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자 (2)

"말도 안 되는 짓이야." 카잔의 계획에 풀그림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식으로 변칙 개체를 이용하면서 살아나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의 O5 평의회와는 무슨 차이가 있고?"

"지금 그 식칼은 변칙 개체 아니야?" 카잔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재단은 사라지고 있잖아요." 즈소도 거들었다. "더 이상 따라야 할 규칙도 없다니까요. 이미 SCP-008SCP-016 전염 때문에 민간인들은 다 죽어서, 민간인 피해도 최소화될 거에요."

"그렇다 하더라도 변칙 개체를 이용하는 게 유익했던 적은 별로 없어. 요주의 단체들을 보라고."

"아, 제발. 여기서 말싸움할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 합시다. 일단 그 식칼을 플랜 A로 하고, 이 플랜이 안 먹히면 그때 내 계획을 실행하는 걸로 하죠. 플랜 B로. 큐빅 박사가 미리 가 있다가 우리가 20분 내에 격리실로 합류 못 하면 실행하는 걸로 하고. 그냥 투표합시다. 찬성하는 사람?"

즈소와 카잔이 손을 들었다. 큐빅도 쭈뼛거리다가 손을 들었다. 풀그림과 눈이 마주치자 큐빅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일단 살아야 뭐든 하죠."


네탈시포 사제가 천장의 구멍을 통해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그러나 부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중앙의 기둥에 묶어놓았던 카잔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피웅덩이와, 질질 끌린 듯한 핏자국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네탈 사제는 핏자국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섰다.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돌아 복잡하게 얽힌 파편들 사이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서는 찰나, 등 뒤에서 즈소가 네탈의 목에 칼을 겨누고 섰다.

사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멍청한 짓을 하다니."

"제발로 함정으로 걸어온 게 멍청한 짓이겠죠. 끼고 있는 반지부터 빼서 이리 주시죠."

사제가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서 바닥에 떨궜다. 카잔이 즈소 뒤에서 슬쩍 걸어나와 반지를 집어들었다. 카잔이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피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사기꾼이 맞네. SCP-399군. 내가 알기로 5m 내 있는 모든 사물을 원자 수준에서 조작할 수 있는 반지야."

풀그림은 모퉁이에 서서 부하들이 오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있었다. "빨리 계획대로 하라고. 그러다 소리라도 지르면 끝장이니까."

"그거야 간단하죠." 즈소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세웠다. "쉿. 당신은 이제 여기서 도망칠 수 없어. 소리도 지를 수 없고."

카잔이 반지를 집고 있지 않은 오른손으로 사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사제가 휘청거렸고, 카잔이 다시 연이어 사제를 가격했다. "아, 이 망할 놈. 아까 그 쇠사슬은 정말 악취미였어."

풀그림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와 사제의 왼팔을 붙잡았다. 카잔이 오른팔을 마저 붙잡고, 즈소는 한 걸음 떨어져서 등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셋이 다시 모퉁이를 걸어나와 아이언 메이든 앞에 섰다. 풀그림이 빗장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아무도 아닌 자가 쇠꼬챙이에 온몸이 관통당한 채로 안에 들어 있었다. "사제 당신이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걸로 우리 계획은 끝이야.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카잔이 이죽거렸다. "불장난을 치다간 다치는 법이지. 이런 조잡한 SCP 개체로 속임수를 쓰다가 이 꼴이 난거라고 생각해."

"고작 그게 너희 함정과 계획이냐. 참 한심하군."

사제가 양 손을 머리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사제가 입을 열지 않았음에도, 커다란 외침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머릿속을 뚫고 지나갔다. 귀를 통하지는 않았으나 머리로 곧장 들어오는,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즈소의 손에서 SCP-668이 떨어졌다. 네 명 모두 사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제대로 들 수 없을 정도의 압력에 그들 모두 숨을 헐떡거리며 머리를 바닥에 댔다. 사제가 떨어진 식칼을 집었다. "반지는 그저 편해서 쓴 것뿐이지. 내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한 거냐?"

