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이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아침이다. 아니면 이미 모든 일이 시작된 지 오래인 아침이다. 어느 쪽이든 난 거기에 짓눌릴 걱정만 하면 그만이다.
아침이기에 해야 할 일 첫 번째. 머리를 물로 적셔야 한다. 그 말대로 머리를 흠뻑 적시기 위해 세면대와 거울 앞에 섰는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생각해 보면 세면대 없는 거울이라는 건 어디에든 있지만 거울 없는 세면대라는 건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것과 같이 도열 해 놓은 수도꼭지들엔 거울이 없지만 그것들에게는 개수대 또는 음수대라는 이름이 있다. 어디에 있는 걸까. 거울 없는 세면대라는 건. 정녕 거울 없는 세면대라는 건 존재를 허락받지 못한 걸까. 아니다. 이건 그냥 끼어든 생각. 거울 앞에서 든 이상한 생각은 거울에 비친 내가 나와 조금 닮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거울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 아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 비출 뿐이다. 만약 거울에 비친 내가 나와 다르다면 그건 실제로 내가 달라진 것이지 거울의 탓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거울에 비친 나는 정말로 나와는 조금 다르다….
코끝이 조금 더 오똑하고 뺨이 살짝 패였으며 체중이 나보다 5kg은 적어 보인다. 내가 얼굴을 손으로 더듬자 거울에서도 따라 더듬었다.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 약간의 괴리가 있었다. 혹여나 이게 거울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의경증(疑鏡症)이라면 분명 곤란해질 것이다. 스스로가 비친 거울상도 믿지 못한다면 내 얼굴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거울이 틀렸는지 확인하려고 거울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거울에 손을 가져다가 댔다. 이렇게 하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댄 듯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이 상태로 지긋하게 유리창을, 거울을 들여다보면 저 너머에 있는 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충분히 오래 바라보면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나는 손바닥을 떼고 거울에 노크해 봤다. 똑. 똑. 손가락 마디 두 개가 동시에 부딪혔다. 이제 그만하자.
망상은 그만두고 머리에 찬 물을 뿌렸다. 어차피 사소한 차이이지 않은가. 간밤에 기억나지 않는 험한 꿈을 꿔서 살이 약간 빠진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코끝은? 나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만져지는 건 익숙한 코였다. 코를 만지는 건 나의 오랜 버릇이다. 코를 점토 주무르듯 만지면 언젠가는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다. 그땐 그렇게 믿었다. 지금은 믿지 않지만, 이미 버릇이 된 지 오래였다. 어쩌면 그 잘못된 믿음이 마침내 실현된 것일 수도 있겠다. 코의 원래 모양 따위 잊어버린 지 오래지만.
채비를 마친 나는 출근했다. 어젯밤엔 비가 와서 곳곳에 웅덩이가 고여있었다. 왠지 웅덩이에 내가 비치는 게 싫어 피해 다녔는데, 딱 한 번 미처 못 본 웅덩이를 밟자 내가 비친 상이 일렁이며 부서지는 게 보여 눈을 돌렸다. 회사에선 적당히 사무를 보는 척하며 점심시간만 기다리다가 같이 나온 동료에게 물었다.
“내 얼굴, 어디 달라진 데 없어? 코라던가.”
“아니. 없는데. 성형했어?”
나는 의혹을 부인하며 대화를 얼버무렸다. 아침에 비어 나온 잠이 덜 깬 망상을 전부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이런 실없는 고백은 해야 할 상대가 따로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가족. 그중에서도 쌍둥이 형제라면 딱 좋은 상대가 되어줄 텐데.
2.
그러니 쌍둥이 형제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특별히 운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운이라고 자부할 만한 일이 있다면 그건 내가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다는 일이다. 내겐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있다.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해서 무슨 특혜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와 거의 같은 취향, 거의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 세상에 한 명 더 존재한다는 건 위안이 된다. 얼굴이 닮았다는 건 이 경우에 크게 중요하진 않다. 대화가 통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말한 대로 우리는 “거의 같은” 인간이다. 완전히 같지 않다. 미디어에서는 쌍둥이의 닮은 점만을 강조하다 보니 지나치기 쉽지만 서로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쌍둥이 형제라도 엄연한 타인이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점차 차이점이 도드라진다. 예를 들어 나는 해외의 락을 듣지만 동생은 국내의 힙합을 듣는다. 나는 오른손잡이지만 동생은 왼손잡이다. 나는 한 곳에 박혀있기를 원하지만 동생은 방랑벽이 있다. 아니, 실은 나도 떠나기를 원한다. 다만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게 바로 차이다. 행동에 옮기지 않은 것. 동생은 지금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다니는 중이다. 벌써 1년이 됐다.
