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시설건설 결사반대 제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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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린다.

수처리시설은 수많은 파이프와 아래의 수로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나 이 부지는, 두 개의 수처리시설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 다리에 혈맥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다시 질주한다. 수많은 머리카락 가닥들이 기어온다. 상관없다. 중간에 있는 혈맥, 저기에 작살을 꽂아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니. 전방, 머리카락이 상승한다. 수십개의 가닥들은 뭉쳐 사람 팔뚝만한 촉수를 이룬다. 사인검을 꺼낸다. 오른손에 역수로 잡고, 빠르게 내부에 자상을 입힌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부속지는 대부분 기를 이용한 조종이라고들 한다. 역시나, 촉수가 흩어진다. 다시 달린다. 혈맥을 향해.

"언니 괜찮아?"

저 멀리 신칼을 든 여자가 외친다. 하지 요원이다.

"혈맥 근처까지 왔어! 부정타는 것만 어떻게 좀 막아봐!"

연합이 KTE-1819 제거 작전에 보낸 인력은 이러했다. 우선 책벌레, 수방관 타격조장이자 가장 연륜있는 요원. 현재로서 수처리장을 감싸고 있는 결계술의 절반 정도에 그의 역량을 바치고 있다. 절반이라고 해도, 사실상 강한 항밈 장을 반경 몇 십 키로미터에 두른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에서는 지휘 및 아군 보호 역할을 맡는 중이다. 그리고 하지. 지금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강신무. 이번 위협개체는 일종의 부정과 동티를 이용해 아군을 위협하기에 하지는 이런 것들을 씻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하지도 사인검 등을 사용해 타격을 입힐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해주에 가장 큰 집중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형광조끼. 변칙 구조 돌파 전문 요원. 현재로서는 할 일이 없기에 주변에서 쏟아지는 촉수나 제거하고 있는 상태. 그리고 나, 곰보. 타입-그린 전투 특화 요원. 하는 일이 곧 역할이다.

"곰보!"

형광조끼가 소리쳤다. 앞을 바라본다. 목표에 거의 근접했다. 한 파이프만 더 건너면 혈맥. 그리고 다시 한 번, 수 개의 머리카락 덩어리가 나타난다. 일났다. 걸어갈 수 있는 파이프 근처가 거의 다 막혔다. 다시 사인검을 잡는다. 다 자르면 될 것이다. 다 청산한다면.

머리카락은 당돌하게 직선으로 돌진. 우측으로 굴러서 회피. 역시나, 뒤에도 덩어리 몇 개가 구성되고 있었다. 앞뒤로 덮쳐 물에 빠뜨릴 궁리인 것이다. 다시 원위치로. 검을 상하로 휘둘러 줄기를 잘라낸다. 권총집을 열어재낀다. 삼인탄총.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후방에 생겨나는 촉수를 향해 조준하고, 발사한다. 다시 한 번, 머리카락 수 개는 흩어져 물 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이동 경로를 바라본다. 파이프에는 여전히 머리카락이 득시글거린다.

"대장! 발판!"

책벌레가 손을 꼰다. 결계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밀어내는 성질이다. 즉, 특정인을 미는 형태로 제작한다면 사실상 허공답보가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초록색 유리판같이 생긴 물체 수 개가 물 위를 향해 자라난다. 충분하다. 도약. 결계를 발판삼는 느낌은 언제나 기묘했다. 반중력 장치에 발을 들인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도약. 중간 다리가 코앞이다.

눈을 깜빡. 몸이 무언가에 엉킨 기분이 든다. 아니, 몸이 엉켜있다. 다리를 올려본다. 머리카락과 오물 덩어리들이 가득하다. 도약하는 사이에 묶은 걸까? 시간이 없었다. 작살, 작살을 꽂아야 했다.

"하지! 다리가 묶였어!"

반응이 없었다. 정확히는, 하지는 작두를 타고 있었다. 두 발이 시퍼렇게 갈린 칼날 사이를 뛰어넘는다. 왔다, 갔다, 왔다. 무당은 신이 들리면 나비몸이 된다고들 한다. 지금 하지의 모습은 가히 나비몸이라는 말이 걸맞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정적.

"언니! 숨 참아!"

몸이 뜨거워진다. 불탈 것만 같다.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숨을 들이쉰다. 연기 냄새. 향 냄새가 난다. 쓰다. 굴뚝에 향 몇십 개를 태워버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일순간, 몸이 명멸한다. 양기다. 강한 양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화르륵. 오른쪽 다리가 불탄다. 아니, 다리가 아니다. 다리에 걸린 머리카락, 전신에 걸린 동티가 재로 환원된다. 아, 호부다. 부적 태운 물, 하지가 출격 전에 마시게 했었지. 이런 용도였구나.

"경면주사야! 두 번 더 쓸 수 있으니까 지금 빨리 작살 박아!"

