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 매미 소리 들어봤어?
2
6개월 전 나는 휴학 신청을 내고 여행 중이었다. 렌터카 한 대를 끌고 지명이 좀 알려졌다 싶은 곳을 찾아다녔는데, 단순히 여흥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목적지를 선정하는 데에 별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거의 막무가내 수준이었다. 그때는 마침 여름 항구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목포로 내려가고 있었다.
3
이거, 무슨 스레? ㅋㅋ
4
>>1
대학생이야?
5
전남이 초행이라 무진을 지나던 도중에 길을 잃었는데, 저녁 무렵까지 산길을 계속 헤매다가 겨우 어떤 해안 도로로 빠져나왔다. 몇 번 국도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는데 이십분 정도 달리다 보니 '여기서부터 지묘 마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7
>>1
지묘? 나 전남 사는데 그런 지명은 들어본 적이 없어.
9
>>4
대학교 4학년의 건강한 남자야.
>>7
나중에 지도를 찾아봤는데 나도 그런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어. 난 지금도 거길 찾아갈 수 있지만 그 얘기는 이따 할게.
10
지묘 마을은 작은 어촌이었다. 들어가는 길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전체가 눈에 다 들어올 정도였다. 날이 어두웠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하루 묵고 가기로 했다.
11
뭐야, 평범하게 인적이 드문 마을 플래그?
13
초입에 민박집이 하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복도 끝에서 세탁기 돌리는 소리가 났다. 주인아주머니는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고 좋아라 했다. 2층 끝방 말고 아무 데나 원하는 곳을 고르라고 하길래, 그냥 1층의 가장 가까운 방을 골랐다. 낡은 느낌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방이었다. 다만 천장 한쪽 끝 모퉁이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는데 안내해주던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먼지떨이를 가져와서 거미줄을 걷어냈다. 아주머니가 최근에 방을 건드린 적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본인은 방을 깔끔히 청소해도 하루만 있으면 거미가 튀어나와서 집을 짓는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방이 깨끗한 것은 맞는 것 같아 나는 수긍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16
하긴 거미는 인적만 드물다면 아무데서나 나타나서 집짓는걸 시도하긴 함. 아파트 계단만 해도 오르내리다가 얼굴에 몇 번 거미줄이 묻은 적 있고.
18
세탁기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피곤해서 금방 잠들긴 했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어보니, 마을의 세탁소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빨랫감이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하며 양해를 구했다. 다른 곳 같았으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겠지만 이곳은 작은 마을이었고 소리에 벌써 익숙해져서 그렇게 거슬리지도 않겠다 더 이상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20
밤새도록 세탁기라니, 그건 무슨 민폐ㅋㅋ
21
아침은 예상했던 것처럼 생선 요리였다. 식탁에서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데 탁자 끝에서 새끼거미가 두어 마리 기어나왔다. 아주머니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것들을 휴지로 찍어눌렀다. 어제 일이 생각나서 집에 거미가 많은 것 같다고 얘기를 하니, 아주머니는 진저리를 치며 마을에 거미가 많은 편이라고 둘러댔다.
22
아주머니가 얘기하길 예전에는 지묘 마을이 소위 예술가라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동네였다고 한다. 망중선(網中蟬)이라는 이름이 더 흔했던 시절이라고 하는데, '거미줄 속의 매미'라는 뜻이라고 했다. 여기서 거미줄이란 거미가 치는 거미줄과 해안과 숲이 맞닿아 생기는 짙은 안개를 뜻하는 이중적인 의미였다.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 못한 채로 느릿하게 우는 매미들, 그런 매미 떼가 가득한 숲과 안개에 둘러싸인 광경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던가. 지금은 보다시피 몰락한 것 같지만.
24
지묘 마을이 어디지?
25
나는 디자인과 학생이다. 본래는 회화 미술을 꿈꿨지만 진로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학과였다. 그것 때문에 대학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휴학 중이던 차에, 이런 이야기를 듣자 나는 무언가 흥미가 동했다. 그래서 지묘라는 마을에 좀 더 머무르기로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26
>>1의 스펙이 궁금하다.
28
>>26
별건 없어ㅋㅋ 평범하게 대학교 4학년 남자, 키는 적당히 큰 것 같다고 생각해. 외모는 글쎄, 그림 실력도 글쎄.. 이런 것까지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30
작은 마을이라 소문이 금세 퍼졌는지 아침부터 이장이 찾아왔다. 방문객이 상당히 고팠던 모양이다. 이장은 아주머니와 함께 지묘 마을이 아름답다는 소리를 단어만 조금 바꿔서 계속 떠들어댔다. 꽤나 즐거운 모습이라 방해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33
>>1 상냥해ㅋㅋㅋㅋㅋㅋ
35
이장이 마을의 [핫 플레이스]를 이것저것 제시했다. 방파제 길이라던가, 장승터 같은 곳을 얘기했는데 언뜻 바깥을 보아도 안개가 짙어서 별로 당기지는 않았다. 대신 그 날은 마을 주변을 우선 돌아보았다. 의외로 정육점이라던가 다양하게 있었다.
