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련번호: SCP-895-KO | 보안 인가 적용됨 |
| 격리 등급: 안전 | 담당 부서: 역사학부 동아시아분과 |
특수 격리 절차
SCP-895-KO가 위치한 부지에 재단 요원을 배치하여 민간인의 접근을 감시한다. 만약 민간인이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SCP-895-KO 부근으로 접근할 경우, 적절한 역정보를 내세워 SCP-895-KO와의 접촉을 제한한다.
SCP-895-KO-1을 제외한 발굴되는 모든 유물은 제19K격리구역으로 이송하며, 역사학부 동아시아분과가 전담하여 초상역사적 맥락을 조사 및 연구한다.
허가된 인원만이 SCP-895-KO 관련 실험을 수행할 수 있으며, 결과는 전부 기록되어야 한다.
설명
SCP-895-KO는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 존재하는 세 기의 무덤이다. 나란히 자리한 두 무덤 앞에 별개의 무덤이 조성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양옆에는 동일한 형태의 망주석이 세워져 있다. 오랜 기간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음에도 SCP-895-KO는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이는 SCP-895-KO를 보존하기 위해 강력한 기적학적 의례가 행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 주체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SCP-895-KO는 약 900여 년 전 고려 중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엑스선 판독 결과, 비변칙적인 인간의 유골이 확인된 두 무덤과는 다르게 변칙적으로 개조된 인간형 유기체(이하 SCP-895-KO-A)의 사체가 전방에 위치한 무덤에서 확인되었다. 묘지에 따르면 대상의 본명은 류인홍(柳仁弘)으로, 서기 1121년 향년 76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상에게서 SK-BIO 생물체와의 유사점이 다수 발견된바 세을가 (GoI-013-KO)1와의 연관점이 시사된다. 그러나 정밀 검사를 위해 SCP-895-KO-A를 SCP-895-KO로부터 분리하려는 시도는 후술할 변칙성으로 인해 모두 좌절되었다.
만약 지적 생명체가 SCP-895-KO 반경 5m 이내로 접근할 경우, 대상은 극심한 어지럼증과 함께 간헐적인 환각을 경험하기 시작하며, 환각의 구체적인 내용은 각 망주석과 SCP-895-KO-A와의 거리에 비례하여 세부적인 내용이 변화한다. 그러나 피영향자들은 공통적으로 손가락만 한 뱀 수백 마리가 알에서 부화하는 장면으로 환각이 시작되었다 증언했다. 극히 적은 확률로 SCP-895-KO의 변칙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도 확인되었으나, SCP-895-KO와 물리적으로 접촉2할 경우 무조건적으로 변칙성에 노출되었다.
SCP-895-KO-1은 SCP-895-KO의 각 망주석 아래에서 발굴된 두 문서의 총칭이다. SCP-895-KO-1-1과 SCP-895-KO-1-2로 나뉘며, 각각 왼쪽과 오른쪽 망주석 아래 여러 변칙적/비변칙적 유물들과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 SCP-895-KO-1은 이송이 가능한 타 유물과 달리 SCP-895-KO로부터 약 10m 이상 분리할 수 없다. 만약 그 이상 분리를 시도할 경우, 대상은 검푸른 화염에 휩싸여 소멸하며, 동일한 개체가 본래 매장된 위치에서 재생성된다. 또한, SCP-895-KO-1는 부패의 징후를 나타내지 않는다.
부록 895-KO-가
이하는 SCP-895-KO-1의 내용을 현대어로 번역한 결과물과 각 SCP-895-KO-1 개체와 묶음으로 발견된 주요 변칙 개체를 나열한 것이다. 기록 전문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RAISA에 문의하라.
묶음 895-KO-1-1
개요: 해당 묶음은 SCP-895-KO의 왼쪽 망주석에서 발굴된 변칙 개체의 목록이다.
SCP-895-KO-1-1
사랑하는 아들 [해독 불가]야.
내 네 실력이 언제고 일취월장하는 것을 익히 알아 떠나는 데 근심이 없구나.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내 이승을 뜨거든 네 몫을 남겨두었으니 쉼 없이 정진하여 널리 이름을 떨치거라. 네 선하고 의로운 성향이 많은 이들을 구제할 거라 믿어 내 의심치 않는다.
기억나느냐. 네가 글을 다 익히지도 못했을 때, 너는 네 아호를 지설(止雪)이라 지었지. 눈 내리는 겨울날 저 눈을 멈추어보겠다고 용을 쓰던 네가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지금의 너라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너는 이미 나를 뛰어넘었고,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도사가 되었으니.
