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밈적 호러는 제쳐두고, 휠러는 제41기지가 일하기에는 충분히 괜찮은 장소처럼 보인다 생각했다. 적어도 지상층은 말이다. 매력적이지는 않아도 제법 널찍한 사무실과 너른 창문, 풍부한 자연광과 운치 있는 숲 전망까지. 안전하기도 하고 말이다.
제167기지는 무질서하게 퍼져있는 인간이 살기 부적합한 황무지로, 4 평방 킬로미터 내에 보안 격리 창고, 연구소와 행정 사무실이 세워져 있다. 휠러는 화석 연료 발전소가 떠올랐다. 건물들은 음산하고, 실용적이며 공격적일 정도로 따분한 디자인이다. 녹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 복합단지 내에 존재하는 배경 소음은 날카로운 바람 소리다. 평지 위에 지어졌기에, 바람이 콘크리트 협곡 사이를 질주하며 날카로운 건물 가장자리를 지나치곤 했으니 말이다.
휠러는 기지의 절반 이상이 궤도 레이저 폭격에 의해 지구상에서 지워졌음을 발견한다. 멀쩡한 건물과 도로가 갑작스럽게 끝나는 경계가 있으며, 그 경계 너머로는 시커멓게 탄, 평평해진 잔해만이 존재한다. 휠러는 폭격 도중 기지의 항밈적 탄두가 기폭되자 레이저가 멈췄을 거라 추측해보지만, 정확하게 사건의 연쇄가 어떻게 일어났던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딱히 상관은 없다. 성공 가능성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니 말이다. 휠러가 찾는 것은 지하에 있다.
휠러는 한계에 다다랐다. 너무 멀리까지 온, 너무나도 길었던 여정이었다. 더는 제정신인 채로 SCP-3125의 우주 속에 존재할 수가 없다.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유일하게 살아있으면서 놈을 막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에서 오는 부서지기 쉬운 책임감이 마치 두개골에 착용한 바이스처럼 그를 서서히 죄어오고 있다. 휠러는 지쳐버렸고, 편두통에 의해 시야가 밝은 불빛으로 서서히 가려지고 있으며, 우울하게도 외롭다. 탐정 역할도, 기지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이젠 됐다.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
8동과 22E동 사이에는 수직 출입 지점이 있다. 폭 30미터의 육각형 수직 통로로, 노란색 갠트리 기중기가 이북에 달려 있다. 수직 통로는 기지의 방대한 지하 복합단지로 건설기계와 자재를 내려보내는 데에 사용되곤 했다. 워낙 넓고 깊게 조성된 통로인지라 가장자리 근처 공기의 움직임에 기묘한 영향을 주곤 한다. 휠러는 마치 자신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직 통로 내벽에는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휠러는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간 뒤, 가지고 있는 지도를 이용해 제167기지 지하 복합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제41기지와는 달리 이 기지는 확실히 안전 기지는 아니었다. 곳곳에 경고 표지가 널려 있고, 거기에 적힌 기호 대부분은 휠러가 바로 그 의미를 알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휠러는 전자식 잠금장치로 봉인된 육중한 칸막이벽들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매리언 휠러의 보안 출입증을 가져다 대니 매번 잠금이 해제된다.
제S167-00-6183격리단위의 에어록은 휠러가 제41기지에서 본 에어록과 동일하다. 건축 도면에 나온 것처럼 말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 에어록은 구멍 따위 없이 여전히 밀폐된 상태라는 것이다. 휠러는 떨리는 손으로 인식기에 카드를 긁는다. 문이 회전하며 열리며, 살균 소독된 흰색 대기실을 내보인다. 몇 년 동안 사용되지 않아 공기가 정체되어 있다. 휠러는 그 중앙에 선 채로, 반대편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끝이 다가온다.
휠러의 심장이 쿵쾅댄다. 딱히 좋은 일은 아니다. 그가 아는 한 심장 질환은 없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살아있던 모든 심장병 전문의들은 다 지옥에 갔는데.
그는 마지막으로, 최후의 걱정스러운 질문을 자문한다.
"하지만 휴즈 박사, 당신이 여기에 있고, 장치를 만들었고 그 장치가 작동한다면, 어째서 나오지 않았지?"