36
마을 이장이 안내까지 도맡아 해주었는데, 중간에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이정연이라고 답했다. 본명은 아니고, 내가 나중에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을 때 쓰려고 생각했던 이름 중에 하나였다. 필명이라고 하던가?
37
필명은 작가가 쓰는 거 아니야?
38
이정연을 검색해보면, 예술인이 한 명 나올지도(笑)
39
그건 그렇고 이장 왜 이렇게 친절해?ㅋㅋㅋㅋㅋㅋㅋ
40
>>38
그렇지 않아ㅋㅋㅋㅋㅋ혹시 나오더라도 나 아니니까 말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
44
약간 지루한 마을을 거의 다 둘러보고 있을 즈음에, 중앙의 당나무 터 저쪽에서 키 큰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장은 마을에 소문난 미친 여자라면서 내게 가까이 가지 말기를 당부했다. 오십 대쯤 되어 보였는데 치마 폭이 넓은 소복을 입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45
…?
46
소복의 산발한 여자라니 이건 너무 뻔하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8
네, 괴담판 오늘의 형편없는 스레 확정.
49
미친 여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냥 지나쳐서 가버렸다. 나, 완전히 무시당했다.
50
>>49
이거 개그스레였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2
>>49
어이어이, 번지수 잘못 찾았다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55
그 날은 딱히 기억나는 이야기가 없다. 저녁에 방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 그날도 세탁기가 밤새 웅웅거렸다. 그 소리에 섞여서 바깥에서 뭔가 깡깡거리는 쇳소리가 두세 번 들려왔던 것 같다. 얼마 안 가 멎었기 때문에 나는 매미 소리가 그렇게도 들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미가 밤에도 울던가?
58
방세는 얼마야?
59
>>55
매미 깜깜해지면 안 울텐데.
60
>>58
식대까지 다 합쳐서 하루에 15000원. 무지 싸다. 참고로 음식 맛도 괜찮은 편.
67
다음날, 본격적으로 이장이 짚어줬던 [핫 플레이스]를 찾아가보려고 했는데 안개가 어제보다 더 짙어졌다. 안개로 뒤덮인 방파제 길은 내가 상상하던 싱그러운 목포 항구와는 많이 달라서 그다지 기분이 안 났다. 그 때 마을 뒤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이 떠올랐는데, 거기 올라가서 안개가 감싸는 마을 정경을 바라보면 정말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장이 추천해준 장소는 구 이발소 뒤쪽으로 통하는 산길이었다. 길이 못 쓰게 되었으니 끝까지 오르지는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적당히 풍경만 감상하고 돌아오려고 마음 먹었다.
68
>>67
'이장이 짚어준 [핫 플레이스]'ㅋㅋㅋㅋㅋ
70
길은 산이라기보다는 산 앞쪽에 야트막하게 나있는 언덕으로 통했다. 약간 걱정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까보다 안개가 좀 옅어진 건지 마을 너머 바다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그 때 사진기를 챙겨오지 않았던 걸 크게 후회했다.
71
휴대폰은?
73
>>71
나, 그 때 배터리 다 되서 휴대폰 삼일 전부터 무용지물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 저번 숙소에서 충전하는 걸 잊어버렸어
74
>>73
바보다
75
>>73
바보다ㅋㅋ
76
>>73
이 무슨 자연인의 극치
79
사실 내 실력에 약간 회의가 있었던 터라 그 때는 그림 도구를 챙겨오지 않았었는데, 그 때만큼은 정말로 누구보다도 그 광경을 화폭에 잘 담을 자신이 생겼던 것 같다. 그만큼 아름다운 장소였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이곳에 올라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83
>>1 멋있어
89
그 날은 매미 소리를 들으며 그냥 그걸 바라보는 것으로 끝났다. 이 각도 저 각도를 재보며 어디서 그릴 건지 정하느라 산이 시작되는 부분까지 걸어들어갔는데, 덕분에 나무에 쳐져있던 거미줄로 옷이 엉망이 됐다. 확실히 거미가 많긴 한 것 같았다. 나무마다 거미집이 하나씩은 있었다.
92
야산에 벌레가 많아.
95
>>92
거미는 벌레가 아니지만.
