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별, 사람 그리고 사랑을 봅니다. 이 광활한 우주가 나에겐 벗이요, 또 다른 나입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 우주 앞에서는 그저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린 그저 창백한 점 위에 서있는 우주의 먼지일 겁니다.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따금 거울을 보면 얼굴에 생기가 가득한 젊었던 시절의 나는 어디가고 머리카락이 희끗한 백발의 노인 하나가 보입니다. 더 이상 젊었던 시절의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을대로 먹었나 봅니다. 가끔은 예전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2016년에 제57K기지의 처음 부임 받아 영양에 찾아갔을 때, 영양은 말도 안될 정도로 도시와는 달랐습니다. 깡촌이라 하는게 가장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그 시절 영양은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동네였습니다.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가장 번잡한 번화가라 불리는 곳 조차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오히려 매력적이게 느껴졌습니다.

기지에 막 도착했을 때 쯤엔 해가 땅 아래로 내려가 노을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밤이었습니다. 달빛 덕분에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제57K기지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습니다. 지하시설로 들어가는 입구는 죄다 무너져 있는데다가, 건물 몇개는 벽이 헐어 사람이 들어가기에 위험해 보였고 그나마 본관 하나만 멀쩡하게 남아 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런 기지에 이사관으로 취임됐다니, 다른 사람이었으면 좌절부터 했을겁니다. 앞으로 다 무너져가는 곳에 살아야 한다니, 근방엔 죄다 나무 뿐이라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선 차타고 저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니, 심지어 멀리 나간 번화가 조차도 시골이라 편의점조차 없고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전부인 곳이니까 그럴만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곳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밤하늘이 무척이나 밝았거든요. 근방에 도로도 없어 자동차도 지나가지 않고, 귀를 기울이면 산 속에서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습니다. 공기는 또 얼마나 맑은지, 숨만 쉬어도 몸이 저절로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제57K기지의 모습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제57K기지도 제법 제 모습을 찾아갔습니다. 맑디 맑은 깨끗한 하늘 덕분에 별을 관측하기 좋았고, 그 덕분에 천체관측 전문기지가 되었고, 한적한 시골 동네인 덕분에 도시 속에서 지친이들을 위한 쉼터가 되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도 예전에 비해 많아져 북적북적해진게 제법 사람 사는 곳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먼지이기도, 스스로 빛나는 별이기도 합니다. 별들이 모여 거대한 은하가 되고, 그 은하가 모여 은하단을 이루고, 또 그 은하단들이 모여 말도 안되게 큰 초은하단이, 그 초은하단이 모여 하나의 우주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섬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무리를, 그 무리가 국가를, 그 국가가 지구를 이룹니다. 우리는 우주와 같은 존재인 겁니다.

책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사진에 찍힌 점 하나를 보라, 저것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 예전에 그네들의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천문학은 흔히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격 형성을 돕는 과학이라고 하곤 합니다. 별을 알면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우주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한없이 작디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위치가 방대하고도 광활한 우주 속에서 창백한 푸른 점 속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의 삶의 시간은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고작 4초 남짓의 짧은 시간입니다. 그 짧은 시간조차 서로 다투고 미워하긴 보단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이곳 제57K기지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비록 다른 기지에 비해 작을지라도 이곳에선 수많은 이들이 밤하늘을 보며 사색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사람이, 사랑이, 그리고 이 아름다운 밤하늘이 너무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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