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번호: SCP-908-KO
등급: 유클리드
특수 격리 절차: SCP-908-KO 개체는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조각들로 채운 투명한 보관함에 넣어 격리한다. SCP-908-KO의 이동과 사용은 엄격히 제한되며 대상을 훼손하거나 4등급 보안 인가 없이 사용한 인원은 즉시 징계 위원회에 회부된다. SCP-908-KO를 사용하는 인원은 미끄럼 방지 장갑을 착용하고 대상의 한쪽 면과 대부분이 맞댈 수 있을 만큼 넓은 표면이 최대한 없게 한다.
SCP-908-KO의 격리 실패가 발생하면 무인 드론을 출동시켜 대상을 회수하게 한다. SCP-908-KO-1이 된 물체는 제거되고, 재단 인원이 변칙성에 노출된 경우에는 해당 인원을 임시로 격리하고 상황을 지켜본다. 이후 완전히 그림으로 변화하면 해당 인원을 제거한다.
설명: SCP-908-KO는 현재 7장의 하얀색 A4 종이이다. 개체마다 꼭짓점 한 쪽에 검은색 마커로 OJM이라고 적혀 였다. SCP-908-KO는 일반적인 종이의 내구성을 가져 쉽게 손상을 입힐 수 있다.
SCP-908-KO의 변칙성은 대상의 한쪽 면의 대부분이 어떤 물체의 표면이나 지면에 접촉할 때 나타난다. SCP-908-KO가 놓인 곳을 중심으로 주변 환경이 대상의 변칙성에 영향받는다. 해당 변칙성이 작용되는 구역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장한다. 단, SCP-908-KO가 지면에서 떨어진 물체(책상, 의자 등)의 표면이나 벽으로 폐쇄된 실내의 지면 위에 놓였다면 변칙성이 작용되는 구역은 해당 표면 전체까지만 확장한다. 또한 SCP-908-KO의 표면은 대상의 변칙성에 영향받지 않는다. 문을 여는 방법 등으로 공간을 확장시키면 확장된 만큼의 공간의 표면도 영향받기 시작한다.
SCP-908-KO의 변칙성이 작용하는 구역 내의 표면과 접촉하는 물체(이하 SCP-908-KO-1)는 물 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그 표면으로 빠르게 스며든다. 이때 표면으로 스며든 부분은 원래보다 크기가 약 80% 가량 작아지고 형태가 크레파스나 분필로 조잡하게 그린 모습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SCP-908-KO-1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SCP-908-KO-1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은 아직 없다.
SCP-908-KO-1은 이전과 같은 생리 현상을 보이며 주기적인 영양 섭취를 필요로 한다. SCP-908-KO-1은 다른 개체와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이때 마치 말로 '대화'하는 모습이 관측되기도 한다. SCP-908-KO-1에게서 나온 물질(배설물, 털, 체액 등)은 대상처럼 그림의 형태로 나타난다.
SCP-908-KO-1은 중력의 방향과 관계 없이 2차원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다. 또한 SCP-908-KO-1은 바닥에 놓인 3차원 형태의 물체는 2차원 형태로만 인식한다. 실험 결과 SCP-908-KO-1은 3차원 형태의 물체에서 바닥에 접한 '단면'만을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SCP-908-KO-1은 자신의 감각에 이상은 없다고 표현한다.
SCP-908-KO-1로 변화한 지 약 96시간이 지나면 대상은 서서히 움직임이 느려지고 몸에 마비 증세가 오기 시작한다. 약 98시간이 지나면 대상은 자세가 거의 고정되고, 100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그림으로 변하고 더 이상 생명의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SCP-908-KO의 변칙성은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영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격리 실패 발생시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ΣK급 차원병탄 시나리오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부록 908-KO/A: 2020년 6월 17일 서울마포경찰서로 한 실종 신고가 들어왔다. 실종자는 강세명(당시 29세 여성)으로, 16일 오후 7시 즈음 친구를 만난다고 외출하고는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의 남자친구가 신고한 것이었다. 추후 조사에서 강세명이 명천구의 변칙예술가 단체와 접촉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방재원과 재단의 합동 수사가 이루어졌다.
