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탕비실 속에서

"응? 어느 부서 탕비실이 가장 떠들썩하냐고? 음, 어려운 질문인데."

백연서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 요즘 기지 부서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졌다. 아무래도 지난번 신입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준 탓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기지에 전입한 싱싱한 신입에게 이 기지에 악마학과와 변칙개체 폐기물을 씹어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오리엔테이션 계획임이 분명했다. 그 음해의 중심에는 법의학과도 있었다.

"네 선배님! 지난번 오리엔테이션에서 여긴 독특한 부서가 엄청 많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궁금했어요."

똘망똘망한 눈, 아직 별로 쓰지 않은 실험기록부, 딱 봐도 신입임이 분명했다. 백연서도 그리 오래 일했다 자부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백연서가 가장 선배라고 볼 수 있었다.

"으음. 내 생각에는 말이지, 가장 북적거리는 탕비실은 법의학과 탕비실이라고 생각해."

이야기를 들은 신입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렴, 법의학과에 대해서는 시체를 찢고 냉동실에 넣는 음습한 사람들로 알고 있겠지. 하지만 신입의 기대를 배신하기에 백연서의 자신감은 녹록치 않았다.

"오? 법의학과가요? 왜 그런가요? 아, 맞다, 선배 법의학과라고 하셨죠?"

"맞아. 법의학과는 대부분이 생각하는데로 시체를 해부하고 분류하는 곳이긴 하지만… 탕비실은 달라."

백연서는 자신이 법의학과에 처음 들어왔던 때를 떠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중충한 분위기를 몸에 달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나 해부실과 시체보관소에는 언제나 적막만이 감돌았다. 사람들에게 피해주길 싫어하는 그녀로서는 어떤 사람이던 우중충한 법의학과에서 일하다 보면 마치 조난된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사건은 2019년 대규모 격리 파기 당시 터졌다. 존재학적 무언가가 기지를 탈출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변칙개체도 마찬가지었다. 기지에 격리되었던 인간형 개체 대부분이 사망 또는 그에 준하는 부상을 입었다. 백연서는 책의 정체성을 음식으로 착각하고 목에 쑤셔넣다 사망한 한 개체를 기억한다.

법의학과의 업무는 그야말로 폭증했다 볼 수 있었다. 수많은 도구가 변칙개체와 인원들의 시체를 뜯고, 원인을 분석하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기지 내 장례 절차가 실시될 정도였다. 어느 한 번은, 끊임없이 물을 뿜어내는 인간형 개체의 시신을 해부하려 선배의 명령에 따라 물양동이를 이고 다녔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특히 엄청난 일이 끝나고 난 후의 탕비실은 말이지, 사람으로 가득 차있어. 분위기도 아늑하고. 똑같이 조용하긴 한데, 좀 편한 조용함이 느껴져."

"오, 신기하네요. 그러면 왜 북적북적하다고 하신건가요?"

"사람들이 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거든. 말은 하지 않지만 뭘 해왔는지 서로 눈으로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아. 그래서 북적북적하다고 한거야."

맞는 말이다. 백연서는 사건 수습 이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법의학과 탕비실에 들어가자 주해겸 과장님이 그 퀭한 눈으로 아메리카노 투고to-go백을 들고 오던 광경이 눈앞에 생생했다. 법의학과 인원들은 서로 수고했다 한 마디 정도만 돌렸지만, 딱히 탕비실을 떠나지도 않았다. 그냥 그 곳에 멍하니 서있었다.

아메리카노가 다 떨어지자 백연서는 자신이 먼저 버리고 오겠다고 했지만, 주해겸은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조용히 박스를 들고 나갔다. 싸움은 아니었다. 백연서는 본능적으로 그걸 알고 있었다.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과장님의 안쪽에 들어있는 것은 배려라는걸 알 것만 같았다.

"신기하네요. 저도 사실 법의학과 신입이거든요. 아직 서류 업무만 처리하고 있지만 다음주에 처음으로 기지 내 부검 보조를 하게 되는데요…"

"아, 그렇구나?"

"너무 긴장되서요. 부검 끝나고 갈만한 장소를 찾던 중이었어요."

맞아, 나도 똑같았던 시절이 있었지. 백연서는 생각했다. 2021년 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쉴 곳을 찾아 관상용 연못을 돌아다니던 광경이 눈 앞에 재생됐다. 물론, 지금도 경력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애매한 위치지만.

"그런데, 그냥 법의학과 탕비실에 있는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래. 우리 탕비실이 또 커피머신은 좋아."

백연서는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네? 부장님 이게 무슨.."

탕비실 앞에 붙은 바람개비 모양 로고가 이 탕비실이 지속가능격리개발과의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탕비실 안쪽에는 당황한 신입 세 명(애초에 신입이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과 서준석 박사, 그리고 임찬미 부서장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세 죄인의 머리를 물고 있는 루시퍼와도 같았다.

"음, 있잖아. 지난번에 AO-18291의 부산물로 기지 내 각성제를 대체하는 제안을 했었거든."

"네."

"그런데 그게 기각되더라고. 아니, 개미도 진딧물 분비물 먹잖아! 그러면 사람도 변칙개체 분비물 정도야-"

"부장님, 이 자리에서 거대 곤충 꽁무늬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저와 부장님밖에 없습니다."

공포와 미지에 휩쓸려 덜덜 떨고 있는 세 직원을 제치고, 임찬미와 서준석 박사는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신입들은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번 급양은 어떤 식으로 바뀔지, 그리고 이 미친 부서장이 또 어떤 부서 내 실험을 펼칠지에 대하여 걱정할 뿐이었다.

"크흠, 그래서 말이야. 부서 탕비실에 커피 대신 분비물을 잠시 놔둬보려고. 우리가 먹으면 상부도 얄짤없을걸?"

이 한 마디에 모든 신입이 경직했다. 앞으로 신성한 커피가 아닌 곤충 부산물을 잠시 먹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들을 실성의 상태에 이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꽁지머리를 한 연구원 한 명이 덜덜 떨며 목소리를 냈다.

"저어… 부, 부장님. 만약 커피가 먹고 싶을 때에는 어떡하나요..?"

"아? 여기 분비물을 물과 설탕이랑 1대 1대 2 비율로 섞어서 마시면 되는거야. 메로나 소주 알지? 약간 그런 느낌? 흐흐."

"커피머신은 저희 창고에 넣어놨을겁니다. 그냥 분비물과 커피 둘 다 탕비실에 두는걸로 합시다." 서준석 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 그런가?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나만 마실게!"

임찬미의 시끄러운 웃음 가운데, 세 인원과 한 박사는 그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이 지속가능격리개발과 탕비실이 가장 시끄러운 곳이 아니길 빌 뿐이었다. 세 신입들은 자원관리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하며,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기지에서 가장 시끄러운 탕비실은 분명 여기가 아닐거야. 여기보다 더한 곳이 분명 있을거야.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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