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새 우는 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후미진 선방에는 아무도 드나드는 소리 없고, 어둠만이 깔리었다.
그저 정적만이 세상을 지배할 뿐.
오늘은 잠에 들면 안 된다.
배우는 자로서의 마지막 날. 준비되었다고 자임하는 자는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한다.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은 다를 것이다.
구도자는 깨달음을 기다리듯 다가올 여명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것이 세을진인이 되고자 하는 자의 마지막 업(業)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긴 참선의 시간.
감은 눈 너머로 어떤 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들이다. 여섯 명의 사람들이 방 안에 좌정하고 있다.
아는 얼굴을 직시한다.
지금 저 너머에서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고 계실 스승이다.모르는 얼굴들을 직시한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두렵고 의아한 낯빛을 애써 걷어낸다.얼굴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진인이 될 제자야.
너는 고개를 들고 귀를 열어,
뭇 스승들의 이야기를 들으라.
세을가란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지나친 모든 것은 번뇌를 낳으며, 그것은 곧 죄악이라는 깨달음이다.
그것은 정언이다. 모든 존재는 다가올 정토 이쿠나안에 자리가 예비되어 있다는 정언이다.
그것은 가르침이다. 육(肉)의 고(苦), 행(行), 명(明), 퇴(退)가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그것은 약속이다. 언젠가 돌아와 이 땅의 억조창생을 제도하고 정토로 이끌리라는 천인교사의 약속이다.
그것은 기억이다. 짓밟힌 모든 육(肉)과 혈(血)의 기억이다.
그것은 배곯음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다.
연기(緣起)란 인(因)과 연(緣)을 통해 생겨나는 모든 현상의 성립 과정이다. 모든 것은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으며, 독립적이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세을가의 내력 또한 그러하다. 처음 이 땅에 도래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생겼고,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멸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설사 그것의 결과가 괴로움일지라도, 선현(先賢)들의 발자취는 세을가인들이 알아야 할 필연적인 가르침이다.
역사(歷史)
한반도 세을가의 역사는 세을진인 처용께서 이 땅에 도래하셨을 때부터 시작된다. 진인은 한 분의 대덕과 두 분의 법우를 대동하고 신라에 당도하였고, 한반도 전체에 세을가를 전파하셨다. 비록 제바의 대군장이 대덕을 침노하는 일이 있는 등 다양한 난관이 있었으나, 세을가의 초기를 담당한 선인들은 지혜롭게 일을 다스리시어 이 땅에 바른 도리가 설 지반을 마련하셨다.
이후 세을가는 한반도 백성들의 삶에 녹아들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신라에서 기틀을 다진 세을가는 고려에서 본격적으로 공교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세을가의 5대 본산이 정립되었다. 지리산의 소을촌을 필두로 하여, 각각을 오악(五岳)으로 지정하여 배치하였다.
다만 세을가는 조선에 들어서부터 차츰 그 영향력을 잃었다.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한 조선의 정치 이념은 세을가에게도 적잖은 타격을 주었다. 특히 조선의 기관 불어도감과 이금위는 세을가에게 최초의 조직적 위협을 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위험은 조선 말엽까지 이어지지만, 해가 갈수록 점차 감소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또 하나의 파란을 예비한 것이니, 곧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대한제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그 혼란의 시대에서 또 다른 칼이 세을가를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1912년 그날은 세을가에 있어서 결코 잊히지 않을 날이다. 일본의 기관 이상사례조사국이 군대를 이끌고 지리산의 소을촌을 침략, 파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납치하고 온갖 기물들을 훔쳐 달아났다.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였고, 추후에 연락이 닿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긴 다른 세을가 사람들이 와서야 그 참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후 세을가 사람들은 조선인의 한 사람으로서, 침탈당한 이들의 한 사람으로서 일제에 항거하였다.