허나, 네 성씨가 나와 [해독 불가]의 것과 달라 너희 사이에 불화가 일까 걱정되는구나. 물론 내 너희 우애의 견고함을 익히 알고 있으나, 개소문(蓋蘇文)의 세 아들도 결국 파국을 맞이하지 않았느냐. 이제 너희는 서로밖에 남지 않았으니, [해독 불가]야, 부디 아우와 화합하여 남은 생을 헤쳐나가라.
지정 일련번호: E-112701
설명: 뒷면에 일곱 용이 각인된 청동거울. 해당 문양에 소량의 피를 떨어트리면 어떠한 인물의 안면이 나타나나 훼손이 심하여 상세는 불명이다. 반사면으로 심령독립체를 비추는 게 가능하며, 거울에 비치지 않는 타 변칙 개체 또한 여럿 비출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지적 생명체의 경우 개체의 심상을 일부 시각화할 수 있다. 무속적 의식 침탈 현상의 피해자를 비추었을 때 인간의 신체를 탈취한 영적 실체를 비추었다.
지정 일련번호: E-112704
설명: 기적학적 인발이 새겨진 화입선(畫入扇). 휘두른 방향으로 강풍을 일으킬 수 있으며, 세기는 사용자에 따라 변화하였다. 숙련된 기적술사가 사용할 경우 날씨를 일부 조작할 수 있으며, 주로 강수의 유무에 국한되었다.
묶음 895-KO-1-2
개요: 해당 묶음은 SCP-895-KO의 오른쪽 망주석에서 발굴된 변칙 개체의 목록이다.
SCP-895-KO-1-2
사랑하는 아들 [해독 불가]아.
정말 잘 자라 주었구나. 네가 너의 재주를 저주가 아닌 재능으로 여겨 우는 나날보다 웃는 날이 더욱 많으니, 나 또한 진심으로 기쁘구나. 내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구나. 기억하거라. 너는 괴물이 아니요 다만 참된 사람이니라. 그러니 너 역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이 나 또한 괴물로 태어나 사람으로 죽나니.
내 이승에 남아 너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너는 계속해서 나아가거라. 너의 삶을 살아가거라. 네가 어려서부터 탈춤과 그림을 즐기니, 내 그에 맞게 너의 몫을 준비해 놓았단다. 명심하거라. 너가 그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너는 나의 제자이기 이전에 소중한 나의 아들이다.
그리고, 네 친부에 대하여 내 알아 온 것이 있다. 네가 줄곧 친부모를 그리워하여 내 직접 수소문해 찾아보았다. 직접 가서 만나 보거라. 분명 너를 닮아 좋은 사람들일 거란다. 그들은 [해독 불가]
[해독 불가]
지정 일련번호: E-111602
설명: 비변칙적인 서책. 다수의 초상역사적 사료가 기록되어 있으며, 하 변칙문화군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독 아가(阿伽)와 관련된 내용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이와는 별개로, 사르킥교에 대응되는 내용에 직접적인 수정이 여럿 가해졌으며, 이것이 SCP-895-KO-A로 인한 것인지 혹은 SCP-895-KO-1-2에 기록된 인물로 인한 것인지는 불명이다.
지정 일련번호: E-111605
설명: 표면에 균계가 자라난 가면. 투박하게 조각되었으나 외형상 안동의 하회탈을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면의 균계는 자극할 경우 푸른 포자를 내뿜으며, 일시적인 반딧불로서 작용한다. 착용자는 대부분 심신의 안정을 호소했으나, 극히 일부는 무수한 시체에 둘러싸인 환각을 경험하며 극심한 공황 증세를 보였다.
묶음 895-KO-1-1과 묶음 895-KO-1-2에 의거하여 SCP-895-KO-A의 두 "아들" 또한 기적술사 내지 변칙 개체라 추정된다. SCP-875-KO-A와 마찬가지로 두 개체 또한 현재 생물학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월등히 높으나, SCP-895-KO의 이해도 향상을 목표로 두 개체에 대한 역사적 조사 역시 실시되고 있다.
해당 묶음들이 각 개체에 양도된 유산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SCP-895-KO에 매장된 채로 남아 있는지는 불명이다.