96
오후 네시쯤 되어서 마을로 내려왔는데, 웬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죄다 몰려서 나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민박집에 계속 찾아와서 인사하고 나를 좋아해줬다. 거의 잔치 분위기였다. 저녁에 음식을 많이 얻어먹었다.
물론, 대부분 해산물이었지만. 나 해산물 별로 안 좋아해.
98
>>96
어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9
>>96
너 너무 소심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0
>>96
이제와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2
술도 좀 마셨던 것 같다. 이불에 누운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보니 머리가 좀 아팠다. 어제의 다짐을 생각하고 일찍부터 가방을 싸서 언덕을 올랐는데, 숙취 때문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난 왠지 화가 나서 도구를 다시 가방에 쑤셔담고 아무렇게나 마을을 나돌아다녔다.
105
술은 만악의 근원입니다.
110
마을 한가운데 당나무 터가 있다고 얘기했지? 그루터기도 아니고 구멍을 파 들어낸 자리에 새 흙을 덮어 생긴 자리였다. 난 거기 서 있었다. 사실 당나무가 서 있던 자리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거기 있을 만한 녀석이 당나무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 가만히 서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나무에 비단을 걸어두고 제사를 지내는 광경을 상상했다. 어촌에 당나무라니 약간 신선했지만, 물고기를 잡는데도 치성을 못 드릴 건 없지 않는가 생각했다.
111
그런데 또 저쪽 끝에서 그 미친 여자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114
뭐라고ㅋㅋ
116
무시당하는 거 아니야?ㅋㅋㅋ 하긴 관심이 생기는 쪽이 더 위험하지ㅋㅋㅋㅋ
117
>>116
아니, 좋지 아니한가. 그것은 사랑.
120
나는 마을 한복판이고 어쨌든 나이 든 여자니까 여차하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겠다 생각하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를 빙글빙글 돌며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하더니, 뭔가를 뿌리는 손동작을 하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당신에게 해신님의 축복을 소원하옵니다!"
124
>>120
이제 장르는 라노벨이야???
126
>>124
뿜었다
127
>>124
50대만 아니었다면… 스읍
130
>>127
야
133
내가 벙쩌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 미친 여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몇 번 더 '해신의 축복을 소원'했다. 마지막에는 "오호라, 신령님, 부디 이 건장한 몸과 정신을 보아 감동하시고 너그러이 용서하여 베푸소서!"라고 소리치고 당나무 터를 한 바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나타나서 기웃거렸는데 약간 부끄러웠다.
134
>>120
위험한 행동이었어, 미친 사람은 보통 사람의 힘을 훨씬 뛰어넘는다구.
136
>>133
부끄러워하지 마ㅋㅋ
141
미친 여자는 그대로 가버렸고, 이장이 나타나서 나한테 사과했다. 색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에 나는 별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마을을 좀 더 돌아다니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가방을 정리하고 내일은 정말로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마음으로 팔레트 나이프의 상태나 물감까지 확인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저녁에도 해산물이었다. 나는 술을 입에 대지 않도록 조심했다.
144
이장 고생이 심해ㅋㅋ
145
다음날 일어났을 때 천장 모서리에서 거미집을 발견했다. 주인아주머니를 부르려다가, 별 소용없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 아침은 생선 찌개였다. 마을에서 정육점을 본 기억이 나서 산에 다녀오는 길에 고기를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11시쯤 주인아주머니에게 밥과 나물을 싸달라고 부탁하여 도시락을 챙겨들고 산길로 갔다. 실망스럽게도 그새 안개가 더 심해져서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두세 시간 동안 이리저리 물감을 놀려보았지만 아무래도 첫 날 느꼈던 그 분위기를 담아낼 수가 없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종이는 찢어버린 뒤 마을로 내려왔다.
156
계속 미루다간 평생 볼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방파제 길로 향했다. 하지만 길에 들어서기 전에 부둣가에 배가 두 척 떠 있는 걸 보고 그쪽에 더 관심이 갔다. 어부 한 명이 홀로 앉아 있기에 다가가 안개에 대해서 물었다. 혼자서도 고기잡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어부 생활을 해왔다는 늙은이는 이제 안개가 너무 자주 들어서 요즘에는 도저히 배를 띄울 게 못 된다고 했다. 옆에 서 있는 다른 배에 대해서 묻자 주인이 없다고 대답했다. 원래 지묘 마을에는 배 두 척이 더 있었는데 예전에 아침 일찍 함께 떠났다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돌아가서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려고 하는데, 민박집에 프라이팬이 있긴 할까 약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고 일어난 첫 날 아침에 생선 구이가 나왔던 걸 기억해내고 아무 걱정 없이 맛있어 보이는 고기 한 근을 샀다. 아주머니는 약간 풀이 상한 모양이었지만 내가 고기를 사온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160
아까 분위기랑 점점 멀어지고 있어. 뭔가 묘한데..