강세명의 자택을 조사한 결과 그녀의 컴퓨터에서 SCP-908-KO와 PoI-22564를 암시하는 글이 여럿 발견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월 19일
이번에 친구의 소개로 어떤 예술 커뮤니티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변칙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즐거웠고 놀라웠다. 변칙예술은 내가 알던 상식을 뛰어넘는 법칙들로 독창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분야였다. 정말 내 맘에 들었다.
7월에 명천구라는 곳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했다. 들어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동네지만 서울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그저 별명인 걸지도 모른다. 그 전시회에 출품하고 싶은데 한 달 안에 준비가 될지는 모르겠다.
5월 28일
내 스스로 말하긴 그렇지만 아무래도 난 소질이 있나 보다. 취업 준비할 때에는 이리 치여 저리 치이던 내가 여기서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이걸 몰라왔던 게 한스럽다. 재호1한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전시회가 열리면 그때 말해줘야겠다.
전시품 아이디어는 다 짜놓았다. 평소에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꿈 그 자체였는데, 여기서는 뭐든지 가능하니까. 이제 남은 건 제작 뿐이다. 처음 하는 거니 공동작업하는 게 나을려나? 저번에 OJM이라는 사람이 내 계획에 관심을 보이긴 했다. 한 번 제안해보자.
6월 3일
«프로젝트 계획서»
제목: (아직 미정)
준비물: A4 종이, 마법?, 평평한 바닥, 칸막이
내용: 종이에 공간 마법을 걸어 특별한 효과를 지니게 한다. 그후 종이가 놓인 바닥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물체를 그림으로 변하게 한다. 그렇게 그림이 된 관람객들은 칸막이 속 바닥의 그림이 되어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제한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풀려 돌아온다. 짜잔!
유의점: 관람객이 지워지거나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여러 번 연습해야겠다. 또 이런 마법을 구현하는 인물이 중요한데… 다행히 OJM이 도와주겠다고 하여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다. 그나저나 맨날 이 이름으로 불어달라는데 대체 왜일까? 이름에 콤플렉스라도 있는 걸까?
6월 9일
전시품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다. 작업하느라 한동안 바빠 일기도 못 썼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나와 OJM 사이일 것이다.
우리 둘은 서로 가치관이 너무 다르다. 내가 순수한 예술그 자체를 추구한다면, 그는 말 그대로 돈에 집착한다. 예술을 그저 돈벌이 도구로 보는 것 같다.
그러니까 OJM의 말은, 내 전시품을 굳이 전시회에 출품하고 썩히기엔 너무 아깝다면서 자신과 사업 하나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대량 생산해서 팔아먹자는 말이었다. 물론 난 거절했다. 내가 뭐 돈이나 벌려고 미대를 다닌 건가. 물론 돈이 들어오면 풍족해겠지만 용도가 어찌 될지 뻔히 보이는데 내가 승낙할 리가 없는 걸 알 텐데.
어쩌겠나. 좀 기분 나쁘더라도 전시회 때까지 잠시 참아야지. 전시품 준비하려고 데이트 약속이나 동창회도 취소해 왔는데 이제 와서 좌절할 순 없다. 조금만 힘내자.
6월 11일
오늘 테스트를 한 번 해보았다. 처음에는 빈 캔을 종이 위에 올려봤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그 다음 번엔 종이 옆에 놓았더니 서서히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그림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바닥에 그려졌다. 그러고 한 30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이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관건일 건데 어떻게 조절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점은 OJM이 대부분 도맡아 하고 나는 옆에서 도와주고 지시를 내리기만 했을 뿐이다. 이럴 땐 참 고마운데. 이젠 그가 이상한 소리를 할 때마다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누구든 간에 싫은 소리를 하면 무시가 답이라고 누가 그러기도 했으니까.
