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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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은 뒤의 기억은 귀가 먹먹해질 것만 같은 소리로 시작했다.
끊어졌던 정신이 재점화했을 때 그의 눈앞에 비춰졌던 것은 반쯤 부서진 차였다. 특히 크게 짓눌린 곳에서는 피비린내가 나고 있었고 옆의 보다 무사한 좌석에서는 어린아이가 앙앙 우는 소리가 났다. 전복 사고였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떨어진 결과. 제대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면 분명 즐거운 하루가 될 그 현장은 이제 죽음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망쳤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도, 유령이 되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가장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의 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것은, 아마 그 기억 너머의 이유 때문일 것이었다.

"그 새끼는?"

"뒤졌어. 시체 뒹굴고 있는 것 보여?"

"저 정도 상태면 즉사했겠군. 호상이네, 호상이야."

그 정적은 웬 남자들이 그의 주변으로 다가갈 때까지도 이어졌다. 증오에 가까운 푸념이 그에게는 마치 절망의 백색소음과도 같았다. 만약 그가 맨정신이었다면 그 말이 페르시아어라는 것은 알 수 있었겠지만, 뜻을 모르는 언어니 그들의 목적이며 하는 말의 의미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존재 자체를 신경 쓰지 못했으니 더더욱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고.

"뭐야, 저건. 뭐가 있는데?"

"냅둬. 우리 못 보는 모양인데. 게다가 지금 이건 지하드잖아. 꾸란 대로 하자고."

익숙한 목소리다. 머리를 가득 채우던 공백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가려졌다. 시발, 왜 지금 저들이 여기 있는 거지? 그는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엿 같은 이슬람 테러리스트 새끼들. 저놈들을 잡기 위해 몇 년을 고생했던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던가. 마지막 남은 놈을 두들겨 팬 뒤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은 감촉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애시당초 사살 작전이었고, 저 새끼들에게 테러 호트의 교도소는 너무 큰 사치였다.

그런 그들이 지금 그곳에 있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 중 하나였다.
지금 이것이 그가 죽었다는 충격이 일으킨 환청이거나,

"그러면 지금 이게 최고의 상황이라는 거지?"

"그래. 저 새끼 끌고 가. 그리고 우리의 분노를 새겨 넣어야지."

"좋아. 그러면 우리도 천국으로 갈 수 있겠지. 여기 남아 있는 것도 복수를 끝내라는 신의 뜻일 테니까."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이 죽음 자체가 저들이 의도한 것이거나.

그들이 그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막아도 기도문은 끊이지 않는다.
그는 어디론가로 달려가려고 했다. 울부짖으면서, 그 시체가 있던 곳으로.
하지만 거기에 손이 닿기 직전, 망할 이슬람교도들이 자신을 붙잡는 것이 더 빨랐다. 어디론가 끌려가면서도 비명은 그치지 않았다.

거기에 대체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이제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래서 뭐래?"

"일단은 허가해 줬어. 일단은."

"일단이라, 그러면 뭔가 조건이 있다는 거네. 솔직히 뭐가 어찌 됐든 된다는 것 자체가 놀랍긴 한데…"

최산해는 거기까지 말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그 대가는 무엇일까. 변칙 개체를 곱게 대접해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재단이지만 SCP-811-KO는 그동안 불만은 크게 없었다. 통제 조건이 명확하고(물론 안전을 붙일 정도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제는 정식 인력으로 취급될 정도로 협조적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애시당초 그가 여기 확보된 것도 그가 자청해서, 그것도 재단 직원을 요주의 단체의 위협에서 지키기 위해였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본의는 아니다만 격리가 파기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직원들을 대피시키다가 의식이 끊어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놈과 같이 바깥에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노리고 빙의했다가 뒤늦게 튕겨 나간 것이지만, 영상만 보면 누가 봐도 제 발로 나간 것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귀환을 거부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의지다. 이전처럼 돌아오는 것은 무리겠지. 사망 처리한 뒤 그냥 비인격체 취급당할지도 모른다. 그는 침을 꼴깍 삼켰다. 각오는 했지만, 그의 동생이 할 말이 두려웠다. 그때처럼.

