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8654
일련번호: SCP-8654
Level0
격리 등급:
아폴리온
2차 등급:
{$secondary-class}
혼란 등급:
아미타
위험 등급:
치명

fallin

사건-8654 당시 촬영된 디지털 사진. 촬영자 불명.

특수 격리 절차: 현재 재단은 지성체들의 삶을 지속하는 작업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관계로, 아폴리온급 절차에 의거하여 모든 非아미타급 변칙개체는 격리가 불필요하다고 간주한다. 또한 재단의 작업을 보조하는 차원에서 현재 존속하는 모든 지성체는 SCP 재단 0등급 인원으로 여기도록 한다.

제01시간기지에 연락을 취하고자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사건-8654 이전에 뱀의 손에 소속하던 인원에게 따르면 모든 "길"이 기능을 잃었다고 한다. SCP-2000은 작동 가능한 상태이나, SCP-2000을 가동해 행성 인원을 보충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없다고 여겨진다.

SCP-8654 파일에 재단이 아는 모든 안전 위치의 목록을 첨부했다. 사건-8654에서 생존한 인원은 이전 소속을 막론하고 해당 위치로 찾아오기를 바란다.

대전복 당시, 당신은 차를 몰고 퇴근하고 있었다. 모든 일은 숨 한번 쉴 순간에 벌어졌다. 갑자기 안전벨트가 가슴을 꽉 조였고 운전석에서 확 들어올려지는 기분이었다. 핸들을 잡던 손이 훌렁 미끄러지고 — 얼굴이 에어백에 파묻혔다. 당신은 속이 메스꺼워졌다. 귀가 멍해진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당신이 차를 도로 바깥으로 홱 틀어서 배수로에 빠뜨린 모양이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근거리에서 차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운전자가 보였다. 남자는 당신보다 운이 없었다. 의식을 잃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차 안에 떠다녔다. 사지가 차 지붕 바깥으로 펼쳐져 있었다. 지탱할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은 마음을 다잡으려고 차에서 잠깐 나가고 싶어졌다. 좀 가까이 들여다보면 뭔가 보이겠지. 참 날래게도, 본능적으로 움직여서 당신은 차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퍽, 얼굴이 선루프에 부딪히며 으스러지고 코피가 났다. 당신은 당황한 채로 일어서려다, 열린 차문 바깥으로 두 다리를 쑥 내밀어버리고 말았다.

당신의 무게중심이 차 안에서 벗어나고, 몸뚱이가 밖으로 금세 미끄러졌다. 떨어지려는 걸 왼손으로 핸들을 잡아서 간신히 버텼다. 하늘이 위에서 참 맑았다. 아니… 아래에선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오른손을 내밀어 핸들을 붙잡으려 해 보지만,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왼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마지막으로,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여서 당신은 보조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나 사람 한 명 무게를 버티려고 설계된 물건이 아니라 거의 바로 부러졌다. 당신은 나뭇가지 몇 개를 들이받고 지나갔다.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당신은 떨어졌다.

설명: SCP-8654는 동물과 중력의 관계가 역전되는 현상이다. 현재 동물계에 속하는 생물들은 전통적 역학에 따른 중력 현상과 달리 역전된 중력을 작용받아 중력의 원천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즉 위쪽 방향으로 밀려나고 있다.

SCP-8654의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재단이 SCP-8654를 파악한 시점은 2036년 10월 23일 21:38:19에 발생한 사건-8654, 일명 "대전복the Capsize"이 발생했을 때다. 사건-8654 이후 3개월 이내로 기존 세계 인류의 약 97%가 둔력외상, 기존 사회기반시설 파괴, 사회 붕괴 등의 사유가 조합되어 사망했다.

프로젝트 톱사이드TOPSIDE는 SCP-8654를 역전시키고자 하는 재단의 집단활동이다. 제2000정착지가 파괴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무기한 중지되었다.

대전복 이후로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당신은 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의 아파트 바깥으로 펼쳐진 세상은 오늘도 하루하루 더욱 망가져 갔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들려오는 소식이라면 무엇이든 믿었다. 종말이 찾아왔다며 희생물을 종용하는 예언자, 서로 반목하는 공동체, 신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는 양복 입은 수상한 사람들… 차라리 세상 모든 것을 멀리하는 쪽이 나았다.

