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지회 오리엔테이션

아 아. 잘 들리죠? 아직 정신은 말짱한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일단 시작하기 전에 사과할게요. 재갈 물린 건 너무했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것도요. 게이와가 그렇게 해야지 저항 의지를 어느 정도 거세시킬 수 있다고 그랬거든요. 어… 여자한테는 거세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되나?

그리고 당신 척추, 나무 곤봉으로 잘게 부순 건… 그건 정말 미안해요. 그거는 다행스럽게도 게이와가 고칠 수 있다고 했어요!

오케이,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침이 흐르네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또 이 설명을 해야 된다니. 이젠 슬슬 지치지만, 꼭 해야 된다니까 뭐 어쩔 수 없죠.


큼큼.

이 세계에는 혼령이 정말 많아요.

혼령은 미련이나 소원, 욕망이 남은 영혼들이 성불하지 않고 현세를 떠돌면서 생기죠.

그런데 미련을 가지지 않고 후련하게 훌훌 떠나며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남은 것의 기억들을 생각하다 죽음에 접어들죠. 예를 들면 어머니나 자식 같은 가족들을 생각한다던가.

그래서 다양한 이유로 이승에는 혼령이 정말 많이 남아 있어요.

제가 듣기로 당신들은 그런 것들을 심령독립체라고 명칭까지 따로 붙여서 분류하던데.

대부분의 영혼들은 그 기운이 너무 약해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기는커녕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다르죠. 저는 특이 체질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많은 영혼들을 다 볼 수 있어요. 심지어 그들과 대화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죠.

심야클럽도 그런 혼령들을 전부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할걸요. 자신들이 닿을 수 있는 한계 내의 심령 독립체들을 관리하는데만 해도 행정력을 거의 전부 소모해 버릴 거에요.

그래서 저희가 대신 일하는 거죠! 저희는 그런 이들의 염원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 준 다음 성불할 수 있게 해 줘요.

해결해 준 다음 저는 일의 대가로 영력의 일부를 떼내어 줄 것을 요구하고, 거기에 응하지 않는 몰염치한 영혼이 있을 경우 전부를 취해 버려요. 구제를 받고 나서야 아까운지 기꺼이 내어 주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봐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잡아온 사람은 원래대로라면 게이와한테 넘겨줘서 자손을 만드는 주물의 일부로써 쓰게 했겠지만, 저는 당신에게 재능이 보여요. 당신은 기운이 있다구요. 저만큼은 아니지만 저와 같은 일을 할 만큼.

자, 함께하지 않겠어요? 만약 거절하면, 원래의 계획대로 주물로 넘겨버릴 거에요…






반갑다. 나는 거석이다. 저 여자애가 지어 준 이름대로라면 게이와이기도 하지.

그렇게 저항하려 하지 마라. 나는 너의 갈비뼈를 부러트리는 바람에 폐를 찌르고 싶지 않다.

…보다시피 나는 돌 지성체다. 나는 사백만년 전에 단조되었다. 내 동족들 중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정동 속에서 열과 압력을 완전히 균일하게 받아가며 마치 공예품이나 다름없는 균질성으로 이루어졌지.

나는 오랫동안 살아왔다. 인간을 만나기 시작한 건 꽤 최근이고. 언어를 다루기 시작한 건 더욱 최근이다.

그렇게 계산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일 필요 없다. 너의 시간감각으로 생각하려 들지 마라. 나와 너의 시간 감각은 무척이나 다르다.

…언제였던가.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어떤 때에 어떤 땅을 걷던 시간, 어떤 왕이 와서 나를 보고 기이하다 하며 자신의 나라를 위해 군사로 그 힘을 써줄 수 없냐 했다.

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라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사람들의 소문으로부터 왕이 엄청난 후회와 한을 남긴 채 죽어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 빨리 살려고 하면서 왜 만족하지 못하고 죽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숲 속의 다람쥐가 한스러운 삶에 끝내 비탄하며 죽을까? 참새가 모이통 위에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다가오는 죽음에 저려 할까?

그에 해답을 준 것은 아산이었다. 그 보답으로 나는 그 고아 소녀를 거두었다.

