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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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가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

펠릭스의 말이었다.

“뭐라고? 벌써 결정된 얘길 왜 또 꺼내?”

“제이미, 제발. 해킹은 나한테 맡겨줘. 네가 망을 보는 게 나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일개 보안 요원이 서버실 근처에서 아무 이유 없이 얼쩡거리고 있으면 얼마나 거슬리는 줄 알아?”

제이미는 펠릭스가 안달하는 것이 이상했다. 자신이 위험한 일에 파견될 때는, 평소의 그녀라면 ‘고생 잘해라’는 식으로 톡 쏘아붙여 주는 것이 걱정해 주는 표현이었다. 이번 일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사실도 그녀를 이렇게 변하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아이작을 생각하는 마음에 자신이 직접 일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때문에 제이미는 더더욱 그녀에게 이 일을 맡길 수 없었다. ‘그녀가 위험에 빠지느니 차라리 자신이’ 같은 속이 메슥거리는 이유도 있었지만, 감정적인 상태에서는 놓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안 돼,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펠릭스, 넌 지금 너무 초조해하고 있어. 널 봐, 이게 평상시의 네 모습이야?”

펠릭스는 온몸이 굳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 듯 제이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어서 화제를 바꾸고 싶었던 제이미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로 돌아갔다.

“됐어, 내가 갈 거야. 더 이상 얘기 꺼내지 마. 조사한 건 어떻게 됐어?”

“…….”

“펠릭스?”

“어, 어! 응, 그래.”

그녀는 굉장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제이미는 그것이 굉장히 걱정스러웠다.

“딱히 직접적으로 건진 건 없어. 메일의 발신인은 유령 계정이었고, 아이작의 계정을 해킹한 녀석도 추적이 어려워. 거기 휴강 신청에는 따로 필요한 서류가 없더라고. 내 말은, 본인이 직접 가져다줘야 하는 건 말이지. 그러니까 알아낸 건 아이작의 아이디로 접속을 시도한 아이피 주소를 쫓아가서 찾아낸 개인 서버 계정뿐이야. 쓸모없었고.”

“그럼 다시 원점이군.”

펠릭스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한 가지 있는데, 두 계정에 공통적으로 ‘RedTide’라는 글자가 들어가. 동일범이라면 놈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아이디가 되는 거고, 단체가 개입되었다면 그들의 캐치프레이즈 같은 거겠지. 추측할 뿐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좀 부주의해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그냥 개인의 습관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야.”

“그건…… 쓸 만할까?”

제이미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묻자, 펠릭스 역시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만 으쓱하고 말했다.

“모르는 일이지. 언제 이걸 다시 보게 될 지도. 어쨌든 얻은 게 이거밖에 없으니 우리 계획을 그대로 밀고 가는 편이 낫겠어.”

“서버실엔 내가 들어갈 거야. 꿈도 꾸지 마.”

“알았어, 알았다구…….”

그녀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공격적으로 내뱉었다.

“그럼 이제─”

쾅쾅, 갑자기 문에서 노크라고 하기에는 너무 힘을 넣은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이 기지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목소리가 그들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제이미, 제이미 애로우! 나와보게!”

제이미는 치를 떨었다.

“아, 젠장, 캐버너. 아마 뒤처리 건으로 입단속하려고 불렀을 거야.”

“제이미 애로우, 할 얘기가 있어!”

제이미가 최대한 늑장을 부리다가 뒤늦게 문을 열자, 문설주 사이에 꼭 낄 것 같은 통통하고 키 작은 전형적인 땅딸보 군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제이미는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활기차게 외쳤다.

“소령님! 죄송합니다, 신참 교육 좀 시키느라 말입니다. 그래도 오래 기다리신 건 아니죠?”

“험, 손님이 와 계셨군. 레인 양 아니신가. 이 방에서 뭘 하고 있었다고?”

“신참 교육 말입니다, 소령님. 생긴 건 예쁘장한데 워낙에 말귀를 못 알아먹어서요.”

펠릭스가 눈을 부라렸다.

“뭐, 음, 개인 사정이니 뭐라고 하지는 않겠네만…… 방 안에 단둘이서, 대낮부터 좀 민망하지 않은가?”

캐버너가 윙크를 하며 속닥거렸다. 제이미는 소름이 돋았다.

“허, 흠! 어쨌든, 레인 양, 레인 양은 좀 빠져줬으면 하네만…….”

늙은 군인은 부하와 이야기하는 데 여자가 끼어있는 것이 상당히 불편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숨겨야 할 이 중대한 시점에 그럴 만도 하지. 제이미는 왠지 그의 뜻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소령님, 이참에 신참 교육 단단히 시키죠.”

“뭐, 뭐라구?”

“소령님이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시면 제가 넙죽하고 수행하는 걸 요 맹랑한 녀석에게 보여주자는 겁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곳의 위계질서를 꼿꼿이 세우자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 그런가? 흠, 흠! 그것도 좋겠군! 레인 양, 여기 남아있어도 좋네.”

캐버너 소령은 목을 빳빳이 세우고 뒷짐을 졌다. 펠릭스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놓은 동안 그를 기가 찰 노릇으로 지켜보았다. 제이미는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네가 어떤 명령을 내리는지 알면 펠릭스가 여기 지휘관이 얼마나 저능아 같은지 단단히 교육할 수 있을 거다.’

“제이미 애로우, 자네에게 아주 중요한 임무를 내려주겠네.”

제이미에게 벌써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달싹거리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캐버너는 그것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자네에게 곧 보안부 직원이 ‘들이닥칠’ 걸세. 그가 자네에게 저번 D계급 인원 탈주 사건의 경위를 물을 거야. 자네는 그에게 이렇게 답변해야 하네. ‘저는 제 상관이신 캐버너 소령님의 지시를 전적으로 믿고 행동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오판했을 가능성은 추호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펠릭스의 입가에도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캐버너는 자신의 연설에 도취된 듯이 눈을 감고 젊은 군인의 목소리를 점점 실감 나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격정적으로 주먹을 치솟는 동작까지 곁들여서. 마치 30…… 20년은 젊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자네는 또한 뒷수습에 관한 질문을 받을 걸세. 이때 해야 할 대답은 바로 이걸세. ‘처리반이 도착하기 전에 철수해서 저희들이 정확한 상황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캐버너 소령님께서 당시 여건에 가장 적합한 명을 내리시는 것을 확실히 들었으며 그분이 책임질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고 100% 확신합니다’라고 말이야.”

그는 마치 공연을 끝마친 가수처럼 한껏 멋을 부리고 그의 청중을 둘러보았다. 펠릭스는 웃음을 참느라 맺힌 감격의 눈물을 머금고 박수를 쳤다. 제이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몸이 계속해서 들썩거리는 것을 보아 간신히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캐버너는 그것을 더욱 흡족하게 지켜보았다.

“그럼, 이것으로 충분하겠군. 수고하게, 애로우.”

소령은 심지어 거수경례를 했다(이것은 제이미에게 있어서 최고로 위험한 부분이었다). 그는 굉장히 각진 태도로 뒤돌아서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복도를 향해 딱딱하게 걸어갔다. 문이 닫힌 뒤 방 안에서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제이미는 그들의 긴장된 분위기를 깡그리 몰아내 준 캐버너의 출현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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