그러나 또 하나의 참상이 세을가를 덮쳤으니, 바로 1950년 벌어진 한국전쟁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국에 교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세을가는, 전쟁의 참화에 삼켜지고 말았다. 전쟁과 공습으로 거의 모든 마을이 파괴되었다. 이북의 세을가 사람들과도 영영 헤어지고 말았으니.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세을가는 다시 재건되었다. 망가진 5대 본산 대신 소을촌만을 다시 세워 하나의 본산 체제로 바꾸었다. 또한 젊은 진인들과 대덕들의 열정에 힘입어, 세을가 사람들은 현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세을가 동포들을 찾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과거의 아픔을 지반으로 바꾸어, 세을가는 이 땅에 다시 바른 도리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승가(僧迦)
세을가는 본래 한 마을이 한 교구를 형성하고, 한 사람의 진인이 지도하는 형태를 취했다. 마을의 수가 늘어날수록 진인의 수가 늘어나고, 이렇게 늘어난 마을들을 5대 본산이 범위에 따라 서로 나누어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5대 본산은 간혹 변경될 때도 있었지만, 각기 백두산, 묘향산, 북한산, 금강산, 지리산에 위치하였다. 이들 가운데 지리산의 소을촌이 가장 유명했는데, 진인 처용이 몸소 세을가 사람들을 이끌고 나아가 처음으로 건설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산의 관리 범위에는 세을가 마을뿐만 아니라 마을에 정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을가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5대 본산은 이러한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관의 추적에 걸리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이러한 관리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기에, 조선 중기에 와서는 마을의 방비를 더욱 강화하고 세상에 나가 사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신앙을 숨기도록 교육했다.
다만 이러한 구조는 현대에 와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1970년대 세을가 재건 운동 당시, 세을가 지도부는 파괴된 5대 본산들 중 소을촌만을 소백산맥 깊숙한 산골짜기에 재건하고 그곳을 총본산으로 세웠다. 지도부는 독자적인 마을 설립을 제한하고 방비에 더욱 힘을 써, 최소한의 교세를 유지하는 것에 힘썼다. 이를 통해 외부의 적들이 세을가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관이 세을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이것의 일환으로 소을촌 태생 주민들은 인근 마을 태생으로 기록하거나,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정에 주민등록을 해두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이촌향도 현상으로 도시에 나가 거주하는 세을가 사람들이 많아져, 최근에는 이러한 위장이 거의 효용성을 잃고 있다.
법계(法階)
법우(法友)
평신도. 수계법회에서 수계를 받으면 법우 직분을 받게 된다. 세을가 사람 대부분이 이 법계를 가진다.
다른 세을가에서의 "오린", "젠드"에 대응한다.
대덕(大德)
진인의 조언자이자 제자. 진인이 되기 전의 수도자들이 이 법계를 받는다. 보통 대덕 이후에 진인이 되는 경우가 절대다수이나, 본인의 의지로 대덕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다른 세을가에서의 "벌루타아르"에 대응한다.
세을진인(世乙眞人)
혹은 "진인"이라고도 한다. 세을가 마을의 지도자이자 한 교구를 이끄는 법계. 현재 진인 품계에는 진인 명현, 진인 도혜, 진인 지천 세 분이 계신다. 언제든 준비된 대덕이 새로운 진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세을가에서의 "카르시스트"에 대응한다.
존자(尊者)
세존의 직계 제자이자, 세상에 세을가가 처음 세워졌을 때 발흥을 이끈 네 분의 스승들. 내도지(奈度只), 오을지(烏乙只), 노아대을(魯阿大乙), 사을은(沙乙隱) 존자가 계신다.
다른 세을가에서의 "클라비가르"에 대응한다.
천인교사(天人教師)
세을가의 바른 도리를 세상에 가져온, 깨달음을 얻은 분. 곧 세존이시다.
다른 세을가에서의 "오즈르목", 곧 "이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에 대응한다.
더 많은 정보는 이것을 참고하라.
