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호: 書-356
명칭: 기팔백물어(奇八百物語)
품상: 일반(一般)
저자: 아다시노 세이지(化野誠二), 후지와라 기요카도(藤原清廉) 외
연대: 17세기 후반~18세기
유형: 수초(手抄)
장어: 지하 3층 이상장품수장실 7번 서고에 보관됨. 5년마다 봉인을 풀어 상태를 확인함.
묘술: <기팔백물어>는 17세기 후반 일본에서 지어진 기담집으로, 선장(線裝)으로 되어있다. 본문에서는 당대의 제령사 아다시노 세이지와 후지와라 기요카도가 저술하였다고 기술하였으나 연구에 따르면 최소 10명 이상이 저술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중 제4번째 이야기는 연보 5년(1677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직접 명시하고 있으며, 제725번째 이야기에서는 승려 하쿠인 에카쿠(白隠慧鶴, 1685~1768)가 등장하여 집필 연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용: <기팔백물어>는 일본 각지를 배경으로 한 기담을 기록한 책이다. 수록된 이야기는 第○番과 같이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이야기마다 두 저자 중 한 명의 서명이 적혀 있다. 서명의 주인은 각 이야기마다 번갈아 나와 홀수 번째 이야기의 서명은 아다시노 세이지의 것으로, 짝수 번째 이야기의 서명은 후지와라 기요카도의 것으로 되어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반드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나 귀신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책의 서문은 <기팔백물어> 저술의 배경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문의 내용에 따르면 수록된 이야기의 숫자는 800개이며 아디시노와 후지와라 두 사람의 공동 저술물이지만, 실제로 수록된 이야기의 수는 485개.1997년 확인됨. 최초 발견 당시에는 493개.이며 최소 10개의 이야기에서 서로 필체가 일치하지 않는다. 책에 있는 이야기는 800개가 전부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이야기가 빠져있는데, 예를 들어 제1번부터 제10번까지 이야기 중 제2번, 제5번, 제6번이 빠져있으며 원래 이야기가 적혀있을 부분은 백지로 텅 비어 있다. 책의 양 표지 안쪽에는 封이 새겨진 부적이 부착되어 있다.
역사:
17세기 후반 아다시노 세이지, 후지와라 기요카도에 의해 집필되었다.
1692년 아다시노 세이지가 사망, 1696년 후지와라 기요카도가 사망한다. 사망 이후에도 다른 저자가 책을 계속해서 집필하였다. 집필 종료 시기는 불명확하나 빨라도 18세기 초반까지는 계속되었다.
1928년 일본 츠다누마(津田沼)의 유선사(遺宣寺)를 정리하던 중 발견되었다.
1929년 유선사가 폐사하였다. 주지승이었던 후지무라 타로(藤村太郎)로부터 목역 소속이었던 하나시로 세이스케(花城誠亮)가 <기팔백물어>를 넘겨받았다. 당해 3월 17일 목역장서각 본관으로 인계되었다.
1932년 수록된 이야기의 소실이 확인되었다.
1932년 대만의 요도(妖道) 우징(巫京)이 부적과 인장을 덧붙여 봉인을 강화하였다.
1947년 금줄로 책을 봉한 채로 서고에 보관하였다.
특성: 일반적인 책과 달리 <기팔백물어>는 영위(靈位)가 음의 값을 가져 크기가 사람이나 잡귀와 비슷하다. 특히 안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마치 생령과 같이 방향성을 띠는데, 책의 표지에 부착된 부적은 그 반대 방향으로 영력을 가해 방향성이 상쇄되게 만든다. 따라서 부적은 이야기를 책 안에 봉인하는 기능을 가진다.
