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비현실부 오리엔테이션)

멍청한 짓이다. 적어도 30분은 넘게 여기 앉아있었다. 베이글 하나 정도는 먹어도 눈치채는 사람은 없겠지?

텅 빈 회의실에는 뭔가 매력이 있다. 마치 리미널 스페이스 같은데, 이렇게 걱정스러울 정도로 늦게까지 방이 비어있다는 사실만 아니었으면 이 느낌을 훨씬 즐겼을 것이다. 입구에서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부서장도 없고, 사교적인 인사를 나눌 다른 사람도 없다. 여기엔 그저 나와 다과 테이블뿐이다. 그것도 베이글을 처음 집어 드는 꼴통이 되기 싫어서 건드리지도 않고 있다.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10:50. 20분이나 지났다. 방 번호를 잘못 알았나 보네.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체 뭔지도 모를 오리엔테이션에 20분이나 지각했다고 방 전체에서 날아들 필연적인 노려보는 시선이 두려워진다. 사실 그것도 딱히 상관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오리엔테이션에 불릴 정도라면 이미 나가기에는 너무 깊게 들어온 상황이니 말이다. 오리엔테이션은 그냥 실제로 뭔가 일을 하기 전에 재단이 떠먹여 줘야 하는 이유식에 불과하다. 진짜 직장처럼!

나가는 길에, 나는 다과 테이블을 지나친다. 이에 대한 연구가 있지. 5살짜리들도 참을 수 있어. 너를 위한 것도 아니잖아. 어느 부서인지는 몰라도 이 방을 실제로 예약한 부서 사람들 거야. 상당히 그럴듯한 논증이다. 아주 자랑스러워.

나는 베이글 하나를 집어 들고 방 밖의 제19기지로 향한다.


아뇨, 그게 맞는 방이에요.

회의장 안내 데스크는 어느 방으로 가야 하는지를 찾느라 아웅다웅하는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다. 매년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재단 부서 대다수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도록 하면 제19기지 직원들이 물류 측면에서 실수를 안 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인다. 물류부 또한 지금 자기네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것도 딱히 도움은 안 되는 것 같다.

안내 데스크 뒤에 서 있는 남자가 경멸의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럴 수도 있지.

저기엔 아무도 없잖아요. 어떻게 저게 맞는 방일 수가 있죠?

그렇게 혼란이 찾아온다. 직원이 10:30에 오리엔테이션이 예정된 모든 부서를 찾아보는 동안, 내 뒤에 서 있는 줄이 짜증을 내는 정도가 심화되기 시작한다. 사실 되게 단순한 작업이니, 이제 어느 순간에라도 직원은—

아뇨, 방금 확인했어요. 톨리 씨였나요? 72-D호에서 비현실부 오리엔테이션에 참석 예정이네요. 이제 다음 분을 도와드릴 수 있게—

방금 72-D에 있다가 왔어요. 거기엔 아무도 없다고요.

뭐, 그렇다면 오리엔테이션을 놓치신 거겠죠. 10:30에 시작했어요.

이봐요, 딱 10:30에 거기 있었다고요. 거긴 지금 아무도 없어요. 게다가 "비현실부"라니 그게 대체 뭔가요?

죄송하지만, 이제 다음 분을 도와드려야겠네요. 비켜주실 수 있으신가요?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오리엔테이션도 열리고 있지 않은 빈방으로 다시 걸어 돌아갈 수밖에. 난 입구에서 걸음을 멈춘다. 불은 켜져 있고, 문은 닫혀있고, 문 바로 옆에 있는 스크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비현실부 오리엔테이션. 10:30-11:30. 실망을 가장하며 방금까지 있던 바로 그 방에 들어간다. 이젠 비대칭으로 놓이게 된 베이글들과 이미 뜨뜻미지근해진 커피포트를 지나 방 한가운데에 앉는다. 이래야 할 것 같으니까.

곧 생각을 시작한다. 이건 공간 낭비야. 고의적인 공간 낭비라고. 음모론적 사고 속에 가능성이 소용돌이치지만, 그 중 무엇 하나 내가 몸담은 이 감춰진 통제 지향 기관에서 실제로 가능한 것이 없다. 그래도 뭐.

제19기지는 아주 크다. 아주 이상적인 재단 시설이라 할 수 있다. 수년에 걸쳐서 혁신이 다른 기지들로 모여들어도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완전히 준비된 회의실이 텅 비어있을 수가 있을까? 지금쯤이면 누군가 여기서만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려온다는 걸 알아챘을 법도 한데 말이다. 특히 요 몇 년간 보통 오리엔테이션들에서 "멋진" 행위들을 보여주곤 한다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냥 누군가 처음으로 도넛이나 뭔가에 약을 타기로 한다면, 독창적인 짓이라고 해두자. 한 부서가 그러고 다섯 번이나 더 기믹질을 하려고 든다면, 그건 그냥 슬픈 일이다.

그것도 더는 상관이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문제는 나다. 텅 빈 방에 있다는 점이 말이다. 그냥 빈방도 아니다. "비현실부"가 예약한 빈방에 말이다. 어딜 봐도 지금 여기 없는 부서 말이다. 그건 다음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A: 부서가 특별히 (딱히 이유는 없지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뭔가 쇼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B: 이 방은 그냥 입력 오류다.

옵션 B가 빠르게 가능성 높은 범인이 된다. 재단은 거대한 비밀 기관이다. 재단 부서 목록에는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합의 후 해체, 합병, 고전적이고 단순한 예산 삭감. 비현실부가 유령으로 남아있을 좋은 이유들이다. 과로한 RAISA 직원이 회의실을 요청한 부서 목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고, 이렇게 된 거겠지.

시계가 예약된 시간의 끝을 알리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나는 적절한 양의 무(無)로 가득 찬 방을 둘러보고는, 짧게 옵션 C를 떠올린다.

비현실부는 실재하고, 난 방금 그들의 베이글을 먹었다.

나가는 길에, 난 단정하게 정렬된 사각 행렬에서 두 번째 베이글을 집어 든다.

딱히 상관은 없겠지. 아직 아무도 안 건드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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