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Un)비빔

우나은은 악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6살 때, 다솜유치원 화채 제작 시간에 그녀는 악마를 소환했다. 화채 건더기를 자르려 휘두른 칼이 우나은의 새끼손가락을 스친 것이 그 이유였다. 바닥에 떨어진 피는 금새 정이십면체를 형성하며 마법진을 그렸고, 애석하게도 우나은은 거절하지 못 했다. 유치원 화채 파티가 순식간에 유치원 화재 대소동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우나은은 자신의 어머니가 환촉 현상에 시달려 비명을 지르던 것을 기억한다. 타르타로스 독립체가 몇 분 정도 유치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처들어와 모든 것을 정리했다. 우나은은 기억소거제 냄새를 아주 잘 기억한다. 이상야릇하며 애매하게 비릿한 향이 유치원 전체에 분사되었고, 모든 원생들이 잠들었다. 암전.

숟가락이 비빔밥 그릇을 따라 미적거리자, 뻘건색 양념이 뭍은 콩나물 무침이 힘없이 끌려간다. 우나은은 가끔 다대기에게 동정심을 느끼곤 했다. 미련없이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풀리는ㅡ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ㅡ 불쌍한 잡탕 무더기가 바로 다대기리라.

12살, 율현초등학교 여자화장실에서 그녀는 악마를 봤다. 이유는 모른다. 아무래도 음식물 찌꺼기로 뒤덮힌 그 모습을 보니, 6학년 오빠언니들이 억지로 먹고 토한 꽃게된장국의 잔해에서 태어났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오물 덩어리는 천천히 그녀에게 기어왔고, 알 수 없는 나불거림을 몇 초 내뱉었다. 애석하게도, 우나은은 거절하지 못 했다. 정신이 들자, 그녀는 핼쑥한 꽃게 다리(그야, 학교 급식에서 성한 꽃게 다리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를 온몸에 이고 가람반 교실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문을 봉쇄하고 있었다. 우나은은 문을 열고 나가자, 자신에게 떨어진 수많은 삼단봉들을 기억한다. 이번에도 또 몰려오는 이상야릇한 비린내가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 암전.

숟가락을 미적거리자, 국수장국 안쪽에서 유부가 나부꼈다. 진한 육수 냄새가 났다.

16살, 우나은은 주짓수를 배웠다 나약한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4주 신청에 1주 무료라는 주변 도장의 파격적인 선전의 효과였을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우나은은 거절하지 못 했다. 운 좋게도, 혹은, 매우 불운하게도, 우나은은 무술에 재능이 있었다. 물론 기초신체능력 단련은 죽을 맛이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무언가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우나은에게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다. 꽤나 힘들었지만, 몇 달 간의 훈련은 결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테이크다운해 관절을 꺾는, 여러 지식들을 몸으로 익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빔밥 그릇이 거의 비었다. 불쌍한 양철 그릇에 숟가락이 부대끼며 시익거리는 금속음이 났다.

18살, 우나은은 새로 이사온 집에서 악마를 봤다. 무어라 할 수 없는 형체가 우나은의 방을, 침대를, 몸을 침범했고, 난생 처음으로 가위에 눌린 것이다. 우나은은 티브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들은 대로 손가락을 꿈틀거리자 가위는 풀렸다. 형체는 그대로였다. 몇 분 간의 생각 후(형체는 의외로 인내심이 많은 편이었다.), 침대 옆에 놓여진 어머니의 십자가가 꽤나 고생할 것을 떠올린다. 가족의 애장품이라는 점에서, 수 초간 고민했고, 애석하게도, 우나은은 거부하지 못 했다. 또 다시 수 분 후, 우나은은 사이드포지션에서 악마를 구타한다. 자신의 올대뼈가 다침에 십자가가 울부짖지만, 우나은은 처음으로 무언가를 무시해본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악마는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자, 3시 16분 새벽이었다.

우나은은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를 빙그르르 돌려본다. 사이다와 설탕, 온갖 양념이 배합된 국물이 식판 주변으로 튄다.

22살, 검은 옷의 남자들이 우나은을 찾아왔다. 몇 가지 "변칙적" (우나은은 물론 이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 했다.) 사건에 연루된 것이 그 이유였다. 다행히도 우나은은 경호보안학과를 졸업하며 꽤나 많은 지식을 습득했었고, 양복남 한 명의 다리를 걸어 바닥에 박아버리는데 성공했다. 나머지 한 명이 목에 테이저를 쏘기 전까지는, 꽤나 선전한 편이었다. 우나은은 정북의 차가운 심문실에서 다수의 질문을 받았다. 사탄 과학자 통합교회와 연관된 자인가? 타르타로스 독립체 및 솔로몬의 72악마를 소환하여 장막에 혼란을 일으키려 했는가? 어떠한 이유로 타르타로스 독립체에게 영혼, 신체, 주변인, 정체성, 존재학적 기반이 묶여있는가? 우나은은 은비학을 몰랐으며, 요원들은 그리 융통성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릇을 다시 반납하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수저를 정리하고, 소지품을 체크하고, 잘 넣은 다음 카운터에서 계산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겪고서도 타르타로스 독립체가 운영하는 비빔밥집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이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 날, 우나은은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자신이 타르타로스 독립체, 또는 악마에게 매우 끌리는 몸과 정신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 둘째, 자신은 재단이 지금까지 발견한 타르타로스 독립체 적합자 중에서도 기독교계 모태신앙자이며, 매우 드물게도 이들을 두들겨 패 골절시킬 정도의 기술이 있다는 점. 셋째, 이 단체는 자신의 학자금 대출을 바로 갚아줄 정도로 강한 자금력과 채용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 임상환 팀장이라는 자는 지금이 자신이 채용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말했고, 애석하게도, 우나은은 거절하지 못 했다. 비록 자신이 악마를 유인할 인간 미끼로 쓰이고, 꽤 자주 새벽예배를 나가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괜찮은 직업이라고, 우나은은 생각했다.

카운터 직원은 미소지으며 계산을 끝냈다. 전술신학부가 지급해준 화장품 거울은 대상이 타르타로스 독립체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었고, 지금 우나은 앞에 있는 대상은 명확한 악마였다. 우나은은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짓고, 카드를 다시 받아 가방에 넣을 뿐이었다.

꽤나 평안한 휴가가 될 것이다. 혹시 모를 재호출 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설마 그런게 있을리야 없겠지만. 우나은은 생각했다. 제145K기지는 평안한 곳이니까.

—그리고 신호음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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