표지의 부적은 힘이 강력한 영만을 감지하고 영력을 행사할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조금씩 영위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 중 기준선 이하까지 약해진 이야기는 부적이 감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해당 이야기들은 봉인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봉인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들은 글씨가 점차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 원래 이야기가 적혀있던 종이는 백지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1932년 8개의 이야기가 빠져나간 것을 발견하여 처음 알려졌다. 강력한 부적으로 봉인을 덧대어 현재는 더 이상 소실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제령사로서 활동하던 아다시노와 후지와라는 우연히 어느 마을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같은 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동질감을 느껴 하룻밤 사이에 친해지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둘은 동행하며 제령사 일을 하였다. 어느 악귀는 이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둘을 이간질할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산길을 가던 중에 악귀는 눈먼 승려로 둔갑하여 길을 헤매는 척하였다. 두 사람은 중을 부축하여 하산을 도와주었다. 그러자 악귀는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둘이 이름을 말하자 악귀는 짐짓 놀라는 척을 하며 두 사람이 전국에 명성이 자자하다고 아부하는 것이다. 그것을 들은 두 청년은 은근한 거만함이 생겼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헌데 그러고 보니 두 분의 이름을 함께 들어본 적은 있어도 한 분의 이름만을 들은 적은 없는 듯합니다. 이것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두 분 중 누구의 이름이 더 높으신지요?" 하였다. 이것을 들은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이름이 더 높다고 대답하였다.
중과 헤어지고 난 후에도 둘은 중이 했던 말이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 말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서로 자신의 명성이 더 높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은 동이 트도록 말다툼을 벌였지만 서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때문에 두 사람은 내기를 하였는데, 두 사람이 제령사 일을 하며 보고 들은 기담들을 적어내자는 것이다. 둘 중 하나가 더 이상 기담을 적어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패배한 것이 되어 악령에게 잔인하게 죽임당할 것이었다. 둘 모두 승낙하여 매일 밤 책에 기담 하나씩을 적어내었다. 그렇게 사백밤이 지났다. 그날 밤에 팔백한 번째 이야기를 적어내야 했던 아다시노는 젖 먹던 시절의 기억까지 훑어보았으나 도저히 적을 만한 이야기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결국 아다시노는 해가 저물 무렵에 솔직히 더 알고 있는 이야기가 없다고 고백하였다. 아다시노는 죽임당한다는 두려움과 패배의 허한 마음을 가지고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후지와라는 뜻밖에도 크게 한숨을 내뱉는 것이다. 아디시노는 친구의 반응을 보고 의아해하며 왜 그러는지 묻자 후지와라는 "솔직히 나도 더 이상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었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기는 무승부로 하는 것이 어떤가?" 하고 말하는 것이다. 아다시노는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가 어처구니가 없어 크게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내기가 끝나고도 친구 사이로 남아 오랫동안 교류하였으며 서로의 기담을 적던 책을 <기팔백물어>라고 이름 붙였다.
연구자: 위팅(雨婷)
동양 문화권에서 요괴와 이야기, 즉, 실체와 비실체는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이때 요괴와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선행되느냐의 논쟁이 극심했는데, 요괴의 존재로 인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설화에서 실체를 가진 요괴가 탄생하는 것인지의 문제였다.
<기팔백물어>의 주요 저자로 보이는 아다시노와 후지와라는 그 중 이야기가 선행된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팔백물어>는 이야기 선행론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서문에서 두 사람의 업적을 비교하기 위해 이야기의 수를 비교하는 것에서 실체보다 비실체를 더 중요시함을 볼 수 있으며, 악귀가 두 사람을 이간질할 때 쓴 도구는 언어였다. 또한 두 사람이 <기팔백물어>를 작성하게 된 동기를 알려주는 서문 자체도 이야기의 형태로 작성되었다.
그러한 맥락을 고려할 때, 본서는 단순한 기담집이 아니라 실제로 악령을 봉인한 책으로 볼 수 있다. 본서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는 사람을 해치는 요괴와 귀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표지 양쪽에는 각각 아다시노와 후지와라가 지은 것으로 보이는 봉인 부적이 붙여져 있다. 각 이야기는 단순한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영력을 가지고 있다. 즉, 각 제령사가 발견한 요괴와 악령들을 이야기의 형태로 책 안에 봉인해 둔 것이다.