사제가 식칼을 들어올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반대편으로 휙 던져버렸다. "궁금한 게 많았는데 잘 됐군. 물어볼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즈소가 간신히 머리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 고개를 돌렸다. 카잔이 아까 사제에게서 가져왔던 SCP-399를 다급하게 손에 끼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 즈소는 카잔이 처음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카잔은 애초에 그들이 어찌 되건 관심이 없었고, 사제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들에게 말한 조잡한 계획보다 훨씬 전에, 어쩌면 이 사제가 기지를 공격하기 전부터 세워놓은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을 스친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카잔이 반지를 왼손 검지에 끼고 아이언 메이든을 향해 들어올렸다.

그 순간,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SCP-399가 착용자의 의지에 반응해 주변의 모든 동력을 빨아들였다. 아무도 아닌 자가 들어있던 아이언 메이든이 열리고 지하의 온도는 온몸이 떨릴 정도로 낮게 떨어져 내렸다. 그 안에서 가사 상태에 빠져있던 아무도 아닌 자가 눈을 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고 그 서슬에 아이언 메이든이 흔들렸다. 눈부신 빛이 반지에서 나와 빛나며 온 사방을 덮었고, 카잔은 한순간 황홀경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빛이 사라지자, 더 이상 아무도 아닌 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잔의 손에 끼워져 있던 SCP-399가 불에 탄 검불처럼 조각나 바스라졌다. 카잔이 약간 멍한 표정으로 일어났고, 자신의 몸을 살피다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래, 그래! 그 관리자 말이 맞았어!"

"뭐가 바뀐 거지?" 그렇게 물어보는 네탈시포의 뒤로 사제의 부하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카잔이 깔깔대며 SCP-762 바닥에 놓여있는 중절모를 집어들어 머리에 썼다. 풀그림과 즈소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 반지를 제대로 이용한 거지. 이제 내가 아무도 아닌 자가 된 거라고."

"그래, 그 정도는 대충 추측이 가는데. 그래서 뭐가 바뀐 거냐고. 아무도 아닌 자가 되었다고 쳐도, 어쨌든 여기서 도망칠 수 없는 건 똑같을 텐데?"

"오, 그건 말이지. 이 기지에 케테르급 개체가 딱 하나 있거든. 정식 일련번호를 부여받은 건 아니지만. 어디 보자, 슬슬 격리 실패가 일어날 시간이 됐는데…"

격리 실패를 알리는 경보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큐빅 박사가 격리실에서 뛰쳐나와 반대쪽으로 뛰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사제의 부하들이 박사를 붙잡으려 하자, 큐빅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계속 뛰었다. "야, 이 멍청이들아! 살고 싶으면 빨리 반대쪽으로 뛰어!"

격리실 안에서는 거무틱틱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부하들이 큐빅을 무시하고 조심스럽게 무기를 들고 격리실 쪽으로 다가갔다. 한 명이 쇠막대기로 문을 열고 안쪽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격리실 안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연기를 걷어내며 안으로 들어서는 찰나,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사제의 부하들은 화들짝 놀라 격리실을 둘러보았다. 검은 연기 가운데에서 붉게 빛나는 수십 개의 눈들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 한 명이 물었다. "그 안에 뭐 있어? 사제님 모셔와야 할 정도야?" 대답 대신 연기 밖으로 사람 하나가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피부는 다 주름지고 쪼그라들어 뼈만 간신히 덮고 있는 수준이었고, 백발에 수백 년은 나이 먹은 듯 늙은 모습이었다. 그 자가 한 발짝을 내딛고 그 자리에 무너져 먼지로 화했다. 연기가 점점 복도를 에워싸기 시작하자, 부하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큐빅이 내달린 쪽으로 도망쳤다. 연기가 곧 복도를 뒤덮었고 기지 전체로 스물스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제5기지는 대혼란에 빠졌다. 검은 연기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순식간에 보기 엄혹할 정도로 늙어가더니 썩은 뼈로 돌아가 버렸다. 기지의 콘크리트와 강철은 녹슬고 부서져 무너졌다. 전기와 동력은 끊겼고 변칙 개체들조차 부패를 피하지는 못했다. 연기는 무언가를 집어삼킬수록 점점 더 빨리 퍼졌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기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 있던 지하의 천장도 흔들거리고 삐걱거렸다. 벽들도 금이 가고 으지직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제의 부하들은 즈소와 풀그림, 카잔을 모두 붙잡고 있었지만, 점점 표정은 굳어가고 있었다. 반대로 카잔은 씩 웃었다. "이제 이동 금지 장치도 무너졌네. 잘 있으라고 다들."