"…위치 추적기와 카메라, 옷, 카드를 맡길 거야. 지금 가고 있으니까 전화 끊지 말고 무인 보관함 있는 곳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잘 받으면 위치 추적기 절대 떼지 말고 수시로 전화해. 그 시끄러운 놈 묶고 다니든 몸에 넣든 절대 놓치지 마. 장막 정책 지키고. 우리가 잘 넘겨볼 수 있게 성과가 있어야 해. 뭔 일이 있더라도 5일 이상은 시간 못 주는 것 잊지 마. 이게 재단이 제시한 조건이야."

산해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안도의 감정이었다. 5일 이내로 그놈들에게 타격을 주라는 것은 조금 빡빡했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에게 맡긴다는 소리 아닌가. 어차피 이쪽에서도 지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그놈들만 없었어도 그 유령의 멱살을 끌고 바로 귀환 시도를 했을 것이고.

유령 잡는 유령은 이제 좀 진정된 것 같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철감옥을 막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쳤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Mt.Sea라면 반응이 없는 유령이 쓰러져서인지 가만히 있기로 마음을 먹어서인지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자신의 말, 재단도 지금 상황을 인정했고 방법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이해했다는 소리기도 했다. 물론 지금 대화는 모르겠지만… 다행이었다. 아까는 저 사람들이 귀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어쩌나, 라는 마음에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는데.

5일이라. 뭘 만들어야 확실하게 이 개판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심령 독립체 집단은 한국에만 해도 여러 개 있었다. 심야클럽이라던가, 그 미치광이 놈들이라던가. 물론 산해도 그들이 달갑지는 않았고 특히 뒤의 단체는 지금도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 전부 부숴버려야 한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원 한둘을 없애는 것과는 다르다. 저들은 재단과 연합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러니 그들이 틈을 보일 때까지 충분히 기회를 엿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당장 안 풀어? 그것들은 최대한 빨리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고!"

"빨갱이라는 이유만이면 당장 요원 호출할 겁니다."

"아니, 시발, 냅뒀다간 니들 재단 기지 뚝배기가 해골악단 놈들에게 깨지게 생겼다고. 알겠어?"

…라고 했지. 그러니까 해골악단의 유령들이 조만간 재단 기지를 공격할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탈출했고, 나도 거기에 끌려온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의문이 끊이지 않았었다. 일단 상황 자체는 그자에게 더 들었지만, 일단 대충 가둬둔 지금도 그치지 않는 생각. 왜, 그리고 어떻게 들이닥친다는 것이지? 그리고 저놈은 재단에 갇혀 있으면서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 SCP-248-KO는 재단을 적대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니 한결 후련했다. 여기 위치 추적기가 있는 것이겠지. 배낭이 제법 묵직했다. 신해가 전화를 통해 전한 대로다. 본인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후배가 대신 와서 약간 헤매긴 했지만… 아무래도 경계하는 것이겠지. Mt.Sea 본인과는 달리 저 유령 사냥꾼의 능력은 심령체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니고, 가능성은 적지만 만에 하나 그가 그 정체를 눈치라도 챘다가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난리가 날 것이니.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아무도 없었다. 조만간 올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재단 사람과도 얘기가 되었으니 감옥에서 꺼내는 드릴게요."

덕분에 자신까지 덤터기 쓴 것이 여전히 불쾌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밀봉된 캔이었던 것이 형태를 잃고 무너져 내렸다. 찰흙과 같은 형태가 되자 안에 갇혀 있던 것도 기침과 함께 겨우 기어 나왔다. 유령은 기분 나쁘지만 저 정도로 크기를 줄일 수 있으면 어디 들고 다니기는 편하겠다, 그런 생각이 순간 들 정도였다.

"그래, 그 바보들이 뭐라던?"

"5일. 그 이상은 안 준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더 짧다. 마지막 날에는 그 악단 본거지에 직접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컨디션 조절이 필요했다. 즉 아무리 늦어도 4일 내로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알아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충분하군, 그 유령은 픽 웃었건만 Mt.Sea 입장에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럴 때 박기영 씨만 있었어도. 확실히 그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좋은 '심령예술가'였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억을 읽고 그 기억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덮어 쓴다든가, 여러 부적을 사용할 수 있다든가 하는 능력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일단 저 미치광이 놈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것도 그렇고, 유령들은 단장이란 양반에게 충성하는 것을 역이용한다면 지금도 분명 활약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단에 합류해 복지를 누리는 것을 미끼로 삼는다면 이 사건 이후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고.