남은 사람들은 심란했고 고통받았으며 살아남으려고 분투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서 이들을 위안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잃었다. 부모님, 친척, 친구, 연인… 인사를 미처 나눠보지도 못한 당신의 옆집 사람까지. 당신이 아는 사람들은 모두 멀리 살았다. 모두들 살아 있다고 상상하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러는 게 나았다.

저 "SCP 재단"이란 사람들 말로는 이 도시 변두리에 안전한 곳으로 가는 이동수단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지하로 갈 수 있댄다. 음식도 풍부하고 생존자도 많은, 슬퍼하다 돌아버린 미치광이들 따위 없는 곳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곤 어떻게든 그 이동수단까지 가닿는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게추를 타고 떠났고 당신만 여기 남았다. 선택한 일이었다. 남들 발만 묶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눈물 흘리며 당신을 안아주고 길을 나섰다. 그들이 앞으로 오래 살아남아 당신을 잊어주기를 바랐다.

어릴 때 당신은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를 자주 읽었다. 핵겨울, 치명적 전염병, 거대 괴수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는 게 나을지 생각해보곤 했다. 그랬다가 결국엔 슬픈 일들과 세상을 재건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생각하면… 종말에서 살아남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쪽이 낫겠다고 결론지었더란다.

참 잘 살았어, 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창턱에 앉았다. 발 아래 회색 하늘이 광활하게 트였다. 아파트 건물 꼭대기 너머까지, 구름과 비가 이불마냥 드리워졌다. 이 음울하고 서글픈 하루. 죽기 딱 좋은 날씨였다. 당신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몇 주만에 처음으로 신선한 바깥 공기를 즐겼다.

두 눈을 감고, 당신은 살며시 창밖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당신은 떨어졌다.

부록 1: 재단 대응

사건-8654 직후 긴급위협전술대응국(ETTRA)은 전세계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SCP-8654는 즉시 아폴리온 등급으로 지정되었으며, 잔존하는 재단 예산 대부분을 전용해 피해를 완화하는 데 사용했다. 이하 문서는 ETTRA가 자세한 계획을 발표한 공문이다.

위협:

SCP-8654

위협 설명:

중력 역전으로 인류가 위로 낙하함.

단기 대책:

  • 지하 재단 시설들의 목적을 변경해 인구수용지역으로 사용한다.
  • 사건-8654의 생존자와 접촉한다.
  • 생존자가 인구수용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보조하며, 피난처와 물자를 제공하고 대신 노동을 공급받는다.
  • 생존자가 존속할 만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유지한다. 자원이 부족해진다면 재단에게 유용한 기술을 보유한 인원을 우선시한다. 재단에 합류하기를 거절하는 생존자는 허용손실로 처리한다.
  • SCP-8654를 격리할 방법을 발견할 때까지 인류를 존속시킨다.

장기 대책:

  • SCP-8654를 되돌릴 방법을 개발한다. (자세한 내용은 프로젝트 톱사이드 문서 참조)
  • SCP-2000을 가동해 인류를 2036년 10월 22일을 기점으로 재창조한다.

당신은 눈앞에 벌어진 동굴 아가리를 바라봤다. 열한 걸음만 걸으면 저 파랑the blue 속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철컥, 등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열.

참 처형법치고 알뜰해, 당신은 생각했다. 좋은 고기를 낭비한다 싶지만, 저 "문명을 지키는" 터널쟁이들은 그런 방법까지 동원하고 싶어하진 않았다. 그냥 자기들이 긁어모든 곡물이며 당근이나 까먹으면서 구원을 목빠져라 기다리겠지. 씨발 몇 년 전에 저놈들 초대 뿌리쳐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홉.

뭐 당신도 그렇게 기꺼이 뛰어내려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멸망해버렸다. 그때 그 순간에 당신은 집안에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당신은 천장에 널브러지고 혼자가 되었다. 예전의 당신은 아이들과 함께 떠나버리고 새로운 당신이 탄생당하고 말았다.