놓칠 수 없다. 작살을 잡는다. 시선은 정면. 혈맥은 수많은 머리카락 사이로 지어진 고치같이 생겼다— 라고는 들었지만. 정말 이렇게 생길 줄은 몰랐는데. 일 초, 팔을 뒤로 당긴다. 등 근육이 수축한다. 이 초, 모든 힘을 짜낸다. 이두에 전기가 통하는 듯 하다. 최선을 향해 던져야 한다. 일 도라도 틀어졌다가는 모두 물거품이다. 삼 초, 팔을 앞으로 내지른다, 손바닥을 펴 날을 정면으로 향한다. 가속. 발사.

V자 모양 촉이 반짝인다. 그리고, 순식간에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어간다. 명중이다. 일순간, 감각이 모두 멈춘다. 오직 시각 뿐이 숨쉰다. 다리의 근육은 무조건 반사라도 하듯 튀어오른다. 혈맥을 향해 도약한다.

적중.

작살이 꽂힌 틈 사이로 풍경이 보인다. 평범한 초가집이다. 조선 중기 쯤인가? 아홉 명의 사람이 있다. 아들로 보이는 일곱, 아버지로 보이는 하나, 아내로 보이는 하나. 이들은 날마다 평범하게 살아간다. 부뚜막에 연기가 나고 뒷간에는 똥떡이 던져지며 주목이 부러진다면 새것으로 교체한다. 그리고 순간— 모든 광경이 마천루와 함께 짓이겨지며—

"언니!"

급하게 숨을 쉰다. 기절해있었나?

"미치겠다, 임무 도중에 기절하면 어쩌냐?"

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보인다. 하지와 형광조끼였다. 다시 머리를 굴려본다. 작살을 박고… 힘이 빠져 주저앉고…

"아니, 언니야. 저 혈맥이 저 타입-블랙 음기가 가득 모인 곳인데 거기 머리를 박으면 어쩌자는거예요? 살리느라 뼈 빠지는줄 알았네."

아, 그렇구나. 빙의됐구나.

"참 나. 너 도와서 촉수 자르는 동안 지도 완성했어. 재단 쪽 사람들이 끝나면 같이 기숙사 쪽 혈맥 자르고 슬러지 탱크로 들어간다. 오케이?"

형광조끼가 말했다.

"그래. 빙의는… 뭐 깨어났으니 다행이라고 하자고."

"언니, 사과는요? 제가 못 깨웠으면 언니 죽었거든요!?"

빨리 넘어가고 싶었는데.

"미안해. 고생시켜서. 자, 그럼 이제 재단 쪽 보러 가볼까?"

이내, 비명.

또 다른 혈맥이 파괴됐다. 그 정도는 요원의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세 명이 동시에 주변을 돌아본다. 기숙사 쪽이다. 비명이 새어나온다. 끔찍하리만치 한이 서린, 여성의 비명이었다. 머리를 굴려본다. 재단 요원들은 기숙사 쪽이 아닌 악취저감시설 근처에서 혈맥을 제거하고 있다. 기숙사 옥상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혹은, 그래야만 할 터였다. 책벌레 쪽을 바라본다. 그는 언제나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쎄했다. 이변이 있었다. 새로운 주체가 들어왔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네가!!!!"

혈맥에 손을 넣은 지 2초 쯤 되는 시점. 한울은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았다. 끔찍했다. 끔찍한 몸부림이었다. 혈맥의 제거 정도는 능숙하게 할 수 있었지만, 누군가가 비명지르는 혈맥의 제거는 매우 달랐다. 저항이 이렇게 거샐 수 있다니. 분명 근처 기운을 모으다 깨어난 것이 바로 측신이었다. 거대한 신체까지 유지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심한 저항은 있을 수 없었다. 마치 투병 중인 환자가 간호사를 제압하고 병원을 뛰쳐나가는 꼴. 어째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많은 기운을 소모하고도 여전히 평범하게 행동할 수 있지?

아뿔싸, 알아채지 못 했다. 몸이 묶여 있다. 수 개의 머리카락 가닥이 몸을 감싼다. 이미 혈맥에 구멍은 뚫어뒀다. 하지만 이 자리가 다할 때까지, 측신은 여전히 여기 존재한다. 혈맥이 빨리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아니라면— 아니라면—

한울은 꿈을 꿨다.

꿈 속에서, 한울은 바닥에 누워있었다.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맡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한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난다, 이파리가 점점 몸을 덮어간다. 낙엽이란 무릇 세월의 표출이다. 일 년마다 한 번씩 하는 털갈이와도 같은 것이다. 점점 쌓여간다. 숨을 쉴 수 없다. 나무는 시간을 먹고 커져간다. 더 많은 낙엽, 더 적은 공기. 이미 몸이 완전히 덮혔다. 팔다리를 움직여본다. 느릿느릿하게 위로 기어올라간다. 올라갈수록 몸이 약해지는 기분이다. 몸이 멈춘다. 아래를 바라본다. 손이다.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한 여성의 손이다.

낙엽이 아니다.

전부 머리카락이다.

목에 머리칼이 감긴다. 신발끈 조이듯, 죄수의 주리를 틀듯, 천천히 끌고 올라간다. 목이 막혀온다. 풀려나고 싶어, 숨쉬고 싶어, 공기가 고파. 제발. 발을 바둥거려본다. 소용없다. 몸은 여전히 대롱대롱. 뒤짚어까지는 눈, 눈물이 흘러나온다. 어서.

