 열중하며 작동하지 않는 무전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계속 안에 넣어놔봐야, 썩는 건 안 바뀌잖아요."

"보존 문제 때문에 그래."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선배가 진즉에 차 밖에 들락날락해서 먼지 다 들어왔는데 무슨 시체 보존 타령이에요?"

"그렇다고 시신을 저 밖에 내버려둘 순 없잖아. 시신부터 나오기라도 하면 해명하기가 좀 곤란해져서 어쩔 수 없어. 상부 측에서도 그닥 달가워하진 않을 테고."

"…그렇다고 사람을 며칠째 이 시신 옆에 누워 살게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 안 해요?"

"생각 안 해. 그럼 다리 작살나서 못 움직이는 애를 어디에다 놓냐."

"있죠, 선배. 혹시 무슨 비염 있어요? 전 지금도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죽을 거 같은데요, 선배가 냄새 때문에 불쾌해하는 건 못 봐서 그래가지고요, 궁금해서 말이죠."

"오래 일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네가 참아라."

김종비에게서 으레 불평을 늘어놓다 보면 윗사람에게서 한 번쯤 들어봤을 그 꾸짖는 대사가 들려오자, 차화영은 질렸다는 듯이 하품하는 동시에 기지캐를 켜며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김종비는 그런 차화영을 어이없다는 듯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시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배는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질문 해서 뭐 해."

"선배가 요즘 주구장창 시체만 쳐다보니까 뭔가 선배가 자기는 시체가 될 거다, 하고 생각하기라도 하나 싶어서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시체가 왜 돼."

"그치만요 선배, 벌써 여기 갇힌지 몇 주째잖아요? 전파도 안 터지고 뭐 먹을 것도 없는데, 그렇게 인상도 퀭한 채로 있으니까 비관적이 생각 팍팍 드는 사람처럼 보인다고요."

"…배고파서."

"네?"

"배고파서 그렇다고."

"아뇨. 그야 뭐 그렇긴 하겠지만-"

"당연히 그렇기야 하겠지. 몸은 비쩍 말라서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정도에 배는 속만 쓰리게 만들고, 머리는 24시간 먹을 걸 달라고 외치고 있으니까."

"말을 그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다 썩어가는 시체를-"

"너 이 기억소거제가 원래 몇 통이었는지 기억나?"

"…네? 보통 그런 걸 기억하고 다니질 않아서… 많아봐야 둘에서 세 통 아닐까요?"

"그런데 지금은 한 통 밖에 없단 말이지."

"중요한 거에요? 그거."

"네 말대로 세 통 있었다고 해 보자. 한 통은 네가 예전에 말해줬다시피 내가 이상한 짓거리 하는데 썼어. 그럼 남은 한 통은 어디로 갔을까?"

"그냥 두 통 있었던 걸수도 있죠."

"아니라면?"

"솔직히 선배, 지금 하는 대화 의미가 있나 싶은데요."

"자, 상상을 하나 해보자. 나는 지금 다른 사람 한 명이랑 시신과 함께 며칠째 터널에 갇혀있어. 배는 점점 고파와서 정신을 갉아먹어 오고 몸의 고통은 갈수록 심해지겠지. 더 이상 정상이 아니게 된 정신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먹을 것을 갈구하기 시작해. 마침 차에는 기억소거제가 있고, 며칠 못 가 썩어 문드러질 테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신도 있지. 이판사판이다 싶은 나는-"

"선배 미쳤어요?"

"아니, 어디까지나 그냥 상상이라니까?"

"지금 선배 눈이 완전 맛이 갔는데 상상은 무슨 상상이에요. 네, 그 말대로 선배가 저 시체 처먹었다고 하죠. 근데 썅 제가 그걸 가만히 냅두고만 있겠어요?"

"혹시 모르지? 너도 같이 먹고 잊어버렸다든가-"

"씨발 선배 좀! 제발 그냥 적당히 좀 하면 안 돼요? 나도 선배 힘든거 다 알아요. 그렇다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알잖아요, 선배나 나나 그런 짓 못하는 거. 그러니까 괜히 계속 이상한 생각이나 하지 말라고요!"

"모르겠다. 이젠 나도."

"뭘. 뭘 모르겠는데요."

"내가 이 얘기를 몇 번 째로 하는지. 시체를 어떻게 한 건지. 기억은 어떻게 된 건지. 너랑 난…"

어째서였는지, 김종비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필요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롱한 표정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던 김종비가 급작스럽게 말을 멈추고는 그대로 굳은 표정을 지으며 고요히 정지한 듯 서자, 차화영은 섬짓함을 느끼며 김종비에게서 조금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무력하게도 실패로 돌아갔으니, 이는 김종비가 예의 그 무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미소를 짓는, 형용하기 힘든 기묘한 얼굴로 잽싸게 차화영에게 다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는 건 조금이나마 있네."

