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깊게 파인 파란 드레스를 입고 꽃무늬 실크 스카프를 한 여자가 앵두 색깔의 컨버터블을 공항 도로변에 세웠을 때, 알렉산더는 분명히 일이 잘못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알렉산더 폭스?” 여자가 물었다.
“네, 접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안드레아 S. 애덤스라고 해요. 일행 겸 운전기사죠.” 애덤스는 분명 정상적이고 실용적이었을 차의 덮개를 열었고 너무 큰 여행 가방과 단단한 플라스틱 케이스 두 개로 거의 꽉 채워진 좁은 수납 공간이 나타났다. “짐은 여기 넣으세요.”
알렉산더는 그 말대로 하고, 조수석에 올라가 앉았다. “이 차는 눈에 안 띄기 힘들 거 같은데요.” 알렉산더가 말했다.
“일단 믿어 봐요. 저희가 어디로 가는지 알죠? 평범한 차는 오히려 더 눈에 띌 수 있어요.”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클레프 박사가 임무 브리핑 때 정확하게 말해 줬을 텐데.”
애덤스는 웃었다. “서프라이즈 파티를 망치고 싶진 않거든요.”
알렉산더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것도 그 임무들의 하나가 될 것 같았다.
“애리조나로 가서 애덤스의 보조가 되어줬으면 해.” 클레프가 전날에 말했다. “뭔 일이 생겼고, 애덤스가 그 일을 해결해 줬으면 하거든.”
알렉산더는 람다-2에 합류한 이후 처음으로 그의 행정관을 보았다. 알렉산더가 애덤스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서 모은 정보는 여러 가지 모순된 이미지들을 만들어냈지만, 공통적으로 3가지 묘사가 나타났다. “치명적이고,” “일에 능숙하며,” “매력적이다.”
알렉산더는 “예측할 수 없음”을 선임 특수 요원 애덤스의 정신 프로필에 추가했다. 어쨌든 애덤스는 여행에 쓸 교통수단으로 포르쉐를 빌리는 여자였다.
1시간가량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드라이브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대화도 사교적인 인사말 말고는 오가지 않았다. 그들의 드라이브는 외딴곳의 설명할 수 없는 데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리조트 호텔의 정문에서 끝났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죠?” 애덤스가 물었다.
알렉산더는 거짓말할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루비 메사 리조트네요.” 알렉산더가 말했다.“ 마셜 카터 휴양 산업부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고렇답니다. 다이아몬드 마운틴 쪽보다 우아하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은 있는 곳이죠.”
아. 이제 뭐를 알겠네. “5월에 있던 청소년 캠프 사고에 대한 일이군요. 그렇죠?”
“어떤 면에서는요. 당신 전 직장의 사람들이 저희에게 넘기고 싶던 그 사고의 정보들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그 인간들은 신중하게 행동했고, 그래서 제가 주말 휴가로 여기로 온 거죠.”
“전에 여기 온 적이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콕 집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절 알아볼 겁니다.”
“저도 알아볼걸요. 가명을 안 쓸 거라.” 애덤스는 주차원 앞에 차를 세우며 미소를 지었다. “캠프 그라나다를 해결한 요원의 신분이라면 포상을 받아 주말 휴가로 왔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죠?”
“잘 모르겠네요.” 알렉산더가 말했다. “마셜&카터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진 않거든요.”
“적어도 입구로 들여보내 주긴 하겠죠.” 애덤스는 차를 주차하고 밖으로 나와 목 주위에 스카프를 둘렀다. “아무튼,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걸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겨요. 기동특무부대의 요원 전체를 대동하지 않고도 이 회담에 참여할 수 있고, 그리고 당신의 전 고용주들에게 이게 급습을 위한 재단의 준비가 아니란 걸 확인시켜주기도 하고요.”
“정말입니까?” 알렉산더가 되물었다
“저도 잘은 몰라요.” 애덤스가 인정했다. “아주 공을 들인 이중 은폐 전략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자고요.”
그들은 주로 프랑스 혁명 전 귀족들이나 중동의 석유 재벌들을 위해 장식된 로비로 들어갔다. 알렉산더는 이 대리석 바닥이 평범한 사람이 일생동안 버는 돈보다 더 비싸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금테 장식과 자개 상감 무늬를 제외한 값이었다.) 이 사실 만으로 여기에 사는 사람이 다른 99.99%의 인류와 다른 세상에 산다는 걸 잘 보여줬다.
그들이 프런트에 다가갔을 때, 스리피스 슈트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잘 정돈된 머리를 공손히 숙이면서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애덤스 요원. 다시 봐서 반갑군요, 폭스 씨.” 안내인이 말했다. “길디드 스위트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애덤스가 물었다.
“루비 메사 리조트는 저희 고객 분들이 원하기도 전에 고객 분들이 원하는 게 뭔지 예측하는데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내인이 기계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안내인은 두 개의 키카드와 리조트 안내 책자가 담긴 가죽 파일철을 넘겼다. “객실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저희 짐은…” 애덤스가 입을 열었다.
“… 바로 객실로 옮겨 놓겠습니다.” 안내인이 말을 마쳤다.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객실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그들은 안내인을 따라 로비를 지나 고급스러운 진홍색 카펫과 벽이 늘어선 복도로 나왔다. 애덤스는 손끝으로 벽을 쓸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비단 벽지네요.” 애덤스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저희 고객 분들을 위해 최고급만을 사용한답니다.” 안내인이 말했다. 얼굴은 여전히 완벽하게 숙련된 미소로 고정되어 있었다.
