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스탄공화국 (삭제된 페이지)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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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ttp://scp-jp.wikidot.com/wikipedia-shigastan
저자: ©︎stengan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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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ガスタン共和国(削除されたページ)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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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스탄공화국(シガスタン共和国きょうわこく, 시가어: Шига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통칭 시가스탄(シガスタン)은 중앙아시아의 공화제국가다. 북으로 러시아연방, 동으로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 남으로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하는 내륙국이다. 카스피해, 아랄해에 면한다. 수도는 시가스멘바시(워츠). 구 소비에트연방의 구성국이었다가, 1991년에 독립했다.
시가스탄공화국
Шига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시가어)
Республика Сигастан (러시아어)

(국기)

(국장)
표어: 사람을 맺고, 시간을 맺고, 호수와 맺다

수도: 시가스멘바시 (워츠)
최대 도시: 시가스멘바시 (워츠)
대통령: 사마르 I. 갤브레이스
면적: 736,297km2
인구: 1,400,000명
국명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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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는 「시가스탄의 역사 (영어판)」를 참조
기원전부터 근세까지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 보면, 기원전 5세기경에는 카스피해 연안에 오미라고 불리는 시가스멘인계 민족의 소국가가 복수 존재하고 있었고, 상호 항쟁을 거듭하였다. 또한 기원전 2세기부터 4세기에 걸쳐 중국과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역사서에는 현재의 시가스탄 성당유적의 위치에 시가스멘인계 민족의 것으로 보이는 집락연합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이후 약 200년간 시가스탄의 역사는 역사서에 기술된 것이 발견되지 않아서 잃어버린 공백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 문화적으로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그 이후, 6세기에는 유목민족인 튀르크계 민족이 이주해 와서 시가스탄 일대를 지배했다. 이것이 현재의 시가인의 조상이라고 한다. 에프탈이나 서돌궐, 카라한조 등의 침공을 받으면서도 이 지배는 계속되었으나, 13세기에는 몽골제국에게 지배당했다. 이에 따라 시가스탄은 동서교통의 요지로서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그 뒤, 오스만제국의 문화적, 정치적 영향을 받으면서 주치울루스(금장칸국), 카자흐칸국의 지배를 계속 받다가, 18세기 전반 들어 카자흐칸국이 정치적 통일을 상실하면서, 시가스탄 북부는 카자흐칸국의 흐름을 잇는 부족연맹체인 아자이칸국, 남부는 시가인계의 록카크족을 필두로 한 씨족연맹왕국으로 독립하였고, 양국은 종종 항쟁을 거듭하였다.
1723년에는 아자이칸국이 록카크족의 록카크왕을 멸하고 완전히 시가스탄을 통일하였으나, 같은 해부터 격화된 준가르의 카자흐초원 침입으로 아자이칸국 및 카자흐칸국은 궤멸적 피해를 입는다. 이 1723년부터 1725년에 걸친 아크타반 슈브룬두(맨발의 도주)라 불리는 준가르 침공에의 대응책으로서, 아직도 통일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던 아자이칸국은 동방으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던 러시아제국과 외교관계를 강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형태로 준가르에 대항했다. 1726년 카라슐전투에서 연합군이 준가르에 승리한 이후 아자이칸국은 러시아제국에 복속을 표명하고 보호국이라는 형식으로 그 산하에 들어갔다.