아니, 산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 실종되었잖아. 황금 보검 거래에 참여했다가 심야클럽과 충돌하면서 행방불명되었다지. 그 자칭 유령 편들에게 당한 건지 아니면 거래 상대방이 끌고 간 것인지까지는 모르지만, 그 보고를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아쉽지만 그에 대해서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이고 뭐고…"

온건한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정보를 얻을 방법은 하나였다.

"일단 정보를 알려줬으면 합니다만. 당신에 대해서부터, 그들에 대해서까지 전부요."

산해는 알루미늄 반죽을 빚어 수갑 형태로 바꾸었다. 단순한 고리고 사슬도 없어 마치 팔찌 같았지만, AWCY에서 배운 문자도 기입해서 유령 놈들 도망치는 것 막기에는 딱이었다.

"순순히 얘기해주세요. 작전에 따르겠다고 했으니 거기에 대한 정보를 주셔야 할 겁니다."

"아, 그래. 그건 또 뭔데?"

"수갑입니다. 허가받은 조건 중 당신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있어서요."

"참나."

"이걸 차면 저에게서 멀리 도망도 못 갈 겁니다. 빙의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당신 말이 맞다면 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거예요. 안 그래요?"

수갑을 들고 그는 단적으로 말했다.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다. 이거 찰 건가 말 건가. 만약 안 차고 뻐팅기면 강제로 채울 것이었다. 아니면 죽지 않을 정도로만 후려패던가. 그도 꽤 약해진 이상 지금 와서 다시 빙의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헌데 그걸 본 애꾸 유령은 그게 전혀 무섭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말 되네. 원래는 이렇게 돌아갈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갑을 받아 스스로의 팔목에 채웠다. 찰칵, 찰칵. 제작자도 예상 못 한 작고 경쾌한 소리가 두 번 울렸다. 이제 됐냐? 항복하려는 자세는 아니다. 그보다는 여유롭게 맞받아치는 것에 더 가까웠다.

"다시 소개하지. 맥 니콜슨. 네가 아는 대로, 그리고 아까 얘기한 대로 유령 잡는 유령이다만."

"네. 유령에게 죽어서 유령이 되었고 그 복수인 것이죠."

그건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자신도 목숨만 부지했을 뿐이지 크게 다를 건 없잖은가. 궁금한 건 그쪽이 아니었다.

"그런 것 치곤 엄한 곳에만 화풀이하지만요. 무당들을 습격해서 신을 때려 부수지 않나, 뭔 북한과 남한도 구분 못 해서…"

신과 유령은 다르다. 죽은 영웅이 귀가 아닌 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지만, 적어도 사람들 지키는 신을 공격할 필요는 없잖은가. 이대로 아는 얘기만 할 건가? 난 저 외골수 상대로 지금 뭐 하는 거지?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하던 참이었다.

"하. 엿 먹으라고 지껄인 건데 그걸 진짜 속네."

"네? 하지만 그랬다면 북한군 유령을 없앤다고 여기 올 이유는 없잖아요. 더군다나 당신 한국어도 모르잖아요. 당신이 대체 어떻게…"

"1988 서울 올림픽. 2018 평창 올림픽. 도시 어디에도 돼지 새끼를 기념하는 흔적 없음. 미국이나 일본 문화를 일반 시민도 누릴 수 있음. 무엇보다 떡하니 보이는 사우스 코리아."

수갑 때문에 저릿할 법도 하건만 그는 태연하게 손을 꼽기 시작했다. 담담하면서도 또렷하게. 한 이유마다 손가락 하나. 당황한 산해의 눈에는 어느새 유령이 꼭 쥔 주먹이 눈에 들어왔다.

"왜, 더 말해? 북한인 줄 알고 쳐들어간 건 맞지만 말이야. 영어가 쉽게 통하는 곳에서 1년 넘게 엉뚱한 곳에 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돌대가리는 아니지."

"…"

"지금은 죽었지만 난 특수부대원이었어. 어디 레드넥처럼 피아구분을 못 할 무식쟁이는 아니라고."