부록 895-KO-나
조사 기록 895-KO-A
기록자: 역사학부 동아시아분과장 김요한
[…]
仁宗七年四月癸酉 長平鎭官婢, 産卵三斗許, 大者如鴨卵, 小者如雀卵, 皆拆出小蛇, 長寸許。
인종 7년(1129) 4월 계유 장평진(長平鎭)의 한 관비(官婢)가 3두 정도의 알을 낳았는데, 큰 것은 오리알만 하고 작은 것은 참새알만 하였으며, 모두 깨지면서 작은 뱀이 나왔는데, 그 길이가 1촌 정도 되었다.
위 내용은 <고려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 관청에서 한 노비가 작은 뱀 수백 마리를 낳았다 기록되어 있으며, SCP-895-KO의 피영향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환각은 해당 내용과 확연히 유사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인 점은, SCP-895-KO-A의 활동 기간이 1045년부터 1121년으로 추정되는 반면 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1129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SCP-895-KO-A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피력하기에는 거진 8년의 공백이 존재하죠. 더욱이 SCP-895-KO-A가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사망한 상태임을 고려하면, SCP-895-KO가 조성된 이후 해당 개체 자체의 변칙성은 완전히 소멸하였다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그럼에도, 최근 시행된 조사는 해당 변칙 현상과 SCP-895-KO-A의 연관성이 전무하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고려사>에 기록된 것과 별개로 여타 초상 사료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었으며, 개중 한 사례는 1045년 창평현, 즉 SCP-895-KO가 소재한 전라남도 창평군에서 발현하였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묘지에 기록된 SCP-895-KO-A의 출생 연도와 정확하게 맞물립니다. 이에 기반을 두어 SCP-895-KO로 인한 환각 현상의 경향을 분석했을 때, SCP-895-KO가 SCP-895-KO-A의 일생을 피영향자에게 투여한다는 결론 또한 내릴 수 있겠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묶음 895-KO-1-1의 유물군과 제19K격리구역에서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 E-11270 사이의 특정한 연관점 역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11270은 온갖 변칙적 식물종 및 균계에 뒤덮인 인간의 시신으로, 부패하지 않으나 신체 전반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습니다. 1943년 이자메아의 야기시타 하야토 중좌가 모종의 외부차원으로부터 회수하였으며, 묶음 895-KO-1-1과 유사한 물품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SK-BIO 생명체와의 공통점은 확인되지 않아 SCP-895-KO-A와의 연관성은 불명이기에,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하는 SCP-895-KO-A의 내력에 대한 별도의 첨부 문서입니다.
수행록
일자: 무자년(1048년) 사월 스무하룻날
내용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차디찬 칼바람에 살갗이 베이는 듯하다. 가리워진 노을이 금번의 일을 속삭인다.
흩날리는 봄꽃이 사뭇 기이하여 빗줄기 벗 삼아 손님의 방문을 기다렸다. 내 수행이 부족하여 그간 번뇌와 마라(魔羅)의 간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니, 일렁이는 저 산등성이 너머 당도하는 자 나의 궁구를 도우리라 고대할 뿐이라.
자고로 번뇌란 마라로 이끌리는 멍에와도 같아, 제아무리 육의 고(苦), 행(行), 명(明), 퇴(退)가 연속되어 하나 되었다 한들 감긴 눈을 어찌 인지할 수 있으랴. 지금도 무수한 마라의 형상이 행자의 눈을 암(暗)으로 현혹하기 위한 손길을 뻗어 도사리고 있거늘, 진인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고 또 두려운 것이라.
무릇 세을가의 길을 걷는 자라면 나누되 나누지 아니하고 가르되 가르지 아니하여야 하니, 내 고승(高僧)에 한없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 이를 가벼이 여긴 적이 없다.
이는 곧 뱀과도 같다. 뱀이라 함은 곧 밀행제일(密行第一) 사을은(沙乙隱) 존자의 상징과도 같아 중생의 업(業)을 재면서도, 사특한 마라의 형상과도 같아 사람을 나락으로 인도한다.
이는 곧 의심과 방황의 상징이다.
폭우로 불어 터진 진창을 헤쳐 당도한 나의 손님은 다만 수백 마리의 작은 뱀이었다. 일 촌 정도 길이의 무수한 뱀이 떼를 지어 이리 기어 오니, 그 기세가 사뭇 처량하여 묵묵히 그들을 맞이했다.
내 이 기이한 무리에게 정체를 물으니 그들이 답하길,
"저희는 창평 땅 류시헌(柳時憲)과 정윤희(鄭允姬)의 아들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흉측한 축생으로 태어난 이래 거진 삼 년을 방황하였으나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였으니, 진인께서 명성이 자자하여 한 가지 간청을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류시헌과 정윤희라면 금슬이 좋기로 유명한 부부로 삼 년 전 결실을 맺었으나 도리어 몇 두의 알을 낳는 비극을 맞았다던 이들이었다. 그 비극의 원흉이 하는 말은 이러했다.
