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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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친은 너무 일찍 죽어서 내 기억에도 없다.
그렇게나 일찍 죽었기 떄문에 뭐랄지 슬프다거나 그런 것도 없다.
나에게는 이것이 보통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다른 부모자식들을 보자면 조금 마음에 구름이 낀다.
그것이 어린 시절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나를 길러 준 것은 친조모님이였다.
배우자 즉 조부님이 돌아가시고, 가장 사랑하던 아들까지 잃은 조모님의 슬픔은 당시의 나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반동인지, 조모님은 내게 남 보기에 넘칠 정도의 애정을 쏟아 주었다.
나는 조모님을 아주 좋아했다.

그 정도 무렵이었을지 모르겠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눈"eyes으로 보이게 된 것은.

보통 별이란 것은 어두운 하늘에 간간이 보이는 빛의 점인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람의 눈으로 보였다.
어두워도 그것만은 뚜렷이 보인다.
달은 훨씬 큰 눈으로 보인다.
그런 눈들이 나를 계속 보고 있다.

조모님께 이 말을 했더니, 그것은 아빠 엄마가 별이 되어 지켜봐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눈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나를 계속 보기만 할 뿐이다.
만일 이것이 양친이라면, 좀 상냥하게 해 주면 될 텐데 왜 안 그러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래, 정말로 보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것을 강하게 통감한 사건이 있다.

그게 아마, 5세 때 조모님과 근처의 하천까지 반딧불이를 보러 나갔을 때였다.
돌아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에 떨어졌던 일이 있다.
물론, 지금 이렇게 살아 있으니 무사히 구조되었던 것이지만, 그 때 나는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변함없이 나를 보는 눈들이 아주 잘 보였다.
5세의 아이가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느냐 그럴 것 같지만, 그 때는 아마 흥분상태라서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 뒤 구급대원과 함께 도착한 조모님을 보는 순간, 전신에 아픔이 몰아쳤고 나는 엄청 울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눈을 특히 싫어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눈은 그저 징그러울 뿐이다.
물론 아무 것도 없는 촌구석이라 애초에 밖에 나갈 일도 없지만, 밤에 외출하지 않았다.
조모님도 그것을 납득하시고, 놀러 나갈 때는 낮 중에 돌아올 수 있게 일정을 조정했다.

그래서 상경하여 도회에 살게 된 뒤로, 밤에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뭐가 안심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문명의 빛이라는 것은 그 위력이 무시무시하여, 나의 오컬트를 간단히 지워 없애고 말았다.
이제야 겨우 평온, 까지는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려웠던 구석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것은 이상한 방향으로 튀기 쉬운지라, 이미 나의 일상은 언제나 많은 눈들이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가려운 구석은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호젓한 기분이 펄펄 끓어올랐다.
도시의 인간들은 차갑다고들 그러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항상 욕을 먹는 것도 아니고, 뭔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는다.
결국 인간으로서 양식이 결여되어 있지 않기 떄문이다.
다만, 항상 사람을 보지 않는다.
서로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의 끝에는 상대방은 없다.
보이는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일상으로의 변화는 나의 마음을 서서히 좀먹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조모님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오래 전부터 앓았던 폐렴이 갈 데까지 간 듯했다.
나는 급히 귀향했다.
회사에 연락은 했는지, 문단속은 했는지 기억이 아련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신간선과 버스, 보행을 다 합쳐 대략 5시간 거리를 무작정 돌아온 결과, 내가 도착한 시점에서 조모님은 이미 불귀의 객이 되어 있었다.
도회지는 내게서 조모님의 임종마저 빼앗아간 것이다.

참석자도 없는 장례식을 간단하게 해치운 뒤, 조모님이 맡겨두었다며 변호사에게 유서를 넘겨받았다.
조모님다운 미려한 달필로 쓴 유서를 읽어내려가는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너의 양친이 죽고 나서, 나는 두 가지 때문에 슬퍼졌다.
하나는 내 아들이 죽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네가 양친 없이 살아가야 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너는 기특하게도 내 앞에서는 슬픈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런 작은 아이에게 지나친 일을 강제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내 손으로 끝을 내자고 몇 번이고 열심히 손을 썼다.
되도록 괴롭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썼지만, 결국 너에게 아픔을 겪게 했고, 또 정작 중요한 끝내기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미안하구나.
지금도 네가 괴로와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안절부절한다.

나는 불온한 공기를 느끼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이것을 확정하기 위해, 나는 본가로 돌아가 조모님의 방을 뒤졌다.
꽤 오래된 조모님의 일기를 보았고, 거기 적힌 내용에 전율했다.
거기에는 나를 어떻게 죽일까 하는 궁리, 그리고 죽이는 것에 실패했다고 나에게 사죄하는 말들이 연이어 적혀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던 것도 실은 조모님이 나를 밀었던 것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나를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에.
나는 조모님과의 생활이 즐거웠다.
슬픔이야 있었지만 그것을 충분히 지울 수 있을 만큼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조모님에게는 그것이 전해지지 않았는가.
아니, 나도 조모님의 기분을 알지 못했다.
나도 조모님을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토지의 일부를 쪼개 팔아서 상속세는 납부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본가에서 부업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유산에 조금 여유가 있어서, 침실을 리모델링했다.
침상 바로 위에 하늘로 채광창을 냈다.
채광창이라는 것은 채광을 조절하기가 어렵고, 청소할 때도 수고롭다는 큰 디메리트가 있다.
그럼에도 창을 낸 것은, 오로지 잘 때오 눈을 보기 위해서다.
식사나 목욕도 바깥의 가까운 데서 해결하지만, 좀처럼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많지 않다.
취침시간에 가장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위로 향한다.
그래서 나는 침상에 눕고 나서 한동안 잠에는 들지 않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결국 내 인생에서 나를 봐주던 것은 하늘에 빛나는 저 눈들 뿐이었다.
조모님도 도회 사람들도 나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봐주지 못했다.
조모님도 도회 사람들도, 그리고 눈들도.
이제는 내가 보답할 차례다.
이제부터 나도 눈을 바라본다.
그들이 나를 봐주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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