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용으로 식인당한 사람들에 대하여

약용인류

1935년 신박람회에 전시된 번고番膏, 번자탕番仔湯, 번편番鞭, 번하수番下水 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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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본 문서는 역사상의 식인 등을 다루고 있어 일부 독자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12



역사를 기억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N


개요

예로부터 식인은 지역과 문화를 막론하고 금기로 여겨져 왔다. 이 문서는 대만 원주민들에게 행해진 중국 한족의 식인에 대한 역사를 다룬다. 기아 때문에 촉발된 다른 문화권의 식인 사례와 달리, 대만에 들어온 한족이 식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원주민을 먹는 것이 치료 효과가 있으며 행운을 불러일으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본문은 초기 대만 식인 풍습의 피해자인 "약용인"에 대해 어떠한 모욕의 의도도 없다.

실제로, 소수의 약용인류 그 시체에 원인 불명의 특수한 효능이 있기는 했는데, 동아시아의 사르킥교3 발달에 관련이 있다는 이론이 있다. 하지만, 한족의 대만 원주민 사냥 및 식인 풍습은 1892년부터 기록된 데 반해, 낼캐는 대만에 일러도 1970년대에 들어왔기 때문에45 1970년 이전의 식인 행위는 대만 섬의 한족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이거나, 명-청 시기 동안 건너온 사람들이 들여온 악습으로 보인다.67 이러한 식인 풍습은 시작부터 변칙적인 특성을 띠고 있었다.

—N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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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토리이 류조가 1900년에 찍은 아타얄족 사람들의 모습. 해당 사진은 오직 도해용으로만 사용되었으며, 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이 문서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바

특징: 한족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식인을 해 왔는데, 인육에 치료가 있다고 여겼다. 당나라(서기 681년~907년) 시기에는 본인의 넓적다리에서 살점을 잘라내 부모에게 약으로 먹이는 일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런 식인 풍습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청나라(서기 1636년~1912년) 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때 식인 풍습이 대만으로 건너왔다.

일부 대만 거주 한족들은 대만 원주민을 사냥하여 다양한 음식 및 약품으로 만들어 왔다.89 청나라 시기에 대만 원주민은 생번生番과 숙번熟番 두 분류로 나뉘어졌다.10 생번은 청나라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숙번은 청의 지배에 순응해 세금을 내며 노역을 했던 사람들이다. 보통 약용인류가 된 사람들은 전자에 속한다.

희생양이 된 사람들은 몇 달에 걸친 처리 과정을 지난다. 뼈는 푹 고아 아교와 비슷한 물질인 번고番膏로 만들었고, 살점은 도려내어 번자탕番仔湯, 번편番鞭, 번하수番下水 등의 음식으로 만들었다.1112 쓸개는 약효가 있다고 여겨져 절상(切傷)이나 다리 뼈 통증에 사용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먹음으로서 번의 체취를 풍길 수 있다고도 믿었는데, 이러면 번들의 출초出草 행위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131415 이런 치료 효과에 대한 미신 때문에, 약용인류의 몸은 해체되어 비싼 가격에 팔려나갔다. 청나라 지배(1683~1895) 때에 청 정부가 이러한 행위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만 강점기(1895~1945)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이 풍습에서 유래된 구절들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다. 이를 보아, 식인 풍습이 대만에서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알 수 있다.

—N


성질: 일부 약용인류는 독특한 변칙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는데, 그 원인은 불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효과는 한족들이 약용인류를 만든 목적에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약효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대일본제국 이상사례조사국(일명 이자메아(IJAMEA))에서 유출된 정보에 기반해 만든 목록이다. 출처가 꽤 오래된 탓에 통합된 표로 만들 수는 없었다. 관심 있는 동지들이 연구 결과를 추가해 주기를 바란다.
사건번호 사용된 신체 부위 용도 효과 결과
001 쓸개 절상에 도포 심리적인 효과 사용자는 부정적으로 변했고 생명 의지를 잃었다. 사흘 뒤 아사.
002 내장 탕으로 끓여 먹음 공간이동 섭취 후 질식사. 부검 결과 폐, 비장, 신장 및 간이 시체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함.
003 허벅지 살점 구워서 다리에 난 병 치료용으로 섭취 신체 변이 섭취 후 사흘 동안 급격한 근손실을 겪어 거동이 불가능해졌음.
004 음경 원주민의 음경을 잘라서 성기능 장애 치료용으로 섭취 신체 변이 섭취 사흘 뒤 요도하열증과 발기부전을 겪음
005 번고 말라리아 치료용으로 섭취 시공간적 효과 말라리아는 당연히 치료되지 않았다. 번고가 사람의 혀에 닿는 순간 일시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눈은 변이하여 번고가 된 희생자의 공포스러운 기억을 재생하는 일종의 영사기가 된다.16