시가스탄왕국의 국기
그러나 1732년에 제정러시아군이 카스피해 동안에 주둔하면서 현재의 아드 주위에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하자 아자이칸국은 이에 반발, 관계가 악화된다. 아자이칸국은 대영제국에 원조를 요청해 러시아제국에 저항을 시도하지만, 러시아 내통자에 의해 계획이 탄로난다. 1740년 9월에 수도 워츠가 제압되고, 새로운 괴뢰정권으로서 시가스탄왕국이 성립되었다(9월 사건).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 9월 사건을 「중앙아시아에서의 러시아제국과 대영제국의 패권다툼」이라는 의미에서 그레이트 게임의 전초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19세기 러시아제국에서는 경공업을 기간으로 하는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1860년대 전반에 발발한 미국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그전까지 미합중국 남부에서 노예제 플랜테이션농업으로 생산되던 면화의 가격이 상승, 면화재료의 확보가 곤란해졌다. 이에 러시아제국은 「저렴한 면원료의 확보」 뿐 아니라 「대영제국의 중앙아시아 식민지화 저지」 및 「평원을 국경으로 삼는 것의 위험성」이라는 관점에서 중앙아시아로의 남진 및 영토편입・보호국화(그레이트 게임)을 추진하였다. 시가스탄은 농업이 빈약했기에 그레이트 게임에서 그다지 중요시되지는 않았지만, 주변국과의 통일을 위해 1868년에 시가스탄왕국에 현재의 시가스탄 동부를 포함하여 이이 총독관구 내의 히콜린 변경주가 되었다. 러시아령이 됨으로써 시가스탄은 급속한 근대화를 겪었고, 다수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알렉산드르 3세의 사적 재정고문이었던 소스타예트 타스가 꼽힌다.
20세기 이후
시가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국기
1917년 발생한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러시아 내전 와중의 백군파의 히콜린 임시정부(1917년 - 1920년)를 거쳐 소비에트연방의 산하에 1925년 다섯번째 소비에트공화국으로서 시가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 시기부터 시가스탄은 풍부한 광물자원을 주목받아 소련에 의한 개발이 진행되었다.
1949년에는 부와미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은 소련군의 지시로 시가스탄을 경유하여 방사능폐기물 운반작업을 하던 중에 시가인 감독관의 부실한 지시로 인해 카자흐인 노동자 7명이 급성 방사선증후군으로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일련의 유사한 민족문제가표면화된 사건들이 발생함에 따라 당시 카자흐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과 「전쟁 전야」로 형용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소련은 이 사건을 진정시키기 위해 보도규제와 비밀경찰을 동원했다. 언론탄압에 대한 반발과 사건의 원초적 원인을 소련에서 찾는 목소리 때문에 이 사건은 시가스탄 국민들 가운데 대소감정이 악화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소련에의 불만은 1991년 12월 16일의 소련탈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다. 현재의 국명인 시가스탄공화국으로 개명했고, 독립한 뒤에는 1991년 12월 21일에 독립국가연합(CIS)에 가맹했다. 같은 해 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데이 구아락이 취임, 공산당 정권이 부활한다.
시가스탄 내전
1992년, 시가스탄공산당 정부와 이슬람계 야당 반정부세력 간에 시가스탄 내전이 벌어졌다. 11월에 시가스탄공산당은 옛 시가스탄왕국의 왕족이자 국민의 인기가 높았던 우진 두아닐라를 의장으로 선출해 신정권을 수립하지만, 사라 I. 갤브레이스가 이끄는 반정부세력이 기세를 몰아 1997년 봄무렵 거의 전 국토를 제압했다. 1998년 4월 최초의 평화교섭이 이루어졌다. 1999년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결과 사라 I. 갤브레이스가 제3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정전명령이 발효되었다. 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내전은 1999년 이렇게 종결되었다. 국제연합 시가스탄 감시단(UNMOS)은 2005년에 평화프로세스를 완료하였고, 이후에는 국제연합 시가스탄 평화구축사무소(UNSOP)가 부흥을 지원했다.
2010년 6월 9일, 연설 중이던 사라 I. 갤브레이스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제4대 대통령으로 아들 사마라 I. 갤브레이스가 선출되었으나, 이 사건으로 시가스탄의 정세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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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는 「시가스탄의 지리 (영어판)」를 참조
시가스탄은 카스피해를 사이에 둔 북부와 남부, 아랄해 주변지역인 동부로 대략 나뉜다. 시가스칸에서는 전통적으로 카스피해를 바르바트해라고 부른다. 이것은 시가스탄왕국 시대에 수행된 측량조사에서 보고서에 「연안부는 활꼴이며, 마치 바르바트처럼 둥그스름하다」고 기록된 것이 유래가 되어 정착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북부
우랄산맥 남단이 위치한 산악지대다. 면적의 절반 이상을 산지와 카스피해가 점하고 있어서 거주지 면적은 좁다. 유럽으로 가는 육로는 러시아를 경유해야 한다.