휠러는 그 대답에 스스로 대답한다. 곧 확인할 비보에 대비하듯 말이다.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니까. 당신이 만들지 못했으니까. 당신은 죽었으니까."
안쪽 문이 회전하며 열린다.
*
지하실 내부 공기는 열대 지방이라도 된 마냥 습하고, 워낙 습기가 짙어 뭔가 맛이 느껴질 정도다. 불쾌할 정도로 무언가 유기물 같은 맛이 난다. 림프액이나 다른 정체불명의 체액 같은 맛이. 머리 위에는 투광 조명등이 있는데, 10개 중에 하나 정도만 여전히 불이 들어와 있다. 사방에 쓰레기가 널려 있다. 휠러의 왼편에는 반원 형태로 배치된 거대한 자동 생산 설비가 있다. 각각 높이는 6미터 이상으로, 그 주변에 가구나 도구, 음식물 용기, 하드폼 블럭, 회로판과 직물 뭉치 등의 생산된 쓰레기가 쌓여 있다. 오른편에는 지하실의 길고 오목한 벽을 따라 수백 개나 되는 텅 빈 선적 컨테이너가 쌓인 채로 늘어서 있다. 안에 원자재가 아직 들어있는 컨테이너를 찾으려면 10분은 걸어가야 할 것이다.
휠러의 앞에는 3미터 높이의 강철 벽이 있다. 벽은 좌우로 둥글게 휘어져 있어, 지하실 바닥 대부분을 감싸고 있다. 벽 위로 희미하게 무언가가 보인다. 약한 노란 조명 아래에, 거대한 유기체가 잠을 자며 천천히 들썩이고 있다. 현재 위치에서 휠러는 오직 유기체의 곡선형 등만 볼 수 있다. 표면은 윤기 있는 촉촉한 검은색이며, 곳곳에 초록색 반점이 나 있다. 형체는 거의 구형이다 싶을 정도로 둥글다. 마치 2km 크기 인간의 간을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퍼낸 뒤 이 거대한 페트리 접시에 던져 넣은 것 같은 모습이다. 그 광경을 연상하며 휠러는 침을 꿀꺽 삼킨다.
휠러는 자동 생산 설비에서 나온 1미터 정도 두께의 파이프가 페트리 접시 가장자리를 넘어 내부로 들어가, 다양한 필수 액체들을 공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신 유기체 주변에 높은 탑들이 배치되어, 사방에서 반투명한 안개를 유기체에게 뿌리고 있는 것은 본다. 좌우 천장에는 집만큼 커다란 환기 장치들이 매달린 채로 계속해서 굉음을 내고 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휠러는 헛기침을 하고는 방 안에 대고 최대한 큰 목소리로 감히 말을 건다. "여기… 바솔로뮤 휴즈 박사 계십니까?"
아무 일도 없다. 환기 장치의 굉음만이 지속된다. 유기체가 계속해서 천천히 들썩인다.
휠러가 약간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장치 하나를 찾고 있는데 혹시—"
유기체가 깨어난다.
"—비현실성 증폭기라고 있나요?"
유기체가 몸을 돌리자, 페트리 접시 안의 액체가 다량으로 밀려나 파도치며 벽 너머로 끈적하게 넘쳐흐른다. 유기체는 흔들리며 벽을 올라온다. 유기체의 더 많은 부분이 드러나면서, 처음에 보이던 것 외에 무언가 신체적 특징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뭉툭한 물갈퀴를 제외하면, 단순하게 구형에 가까운 커다란 유기물 덩어리가 전부다. 유기체는 눈은 없지만 휠러를 응시하는 것 같다.
휠러는 더는 이 장소에 남아있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지하실을 떠나고자 몸을 돌리나, 뒤에 있던 에어록 문이 열릴 때만큼이나 조용하게 이미 닫힌 상태라는 것을 보고는 놀란다. "아." 에어록 제어 장치는 떨어진 장소에 있다. 휠러는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면 관심을 끌까 두려워 뛰지 않고, 재빠르게 걸어가서 훔쳐 온 보안 카드를 다시 꺼낸다. 카드를 인식기에 다시 긁으려 하자, 느닷없이 끈적끈적한 빨간색 그물이 튀어나와 휠러의 손목을 구속하여 카드를 긁지 못하게 만든다.