알렉산더는 웃었다. 그는 마셜 카터 앤 다크 리조트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었다. 물론 애덤스는 몰랐을 게 분명했다.
그들은 어두운 목재와 금테로 장식된 방 다섯 개짜리 스위트룸으로 안내받았다. 처음 봤을 때는 무늬가 새겨진 수정으로 보였지만 다시 보니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는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반짝거렸다. 가구에는 황백색의 벨벳에 금색으로 수가 놓인 천으로 덮여 있었다. 검붉은 난초와 보라색 백합과 몇 가지 안개꽃으로 된 싱싱한 꽃꽂이가 손으로 짠 하얀 레이스 깔개 위의 무늬가 새겨진 꽃병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크림색 봉투가 기대어 세워진 채 식탁에 놓인 과일 바구니였다. 그는 봉투를 집어 적힌 글을 읽었고(손글씨로 쓰인 필기체였다.) 충격받은 표정의 애덤스에게 건넸다. “당신에게 온 겁니다.”
애덤스는 어색하게 봉투를 집었다. 그래도 눈길은 가끔씩 비싼 덮개와 고급진 가구에 쏠렸다. 애덤스가 편지를 다 읽었을 때, 그녀의 표정에는 황홀감이 가시고 짜증이 드러났다. “우릴 초대하신 분들이 오늘 저녁의 회담에 올 시간을 못 내게 되어 유감이라고 하네요.” 애덤스가 말했다. “대신 내일 아침 일찍 만나자고 하고, 오늘 하루 동안은 리조트에서의 여가를 즐기라고 하는군요.” 애덤스는 크림색 편지지를 손끝으로 문질러보고, 빛에 비추어보고 심지어는 빈 종이에 뭐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정말로 빈 종이이지만)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열을 가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애덤스는 종이를 접고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낚였다고 봐도 되겠죠.”
“그런 거 같습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그는 과일 하나 (연두색에 연분홍빛이 도는 작은 배)를 들고는 살짝 냄새를 맡아보았다. “코미스 배군요.” 알렉산더가 말했다. “꽤 괜찮군요. 제철도 아닌데 이 정도 배를 구하긴 쉽지 않은데 말이죠.”
애덤스는 고개를 저었다. “전 기다리는 거 싫어요.”
알렉산더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군요.”
“그렇긴 하죠.” 애덤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잘 닦인 대리석 조각을 손가락으로 쓸어 보고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다가 알렉산더를 향해 비꼬는 듯한 미소를 보냈다. “그럼, 이 고급진 것들로 둘러 쌓인 데에 왔으니, 최대한 빨아먹어야겠네요. 저녁 뭐 먹을래요?”
(호텔에서 제공된) 저녁으로 애덤스에겐 드라이 에이지드 안심 스테이크가 (미디움 레어에 흰 송로버섯 버터가 곁들어짐), 알렉산더에겐 구운 양고기가 (구운 여름 채소가 곁들어짐) 제공되었다. 알렉산더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식사였다. 확실히 잘 만들어졌고, 맛있었지만, 마셜 카터 리조트 식당의 높은 기준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반해 애덤스는 막 황홀경에 빠질 것처럼 보였다. “칼질 한 번에 그냥 녹네요.” 애덤스가 말하면서 한 입 더 먹고는 행복한 감탄하는 소리를 내었다. “버터 같아요.”
“확실히 재단 식당에 비하면 격이 다르긴 하죠.” 알렉산더가 인정했다.
“플레임스와 녀석의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여기만큼의 예산을 가지고 있진 않으니까요.” 애덤스도 동의했다. 그녀는 자신의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지배인이 추천한 카베르네였다.(알렉산더의 개인적인 시선으론 붉은 고기와 함께 먹기 좀 과하다 싶은 빈티지였다.) “워우, 이거 대단한데.” 애덤스가 말하고 서둘러 말을 붙였다. “항상 이런 걸 먹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한 번 쯤은 이런 데에 빠져도 괜찮겠네요.”
알렉산더는 애덤스가 자신의 접시를 비우면서 마지막 한 입을 먹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는 동안 남은 고기를 집었다. 마치 이때를 기다린 것처럼 (정말 기다린 것 같긴 하지만), 한 쌍의 조용한 웨이트리스들이 나타나 빈 접시를 치웠다. 아주 잠시 후, 조각이 새겨진 접시에 복잡하게 보이는 순수한 금가루가 뿌려져 빛이 나는 초콜릿 디저트가 테이블로 서빙되었다. “셰프께서 제공하신 서비스입니다.” 웨이터가 예의를 갖춰 말하면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애덤스는 디저트를 한 입 먹고는, 눈을 감고 그대로 감탄을 흘렸다. “와 세상에. 이 디저트가 인간이었다면 바로 여기 이 순간에 같이 섹스를 할래요.”
알렉산더는 몸을 움찔했다. “말 좀 주의해 주십쇼.” 알렉산더가 말했다. “여긴 고급 식당이니 말입니다.”
“아하!” 애덤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퇴폐적인 디저트를 한 입 먹으면서 웃었다. “이 단조로운 겉모습에도 인간적인 무언가가 있을 거 같긴 했는데.”
