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P-1201-KO | 제1종 »
지난 이야기!
정옥석: 나는 산책로를 따라 도망치고 있었고,
도망치던 나는 어느새 한 마리 스테고사우르스가 되어 달리고 있었던 거야.
박영장: 엥? 이대로 집에 가게요? 그냥 여기 있는 게 어때요?
티라노사우루스: 나는 최강이었다고! 나보다 힘 센 공룡은 없었어!
스테고사우루스: 과거 같은 건, 상관없어. 그리고 인간의 강함은 힘이 아니다.
인간의 진정한 강함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창의력이야!
요원 1: 끌어내.
정옥석: (끌려가며) 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요?
제202K기지
공룡학부 연구실
—2022년 인사부 혁신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긴 시간 동안 혁신위는 제145K기지를 장악해 갔다. 혁신이라는 명목 아래 수많은 SCP들의 격리가 '개선'되었다. 수많은 인간형 개체들이 제145K기지로 몰려들어 선진적인 격리를 받게 되었다.
혁신, 조화, 성장, 개혁… 전부 좋은 말이다. 흔한 이야기다. 그런 좋은 단어들이 알고 보니 허울뿐이었다는 것은. 사실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재단은 전혀 착해지지 않았다. 혁신위의 설립 목적은 변칙 인간들을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 그를 위해서 감독관에 적합한 인간형 개체를 솎아내는 것이었다. 부적합한 인간형 개체들은 안전 딱지가 붙어 동물원의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렉스 석유회사의 국내 유전 채굴이 일어나면서, 한때 공룡학부에 소속되었던 정옥석 요원은 145K 기지로 끌려갔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일일 뿐. 그 배후에 혁신위가 있었다."
"자꾸 시끄럽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공룡학부 연구실에서, 염연우 차장이 박영장 공룡학부 부장을 째려본다.
"미안."
책을 읽다 말고 허공을 보면서 중얼거리던 박영장이 입을 닫는다. 연구실에 적막이 감돈다. 5초 후, 박영장이 책을 패대기친다.
"에잇, 이제 공룡도감 읽는 것도 질린다고."
무안해진 박영장이 말한다.
"그야 일은 전부 내가 하니까 그렇지."
"그게 내 잘못이야? 공룡학부에 지원하는 사람이 없는 게 내 잘못이야? 왜 다들 공룡의 아름다움을 모르는지. 참."
박영장 박사가 연구실 한 쪽 벽을 올려본다. 행동강령이 붙어있다.
공룡학부 행동강령
하나. 우리는 공룡을 애호한다.
둘. 우리는 공룡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셋. 우리는 공룡의 존재를 증명한다.
"누가 202K 기지에, 있는지도 모르는 공룡 연구를 하고 싶겠어? 제정신이라면."
염연우가 비웃는다.
"흐응, 그러는 누나는 왜 공룡학부에 붙어있대? 혹시?"
박영장이 그렇게 말하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자세를 한다.
"너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 건 아니거든! 그냥…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안쓰러워서 그런거라고!"
염연우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네네."
다시 정적이 이어진다. 다시 박영장이 입을 연다.
"좌우지간에… 정말 공룡이 죽은 걸까?"
"그야 당연하지. 그러니 공룡학부의 한가한 나날이 이어지는 거잖아."
"하지만 정옥석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공룡이 살아 있다고 했어. 그래서 그걸 일깨우려는 놈들과 싸웠어."
"그런 단체가 존재하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잖아? 무엇보다 그 티라노사우루스는 총으로 자살했고."
"그래. 그러니 정옥석이 끌려간 거겠지."
박영장이 사무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린다. 그러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어디 가?"
"실험.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뭐라도 해야겠다고."
"또 공룡화 실험이야?"
"그래. 지금까지 밝혀진 공룡 강령 의식의 요건은 3가지. 그릇이 이어진 대상자, 알(R)에서 나온 고유한 음악, 마지막으로 공룡의 시체가 변형된 석유야. 이론적으로는 석유 외에 다른 물질로 대체될 수도 있을 거야."
"다른 물질?"
"나는 얼마 전부터 양을 늘려가면서 화석을 갈아 마시고 있지. 구성 성분은 다르지만 무속적으로는 유사해. 화석은 문화재보호법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현실에는 어른의 사정으로 암시장에 꽤 굴러다니거든. SCP-1201-KO가 없지만, 영상 기록에 D-웨이브의 파동이 있고, 요건은 전부 갖춰졌어."