이러한 봉인 방식은 에도 시대 유행했던 백물어(百物語)를 본뜬 것으로 보인다. 백물어란 '백 가지 이야기'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모여 촛불 백 개를 켠 후 각각 괴담 하나씩을 들려준 후 촛불을 하나 끄는 괴담회이다. 이때 백 번째 이야기를 말하고 마지막 촛불을 끄면 요괴가 등장하거나 괴이한 현상이 생긴다. 백물어는 이야기를 풀어줌으로써 괴이 현상을 해소하는 일종의 저주 풀이 모임으로, 일본의 제령사들 사이에서 종종 사용되다가 세속 문화로 발전하였다. 백물어의 세속화는 백물어 문화 자체가 괴담, 다시 말해 '이야기'로 바뀌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즉, 백물어 자체가 괴이의 일종으로 승화됨으로써 그 신령함이 강화된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기팔백물어>의 서문 이야기는 백물어가 거치게 된 신령화의 재현을 목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체를 분석한 결과 <기팔백물어>에서 아다시노와 후지와라가 직접 쓴 부분은 절반 이하이며, 나머지 이야기들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쓴 부분이다. 따라서 서문 이야기는 완전한 창작이다. 하지만 서문 이야기는 책에 강력한 영적 당위를 만들어 주는데, 백물어의 이야기화가 백물어 자체에 신령함을 부여했듯이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한 책에 모으게 된 과정' 자체를 이야기로 만들어 <기팔백물어>에 신령함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각 이야기의 끝에 남긴 두 사람의 서명이 한 이야기마다 교체되는 것은 <기팔백물어>가 서문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을 알리는 도구이다.
따라서 <기팔백물어>의 실제 작성 동기는 아다시노와 후지와라, 그리고 제자들이 발견한 악령을 이야기의 형태로 봉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 선행론에 근거해 요괴와 귀신들을 그 본질인 이야기의 형태로 책에 가둔 뒤, 서문 이야기를 신령화시켜 1차 부적으로, 양 표지의 두 부적을 2차 부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기팔백물어>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이야기의 숫자와, 이야기의 소실이 그 근거이다. 우선 서문 이야기에 따르면 수록되어 있어야 했을 이야기의 숫자는 800개이며, 실제로 800개를 다 채웠을 때 이야기의 신령화가 완수될 것이므로 당위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최초 발견 당시 수록되어 있던 이야기는 493개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최초 집필이 끝났을 때 800개를 전부 채우지 못했었거나, 이야기의 소실이 발생해 발견 당시에는 493개까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팔백물어>에는 제800번째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으므로 집필이 번호 순서대로 이루어졌다면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후자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야기의 소실 원인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로 서문 이야기의 신령화가 실패했을 가능성이다. 서문 이야기에 따르면 <기팔백물어>는 아다시노와 후지와라 두 사람만의 공동 저술이었어야 했으나 여러 사람이 참여함으로써 이야기의 사실성이 깨졌다. 이로 인해 백물어와 같은 신령함의 부여가 어긋났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백물어의 괴이화는 매우 특별한 사례이며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므로 이에 대해 속단할 수는 없다.
두 번째는 표지에 부착된 부적이 열화되었거나 설계가 잘못되었을 경우이다. 현재 부적은 영력이 강한 이야기들만 잡아둘 수 있고 비교적 영력이 약한 이야기들은 봉인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는 초기 설계의 실수인지 시간에 따른 열화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기팔백물어>에서 이야기가 소실되는 원인이 된다.
소실의 최초 원인이 둘 중 어느 것이든, 수록된 이야기의 수가 800개가 아니므로 서문 이야기의 신령화는 높은 확률로 이미 깨졌을 것이다. <기팔백물어>는 악령들을 모아둔 봉인서이므로 이야기의 소실은 악령의 탈출이나 마찬가지이다. 부적을 통한 봉인을 유지하고 탈출한 악령들을 회수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연구자: 징춘(璟春)
여러 면에서 <기팔백물어>가 악령들의 봉인서라는 기존 학설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소실이 실패의 근거라는 주장은 재고의 필요가 있다. <기팔백물어>가 참고한 백물어의 목적은 이야기를 통한 괴이 현상의 해소에 있기 때문이다.