그리고 풀린다.

검은 공간. 발을 디딜 수는 있던가? 한울은 앞을 내다본다. 저 멀리에 여자가 보인다. 옷이 이리저리 헤쳐있다. 아, 측신.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곳이 어딘지조차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순전히 측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잡아끈다. 일보 전진, 그리고 저 멀리서 삼보 전진.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일보 전진, 그리고 저 멀리서 칼을 갈며 삼보 전진. 이미 너무나도 많은 힘을 잃었다. 더 이상 남아다가는 소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일보 전진, 그리고 저 멀리서 칼을 갈며 삼보 전진. 숨표 없는 악보다. 아.

"잡았다… 쥐새끼."

다시 시작됐다. 숨을 쉴 수 없다. 의식만이 또렷하다. 모든 모공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저릿하다.

"어디까지. 내 계획을… 어디까지 방해할 수 있을 줄 알았던거냐. 너 따위가… 여기까지 침범해서…"

몸이 송두리째 뽑히고 있었다. 한울이 말을 꺼내려고 시도할 때마다, 비참한 목막힌 소리만 튀어나올 뿐이었다. 이내 인형마냥 쓰러지는 한울의 머리에 울리는 굉음. 측신이 한울을 걷어찼다. 재차 타격. 어둔 공허에서 나온 비참한 소리만이 그를 조명하고 있었다. 어차피 유일한 관계는 그와 측신 둘 뿐이었으니까.

"자, 말해봐라. 그 이유를."

목이 놓였다. 신선한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처음에는… 처음에는 그랬지." 한울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어. 사실, 지금 사람들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너가 나와 처음 싸웠을 때, 그 때 깨달았어. 난 이미 새로운 길을 찾았어."

침묵.

"그래서 막을 수밖에 없었어."

격노한 형체가 달려든다. 날이 시퍼렇게 선 손톱과 머리카락들이 한울의 성대에—

"일어나."

한울은 부스스한 눈을 뜨며 일어났다. 아직 오후 4시. 햇빛이 쨍쨍했다. 그리고 한울 위로 우뚝 선, 역광에 가려진 흉터가 있었다. 곰보 요원이었다.

곰보는 즉시 한울을 걷어차 위에서 제압한 포즈로 구속했다. 포승줄을 빼내려 했지만,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울은 아무래도 모를 일이지만, 그레이 슈트 내부에 장착된 일시적 흄 수치 정상화망이 작동했기 때문이리라. 팔을 꺾는 고통에 한울이 울부짖는다. 곰보는 술 마시듯 자연스럽게 한울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댄다.

"KTE-1381, 타입 그린, 해원읍에 거주하며 빨래 업종을 하고 있음. 다수의 이웃관계를 맺고 있으며 아주 그냥 정착을 했더군."

"도대체 왜 여기 왔냐?"


긴급사태 당시 탐사 기록

서론: 이하 기록은 제21K기지에서 AO-819288 각성 사태 발생 이후 천도-9 부대원들이 현장 탐사를 진행하던 당시의 녹화 기록이다. 몇 가지 인식재해 인자가 있음에 주의하라.

참여 인원: 도리채 요원, 남원태 요원, 정현수 요원, 류시아 요원, 외 5인.


녹음 시작

남원태 요원: 녹음 시작합니다. 현재 1차 진입 이후 악취저감시설 구획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나머지 연합 쪽 팀은 수질시설을 맡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남원태 요원이 웅크려 숨은 장소 옆으로 거대한 형체가 지나간다. 머리카락이 다수 엮여 만들어진, 신장 240cm의 인간 형태의 생물이다.

남원태 요원: —저겁니다. 확인되지 않은 초상생물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분명 브리핑 당시에는 없었는데.

도리채 요원: 남원태 군, 무전 들리나요.

남원태 요원: 아주 잘 들립니다.

도리채 요원: 좋아요. 몇 가지 부비트랩을 만들어서 시험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개체한테 재래식 무기는 안 통합니다. 인지하고 있으세요.

정현수 요원: 나가는 길은 찾았는데, 안내할까요?

도리채 요원: 괜찮아요. 이미 어느 정도 파악된 상태이니… 아, 저 개체, 저 개체가 혈맥이예요.

정현수 요원: 이상하네요, 분명 지도 조사 때는 혈맥이 고정되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도리채 요원: 무속학적 이유던, 풍수지리학적 이유던, 무언가 영향이 있었을겁니다. 확실하지는 않겠지만서도. 요점은, 저 개체를 중앙 슬러지 탱크 쪽으로 유인해서 거기서 제거하기만 한다면 곧바로 본체 제거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도리채 요원: 이제부터 연합에 지원 병력을 부른 뒤 잠시 대기할겁니다. 그리고 아군이 이 시설 주변을 포위하는 형태로 전개할 생각이에요.

도리채 요원: 그 때까지 숨어있다가, 연합이 준비 사인을 보내면 저와 함께 교전합니다. 전부 이해했나요?

전원: 넵.

도리채 요원: 좋습니다. 시아 군, 미리 굿판을 준비해주세요.

녹음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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