164
>>160
확실히, 다들 조용해졌어.
167
고기가 무슨 맛이었는지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적어도 해산물은 아니었으므로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으로 가려다가, 오늘은 오후에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약간 빈둥거렸다. 11시쯤 되었을 때 벌써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 죽은건가 덜컥 겁이 나서 점심을 서둘러 챙겨먹고 언덕을 올랐다. 안개는 약간 덜한 것 같았지만 여전히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다. 몇 차례 끈질기게 실패를 맛본 뒤에 투정하듯이 스케치를 내려놓고 멍하게 풍경만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다가, 산길의 끝이 어떻게 되어있나 문득 궁금해져서 길을 계속 타고 계속 올라가보기로 했다.
169
나무가 점점 시야를 가리더니 숲이 마을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한참을 더 올라 파도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곳까지 갔다. 바다 매미 소리만 가득한 곳에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한 가구 정도가 살법한 목조 건물이었는데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어서 흉가 분위기를 연출했다.
172
오오, 드디어 뭔가가.
175
가까이 다가가보니 붉은 글씨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부적도 두어 종류가 여러 개 붙어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기분이 나빠져서 몇 발자국 물러서는데, 산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는 서둘러 폐가에서 멀어져 그쪽으로 다가갔다.
176
미친 여자가 이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179
>>176
야야;;; 이 여자 자꾸 어디서 튀어나오는거야;;;;
182
>>176
산속에서 광인이랑… 무섭겠다 그거.
185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렇게 무섭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이런 곳에서 마주치기에는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길에서 벗어나 나무 사이에 숨었다. 미친 여자는 숨도 가지런한 상태로 산길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전에는 그래도 동네 바보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받은 인상은 진지하게 굳은 얼굴이 전혀 달랐다. 분명히 만났다면 지독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여자는 흉가 뒤로 돌아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잠시 바라보던 나는 그대로 길을 따라 내려왔다.
내가 그림을 그리던 장소까지 왔을 때, 걸음을 늦추지 않으면서 아까 미친 여자가 다니는 길이 여기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약간 착잡한 심정에 빠졌다. 그동안 마주치지 않았던 게 행운인 게 아닌지. 저 흉가가 미친 여자의 집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할지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 혼자 있다가 그 여자한테 다시 그 기분 나쁜 굿을 당하면 정말로 불안한 느낌에 사무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까 그 미친 여자가 이쪽을 향해 웃으면서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난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187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188
무서워어어어어어어
190
>>185
위험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93
>> 아까 그 미친 여자가 이쪽을 향해 웃으면서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이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상상되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
난 그대로 밑으로 달음박칠쳐서 마을까지 뛰어내려왔다. 미친 여자는 "우힛! 흐힛!"하는 정체불명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아직도 달려오고 있었다. 민박집에 있는 내 방까지 달려 몸을 던지듯이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갔다. 주인아주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내내 거기에 틀어박혀 있었다.
203
>> "우힛! 흐힛!"
이건 안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4
>>200
"우힛! 흐힛!"
207
주인아주머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이장을 불러왔다. 내가 흉가에 대해서 묻자 이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거길 올라가면 안됐었다는 의미였다. 설명조차 해주지 않았으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자 기분이 나빴다.
218
이장의 말에 따르면, 폐가는 분명히 미친 여자의 집이 맞다고 한다. 원래 그 여자는 마을의 무당이었는데 사고로 딸을 잃게 된 뒤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엾게 여겨 돌아가면서 밥만 챙겨주고 아무도 건드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 흉가에 다가가지 말라고 했다. 안에 들어간 걸 알면 그 여자가 분명히 날뛸 거라면서 말이다.
237
그날 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놈의 세탁기 소리가 거슬려서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244
>>237
세탁기를 매일 밤 내도록 돌린다고? 마을 전체의 빨래를 혼자서 도맡는다고 해도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247
>>237
이거 진짜 이상하다. 세탁기를 밤부터 아침까지 내내 돌릴만큼 빨래를 오래 한단 말이야? 그 아줌마가 중간에 잠에서 깨서 세탁물을 갈거나 하기라도 해?
255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든 나는 오후 두시 쯤에 일어났다. 그림을 그리러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내내 방에 틀어박혀 밥을 먹을 때만 잠시 나와 아주머니를 만났다. 세탁기에 대해서 욕지기라도 한 바탕 하고 싶었지만 묵묵히 삼키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날 생각이었다.
