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송실에서 구출되고, 어른들은 나를 어떻게든 원래 살던 집으로 돌려보내 주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의 얼굴은 기억보다 훨씬 늙어 있었고,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낯설었다.
현실에서 멀어지듯 소리가 사라지고, 거기서부터는 어렴풋이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표정으로 부모님「이었던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어느새 나를 데리고 온 날씬한 정장 차림의 여직원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집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녀가 차로 돌아와서는 운전대를 잡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제야 나도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곁따른 남자도 어색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그래도 겉보기에는 차가워 보이던 그 사람들이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시 가족이 생겼다.
그 학교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많았고, 매일 어른들이 찾아와 상황을 살피곤 했다.
다정한 학교 관리인 타무라 씨. 수줍음 많은 청소부 유야마 씨.
와타모리 박사와 연구실 사람들.
재단에서 가장 어리고, 아직 정장이 어울리지 않던 시절의 신참 요원 치요미.
(우리들은 금방 친해져서 그녀에게 쵸미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참관 수업에 부모님은 오지 않았지만, 그 대신에 직원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교실에 모두 들어가지 못해서 그날은 체육관에서 수업을 받았다.
다들 각자 불행했지만, 다들 사랑받고 있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친구였고, 가족처럼 생각했다.
나는 가족을 잃었다.
소학교 마지막 해에 그 무서운 사건이 있었다.
학교에도 사이렌이 울려 퍼졌고, 훈련받은 대로 대피했다.
반 친구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가장 가까운 기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들었다.
6학년 마지막 참관 수업 때, 수가 적어진 어른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불행은 언제든지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내 삶은 다른 사람보다 상처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많든 적든 상처를 입는다.
제81KA기지가 빠르게 재건되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주춧돌 삼아 다시 출발하는 것을 보았다.
쵸미 씨가 눈물을 닦고 새 피어싱을 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웃는 모습을 보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참관일에 또 다시 사람들로 넘쳐나 선생님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것을 보았다.
내가 처음 도움을 받았던 그 날부터 나는 부조리한 운명과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강인함을 계속 접해 왔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강해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곳은 치바국제과학대학, 그곳 식당의 한 구석이다. 재단에 입양된 아이들은 재단이 운영하는 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점심 시간도 끝난 이 시간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이 자리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나도 이제 대학 3학년이 되었으니 싫더라도 취업을 의식한다. 일단은, 이라는 생각에 들은 취업 활동 안내에서 강사가 자기 분석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명한 탓에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기묘한 인생을 되돌아 보았고, 어느새 비번인 쵸미 씨를 진로 상담역으로 불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맞은편 자리에는 미트소스 스파게티, 반숙 달걀, 고기 만두가 놓여 있고, 쵸미 씨가 즉석 반숙 미트볼 스파게티를 입 안에 가득 채우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재단 직원이자 같은 대학 선배라 아까까지만 해도 최고의 상담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재단에 취직한 후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진로 상담역으로는 인생에 대한 고민이 다소 없는 것 같다.
쵸미 씨는 노 브레이크, 나중에 가서야 길을 생각하는 타입이다.
“재단에 취직하는 거 좋지. 너라면 연구직도 할 수 있잖아. 월급도 괜찮고. 게다가 다들 아는 사이니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쵸미 씨는 스파게티를 집요하게 빙글빙글 돌리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그… 『평범한 친구』한테는 재단에 취직했다고 말할 수 없는 거죠?”
“뭐, 그렇겠지. 재단 관련 이야기는 잘 속여 넘길 필요가 있어.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제대로 적당한 역정보 적용하고, 익숙해지면 뭐든지 되겠지. 왜, 친구가 평범한 데 취직하던?”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해버리자.
“친구가 아니라… 쵸미 씨, 저기… 장난치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그러니까… 대학에서 애인이 생겼어요.”
쵸미 씨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먹던 손을 멈추고는 씨익 웃었다.
“정말? 축하해! 언제부터야?”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알게 되었는데, 사귀기 시작한 건 1년 전 즈음이에요.”