남부
카스피해 연안의 저지대다. 카스피해에는 코토반도(영어판)가 돌출해 있고(코토주), 나가마는 시가스탄 유일의 부동항을 갖고 있다. 시가스탄 성당유적을 필두로 하는 고대 시가스탄의 귀중한 유적들이 다수 있어서 개발의 진척이 느린 지역이기도 하다.
동부
카자흐 스텝이 넓어지면서, 아랄해의 감소에 따른 염해(塩害) 피해를 입고 있다. 히콜린 변경주 시대에 시가스탄에 편입된 지역이라 문제가 빈발하고 있다.
행정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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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는 「시가스탄의 행정구획」을 참조
시가스탄은 이하 6개주(Oblys)로 구분된다.주
정령지정지구
워츠의 바위무대
시가스멘바시(워츠) ‐ 수도
시가스멘바시(시가스탄 국민의 우두머리라는 뜻)가 정식 명칭이지만, 현지에서나 외국에서나 옛 이름인 워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주요 도시
상세는 「시가스탄의 도시 목록」을 참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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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스탄 관저
상세는 「시가스탄의 정치(영어판)」를 참조
시가스탄의 국가원수는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임기 5년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정부를 조각하고, 각료・최고재판소장・검찰총장・국립은행총재를 임면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하며, 비상사태를 발령할 권한을 갖는다. 또한 군 최고사령관을 겸임한다.
시가스탄 내전이 종결한 이래, 조국구제당(릴레흐 오탄)이 단독과반을 점하여 사실상 일당독재체제다.
입법부는 하원과 상원의 양원제다. 하원은 정수 152석이며 비례대표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상원은 정수 71석으로, 그 중 51석은 국내 민족단체들의 포괄조직인 시가스탄민족총회에서 시가인과 시가스멘인 이외의 소수민족들로 선출한다. 이것은 「모든 목소리를 듣고 구제해야 한다」는 사라 I. 갤브레이스의 사상으로 소수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나머지 20석은 구 시가스탄왕국 왕족들 중에서 선출된다.
대통령
상세는 「시가스탄의 대통령」을 참조
초대 대통령 데이 구아락
군벌 출신. 시가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이자, 그대로 시가스탄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는 국호 개칭과 함께 정치체제도 일신될 것이라 기대했던 국민들의 실망과 반발을 샀다.제2대 대통령 우진 두아닐라
옛 시가스탄 왕족의 말예이자, 소스타예트 타스의 현손에 해당하는 인물. 온화한 인품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시가스탄 내전 종결 이후 정권을 조국구제당에 내주고 미국으로 망명했다.제3대 대통령 사라 I. 갤브레이스
첫 여성 대통령이며, 「시가스탄 건국의 국모」라 불린다. 행정개혁과 인프라 정비, 인터넷 보급 등에 주력했으며 약자 구제를 중시한 정책을 펼쳤다.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인물이며, 2010년 총격사건 때 각국 정상들이 애도의 뜻을 전했다. 결혼하기 전의 성은 오이제라.제4대 대통령 사마르 I. 갤브레이스
사라 I. 갤브레이스의 아들. 지금까지의 정책에서 방향을 틀어 시가인을 우대하는 독재적 정책을 펼쳐 국내외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시가스탄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언급에 대하여) 「석유 수출을 멈춰 줄까보다」 따위의 과격한 발언으로 유명해져 「시가스탄의 벼락」이라고 불리고 있다.주요 정당
상세는 「시가스탄의 정당 목록(영어판)」을 참조
군사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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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는 「시가스탄의 국제관계(영어판)」 및 「시가스탄의 재외공관 목록」을 참조
시가스탄 복식을 착용한 아베 신조(하리토노프 종합대학에서)
이웃 나라이자 구 소련 시절에는 같은 나라였던 러시아연방과 경제통합을 추진하여 유라시아경제연합을 설립하는 등 정치・경제 양면에서 밀접한 관계이다. 러시아, 중화인민공화국,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더불어 상해협력기구(SCO)의 가맹국이기도 하다.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러시아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또한 튀르키예공화국 등과 함께 튀르크평의회의 가맹국이기도 하다. 서방 나라들이나 이슬람 나라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과도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제창한 아시아상호협력신뢰양성조치회의와 중앙아시아 열국연합에도 찬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국제기구 참가를 도모하고 있다.
