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실현적 예언을 하는 변칙개체들은 누군가의 운명을 "고정" 시킵니다. 이게 정말 모호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생각하세요. 한 통계 데이터 묶음을 따라가게 만들고, z-값을 0에 가깝게 만든다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던 그 데이터 묶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예언은 이루어지죠. 통계집단을 따라가게 되는 겁니다.
예언이 있다. 이 예언은 기본적으로 자기실현적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되면 이 예언은 피할 방법이 없다. 미래를 내다본 순간 그 일종의 운명이라는 것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신화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다.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장난의 신 로키의 세 자식이 대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래서 신들은 자식들을 모두 신계 아래로 던져서 내버린다. 임박한 미래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증오에 가득 찬 자식들은 훗날 다시 돌아온다. 그 자식들이 바로 거대한 늑대 펜리르, 지구만큼 긴 독사 요르문간드, 명계의 신 헬이다. 그리고, 이들이 일으킨 대재앙이 세계를 끝내는 라그나로크다.
통계예언학과 이론 중 하나는, 신들이 만약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해도 결국에는 재앙이 찾아왔으리라 믿는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용어조차도 결과론적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삐끗해서, 혹은 실수해서, 혹은 만용을 부려서 예언대로 파멸적인 미래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운명이라면? 애초에 무엇을 해도 고정된 결과라면? 확신할 수 없다.
나는 면담실 북쪽의, 면담자 지정석에 앉았다. 등과 허벅지로부터 경직된 촉감이 전해져 온다. 플라스틱제 생명 없는 물건들이 으레 지니는 그것이다. 고요한 공허가 내 앞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상대는 SCP-████. 예언산출 능력자다. 그리고 그 변칙성이야말로, 자기실현적 예언에 완전히 부합할 것이다.
훑어본 바로는 대상은 자신과 관련없는 미래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진술과 이에 대응되는 사건도 완전히 부합했다. 정확도가 높다. 시작이 좋은 편이다.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나면 확실히 개운함을 느낄 터. 나는 서류 더미를 앞에 두고, 볼펜을 왼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곧 종이 쳤다. 면담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나타났다. 조용하고 고요한 인상. 그런 개념을 짜낸 가면을 쓴 듯, 수사적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열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로, 긴 검은 머리와 창백한 얼굴. 전체적으로 마치 겨울을 버티지 못한 들풀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다. 변칙개체들이 다 안 그렇겠냐만은, 격리가 그에게 준 영향을 알 만 했다. 그는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마치 남지혜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관찰하고 있는 셈이다.
"반갑습니다. SCP-████."
나는 입을 열었다. 그는 긴장한 기색인지 무시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
"아니면 채은서, 라고 불러드릴까요."
"상관없어요."
"예. 당신의 미래 인식에 대해서 질문 몇 가지를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는 무관심한 얼굴이었다. 마치 어떤 거대한 힘에 쓸려나가는 낙엽처럼 나 혹은 내가 하는 말에 대한 저항 의지가 전무한 듯 보였다. 그 진의는 불확실했지만 어쨌든 여타 광신도들이나 망상증을 앓는다는 현실조정자처럼 비협조적인 인간은 아니여서 다행인 듯 싶었다. 나는 서류 틈에서 녹음기를 꺼내 켜 두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향하는 듯 했다.
"먼저…… 파일을 보면 어제 밤 12시 5분 경에 환각을 경험하셨다고요."
"예. 뭐, 몇 주에 한 번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잠시 침묵. 그의 눈이 내 눈을 스쳤다. 잠시 시선이 고요하게 부딪혔다. 알 수 없는 긴장이 느껴졌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긴장할 이유란 없는데.
"불. 불이… 벽에 붙어요. 붙을 거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위로 고드름이 얼고, 어둠이 드리우고… 한 건물 지하에서 일어나는 일이예요."
"그 건물이 어떻게 생겼죠?"
"아주 크고 넓어요. 꼭 병원이나 교도소 같기도 하고."
"음, 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은—"
조용히 속으로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혹은 상대가 해 왔던 대부분의 예언처럼 파괴적이다. 게다가 이는 상징조차도 아니며 어떠한 단서도 아닌 정말로 미래 상황 그 자체가, 그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딘가가 불타게 될 것이고 얼어붙게 될 것이다. 어쩌면 어느 재단 기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기록해 놓는다.
그리고, 포스트잇 한 장과 볼펜 한 장을 상대 쪽으로, 강화 유리 틈새로 집어넣는다. 상대가 물리적으론 무력해서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이 기지에만 사람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것들은 십수 개체가 넘게 있을 테고, 그들에게는 이런 대범한 짓을 할 수 없을 것이야 뻔한 일이다.