여덟.

옛날의 그 교단이 하는 짓은 끌리긴 했다. 하지만 충분히 그놈들하고 어울려보니 진짜 정체는 사실 따로 있었다. 동반자살 동아리. 사람들은 자신의 피할 길 없는 죽음에서 의미를 찾기를, 혼자 죽지 않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준비를 마치자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두 한데 모여 설교와 놀자판을 열고는 손에 손 잡고 파랑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곱.

다른 해법은 분명 있었는데, 당신은 생각한다. 대전복 때 그냥 죽었어도 되는데. 그놈의 발목만 접지르지 않았어도 마당에 같이 나갔을 텐데. 무서웠겠지만 또 빨랐겠지. 하지만 무언가 당신을 살아남는 길로 이끌었으니 살아야만 했다.

여섯.

그때, 재단이 나타나서 모든 길을 꼬아버렸다. 살아남은 사람이면 누구든 동굴이며 터널로 끌고 들어가서는 세상이 아직도 똑같다고, 지금 이후로도 삶은 남았다고 들이밀었다. 이 물구나무 선 세상에서 어떻게 되어먹은 놈이 자식을 키우려고 드는데?

다섯.

인류가 멸망하며 당신의 인간성도 죽어버렸다. 당신은 단독생활동물이 되었다. 생존이 곧 게임이요, 당신은 탁월한 게이머였다. 하지만 먹을 것이 귀해진 세상이기에 직접 주우러 다녀야만 했다. 터널쟁이들은 지표면에서 어떻게 밭을 갈고 곡물을 길렀다. 당신은 먹을 것을 찾고는 필요한 과일과 채소를 챙겼다.

넷.

어느 날, 당신은 여느 때처럼 밭을 털던 중 곡물을 보살피던 농부와 마주쳐버렸다. 농부가 가진 무게추는 당신보다 성능이 훨씬 좋았고, 당신이 고기를 먹은 지는 정말 오래됐다. 뭐 지금까지 한번도 안 넘었던 선도 아니고.

셋.

알고 보니 터널쟁이들은 감시 카메라를 달아 곡물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단지 당신이 지금까지 챙겨가던 양이 굳이 쫓아가서 멈춰세울 자원보다 값싸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를 죽인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밖에. 당신을 체포해서 처형할 가치는 충분했다.

둘.

그런데 그냥 머리에다 총알을 꽂아넣으면 안될까? 굳이 줄 없이 파랑으로 뛰어드는 의식까지 치러줘야 할까? 당신은 고개를 돌려 터널쟁이들을 바라봤다. 동굴 아가리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사람들이 뒷걸음질쳤다. 모두 겁먹은 눈으로 파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 죽을 사람한테 나오는 표정.

하나.

아하. 당연히 너희도 무섭겠지. 지표면 애착자로서 당신은 참 오랫동안 파랑 위에서, 그러나 몇 년 바위 위에서 지내며 태양을 싫어하는 법을 배울 줄 알았다. 이런 처형의 목적은 당신이 겁먹는 게 아니었다. 저들이 겁먹는 것이었다. 게임에서 질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들. 당신은 웃음기를 띄웠다가 최대한 크게 웃었다.

도약.

그리고 당신은 떨어졌다.


부록 2: 연대표

재단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SCP-8654를 역전시킬 방법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하는 SCP-8654를 격리 및 완화하려는 재단의 활동과 관련된 주요 사건을 열거한 목록이다.

  • 2036: 사건-8654 발생. 인류 약 20억 명이 즉사했다. 재단은 세계 각국의 다수 지하시설에 임시 수용시설을 구축하고 생존자들과 접촉했다. 기적학 전문지식을 지닌 여러 생존자들이 프로젝트 톱사이드를 지원하고자 제2000기지로 옮겨왔다.

  • 2037: 날지 못하는 동물 대다수가 멸종해 환경이 붕괴한데다 식량을 수확하기까지 시간이 부족하고 생존자를 정착지로 데려올 자원이 상당히 고갈되어, 이 해 겨울이 특히 혹독하여 기존 생존자의 25%가 굶주리거나 질병에 걸려 사망했다.