맙소사. 설마 재단 박사들을 물 먹일 줄이야. 한국어가 절로 나왔다. 당황한 예술가의 손에서 무기가 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이제 당당한 건 유령 쪽이 되었다. 물론 이 전에도 그가 딱히 떨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 그러면 그렇게 속여놓고 이제 와서 재단을 구하려는 이유는…"

"스탈린보다는 머저리가 낫지. 당연한 거 아냐?"

"그 단장이란 놈이 어지간히 개새끼인가 보네요."

"그래.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령들이 드글드글하게 모여서 누군가를 따르고 있어. 그놈들이 요전에는 기지도 기웃거리더군. 뭐라 씨부리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따르는 자가 원하는 것이겠지."

기지를 기웃거리는 유령이라. 유령악단도 참 어지간하군. 대체 기지에 뭐가 있다는 것일까? 그는 한탄했다.

"그러고 보니 광신도도 있지 않아요? 그 까마귀를 믿는 놈들 말이에요. 그 양반들 저번에 기지에 당당히 들어갔다가 걸렸는데."

그렇게 질문은 했지만 자신도 아니란 것은 딱 알고 있었다. 그자들은 아예 자신의 존재 자체를 숨긴다. 적어도 저 애꾸 유령이 그것까지 꿰뚫어 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정체를 알면 보고해야 할 것이 늘었다, 산해는 생각했다.

"섬기는 것이 인간이거든. 뭐, 그 신이랍시네 하는 빨갱이 수장 놈도 언젠간 사라질 때까지 두들겨 패줄 생각이지만. 영 기분 나쁘단 말이지, 그 자식…"

구오가 전력이라면 고작 그 정도로 당할 리가 없다. 그랬으면 굳이 신들도 없애지 못해서 흑암지옥에 쳐박아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신이 되지 않은 상태인데 해코지를 하려고 한다? 동생을 해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는 터져 나오려는 말을 꾹 참았다. 말해봤자 좋을 건 없다. 일단은 좋게 넘어가자.

"꽤 자세한데요. 거짓말이 아니라면요."

"이제 와서 내가 그걸 속일 이유는 없지? 이것도 있는데."

"글쎄요. 유령을 믿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재단을 속인 놈이라면 더더욱요."

"뭐, 마음대로 해. 이제 와서 못 믿어봐야 니가 뭘 어쩔 건데. 그리고 내가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그는 대답 대신 왼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가리켰다. 텅 빈 자리가 푹 들어가 있었다.

"순 개새끼들 덕분이지."


"단장님."

해골 가면을 쓴 자들 중 하나가 유독 생기가 있는 자 앞에 멈추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과는 달리 해골 악단의 본거지는 어둡다. 유령들이 생활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좋았다. 그래서 심야클럽이나 조요의 인도자들도 이런 어둑어둑한 곳을 선호하는 것이다. 정작 그 단장은 그 분위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았지만…

"Mt.Sea를 발견했습니다."

"오. 그래? 옥리들이 가두고 있지 않았어?"

"아무래도 탈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유령에게 몸을 빼앗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얘기를 못 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많이 아쉬워하고 있었다. 유령 사냥꾼이라니. 단장이 몇 번이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을 놓친 것은 꽤 큰 실책이었다. 다행인 것은 단장은 놓쳤다는 말보다는 아무튼 발견했다는 것이 더 눈에 띈 모양이었다.

"그래? 그자가 누군지는 아직 모르고?"

"네. 얘기를 나누기 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적인지 아군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걱정하는 단원과는 달리 단장은 지금 상황이 유쾌해 보였다. 해골 가면 너머로 쿡,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상관없지. 그가 이 모습을 본다면 우리 편이 되지 않고는 못 배길걸?"

"그렇습니다. 단장님."

"그러면 뭐. 조만간 손님을 맞을 준비해야지. 다들 공연 준비는 되었어?"

"네. 단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오케스트라를 모으듯 악기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잘 조율되었다는 신호다.

"악기를 들 준비는 되었어?"

"네. 단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스산한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단장은 두렵지 않았다. 그 어느 것도 잘못 되지 않았다.

"예술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 되었어?"

해골 가면을 쓴 유령들이 전부 악기를 들고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것은 예술가보다는 마치 군대 같았다. 해골악단의 단장이 아끼는 무기가 준비되었다.

"네. 단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좋아. 오늘도 활기차게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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