"그럼, 그 상황을 그려 보시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알듯 말듯 한 표정의 그 끄떡임에서만큼은 마치 이 기지 밖 혹은 재단 밖의 평범한 학생과도 같은 모습이 보여서 괜스레 기분이 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가는 손으로 볼펜을 쥐고는, 섬세한 동작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회색 눈동자에 형광 노랑빛의 그림자가 비추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는 내게 곧 종이를 건넸다. 잉크빛 선이 일련의 구조를 구성한 그림이었다.
"흠."
애매했고 또 복잡한 그림이었다. 나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복도와 막다른 길. 이런 구조야 전세계 수천 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치미는 듯 한 불과 냉기의 낙서는 특징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림 실력 때문에 확실히 이해할 수도 없었다. 제아무리 같은 장면을 봐도 사람의 묘사는 상이함이 사실상 분명한 것이다. 나는 한숨을 조용히 쉬었다.
"네, 답변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떻습니까, 진술은?"
남지혜는 격리동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니고 있던 포스트잇을 그에게 내주었다. 내가 그린 것도 아닌데 어쩐지 누군가를 비웃는 행위 같아 알 수 없이 찜찜했다. 하지만 결국은 증거물 아닌가. 이 증거를 대조하고 비교해서 지구상 어딘가에 있을 위기에 처한 구역을 알아내는 것은 내 역할은 아니다.
"보시다시피 어떤 건물에서 변칙 현상이 일어날 것 같더군요."
"불과 냉기가 동시에 나타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죠?"
"예, 그렇죠."
남지혜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포스트잇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모르는 것을 그가 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몇 초간 그림을 들여다보던 그는 종이를 주머니 속에 넣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몇 번을 들어도 나보다도 감정 없이, 시니컬한 투의 음성이다. 방금 본 그 여자애와는 같지만 다른 투의 무표정이다. 이 기지가 특이한 것인지 아니면 이 둘만 특이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SCP-████. 어떻던가요?"
"태도 말씀이십니까?"
"뭐, 예. 태도나 이것저것 모두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되는 대로 대답했다. 나야 그 여자애를 수 시간도 아니라 수십 분 정도로만 마주쳤을 뿐이니 확실한 것이야 알 수 없고 그저 짧은 시간 내 받은 인상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무표정하고, 태연하고, 초연하다 못해 어떤 힘에 떠내려가는 인간상 같다는 표현. 혹은 새카만 머리와 하얀 피부, 그리고 불안한 형상에서 주는 그런 병약한 인상 같은 것을. 이를 들은 남지혜는 잠시 눈을 감더니 대답했다.
"그 개체는 기본적으로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아실 테고요."
"예. 파일은 기본적으로 다 읽어 봤으니까요."
"그런 변칙성 때문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본 것을 재단에 모두 전달하고 있는지. 이런 의심스러운 정황이 꽤 있습니다."
"그런가요."
나는 대강 대답하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SCP-████, 채은서. 그 여자애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나는 아마 평생이 지나도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인간상과는 별개다.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무력한 인간이었다. 채은서가 내다보는 미래는 채은서가 아무리 바꾸려고 해 봐야 결국에 고정된 것일 뿐이다. 바꾸려는 그 행동이나 의지가 곧 결과에 대한 지름길이 된다. 확실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가늠할 수는 있다. 바꿀 수 없는 미래를 본다는 그 감각을.
"뭐, 변칙개체라는 게 다 그렇죠."
"그럴지도요."
나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남지혜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서 손짓했다. 나는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지하 3층. 아래는 지하 4층. 고중요 개체 격리실과 종합시신보관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연구팀도 몇 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목적지로 향했다.
변칙적이진 않다만 가끔은 겉보다 안이 더 커 보이는 공간이 있다. 곤충학부 연구격리실도 그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박현은 기묘한 분위기의 공간을 목격한다. 연구격리실의 입구 쪽에는 밀웜이나 냉동 쥐가 든 냉동고 따위의 먹이 자원들이 있으며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이 공간의 진짜배기 목적이 드러나고 있었다.
누런빛과 회갈색의 메뚜기 무리가 각각 관찰장 내에서 엄중한 보호를 받고 있었으며 으슥한 곳의 사육장에는 사람 손바닥만 한 푸른 빛의 거미나 팔뚝만한 지네 따위가 보였다. 그 외에 벽면에는 나비나 딱정벌레 따위 표본이나 사진 등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몸을 피했다. 이러한 벌레를 아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분명 변칙적인 것들일 테니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남지혜야 기지의 곤충 변칙 개체들까지도 꿰고 다닐 테니 큰 조바심이라던가 긴장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세심히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이내 크고 촘촘한 새장을 발견했다.
그 사육장 안에는 몇 마리의 푸른 빛깔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작은 크기에 오색의 무늬가 있는 그 나비들에게 호기심이 갔다. 적어도 포식성 지네나 세금을 걷는 메뚜기 무리보다는 미학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슬쩍 나비 무리를 바라보았다. 곧 누군가가 끼어들기 전까지는.