264
그날 밤에도 세탁기는 돌아갔다. 이불에 누워있던 나는 그야말로 집안을 다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의 한시쯤이 될 때까지 나는 고통스럽게도 또랑또랑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눈에는 분명히 핏발이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피곤했는데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목소리도 함께. "고기 잡는 나뭇대에 풍요와 축복을! 풍요와 축복을!"
269
>>264
자기 방이 어디인지 알려줘버렸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72
>>269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74
>>269
와 미친 잠깐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79
창문에서 후드득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창문을 손으로 두들기고 있는 소리라기에는 너무 이상했지만 무서워서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나는 누운 자세 그대로 고개만 들어서 머리맡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그 여자가 웃으면서 창문에 대고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285
>>279
이러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287
>>279
"우힛! 흐힛!"
30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78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지 않는다는게 믿겨지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당장 꺼져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직후 사방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깊은 밤인데도 매미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 마을은 뭔가 이상했다.
283
매미는 밤에 안 우는 거야? 나 분명히 지난 여름에 매미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던 것 같은데.
288
>>283
매미는 원래 밤에 울지 않아. 도시는 밝아서 그럴지 몰라도, 지금 >>1이 말하는 외딴 해안가 마을에 하루 종일 전깃불이 번쩍거린다곤 생각할 수 없어.
295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문지르면서 지금 내가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 건지 파악해보려 애썼다. 단순히 미친 여자 하나 뿐이었다. 내게 한 짓이라곤 일단 헛소리를 지껄이며 주위를 돈 것과 한 번 쫓아내려온 것, 그리고 밤에 찾아와서 창문에 소금을 뿌려댄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내게 무언가 해코지를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평범하게 미친 여자였다. 방금 주인아주머니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종종 있는 일이라 그런 건지 몰랐다. 어차피 날이 밝아오면 떠날 마을이었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달을 올려다보았다.
미친 여자가 아직 거기 서 있었다.
297
우와
299
>>295
진짜 미쳤다
304
>>295
아니야, 사랑!!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309
>>304
너 정신 차려라
311
>>304
어이어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
317
백지 상태가 된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자, 미친 여자는 소금을 펴 보이며 말했다. "도망 못 가, 해신이 이제 너를 알렷다. 인선이가 너를 알렷다! 이제 네 메아리가 이 뿌연 연무 속에 못 박혔것다! 못이 되어 다리에 박혔것다! 신령님의 노여움을 네가 알렷다!" 그러고는 다시 소금을 움켜쥐고 창문을 벌컥 열었다. 그 바람에 창문 끄트머리에 붙어있던 거미줄이 떨어졌는데, 그걸 보자마자 미친 여자가 사색이 되더니 해괴한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소금 바구니를 떨어뜨리고 도망가버렸다.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거미줄을 떨어뜨리려는 모양새로 팔을 휘저어대는 모습이 너무 기괴했다. 나는 주저앉은 상태로 날이 샐 때까지 멍하게 있었다.
338
미친 무당의 말을 단순히 헛소리라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너무 기분이 나빴다. 이 마을에 온 이후로 계속 기분이 나빴다.
주인아주머니가 아침상을 들고 방에 들어오면서 간밤에 대해 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마지막에 무당이 괴성을 지르며 도망갈 때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인선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표정이 굳더니 미친 여자가 하는 말에 대해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가 이장을 찾았다. 인선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이장도 손사래를 치면서 미친 여자가 하는 헛소리라고 얘기하며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
마을을 돌면서 몇 사람에게 그 말을 꺼내보았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상했다.
349
처음에 나는 인선이가 마을의 수호령 이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할 리가 없었다.
마을 회관에 가서 서류라도 뒤져볼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내가 인선이에 대해서 묻고 다닌 그 때부터 사람들의 눈이 항상 나를 쫓기 시작했다. 분명히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부둣가로 걸어갔다. 노인은 그 자리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인선이에 대해서 물었다.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미친 무당의 딸이라고 대답했다. 사고로 죽었다는 그 딸이었다. 무슨 사고였는지 물었더니, 알고 싶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알고 싶다고 얘기했다.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61
…뭐야?
375
뭐야, 다음, 다음은?
389
지묘 마을이라고? 거긴 완전 미친 동네야.
394
>>389
!!!
401
스레주 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도 거기 딱 한 번 가본 적 있어. 거기 민박집 주인 아줌마가 얼마나 미쳤는지 모를걸… 24시간 돌아가는 세탁기에 대해서 말이야. 그리고 금지된 2층 끝방에 대해서도.
405
>>401
뭐야, 뭔데?
