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구(側溝)

gomegomemon 2016/10/1 (토) 11:31:56 #01092014


이건 옆동네 사는 지인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지인이 사는 동네는 어딘지 특정될까봐 거시기하긴 하지만, 신사가 규칙적으로 여러 개 세워져 있다.
거기서 뭘 모시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인은 그 신사들 중 하나의 경내에서 어릴 때 자주 놀고 그랬다. 나도 그 신사에 가본 적 있는데, 진짜 작아서, 공원의 덤으로 신사가 붙어있는 것 같다. 토리이도 신당도 낡아빠졌고. 어린애 놀이터로는 최적이라는 느낌.
그 지인 왈, 그런 데에서 「시체」를 본 것 같다, 고.

gomegomemon 2016/10/1 (토) 11:39:50 #01092014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듯, 말할 때는 확신이 없는 모습. 그 「시체」가 사람인지 혹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인지 확실히 생각이 나지 않고, 그냥 뭔가 시체를 봤다는 기억만 남아있는 것 같다. 그걸 본 뒤로는 어린 마음에 징그러워서 신사 가까이에 더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고.
그래서 여지껏 정체가 불명이고, 그렇다고 시체를 보았다고 말했다가는 소동이 될 테니 힘들어지니까, 마음 속에 묻고 잊고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 문득 떠올라 버려서 또 무서워져갖고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라고 지인이 말을 이었다.
「그 시체를 봐주고 왔으면 좋겠다」고.
그 신사는 옆동네니까 별로 멀지 않고, 진짜 사람 시체 같은 게 있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기대 설렘 하는 느낌으로 그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gomegomemon 2016/10/1 (토) 11:51:02 #01092014


그리고 학교가 마친 뒤 자전거를 타고 해질녘에 찾아간 신사는, 겉보기에는 아까 말했던 그대로였고, 나처럼 학교에서 돌아온 것인지, 소학생 몇 명이 게임기를 갖고 모여 있었다.
시체가 있었다는 장소는 신당 뒤에 있는 측구 속이었다고 해서, 조심조심 그곳으로 향했다.
석양을 희미하게 반사하는 토리이를 지나, 어린애들 집단을 지나, 신당까지 가선 무슨 생각이었는지 십엔짜리 동전을 새전함에 넣고, 신당의 석축과 옆집의 블록담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 보랏빛으로 물든 차가운 겨울하늘 아래, 어둑어둑 음산한 분위기를 지나 신당 뒤에 도착. 그리고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스마트폰의 회중전등을 점등해서 비추면서 측구를 들여다봤더니, 확실히 시체는 있었다.
시체, 썩은 고기 냄새가 지독한 시체.
풀 속에 섞여 있어서 순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것은 다리가 뜯겨져 나간 까마귀 시체와, 무슨 생물인지 판별이 불가능한 뼈였다.
에이, 뭐야, 까마귀? 갑자기 흥미가 팍 식어서, 일단 사진을 찍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이들은 신당 뒤에서 튀어나온 나를 보고 「뭐 해?」라고 말을 걸어왔다.
까마귀 시체라도 어린애들한테 시체를 보여주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아냐. 저기 위험하니까 들어가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석양의 역광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은 한 아이가 「흐응」이라고 한 마디 중얼거리고, 총총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뒤 지인의 라인에 사진을 보내면서 까마귀 시체였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고, 지인이 담백히 감사의 말을 답장하면서 이 이야기는 끝.

­
측구(側溝): 도로면의 물을 배수하기 위해 도로 옆에 도로에 평행하게 만든 배수구. 이런 것.

gomegomemon 2016/10/1 (토) 11:59:09 #01092014


하지만 지금 와서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지.
그 지인의 나이는 당시 53세, 어릴 시절 얘기면 대략 40년 전 이야기라는 게 된다.
하지만 그때 보았던 까마귀와 무언가의 시체는 분명히 고기 썩는 냄새가 났다.
40년 전에 봤던 시체라면 뼈조차 남아있을지 여부가 불확실하잖아. 아마 그 시체는 지인이 봤던 시체와는 다른 것이다.
까마귀 시체를 보고 나서 며칠 뒤, 그 지인과 공원에서 이야기를 걸어왔던 남자애를 빼닮은 아이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테레비에서 봤을 때, 그 두 사람의 사인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무언가가 느껴져서, 식은땀과 함께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귀를 막았다. 그때 이후로 이 이야기는 마음 속에 묻고 잊고 있었는데, 최근 문득 떠올라 버려서 여기에 이야기를 풀자고 생각했다.
솔직히 더는 숨길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시궁창에 젖은 측구가 예쁜 것이라니,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따위 알 리가 없잖아.

gomegomemon 2016/10/2 (일) 12:02:01 #01092014


혹시 사는 곳 근처에 측구가 있으면, 그걸 좀 의문을 품고 들여다 봐라.
예상치 못한 까마귀에는 의미가 없다.
부탁한다.

sanasa 2018/10/3 (월) 01:02:20 #0902103


제발 그딴 짓 좀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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