“단조롭다고요?” 알렉산더가 물었다.
“어쩌면… 단조로운 건 아닐지도. 뭘 숨기고 있다고 할까요. 인생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의 부속물로 사는 인간의 모습이랄까.” 애덤스는 접시 바깥쪽을 숟가락으로 훑었고 끈적거리는 초콜릿 소스를 살짝 핥았다. “그니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MC&D에서는 직원들에게 인간성을 드러내는 걸 권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요.”
“우리의 고객들은 자신들의 삶이 비밀로 남길 원합니다. 방해받지 않으면서요.” 알렉산더가 말했다. “제가 볼 땐 당신들 회사에는 이쪽과는 정반대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볼 땐 저희는 인간성을 매우 많이 드러내도록 권장한단 말인가요?”
"당신들 재단이 ‘인간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당신들의 ‘4인 기사단’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알렉산더가 말했다.
“일리 있네요.” 애덤스가 디저트 접시에 있는 마지막 초콜릿 소스를 긁어냈고, 행복한 작은 한숨을 쉬었다. “뭐, 맛있었네요. 이제 여기서 뭘 할 수 있죠?”
물론 그녀는 수영복을 챙겨왔겠지. 그리고 물론 그건 검은색 비키니일 테고.
애덤스가 느리고 여유롭게 빈 수영장 이곳저곳을 헤엄치는 동안 알렉산더는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아 어떤 위협이 오지 않나 감시했다. 이 시간 동안 수영장은 거의 비어있었다. 몇몇 손님들이 온천을 이용하고 있긴 했지만, 애덤스가 있는 곳은 그들밖에 없었다.
애덤스는 계속하던 발장구를 멈추고 가장자리로 다가와 매달렸다. “수영 못해요?”
“수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알렉산더가 대답했다. “염소가 저하고 잘 맞지도 않고요.”
“호오. 그건 생각 못 했네요.” 애덤스가 말했다. “조류 예방 처치가 당신의 새 폐하고 잘 맞지 않는 거군요.”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기분이 상당히 나쁩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그는 애덤스가 자신의 폐포를 대체한 이끼 기반 망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애덤스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기분이에요?” 애덤스가 물었다. “몸속에 여러 대체물들이 쑤셔박혀 있다는 게?”
“전과 그렇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어떤 건 더 쉬워졌고. 다른 건 더 어려워졌죠. 그저 속으로 난 여전히 전에 있던 나 자신이란 사실을 꾸준히 상기시켜야 합니다.”
“양날의 검인 셈이군요.” 애덤스는 사다리를 올라 반짝거리며 젖은 채로 수영장에서 나왔다. 그녀의 적갈색 머리카락은 머리와 등에 달라붙었다. “이전의 자신을 좋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겠네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거일 뿐이죠.”
애덤스는 어깨너머로 팔을 쭉 뻗었다. “온천 좀 확인하러 갈게요.”
알렉산더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자네가 생업으로 하는 일이 뭔가?” 은발의 남자가 물었다. 남자는 한쪽 팔로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어 보이는 금발의 여자를 안고 있었고, 여자는 대부분 보석이 덮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 모두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그들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문이 발코니에 어떤 위협이 있지 않나 확인했다.
“전 보안과 인수를 주로 하는 국제 기업의 하급 간부입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수영복을 계속 입기로 했고, 온천의 가장자리에 앉아 거품과 증기가 나오는 물에 발을 담근 상태였다.
“흥미롭군.”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먹이를 보는 늑대처럼 몸을 겨우 가린 애덤스를 쳐다봤다. (여자는 캔디 크러쉬 사가를 플레이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우리 기업도 그런 쪽에서 활동하는데. 어쩌면 함께 일했을 수도 있을 것 같군. 이름이…?”
“시몬즈입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베로니카 시몬즈. 그리고 그럴 거 같진 않군요. 상하이 소비자 제품(Shanghai Consumer Products)은 미국 자체에 관심이 별로 없거든요.”
“상하이라, 하.”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말일세, 요즘 중국 쪽으로 사업을 확장할까 생각 중이라네. 함께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전 그런 것에 대한 권한이 없습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하지만 명함을 주신다면, 제 상관에게 처리를 요청할 수 있을 겁니다…”
“자네가 그들에게 이미 얘기가 끝났고 그들의 서명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으면 좋겠군.”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어떤 결단력 같은 걸 비춰 보이는 거지. 어쩌면 ‘하급 간부’라는 직함보다 더 높게 올라갈지도 모를 걸세.”
“으으으음.” 애덤스가 말했다. 그녀의 미소는 친근감을 보이기엔 약간 많은 이빨을 드러냈다. “내 상관께서 좋아하시겠네요. 약간의… 결단력이라…”
“내 스위트룸으로 오지 않겠나? 샴페인 한 잔과 함께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걸세… 아니면, 자네만 원한다면야 진도를 더 나갈 수도…”
알렉산더는 몸을 움찔했다. 그는 온천에 앉은 남자를 자세히 쳐다보곤 몸을 떨면서 두 번 헛기침했다. 애덤스는 놀라면서 쳐다보더니 은발의 남자에게 매력적이지만 용서를 구하는 미소를 지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요.” 애덤스가 말했다. “내일 이른 아침에 저희 고객과 회담이 있습니다. 그것도 이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서요. 오늘은 푹 쉬어야 합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걸세.” 남자가 순진하게 웃었다. 그의 손은 함께 앉은 여자의 허리를 세게 움켜잡았고, 여자는 놀라면서 소리를 질렀다. “30분도 안 걸릴 거야…”
“안녕히 주무십쇼.” 애덤스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거품이 이는 하얀 욕조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알렉산더는 애덤스 손을 잡아 나오도록 도와줬다.