휠러는 잠시 손을 빼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물은 접착제처럼 끈적한 데다가 이상할 정도로 단단하다. 마치 안에 뼈라도 들어있는 것 같다. 그 탓에 움직일 수가 없다. 휠러는 다시 뒤를 돌아보나, 대체 유기체의 몸 어디서 그물이 튀어나왔는지 파악하기에는 그 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유기체는 이젠 눈을 떴다. 폭 10미터 정도 되는 하나의 안구가 있다. 몸 전체 부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명한 분홍색 홍채와, 네 개의 거대한 검은 동공이 보인다.
유기체의 목소리는 딱히 소리로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잡음처럼, 모기 앵앵거리는 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려오는 것처럼 휠러의 머릿속에 박힌다.
가져왔나
"뭘요?"
박사 없다. 기계 없다
보다 얇은 그물 줄기가 쏘아져 나와, 휠러의 손에 들려 있는 보안 출입증에 붙더니 손가락 사이에서 조심스레 빼낸다. 줄기가 다시 회수되며 유기체의 눈앞으로 출입증을 가져온다.
휠러
"아." 휠러가 말한다. "네, 그게 사실 우연의 일치인데—"
그물 줄기가 조여들며, 휠러의 팔을 들어 올린다. 휠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의 안 보이는 상태로, 무력하게 허공에서 회전한다. 선명한 분홍색이 흐릿하게 보이더니, 휠러는 비명을 지르며 바트 휴즈의 네 동공 중 가장 큰 것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
휴즈가 처음 도착했을 때 벙커는 비어 있었다. 동료들은 사라져 있었다. 휴즈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죽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물게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 채로, 휴즈는 총격 현장에서 도망치기 전에 제 인간 신체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오는 것을 잊었다. 연구할 인간 조직 샘플이 없기에, 대체할 신체를 복제해 낼 방법이 없었다. 이제야, 휴즈는 자신이 이 상태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휠러가 말하기를, 재단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가 자신의 존재 대부분이나 전체를 희생해야 할 것이라 했다. 그녀는 단지 휴즈가 지식으로는 언제나 알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설령 상상했더라도, 이런 경험을 내부에서 직접 겪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었다. 여러 차례 휴즈는 포기할 뻔했다. 이형증만으로도 죽기 직전까지 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휴즈에겐 의무가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휴즈는 1년 넘게 병원체 형태에서 놈을 공격했다. 짧지만 민첩한 촉수에 맞춘 컴퓨터 주변장치와 필기구를 직접 개발해야 했다. 휴즈는 미니어처 의자-유사체와 다른 가구들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만의 작은 삶을 구축했다. 운동 계획도 세우고, 심지어는 취미도 가졌다. 휴즈는 영양 혼합액으로 된 탕 속에서 잤다.
첫 달이 끝나기도 전에, 휴즈는 자신이 찾고 있던 반밈이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증명해 냈다. 접촉만 해도 인간의 정신은 비유적으로 불타버릴 것이며, 신체 또한 말 그대로 불타버릴 가능성이 꽤 높았다. 주변을 둘러싼 우주의 모든 요소가 근본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잘못되어 있는 것에서 오는 격렬한 반응으로 말이다. 반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단세포성" 기저 관념을 가진 인간 매개체로부터 시작하여, 장치를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그 관념을 증폭해야 했다.
2년 차에 접어들 무렵 휴즈는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기계가 애초에 만들 수 없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아는 단계까지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였다.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나도 심했다. 실험은 문제가 많은 결과를 보이며 실패하고 있었고, 이는 곧 근본적인 구조적 오해가 존재함을 가리키고 있었다. 휴즈의 기계는 설계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고, 애초에 그렇게 작동할 수 없었다. 휴즈는 모든 도면을 폐기했다.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휴즈의 망막 뒤편에 몸부림치는 인물의 형상이 고정되어 있다. 아주 작은 지점으로 집중된 노란 불빛 아래에서 가라앉으며, 혈류에서 산소를 끌어다 써가며 미세한 생각들을 쏘아내고 있다. 인물은 공포와 충격 속에서 실성하고 있었으나, 본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회복력이 좋았기에 점차 적응해 나가고 있다. "당신이었군요." 작은 남자는 간신히 꺽꺽거리며 말한다. "증폭기 같은 건 없었어요. 당신이 증폭기지.")
