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격리기지에서 환영받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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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강의실에 들어섰다. 다행히 당신이 앉을 자리는 비어 있다. 앉아 있다고 해 봐야 고작 당신 외에 서너 명이 앉아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오후 오리엔테이션을 들은 모양이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으며, 방 안은 기본적으로 선선하고 산뜻한 방향제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방향제가 아닐지도. 방 안은 이상적인 강의실과 같다. 제법 큰 디지털 스크린 쪽으로 열 개 하고도 더 많은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의자는 다행히 편안하며, 팔걸이 플라스틱 의자와 같은 끔찍한 물건은 아니다.

탁자 위에는 생수가 놓여 있다. 다른 주전부리는 없다. 당신은 턱을 괴고 누군가 들어오길 기다리면서 주위를 차근차근 살피고 있다. 강의실의 바닥은, 자세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관의 바닥 같은 재질일 것이다. 생수는 완전히 새 것이며 막 냉장고에서 끄집어낸 듯이 투명한 용기 겉에 성에가 끼어 있다. 칠판 역할을 할 디지털 스크린 위에는 재단 로고를 변형한 기지 인장이 새겨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푸른 빛으로 채색되었으며 아래는 녹색이고, 태양 같은 금색이 중간에 박혀 있다. 당신은 이 색채의 조합을 응시하다가 다시 눈을 돌린다.

당신은 이 기지에 대해 아예 처음이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일종의 하드웨어 뿐이다. 이 기지는 도시와 꽤나 떨어진 녹색 지대에 위치했으며, 겉면은 회백색이다. 꼭 창고와 병원을 적절히 섞어 넣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었다. 대략적으로 지상 몇 층, 지하 몇 층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는데, 이 정보는 승강기로부터 도출해낸 것이다. 기지는 꽤나 크지만 다른 거대한 기지나 구역보다는 작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더 특별하진 않다. 들어오기 전에는 으레 신입생 환영회 같은 것에 어울리는 유치한 노래나 그 비슷한 이벤트의 존재를 두려워한 적도 있었다. 몇몇 시설이나 부서는 그러한 유쾌함을 전면 발휘할 만큼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하거나 아니면 인원이 딸린다는 괴담을 들은 적이 있다.

째깍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작할 때였던 모양이다. 당신은 손목시계와 벽면의 디지털 시계를 번갈아 본다. 정말 원래라면 시작했어야 할 시간이다. 옆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뭐, 아주 늦어지지만 않는다면 마치는 시간은 동일할 예정이다. 당신은 여유를 가지기로 하고 생수를 집어 든다. 그리고 마신다. 차가운 유체가 식도를 내려가는 기분이 짜릿하다. 당신은 몸을 기대고, 손목시계의 바늘을 응시한다. 그리고 곧 이 짓도 질려버린다.

그때, 문이 열린다. 당신은 왜인지 단번에 들어온 이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할 강사임을 깨닫는다. 그 사람은 곧 강단 위에 선다. 당신은 그를 바라본다. 그 사람은……



들어온 사람은 회색 점퍼를 입은 여성이다. 그 여자는 짧은 검은색 곱슬머리를 하고 있으며, 키가 작은 편이다. 눈이 크고, 얇고 둥근 안경을 쓴 그 여자는 강단에 올라서 목을 가다듬고는 이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반가워요, 여러분. 저는 제145K기지 신입 오리엔테이션을 맡게 된 기지 인사부 인원 설다은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반갑습니다.

이렇게 강의실에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인 건 2020년 이후론 처음이네요.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여러분들 중 일부는 얼마 간 이 기지에서 일해보셨을 수도 있고 몇몇 분들은 아예 처음을 이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하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저희는 여러분을 정말 환영해요.

일단… 여러분이 먼저 알게 될 건 아마 기지의 대략적인 사람 사는 일들일 거예요. 어떻게 업무가 진행되고, 어떤 업무를 도맡아 하는지 그런 것 말이에요. 이런 일들이 자질구레해 보여도 기지에서 근무하는 데 뿌리가 되는 사실들이니까요, 그렇죠?