“내일 저녁은 어떤가!?” 남자가 소리쳤다. “술 한 잔 살 수 있을 걸세…”
애덤스는 알렉산더와 함께 호텔로 돌아가면서 남자를 향해 떨쳐내듯이 손을 흔들었다. “도대체 뭔 빌어먹을 상황이었죠?” 애덤스가 로비에 들어서면서 물었다. “지금 당장 위험함. 바로 자리를 뜰 것이라뇨?”
“저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났습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그는 전 고객이었던 리처드 라퐁텐입니다. 그의 취미는 젊은 여자, 마약, 그리고 몰래 젊은 여자에게 마약을 먹이는 거죠.”
애덤스는 얼어붙었다. “시발.”
“그 말이 딱이네요.” 알렉산더가 말했다. “밤에 함께 술 한 잔이라도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애덤스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색유리 너머로 애덤스는 은발의 남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여자의 스마트폰을 쳐서 온천에 빠뜨렸다. 여자는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고, 그렇게 큰 다툼이 일어났다. “이건 어때요.” 애덤스가 차갑게 말했다. “술 한잔하자는 약속을 받아들이는 거죠. 그리고 잔을 서로 바꿔치면 저 남자가 어떻게 뿅가죽을지 보는 거예요.”
“안 될 겁니다. 병에 직접 넣거든요.” 알렉산더의 표정은 어두웠다. “무엇보다 저 인간은 로히피놀에 면역이 되도록 많은 시간과 돈을 썼습니다.”
“저런 시발놈의 개새끼가! 왜 저 좆같은 녀석이 감옥에 가지 않는 거죠?”
“돈만 있다면 나갈 방법은 충분히 많으니까요.”
애덤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젠 저 인간이 불행한 사고를 좀 겪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애덤스가 말했다. “온천에서 익사한다던지, 발코니에서 추락한다던지…”
“그런 말 하지 마십쇼.” 알렉산더가 말을 끊었다. “생각도 하지 마세요. 자선 경매의 상품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자선 경매요?”
“MC&D가 자신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고객을 해쳤을 때 행하는 전통적인 처벌입니다. 그들은 가해자를 비밀 경매를 통해 몇몇… 전문가들에게… 팝니다. 운이 좋다면, 종교재판관이나 도살자에게 선택될 겁니다. 만약 아주, 아주 운이 없다면, 신원 도둑에게 팔리겠죠.”
“신용 카드 번호를 훔치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당신의 얼굴… 당신의 마음… 당신의 과거… 당신의 가족… 당신의 친구들까지요. 그리고 그걸 당신의 삶을 살고 싶고 그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파는 겁니다.”
“세상에.” 애덤스가 숨을 죽여 속삭였다.
알렉산더는 어깨를 으쓱했다. “비용은 희생자나 그 가족에게 청구됩니다. 제경비나 처리비는 더 적게 들죠.”
“하지만 잠시만요.” 애덤스가 물었다. “만약 그가 절 MC&D의 부지에서 마약을 먹이면, 그 인간도 경매로 팔릴 수 있지 않아요?”
“당신이 당신의 의지에 반해서 마약을 먹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말이 그의 말과 다르면 어쩌려고요? 한 여자가 그러긴 했습니다.” 알렉산더는 애덤스를 엘리베이터로 데려갔다. “라퐁텐의 친구들이 자신들의 돈을 모아 그 여자보다 더 높은 값을 불렀습니다. 라퐁텐을 고급 창녀에게로 보내서 말채찍으로 열 대를 맞도록 했죠.”
“개새끼들.” 애덤스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알렉산더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들은 스위트룸으로 돌아왔고, 애덤스는 샤워를 하러 갔다. 알렉산더는 집으로 전화할 시간을 가졌다.
전화기는 벨이 세 번 울린 뒤 연결이 됐고, 수화기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 루실.” 알렉산더가 말했다. “아빠란다.”
“안녕 아빠. 잘 지내고 있어?” 루실이 물었다.
“잘 보내고 있지. 넌 오늘 하루 어땠니?”
“나도 좋았어. 학교에서 애벌레가 나비로 변했어. 작은 멋쟁이 나비로. 너무 예뻤어…”
“그랬을 거 같구나. 아빠가 오늘 뭐 했는지 아니?”
“모르겠는데. 총으로 누굴 쐈어?”
알렉산더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 때문에 아빠가 사람을 쏠 거라 생각한 거야, 루실?”
“학교에서 어떤 얘한테 내 아빠가 큰 회사의 경비원이라고 말했더니, 걔가 경비원은 가끔씩 퓩퓩이나 그런 걸로 사람을 쏜대.”
“퓩퓩이?”
“응. 번개를 쏴서 ‘퓩’ 찌르는 작은 플라스틱 총. 사람들에게 전기충격을 준대.”
