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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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karoff 2021/7/13 (화) 21:29:21 #72416532


tunnel

tunnel

언제쯤이었을까, 이제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 옛날, 일본에서 대학생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심령스폿에 관해 취미가 있었고, 같은 취미를 가진 동료들과 유령이 나왔다거나 카미카쿠시가 있었다거나 하는 그런 스폿에 가서 시원하게 놀거나 레포트를 쓰거나 이것저것 취미의 범위에서 즐겼다.

대개의 경우 술안주거리도 안 되는 실없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끔 “”를 뽑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 날, 나는 카나가와현 아츠기시의 한 터널을 찾았다. 그곳은 폐야영장으로 통하는 불빛 하나 없는 터널로, 옛날에 사고가 일어났다던가, 근처 오두막집에서 여자가 납치살해당했다던가, 그럴싸한 소문이 여럿 있는 장소였다.

물론, 실제 심령스폿은 그 터널 너머에 있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2000년대 초에 폐업한 야영장이었던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던가, 카미카쿠시가 있었다던가, 모노노케가 나온다던가 하는, 3단계 짜임새의 만만찮은 스폿이었다. 당시에는 오바케 터널에서 분위기를 내고 즐긴 뒤에, 모노노케 보려 가자고 차 두 대, 사람 열 명이 왁자지껄하게 분위기를 즐기러 갈 작정이었다.

그래서 무사의 뼈도 없었고, 성수도, 총도, 축성한 십자가도 없었다. 허리에 칼 대신 회중전등을 단 모습으로 부주의하게 나갔다. 그리고 봉변을 당했다.

karkaroff 2021/7/13 (화) 21:32:26 #72416532


시간은 대략 18시부터 19시 정도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인근 도로에 차를 세우고,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길을 모기에게 뜯기면서 나아갔다. 원래 하이킹 코스 한복판에 있는 보행자용 터널이라, 밤에 거기를 걷는 것은 상정되어 있지 않다. 불빛도 없는 새까만 어둠에 잠긴 터널은 마치 별세계로 이어지는 문인지 뭔지 같은 이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서, 북적거리면서 함께 온 여대생에게 겁을 주기에 충분한 무대장치였다.

자기들이 떠드는 목소리와 은은히 들려오는 벌레 날갯짓 소리 정도밖에 들려오지 않는 동떨어진 공간에서, 나는 동료들과 터널에 들어갔다가…… 몇 분만에 속이 안 좋아져서 바로 차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지인이기도 했던 오컬트 동료(드물게도 그들은 영국인 콤비였다) 두 사람을 따라 터덜터덜 발길을 돌렸다. 그대로 터널 너머 야영장까지 향한 것은 일곱 명이었다. 나는 청춘이 아닌 건가, 젠장, 오기 전에 너무 마셨나, 그런 원망을 흘리면서 차로 돌아갔고, 생수를 마시며 조수석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가까운 데 세워져 있는 RV에서 무언가 또 마시는 듯, 때때로 빛나는 회중전등의 불빛에 건배하는 그림자가 비쳐와서 더욱 기분이 꼴받았다.

karkaroff 2021/7/13 (화) 21:47:48 #72416532


사태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잠시 후였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꾸벅꾸벅” 하면서 졸음과 싸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귓결에 잡음이 들렸다. 차 시동이 걸려있지 않았는데, 카스테레오에서 사ー악 하는 백색잡음이 작게 들리던 것이 기억난다.

이야, 이거 아다리를 뽑았나? 당시에는 오컬트에 심취해 있었기 떄문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천천히 얼굴을 들어 보니, 차 주위에 뭔가가 있었다.

karkaroff 2021/7/13 (화) 21:55:58 #72416532


싸악 핏기가 가셨다. 근처의 가로등 비추는 곳에 서 있던 것은 검은, 아니…… 정말 검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확실히 모습이 인식할 수 없는 그림자인지 뭔지인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보이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인지 뭐 그런 것들이 차 주위를 에워싸듯 하여 어느 것이고 어느 것이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그것들이 무엇인지 이해했다면 나는 지금쯤 여기서 맥주를 한 손에 쥐고 썰을 푸는 일 따위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류의,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나는 일단 자는 척 했다. 내가 인식했다고 저쪽이 깨닫게 되는 것이 가장 난감한 일이다.