“좋네, 좋아, 청춘이네!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는걸. … 어떤 애야?”
“그거 지금 말해요?”
“아니, 궁금해서 그래.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
“아뇨, 학부 선배예요. 얌전하지만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뭔가 대답에서 여유가 느껴지는데…”
“쵸미 씨는요?”
“그거 말해줘?”
엉뚱한 연애담으로 한바탕 웃고 난 후, 쵸미 씨는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연인, 한 살 위라고 했지? … 취업하는 데 결정된 거야?”
그래, 그것이 문제이다. 남자친구가 내정된 곳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 기업의 연구직. 이 대학에는 비교적 많은 재단 위장 기업의 채용 공고가 들어오는데, 그 기업은 재단과 무관한 곳이다.
“네, 사귈 때는 거의 정해진 것 같았어요. 내정된 곳은 일반 기업이고…”
“그렇구나. 애인이 재단이 아닌 다른 곳에 취직한다면… 관계가 어떻든 간에 그 사람한테는 재단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지. 가족한테 숨기는 직원들도 많지만, 조금 힘들지도 몰라.”
“저는 가능하면 그렇게 숨기는 건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은… 일반 기업에 취직한다면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졸업하기 전까지의 기억은 소거해야 할 거야. 인간 관계의 변화까지는 없겠지만, 재단이란 조직이라든지 맞닥뜨렸던 변칙 따위의 기억은 잘 처리되겠지.”
“그렇겠죠…”
쵸미 씨는 등받이에 천천히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그녀가 등을 펴고 이쪽을 바라본다.
“뭐랄까,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보니까. 같이 일할 줄 알았는데… 재단에 안 온다니 좀 아쉽네.”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쵸미 씨, 전 물론 재단에 갈 건데요?”
“… 뭐?”
이번에는 쵸미 씨가 놀랄 차례였다.
“제가 재단에 취직하는 건 대전제에요. 그래서 애인을 어떻게 설득할지 상담하러 온 거라고요.”
설명이 짧은 것은 나의 나쁜 버릇이다. 나는 조급하게 다음 말을 찾는다.
“저기, 그, 차라리 애인도 같이 재단에 취직하게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 사람이 지금 취직한 곳도 연구직이라 조교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고, 호기심도 많고, 뭐…”
“어, 뭐야, 그쪽을 위한 상담이었어?!”
“그럼요! 복리 후생이라든지, 커플로 재단에 취직한 것의 선례라든지, 일단 장단점을 보여줘서 남자친구를 설득하고 싶다고요! 그래서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는 그런 상담이란 거죠!”
잠깐의 공백이 흐르고, 쵸미 씨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교내 식당에 울려 퍼졌다. 주변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쳐다본다.
“아하하하하! 미안, 미안.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네! 분명 네가 남자친구 따라 같은 데 취업하는 거라고 말이지. 그래, 같이 여기에 취직하는 방법도 있지. 인사부에 자료 제출할 수 있는지 물어볼게. 이제 졸업 논문만, 하고 여유에 빠진 남친한테는 미안하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그래, 나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은 남다른 승부욕의 소유자들이었으니까.
세상을 침범하는 변칙에 맞서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 한 사람의 진로가 다르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커플이 함께 취직한 사례도 있고, 요즘은 취업한 후에 커밍아웃 하고 이직하는 패턴도 많아. 한 명은 연구직, 한 명은 위장 기업처럼 가족 단위로 재단에 취업하는 패턴도 많으니, 어쨌거나 사례를 준비해 볼게. 장점으로는 급여나 복리 후생, 다른 곳에서는 절대 쌓을 수 없는 경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적 호기심의 충족. 뭐, 우리 인사부가 워낙 뛰어나니 리스크에 걸맞은 대가를 확실히 제시할 수 있을 거야.”
“네, 고마워요!”
“그렇다 해도, 그런가. … 많이 컸는걸.”
전화로 이것저것 지시하고 쵸미 씨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파스타 접시는 비워졌지만, 손이 허전해서인지 여전히 포크를 잡고 있다.