알렉산더는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인 자신의 장갑을 쳐다봤다. “루실. 아빠는 그런 총이 없단다.”
“아빠는 퓩퓩이가 없어? 그럼 누가 공격하면 어떡해?”
알렉산더의 시선은 이제 장갑 옆에 놓인 장전된 두 권총으로 옮겨갔다. “… 그냥 주먹으로 세게 때리지.”
“와 그거 괜찮네.”
“뭐 다른 일은 없었니?” 알렉산더가 물었다. 그는 자기 딸이 자신의 하루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더는 이후 자신의 딸에게 바바 야가와 그녀의 닭다리가 달린 집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30분을 더 보냈고, 마지막엔 핸드폰으로 부드러운 뽀뽀 소리를 보내면서, 기념품을 사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마침내, 알렉산더는 전화를 끊고, 만족감에 한숨을 쉰 뒤, 화면을 계속 쳐다봤다.
“딸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죠?”
알렉산더는 고개를 들었고, 애덤스가 작은 바에 몸을 기대어 딸기를 야금거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언제부터 거기에 서 있었는지 알렉산더는 알 수 없었다. “전화 통화하는 동안에는 거짓말 안 합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전 퓩퓩이 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주먹으로 때리는 걸 선호하고요. 제가 말한 모든 게 사실입니다.” 알렉산더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작은 바로 다가가 애덤스와 합류했다. “당신은 당신의 자식들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합니까?”
“전 자식이 없어요.” 애덤스가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죠. 아니면 좋은 아빠를 찾지 못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겠죠.” 애덤스는 딸기 꼭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과일 바구니에서 배를 꺼냈다. “일과 가족의 균형을 겨우 맞춘 여자는 단 한 사람밖에 못 들어봤어요. 그리고 그 여자는 심지어 후자를 선택했죠.”
“그 사람이 누굽니까?
“아가사 라이츠. 전 그 사람에 대해선 잘 몰라요. 내가 들어오기 이전의 사람이라.” 애덤스는 배를 얇은 은박으로 썰어 칼 뒤에 붙은 과육을 먹었다. “당신 말이 맞네요. 이건 겁나 좋은 과일이에요. 꼬맹이 남자분을 위해 몇 개 챙겨갈 수 있을까요?”
“당신이 원한다면 안내원이 당신을 위한 선물 바구니를 준비하리라 장담하죠.”
“헤. 그건 생각 못 했네. 안내원이 있는 곳에 자주 머물지 않아서요.” 애덤스가 말했다.
“그냥 추측인데, 그래서 라퐁텐 씨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졌을 겁니다. 당신에겐… 외부인처럼 보이게 하는… 천진난만함 같은 게 있습니다. 이 사회의 원 안에 속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제가 은수저 물고 태어나서 그렇다고는 못하겠네요.” 애덤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제가 어떻게 자라났는지 자체도 말할 수 없어요. 제가 재단에 들어온 첫날 이전으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거든요.”
“그게 이상한 일인가요?”
“전례가 없진 않죠. 하지만 이건 대체로 과거의 삶이 보안 문제와 연관이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애덤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찌 됐든. 전 재단과 함께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지도 모르죠.”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었나요? 당신이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애덤스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배를 한 입 깨물고 턱에 묻힌 과즙을 닦았다. “현재의 저를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요.” 애덤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어때요? 당신의 과거에 대해 후회하는 게 있나요?”
알렉산더는 피와 공포의 냄새로 가득 찬 겨울의 오두막을 회상했다. 산탄총을 든 웃는 남자, 그리고 용감하고 너무나도 늙은, 곰 모피를 입은 여인도. 그는 화약의 냄새와, 딸의 첫 번째 울음, 그리고 아내의 마지막 숨결을 기억했다. “과거는… 어쩔 수 없는 거죠.” 알렉산더가 결론 내렸다.
“존나게 직설적이네요.”
그들은 잠시 함께 이 사실들을 곱씹었다.
알렉산더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그리곤 샤워를 하고, 자신의 양복을 입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장갑이 켜졌고 충전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PAVISE는 재킷의 안주머니 안에 밀어 넣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권총이 장전되어 있는지, 그리고 2개의 여분 탄창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하루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룸서비스는 아침식사와 함께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애덤스는 전날 저녁의 안심 스테이크를 먹을 때의 열정으로 허브 오믈렛을 입에 넣었다. 알렉산더의 접시는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알렉산더가 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나는 막 만들어진 팬케이크가 반겨줬다. 알렉산더는 버터와 메이플 시럽을 바르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상대 쪽에서 아침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어요.” 애덤스가 말했다. “임페리얼 스위트에서 한 시간 뒤에 만나자네요.” 애덤스는 또 오믈렛을 한 입 먹었다.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거래가 조금 달라진 거 같네요.”
“임무에 차질이 생깁니까?” 알렉산더가 물었다.
“아주까진 아니에요.” 애덤스는 토스트 한 조각을 이용해 접시에 남은 계란들을 모아 한꺼번에 베어 물었다. 그렇게 행복한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어야겠어요.” 애덤스가 말했다. “잠깐 쉬고 계세요.”