휴즈는 본인의 유전 암호 배열 순서를 밝혀낸 뒤, 역설계하였다. 그는 생명 유지 장비를 제작하고, 지하실 내부를 재설계하였다. 항상 계획하던 일이긴 했으나, 이 정도 수준으로 할 예정은 아니었다. 휴즈는 몇 년에 걸쳐서 차근차근 제 생리를 재조정하였고, 결국 그의 뇌는 거대하며 급진적이고, 단순화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사고가 가능한 크기와 복잡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치만 왜 그러지 않았죠?" 작은 얼룩이 질문한다. "언제든 지하실을 열 수 있었잖아요. 뭘 기다리고 있던 거죠?")
언젠가, 인간의 관념 공간을 탐색하던 중, 휴즈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기초적인 밈적 기술자(descriptor)를 만든 뒤, 다듬고, 집중시키고, 약간의 추측을 더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수많은 비슷한 사람들의 - 살아있던 죽었던 실재하던 허구이던 - 무리 속에서, 인간 형상의 찬란한 빛 덩어리 하나. 그 웅대한 맥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이토록 높은 관점에서 보는 건 매력적이면서도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었다. 그는 아주 자그마했다. 휴즈가 손을 흔들었다. 그가 답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휴즈가 자신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광기의 천재 기술자로, 최후의 무기를 설계하는 미친 발명가였다. 하지만 그 무기를 이용할 이는 그가 아녔다. 그가 증폭해야 할 불꽃, 기저 관념은 그의 머릿속에 없었고, 그와 함께 이 지하실 내에 있지도 않았다. 수학적으로 보자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올바른 형태가 아녔으니 말이다. 다른 누군가가 가져와야만 했다.
(작은 얼룩은 몸부림을 멈춘다. 그는 혼신을 다해 제 왼쪽과 오른쪽을 살핀다. 마침내, 망막 위에는 다른 형체들도 함께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훨씬 이전부터 있던 존재들로, 대부분 막과 하나가 된 상태로 더는 독립적인 생명체도 아니거니와 독립적인 사고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는 이 광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그가 말한다. "…대체 누가?")
기다려 보세요.
(작은 얼룩의 뇌가 폭발한다. 마치 하나의 도표처럼.)
*
숲이 있다.
숲에는 크고 멋진 집이 하나 있고, 그 뒤에는 정원이 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키 큰 침엽수로 둘러싸여 있다. 잔디밭에는 의자들이 대략 원을 이루며 늘어서 있고, 스물다섯 명가량의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는 채로 무리를 지어 대화를 나누며, 음료수와 햄버거를 들고 있다. 게다가 바비큐 앞에는 줄이 서 있다. 바비큐에서는 연기가 기둥을 이루며 높게 솟아오른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끔찍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 날이다.
애덤 휠러는 현재 본인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광경을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너무나도 기분 좋은 광경이다.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말이다. 휠러는 본인이 평범하게 느껴진다. 깨끗하고 건강한 상태인 기분이다. 본인의 손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숨을 헐떡이며 거의 울 뻔한다.
누군가 그에게로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당신이 애덤이겠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바트 휴즈입니다."
휴즈는 50대치고는 아주 동안이며, 키는 작고 마른 체형에, 두꺼운 렌즈와 두꺼운 테를 가진 안경을 끼고 있으며, 부산스럽게 헝클어진, 잿빛으로 세어가고 있는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 휠러는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잡고 악수한다. 다른 손에는 맥주 한 병이 들려 있다. "전 재단에서 일해요." 휴즈가 말한다.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요. 격리 설계, 생체밈공학, 그 밖에 온갖 잡다한 일을 하죠."
"휴즈." 휠러가 되풀이한다. "저는— 어,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절 찾았군요." 휴즈가 말한다. "잘하셨어요."
"…이게 다 뭐죠?"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이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이에요. 현실에서 말이죠. 아주 짧은 만남이었어요. 우리는 기껏해야 열 개 단어 정도만 서로 말했죠. 무슨 말을 했는지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당신이 어땠는지도 사실상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요. 악의는 없어요. 하지만 바비큐는 기억이 나요. 게다가 당신을 바비큐 앞에서 만났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기억이 나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나눠야 할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여기가 좀 더 유쾌한 장소겠다 싶었죠."