카잔의 모습이 지우개로 지운 듯 싹 사라졌다. 사제의 부하들은 그래도 빠르게 움직였고, 사제를 버리고 도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상에서 상황을 파악한 부하들이 신속히 내려와 길을 만들고 퇴로를 확보했다. "사제님, 이 곳은 버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서 투쟁을 계속하는 게 나을 듯 합니다." 사제가 부하들과 함께 움직였다. 즈소와 풀그림도 같이 끌려갔다.


GOC 본부 통제실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직원들이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탈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려 전화를 걸어대고 요원들을 보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또 벌써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나, 각 국가 및 단체들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대응하는 이들도 있었다. 알 피네 차장은 자리에 멍하니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소란 속에서 뜬금없이 들어온 팩스 한 장에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은.

초위협 조사

특별관찰관: UD-14

개요: 중국 저장 성에서 발견된 알 수 없는 형태의 타입 블루 개체

초위협 증거: 본 특별관찰관은 그간 미합중국 공군 및 UN-GOC 태평양 본부의 지원을 받아 중국 지역을 정찰해 왔다. 특히 최근 장시 성 및 저장 성 일대에서 활동하는 네탈시포 사제 무리(현재 약 5,000 ~ 8,000명 내외로 추산)의 행동을 주시해 왔는데, 중국 내 광범위한 무정부 상태와 바이러스 전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끄는 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 내 고립된 SCP 재단·GOC·경찰·인민해방군 시설을 공격하면서 무장과 장비를 보강하고 있다.

어제, 기적학적 탐지가 가능하도록 개조된 RC-135 정찰기 한 대가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공중급유기(1/KC-135)와 함께 이륙하였다. 해당 정찰기는 기계획된 동중국해 및 중국 본토 정찰임무를 위해 이동하였다가 이들 무리를 SCP 재단 제5기지(저장 성 소재)에서 포착하였으며, 이후 급격한 EVE 급등을 탐지하였다. 이후 해당 기지에서 다량의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촬영하였는데, 처음에는 대규모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약 10시간이 경과한 현재까지, 해당 기지에서는 계속해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연기에 닿은 모든 객체는 급격히 부패하고 파괴되며, 생명체는 14초 이내에 사망한다. 그 능력의 정확한 양상은 지상 정찰이 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연기 자체에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연기는 단순 위장용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연기는 계속해서 번지고 있으며, 현재 타이저우 시(台州市) 전역을 뒤덮고 있다. 이 연기가 SCP 재단 제5기지 내에서 처음 발현한 것을 볼 때, 재단에서 격리되어 있다가 네탈시포 사제 무리의 공격으로 풀려난 것으로 보인다.

제안된 대응책/요청: 해당 개체가 바다를 건널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이나, 지금 속도가 유지되는 경우 17일 내로 중국 전역을 뒤덮을 것으로 보이고, 35일 내로 서유럽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대응기준 5(즉시 대응)를 권장한다. 즉각적인 청산이 필요해 보인다.

타입 블루로 추정되나 그 능력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므로, 가능하다면 SCP 재단의 기록을 확보하여 정보를 파악하는 것을 권장한다. SCP 재단이 어떻게 지금까지 격리를 유지했는지 방법을 알아내면 유용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유효한 공격 수단을 알기 위해 먼저 고고도 무인기 공격을 시도하는 것을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 미합중국 공군과의 협조가 필요하다.