애덤스는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고, 알렉산더는 자신의 아침을 즐겼다. 알렉산더가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쉬고 있자, 애덤스는 청회색 신사복을 입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자신의 커피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놨다. 애덤스의 손에는 매끄러운 검은색 장갑이 있었고, “양말”도 같은 재질로 되어 있었다. 그 천은 블라우스의 칼라 밖에도 삐져나와 턱선까지 덮여있었다. “그거 전투용 슈트인가요?” 알렉산더가 물었다.
“맞아요.” 애덤스가 말했다. “헬멧은 안 쓰는 대신에, 최소한의 방어구도 없이 들어가는 건 멍청한 거 같아서…”
알렉산더는 손을 들어 애덤스의 말을 막았다. “제안 하나 해도 됩니까…”
안내인이 회담을 위해 그들을 부르러 갔을 때, 그는 그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있는 걸 보았다. 깔끔한 양복과 연두색 넥타이를 맨 남자와 붉은 장식이 있는 몸에 딱 달라붙는 매끄러운 검은색 슈트를 입은 여자였다. 여자의 얼굴은 무미건조한 검은색 헬멧으로 가려져 있었다.
안내인은 잠시 정지했다. 그의 미간은 좁아졌고, 그의 턱은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의 관례적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여자가 일어섰다. 여자는 한 켤레의 굽이 높은 검은 펌프스 신발을 신었고 전투 슈트를 입었다. 여자가 안내인에게로 걸어오는 동안 또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내인은 단순하고 거울과 같은 헬멧의 표면에 자신의 일그러진 반사상을 보자 마른 침을 삼켰다. “시간이 됐나요?” 여자의 목소리가 물었다. 차갑고 딱딱했다.
“고객님…” 안내인은 긴장한 듯이 입술을 핥고 똑바로 서서 아직 안에 남은 신중함을 끌어와 미소를 지었다. “회담이 준비되었습니다. 가시는 길까지 안내해 드릴까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잠긴 딱딱한 상자를 옆에 끼고 일어섰다. 일행은 안내인을 따라 복도로 나왔다.
그들은 로비를 지나갈 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애덤스는 리처드 라퐁텐이 호텔 식당에서 혼자 앉아 스테이크와 달걀을 먹는 걸 보았다. 그들이 옆을 지나갈 때, 은발의 남자는 그들을 보고 입을 벌렸다. 그의 감각이 없어진 손에서 포크가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냈다.
헬멧 뒤에서, 애덤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고, 안내인은 숨겨진 패널을 열어 버튼을 눌렀다. 버튼은 눌렀을 때 주황색으로 빛이 났고, 계속 누르고 있자 빛은 초록색으로 변했다. “지문 감지기인가요?” 애덤스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고객님.” 안내인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 박동 센서도 있죠. 인가받지 않은 접근이 있을 수도 있어서요. . . 손가락만 잘라서 사용한다든가 같은 경우 말입니다.”
“만약 인가받지 않은 사람이 사용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죠?” 애덤스가 물었다.
“엘리베이터는 봉쇄되고, 제압용 가스가 다량으로 살포됩니다.” 안내인이 말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심문을 받고 기억소거를 받은 다음에 돌려보냅니다. 다른 경우에는…” 안내인은 어깨를 으쓱하곤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애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인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고 손가락을 바지의 솔기에 대고 두드렸다. 그는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자꾸 훔쳐봤다. 애덤스는 최대한 이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면서 이 순간을 즐겼다. 그저 이 남자가 더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게 다였다.
애덤스의 시선에선, 알렉산더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마도 시계를 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애덤스가 볼 때 그는 웃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은 애덤스가 하룻밤을 보냈던 방보다 더 고급스러운 방에서 열렸다. 완벽하게 재단된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똑바로 서 있었다.
“안드레아 S. 애덤스입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10시에 약속을 잡았습니다.”
경호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덤스의 겉모습에 당황하지 않은 듯했다.
낮고 거친 웃음이 안에서 들렸다. “브라보.”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말했다. “과연 멋지게 등장하는 법을 아는구만.”
애덤스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아주 늙은 신사였다. 한 명은 이빨이 없었지만 밝은 눈을 가졌고, 다른 한 명은 환하고 완벽한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유리눈처럼 죽어있었다.
“애덤스 씨.” 키가 크고 웃는 사람이 말했다. “전 제레미 마셜입니다. 여기는 제 동료인 토마스 카터. 우리의 세 번째 파트너인 다크 씨는 오늘 참석을 못 하게 되어 유감스럽다고 전해 달라 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도망치고 싶었다. 몸을 돌리고 떠나고 싶었다. 그저 최대한 뛸 수 있을 만큼 뛰어서 이 방을 나가고 싶었다.
제레미 마셜은 죽었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았다. 모두가 그가 몇십 년 전에 죽었고, 회사에서 자기 지분의 경영권을 상속자와 자손들에게 남겼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저기에 키가 크고, 미소를 짓고, 아주 정정하게 살아있어 모든 MC&D 사무실에 걸린 바랜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그가 저기 서 있었다.
그리고 토마스 카터… 모두 그가 살아있는 걸 알았다. 하지만 회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어떻게 그리고 왜 살아있는지 몰랐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와 같은 공간에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기 싫어했다.