  • 2038: 다수 정착지에서 비필수 인원의 연령을 65세 이하로 제한하는 정책을 실시하며 격론이 벌어졌다. 제01정착지가 소멸했다. O5 평의회의 위치를 이사관 평의회가 대체했다.

  • 2039: 前 혼돈의 반란 요원들이 다수 기지에 걸쳐 연령 제한 정책을 비롯해 여러 기지에서 실시하는 사회정책에 반발한다는 명목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은 진압되었으나 혼란 속에 수많은 정착지들이 상실되었다.

  • 2040: 정착지 대다수가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 논란 끝에 앞으로 새로 구조되는 생존자는 재판소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입장을 허가받는 정책, 일명 "아기 거북이 정책"이 실시되었다.

  • 2041: 범정착지 통일 교육과정이 수립되었다. 해당 커리큘럼 상에서는 날씨를 가르치는 내용을 배제했다.

  • 2043: 인구가 증가하며 다수 정착지에서 공간 부족을 절감했다. 해법으로 터널을 뚫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 2045: 외계에서 온 UFO가 제23정착지 주변 지표면에 추락하며 외계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해당 UFO는 외계에서 오지 않은 비변칙적 개체로 규명되며 제2000정착지로 이송되었다.

  • 2048: 제96기지에 "관리자"를 자칭하는 사람이 출현했다. 재단 기록에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기록이 부재한 관계로, 이사관 평의회는 이자를 위험인물로 판단하고 제17정착지에 수감했다.

  • 2050: 인구 밀집도 상위권에 머무르던 제43정착지가 폭발했다. 구조된 생존자는 전무하다.

  • 2053: 제19정착지가 우주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발로우 이사관은 인류가 별들을 탐험해야 한다는 열망을 표시했다.

  • 2054: 최초의 "거꾸리Topsy-Turvy" 세대(사건-8654 발생 10년 이내로 탄생한 세대)가 18세가 되었다.

  • 2055: 기근이 닥처오며 제19정착지가 우주 프로그램을 취소했으며, 예산은 전부 터널 개발비에 전용했다.

  • 2059: 제17정착지가 아무 이유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 2061: ETTRA 국장 댄 대니얼스 박사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했다. 전례가 없는 상황이므로 일단 이사관 평의회의 다수결 투표로 후계자를 지명했다.

  • 2062: 다수 정착지가 시민들이 지표면으로 올라갈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지하 농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 2064: 제19정착지가 출입구를 봉인하고 다른 재단 정착지와 연락을 일절 차단했다.

  • 2070: 프로젝트 톱사이드가 최초로 예산이 삭감되었다. 다수 정착지, 특히 노령 인구가 많은 정착지에서 이 결정을 거부하며 독립을 시도했다. 정착지들 사이에 갈등이 공개적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 2071: 다수 정착지가 폭력의 위협을 모면하고자 저마다 출입구를 봉인했다.

  • 2074: 제2000정착지가 기습을 당해 위협받자 독립파가 항복했다.

  • 2079: 지진이 일어나 제87정착지 터널에 두루 걸쳐 균열이 벌어지면서 인구의 약 90%가 사망했다. 다수 정착지가 터널을 더 깊이 굴착하기로 결정했다.

  • 2085: 애팔래치아 석탄 광산에서 인구 20,000짜리 생존자 공동체가 발견되었으며, 재단의 통치권을 인정하기를 거부하여 모두 처분되었다.

  • 2089: 제19정착지가 다시 출현해 재단 나머지 정착지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발로우 이사관이 현존하는 정착지들 사이에 국제적 터널을 놓기를 제안하며 세부 계획까지 제시했다. 해당 계획에 힘입어 국제고속터널네트워크(International High-Speed Tunnel Network; IHSTN)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 2090: 재단이 지표면을 일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사관 평의회는 찬성 124표, 반대 3표로 프로젝트 톱사이드 관련 자금 85%를 IHSTN 건설비로 전용했다.

  • 2092: 변칙적 굴착·건설 기술을 이용한 끝에 인구 50,000 이상인 모든 정착지가 고속 레일로 연결되었다.