휠러는 이 상황을 알아보지 못한다. 장소는 물론이고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를 말이다. "이건 당신의 기억인가요?"
"맞아요. 자, 이야기를 나누죠."
휴즈는 휠러를 데리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햇볕 아래에 놓인 의자 두 개를 고른다. 휴즈가 그중 하나에 앉더니, 반대편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고 휠러에게 손짓한다. 휠러는 불안 속에 자리에 앉는다. 휠러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는, 생각을 가다듬고는 말을 시작한다.
"애덤, 당신에겐 우리가 찾던 관념이 없어요. 반밈을 위한 맹아 말이죠. 우리가 찾던 건 당신이 아녜요."
"만약 그 관념이 있었다면 당신도 알았을 거예요. 모르는 게 불가능하죠. 그 관념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깨어 있는 매 순간 마다 그 관념이 나타내는 높은 이상이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을 거예요. 바로 그 관념이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어야 했단 말이죠. 그게 없음에도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관념을 하나 가지고 왔어야 하는 줄은 몰랐네요."
"알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휴즈가 다시 확인해 주듯 말한다. "지하실 밖의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저도 여기에 갇히기 전까지는 몰랐을 정도니까요. 그게 보통이에요. 계획을 세우고,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그 계획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게 되죠. 그러면, 막대한 압력 하에서, 강제로 창의성을 발휘하게 돼요."
휠러가 심호흡을 한다. 그러고는 어깨를 편다. "알았어요. 그럼 어디에 있죠? 북미에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제41기지까지 그 길을 다시 다 돌아서 가고 싶지도 않고요. 하지만 그래야 한다면 할 거예요. 그 정도 시간을 기다리실 수만 있다면요."
휴즈가 고개를 내젓는다. "당신은 못 해요. 설령 일이 그렇게 간단해서, 마치 배달 음식 받아오듯 당신을 어딘가로 보내서 가져오라고 시킨다 하더라도… 그런 관념을 당신이 옮길 방법이 없어요. 당신에겐 그런 능력이 있던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믿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었죠. 우리가 찾던 건 당신이 아녜요."
"…그럼 이제 어쩌죠?"
휴즈가 뒤로 돌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비큐 쪽을 바라본다. 휠러도 그 시선을 따라간다. 거기에는 등을 돌린 채로 바비큐 앞에 서 있는 여성이 한 명 있다. 음식을 받으러 줄을 선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녀가 관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리언." 휠러가 말한다.
"그녀에게 그 관념이 있었어요." 휴즈가 말한다.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관념은 딱히 단수인 건 아녜요. 엄청나게 방대한 가능성이 모인 위상 공간이니까요. 세상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이 일에 쓸 수 있는 서로 다른 관념이 있었어요. 그녀는 그중 하나였죠."
"과거형이로군요." 휠러가 말한다.
"네. 그녀는 죽었으니까요."
휴즈는 몸을 돌려 휠러를 바라본다. 휴즈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맥주를 좀 더 마시며 말을 고른다. 휴즈는 의사가 아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그가 따를 필요는 없다.
"애덤." 휴즈가 말한다. "당신 뇌를 조사해 보고 있었어요. 아주 여러 층의 손상이 가해졌고, 그중 대부분이 의도적으로 가해진 것 같아요. 심지어 일부는 당신이 스스로 했을 수도 있고요. 기억이 억제되고, 복구되고, 조작되고 다시 지워졌어요. 무엇보다도 당신은 치명적인 수준으로 SCP-3125에 노출되었음에도 살아남았고, 그에 더해 완전히 비변칙적인 트라우마도 엄청나게 겪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아직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죠. 당신 삶에 난 구멍을요."
"아뇨, 알아요." 휠러가 말한다.
약간 조심스럽게, 휴즈가 묻는다. "무엇을 알고 있죠?"
"어느 시점에선가 저는 그녀와 결혼했었죠. 맞나요?"
천천히, 휴즈가 고개를 끄덕인다.