알렉산더는 애덤스를 쳐다봤다. 만약 애덤스가 움찔하거나 돌아서서 뛸 신호를 보내면, 알렉산더는 바로 그녀 뒤를 따라 달릴 터였다. 알렉산더의 손은 이미 그의 총에 거의 맞닿아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여러 경호원을 봤을 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몇 초 만에 총을 떨어트릴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방탄 옷도 머리를 맞았을 땐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마셜은 악수를 받아줬다. 카터는 질이 낮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처럼 장갑을 낀 손등에 입을 맞췄다. 알렉산더는 숨을 내쉬고 손을 양옆으로 떨궜다.
애덤스는 허리를 곧게 펴고 헬멧을 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아주 침착하게 손을 뻗었다. “안드레아 S. 애덤스입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레미 마셜은 자신과 카터의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향해 손짓했다. “차와 다과를 준비할까 했네.” 마셜이 말했다. “하지만 상황을 봤을 때, 그건 별로 고풍스럽지 않다 생각했지.”
“좋습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애덤스는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알렉산더가 보기엔 꾸며낸 여유였다. “바로 거래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그게 자네의 방식modus operandi 인 거 같군.” 마셜이 말했다. “물건은 가지고 있나?”
애덤스는 알렉산더에게 손짓했고, 알렉산더는 탁자 위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애덤스는 잠시 번호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더니, 자물쇠를 풀고 열었다. 그녀는 금과 백금으로 무늬가 새겨졌고 가장자리에는 1/4 캐럿 다이아몬드가 한 줄로 박힌 질이 좋은 다기 세트를 꺼냈다.
하얀 장갑을 낀 경호원이 애덤스에게서 접시를 넘겨받아 카터에게 건넸고, 카터는 보석상용 돋보기를 통해 면밀하게 관찰한 뒤, 탁자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튕겼다. 젊은 여자가 다가와서 5개의 조리되지 않은 소시지가 담긴 접시가 올라간 은쟁반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접시를 금 접시의 맨 위에 올려놨다.
소시지 대신, 5개의 잘린 사람의 손가락이 은색 접시에 올려져 있었다.
“당신 재단은 여러 방면에서 괜찮지.” 마셜이 말했다. “하지만 예의 면에서는 영 꽝이란 말이야. 음식을 접시에 바로 내놓는다고? 야만적이지 않나.”
“저흰 샐러드를 먹는 데 어떤 포크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것보다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할 것들이 주로 있습니다.”
“짧게 갈라진 거네. 메인 코스용 포크 왼쪽에 놓는 거지.” 마셜이 말했다. “경험에 비춰 보자면, 바깥쪽부터 시작해서 안쪽으로 온다고 할 수 있지.”
“흠.” 애덤스가 알겠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저 상자는.” 카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세트 전부를 담을 정도로 큰 거 같지 않은데.”
“테이블 여덟 개 정도는 채울 수 있습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작고 단란한 식사에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죠. 나머지는 저희가 보관할 겁니다.”
“흐음.” 카터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우리가 모은 정보도 같은 대우를 해야겠는데…”
“토마스?” 마셜이 말을 끊었다. “이 숙녀분의 요청에 따라, 물품들의 재고 목록을 만들어주겠나? 옆 방에서 하는 게 나을 걸세.”
카터는 코웃음을 쳤지만, 곧 경호원에게 손짓을 했다. 경호원은 잠시 애덤스를 쳐다보더니 상자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고, 알렉산더와 애덤스는 자신들이 제레미 마셜을 독대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물론 저 엄숙한 경호원들도 함께였다.) “내 사과하지.” 마셜이 말했다. “토마스는 좋은 친구고, 그만큼 사업을 잘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없다네. 하지만 고객과 관련된 일이면…” 마셜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허물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말인지 알겠습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됐고, 전 그리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제 얘기하죠.”
“좋네.” 마셜이 말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마셜은 앞으로 몸을 숙였고, 그의 미소는 사라졌다. “누군가가 우릴 공격했네. 그들은 우리 고객들을 공격했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건, 그들이 우리의 명성을 해쳤다는 거야. 이건 내가 용납할 수 없지. 우린 우리 고객들이 자식들에게 야만적인 공격을 감행할 뻔뻔함을 가진 인간들을 찾기 위해 모든 자원들을 동원했다네. 그리고 우리는 누군지 알아냈지… 아마 자네가 전에 들어본 적이 있을걸세.”
“그럼 말씀하십쇼.” 애덤스가 말했다. “저희에겐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율리시스 보위 장군이네.” 마셜이 말했다.
알렉산더는 애덤스가 움찔한 것을 보았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율리시스 보위 장군이라 했네. 미국 보위 위원회의 전 위원장. 재단의 전 후원자이자 재단의 첫 번째 무기화 프로그램의 설계자이지.”
“보위 장군은 죽었습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그는 9년 전에 죽었습니다. 머리가 잘ㄹ…”
“알고 있네.” 마셜이 말을 가로챘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되는 한 영원히 사는 존재라 하지 않나. 그렇게 보위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의 꿈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의 죽음을 가져온 것에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거네.” 마셜은 웃었지만, 그의 미소는 어두운 골목에서 꺼낸 칼과 같았다. “아니면 자네가 맡은 첫 번째 공격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애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레미 마셜은 금박이 입혀진 USB를 탁자에 올려놨다. “자네는 여기서 우리가 가까스로 모은 보위 장군의 상속자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찾을 수 있을 걸세.” 마셜이 말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범인을 찾아 우리가 그들에게 그들이 행한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행하도록 해주는 것이네.”