  • 2096: 모든 정착지가 IHSTN으로 연결되었다. 완공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발로우 이사관이 심장마비를 일으켰으며, 머지않아 사망했다.

  • 2098: 터널 굴착 작업자 여러 명이 갑자기 직장을 잃어 좌절했다가 스스로 정착지를 세우고자 시도했다. 이들의 처형 과정은 후속 반란을 방지하고자 재단 운영 매체에서 집중 보도했다.

  • 2100: 전세계에서 새로운 세기의 출발을 기념하고자 자정에 모두 함께 물구나무를 섰다. 매년 새해를 축하하는 새로운 전통으로 삼자고 제안되었으나, 2101년에 다시 유행하지 않았다.

  • 2101: 거꾸리 세대 최초의 인물이 연령 제한을 맞으며 처분되었다.

  • 2102: 강력한 반발이 잇따르며 연령 제한이 75세로 상향되었다.

  • 2107: 제2000정착지가 함몰되면서 파괴되었다. 프로젝트 톱사이드가 무기한 중지되었다.

  • 2109: 전세계 인구가 7천만 명을 돌파했다.

  • 2113: 사건-8654 이전에 태어난 마지막 비변칙 인류인 재스퍼 윌리엄스Jasper Williams 박사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내일 당신은 죽는다. 64살 먹었으면 죽을 준비하는 시간은 충분히 즐겼다. 내일이 바로 만 65세가 되는 날, 당신의 기일이었다. 실컷 박수받겠지. 당신의 기일을 기념해서 잔치를 열고 유언 몇 마디 남길 기회를 주고. 그러면 죽는 방으로 이동해서, 공기가 혼탁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다 기절하고. 그러면 끝이다.

지금 와서 당신은 청소년 시절의 삶을 떠올려본다. 대전복 직후에 다들 피골이 상접하던 모습… 그랬는데 이렇게나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다니 미처 예상하지도 못했다. 수십 년간 봉사했던 당신에게 재단이 감사를 표시할 마지막 기회랄까. 이제 당신의 정착지는 배를 곯을 수준은 훌쩍 넘어서는 자원을 확보했다. 초기의 겨울 같은 기근은 걱정할 필요 없어졌다. 그리고 당신은, 과감하게 파랑 속으로 뛰어들어 정착지로 식량을 가져다준 영웅 중에 하나였다. 당신은 농부였고 구름만지미cloudtoucher였으며, 그 사실이 미치도록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은퇴할 자격이 충분했다. 다만 남은 것이라면 한 가지, 마지막 소원이 있었다. 당신은 해가 뜨는 모습이 다시 보고 싶었다.

그날 밤늦게 당신은 처소에서 빠져나왔다. 당신과 같이 사는 사람은 없다. 배우자는 2년 전에 65세를 맞이했고 딸은 사위와 같이 정착지 저 다른 편에 살았다. 이런 시간에는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다. 당신은 복도 돌길을 지나 "무게추"라고 쓰인 문앞에 닿았다. 문이 잠겼지만 당신의 열쇠는 여전히 맞아들어갔다. 무게추는 원래 보안이 그렇게 엄중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개 파랑 속을 내려다보는 것부터 무서워하느라고, 아예 그 속을 걷기는 엄두를 못 냈으니까.

무게추counterweight는 커다란 금속 프레임에다 밑에 물탱크를 설치하고 위에는 바퀴를 단 도구였다.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하네스를 차면 무게중심을 물탱크 위로 고정해서 머리가 어지럽지 않은 채로 계속 수직으로 서서 지표면 위를 걸을 수 있었다. 무게추를 차고 움직이려면 밑바닥에 달린 페달에 발을 결속하고 손으로 레버를 조작해서 위에서 프레임이 움직이는 대로 "걸으면" 되었다. 물탱크에는 물을 채워서 프레임의 무게와 함께 사람 위의 땅 쪽으로 하중을 제공해 사람이 무사히 파랑 위의 지표면을 걸을 수 있었다.