휠러가 말한다. "결국 거기까지는 도달했어요. 처음에는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게 멍청하면서도 집착처럼 느껴졌죠. 자기중심적인 생각 같았고요.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보고 나니, 그게 다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결국에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죠."
휴즈가 묻는다. "그 사실에 어떤 기분이 드나요?"
휠러는 심란한 마음에 손가락을 깍지 낀다. 그는 모른다.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은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휠러는 그걸 아는 게 두렵다. "그래서 우리가 결혼했었다 해도 뭐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다 끝났어요. 다 사라졌잖아요."
"…그럴지도요." 휴즈가 말한다.
"매리언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휴즈가 휠러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자가주사기 펜이다. 선명한 주황색에 땅딸막한 원통 모양으로, 끝에 달린 뾰족한 뚜껑을 열면 바늘이 있다. 옆면에는 Z라는 글자가 굵은 검은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휠러는 그게 뭔지 알아본다.
사실, 휠러는 그게 자신의 물건이라는 걸 알아본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얻었던 것인지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던 것인지도 말이다.
이 약물은, 휠러가 알기로는, 그를 죽일 것이었다. 그가 모든 것을 —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를 죽일 것이었다. 약물을 맞은 다른 모든 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억은 하게 될 것이다.
휠러의 귓가에 뭔가 노래 같은 것이 들려온다. 정원에 내려앉는 햇빛이 흐려지고, 번져나간다. 휠러는 휴즈와 눈이 마주친다. 휴즈는 유감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휴즈의 눈이 번쩍인다. 한 점의 백금색 빛이 번뜩인다.
*
이게 끝이어야만 한다.
기나긴, 몇 달에 걸쳐 편두통을 느끼며 공포에 찬 채로 방황하던 시기가 떠오른다. 이젠 고인이 된 데이지 울리히가 이뤄낸,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너무나도 짧고 놀라우리만치 고통스럽던 학교에서의 대면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다시 SCP-3125 내부에 말려 들어가, 놈과 하나가 되어 어두운 금속제 지옥 속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일이 떠오른다. 약물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리지 않기가, 그때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직접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안에서의 시간은 확장되어, 변칙존재의 질량에 따라 주관적인 한계점까지 늘어난다. 수십 년은 지속되는 느낌이다. 이윽고, 끌이 나타난다.
그 뒤로, 2년 동안 애덤은 텅 빈 상태다. 그는 찢겨 나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한 구멍을 정장으로 감싸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매리언이 있다. 차분하게 애덤의 삶에서 자신을, 자신의 삶에서 애덤을 뜯어낸다. 그리고 그보다 한 시간 이전, 바로 그 최악의 순간에, 애덤은 그녀가 더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참담하고 가라앉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윽고 거기서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어느 10월 새벽 6시 15분, 동트기 전의 얼음장 같은 추위 속이다. 매리언은 일하러 가기 위해 제 자동차 문 앞에 서 있으나 업무용 휴대전화에 온 뭔가 중요한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상태다. 애덤은 현관에 선 채로 그녀를 배웅하고 있다. 애덤도 오늘 밤과 내일 밤 출장 일정이 있어, 오늘이 지나면 두 사람은 당분간은 만나지 못한—
이것이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마지막이다. 이게 끝이다.
애덤은 온 힘을 다해 버텨, 회귀를 간신히 멈춰 세운다. 그가 외친다. "매리언!"
매리언이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내린다. 그러고는 몸을 돌린다.
매리언이다. 온전한 그녀다. 애덤이 기억하던 바로 그 상태의 매리언이다. 그녀가 곧 기억 그 자체이다. 우상과도 같이 눈부신 기억 그대로다. 매리언은 어이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애덤에게 웃어 보인다.
그녀가 말한다. "이제는 알겠어?"
"왜 이 모든 기억을 내게서 앗아갔는지 말이야? 그래." 애덤은 매리언에게 다가가, 키스를 나눈다. 고전적이고 완벽하며, 둘 모두가 기억하는 그 모든 것이 담긴 키스다. 애덤은 매리언을 꽉 껴안고, 그녀 또한 그를 꼭 안아준다. 늘 그랬듯 키 차이가 나는 상태 그대로 말이다. 애덤이 코를 훌쩍인다.
"엄청 고생했네." 매리언이 말한다. 단순한 사실이다.