408
>>401
맞아. 이 마을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아. 거미 다리만큼이나 많은 끔찍한 이야기가… 난 하나밖에 모르지만, 이미 그런 인상이었어.
하지만 여기서는 내 이야기만 하도록 할게.
415
스레주 왔다!
417
>>408
좋아, 나도 그쪽 이야기는 모르는 것 같아. 다음 스레로 풀어볼 테니, 우선 >>1의 얘기를 들어보자.
432
이대로 떠나버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은 한 순간도 들지 않았어. 이장이 이렇게 말했거든. 어차피 그 무당은 자네 이름도 제대로 모르지 않느냐고. 그러면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할 거라고. 그럼, 이름을 알면 무슨 일을 당할 거라는 소리야? 난 무당이 해신과 인선이가 날 안다며 도망 못 간다고 외치던 그 목소리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
438
>>432
그런 일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게 좋아. 정말로.
444
난 이렇게 생각했어. 이름을 몰라서 해를 끼치지 못한다면, 어차피 그 무당이 내게 저주라도 걸어서 해를 입을 일은 없어. 단지 육탄전일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래서 난 무당의 집에 들어가보기로 결정했어.
449
>>444
너 무슨 생각을 한거야?
452
뭐라고?
454
난 글쓴이가 무슨 과정을 거쳐서 저런 생각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458
무당이 저주라니? 이름을 알면 저주를 걸 수 있다 뭐 그런 생각이라도 하는 거야? 이장은?
459
>>458
뭐야.. 이 마을 점점 이상하다.
460
무당이 어디로 가버렸나 묻자 어젯밤 이후로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했어. 이장과 주인아주머니에게서 내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양새가 느껴졌다. 내가 하루 정도 더 머무르겠다고 하자 기분 나쁘게 안심하더라. 그것도 이상했어.
465
확실히,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라기엔 이장이 너무 친절했어. 오히려 들러붙는 듯한 느낌이었지.
467
목적이 뭐인 거야 그럼?
488
난 그림을 그리겠다는 말을 해두고 곧장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등 뒤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끈적하게 붙어있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내가 숲속으로 사라져버릴 때까지 사람들은 날 쳐다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흉가가 눈앞에 보였다. 여전히 붉은 글씨가 아무렇게나 쓰여져 있었고 부적 쪼가리들도 그대로였다.
491
>>467
"오호라, 신령님, 부디 이 건장한 몸과 정신을 보아 감동하시고 너그러이 용서하여 베푸소서!"
해신의 제물.
495
>>491
어….?
499
>>491
뭐….?
502
>>491
잠깐만
506
>>491
뭐야, >>1을 인신공양하려는 거야?
510
어이어이, >>1은 지금 무사히 돌아와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중이라고. 호들갑 떨지 마.
515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면 사각형의 집 외벽에 돌아가면서 대못이 박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방에 하나씩, 그리고 모서리에도 하나씩 박으려고 한 모양인데 딱 한 군데만 빠져있었다.
528
>>515
"이제 네 메아리가 이 뿌연 연무 속에 못 박혔것다! 못이 되어 다리에 박혔것다! 신령님의 노여움을 네가 알렷다!"
540
이제 의미를 모르겠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48
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붉은 글씨는 더 많아졌다. 부적에 쓰는 문자 같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집안 여기저기를 뒤져보다가 낡아빠진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첫 두어 장을 넘겨보니 무당의 일기였던 것 같다. 흉가 안에서 이런 걸 읽고 있기에는 역시 겁이 났으니까 나는 우선 그것을 품에 넣고 집 안 쪽으로 더 들어갔다.
554
대체 뭘 찾으려고 했던 거야? 거기 왜 들어간 건데? 내가 지금 뭔갈 놓쳤나?
557
아니, 내가 보기에도 스레주의 행동 좀 이상해.
562
젠장… 뭐야 이 상황?
566
집의 구조가 대충 방 하나를 둘러싸고 대여섯 개의 방이 원을 그리는 모양이었는데, 중앙으로 통하는 방문까지 가려면 달팽이집처럼 나선형을 그리며 집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야 했다. 나는 방을 계속 통과하며 점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운뎃방 바로 앞 방의 문을 열었을 때 위에서 뭔가 우르르하고 떨어졌다. 소름 돋는 느낌에 마구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는데, 손바닥을 펼쳐보니 수십 마리의 죽은 거미들이 묻어있었다.
571
>>566
으아아아아아아아
577
>>566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581
아까부터 이 마을 거미가 너무 많아..
589
징그러운 느낌에 숨을 되는대로 내뱉고 있는데, 고개를 들자 이제까지보다 훨씬 큰 붉은 글씨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미줄과 뒤섞여 일그러진 글씨체가 완전히 빨려들어갈 것처럼 날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중앙에 문, 가운뎃방으로 통하는 그 문이 있었다.