그런데 그 동생이 귀국한다고 한다. 오늘 문자가 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몇 년은 더 해외에 있어야 하지만 갑작스레 귀국을 결정했다. 중국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온다고 했기에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내 형제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짐이 잔뜩 묶인 자전거를 끌고 배에서 내렸다. 나 역시 자꾸만 어색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라면 이런 낯간지러운 재회가 어색해지는 법이다.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어땠어. 재밌디?”
“어, 재밌던데. 죽여. 끝내줘.”
“좀 더 있다가 오지.”
“그냥 막 오고 싶더라고. 그 정도면 많이 했지. 여기가 저 바깥보다 훨씬 재밌을걸.”
“뭐가 재밌다고. 여기 하나도 재미없어. 난 거기가 더 재밌을 거 같은데.”
“그건 모르는 거지.”
짐은 내 자택에서 풀도록 했다. 1년이면 하고 싶은 얘기도 듣고 싶은 얘기도 터질 듯이 밀려있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쌍둥이 형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라는 게 있기에 나는 온갖 시시콜콜한 화제까지 끌고 오며 밤을 지새워 떠들었다. 떠드는 건 주로 나였다. 동생의 여행 이야기는 생각보다 싱거웠다. 어쩌면 여행 자체가 생각보다 싱거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살도 별로 빠지지 않은 것 같다.
3.
옛날얘기 하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동생이 내 코를 거하게 깨먹었다.
나는 놀이터의 우레탄 바닥에 누워서 피에 젖은 내 손을 올려본 걸 기억한다. 동생은 내 뉜 머리 주위로 끈적한 피 웅덩이가 생긴 걸 기억한다. 그 작은 코에서 피가 많이도 흘러나왔나 보다.
심각한 얘기는 아니다. 단지 시소를 타다가 코가 깨진 얘기일 뿐이다. 일은 이렇게 일어났다. 그때 동생은 예고 없이 시소에서 내렸고 나는 위에서 훅 떨어지며 튕겨 올라가, 시소 손잡이에 코부터 착지했다. 곧 구급차에 실려 가고 입원했다. 그날 이후로 내 코는 조금 더 납작해지고 말랑해졌다. 만져보면 알 텐데, 그렇게 해주기는 어렵겠다.
이 얘기를 했더니 동생은 너도 내 앞니를 깬 적이 있지 않느냐며 받아쳤다.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둘이 샤워장에서 장난을 치다가 내 실수로 동생 앞니를 해먹은 적이 있기는 했다. 아찔한 기억이다. 샤워장엔 둘 뿐이고 그중 하나는 엎어져 타일 바닥에 피를 흘려보내고 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피를 희석시킨다. 사방엔 내가 한 짓을 보여 주는 거울, 거울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간에 상해를 입힌 걸로 대등한 셈이다.
돌연 나는 놀이터에서 탔던 기구가 시소가 아니라 그네였다고 정정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우리가 탔던 건 시소일 텐데. 더 이상한 일은 동생이 거기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나는 별 말을 덧붙이지 않고 밥을 먹었다. 우리는 식당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오늘따라 거리에 행인들이 득실한 게 보였다. 날씨 좋은 주말이라 그런가 보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모두가 서로와 얼마나 다른지 드러나서 신기하다. 같은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다. 모두가 타인이다. 그런데도 다들 서로의 같은 점을 찾아서 헤매고 있다.
저기 있는 저 남자. 자기 앞에 외국인 여성에게 눈을 떼지 못하지만 도통 말을 붙일 용기는 없어 보인다. 공통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을 걸었다가 온통 서로의 다른 점만을 알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저기 있는 여자 커플. 팔짱을 끼고 걷는 그들은 서로의 공통점에 이끌려 결합했다. 극히 일부여도 괜찮다. 서로의 한 조각만 같더라도 그들은 그걸 운명으로 여길 것이다. 반 조각만 되더라도 만족할지 모른다.
또 다른 자신을 찾으려는 가망 없는 시도나 마찬가지다. 이미 그걸 가지고 태어난 나는 얼마나 운 좋은 놈인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데 예전과 달리 밥 먹을 때 팔꿈치가 부딪히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얼마나 운 좋은 놈인가. 나는.
4.