당신이 골라 찬 무게추는 은퇴할 때까지 항상 사용했던 오랜 그 무게추였다. 쓰지 않아서 구석에 먼지가 쌓인 지 오래였다. 구름만지미는 기본 예절삼아 남의 무게추를 쓰지 않았고, 아무도 당신의 무게추를 새로 차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신은 물탱크에다 물을 채웠고, 이윽고 무게추가 당신보다 무거워지며 당신의 몸을 천천히 천장 쪽으로 당겼다. 안전을 기약하는 차원에서 당신은 50파운드를 더 채웠다.

무게추가 당신을 천장까지 착 붙여다주자, 당신은 방에서 걸어나와 복도를 지나 정착지 출입구를 거쳐 바깥으로 나온다. 밤하늘이 저 아래 펼쳐졌다. 새카만 심연이 반짝이는 별을 바닥에 주루룩 깔아둔 채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하늘 한켠에, 해가 나오는 자리에서 빛이 어렴풋하게 비져나왔지만은 아직 지평선 아래로 푹 파고들지는 않았다. 당신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대전복 이후로도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을 해가 "뜰 때"라고 부르다니. 언어란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오랜 습관의 산물이랄까.

태양이 나올 때까진 시간이 좀 남았으니, 당신은 짤막하게 밭을 걸어보기로 했다. 따뜻한 여름밤, 작물들이 수확할 때는 아니지만 참 많이 자랐다. 바깥으로 나와 그 모습을 보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곡식을 기르느라고 땀 뻘뻘 흘리며 일하던 지난날들… 무언가 책임을 맡아 일하는 것만큼 나은 삶이 있을까? 초기 겨울은 정말 악몽같았다. 이제는 그 시절을 공연히 떠올려대지는 않았지만 허기만큼은 아직도 기억했다. 먹여야 할 사람이 너무 많은 것, 정말 크나큰 문제였다. 작업에 몸을 실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없었다. 뭐 당신은 몸을 실을 수 있어서 다행이랄까. 그렇게 당신은 매일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파랑 속으로 담대하게 뛰어들어 모든 사람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때, 무게추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움직이기 너무 쉬웠다. 페달이 발에 걸릴 때 어느 정도 저항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무게감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당신은 멈칫했다. 위에서 뭔가 졸졸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당신은 불안한 마음으로 뒤로 손을 뻗었다. 가는 물줄기가 손에 잡혔다. 당신의 물탱크, 몇 년은 손대지 않은 오래된 물탱크가 물이 새고 있었다. 파랑의 위쪽으로 당신을 잡아주는 무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줄어드는 중이었고.

당신은 황급히 페달을 놀려 정착지로 돌아가려 했다. 애초에 바깥으로 나온 것부터 실수였다. 당신이 여기로 나왔는지 아는 사람도 없을 테고, 떨어지기 전에 구해줄 사람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무게추가 서서히, 흙에서 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며 당신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잽싸게, 또 절박하게 당신은 옥수수대를 붙잡으며 땅으로 달라붙으려 했다. 잠시라도 옥수수대와 무게추가 몸무게를 버텨주겠지. 적어도 생각할 시간은 벌었지만, 버티기가 점차 힘들어져만 갔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둘러보는 사이, 벌써 태양은 지평선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지평선이 불타는 주황빛으로 물들고, 구름 사이로 희미하니 파랑이 비쳐왔다. 기이하게도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물이 졸졸 흘러오르는 소리마저도, 마치 노면을 흐르는 비처럼 편안하게 들렸다. 당신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게 운명이었을지도 몰라. 어쨌거나 오늘은 당신의 기일이었다. 구름만지미한테 이보다 더 적당한 죽음이 있을까?

당신은 옥수수대를 놓았다. 그리고 땅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무게추를 벗어던졌다. 프레임이 위로 떨어져 땅에 와당탕 부딪혔다. 이것까지 파랑으로 같이 들고 가면 자원 낭비지. 게다가 이러면 다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테니까. 도망쳤다고 생각하면 그게 더 그렇잖아.

그리고 당신은 떨어졌다.

부록 3: 프로젝트 톱사이드

프로젝트 톱사이드 개요

프로젝트명: 톱사이드

프로젝트 목표: SCP-8654를 역전시켜 중력을 정상 상태로 되돌림.