경험상,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쫓을 수 있는 무기도, 도움을 청할 방법도,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기척을 들키지 않고, 저것들이 지나갈 때까지 견디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시야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찰나, 보일 리 없는 백미러 너머로, 차 뒷좌석에 누군가 있는 것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식하자마자 차 뒤에서 끼익 하고 소리가 났다.

karkaroff 2021/7/13 (화) 22:05:05 #72416532


나는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하고 그것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현실은 비정했다.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이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다가오는 것은 알았다. 완만한 움직임으로, 그야말로 애태우는 모양으로 내 뒤에 육박해오고 있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나는 참을 수밖에 없어서, 그저 눈을 감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척 참았다. 백색잡음이 오래도록 귀에 남아, 잔향 때문에 나 자신도 떨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참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돌연 반전했다. 급한 소리가 들리고,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광기의 외침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깜짝 놀랄 만큼 유토피아!」』

다른 한 차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그림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렇게 외쳤다.

karkaroff 2021/7/13 (화) 22:10:01 #72416532


나는 그만 얼굴을 들고 말았다. 얼굴을 들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공포의 광경을 목격했다.

옷도, 속옷도, 구두도, 양말도, 모든 것을 깨벗은 이인조 영국인들이, 모든 것이 빠져나간 광란의 형상으로, 엉덩이를 팡팡 치면서 외쳐대고 있었다.

”깜짝 놀랄 만큼 유토피아!” ”깜짝 놀랄 만큼 유토피아!”

그것은 두려운 광경이었다. 전라의 이인조가 펄떡펄떡 뛰어다니며 차 주위를 미쳐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 어떤 심령현상보다도 인간이 무섭다고 확신한 순간이었다.

나머지는 공포에 전신이 얼어붙은 채로 몇 분 동안 그 지옥의 광경을 계속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이 들었더니, 나는 차에서 뛰쳐나가 그들의 따귀를 마구 올려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마구 흔들었다. 그 때는 심령현상의 ㅅ자도 잊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두들겼더니, 이인조는 마치 씌었던 귀신이 떨어져 나간 것마냥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에는, 기묘한 그림자도, 뒤에서 다가오눈 무언가도, 카 스테레오에서 들려오는 잡음도 다 사라지고, 그저 정적만 돌아와 있었다.

그들은 부랴부랴 옷을 껴입고, 나를 RV로 맞아들였다. 나는 다른 의미에서 공포를 숨길 수 없었지만 그들과 RV에 타고 다른 동료들이 올 때까지 버드와이저와 육포로 시간을 잊기로 했다.

karkaroff 2021/7/13 (화) 22:22:22 #72416532


결국 그로부터 십 분도 되기 전에, 야영장을 보러 갔던 놈들도 돌아오고, 우리는 부랴부랴 산중의 스폿에서 달아나듯 떠났다.

폐야영장에 갔던 놈들은 묘한 시선을 느꼈다는 둥, 공중변소 뒤에서 벌레 무리를 보았다는 둥, 이것저것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럴듯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아, 적당히 분위기를 즐기고 돌아온 것이었다. (정확히는 커플이 하나 생겼다. 망했으면 좋겠어)

나는 두 영국인과 본 것을 떨면서 떠들었고(깜짝 놀랄 만큼 유토피아는 숨기고 말했으니 칭찬해 주었으면 한다), 혼아츠기역 근처의 노래방에서 아침까지 음주가무를 하면서 공포를 희석시키려 애썼다.

결국 그 산중에서 나타난 그림자가 무엇이었는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정체는 알지 못하는 그대로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에 아파트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가는 도중, 차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 속의 하얀 눈.

그림자는 어디를 가든 사람을 따라온다. 저것은 보이지 않을 뿐, 지금도 어딘가의 그늘에 숨어, 흘러넘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다음에 그것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도 외치게 되어버릴 것이다……. 모든 수치를 내던지고, 모든 것을 개방하고 외치게 될 것이다. 유토피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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