내 집에서 빈둥거리던 동생은 최근부터 도서관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다. 좀 늦은 것이 아니냐고 내가 말했지만 내년이 되면 더 늦은 나이가 될 거라는 말에 납득했다. 주말엔 나도 따라가 옆에서 아무 책이나 읽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거였다. 언제나 학창 시절에 인생을 대충 흘려보냈던 걸 후회했건만 다시 공부에 손을 댈 엄두는 내지 않았다. 그러기엔 겁이 났다. 내가 겁내는 동안 삶은 관성을 따라 휩쓸렸고 이렇게 여기에 도착했다. 그러니 형제가 하는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기에 연결된 휴대폰을 슬쩍 보니 퀸을 듣고 있었다. 뭔가 말을 붙여 방해하지는 않았다. 왜인지 속이 쓰려서 책만 들여다봤다. 전에는 내가 아무리 들으라고 해도 듣지 않던 노래였다.
최근 들어 우리가 너무 같아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에서 유난히 똑같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어왔고 나 역시 닮음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전에는 그저 딱 맞기만 했던 퍼즐이 이제는 이음매조차 없이 메워진다. 나만 알고 있던 차이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또 다른 자신을 찾고 있다는 말을 했지만 누구나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말은 내가 하지 않았던가.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논픽션이었다. 말은 논픽션이라지만 날조한 픽션일지도 모른다. 할 말이 떨어졌으니 여기에 옮기겠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한 쌍둥이 자매가 여름 방학을 맞아 거창군에 위치한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고 한다. 당시 둘은 열여덟 살이었고 부모님은 따라오지 않았다. 열여덟이면 장성한 나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자매는 계곡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언니 쪽은 수영을 잘해서 깊은 물까지도 헤엄칠 수 있었지만 동생 쪽은 수영을 아예 못해서 얕은 물에서만 놀 수 있었다. 둘은 주로 얕은 물에서만 놀았다. 계곡의 얕은 곳은 투명하게 맑았다. 밑바닥의 자갈이 훤히 비쳐 보일 정도로. 그리고 느린 유속으로 깊은 곳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깊은 곳은 잔잔하게 고인 듯했지만 하류로 트인 곳에선 거세게 흘렀다. 깊고 어두운 물에선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들여다보려 해도 본인의 얼굴만 비칠 뿐이었다. 탁한 빛깔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언니가 동생에게 오늘은 깊은 물에서 노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얕은 물에서 노는 게 어지간히 질렸던 모양이다. 동생은 거절했다. 그래서 그날은 언니 혼자만 계곡으로 내려갔다.
점심때가 지나도 언니가 돌아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동생은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 초입에서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불안해진 동생은 첨벙거리며 안에 들어가서 언니를 찾기 시작했다. 계곡 깊은 곳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바위까지 간 동생은 물 위에 떠 있는 샌들 한 짝을 발견했다. 바위에 걸려서 하류로 떠내려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부터 수색이 시작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실종자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부모님도 서둘러 서울에서 내려와 자발적으로 수색에 협조했다. 그들은 이틀 동안 밤낮으로 물속을 헤집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사흘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늦어도 나흘째엔 시신이 발견되리라 예측했다.
나흘째에 쌍둥이 자매 중 언니는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다. 시신이 아닌 살아있는 모습으로. 강 하류에서 걸어서 올라왔다고 했다. 경찰이 걸어 오는 그녀를 발견해서 가족에게 인계했다. 수색은 종료됐고 가족들은 눈물의 재회를 했다. 자매 중 동생은 언니를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울었다고 한다. 언니 쪽도 울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끝이다. 행복한 결말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그렇지가 않다. 여기엔 뒷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오 년 뒤, 자매가 스물셋이 되었을 무렵,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이 투신했다. 언니가 실종됐던 계곡에서. 신발만 남겨 둔 채.
경찰이 다시 한번 계곡을 헤집었지만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유언장 없이 투신했으니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언니는 기다렸다. 자매 중 언니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이윽고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은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다. 살아있는 모습으로. 강 하류에서 걸어서 올라왔다고 했다. 자살에 실패했다고만 말했다. 자매는 이번엔 아무도 울지 않고 끌어안았다.
여기까지가 끝이다. 이제 뒷이야기 따위는 없다. 행복한 결말. 자매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야, 가자.”
동생이 속삭이기에 책에서 머리를 빼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5.
쌍둥이 형제도 싸우느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 우리도 싸운다. 가끔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릴 때 뽀로로 욕실 슬리퍼를 누가 신느냐를 두고 싸웠던 기억이다. 어린이 고유의 원초적인 분노가 뿜어져 나왔던 걸 기억한다. 아마 부모님이 중재했을 테고, 애들이니까 금방 화해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고등학생 때 지하철에서 말다툼했던 일이다. 성수역과 뚝섬역 중 어디서 내리는 게 더 집과 가까운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는데, 한 정거장 차이인 두 역을 가지고 서로 핏대를 세워가며 역정을 냈다. 내가 뚝섬역의 편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왜 이런 걸 가지고 싸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춘기라서 그랬나 보다. 결국 어느 역에서 내렸는지도 기억 안 난다.