프로젝트 세부사항:

  1. 중요한 변칙적 지식을 보유한 인원(특히 기적학 및 변칙역학 지식을 보유한 자)을 가능한 대로 전부 제2000정착지에 배치한다.
  2. 해당 위치에 모인 전문가들이 SCP-8654를 되돌릴 방법을 창안해낸다.
  3. SCP-8654를 역전시키는 작업을 재단의 전체 과제 중 2순위로 간주하며(1순위는 지성체의 삶 보존임), 제2000정착지는 해당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만큼 자원을 제공받는다(그 기준은 O5 평의회 이사관 평의회가 결정함).
  4. SCP-8654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하면 SCP-2000을 이용해 전세계를 2036년 10월 21일 00:00의 상태로 되돌린다.

프로젝트 업데이트: 2107년 7월 10일, 제2000정착지가 함몰되면서 정착지 전체와 프로젝트 톱사이드에 관련된 모든 정보가 파괴되었다. 이사관 평의회의 만장일치 결정으로 프로젝트 톱사이드는 향후로 무기한 중지한다.


71년이다. 칠십일, 년, 이다. 프로젝트 톱사이드는 시작할 때는 다들 3에서 6개월이 걸리겠거니 예상했다. 아무리 길게 예상해봤자 몇 년이었고. 그랬는데, 제2000정착지에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도 71년이나 걸려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늘 당신은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SCP-8654를 역전시킬 방법이 성공리에 발견되었다고. 이제 마침내 세상을 똑바로 돌릴 수 있었다. 모두들 환호하는 사이, 당신은 사무실로 달려갔다.

여기서 일하면서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제2000정착지 이사관 사무실은 들어올 때마다 섬뜩했다. 사무실은 제2000정착지 가장 바닥, 지표면 밖으로 쑥 나온 자리에 있었다. 사무실 바닥은 커다란 창문으로 이루어졌으며 중앙에 책상과 의자를 박아놓았다. 이사관에게 세대가 지나면서도 나날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 바로 지표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 주는 설계였다. 오늘날 살아남은 사람은 대부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밤하늘 반짝이는 별 하나 보지 못했다. 그걸 당신은 매일같이 내다봤고. 물론, 뭘 상징하는지는 아주 잘 이해했지만, 여기서 바깥을 내려다보면 항상 아찔했다. 발밑으로 바로 파랑이 덩그러니 놓였으니. 논리적으로는 유리가 몸무게를 지탱해 주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폭탄은 가져와야 금이나 갈 테지. 그래도 마음속 유치한, 원시적인 한 구석에서는 걱정이 남아 있었다. 너무 길게 가진 않았지만.

이제 방송해야 할 최고 순위 신호가 있었다. 즉각 이사관 평의회 비상회의를 열어야 했다. 당신은 컴퓨터 앞에 앉아 신호를 보내고, 다른 이사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에 잠겼다. 모든 정착지가 다들 저 위에 있는 사람들처럼 축제 분위기겠지! 톱사이드는 논란이 나날이 커지는 프로젝트였다. 예산은 매번 삭감되기 일쑤고 이제는 성공할 가망을 기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팀이 마침내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증명해냈어! 드디어 나가는 길이 열렸어.

이윽고 메시지 요청이 들어왔다. 신나서 클릭해보니 제19정착지 이사관 윌리엄 플래트William Platt의 수척한 얼굴이 나왔다. 표정이 참 음산했다. 마치 방금 들어온 소식을 못 믿겠다는 듯이.

"안녕하십니까, 엘Elle 이사관. 정말 이렇게 메시지를 주신 게 맞습니까? 거… 거기서 성공했다고요?" 플래트 이사관이 깊고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하나 삼키고는 목구멍에서 올라오지 않게 꾹 버티는 듯싶은 분위기였다.

"맞아요. 아 하느님, 맞다구요. 해냈어요 플래트, 드디어 성공했어요!"

플래트 이사관이 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하는 빛이 문득 얼굴에 스쳤다가, 다시 음산하게 다짐하는 듯 굳은 표정이 돌아왔다. 당신은 왠지 가슴이 철렁했다.