백물어와 비슷한 사례로 한국의 이야기 주머니 설화가 있다. 이야기 주머니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적어 놓아 자루 안에 모아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이야기를 자루 안에 꽁꽁 가둬두기만 하니 이야기들은 입과 입을 통해 퍼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야기들은 남자가 장가 가는 날에 그를 해코지하려고 작당을 하였는데, 남자의 하인이 그것을 엿들었다. 하인은 남자에게 내막을 알려 이야기들을 풀어주고 세상에 퍼져나가게 해주었다.
이야기 주머니 설화는 이야기에서 실체가 발생한다는 이야기 선행론을 나타내고 있으며 극히 특이한 사례지만 굿에 활용된 기록도 있다. 이야기 주머니 설화는 이야기를 모아두었다가 풀어주는 것으로 화를 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아다시노와 후지와라가 해당 설화를 참고했을 가능성은 적으나 <기팔백물어>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제800번째 이야기 뒤쪽에는 부자연스럽게 비어진 자리가 있는데, 서문 이야기의 신령화 원리를 고려할 때 제801번째 이야기가 소실된 흔적이라면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해당 자리는 본래 결문이 있었던 자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결문이 주문(呪文)이나 후기 등의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다른 이야기와 같이 소실된 것은 이상하다. 따라서 서문에 이야기가 있었던 것과 같이 결문에도 이야기가 실려 있었으며 그로 인해 소실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면 서문과 결문이 수미상관을 이루므로 영적 효과를 증대시켰을 것이다.
<기팔백물어>의 효과가 이야기 주머니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기팔백물어>는 단순히 악령을 봉인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자루 안에서는 사악했던 악령이 자루를 풀어주자 저주가 해소된 채로 나왔듯이, <기팔백물어>는 봉인될 당시에는 흉악하던 악귀를 무해한 혼령으로 만들어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소실 현상은 부적의 열화나 설계 실수 때문이 아닌 의도된 사항일 것이다. 이야기의 소실은 강력한 악귀를 부적으로 억제하고 있다가 힘과 악의가 충분히 약해지면 해방하여 악귀를 평범한 귀신으로 세상에 돌려보낸다.
그렇다면 결문 이야기의 내용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아다시노와 후지와라가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그들의 제자들이 <기팔백물어>의 이야기들이 책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보았다. 제자들은 이야기를 모두 풀어주었다. 두 사람이 모은 수많은 기담은 선한 귀신이 되어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이야기 주머니에서 저주 해소의 핵심은 해방이다. 악귀를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방시켜 줌으로서 악의를 없앨 수 있었다. 현재 이야기의 소실을 방지하기 위해 <기팔백물어>에 추가로 부적을 덧대었지만, 강제로 부여한 속박은 악귀의 악의를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지금이라도 부적을 다시 해체해 이야기의 소실이 재개되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비고: 위팅의 학설에 따르면 1929년 발견 이후 1932년까지 3년간 소실된 8개의 이야기들은 악귀가 탈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징춘의 학설에 따르면 결문 이야기가 존재하였으며 그 이야기 또한 소실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탈출한 8개의 이야기, 결문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나 요괴의 형태로 발견한다면 각 학설의 주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이나 둘 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998년 시점 남아 있는 모든 이야기의 영위가 기준선 이하로 줄어들어 추가로 붙여 놓은 부적이 없다면 모두 소실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 학설의 신빙성과는 별개로 이야기의 소실 현상은 소장품으로서 가치를 떨어트리므로 부적을 통한 소실 방지 조치는 지속할 계획이다. <기팔백물어>는 2000년 목역에서 SCP 재단으로 정식으로 인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