몇 개 더 있지만 위에서 얘기한 것만큼 시답잖다. 짐작하겠지만 나와 거의 같은 사람을 상대로는 심각한 싸움 같은 걸 하기가 불가능하다.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아직도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날이 컴컴해져도 나는 방 안에서 서성거리기만 한다. 오늘은 어느새 어제가 됐다. 그러던 중 우뚝 서서, 혼자만 남은 이 집에서, 나는 떠올린다.
어제는 둘 다 집에서만 보낼 작정이었다. 알아줄지 모르겠으나 이건 굉장히 신나는 사건이다. 이럴 땐 보통 보고 싶던 영화를 같이 보거나, 먹고 싶은 요리를 같이 만들거나, 아니면 한 방에서 외따로 떨어져 각자 할 일을 한다. 이게 아주 재미있다.
나는 이날도 그리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요사이 말수가 적어졌다. 실없는 농담과 우리끼리의 유행어도 이제 잘 하지 않았다. 이상한 이유에서지만,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 수준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면 대화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는 무슨 얘기라도 꺼내야 했다. 뭔가 달라졌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인정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돈 얘기를 하려고 했다. 생활비와 각종 공과금은 주로 내 쪽에서 처리했으니 거기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는데, 신중하게 고르려던 말이 어느새 빈정대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에 와선 왜 그랬는지 모를, 당시에도 왜 하는지 모르면서 했던 말들이 점차 튀어나왔다. 내 형제에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들을 그때의 나는 뱉었다. 잠깐 멈추고(이때 영원히 멈췄어야 했다) 표정을 살폈는데, 나와 똑같은 얼굴이 원망으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나 역시 똑같은 모양으로 일그러졌을 것이다. 대칭을 이루는 것처럼. 여기서 그만하는 게 옳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어떤 말이 상처를 입힐지를 그 어느 때보다 잘 알았다. 모욕의 말들이 손에 잡힐 듯 어른거렸고, 나는 그 말들을 잡히는 대로 전부 내던졌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떠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래서 나는 이렇게 혼자 남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서성이면서. 혼자만 남은 집은 초침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 형제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6.
그대로 멍하니 초침 소리를 듣다가 보니 새벽 1시였다. 시간이 늦었다. 내일 출근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자야 했다. 초침을 꺾어버리면 내일도 찾아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닐 것이다. 나는 기계적으로 이부자리를 폈다. 그리고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성공하기 직전이었다. 누운 이불이 푹 꺼지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잠에 접어들고 꿈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락한 추락이었다. 꿈 밑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뺨에 거의 와닿았는데,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났는지 이제 꿈이 시작됐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간신히 잠에서 깨어난 거라고 결론 내렸다.
똑. 똑. 누군가 한밤중에 노크를 하고있었다.
손가락 마디로 두드리는 소리. 손가락 마디를 세우고 조심스레 두드리고 있었다. 똑. 똑.
나는 이불을 밀치고 일어났다. 일단 짜증부터 났다. 누군지가 궁금한 건 그 다음이었다. 어제 짐을 싸고 떠난 형제는 아닐 것이다. 비밀번호를 알 테니 그냥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누굴까. 뭐 하는 작자길래 한밤중에 노크를 하는 걸까. 나는 문을 열어 줄 생각도 없었다. 불청객이 알아서 꺼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멈추지 않았다. 그 노크는 메트로놈처럼 끊기지 않았다. 똑. 똑. 결국 욕을 씹어대며 일어나게 만들었다. 잠에 취한 몸뚱이를 현관까지 끌고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속으로 이걸 악의적인 장난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할지도 모르면서 일단 현관 앞에 섰다. 현관은 잠잠했다. 그제서야 이 소리가 다른 곳에서 울린다는 걸 알았다.
화장실이었다. 닫힌 화장실 문에서 두드림이 울려 퍼졌다.
졸음이 씻기듯 달아났다. 심장이 차게 식는 게 느껴졌다. 노크 소리는 잠시 멈췄다가, 반응을 기다리듯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마디를 부딪쳐 왔다. 똑. 똑.
나는 화장실 문에 눈만 붙박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굳어서 허리가 아팠다. 겨우 손을 뻗어서 현관문에 대어 봤는데 진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노크는 집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바로 저기에서.