"그 왕오색나비는,"
방 구석진 곳으로부터 한 남자가 걸어왔다. 키가 작고 곱슬곱슬한 까만 머리칼을 지닌 마른 남자로 연구복과 뿔테 안경을 입어서 연구원의 프로토타입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였지만, 입가의 무표정이 암시하는 웃음기라던가 눈의 모양을 보면 장난기나 활기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는 잡동사니를 밀어 조금 옮겨내 나와 남지혜가 걸어올 경로를 마련해두고는 높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비들이 요란히 사람을 피해 반대편으로 날았다.
"굉장히 치명적인 인식재해 보인자죠. 이 나비를 시각적으로 목격하면, 즉각 심장과 가슴 근육 내의 혈액 순환은 임의로 중단됩니다."
"예?"
나는 뒤로 물러섰다. 뭐라 따지려는 순간, 남지혜가 끼어들었다. 그는 조용하지만 날선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장난은 그만 치시죠, 사내 괴롭힘입니다."
"아. 미안합니다…… 이 나비의 인식재해는 오직 가장 큰 천적 중 하나인 제비 종들에게만 통합니다. 인간에게는 아주 무해하죠. 커피 드릴까요?"
그렇게 말한 남자는 이미 저만치의 사물함에 놓인 커피 상자를 뒤적이다가 다 떨어졌는지 텅 빈 상자를 뒤로하고 다시 둘에게로 다가왔다. 그 행동이 남지혜의 성질을 더 자극했는지, 그 남자는 또다시 한 차례의 살모사 같은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쪽 업무는 이분에게 E-13432를 보여주는 것 뿐입니다, 함필규 연구원."
함필규라 불린 사내는 성질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가끔 심하게 그런 성질을 드러냈다만 남지혜의 카리스마나 고압적인 성격은 두려워함이 분명해 보였다. 입을 닫은 남자는 구석의 고 보안 격리 사육장 중 하나를 가리켰다.
관엽 식물이 식재된 제법 대형의 사육장으로 처음에는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진 않았으나, 곧 그 사육장 내의 흙과 낙엽과 잎 사이에서 붉은 별처럼 박힌 한 무리의 무당벌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당벌레 특유의 다양성을 갖춘 그것들은 각기 붉은색 혹은 검은빛의 등갑과 하나의, 두 개의, 혹은 일곱 개의 검거나 누렇거나 흰 점무늬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을 조심스레 바라보는 함필규의 시선에서 열정이 느껴졌다.
"이 곤충은 Harmonia axyridis hypnosus입니다. E-13432, 혹은 재단 과학부 일반명으로는 인지무당벌레라고 합니다. 무당벌레의 아종이죠."
함필규는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이를 받아든 나는 단박에 이것이 개정 이전의 파일임을 알아챘다. 차량에서 파일들을 뜯어본 탓에 파일 내에서 정작 중요한 예언적 내용이 전무함을 확인해낸 것이다.
변칙 개체 설명: Harmonia axyridis hypnosus로 명명된 무당벌레(Harmonia axyridis)의 아종. 외관상 무당벌레와 이 종은 차이점은 없으나 상호 아종 간의 교미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별개의 변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E-13432 개체들은 인근에 있는 먹이, 주로 진딧물 개체들에게 인식재해를 야기하여 이 먹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 변칙성은 진딧물들의 번식 능력도 약화시키는 것이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현재 자연 상태에 얼마나 많은 E-13432 개체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회수 일자: 2021년 4월 9일 처음 분류 및 대대적 확보 시작.
회수 장소: 전라북도 부안군 야산에서 발견됨
현 상태: 제145K기지 및 제35K기지가 개체들을 격리 및 사육 중.
"예언적 내용이….. 미갱신이네요?"
"맞습니다. 아직 불확실의 영역이라 통계예언학부 쪽에만 선공개되었거든요."
함필규는 무당벌레들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런 이야기 알고 계십니까? 남프랑스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손 끝에 무당벌레를 올려놓고 점을 친다고 하는데요."
"들어봤습니다. 젊은 남성의 집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면 곧 결혼한다거나, 성당으로 날아가면 수녀가 된다거나 하는 그런 점이죠."
"말 그대로, 실험 결과 이 무당벌레 종도 비슷한 변칙성을 지닙니다. D계급 실험 결과 정확도 92% 이상이었고요."
그는 파일을 하나 더 건넸다. E-13432 무당벌레의 비행 이동 방향과 D계급 혹은 벌레와 노출된 인원들의 향후 사건에 대한 비교 및 대조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를 읽어내려갔다. 말 그대로 파일만 봐서는 분명한 일치가 있었다. 인원의 손에서 무당벌레가 지하 4층 종합시신보관소로 향할 경우엔 그 인원은 사망했다. 전등 쪽으로 향할 경우 진급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주 확신할 수는 없다. 자세히 보면 단순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다.