"선배? 왜 이래요. 선배? 갑자기 왜…"

"네 말이 맞아. 너나 나나 이제 와서 이 시신이라고도 부르기 힘든 몰골의 이걸…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되지. 처음부터 알아야 했어. 애초에 우리 둘 다 이 꼬라지에서 살아나가는 건 불가능했다는 걸 말야."

김종비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 휴게소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어차피 시간 많아.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얘기도 들어줬는데 한 개 정도는 사 줄수 있거든. 어? 너도 내리게? 그럼 따라오든가. 난 오늘 아침을 걸러가지고 배고파서 식당에서 뭐 좀 먹어야겠다.

음, 그래서. 따라온 이유가 얘기 더 듣고 싶어서라고? 미안하지만 나도 그 순간 이후로는 잘 기억이 안 나서, 더 해주고 싶어도 해줄 얘기가 없어. 그냥… 무기력하게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어느샌가 구출되어 있더라고. 나 혼자였지만.

결국 그 선배가 어디로 갔느냐, 어떻게 됐느냐는 나도 잘 몰라. 그래도 팀장까지 한 선배니까 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알아보려고도 해 봤는데. 내 보안 인가로는 접근이 막혀 있더라고. 솔직히 나도 나름 사건 관계자인데 못 보게 막아두는 건 좀 아닌 건 같긴 한데. 아, 미안, 얘기가 좀 이상한 데로 갔나 보네. 나는 말이지… 뭐, 선배는 죽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그대로 나가서는 안 돌아왔으니 말야. 근데 어쩌면- 혼자 탈출해서, 다른 데로 전근갔거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걸고 싶네.

그러면, 밥도 다 먹었으니까 다시 가 보자. 난 잠 좀 잘 테니까 30분쯤 후에 깨워줘.


김종비는 흙투성이가 된 시신을 질질 끈 채 걸어가며 고요히 생각에 전념하고 있었다.

'애초에 진즉 이랬어야 했는데.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까. 결국 이렇게 질질 끌면서 고민하다가, 제일 낫다고 생각한 이 방법까지 지금에 와선 거의 도박수나 다름없게 되었으니…'

생각 없이 던진 빈 스프레이가 저 멀리 날아가, 깡 소리를 낸 채 잔해 속에 파묻혀 버렸다.

왜 하필 내가 휘말려야 했을까, 왜 하필 2명이서 지나갈 때, 왜 하필 우리밖에 없을 때, 왜 하필 시체가 실려 있을 때, 왜. 이제 와서는 무의미한 질문들과 사념들이 뒤섞여 혼탁해진 머리를 뒤로 한 채, 김종비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터널의 호젓한 곳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피로해진 머리는 그동안 이 안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으려 하지만, 번번이 떠오르는 것은 미완성된 불연속적 기억들뿐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들었는지, 보았는지, 삼켰는지. 이제는 더 이상 떠올려낼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살아나가는 게 우리가 아니면 될 뿐이다. 별 일 아니다, 그저 간단한 계산이다.

김종비는 어느새 자신이 캄캄한 구석에 온 것을 알아차렸다. 입 속에서는 비릿한 쇠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김종비는 저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반파된 차량을 바라보았다.

한 순간 터널에는 파열음과 함께, 일섬이 스쳤다.


교신기록 - 사건145██-PE


<교신 시작>
법의학과: 제145K기지 법의학과장이네.

운송차량: 네, 과장님. 운송팀 요원 차화영입니다.

법의학과: 뭐? 아, 나왔나 보구만.

운송차량: 오기는… 오더라고요, 구조대가.

법의학과: 무사히 구출됐으면 다행이고. 그, 혹시 운송팀장은…

운송차량: 모릅니다. 선배가 잠깐 딴 데로 간 후에 구조대가 와서요.

법의학과: 그래? 그럼 됐어. 따로 데려오든가 하겠지. 시체는? 어떻게 됐어?

운송차량: 어쩔 수 없었죠.

법의학과: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한숨] 아깝군. 그럼 병원 가서 치료나 받다 와. 업무는 몇 주 후부터 재배정해주면 되나?

운송차량: …네.

법의학과: 그러면, 뭐. 일은 유감이야. 그냥 장기 휴가 좀 받았던 거라고 치게.

운송차량: 알겠습니다. 선배한테는… 아뇨, 끊겠습니다.
<교신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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