"어처구니없네. 실패할 게 뻔하다고."
염연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실패할 지 누나가 어떻게 알아?"
"그건…"
염연우가 입을 열려다 다시 닫는다. 그러다 소리친다.
"나도 모르지만!"
"부딪혀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야. 만일 성공하면, 정옥석의 등급을 유클리드로 올리라고 건의할 수 있어."
"무의미해. 된다곤 쳐도 말이야. 그건 SCP-1201-KO의 위험성을 높이는 거야. 격리 강도가 높아질 뿐, 전부 그대로라고."
"가만히 있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이대로는 정옥석을 볼 낯이 없어. 정옥석은 우리를 믿고 싸워주었어. 그건 계산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야. 이제는 우리가 옥석을 구해줘야 해."
박영장이 고개를 떨구고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하지만 영장아. 꼭 네가 나서지 않아도, 분명 네가 직접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 제발 네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염연우가 애원한다.
"누나. 내 이름에 담긴 뜻, 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영장(靈長)은 신성한 영혼을 가진 이를 말한다고. 부모님이 언제나 순수하게 살라고 지어주셨어. 솔직히 말해서 정옥석이 끌려가는 걸 보면서, 나는 부끄러웠어. 뭐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거야. 인간이라는 게, SCP 재단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
박영장이 고개를 들어 올려 염연우를 보고 말한다."
"내가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지 않아. 정옥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내가 공룡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야."
"정옥석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나 본데. 그건 그냥 터무니없는 망상일지도 몰라. 티라노사우루스가 사망한 지금,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지. 그런데 말이야. 진지하게 그런 어둠 속에 암약하는 공룡 결사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너무… 터무니 없잖아? 공룡학부 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지 않을까?"
"이게 바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야."
박영장이 염연우를 뒤로하고 연구실 밖으로 나선다.
그 시각.
어딘가의 아지트
원형 탁자에 사람 형상을 한 이들이 앉아 있다. 어두워서 실루엣만이 보인다. 첫 번째 사람이 입을 연다.
"오늘의 회의를 시작하지."
중앙의 발표자가 답한다.
"네. 먼저 자료화면을 보시죠."
스크린에 스테고사우루스가 된 정옥석이 티라노사우루스와 싸우는 모습이 재생된다. 그리고 마침내 티라노사우루스가 쓰러진다.
"공룡의 제왕이니 뭐니 호언장담하더니 꼴이 우습군. 스테고사우루스 따위에게 당하다니."
두 번째 사람이 이걸 보고 말했다.
"지금은 공룡시대가 아니니깐 말이야."
세 번째 사람이 한 마디 더 얹는다.
"스테고사우루스는?"
다시 첫 번째 사람이 발표자에게 직접 묻는다.
"인간으로 돌아왔지만, 실제로는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듣기로는… 그 녀석 인간에게 배신당해서 어딘가로 끌려갔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폭소한다.
"하하하. 인간들은 재밌다니까!"
"조용."
방이 조용해졌다. 계속해서 발표자에게 묻는다.
"데이터 분석은 어떻게 되었지?"
"덕분에 완료했습니다. 영혼 공명기는 영적인 관악기로서 고유한 D-웨이브를 발생시킬 수 있지만, 녹음이나 통화 등의 음성으로 전파할 경우 그 효과가 반감되더군요."
"그거야 당연하지. D-웨이브는 영혼의 울림을 통해 파괴 유전자를 일깨우는 생명 음악이니까. 우리가 백악기에 설계했던 그대로 움직였으니 오케이야."
이 말을 듣고 누군가가 외친다.
"오케이? 뭐 어쩌겠다는 거야? 이구아노돈."
불이 켜지고, 첫 번째 사람의 목 위로 조각류 공룡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답한다.
"전부 예상대로다. 계획은 페이즈 2로 진행한다."
"페이즈 2?"
"그래. 우리들의 완전한 재림을 위한 2번째 계획. 그것은 바로…"
공룡 얼굴의 남자가 서류를 공중에 흩뿌린다. 양 팔을 벌린 남자의 뒤로 서류더미가 날린다.
"제145K기지의 습격. 그리고 이를 통한 이동식 광역 D-웨이브 염화(念話) 포탑의 개설이다."
스크린에 모기 1마리의 사진이 나타난다.
"…모든 것은 우리 D디바인.D디노.클래스를 위해."
박수소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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