우선 제145K기지의 대략적인 정보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제145K기지는 1961년 설립된 기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구격리기지로서의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곳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에 위치해 있죠. 왜 여기 위치해 있냐고 물으신다면, 음, 이 중 특정 인가를 지니지 못하신 분들에겐 기밀 사항이라. 조금 에둘러 말하자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죠.

제145K기지는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아요. 딱 연구격리기지 정도죠. 너무 거대한 기지들처럼 행정 차질이 생길 정도도 아니고, 작은 기지들처럼 더 위험한 차질이 생길 정도도 아니예요. 어느 정도 밸런스가 갖춰져 있다고나 할까요.

제145K기지가 그럼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격리하냐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없네요.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기 전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 기지가 안전 및 유클리드 등급 격리기지라는 점이죠. 격리 등급이 적어도 아주 높지는 않다는 점은… 어떻게 느끼실지는 모르지만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첫 번째는 인간형 개체입니다. 초능력자나, 초상인간이나, 메타인간. 뭐 그런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는 인간형 개체들 말이죠. 여러분도 이미 다른 곳에서 한둘 만나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145K기지가 한국 유일의 인간형 격리기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규모로 치면 제21K기지나 제19K구역이 더 크겠죠. 하지만 뭐, 일단 여러 명의 인간형이 격리되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이런 격리 내력이 커지다 보니, 기지의 윤리적 분위기나 이런 것에 변화나— 아, 죄송해요. 좀 얘기가 비공식적인 데로 샜네요.

그럼 다음은… 유령입니다. 공식적으로 심령독립체나, 정보 독립체나, 사후 독립체나 그렇게 명명된 걸 묶어서 부르던 말이 유령이죠. 기본적으로 죽은 것에서 나와서, 비물질적이고, 일반적인 재래무기가 통하지 않으며, 불행히도 일반적인 격리실도 통하지 않는 것 말이예요. 제145K기지는 그 크기에 비해서 이런 유령이라 불리는 변칙개체 꽤 다수를 격리하고 있어요.

음, 왜 그렇냐는 질문에 대답해 드리기는 애매해요. 일단 전라북도 땅에서 유령이 대거 나오는 지리학적 특성 같은 건 아니고…… 이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다음은 시신입니다. 당황하셨나요? 사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예요. 인간형은 평생 격리 하에 있다가 죽죠. 그리고 음, 여러분은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변칙적 이유로 사망하는 인원들도 있고요. 여기서 4층 더 내려가시면 종합시신보관소가 있는데, 여기서 변칙적 시신을 격리하고 비변칙적 시신을 보관합니다. 이 경우엔 방금 말한 두 지적 존재와는 경우가 다르겠네요. 아무래도 물건 취급이니까요.

앗, 분위기가 영 꺼림찍해졌네요. 그럼 좀 더 건전하고 밝은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제145K기지가 보기에는 이래도 인원 복지가 좋다는 점은 알고 계셨나요? 네. 이 기지 안에 제법 편의시설이 많답니다. 매점이나, 카페테리아나, 그런 것 말이죠. 어… 물론 웬만한 기지에는 다 있다곤 하지만요. 그리고 기지 옆에 관상용 연못이 있는데… 아, 이것도 그리 요즘은 인기 있는 편의시설이 아닌 모양이네요. 흠.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이 기지가 아주 퇴폐적이거나, 비리가 난무하거나, 아니면 무슨 더 심한 정치권력의 다툼에 휘말려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살기 좋은 곳이라고들 합니다. 통계도 있어요. 정말.



몇십 분 후 오리엔테이션이 끝난다. 당신은… 조금 졸았던 것 같다. 정신이 몽롱하다. 무심코 코를 골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곧 신호가 울리고, 당신은 일어선다. 문이 열린다.

이 문을 열면 들었던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기지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미소짓고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걸어나간다.

그리고 삶이 들이닥칠 것이다.








[ 제145K기지 협력사 허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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