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리브가 말했다.
"우리 소속 부대 이름이 감마-01이잖아요."
"그게 왜?"
"왜 감마-1이 아니라 감마-01인 거에요?"
채현이 소심하게 물었다. 이전부터 속에 품고 있던 사소한 궁금증이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적이 없었던 질문이었다. 그나마 선후배 관계로서 친분을 쌓아온 리브라면, 좋은 대답은 듣지 못하더라도 시원하게 질문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아, 그거?" 자신에게 오는 모든 질문들을 '궁금하면 500원' 등의 농담 따먹기로 어설프게 흘려 보내던 평소와는 달리, 리브는 의외로 채헌에게 정성들인 대답을 건네려는 듯했다.
"나도 주워들은 거라서 잘은 모르는데, 의외로 만들어진 직후에는 감마-1이 맞았다나 봐."
"진짜요? 522-KO 문서에 감마-1으로 적혀 있던 게 그래서군요."
"넌 그런 것까지 어떻게 다 기억하는 거냐…?" 리브가 살짝 경악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냥 뭐 이것저것 일하다 보니 이런 사소한 것도 자연스럽게…" 채현이 말했다. 자기 특기가 암기라는 건 딱히 밝히지 않았다.
"뭐 암튼, 옛날에 우리 경쟁자가 있었대. 명칭이 똑같았던 기특대가. 이름하야 기동특무부대 감마-1 하이웨이맨." 리브가 말했다. "하이웨이맨"이란 단어에 특히 강세를 주는 것이 비꼬려는 의도를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별칭도 참. 하이웨이맨이면 노상강도잖아요?"
"응."
채현은 의아함을 느끼곤 말했다. "그건 그거고, 기특대 명칭 겹치는 건 흔한 일일 텐데 설마 그거 관련해서 문제가 있었던 건가요?"
"놀랍게도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그 거기 부대장이란 놈이… 잠시만."
리브는 자세를 낮춰 책상 아래에 몸을 구겨넣었다. 뭘 찾는진 몰라도, 각종 서류철과 서적, 기타 잡다한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꽂혀 있는 그 공간 속에선 무엇도 찾기가 어려워 보였다.
"…제가 찾아드려요?"
"아냐, 찾았어. 재단 기특대 규정집." 리브가 도움은 됐다는 듯 먼지 쌓인 책자를 들어보인 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기쯤에 보면…" 규정집을 펼친 리브는 채현에게 특정한 문장을 짚어 보여주었다. "기동특무부대의 명칭은 되도록 겹치지 않게 정해진다. 이거 엄청 옛날에 사문화된 규정이거든."
"근데요?"
"그때 감마-1 부대장이란 놈이… 그니까 흔히 말하는 그런 인간 있잖아. 군대에서 상관인데 쓸데없이 포켓몬스터 이름 외우라고 막 시키는 그런 유형."
"아아. 그런 유형 잘 알죠. 으으윽."
"응. 못 외우면 얼차려 시키고 그러는 거. 이 사람의 경우에는 그 부분을 가져다가 자기네보다 급 낮은 기특대들이 자기네하고 같은 이름 못 쓰게 온갖 지랄을 다 하는 거였대. 우리가 딱 거기에 걸려든 거고."
"하이고. 왜 그랬대요?" 채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거 특. 특별한 이유 없음. 그냥 꼬장부리는 거야. 지가 기분 나쁘니까 그런 거겠지." 리브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이미 죽은 법을 들이밀면서요?"
"응."
"하아…" 채현은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쉬었다.
"부대 별칭 참 잘도 지었어. 노상은 몰라도 강도는 확실히 맞다니까. 암튼 걔가 언제언제까지 명칭 고쳐라, 우리에게 딱 통보를 보냈지. 사문화되긴 했어도 규정은 규정이라 대놓고 어기기엔 좀 양심에 찔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들어주기도 싫고. 가불기가 걸린 거지."
"사문화된 규정이면 그냥 어겨버리면 안 되는 거에요?"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야. 지금까지 그 생각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겠냐?" 리브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기면 어긴대로 그 새끼가 지랄지랄하면서 귀찮게 발목 잡고 늘어질 테니까. 항상 그런 식이었거든. 그래서 합법적으로 엿을 먹여버릴 방법을 발견해냈지."
리브가 다시 규정집의 페이지를 넘겼다. "기특대 명칭 규정에 명칭은 '뭐 다시 숫자'로 정해진다고만 나왔지, 그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은 안 나와 있었거든. 그래서 원래 명칭에 0 하나만 넣어서 감마-01로 바꿨어."
"소극적이네요."
"뭐 딱히 소극적이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합법적으로 보복하고 싶었을 뿐." 리브가 어깨를 으쓱였다. "안 된다고 확실히 말 한 거만 안 한다. 우리 05K의 정체성이잖아."
"그거 반쯤 농담이잖아요." 채현이 얼굴에 옅게 웃음기를 띄우며 말했다. "반은 맞다는 말이기도 하지만요. 다음엔 어떻게 됐죠?"
"뻔하지." 리브가 어깨를 긁으며 말했다.
"감마-1 부대장 놈이 여기 직접 찾아왔어. 레이나 부대장 당장 나와라, 일을 이따위로 성의 없이 할 거냐, 그런 식으로 지랄하면서. 근데, 그땐 우리 부대장도 한 성깔 했었거든? 어케 됐겠냐?"
"불꽃튀는 신경전이 벌어졌…겠죠?"
"불꽃튀는… 이라기보단 그냥 화재지 화재. 말로 아주 찰지게 두들겨 팼다 그러드라. 딴 부대 명칭에 간섭한 거 그거 따지고 보면 월권행위 아니냐, 우린 니네 하고싶다는 대로 바꿔줬고 규정에 어긋나는 일 하나 없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 감마-01이 싫으면 감마-001로 바꿔줄까, 또 기타 등등… 딱 팩트만 갖다가 교육 함 제대로 해줬다더라. 그러니까 감마-1 부대장이 뭐라 했는지 알아?"
"뭐라 했는데요?"
"씨발년. 딱 한 마디만 하고 갔대. 입씨름에선 원래 먼저 욕 한 사람이 지는 거지. 안 그래?"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채현이 웃으며 사극에 나올 법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 암튼 결론을 말하자면, 그 사람 그때까지 비호감 스택 쌓인 게 그걸로 터져 가지고 나중에 결국 불명예 전역했다나 뭐라나. 그때 바꾼 감마-01이란 이름이 그대로 굳어져서 지금까지 내려온 거고."
"의외로 뭔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이름이었군요."
"근가? 난 모르겠다. 역사는 관심 없어가지고."
"선배님이 그럼 그렇죠 뭐."
"좀 모를 수도 있지. 필요해지면 그때 배우면 돼." 리브가 채현을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예 예.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잘 해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