분별(分別)이란 곧 구별하여 가른다는 말이다. 이것은 지식의 근간이 되는 행동으로, 이것이 없다면 세상의 지식을 쌓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을 보는 진정한 방법이 아니다. 절대적 실체는 이런 방법으로는 알 수 없다.
이것은 세을가의 기록을 분별한 결과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세을가의 절대적 실체를 알 수 없다. 가르되 가르지 말라. 나누되 나누지 말라. 궁구하라.
법구(法具)
중생(衆生)
삼장(三藏)
고승(高僧)이란 덕이 높은 승려를 뜻한다. 고승은 일정한 기준이 있어서 달성되는 직위와 같은 것이 아니다. 외면의 특징이나 내뱉는 발언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분이 곧 고승이기에, 고승은 어떤 단계를 거쳐서 배출되는 존재가 아니다.
아래의 인명은 세을가의 기나긴 역사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존재들이다. 이들은 존경받는 스승이거나, 세을가를 이끈 지도자이거나, 혹은 세상에 거대한 해악을 끼친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고승일까? 이들이 전부 마라일까? 이들은 연꽃과 같은 존재들이지만, 그 이면의 진흙은 어떤 빛깔을 발할지 모르는 일이다. 어찌 되었든, 눈먼 믿음은 모두를 번뇌로 끌고 가는 목줄이기에.
여래(如来)
천인교사
- 다른 세을가에서의 이온. 세을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그를 세존, 불타라고 돌려 일컬었고, 존경의 뜻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것이 굳어져 현재는 단순하게 세존, 혹은 격식을 차려 천인교사라고 말하는 것이 정례가 되었다. 소을촌의 사찰, 몽은사에서는 대웅전에서 그를 모시고 있다.
아라한(阿羅漢)
존자 내도지 (奈度只)
- 다른 세을가에서의 나독스. 지혜제일(知慧第一)로도 불린다. 수도자를 돕는 존자로 알려져 있다. 몽은사에서는 원통전에서 그를 모신다.
존자 오을지 (烏乙只)
- 다른 세을가에서의 오로크. 지계제일(持戒第一)로도 불린다. 육체적 성취와 노동을 돕는 존자로 알려져 있다. 몽은사에서는 극락전에서 그를 모신다.
존자 노아대을 (魯阿大乙)
- 다른 세을가에서의 로바타아르. 다문제일(多聞第一)로도 불린다. 자비와 보시, 사랑을 돕는 존자로 알려져 있다. 몽은사에서는 대적광전에서 그를 모신다.
존자 사을은 (沙乙隱)
- 다른 세을가에서의 사아른. 밀행제일(密行第一)로도 불린다. 기억과 애도, 업력(業力)을 돕는 존자로 알려져 있다. 몽은사에서는 약사전에서 그를 모신다.
명승(名僧)
진인 처용 (處容)
- 이 땅에 세을가를 발흥시킨 장본인.
- 잊혀진 일곱째 아르콘이 지상에 추락했을 때, 선한 마음이 가장 큰 파편을 점거하여 스스로를 빚어낸 결과다. 천인교사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으나 칼막타마 제국의 정복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실망하고 중앙아시아를 떠돌았다. 아주 오랜 세월 후 한반도에 도달하여 올바른 도리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 이따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아르콘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대진인의 산철"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에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가끔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진인 영랑(煐浪)
- 조선 전기의 진인.
- 1456년 단종 복위 운동 당시 금성대군 이유의 명을 받아 세종 이도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하여 이도의 영혼을 오히려 살덩이 괴물에 가둬두는 꼴이 되었고, 이에 이도를 소을촌으로 옮겨 봉인하였다.
진인 현승 (絢承)
- 조선 중기의 진인.
- 임진왜란 이후 갈라졌던 역신(疫神) 무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세을가의 바른 도리를 익히게 한 진인. 그 일환으로 명망 있었던 유학(儒學) 벽오 이시발이 잠시 소을촌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진인 파염 (播染)
- 1912년 소을촌 침략 사건 당시의 진인.
