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숱한 시간이 지나죠. 세계가 태어나고 지고, 그 안의 생명들도 태어나고 사라집니다. 그것이 얼마나 긴 시간동안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반복되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대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요. 긴 세월, 세상은 하루가 지나가고, 계절이 달라지고, 한 해가 끝나고 시작되는 것과 같이 끝나고 시작합니다. 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요.
세상의 봄. 우리들이 태초에 존재했던 시기. 우리의 기원은 우리들도 알지 못합니다. 그냥 있었다고 하는 편이 좋을까요. 우리들은 하늘을, 대지를, 세계를 자아냅니다. 누군가는 서늘한 바람이, 누군가는 흐르는 물이, 누군가는 굳건한 바위가 되어. 그리고 누군가는 너른 대지가, 하늘이 되어 이 세계에 자리하게 되었죠. 그런 힘은 어디서 생겨날 수 있었을까? 글쎄요. 나의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겠지요. 다만 우리가 그리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있습니다. 믿음과 기원, 세계를 이루는 작은, 하지만 중요한 조각. 우리는 믿음에 의거해 세계를 자아내고, 그 일부가 되는 겁니다. 완전한 사실은 아니지만, 아마 당신들이 이해하기에는
그리고 당신들이 나타났죠. 작은 흙인형. 물렁한 살 속에 무엇보다 큰 가능성을 지닌 생명들. 스스로를 칭하기를 인간. 두 발로 땅을 걷고 두 손으로 세계를 헤치는 이들. 그러나 당신들은, 자신을 우리에 비해 보잘것 없는 존재로 칭합니다. 산을 파내지도 못하며, 부는 바람을 멈출 수 없고, 강을 멈추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해냈다고 생각하는 일을, 당신들은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나는 그대들을 칭송합니다. 자신에게 힘이 없기에 우리에게 힘을 빌릴 생각을 한 이들. 먼 고대의 시간이 가진 비밀을 어렴풋이 붙잡은 자들. 시간을 되돌이켜…우리의 업을 다시금 행하기로 한 자들을요. 그대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짓고, 그것을 따라하며, 마침내 그것을 되풀이합니다. 신화의 재현이라고 할까요. 당신들이 지어낸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당신들이 우리를 부르면 우리는 거기에 대답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먼 태초의 날, 이 세계를 창조하던 우리의 업을 다시금 재현합니다. 그대들이 그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랐기 때문에요. 믿음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 그 때의 당신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찾아오죠. 만물이 신록을 노래하며 제 모습을 뽐내는 때. 그 때의 당신들은 이제 우리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와 같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칭송하던 이야기는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신화가 되고, 우리에게 바쳐진 노래는 모든 인간들이 함께 부르는 음악이, 시가 됩니다. 그대들이 우리를 부르는 자리는, 이제 단순한 힘을 빌리는 계약이 아닌 우리와 당신들의 합일을 이루는 자리가 됩니다. 우리도 당신도 다함께 울고 웃고 노래하고 춤추매, 당신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들은 당신들을 굽어보며 함께합니다. 정오의 태양 아래, 빛나는 별 아래, 그렇게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고, 자아내는 이야기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 신화. 세계의 여름날에 빚어진 거대한 유산이겠지요.
그러나 봄과 여름에 따르는 것은 가을과 겨울. 신화의 가을에, 당신들은 마침내 수확을 거두기 시작합니다. 세월을 살아가며 쌓은 지식과 경험은 당신들의 머리를 여물게 하죠. 그리고 당신들은 마침내, 우리의 일부가 아닌 당신들 자신을 찾아나섰습니다. 신화 이상의 것을 찾아, 인간의 지혜를 좇아, 신비와 기이가 아닌 자연과 논리를 봅니다. 그것은 분명히 당신들에게 기쁜 일. 그러나 가을에 낙엽이 지듯, 당신들이 지혜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점점 신비를 잃어갑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바치는 믿음은 변질되어, 오롯한 믿음이 아닌 지성에 가까운 신념, 또는 역으로 비이성에 달하는 광기로 나아갑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방법을 잃고, 단지 자신들만의 방식을 찾아 이전과는 다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당신들. 더러는 당신들이 어리석다고, 야속하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 어린아이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처럼, 당신들 자신도 성장하게 된 것일 뿐이겠죠. 그렇기에 지는 낙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힘과 존재를 잃게 되는 이유라고 해도.
수확의 가을이 끝나고 휴면과 고독의 겨울이 오면, 당신들은 이제 믿음을 갖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이성을 포용하매, 그러지 못한 것을 솎아내게 되었죠. 우리에게 바쳐진 신화는 이제 이야기와 사료가 되고, 우리와 함께 부르던 노래는 이제 시집과 가사 속에서야 그 형태나마를 유지합니다. 우리와 당신들이 함께하던 자리는, 이제 단순한 전통이나 놀이가 되어 그 진의를 잃게 됩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다던 일은 당신들의 지혜로 실현되어, 당신들은 바람을 바꾸고, 강을 막으며, 산을 깎아내는 강인한 자들이 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약해지겠죠. 우리 중 수천의 사람을 거느리던 자도 이제는 단순한 상징이 되고,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이들도 생깁니다. 나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였지요. 그렇게 우리들 신은 긴 겨울잠에 빠지고, 당신들 인간은 이성이라는 집에서 현실의 추위를 피합니다.
가끔, 내가 봄과 여름에 그대들과 어울리던 바위를 쓸며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정말 우리를 잊게 되는 것인지,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만든 이 세상에는 어떤 의미가 있게 되는지. 과연 지금의 당신들이 여기는 것처럼,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것인지. 신화가 아닌 연대기의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요. 그러나 이 또한 세계의 흐름이라면,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이 세계와 함께 태어난 우리의 소명. 언제나 사유는 그런 식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시금 봄을 느낍니다. 그대들. 신비와 비의를 수집하고 이를 보존하는 이들. 그대들이 나에게 온 것은 필경 우연. 거기에는 어떤 세계의 요소도 개입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그대들이 다시 한 번 신화시대의 시간을 재현한다면? 잃어버린 우리와 당신들 간의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만약 그대들이 새로운 봄을 다시금 불러올 수 있다면……그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겠지요.
신화 시대의 편린에 가까이 있을 당신들을, 나는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
██산 제3 휴게실에서 휴식하던 중 내 가방에서 이 문서를 발견했다. 상당히 의문스럽다. 그 산신령은 정말로 우리가 신화시대를 재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늦건 빠르건, "신화수집" 프로젝트의 심의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 - Kandinski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