"난 당신이 필요했어." 애덤이 말한다.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했는지조차 몰랐어. 당신이 날 도와줄 필요까지는 없었어. 그저 옆으로 물러서서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두어야만 했었어. 매리언, 당신 일은 미친 짓이야. 왜 당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이 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당신 인생의 절반을 썼는지 이제는 백 퍼센트 이해해. 다시는 이 일에 대해 묻지 않을게."
매리언이 애덤을 올려다본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것 같지만, 애덤의 뇌 속에서 고통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애덤은 말을 멈춘다. 고통이 강제로 비집고 나와, 이제는 그의 눈 뒤쪽에 자리 잡는다. 회귀 속도가 다시 가속되기 시작한다. 애덤의 삶에 있던 온갖 시점에서의 서로 다른 기억들이 소리 높여 애덤을 향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그 모든 소리가 점차 커져 나가, 이제는 명료하게 사고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렇지만 그 기억 중 대부분이 매리언이다. 그녀 또한 세월 속에서 진화하고 성장하였기에 늘상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공통된 맥락이다. 애덤은 매리언에게 집중한다.
"현재 상황을 다 알려줄 시간은 없어." 애덤이 간신히 말을 한다. "지금 이건 현실이 아냐. 우리 둘 모두 당장 바트 휴즈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어. 당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 지는 몰라도—"
"SCP-3125라는 (항)밈적 괴물이 있지." 그녀가 말한다. "놈은 날 죽였고, 학과도 죽였고, 재단도 죽였으며, 이제는 우리 현실 전체를 점유하고 있어. 놈은 인간을 망치지. 지금까지 존재해 온 것 중에서 최악의 존재야. 이젠 당신만이 남았고 당신은 놈을 막을 수 없어. 당신은 놈을 쳐다볼 수조차 없으니 말이야. 휴즈는 증폭할 관념이 필요하기에, 당신은 날 올바르게 구체화하기 위해 생화학적 기억제를 치사량까지 복용했어. 내가 당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관념이니까. 그 정도면 됐을까?"
애덤은 크나큰 안도감을 느끼며, 흐릿하게 미소 짓는다. 그의 아내는 늘상 빠르게 상황을 따라잡곤 했다. "그 정도면 됐어. 우린 참 이상한 때에 살고 있다니까."
매리언이 애덤으로부터 뒷걸음질 친다. 그녀는 애덤을 바라 보고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지금 둘이 있는 작은 허구의 장면을 바라본 뒤, 태양이 뜨기 시작하자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다.
매리언은 "위"를 바라본다. 그녀가 죽여야 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밈복합체를 말이다. 놈의 목구멍 안에서는 인간의 존재가, 모든 인간과 지금까지 인류의 행동, 말, 사고나 존재 방식 전부가, 산 채로 불타오르고 있다. SCP-3125는, 대부분, SCP-3125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그렇기에 파괴 불가능한 존재라는 거짓말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거짓말이다.
지금 매리언 또한 그걸 느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비실재함을 직감한다. 또한 자신이 살아 움직이는 기억이라는 것을, 하나의 이상이자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좀 전에 막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거의 이상적인 상태였으나, 자신으로부터 결함과 복잡성이 뜯겨 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매리언은 자신을 중심으로 휴즈가 구축해 나가고 있는 관념 복합체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익숙한 모양이다. 재단이라는 개념 자체를 엄청나게 고쳐낸 조각 같아 보인다. 재단의 가장 고귀한 의도와 성취가 응축되어 있다. 재단의 존재 목적 중 가장 선한 목적인, 인류를 지킨다는 목적 말이다. 모든 공포를 집어삼키고, 다루고, 이해하고, 열쇠와 자물쇠를 통해 가둬내자. 그리하여 인류가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애덤." 매리언이 다시 위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해낼 수 있어. 여기서 끝까지 모든 게 보이거든."
"그거 좋네." 애덤이 간신히 말한다. "좋은 소식 들은 지 엄청 오래 됐었는데 말이야." 애덤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진다. 두개골이 쪼개질 것만 같다. 매리언도 그를 따라 무릎을 꿇은 채로, 애덤의 한쪽 손을 잡는다.