- 소을촌을 방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으나 실패하고 이상사례조사국원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진인 도혜 (道寭)
- 현대의 진인.
- 호랑이 영물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항시 방랑하는 진인으로, 세을가의 대외적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1970년대 세을가 재건 운동을 주도했다.
진인 지천 (知天)
- 현대의 진인.
- 현존 진인 중 처용을 제외하고 가장 나이가 많은 진인. 무진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을가의 비술에 능해 SCP 재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진인 명현 (明玄)
- 현대의 진인
- 신 소을촌을 맡은 진인이다. 속세에서는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이 때문에 진인이 되기 전에는 대덕 정랑을 따라 해외로 퍼진 세을가 동포들을 찾기 위해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디보쉬 출신인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대덕 녹명 (鹿鳴)
- 진인 처용의 아내이자 제자.
- 벌루타아르 나크사티하르, 혹은 녹족부인(鹿足婦人)이라고 불린다. 제바의 대군장이 역병의 기운을 두르고 그와 사통하였으나, 진인 처용이 그를 물리쳐 달아나게 했다. 이후로는 처용을 보좌하여 이 땅에 바른 도리를 세우는 데 일조하였다.
대덕 무금 (無今)
- 조선 전기의 대덕.
- 본래 유학(儒學)이었던 지천탁 김면우(持天鐸 金俛宇)였다. 진인 영랑을 도와 세종 이도를 부활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에 스스로 큰 부끄러움을 느껴 속세의 삶을 버리고 소을촌에서 봉인된 세종을 돌보았다. 귀의하여 대덕의 자리에 올랐으나 스스로 진인 자리를 고사하였다.
대덕 정랑 (淨朗)
- 현대의 대덕.
- 효종 치세에 출생한 요호다. 사람을 해하는 것을 좋아하였으나, 진인 처용을 만나고 교화되었다. 소을촌에 거주하면서 세을가에 귀의하였는데, 선천적인 폭력성을 조절할 수 없자 처용에게 부탁하여 다시 빚어졌다. 다만 아직 요호적 특성이 남아있다.
- 해외로 흩어진 세을가 동포들을 찾고 있다. 이상사례조사국 및 일제 부역자들을 극히 혐오하며, 그들을 사을은 존자의 이름으로 은밀히 살해하는 업을 짓고 있다. 1970년대 세을가 재건 운동을 주도했다.
법우 박융 (朴隆)
- 벽오 이시발이, 재단의 이묘영 박사가 소을촌에 오고자 했을 때 길잡이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저 마을 촌민일지, 진인 처용의 다른 모습일지, 혹은 아주 다른 무엇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파계(破戒)
김천
- 구한 말 출생.
- 출생 시부터 피와 연관된 힘을 가졌고, 이 때문에 고아로 오래 떠돌았다. 세을가 마을에 받아들여져 수계를 받고 한 사람의 세을가 사람이 되었지만, 이내 마을에서 도주하였다. 이때 세을가 기물 몇 가지를 훔쳐 달아났다. 이후 이상사례조사국에 입대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에단 한
- 1991년 출생.
- 미국으로 이주한 세을가 사람의 자손으로, 카르시스트 한이라고도 불린다. 화학 기업 풀루쿠이를 세워 경영하였으며, 진충주 의식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음료를 제작하여 유통했다. 세을가에 적대 의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행록(修行錄)이란 자신의 수행을 풀어낸 글이다. 사람은 모두 승천의 근본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마라의 죄악에 물들어 바른 길을 직시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방법을 위해 수행록이 있다. 마음을 단련하고 수련하여 이쿠나안에 가기 올바른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수행록 작성의 근본 목표이다.
(제목: 수행록의 제목. "모년 모일 (법명)의 수행록" 같은 제목도, 일반적인 이야기의 제목도 괜찮습니다.)