"그쪽도 한 번 테스트를 해 보시겠습니까?"
함필규는 물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지금껏 미래를 본 적이 없다. 이유는 많겠지만 통계예언학과 사람들 중 절반은 미래를 보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거보다도 여기서 본다는 일이 더욱 꺼려진다.
"아, 실례했군요. 그럼—"
그때, 사육장 안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무당벌레 몇 마리가 날아오르다가 이내 천장에 부딪혀 떨어졌다. 함필규는 이를 힐끗 보고는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물론 사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무당벌레 점이라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떤 면에서죠?"
남자는 수조를 곁눈질했다. 그리고는 초승달처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엔 마치 어린애 같은 천진함과 또 특유의 알 수 없는 의중이 담겨 있었다. 좋은 징조는 아니다.
"사람이 미래를 갈망하는 정도라는 점에서죠."
"잘 모르겠군요."
"천하게 생각하는 벌레에게까지 의존해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 아니겠습니까."
그는 웃었다. 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 웃었던 것 같다. 미래를 갈망하는 정도는 당연하지만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통계예언학과 인원들은 둘로 나뉜다. 이 갈망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이. 그리고 아예 애써 배제하고 살아가려는 이. 하지만 정작 둘 다 미래에 대한 욕망은 거의 동등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내가 남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의 갈망을 지니고 있는지 나도 모른 채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방금도 말했듯이 이유는 많겠지만 통계예언학과 사람들 중 절반은 미래를 보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미래를 영영 바꿀 수 없을 때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절차나 프로토콜으로 정해둔 바 없을 테니까. 나는 그리하여 그저 건조한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그런가요. 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다 생각하지만 뭐…… 아무튼, 곧 추가적인 실험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때 들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행히 그는 더 무엇을 캐묻지는 않고 말을 돌렸다. 그를 응시하고 있을 남지혜 요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재단 요원으로서의 책임 때문이었을까. 어쨌건 그나마 달가운 일인 것은 확실하다. 남지혜가 곧 소매를 잡아 끌었다. 다음 일정이 있다는 신호일 것이 뻔했다. 나는 함필규에게 작별을 하고는, 연구실을 나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방금 저 무당벌레들, 천장 쪽으로 날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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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언자가 있다.
채은서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누워 있다. 격리실 침대는 편안한 곳은 아니였다. 밤이 깊어 왔고, 고작 기지를 돌아다닌 것으로도 지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뜨자, 공기는 보다 서늘해지고 점점 공간은 일그러지는 듯 했으며, 희미한 형체가 격리실 천장 위로 스쳐 지나갔다. 은서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사방을 살핀다.
환각인가? 그렇다면 지금 미래를 보고 있는 걸까? 채은서는 막 잠에 들려던 정신이 허락하는 대로, 최대한 독백하면서 눈을 비빈다. 은서의 예언은 그렇다면 지금 보고 있는 미래는 격리 파기 사태 이후의 것임이 분명하다. 은서는 눈을 힘주어 감았다 다시 뜬다. 순간 시야가 변한다. 장소는 오늘 보았던 그곳, 기지 지하 4층이다.
천장에 냉기가 스쳐 지나가고, 푸른 불꽃이 일면서 투명하고 어두운 무엇이 바로 은서의 옆을 스친다. 그는 조용히 뒷걸음치다 멈춘다. 이건 지금 일어난 일이 아니다.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은서는 되뇌인다. 그리고 그때, 소리 없이 누군가가 그의 곁으로 걸어 들어온다. 은서의 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쪽으로 향한다.
은서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소년이다. 아마 그보다는 나이가 좀 더 어릴 듯 싶다, 앞머리와 속눈썹이 긴 창백한 그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미래의 세계 속을 걸어나가더니, 그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는 단숨에 고개를 돌려 채은서를 바라본다.
"안녕, 채은서."
순간 척추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은서를 덮친다. 소년은 분명히 그를 보고 있다. 두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선명한 미소가 느껴진다. 그 순간 채은서는 마치 헤드라이트를 본 사슴처럼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어떻게 예언 속에서 말을 걸 수 있는 거지. 채은서는 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레 뒤로 물러선다.
"여기가 맞으려나? 기억 상으로는 정확한데…"
낭랑한 목소리가 고요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고요하고 빛나는 그 시선으로 그 소년은 채은서를 보고 있었다. 그 눈은 마치 허공 속 미생물을 쫓듯 연신 추적하면서, 혹은 추측하면서 빛나고 있었다. 소년이 미소지었다.
"채은서. 과거에서 날 보고 있겠지?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웨더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