UN-GOC 태평양 본부 및 GOC 본부에서 추가 조치가 있기 전까지, 본 특별관찰관은 가용 가능한 정찰자원을 해당 타입 블루 초위협의 정찰에 투입하고, 기타 정찰을 요하는 사항(네탈시포 사제 세력 양상, 중국 내 생물피해 상황 등)의 우선순위는 낮추도록 조치할 것이다.


사제 무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동 수단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경찰차, 구급차, 트럭 등등의 차량은 물론이고, 오토바이와 경비행기까지 있었다. 네탈시포 사제는 그 무질서한 무리 가운데에서 하필이면 장례식에 쓰는 운구용 리무진의 조수석으로 올라탔고, 즈소와 풀그림을 붙잡고 있는 부하들도 우르르 따라갔다. 그들은 사이좋게 리무진 뒤쪽의 관이 들어가는 부분에 낑겨앉았다. 행렬의 이동 속도는 빨랐다. '마치 군대가 이동하는 것 같네.' 즈소가 여섯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이동한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랬다. 이들은 부서진 신 - 다섯째주의 - 사르킥 - 기타 민간인을 조잡하게 섞어놓은 것 치고는 지나치게 규율이 잘 잡혀 있었다. 특히나 앞의 세 잔당의 비율은 극히 적다는 것을 고려하면. 차라리 이들은 네탈시포라는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복종하는 개미 무리에 가까웠다.

네탈시포 사제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저 연기는 뭐인지, 카잔이 진짜로 아무도 아닌 자가 된 건지, 너희는 왜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있었는지, 그 지하 시설은 뭐하는 건지 등등. 즈소와 풀그림은 그림 보듯이 사제를 볼 뿐이었고, 입을 계속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사제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너희를 아직 살려두는 건 순전히 내 호기심 때문이라는 걸 좀 더 알았으면 좋겠군. 여기서 내 참모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섯째주의 아니면 사르킥 출신들인데, 다들 재단에 별로 호의적이지는 않았거든. 봤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기지에 있던 소위 연구원이라는 먹물들은 죄다 목이 매달렸다고. 지금 난 이 기지에서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고, 수많은 아까운 신도들을 잃었단 말이지. 생각해보니 그 반지도 궁금해지는군. 내가 처음으로 너희 재단 기지를 공격했을 때, 알 수 없는 작자가 전화해서는 그 반지를 쓰라고 했지. 나한테 유용할 거라고."

풀그림이 한 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누가 전화를 했다고요? 혹시 자기가 누구라고 하던가요?"

"에… 관리자The Administrator라고 하던데. 영어를 섞어 쓰더군. 내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했나 보지? 지금까지 조개처럼 입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말을 한 거 보면. 좋아.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하는 건 나지 너희들이 아니야. 그럼 어디 보자, 이 '관리자'라는 자는 너희 재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자인데? 그 반지는 또 뭐지?"

그때 차량의 행렬이 멈추고 여자 한 명이 조수석으로 다가왔다. 네탈 사제가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사제님. 많은 차량이 기름이 부족합니다. 그 연기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왔기에, 충분히 피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항저우에 있는 무리와 합류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이것으로 우리 별동대의 활동은 종료하고, 항저우의 본산과 합류한다. 감염자들이 올 수 있으니 경계를 잘 하고,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하자."

부하들이 다시 풀그림과 즈소를 잡아끌고 운구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텅 빈 공동주택 단지였다. 두 명은 운구차에서 십오 미터 정도 떨어진 주택 뒤편의 대형 가스탱크에 밧줄로 묶였다. "저기요…우리도 저녁 좀 주면 안 될까요?" 즈소가 처량하게 묻자, 부하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어디선가 빨래통처럼 생긴 붉은 통을 가져왔다. 한 명이 통을 들어 내용물을 풀그림과 즈소에게 쏟아부었다. 생선 비린내가 심하게 나는 물이었다. 둘은 물을 뒤집어쓰고 푸푸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그들은 깔깔거리며 가버렸다.