++ 수행록
**일자** -- (당시 시대에 맞춘 연도. 서력 연도를 병기해주세요.)
**내용**
(수행하면서 든 단상이나 겪었던 사건, 얻은 정보 등 다양한 주제 가능. 중간에 세을가 승려가 작성했을 법한 인용구나 경전의 내용을 창작하여 집어넣어도 좋습니다. 타인의 수행록을 인용해도 좋습니다.)
@@ @@
[[=]]
모년 모일 (법계) (법명) 쓰다.
[[/=]]예시는 다음을 참조하라.
수행록
일자 — 임진년(1832년) 칠월 초하룻날
내용
맑다. 바람이 덥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거닐었다.
세간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기쁠 것이 없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어떤 소용돌이 안으로 치미는 듯하다.
금번에 들려온 소식 또한 그러하다. 홍주(洪州)의 진인 대오(大悟)께서 사람을 보내 알렸다. 한 바다에 기묘한 외양의 선박이 정박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자세한 이야기는 채 알려진 바 없으나, 이를 통해 정세가 요동칠 것이라고 진인께서는 말씀하시고 있었다.
아아, 옛 말씀을 상고하면 세존의 시대에는 수백수천의 외인(外人)들이 서로 다투고 싸웠다고 한다. 세존도 다르지 아니하여, 친히 법륜을 내려놓고 금륜을 들어 큰 싸움에 임하시지 않았는가. 진인 처용께서는 이 일을 경계하여 곧 해동에 세을가를 전파하신 것이다.
이제 외인들이 기이한 선박을 몰아 해동에 또 당도하니, 어쩌면 옛 업화가 다시 이 땅에 미치는 것이 아닌가 문득 두려웁다. 옛 선인들처럼 우리 스스로를 방비하는 것이 마땅할지도 모르나… 우리는 이미 너무나 약해지지 않았는가!
마땅히 조처해야 할 일이다. 다른 진인들께 이를 회람하여 뜻을 보이고자 한다.
임진년 칠월 초하룻날 진인 보리안(菩提眼) 쓰다.
계율(戒律)이란 몸과 입과 뜻에 의한 일체의 죄악을 방지하기 위한 규범이다. "계"란 도리를 구하는 자 일반에게 권장할 만한 습관, 도덕적 행위를 의미하며, "율"이란 다른 이들을 선도하고 스스로를 단련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규범을 뜻한다. 곧, 이것은 안팎을 아우르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세을가의 안팎을 파악하는 것은 세을가를 공부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단계다. 세을가 내부의 시선을 파악하고, 또 외부의 시선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세을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하의 내용은 그러한 시선들을 정리한 단락이다.
세을가에 대하여
특수성:
세을가는 한반도의 사르킥교 종파로, 여느 종파와 같이 혈술을 사용하며 외부와 다른 저들만의 문화를 일구어 나가는 민족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은 몇 가지 부분에서 다른 종파들과 큰 차이를 지닌다.
- 비교적 강한 정도의 비폭력성
- 외부와 단절되지 않음
- 한국 불교와의 습합
- 지나침의 죄악 경계. 대표적으로, 불멸에 대한 거부.
인구:
세을가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갔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세을가 사람들이 스스로의 신앙을 숨기는 실력이 탁월한 이유도 있지만, 애초에 세을가 사람들이 일반 한반도인과 외양과 생활 풍습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정확한 세을가 인구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은 세을가 신앙을 받아들인 인구와 세을가 신앙은 없지만 세을가의 핏줄을 타고 난 인구를 정확히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세을가 핏줄을 모두 추산하여 "세을가"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세을가 인구는 10만을 상회할 것이다.
현재 소을촌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70명으로, 소을촌의 세을진인과 대덕을 합한 수다. 그러나 소을촌 밖에 거주하는 진인이 둘이나 있기에, 실질적으로 세을가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인구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위치:
세을가에게 특별한 위치는 소을촌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백산맥 어딘가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신(新) 소을촌은 외부에서 감지되기 매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기준 차원에 매우 가깝거나 또는 겹쳐져 있다.