애덤에게는 무언가가 보이고 있다. 강제로 보여지고 있는 것들에 의해 그는 고통받고 있다. SCP-3125는 애덤과 매리언의 삶을 그가 알던 것보다 훨씬 과거부터 갉아먹고 있었다. 끝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정말 많은 것을 잃었었다. 애덤은 전혀 몰랐다.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애덤은 깨닫는다. 모두가 그렇다. 이 감정을 수십억 배로 증폭해야 한다. "당신이 이 모든 걸 끝내야 해." 그가 말한다. 고통이 한계점까지 차오른다. "바로 오늘 말이야. 더는 안돼."
"애덤, 잘 들어. 저 위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실재야. 예전에도 편린은 봤었지만, 한 번도 저 위에 도달해 본 적은 없어. 그게 어떤 걸지는 잘 몰라도, 내가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될 거라는 건 알아. 이미 난 실재하지 않아. 결코 돌아올 수 없을 거야. 사랑해."
불태우는 듯한, 갉아먹는 듯한 감각이 불꽃을 튀기는 세포 자동차처럼 스멀스멀 애덤의 뇌 표면을 기어간다. "나도 알아." 애덤이 말한다. "괜찮아. 애초에 당신이 돌아올 대상조차 없을 거니까. 당신을 봐서 다행이야. 사랑해."
물러서
매리언이 애덤으로부터 물러난다. 그녀는 날개일지도 모를 것을 펼쳐 낸다.
"당신 노래하곤 했지." 애덤이 말한다. "언제나 말야. 그게 놈이 가장 먼저 앗아간 것이었어. 하지만 난 기억해."
발사 창이 열린다. 일종의 발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매리언 휠러의 시점이 변화하며, 모든 것이 수축하는 듯 보인다. 매리언의 승천이 시작된다.
*
SCP-3125가 의사소통하는 데에 사용하던 일부는 뇌가 터져 나갔다. 더는 사고할 대상이 없다. 더는 신랄하게 빈정댈 대상도 없다. 오직 노래만이 존재하나, 그녀가 스스로에게 부르는 노래다.
놈의 구조는 거대하다. 위상을 보기만 해도 뇌가 망가질 정도다. 놈은 인간의 사고를 아득히 초월한 규모로 관념들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왔다. 놈의 그릇됨은 물론 일관적인 사악함은 너무나도 깊어, 이해하려고만 해도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처음에 놈을 직접적으로 바라보자 매리언의 눈에는 따가운 화학선 섬광이 일어났다. 마치 이온화 방사선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승천하고 있기에, 그녀의 관점은 여전히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승천하며 인간이길 관두면 관둘수록, 그녀는 상대를 꿰뚫어 보며, 본능적으로 놈이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결함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결함을 어떻게 하면 공격할 수 있을지 이해하게 된다.
놈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그 둘이 맞닥뜨렸을 때 벌어진 일은, 전투보다는 계산에 가깝다. 길고 고통스러운 작업을 계속해 내며 무수히 많은 항이 소거된 끝에 방정식이 풀리는 과정이다. 야생광의 존재 하에서, 의미가 있기에 존재한다고 생각되던 SCP-3125의 방대한 영역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야생광이 제공하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놈은 고대부터 존재해 온 사소한 것에 불과하게 된다. SCP-3125는 분기하던 사지가 하나하나 깜빡거리며 존재가 사라지면서 접혀 나간다. 놈은 붙잡고 있던 모든 인간을 놔준다. 계산은 완벽하다. 휴즈가 과거 벙커에서 밈학계의 유체역학 방정식을 이용하여 세운 모형 그대로 일이 진행된다. 프로세서상에서 수천 년 동안 시뮬레이션 된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뻗어 나온 사지가 모두 사라지자, 격노한 빨간색/초록색 눈알만이 남는다. 재단/휠러/보호 개념은 눈알의 앞에서부터 뒤를 똑바로 꿰뚫으며 구멍을 낸다. 무색의 충격파가 눈알 내부로 퍼져 나가고, 또 다른 충격파에 의해 조용히 상쇄된다. 그 뒤로는 밝은 진공만이 남는다. 입자 하나 남는 것이 없다.
그 충돌로부터 남은 것은 오직 평형 상태뿐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유 광자 하나가 관념 공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에필로그: 부존재의 승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