근년에는 송유관 설치나 일대일로정책을 받아들이는 등,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또한 사마르 I. 갤브레이스의 국내 시가인을 우대하는 정책방침 때문에 카자흐스탄과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다.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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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스탄은행 로고
1000 IGS(시가스탄 솜) 지폐
통화는 솜이다.
IMF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시가스탄의 GDP는 1,215억 달러, 1인당 GDP는 추계 8,785 달러다. 특히 내전 종식 이후 경제발전이 현저하여 2004년부터 2007년까지 GDP 성장률은 10.6%에 달했다. 2007년 이후에는 금융위기에 의한 세계적인 경기후퇴와 함께 경제성장이 둔화되어 2010년 - 2013년은 5퍼센트 전후의 성장률로 추이되고 있다.
시가스탄의 경제는 천연자원 의존형이다. 2015년 8월, 유가 및 러시아 통화 루블화 하락의 영향을 받아 환율을 관리플로트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이행한다고 발표한 결과, 솜달러 환율은 60% 하락했다. 그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급상승, 이에 따라 실질소득이 대폭 감소하고 개인소비가 위축되어 경기는 크게 침체하고 있다.
농업
시가스탄에서는 곡물재배와 목축이 이루어진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이웃나라들과 달리 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에 있어 수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땅이 애초에 비옥하지 않고, 특히 동부는 아랄해 감소로 인한 염해로 농업이 괴멸적 피해를 입고 있다.
석유・천연가스
색과 면적으로 표시한 시가스탄 수출품목(갈색이 석유, 천연가스)
시가스탄에 있어서 석유・천연가스는 중요한 경제부문의 하나이며, 수출・국가세입의 약 8할을 차지한다. 국영기업 시가스탄가스나, 미국 정부와 공동출자한 시가스탄석유채굴권주식회사(Shigastan Concessions of Petroleum inc.)가 중심이 되어 석유・천연가스 자원을 개발・수출하고 있다. 그래서 시가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석유탱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6년 11월, 새로이 카스피해의 아와미유전이 상업생산을 개시했다.
이처럼 석유에 의존적인 경제 탓에 현지에서는 「시가스탄에는 비아코(석유라는 뜻)밖에 없다」는 농담도 있다.[출처 필요] 또한, 이러한 석유가스전이 카스피해 연안의 남북부에만 집중된 것이 동부와의 심각한 경제격차를 더욱 벌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관광
세계유산이기도 한 시가스탄 성당유적이 유명하지만, 2015년에 시가스탄 성당유적의 일부가 붕괴하기도 했고, 내전 이후 부흥이 진행되지 않아 전체적으로 관광업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또한 관광사증 발행에 관해서도 해외 선진국이나 신흥국에 비해 처리 속도가 늦고 취득수속이 번잡하다.
일본에서 관광하기에는 물가가 매우 싸고 기간 관계 없이 체류가 쉽다.
교통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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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는 「시가스탄의 인구」를 참조
민족
민족구성은 시가인이 52%, 시가스멘인이 20%, 러시아인이 8%, 카자흐인이 5%, 우즈베크인이 3%, 투르크멘인이 2%, 그 외 기타가 10%(2015년)이다.
소련 시절의 잔재로 인해 국내에는 현재도 러시아풍 이름을 사용하는 세대가 많다.
언어
카자흐어의 방언에 가깝고, 일부 튀르크어계・인구어족 슬라브계 외래어휘를 갖는 시가어가 공용어로 정해져 있다. 러시아어도 널리 쓰이며, 특히 도시지역에서는 러시아어를 모어로 삼고 시가어는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시가인도 많다. 상류계급이나 엘리트에게는 러시아어가 필수이며, 고위공무원 채용시험에 러시아어 과목이 있다.