"진인. 저를 다시 빚어 주십시오. 부모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갓 태어나 존재만으로 부모를 해하는 저를 측은히 여기시어, 부모의 곁에서 자식 된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리 부탁드립니다."
그들, 아니 그의 사정이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어 내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그의 간청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마라의 간계로 사랑하는 부모 품에 한 번 안겨보지 못하고 인간의 육이 아닌 짐승의 육으로 체(體)가 산산히 조각났으니, 이 또한 어찌 비극이 아니랴.
내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그는 이름이 없다 하였다. 그리하여 추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질고(仁) 큰(弘)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이름을 인홍(仁弘)이라 지어주었다.
경작은 날이 밝는 대로 진행할 것이다.
내 실력이 미천하여 그의 육을 올바르게 빚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나, 나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의심이 들어차 심신을 괴롭힌다.
지혜로운 선인들께서도 이와 같은 작업을 행하였다 하니, 나 또한 틀린 길을 걷는 것은 아닌 것인가.
근래에 들어 자꾸만 시야가 흐려지는 듯하다. 갓 대덕에서 진인이 되었을 때에는 참으로 오만하였으나, 채 몇 달이 안 되어 이리 방황하고 마는구나. 필시 인홍은 나와 같은 처지라.
잡념은 이만 여기서 끊어낸다.
무자년 사월 스무하룻날 진인 정허인(靜虛認) 쓰다.
부록 895-KO-다
이하는 SCP-895-KO와 접촉한 대상자에게서 추출한 정보를 기록한 목록 중 유의미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피영향자 대부분이 변칙성의 부수적 요인으로 발화에 어려움을 겪었기에, 정보 추출은 JUNG 아키텍쳐 기반 심상 스캐너를 통해 이루어졌다. 기록 전문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RAISA에 문의하라.
내달린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범람하는 빗소리에 묻힌다.
가쁜 호흡. 찢길 듯한 폐와 고동치는 심장. 비바람에 나부끼는 팔다리.
생소하고 이질적인 감각.
환희.
내달린다. 배로 기던 진창을 두 발로 내디디며.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썩은 거목.
우후죽순 피어나 게걸스레 나무를 갉아대는 균의 나래.
어린아이. 울다 잠들어 눈물자국이 선명한 어린아이.
곰팡내.
손에 들린 보따리가 유독 무겁다.
몸이 노쇠하여 시야가 침침하다.
몸이 변하지 않는다. 갑갑하다.
세 살배기 아이일 적부터 성인의 몸으로 살아왔다. 올해로 성년을 맞이했다.
숨이 막혀온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미치도록 답답하다.
오늘 진인을 다시 뵈었다.
사람의 방황이란 끝나지 않는 것이다.
호롱불.
의식이 흐릿하다. 온몸이 피로하다. 벌써 내 나이가 일흔여섯이던가.
두 사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어릴 적과 여즉 다름없는 두 장성한 사내.
자랑스러운 나의 제자들. 나의 아들들.
내 죽거든 고향 땅 부모 곁에 묻어주리.
어머니.
제가 태어난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요.
환호성.
지독한 탄내.
여우의 목을 쥔 손에서 불이 사그라든다.
기뻐하며 감사를 전하는 사람들. 도사 류인홍이 사람 흉내 내는 사특한 여우를 잡았노라고. 금수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었다고.
백저포가 육편으로 물들어 있다. 아버지의 옷은 언제고 생소하다. 처음 육신을 받았던 그날처럼.
여우의 여섯 꼬리가 맥없이 늘어진다.
나 역시 사람 흉내 내는 짐승이 아니던가.
소을촌을 나왔다.
올해로 스물다섯이 되었다. 찬 공기가 폐부를 맴돌다 이내 날숨으로 화한다.
속세로 돌아간다. 방랑하는 나그네가 되려 한다.
진인께 작별 인사를 드렸다.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귀향하는 불효자식의 발걸음은 무겁다.
앞은 짙은 안개가 드리워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아이들과 맷도야지를 잡았다.
오늘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두 얼굴에 역력하다. 천진난만한 그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절로 기뻐진다.
다리가 불편하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나 늙고 싶었는데.
이 아이들 곁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진인.
저는 과연 어질고 큰 사람이었습니까?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