몇 시간이 지나고, 즈소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풀그림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러는 걸 봐서, 만약 우리가 그 개체를 풀어놓은 걸 알게 되면 당장 죽어나가겠군."

"뭐,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오겠죠."

둘이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큐빅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두리번거리며 이 둘을 찾고 있었다. 그는 연구원 옷을 버리고 해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사제 무리에 끼어들어 합류한 뒤였다. 숨어드는 건 생각보다는 쉬웠다. 원래 이들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무리였고, 특히나 제5기지에서 혼란스럽게 도망치는 와중에는 아무렇게나 끼어드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무리가 생각보다 체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여지없이 면담실로 들어가 '보조 성자'라는 자와 면담을 해야 했다. 내키는 대로 가서 즈소와 풀그림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원래 직업은 뭐죠?"

"시스템 아키텍트요."

"음…" 보조 성자는 큐빅이 아무렇게나 던진 말에 심히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건축이나 공학 쪽인가 보네요. 원래 종교는요?"

"FSM인데요."

보조 성자는 다시 한 번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소수종교인가 보네요… 걱정할 건 없습니다. 우리는 종교 혼합주의를 지향하니까요. 우선 0등급 자격을 드리겠습니다."

"그게 뭐죠?"

"0등급을 받으면 우리 공동체에서 보금자리를 구할 수 있고, 원래 직업에 맞는 직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네탈시포 사제님의 은총이 실린 물을 하루에 5ml씩 드립니다. 여기에다 하루에 한 번씩 미사에 나오면 바이러스 감염은 걱정 없으실 겁니다. 새로운 직업은 1주일 내에 드릴테니, 일단은 사회복구청에 가 계세요. 나가서 100미터만 직진하고 왼쪽으로 도시면 바로 나옵니다." 보조 성자가 가운데에 빨갛게 '0'이 쓰여진 조잡한 카드 목걸이 하나와 물병, 빵을 하나 내밀었다. "그럼 등급을 올리면 뭔가 좋은 건가요?"

보조 성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당연하죠! 공적을 쌓아서 등급을 올리면 사제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죠. 진성 종교를 옛날에 믿으시던 분들은 처음에 이해를 못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생활하시다 보면 알게 될 거에요. 아 참. 이곳에는 규칙이 딱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자기 이상의 등급을 가진 자에게는 복종할 것. 두 번째, 출입금지 구역에는 들어가지 말 것. 카드 뒷면에 출입금지 구역이 어디인지는 설명이 나와 있답니다."

면담이 끝나고 큐빅은 밖으로 나왔다. 보조 성자의 말대로 앞으로 쭉 가고 있었으나, 도로가 완전히 막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공사용 바리케이드와, 나무 막대기와 철조망으로 만든 조잡한 방책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큐빅은 멈칫했다. 돌아서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남녀 한 쌍이 맨발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 뒤에는 손에 둔기를 든 사람 십수명이 쫓아오고 있었다. 도망자들은 살이 찢겨 가면서도 철조망을 넘어왔다. 먼저 넘어온 여자가 큐빅에게 소리쳤다. "새로 들어온 0등급이지? 도망쳐!"

큐빅은 일단 같이 뛰었다. 그때 뒤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보니, 추적자들이 철조망을 넘고 있던 남자를 붙잡아 무언가로 찌르며 끌어내리고 있었다. "저게 뭐에요? 왜 저러는 거냐고요?"

여자가 왼쪽으로 돌아 뛰었다. 큐빅도 뒤따랐다. "사르킥 잔당들이야. 부유하는 얄다바오트. 면담 지역을 포위하고 있다가 새로 들어오는 0등급들을 잡아 죽이는 미친 놈들이지."