종교
2009년 조사에서는 이슬람교가 70.2 퍼센트, 기독교가 26.2 퍼센트, 기타 종교가 2.8 퍼센트로 나타났다.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복장・계율 모두 지극히 해이하고 여성의 지위도 높다. 음주도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동부에서는 엄격한 이슬람교도가 다수 있어서 이슬람 원리주의 과격파와 신흥종교세력 간의 충돌이 빈발하고 있다.
교육
2011년 추계된 바, 15세 이상 국민의 식자율은 77%(남성 83.5%, 여성 70.4%)다. 주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리투메이카누대학, 하리토노프종합대학, 바르바트해학원대학 등이 거론된다. 특히 리투메이카누대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네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교육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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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는 「시가스탄의 문화」를 참조
시가스탄인의 국민성은 「온화하고, 완고하지 않고, 계산에 밝고 이해관계에 민감하며, 축재에 뛰어나다. 문(文)에 능하지만 무(武)는 그 정도는 아니다」, 「수수하고 착실하며, 얌전하지만 끈기있게 노력한다」고 이야기된다. 주일 시가스탄 대사 유리 라멘은 시가스탄의 국민성 이미지는 소스타예트 타스에 관한 전설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고 말한다.몽골제국 시대에는 연금술에 관한 연구가 시가스탄에서 시작되어 동서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남부를 록카크왕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록카크왕이 불사(不死)를 동경하여 연금술을 적극적으로 지원, 급속도로 연금술이 발달했다. 일부 서적에서는 이 연금술 연구가 유래가 되어 쿼가 어쌔신들은 독이나 약의 취급에 뛰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시가스탄의 화학・약햑 분야에서 활약하는 기업들은 쿼가 어쌔신의 후손들이 설립한 것이 많다.
소련 시절에 시가스탄은 극장과 유명한 소설가들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징
시가스탄 옛 국기안
시가스탄의 국새
시가스탄에서는 개엉겅퀴가 국화이자 나라의 상징으로 취급된다. 이것은 사라 I. 갤브레이스가 개엉겅퀴 꽃을 좋아했던 것이 유래이며, 공공기관 로고마크 등 다양한 곳에서 모티브로 이용된다.
식문화
상세는 「시가스탄 요리」를 참조
우마의 내장요리가 유명하다. 동부를 원산지로 하는 “오미의 골마(骨馬)”는 고급 식재료로서 숨은 인기를 자랑한다.
또한 연금술 연구로부터 부차적으로 발효식품 제조기술이 발전하여, 포도주나 맥주 등 다수의 주종이 생산되고 있다. 발효기술과 풍부한 수산물을 활용해 나레즈시 비슷한 것도 전통적으로 만들어진다.
라면 문화가 발달해 있다. 사라 I. 갤브레이스가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장 일반적인 종류는 간장 베이스 소뼈육수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속식(金属食)의 습관이 존재한다.
문학
상세는 「시가스탄 문학」을 참조
전통적인 시가스탄 문학에서는 이야기 마지막에 신격이나 구세주 같은 존재가 튀어나와 사태를 수습하는, 소위 「기계장치의 신」 양식이 많은 작품에서 보인다. 그러나 등장하는 존재들이 단순히 만사를 원만하게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야기 등장인물을 모두 죽여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거나, 초상적인 힘은 발휘하지 않고 「하늘의 목소리」 같은 간섭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측면이 그리스 연극의 「기계장치의 신」 양식과는 다르다고 지적하는 연구자도 있다.
음악
상세는 「시가스탄의 음악」을 참조
세계유산
상세는 「시가스탄의 세계유산」을 참조
시가스탄 국내에는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된 문화유산이 3건, 자연유산이 1건 존재한다. 유명한 것은 시가스탄 성당유적, 칸 논지 유적, 워츠의 바위무대.