발을 떼어 내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힘겹게 들어 올리고 내딛었지만 소리는 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비척비척 나아갔다. 화장실 문이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니 소리의 근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왜 저기로 다가가고 있는 걸까. 꼭 알아야만 하는 걸까. 다가갈수록 소리는 더 또렷이 들렸다. 나는 이제 코앞까지 와있다. 똑. 똑.
문을 노크하는 게 아니었다. 소리는 안쪽에서 났다. 화장실 안에서 뭔갈 두드리고 있었다. 맑고 단조로운 소리를 내는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정중하게. 들어가도 되겠냐는 듯이.
문득 형제가 생각났다. 내 동생. 나의 쌍둥이 형제가 와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라도 이런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에 나는 거의 문을 열 뻔했다. 문고리를 잡고 비틀기까지 했다.
문고리가 돌아가자마자 노크가 멈추었다. 나는 문고리를 틀어쥔 채로 가만히 있었다. 문 너머에서, 문고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얼마 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틀어쥔 손안에 땀이 가득 찼다. 나는 손을 떼고 물러났다. 물러난 지 한참 후에 노크가 다시 시작됐다. 똑. 똑.
노크 소리는 지나치게 규칙적이었다. 나는 뒤돌아서 이제 그만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깨어 있다면 잠을 자야 하고, 꿈꾸는 중이라면 깨어나야 했다. 어느 쪽이든 그럴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잠을 위해 이부자리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노크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내 고막을 두드리고 두개골 안을 튕겨 다녔다. 아침에는 전부 잊어버릴 것이다.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믿으면 문제없다. 그러면서 다시 쌍둥이 형제 생각을 하고 있다. 내 동생에게도 같은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어느 한밤중에, 객지의 숙소에서 나와 똑같은 악몽을 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동생은 닫힌 문을 열어줬을지 모른다. 마침내는 모든 소음이 사라지며 평화가 찾아왔다. 내가 기적적으로 잠이 들어서 그런 건지 노크가 멈춰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씻지도 않고 출근했다. 아침이기에 해야 할 일 첫 번째는 생략했다.
7.
내 삶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걸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두서 없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지만, 마지막으로 작은 부탁 하나도 들어줬으면 한다.
최근에 나는 야간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배움에 늦은 때란 없음을 깨달은 게 최근 일어난 유일하게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와 연락이 끊어진 지 두 달이 넘었다. 부모님과 연락은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다. 나와 싸운 뒤로 한 번 부모님 댁에 들렀다고 하는데, 잠깐 얼굴만 본 게 전부라고 한다. 어머니는 동생이 연락이 뜸해졌다며 나한테 하소연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보다 동생을 더 아꼈다. 거기에 불만은 없지만 조금 우습다. 쌍둥이인데 편애라니.
아버지한테는 우리가 싸웠다는 사실을 말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싸웠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받은 듯했다. 마지막으로 싸운 걸 본 게 뽀로로 슬리퍼 때였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만나서 화해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 같지 않다. 그는 나와 다시 만나는 걸 피하고 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거울을 뜯어냈다. 이걸 위해서 집주인과 기나긴 대화를 나눠야 했다. 사람을 부르려면 돈이 들어서 직접 철거했다. 칼로 테두리의 실리콘을 잘라서 제거하고, 테이프로 거울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한 뒤 철사로 거울과 벽 사이를 톱질하듯 잘라냈다.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면 테이프가 필요 없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혼자였다. 이제 거울 없는 세면대가 여기 있다.
뜯어낸 거울을 버리러 가면서 계속해서 눈을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분리수거장에 두고 오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봤다. 조금 울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이런 건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다.
아까 말한 대로 부탁 하나가 있다. 지금 내 얼굴을 잘 봐 뒀으면 한다. 나중에 같은 얼굴을 보더라도 지나치지 않도록. 여기 아닌 어딘가에서 이 얼굴을 보더라도 지나치지 않도록.
잘 보라. 시력이 나쁘니 안경을 쓰고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안경을 벗은 모습도 봐두는 게 좋겠다. 머리는 보다시피 곱슬머리다. 구부러진 철사처럼 휘어진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 입술 왼 편에 점 두 개가 있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각도를 달리 하면 괜찮아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코. 뭣보다 코를 봐 줬으면 한다. 이렇게 코 끝이 평평하고 콧대가 조금 낮다. 기억했는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만약 그를 다시 본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돌아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걱정하고 계시니. 내가 사과해야 할까? 그러고 싶진 않다.
내 형제와 다시 만난다면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다. 말했듯이 쌍둥이 형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라는 게 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