"네? 여기서는 다 네탈시포 사제를 섬기는 것 아니에요?"

"하!" 여자가 코웃음쳤다. "규칙을 다시 읽어보라고. 자기 이상의 등급을 가진 자에게는 복종할 것. 거꾸로 말하면 최소 2등급이나 3등급은 되는 저놈들이 너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해도 저항할 수 없다는 뜻이지. 네탈시포 그자는 이런 일에는 신경도 안 써, 자기한테 도전하지 않는 한. 다른 파벌들이나 고위급 사제들도 저 미친 놈들은 잘 안 건드리고. 저놈들도 바이러스는 무서우니까 네탈시포 사제한테 복종하고."

"그럼 여기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은 건데요?"

"세력이 큰 부서에 배정받는 사람들은 그 파벌에서 호위해 가지. 부서진 신이나 사르킥, 네탈시포 직할 조직이나 인민해방군 같은 놈들. 내가 있던 부서는 어제 재단 기지에서 거의 다 죽어서 사냥당했어. 넌 어디로 배정받았는데?"

"어…" 큐빅이 황급히 기억을 더듬었다. "사회복구청이요."

"그래?" 여자가 딱 멈춰섰다. "좋아. 사회복구청이면 네탈시포 직할 조직이야. 마중나오지 않은 건 안 좋은 징조지만, 거기까지 가면 사르킥도 못 건드려. 오늘은 어디 모여 있는지 들었지? 앞장서. 살고 싶으면."

그러나 그들 앞뒤로 무표정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들을 에워쌌다. 큐빅의 눈에 벌거벗은 인간과 비슷한 형체가 들어왔다. 머리카락은 없었고, 하얀 페인트를 뒤집어 쓴 것처럼 온몸이 하얗게 빛났다. 눈구멍은 비어 있었고, 팔다리는 이상하게 길었다. 큐빅은 사진으로만 봤던 SCP-2480-1과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형체가 둘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키라아크Kiraak…"

추적자들이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그러나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그들은 둘로 갈라져 새로 등장한 형체에게 길을 내주었다. 손에 자그마한 종을 들고 울리며 온 사람은 흰 예복을 입고 있었고, 사르킥 잔당들을 경멸을 담아 쏘아보았다. "썩 물러나라." 그들은 달갑지는 않은 듯 했으나, 거역할 수는 없어 보였다. 새하얀 형체가 몸을 살짝 숙이고 사제에게 다가갔다. "네탈시포 사제가 우리의 권력에의 의지를 용납했으니, 당신이 그의 명을 뒤집을 수는 없다. 당신 아래에 있지 않은 자, 저 여자는 우리에게 넘겨라. 오늘 저녁부터 우리가 사냥했던 자이니."

그 쉿쉿거리는 목소리에 사제가 인상을 썼다. "좋다. 가거라. 데리고 물러나라. 오늘 밤 더 이상의 소란을 피우지 마라. 죽은 자들이나 애도해라."

"안 돼!" 여자가 울부짖으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사르킥 잔당들이 훨씬 빨랐다. 그들은 여자를 빙 둘러쌌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여자의 목에 줄을 걸어 등에 짊어진 뒤에, 사르킥 잔당들은 재빨리 사라졌다. 사제가 충격에 빠져 서있는 큐빅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사회복구청에 있는 토마스라고 합니다. 어제 피해가 커서 마중을 못 나갔군요. 저것들이 무슨 해코지를 할까봐 내가 직접 나왔는데, 좋은 생각이었던 것 같네요. 같이 갑시다."

사제가 종을 계속 울리며 앞장서 걸었다. 큐빅은 따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사제가 뒤를 돌아보고, 한숨을 쉬며 큐빅을 잡아끌었다. "당신은 박애주의자군요. 나도 압니다. 저 사르킥 잔당들은 불결한 놈들이죠. 그러나 아직 네탈시포 사제님의 명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명이 있기 전까지는, 저자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큐빅은 기절해 쓰러졌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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