애덤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이걸 자신이 가지고 가라는 신호로 알아듣고 USB를 집어 코 밑에 대어 함정이나 추적 장치가 없는지 조사했다.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자, 알렉산더는 USB를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애덤스가 물었다.
“당장은 없네.” 마셜이 말했다. “물론 자네는 여기서 머무르고 싶은 만큼 무료로 머물러도 좋네. 자네가 우리를 맨 처음 도와준 일에 우리가 줄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이네.”
“당신의 제안은… 감사드립니다.” 애덤스가 말했다. “하지만 이 사안을 봤을 때, 바로 떠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신다면야.” 마셜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네. 개인적인 얘길세.” 마셜은 뒤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다가와 작은 은빛 케이스를 세 사람 사이에 있는 탁자에 놓았다.
마셜은 잠금장치를 풀고 뚜껑을 열자 열두 개의 9mm 탄약이 보라색 벨벳 천 위에 놓여 있었다. “내 고손자 두 명이 이 습격의 피해자였네. 내가 그렇게 원하는 복수를 개인적으로 할 기회가 있다고 내 자신을 속이고 싶진 않아. 그런 면에서, 자네를 위해 이걸 준비해뒀네.”
애덤스는 케이스에서 총알 한 개를 꺼냈다. 겉면에는 금박으로 되어 있었고, 마셜 카터&다크의 휘장이 새겨져 있었다. 총알은 이상하고 역겨운 빛이 났고, 낮고 안정된 리듬으로 떨리는 듯했다. “이걸 사용하게.” 마셜이 말했다. “자네의 적이 분명히 죽는다고 보장하네. 그리고 그들이 받을 고통은 아주 혹독할 걸세.”
마셜은 다시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지금까지 본 미소 중 최악의 미소였다.
3시간 뒤, 애덤스와 알렉산더는 기지로 향하는 스카이라인 전세 항공(Skyline Charter Planes) E-제트기에 앉아있었다.
애덤스는 금 USB를 손에 들고 보호용 커버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의 미간은 집중한 탓에 좁혀져 있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블러디 메리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저런 생각이 깊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애덤스는 자신의 직원 카드를 좌석의 팔받이에 달린 카드 리더기에 긁어 상품 판매 화면만 나와 있는 스크린을 불러냈다. 잠시 뒤 몇 개의 버튼을 누르자, 싸구려 양복을 입은 남자(그의 머리는 다양한 사진과 패턴들로 된 깜박거리는 배열로 가려졌다.)가 나타났다. “클레프다.” 남자가 말했다. “말해, 애덤스.”
“일이 상당히 힘들어서 날아가는 동안에는 말을 못 하겠네요.” 애덤스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저희는 충원이 필요해요. 이 문제는 저희 예상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어요.”
“러크와 브리지가 지금 오는 중이야,” 클레프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 감시하도록 해. 그럼 내가 똑같이 처리할게. 언제쯤 도착해?”
“그 지역 시간으로 오후 4시에요.” 애덤스가 말했다. “공항에서 기지로 직행하겠습니다.”
“알았어. 교신 종료.” 화면이 깜빡거리더니 사라졌고, 두 개의 동심원과 안쪽을 향하는 세 개의 화살표로 된 로고가 나타났다.
“알렉산더. 이 임무가 어떻게 흘러갔다고 생각해요?” 애덤스가 물었다.
알렉산더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우리가 원하는 걸 얻었고, 살아서 돌아왔지 않습니까. 저희가 기대하던 만큼 되었다 할 수 있죠.”
“누구도 때릴 기회가 없어서 실망스럽진 않나요? 누굴 죽이지 않아서 실망스럽진 않나요?”
알렉산더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상황을 잘못 읽은 게 아니라면, 나중에 충분히 그럴 일이 많을 거 같아서요.”
“당신 말이 맞네요, 빌어먹을.” 애덤스가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USB를 단단하게 꽉 쥐었다. “정말 시발 빌어먹도록 맞는 말만 하네요.”
알렉산더는 잔을 내려놨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냥 정의에 대해서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돈도. 그리고 둘의 상관관계도요.” 애덤스는 등받이에 몸을 묻고 천장을 쳐다봤다. “한 돈 많은 개새끼는 여자의 술에 마약을 타고 꾸중 한 번 안 듣고, 다른 돈 많은 개새끼는 자기에게 해코지 한 사람에게 말 그대로 한 방 박아 넣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게 어떻게 그들에겐 아무렇지 않은가에 대해서까지도요.”
알렉산더는 생각에 잠긴 채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십니까.” 알렉산더가 말했다. “제가 처음 당신이 이 임무의 주요 요원이란 걸 알았을 때, 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애덤스는 코웃음 쳤다. “제가 문자 그대로 가부장제의 핵심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자라서요?”
“왜냐면 당신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서는 외부인이니까요.” 알렉산더가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걸 얻었고,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알렉산더는 남은 잔을 비우고 좌석 테이블에 빈 잔을 내려놨다. “이 정도까진 저희가 기대했던 만큼 되었다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럴지도요.” 애덤스가 말했다. “하지만, 전 아직도 제가 뭘 더 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알렉산더는 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거죠.”
제트기가 이륙했다.
알 수 없는 집단의 통신망에서 가로챈 문서
발신: “나탄 헤일”
수신: “라파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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