나는 성별이란 것이 딱히 없지만, 아산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므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게이와란 여성 이름도 슬슬 익숙한 것 같다. 어디 언어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동족들 중에서도 가장 균질적이고, 단단하며, 강인하다. 아산이 대부분의 격투를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 내 선에서 모두 해결된다.

…내가 영력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사백만년 동안 살짝 외로워졌다. 그래서 나는 동족을 모방한 무언가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동족이지만 동족이 아니다. 나를 봐라. 나는 아주 완벽한 결정질이다. 비록 사후에 약간의 암석과 광물질을 덧붙였지만.

하지만 내가 만드는 것들은 다르다. 그것들은 유리질이다. 내가 사만 년 동안만 살핏덩이와 돌들을 모아 단조시키고, 그 안에 영력을 불어넣으면 나와 비슷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 자신보다 아주 훨씬 더 조잡한 것이다. 너와 비교하자면 너 즉 인간과 플라스틱 군인 장난감의 차이와 비슷하다.

내 시간 속에서 그것은 꽤 짧았다. 하지만 나는 점점 시간 감각을 맞춰가고 있다. 아산을 만나고서는 더욱 노력했다. 아산은 여전히 내가 약간 느리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도 엄청남을 느낀다.

나는 이제 유리질조차 아닌 것을 만든다. 나는 그것들을 이제 사백 일 만에 만든다. 그것들은 광석질로 이루어졌다. 원래는 광석질을 만드는 데 시간이 더 들지만, 내가 조치를 취했다.

나는 이제 사십 일 안에 만드는 것을 고려해보고 있다. 그렇게 하면 이제는 광물질조차 아니게 되겠지. 조잡한 암석질이 될 것이다.

이제 설명은 끝났다. 나 그리고 아산을 도울 것이냐? 아니면 네 동료들과 함께하겠느냐?

…아. 목이 메어 말을 못 하는구나. 미안하다. 팔과 다리를 묶어 꿇려놨기에 마실 것을 줘봤자 먹지도 못하겠지. 내가 물은 없지만 포도주를 약간 주마.

그래. 숨을 골라라. 너희들에겐 죽지 않는다는 건 좋은 거야.






신규 요주의 단체 보고서

석산지회는 최근 들어 한국 전역에서 관련 활동이 급증하기 시작한 신규 요주의 단체로, 그 활동 범위의 수준이나 활동 정도로 보았을 때 규모 자체는 소규모인 것으로 보인다. 해당 요주의 단체가 재단의 눈에 띄기 시작한 계기는 최근의 재단 직원 연쇄 실종 사건들과 관련이 깊은데, 이들은 전국을 방랑하며 활동하다 그 과정에서 대적하는 사람들을 납치하여 자신들의 "활동"에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심령독립체 관련 사건들을 조사하던 재단의 직원들 역시 포함되어 있다.

석산지회는 주로 심령독립체를 대상으로 하여 활동하는 요주의 단체이지만, 지금까지 보아 왔던 여타 심령독립체 관련 요주의 단체들과는 다르게 심령독립체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과 심령독립체 간의 관계는 해결사, 또는 구두계약 관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들은 까딱하면 심령독립체를 흡수하거나 소멸시킨다.

석산지회는 원한이나 미련 등이 많이 남아있는 혼령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힘(일명 "영력")의 일부를 요구한다. 이를 받는 형태는 대개 후불금으로 처리하며, 영력의 지불을 거부할 경우 이들은 직접 심령독립체의 영력 전체를 빼앗아 버린다.

활동 범위가 넓거나 당장 위험한 수준의 단체는 아니지만 이들이 심령독립체 관련 초상사회에 미치는 사건들의 영향을 생각해 보면 이후로 해당 요주의 단체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재단은 추가적인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게이와 님!"

"왜 그러느냐?"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왜냐면, 오늘은 사람을 안 죽여도 되잖아요!"

"…그건 그렇구나."

"그럼, 어… 뭐라고 불러야 되지? 언니? 오늘부터 같이 잘 힘내 봐요!"

죽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는 죽어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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