상술한 대로, 약용인류는 거의 항상 섭취한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의도한 바와 정반대의 일을 일으키게 된다. 이자메아는 이 현상을 더 깊이 조사하려 하였으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존재가 확실치 않은) 문서는 이자메아가 대만을 떠날 때 소각되었다.17

내력 및 관계: 『대만 푸젠성 교회보』18 1903년 8월호 『푸셰 소식』 란에는 속담 두 개가 실렸는데, 그 내용은 "殺一名生番,較贏拍著幾隻鹿"19, 와 "拍著一個生番,較好做一年田。通身軀攏共伊食了了"2021이다.

맥케이 박사22가 『먼 대만으로부터』 276쪽에서 언급한 바로는, "…커다란 칼로 머리를 톱질하듯 잘라냈다. 그 머리는 대나무 장대에 묶어 서쪽 문에 효수해 두었다. 몸에는 칼집을 내어 약과 음식으로 썼다. 이런 상황이나 번이 내륙에서 죽었을 때면, 심장은 음식으로 먹고, 살은 포를 떴고, 뼈는 푹 고아 연고로 만들어 황열에 썼다."라고 했다.

1935년, 이자메아는 신이박람회에서 특수한 효과를 지닌 약용인류의 시신을 전시했다. 그 목적은 장막 내부 사람들에게 일본의 식민지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였다.

—N


접근법: 약용인 시신은 변칙적인 효과를 빼놓고 보더라도 그 하나하나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역사적인 사료다. 비슷한 것을 찾은 동지가 있다면 도서관에 기증하기를 제안한다.
역사에게서 얻은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란 인류가 지금의 상태가 되도록 남긴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또한, 흔히 "문명 세계"라고 불리는 것은 만들어진 지 한 세기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말라.

—N

관찰 및 이야기


도서관은 1935년 신이박람회 전시를 기록한 문서 하나를 소장하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며 대만의 식민통치도 끝났다. 이자메아가 대만에서 떠난 이후, 미처 소각되지 않은 장막 내부 문서와 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다행히도, 이자메아는 인간으로 만든 변칙적인 효과를 지닌 약품인 번고는 불태우지 않고 떠났고, 이 물건은 현재 도서관에 소장 중이다.

추가로, 과거 대만 원주민은 기록 수단이 없어 한족의 식인 풍습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부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윤리적인 이유로, 번고를 섭취한 사람이 지금도 문서에 나온 것처럼 희생자의 기억을 투영하게 되는지는 말할 수 없다.2324252627 다만, 민담 정도는 말해줄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1875년 객가인客家人28 탐험가 황남구黃南球는 스탄향29에서 사이시얏족30 원주민의 땅을 강탈했다고 한다. 부족 장로가 무장한 이민족에게 잡혔고, 밤에 장로를 구하러 간 사이시얏족 원주민은 장로가 냄비에 넣어 삶아지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다른 이야기는 대만의 일본 강점기에 배경을 두는데, 25세 부눈족31 원주민 사냥꾼이 무기를 들고 소란을 일으키는 장뇌 가공 공장 직원 무리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다행히도 역시 한족이었던 경찰관 한 명이 공장 직원들과 그 가족에게 부눈족도 일제에 저항하고 있으니 그만하라며 말렸고, 소동은 끝났다.