6월 13일
차차 마무리가 되어간다. 빨리 7월이 왔음 좋겠다. 사람들니 내 데뷔작을 즐기며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잘로 기분이 들뜬다. OJM은 요새 조용해졌다. 며칠 동안 계속 떠들다가 무반응으로 맞서니 이제 포기한 것 같다. 좀 조용해졌다.
슬슬 재호에게도 얘기해줘야겠다. 그동안 어디 가냐고 하면 전시회 얘기만 했지, 정확히 뭘 하는지는 말 안 해줬었다. 재호한테 미안하다. 빨리 오해가 풀리게 전시회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주욱 이대로이길 바란다.
6월 15일
내 작품이 사라졌다. OJM도 사라졌다. 한동안 말이 없던 게 어째 수상했다. 분명 그 놈 짓일 테다. 다 되어가는 밥에 재 뿌리는 자식 같으니라고. 빨리 찾아야 한다. 애써온 내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해버리게 할 수는 없다. 대체 어딨을까.
6월 16일
OJM이 내게 연락했다. 곧 돌아올게. 담판을 지어야겠다.
부록 908-KO/B: 2020년 6월 18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한 화물 창고에서 무단 침입 사건이 발생하였다. 신고자인 창고 주인은 처음 보는 사람이 창고에 있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출동한 경찰은 인근을 수색했지만 그 사람을 찾는 데 실패하였다. 그후 창고 내부에서 단서를 찾다가 방치되어 있던 탁자 옆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과 원래 창고에 없었던 물체들을 발견하였다.
수사 도중 이상한 점이 많았는데, 특히 인근의 감시 카메라에서 창고 주인이 목격한 사람과 강세명으로 보이는 또다른 사람이 각자 다른 시점에 창고로 들어간 것이 녹화되어 있었다. 창고 주인이 목격한 사람은 PoI-22564인 것으로 추정된다.
창고에서 발견된 물체들은 다음과 같았다.
- 불타고 남은 종이와 재. 변칙성은 없었다.
- 휴대용 녹음기.
- 물티슈.
- 라이터.
- 망치. 혈흔 발견됨.
- 빈 가방.
녹음기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기록 시작: 2020/06/18 - 11:29:28]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
음성 1: 아이 씨, 되게 어둡네.
(문 열리는 소리)
음성 2: 아, 왔어? 미안, 좀 멀리에서 만나자고 했네.
음성 1: 그 입 좀 닥치고 물건이나 내놔. 어서. 남의 거 훔친 주제에 당당하다?
음성 2: 잠시만, 잠시만. 일단 그 종이들은 여기 있어. 근데 말야, 몇 마디 말 좀 하고 건네줘도 될까? 진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음성 1: 그때 니가 보낸 메시지 내용과는 다른데? 순순히 준다면서 여기로 오라며?
음성 2: 잠시면 돼.
음성 1: [한숨] 좋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음성 2: 난 네가 우리 커뮤니티에 온 처음부터 네 재능을 알아봤어. 이 종이는 그냥 예술품으로 전락하기엔 너무 아깝고. 용도가 무한 가지로 있을 거야. 그리고 네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듣자하니 취업 준비 때문에 고생했다는데 내 말만 들어주면 그런 일은 더 이상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제발 나와 같이 사업을 해주면 안 될까? 나랑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은 이미 여럿 있어. 그리고 이거 절대로 거짓말 아냐. 진짜로.
음성 1: 말 다했으면 일단 그거 줘. 그 종이들.
음성 2: [한숨] 알겠어, 알겠어. 자. 받아.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음성 1: 잘 좀 던져. 남의 물건을 막 던지고 있어…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
음성 2: 그래서 정말 내 제안이 싫은 거야? 뭐든지 그림으로 만드는 종이에 누가 갖고 싶어하지 않겠어? 생각해 봐, 이젠 그냥 그림 그리고 조각품 깎는 걸로만 먹고 살 순 없어. 정기적인 후원이라도 있어야 걱정 없이 작업에 전념할 수 있다고.