뾰족한 못이 그 문 전체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수많은 날붙이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지런하고 촘촘하게 박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아찔하여 토할 것 같게 되었다.
594
와 이거 기분 나빠….
602
나는 손에 입을 가져다대고 뒷걸음질을 쳤다.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광경에 괴리감을 느꼈다. 대체 누가 문에 저렇게 못을 가득 박아둔다는 말인가?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집에서 당장 나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돌아설 때 난 이미 내 앞에 미친 무당이 서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작 몇 발자국 앞이었다.
608
이거 진짜 무서워
624
아무런 발소리도 내지 않고 내 등 뒤로 다가왔다는 것도 믿기지 않지만, 키가 꽤 큰 편이었던 나와 눈높이가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위압감이 가장 나를 놀라고 두렵게 했다는 건 우습고도 이상한 일이다. 늙은 여자 무당은 눈을 크게 뜨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난 완전히 정신이 나가려고 했다. 미친 여자의 눈동자가 곧 천천히 내 뒤편의 못 박힌 문을 향했다. 머리에 혈관이 막힌 것처럼 뜨거워지면서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때가 아니면 안 된다고 미친듯이 확신했다.
그녀가 눈동자를 다시 내게로 돌리는 순간,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 몸으로 밀어젖히고 방문을 향해 마구 달려갔다. 뒤에서 찢어지는 괴성으로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구잡이로 뛰어 흉가에서 내 차까지 뛰어왔다.
630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운전석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렸지만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조금 진정된 뒤에 일기장을 읽었다. 그 미친 무당이 쓴 일기가 맞았다. 추악하고 비참한 내용이었다.
무당은 고기잡이의 만석을 기원하는 제사를 주관해왔다. 그물을 상징하는 토착 거미 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형태였다. 신내림과 같은 연출은 필요 없이 단순히 그뿐이라서, 무당으로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피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선이라는 이름의 딸은 무당의 후계자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당연시하고 있었고, 무당과 인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을에 한 예술가 무리가 며칠 간 다녀간 일이 있었다. 그 때 인선이 그 중 한 명에게 꼬드김을 받아 지묘 마을을 떠나겠다며 마을을 떠들석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풍요의 신을 노하게 하는 일이라며 인선을 그녀의 집 안에 가두었다. 어머니였던 무당도 거기에 함께 했다. 그녀는 처음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남자를 잊어버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뒤를 이어 무당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무당은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악스러웠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체념하고 밤에 딸을 몰래 도망시켰다. 하지만 인선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붙잡혀 버렸다. 무당 후계자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된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여 그녀를 그물에 잡아 가두고 방 안에 감금시켰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수백 마리의 거미 떼를 잡아와 방 안에 모조리 풀어놓았다.
634
우와… 잠깐만.
636
이거 진짜 역겨운 이야기다…
641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녀가 갇혀있는 방을 통째로 봉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 봉인은 무당이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무당이 혹시나 딸을 구해줄까봐 나무판자에 못을 박아 문을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무당이 혼자서 봉인을 진행하는 동안 인선은 방안에서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사흘째 되는 날, 그녀는 '거미 다리만큼이나 많은 이 마을의 모든 악행을 저주한다'고 부르짖었다. 그 뒤로 방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그 다음 내용부터는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일상으로 돌아간 마을 사람들의 행적을 얼마간 기록해둔 것 같은데, 최후에는 거의 글씨조차도 아니게 되었다.
646
미쳐버릴만 하네…
652
나는 이제 글씨를 쓰려는 노력으로만 가득한 페이지를 주르륵 넘기다가 마지막 장에서 멈추었다. 조악하게 흉가를 그린 그림이었는데 각 벽과 모서리마다 이름을 하나씩 써놓았다. 같은 자리에 못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한쪽 면에 이정연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그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노트를 덮고 바다로 달려가 던져버렸다.
660
그거, 분명히 >>1의 필명이었지.
663
와;;; 진짜 소름돋네;; 만약 진짜 이름을 알려줬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686
민박집으로 돌아가 짐을 옮겼다. 이장이 또 찾아왔다. 나는 일기장을 발견한 부분만 제외하고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이 쪽지가 하나 있었다는 식으로 둘러댔는데, 그 그림의 벽 중 하나에 이정연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는 얘길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장과 옆에서 듣고 있던 주인아주머니의 눈빛이 변하는 걸 난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정연은 사실 필명이고 내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이장과 주인아주머니는 다시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그 기분 나쁜 웃음에 나는 온몸에 한기가 들어서 서둘러 방세를 계산했다. 진짜 이름을 알려주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지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친 무당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부주의하게 남의 이름을 흘리고 다녔다는 말인가?
