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Γ01기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특수 작물 농장(Special Crop Plantation)이라고도 불리죠. 대부분 사람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1 이 기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농부들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게 되는 것은 결코 강등이 아닙니다. 사실, 어마어마한 승진이죠. 윤리위원회처럼 힘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이 부서의 인원 모두의 보안 인가 등급은 semi-5등급이거든요. 대부분 정보에 대해서는 기존의 당신 등급과 같은 대우를 받지만, 몇몇 SCP 항목에 대해서 O5와 완전히 같은, 어쩌면 O5보다 더욱 괜찮은 상태로 정보가 공개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4.5등급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저 웃기지도 않는 이름의 부서는 무엇이며, 농부 주제에 아무리 제한적이라지만 O5 취급을 받느냐고요? 당신, 식물뿐만 아니라, 농업에도 상당한 조예와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재단에는 동물이나 사물 못지않게 많은 식물 SCP 및 변칙 항목이 있고, 이들 중 일부는 완벽하게 안전하지는 않을지언정, 재단에서 재배할 만큼은 충분히 파악한 채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하는 게 저희죠. 식물을 잘 길러내기 위해서 농부는 그 식물에 대해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냥 높으신 분이 어떻게 기르면 되는지 알려주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랫사람이 시키는 대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이거, 당신의 평에 대해 점점 더 의심이 드는걸요. 평범한 식물이면 몰라도, 세상을 멸망시킬지도 모를 식물을 기르는데 높으신 분이 아무런 정보도 알려주지 않은 채 ‘이 식물 SCP는 이렇게 길러라, 이렇거나 저러면 위험하니까 그땐 튀거나 태워버려.’라는 지시를 받은 채 무작정 기르는 것은 자살행위라고요! 설령 위에서 내린 지시가 말 그대로 완벽하고, ‘농부’가 말 그대로 완벽하게 그 지시를 따를 만큼 유능하다고 해도 말이죠. 그냥 위에서 주는 물건을 받은 후 정해진 틀 안에서 미리 짜인 실험을 진행하는 똑똑한 연구소의 분들과 달리, 농부들은 보고서를 좀 봐야 합니다. 그것도 모든 정보가 전혀 검열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요. 저희는 길러야 할 SCP에 대해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까지 모두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사실 3등급 정도로도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개체가 많지만, 일종의 상징인거죠 ― 식물을 직접 기르는 데는 학교에서 배운 것 외에 경험이나 농사일에 대한 직감, 식물에 대한 사랑과 관심 등 많은 것이 필요한데, 그 기본이 바로 재배하는 데에는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정보까지 하나하나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니까요. …지식만 있으면 되지, 식물에 대한 사랑과 관심 같은 오글거리는 게 왜 필요하냐고요?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이 제2의 녹색 혁명을 일으킬 인재라던데, 아무래도 과대평가된 것 같군요. 당신 교수는 대체 당신한테 뭘 가르친 겁니까? …아, 당신, 신원을 조회해 보니 농촌 출신이 아니군요. 그리고… 어… 보자, 여기 인사 기록이… 뭐야, 이 자식은 그냥 책만 죽자고 파다가 성적 맞춰서 농대 들어간 도시 촌놈이었잖아? 뭐? 이딴 병신 새끼가 제2의 녹색 혁명? 좆 까라 그래!
…죄송해요. 안 그래도 요즘 일손이 정말 부족해서 피곤한데 당신처럼 겉만 그럴듯한 쓸모없는 병신을 저희 농장에 보충이랍시고 던져주니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군요. 당신이 도시 출신인 게 불만이 아니라, 어, 그 태도가 정말 용납할 수 없… 아, 또 살짝 흥분할 뻔했군요. 죄송합니다. 당신같이 똑똑한 분들이 ‘여자들을 임신시키려고 달려드는 변태 나무’라거나, ‘당신처럼 유머 감각 떨어지는 병신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토마토’ 같은 식물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실험을, 그냥 뻔해 보이는 내용의 안전 수칙 몇 줄만 읽은 후 안심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저희입니다. 씹어봤자 풀 맛만 날 것 같은 소가 아직 죽지 않는 것도 저희 덕분이고요. 저희는 그 소의 씨앗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지만, ‘꺾꽂이’는 부분적으로 성공했습니다. 당신네 연구원들은 수십 년이 걸려도 못한 일을, 저희는 그동안의 연구 기록은 전혀 인수받지 않은 채 단 4년 만에 해냈다 이 말입니다. 어차피 당신이 저희 부서에 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지만2, 어쨌든 농부를 좀 존경하도록 해요. ‘농사는 바보도 짓는다’라거나, ‘할 거 없으면 농사나 짓지 뭐’는 정말 할 소리가 아닙니다. 단지 학술 용어를 모르고 학위가 없다 뿐이지3, 이 세상의 모든 농부는 재단에서 제일 잘나가는 박사들만큼이나 똑똑하고 유식한 사람들이니까요. 꼭 재단 소속의 농부가 아니라도, 당신이 구내식당에서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농부 덕분이잖아요? 농부를 좀 존경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