(종이 펼치는 소리)
음성 1: 이제 그만해. 내 작품은 '상품'이 아냐. 그리고 너 말고도 이전에도 여러 사람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었어. 다 거절했지만. 게다가 그렇게 살 거면 진작에 디자인 쪽을 전공했겠지, 왜 내가 순수미술을 했겠어? 난 나만의 길을 걷기 위해 부모와도 연락 끊은 사람이라고.
음성 2: 처음 예술을 접한 놈들은 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지. 그런데 결과는 다 똑같았어. 가난하고 비굴하게 살면서 늦게서야 되돌아가거나, 끝까지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면서 자위나 하지. 너도 그렇게 되고 싶진 않잖아, 안 그래? 제발 좀 현실을 직시하란 말야, 현실을!
(침묵)
음성 1: 말 좀 곱게 해, 이 새끼야. 그리고 난 그런 부류가 아니라고.
(종이가 타는 소리)
음성 2: 뭐야, 너 뭐해?
음성 1: 야, 나는 예술가야. 돈 버는 사업가가 아니고. 내가 그런 짓하려고 미대 나오고 이리저리 사람들한테 치여다녔겠어? 염병할 황금만능주의 세상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가 뭐겠냐고?
음성 2: 자, 잠시만! 그건 나 혼자서도, 너 혼자서도 못 만든다는 거 알잖아!
음성 1: 알아. 이제 미련은 없어. 난 그림을 그리려 했지, 그림으로 돈을 벌려 한 게 아니라고. 계속 그리 나올 거면 차라리 없애버리는 게 낫지. 그리고 너, 그 황금만능주의 성격 좀 버려. 사람 속이 완전히 썩어들었어, 정말.
(종이가 타는 소리)
음성 2: 안돼, 안돼… 저거… [짧은 침묵] 씨발 그럴 거면 그냥 내놔!
(발소리)
음성 1: 왜, 왜 이래?
(바닥에 세게 떨어지는 소리)
음성 1: 악! 이… 이, 이거 놔! 망치는 또 언제 꺼낸 거야?
음성 2: 그냥, 그냥 얌전하게 갖고 가면 되잖아! 왜 그걸 태우고 지랄이냐고! 신경 자극하게시리!
음성 1: 비켜! [둔탁한 소리] 사람을 죽이려들고 있어! 그거 내려놓고 대화를 하자고, 대화를!
음성 2: 좆까 시발! 먼저 사람 자극한 게 누군데?
음성 1: 시발 완전히 미쳤-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
음성 2: [가쁜 숨] 뭐야… 야, 야? 아아- 시발, 시발, 이런 씨이발… 좆됐다…
(커져가는 발소리)
음성 2: 뭐야, 이건? 녹음기? 그럼 아까 게 전부 녹화된 건가? 이거 어떻게 끄는-
음성 1: [신음소리] 야… 야…
음성 2: 우와 씨 뭐야? 살아있었어? [짧은 침묵] 에이 씨, 이건 또 왜 안 꺼지고 지랄이야. 제발, 제발, 꺼져라 좀!
[기록 종료: 2020/06/18 - 11:35:12]
검사 결과 망치의 추에 묻어있던 피는 탁자 옆에 고여있던 피와 DNA가 동일했다. 강세명의 행방은 여전히 불명이다.
부록 908-KO/C: 2020년 6월 29일 강세명의 자택에 누군가 침입하고는 그녀의 컴퓨터 속 어떤 파일을 자신의 USB로 옮기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CCTV 카메라는 알 수 없는 밈적 인자로 인해 고장이 나 범인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해당 파일 외에는 사라진 물품이 없었다. 범인의 지문이나 체모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SCP-908-KO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재단은 해당 사건의 범인을 PoI-22564로 간주하고, 국가초상방재원의 협조를 받아 명천구에서 그를 지명수배하고 행적을 수사하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