차로 가려던 순간에 이장이 물었다. "근데 청년, 자네 본명이 뭐지?"
난 그 말을 듣고 공포스러워 제정신이 아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이장이 괜한 소리를 했다는 듯이 팔꿈치로 그를 쳤다. 나는 유명해질 때까지는 비밀이라고 농담하듯이 넘겨버리고, 지체하지 않고 차를 타고 지묘 마을을 떠났다.
'다음에 또 찾아주십시오, 지묘 마을' 이라는 표지판을 지나기 전까지, 아니 안개가 자욱하던 무진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차 뒷유리에 달라붙어 있는 꺼림칙한 시선을 떼어낼 수 없다는 기분을 느꼈다.
689
지금도 가끔 바다 매미 소리가 들린다. 보통 매미보다 훨씬 느릿하고, 마치 소금물에 젖어있는 것처럼 눅눅한 음색이다.
692
>>689
간만에 재밌는 이야기였어.
693
메데타시 메데타시.
695
뭐야? 마을 사람들이 전부 한패였다는 거야? 나 잘 이해가 안 돼.
699
>>695
그렇다고 봐야지. >>1을 공양해서 봉인된 거미신의 노여움을 풀려고 한 거야.
708
그 뒤로 아무 일도 없는 거지?
711
>>708
그만, 분위기 깨지말라고. 딱 괜찮은 마무리였어.
713
매미 소리 말고라면, 그다지 없어. 머리 감을 때마다 아직도 죽은 거미가 몇 마리 떨어지긴 해.
714
….뭐?
718
(웃음)
725
괜한 말을 덧붙여서 분위기를 깨지 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28
뭐야? 가짜 이름이었는데도 그 정도면, 진짜 이름이었으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거야?
730
>>728
이봐, 픽션은 좀 픽션으로 받아들이자. 좀?
733
ㅋㅋㅋ나도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 무진으로 다시 찾아갈 거야.
734
>>733
야
736
무슨 속셈이야zzzzzzzzzzzz
740
흉가로 돌아가 내 못을 뽑아버릴 생각이다.ㅋㅋ
748
어이어이, 마무리 왜이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53
어쨌든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마지막 부분이 너무 간결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써지더라. 더 잘 쓸 수 있게 되면 좋겠어. 앞으로 여기 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지만.
758
뭘 하든 화이팅. 간만에 재미있는 이야기 들었어.
761
맞아ㅋㅋ 너 화가 말고 작가해라 작가
765
그리고… 사실 내 이름 이정연 맞아.
안녕.
766
?
769
엥.ㅋㅋ
773
>>765
뭐라고?
776
ㅋㅋ
779
아니 잠깐만. 그러면…..
785
>>779
여기 또 컨셉을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있습니다.
788
애들 진짜 진지병보소ㅋㅋㅋㅋㅋ 소설 잘 읽었으면 됐지
791
아니 이상하잖아? 아까 지묘 마을에 가봤다는 사람 한 명 더 있지 않았어?
793
어?
795
뭐?
799
……..?
…???
805
뭐야 잠깐만.
810
어?
812
부계정 같은 거겠지.ㅋㅋ 진짜
813
뭐야… 스레주 가버렸나
816
>>813
지묘 마을에 가봤다는 또 다른 사람 절묘하게 등장
819
>>813
야야 속이려면 좀 동시에 얘기한다던가 그렇게 해라 아까 너 나올 때도 스레주 잠깐 잠수탔잖아. 너 다른 컴 부팅하느라 늦은거 아녀?ㅋㅋ
823
일이 있어서 따라잡느라 늦었어. 믿든 말든 그건 너희들 자유야.
830
그래서, 스레주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zz
835
본인 재량이겠지만, 아마 다시 돌아가면 그게 본명이었다는걸 마을 사람들이 눈치챌 거야. 이제 절대 못 빠져나올걸… 봉인을 깨지 못하는 이상.
하지만 그게 정말 본명이라면 이미 공양물이 된 거니까 어차피 그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 해. 그 방법밖에는 없겠지.
837
>>835
이제 재미도 없는데 쓸데없이 진지하게 말하네. 1절만 해라
844
그럼 내 이야기는 다음 스레에서 계속 할게. 스레주의 무사 귀환을 빌자구.
846
어? 진짜로?
850
뭐야 왜캐 진지해
861
얘들아? 다음 스레 열렸어
866
뭐야 진짜야?
873
헐
887
…그래서 뭐야? 이거…?
890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