이 민담 두 개를 읽고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N

이야기 하나 더 할게. 한국에서 활동하는 능구렁이 손32에게서 들인 얘기야. 걔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구미호33랑 다른 인간을 사냥하는 종족에게서 방어하기 위해서 생긴 능력이라더라. 그렇게 해야 연약해 보이는 인간이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족은 문화가 발달하면서 그런 능력이 필요 없어졌지만, 대만 원주민은 기술이나 생활 수준이 낮아서 여전히 남았다고. 아 물론, 가정 그 이상은 아닌데, 그러면 옥리나 분서꾼들이 보는 것처럼 인류 자체를 변칙으로 봐야 한다는 걸까?3435

위에 말한 것처럼, 내가 직접 약용인류 맛을 봤어. 대만 낼캐 교회는 약용인류 포함해서 1935년 신박람회 전시품을 몇 점 가지고 있어. 도서관에서 낼캐를 잘도 환영하는 것 같으니 지금 상황에서 그쪽에서 줄 리가 만무하지. 아, 그래도 관심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3637.

—J.R.R.

의문점

이 문서에서 맹점을 몇 개 발견했다. 저자는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과거 식인 행위에서 변칙적인 효과를 겪지 않았다면, 해당 효과가 한족들이 약용인류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대만 원주민들의 알려지지 않은 보호 효과에서 기인한 걸 수도 있다. 이런 보호 효과 덕에 자기 생명을 지킬 수는 없어도 적어도 복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G.F.B.

일리 있네. 어떻게 그 생각을 못 했지? —N

진짜 낼캐가 여기 관련 없는 게 맞을까? 낼캐랑 접촉한 뒤에 인육으로 초밥 만들기 시작한 초밥 장인도 있었는데. —Misaki

내가 알기로는 관련 없어. 그나저나 그 장인 죽지 않았어? —N

견자단 소속으로서 낼캐랑 접촉을 좀 더 자주 할 수 있었지. 많이들 안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나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 그래도 너무 거부감이 심한 거 아냐? —Misaki

도서관의 정신은 모든 이들에게 열리고 생각과 종교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거야. N, 네 낼캐에 대한 편견을 보니 마치 분서꾼이 생각이 나는군. —J.R.R.

그래! 맞아! 도서관은 열려 있는 게 본질이지! 아예 옥리랑 분서꾼에게까지 활짝 문을 열어 줘서 우릴 죽여줍쇼 하지 그래? 모든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니깐! 그럼 여기 쳐들어와서 우리를 죽여버리는 게 맞겠네? 다양성 받아들이는 거 물론 좋지. 근데 다양성의 이름으로 바로 그 다양성을 해하는 전통을 보호하는 게 말이 돼? 그쪽에서 문명 따라잡기를 하게 하는 게 맞지, 21세기에 인신공양이랑 식인을 전파하는 게 맞겠어? —N

우리가 거부감이 든다고 분서꾼마냥 인위적인 기준으로 누가 존재하고 존재하지 말아야 할 지 단정짓는 건달이 되어야 하겠나? 뱀의 손의 존재 목적을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위함이야. 우리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저 깡패 무리보다는 나아져야지. 그게 더 중요한 거 아냐? —J.R.R.

그만! 둘 다 그만해. 안 그러면 관리자 권한으로 입을 막아버릴 줄 알아! —G.F.B.

미안, 두목. —N

어. 다시 화제로 돌아가자. 그래서 한족이 식인종이라, 이 말이야? —RUO-SHUANG

아니, 그 뜻이 아냐. 한족 식인의 역사는 역사와 공간을 통틀어 광범위하게 존재했단 건 네가 더 잘 알겠지. 하지만 난 이 역사로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를 구분짓고 싶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누구한테 책임을 씌우고 싶은 것도 아냐. 원주민은 착하고 한족은 나쁘단 것도 아니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시대가 그저 엿같았을 뿐. 한족은 원주민을 사냥해서 먹고, 원주민은 한족을 참수하고. 이 글을 쓴 목적은 독자들이 역사를 기억해서 미래에 비극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데 있어.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족은 식인을 해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을 더욱 잘 통제해야 해. 그래야 더 나은 미래가 오는 거야.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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