법정기념일
일자 일본어 표기 현지어 표기 비고 1월 1일 설날 2월 6일 씨앗의 날 사라 I. 갤브레이스 탄신일 3월 22일 노루즈(이란력 설날: 춘분날) 4월 10일 종전기념일 일명 엉겅퀴 핀 날 5월 9일 전승절 1945년에 나치 독일이 소련 등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한 날. 이것은 소련 시절부터 계승된 것임 6월 9일 추도, 전국민 복상의 날 사라 I. 갤브레이스 제삿날 6월 13일 구제의 날 7월 19일 라면의 날 사라 I. 갤브레이스가 라면을 좋아해서 제정된 기념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일에는 라면을 기리는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8월 25일 수리의 날 국조인 흰꼬리수리에 유래한다 9월 30일 헌법기념일 10월 27일 공화국의 날 11월 16일 건강의 날 12월 16일 독립기념일 1991년 시가스탄공화국이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주권선언을 채택한 날 시가스탄의 기념일은 헌법에서 각 달에 최소 하루씩 있도록 설정되어 있다.
출신 저명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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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스타예트 타스 - 알렉산드르 3세의 사적 재정고문. 라스푸틴과의 정쟁에서 패배함
- 사라 I. 갤브레이스 - 제3대 대통령
- 유리 라멘 - 현 주일 시가스탄 대사, 번역가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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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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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田信夫『北アジア遊牧民族史研究』(東京大学出版会、1989年、ISBN 4130260480)
- ストラボン(訳:飯尾都人)『ギリシア・ローマ世界地誌Ⅱ』(龍溪書舎、1994年、ISBN 4844783777)
- アッリアノス(訳:大牟田章)『アレクサンドロス大王東征記 上』(岩波書店、2005年、ISBN 4003348311)
- サラ・I・ガルブレイス(訳:ユーリィ・ラメン)『ノアザミの咲いた日~紛争地帯を統一した世界一の女性大統領~』(2005年、講談社)
- 小松久男『世界各国史4 中央ユーラシア史』(山川出版社、2005年、ISBN 463441340X)
- ロレンツ・エルドリッヂ(訳:黒野 花難)『"紀行 第2巻"』(岩波書店、2006)
- 岩村忍『文明の十字路=中央アジアの歴史』(2007年、講談社)
- 鵜山智彦・藤本透子『シガスタンを知るための60章』 (2015年、明石書店、ISBN 978-4-7503-4062-3)
- ユーリィ・ラメン『シガスタン旅歩き』(2015年、講談社)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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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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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칙물체 기록
설명: 존재하지 않는 국가 “시가스탄공화국”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된 디지털 문서. 해당 페이지의 초판은 2003년 8월 15일에 Wikipedia 일본어판에 작성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추기・수정이 이루어진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20██년 ██월 ██일 본 페이지의 삭제에 관한 사이트 유저들의 논의가 제기될 때까지 아무도 “시가스탄공화국”이 실재하지 않는 국가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회수일자: 20██년 ██월 ██일
회수장소: 인터넷 백과사전 사이트 Wikipedia 일본어판
현재 상태: 해당 페이지를 Wikipedia 일본어판에서 삭제(오버사이트 처리)한 후, 재단 디지털 라이브러리에 아카이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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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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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관 마로비메 시키미(転眼式見)의 회답
…그 문서에 대한 질문이 자주 들어오지만,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시가스탄 공화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서술이 상세하다고 해서 그것이 시가스탄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어딘가 한가한 사람이 심심풀이로 써서 장난할 생각으로 투고한 것이겠지요. 위키 이용자들은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거짓말을 그만 믿어버려서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그 뿐인 일입니다. …
…예에, 확실히 시가스탄이 20██년 ██월 ██에 어떠한 이유로 소실되고, 저 문서만 남았다는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지요. 실제로 재단은 그런 아노말리를 몇 가지 확인한 바 있고요. 그렇지만 20██년 ██월 ██일에 대규모 현실개변, 혹은 인과간섭은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예. 확실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가설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재단 내부용 역정보가 아니냐고요? 20██년 ██월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숨기기 위한? …
…가령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인증서 등급으로는 알아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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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국은 소실했고, 나는 공허에 남겨졌다.
20██년 ██월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진실에 도달하기에 지금의 나는 너무 무력하다.
그래서 나는 이 허무에서 고향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소리를 지른다.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라 믿으며.
나는 절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시가스탄이 되살아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