태도:
세을가는 평화로운 사르킥 종파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이들 역시 보편 윤리에 합당한 존재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덕 정랑과 일부 세을가 사람들의 전직 이상사례조사국원 사냥이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들은 전직 이자메아 조직원들을 잔혹하게 사냥하고, 그것을 사을은 존자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세을가 사람들이 비교적 보편 윤리에 가까운 존재인 것은 옳지만, 이들 역시 사르킥교의 하나로서 충분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할 수 있다. 단지 몇 가지 선을 넘지 않을 뿐이다.
- 생명을 함부로 빼앗지 않는다.
- 고통을 가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 불멸을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은 세을가의 "지나침의 죄악" 개념에 직결된다. 반대로 말하면 세을가의 이탈자들은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농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들에 대한 정보를 궁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소를 주요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
세을가는 본사르킥이 겪었던 것과 같이 디아스포라를 겪었다. 이것은 조선을 둘러싼 세계의 정세와 직결되어 있다. 세을가 디아스포라는 현대의 세을가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기에, 이를 활용하여 세을가를 궁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을가 디아스포라는 다양한 상황이 원인이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을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한반도를 떠났다. 대표적인 원인들로는 19세기 후반의 열악한 생계, 1912년의 소을촌 침략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 독립 운동, 1937년의 고려인 강제 이주 등이 있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살던 터전을 떠난 세을가 사람들은 세 가지 결말을 맞았다. 첫 번째, 적응하지 못하고 사망하다. 두 번째, 신앙을 버리고 일반 조선인처럼 생활한다. 세 번째, 정착지의 세을가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흩어진 세을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먼 훗날 세을가 지도부가 다시 손길을 내밀었을 때 받아들이고 돌아왔지만, 어떤 이들은 끝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손 닿지 않는 저 너머로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새로운 세을가에 심취하였다, 옛 세을가를, 약한 세을가를 증오하면서.
다른 단체들과의 관계:
세을가는 타 단체들과 관계를 잘 맺지 않는 단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러한 고립성은 배가되었다. 아래에 그나마 유의미한 관계를 유지했거나 유지하는 단체만을 열거하였다.
- 재단: 경계. 2017년 이묘영 박사의 연구 활동을 승인해 주었으나 그것은 처용이 직접 나서서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기관들에게 보이는 입장과 같이, 세을가에게 보이는 관심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큰 피해가 예상되는 사안에는 직접적인 협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 이자메아: 세을가에 가장 큰 상처를 낸 집단. 1912년의 소을촌 사건을 비롯하여 많은 세을가 사람들을 납치, 감금, 살상한 단체다. 일부 세을가 사람들은 지금도 전직 이상사례조사국원들에게 사을은 존자의 분노를 보인다.
- 수신도: 지난날의 동료. 수신도 사람들과는 전통적으로 단체 대 단체로 친분이 있었다. 비록 서로의 이상은 달랐으나 조선에서 유사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수신도가 톱니장치 정교회에 편입되면서 이전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했기에 현재 두 단체는 교류가 단절되었다.
- 불어도감, 보전원, 그리고 이금위: 지난날의 경계 대상. 조선의 기관 불어도감과 보전원, 이금위는 괴력난신을 제 뜻대로 운용하길 원했다. 세을가는 이러한 구도에 순순히 포함될 생각이 없었고, 철저히 신앙을 숨기면서 이 기관들의 추적을 피해 다녔다.
- 심야클럽: 시급한 사안에 잠시 협력했던 단체. 유령으로 세상에 잔존하는 것 역시 세을가의 "지나침의 죄악"을 범하는 일이기에 세을가의 입장에서 심야클럽은 긍정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적대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 타 사르킥 종파: 세을가는 다른 사르킥 종파 일반을 "다른 세을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낼캐—사르킥라는 어휘 자체가 세을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을가는 타 종파를 존중하며, 실제로 세을가 사람들 중에는 타 종파 출신 인물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당연히, 세을가 사람들은 세을가의 가르침을 더 높게 평가한다.
[[footnotebloc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