“모두들 덕분인걸요. 게다가 저는 오래전부터 재단에서 일할 생각이었어서, 이제 와서 평범한 데 취업한다는 건 생각도 안 했었니까요.”
“오래전부터? 왜?”
“기억 소거를 정말 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에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 기억해야 한다니, 도대체 뭐를.”
쵸미 씨는 당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쵸미 씨는 제가 왜 재단에 거두어졌는지 아세요?”
“딱히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알고 있지. 방송실, 맞지?”
그래, 그 외로운 방송실. 나를 줄곧 가두어 둔 변칙.
모두가 자신을 잊어버리게 하는, 그런 변칙.
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있다. 기억해야 한다.
“모두에게 잊혀 가는… 그런 변칙성이죠. 하지만 저는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이 잊힌 후의 그 사람을 마주하고 있어요.”
“무슨 소리를… 아.”
“… 저를 대신해 준 사람, 그 사람을 만난 건 모두에게 잊힌 후, 마지막 안내 방송이 나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안내 방송을 끝으로 방송실 문이 열린다.
더 이상 세상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황색 옷차림의 조금은 지친 남자와 나의 눈이 마주친다.
눈물이 맺힌 눈동자 속에는 각오의 눈빛이 담겨 있다. 두려움으로 굳은 얼굴에 부드럽고 어색한 미소를 남기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 아가씨.”라고.

“그래, 기억하고 있었구나. 너를 대신해준 녀석을.”
“네. 어엿한 연구원이 되면… 만약 허락된다면 저는 그 백화점에 한 번만 더 가보려고요. 보고도 하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고 싶어서요.”
“협력할게. 분명 기뻐할 거야.”
쵸미 씨는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드디어 이 날이 왔다.
나는 차에서 내려 이미 도착한 쵸미 씨 일행에게 걸어갔다. 쵸미 씨의 후배인 사쿠라기 요원이 가볍게 손을 들고 한쪽 눈썹을 치켜든다. 쵸미 씨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2분이야. 안내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백화점을 나가야 해. 안내해 가는 건 반대당했어. 정체성의 문제라는 점과 담당 연구원이 바뀌지 않은 점 덕분에 설득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다들 걱정한다는 거지. 이번엔 정말 특수한 경우야. 입구만이야. 딱 2분. 시간 되면 나랑 사쿠라기가 진짜 데리고 나갈 거라고. 알겠지?”
“네. 저도 두 번 다시 잊히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좋아. 할 말은 정했어? 그럼… 시작하자.”
백화점 입구에 서 있던 경비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길을 열어 주었다. 쵸미 씨와 사쿠라기 요원, 그리고 나 세 사람만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백화점 안은 서늘하고 어두컴컴하다.
그는 지금도 그곳에 있는 걸까.
“… 기억하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오랫동안 쭉 이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는데… 당신의 도움을 받았어요.”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저, 그 이후로 건강하게 살아왔어요! 친구도 사귀고, 애인도 생겼어요! 여행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하고, 저, 재단 직원이 됐어요!”
“30초야.”
시계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쵸미 씨가 시간을 알려준다.
“저는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을 기억하며 살아갈 테니까! 당신 덕분에, 저는, 저는”
정식으로 직원이 된 후, 가장 먼저 그 보고서와 기록을 보았다.
기록대로라면 분명 내가 여기서 외친 소리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 고독한 방송실에.
분명.
“이제 곧 1분 남았다. 서둘러.”
“저는, 즐겁게 살아왔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저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고마워요! 당신을 기억하며 살아갈게요!”
외친 소리가 텅 빈 백화점에 울려 퍼졌다.
쵸미 씨는 계속 시계를 쳐다보고 있다.
눈물을 닦고, 정적이 돌아온 차가운 복도의 끝을 바라본다.
“앞으로 1분. 딱 맞춰서 나갈 거니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알고 있어요. 자기 만족이더라도 좋아요. 제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때, 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모두가 천장에 있는 음향 기기를 쳐다본다.
잡음이 계속된다.
그리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