당신이 물었다. "플래트? 뭔가 잘못됐어요?"

플래트가 말했다. "아니요. 잘못된 것 없습니다. 그쪽에서는 지금 축제가 열렸겠지요?"

당신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요… 혹시 뭔가 잘못된 게 있을까요? 이 순간을 70년 넘게 기다려 왔잖아요."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거기 가보시죠. 함께 계세요." 플래트의 목소리가 뭔가 당신에게 미안하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아니 왜 그렇지? 수십 년 실패를 거쳐왔지만 이제 드디어 — 철컥, 머릿속에서 무언가 맞물렸다. 미치도록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저들이 왜 굳이 지금 힘을 포기하려 들까?

당신은 충격받아 뭐라도 말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플래트 이사관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당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부끄러움이 새어나왔다. "미안합니다 이사관.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고, 메시지가 끊어졌다.

당신은 일어서서 양손으로 얼굴을 싸매쥐었다. 상황이 도저히 실감이 안 났다. 그리고 오랜 습관에 따라 유리 위를 서성거리는 그때 커다란 철컥 소리 그리고 콰광. 당신은 폭발력에 밀려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책상은 산산조각나 있었다. 계속 자리에 앉았더라면… 하지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할 수가 없었다. 빨리 다른 컴퓨터를 찾아 누군가에게라도 알려야 했다. 저 밖의 누구라도 이 악몽을 보면 당장에 끝내려고 하겠지.

당신이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희미하게 찌직 소리가 들러왔다. 손바닥에서 유리창으로 타고 거미줄이 솔솔 흘러나왔다. 유리에 금이 가고 있었다. 폭발이 여기까지 미친 모양이었다. 한번 몸무게를 잘못 옮기거나 움직임이 강렬하면 다음에 당신은 떨어졌다. 유리창 너머로 저 아래로 뻗은 나무 꼭대기가, 그 밑으로 파랑이 보였다. 참 맑은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일단 유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당신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일어서려 그러면 위태롭겠지만 기어가긴 충분하지 않을까? 골반을 앞으로 밀어내려고 양 무릎에다 살짝 압력을 주자, 뒤에서 유리가 또 찌지직거렸다. 몸무게가 실리는 대로 금이 퍼져나가는데 대부분이 무릎에 걸려 있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신중하게 움직이면 바닥이 부서지는 일까지는 모면하지 않을까. 좋아, 해보자.

당신은 한 다리를 지렁이가 기어가는 만큼이나 천천히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가 살포시 한 뼘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유리는 더 우렁차게, 더 빠르게 쩌적댔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됐어! 당신은 다른 다리로 이 과정을 반복하려 했다. 다시 한 뼘 나아가는 찰나, 커다랗게 때앵 금속 소리가 들리더니 몸 아래에서 금이 갑자기 격렬하게 퍼져나갔다.

젠장. 바닥이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당신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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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제 후임자님.

정말 무거운 마음으로 이 메시지를 당신께 드립니다. 저는 이 글로 제가 예전에 알던 세상으로 돌아갈 희망을 모두 접었음을 알립니다.

대전복 이전에 재단은 사악한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한창 젊은 여자였는데도 알 수 있었죠. 우리끼리는 스스로 그렇게 악독해질 가치가 분명 있다, 이 세상을 구하려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 말하곤 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제가 실제로 믿는 만큼보다 훨씬 더 깊이 믿고 싶어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상관없었고요. 세상은 어쨌거나 멸망해버렸으니.

당신이야 저같은 늙다리한테 세상은 옛날에 어땠네 하고 자주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이 죽어가는 여인이 추억을 늘어놓는 모습쯤은 가엾게 여겨주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햇빛 화창한 날에, 하늘의 아래에 서서 따뜻한 기운을 얼굴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밖에 나가 걸을 때 난데없이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실내로 들어왔을 때 저는 옷이 흠뻑 젖은 채로 덜덜 떨고 있었죠. 어릴 적에는 눈 내리는 겨울이 좋았습니다. 눈 천사, 눈사람, 눈덩이, 뭐든지 만들면서 놀았습니다. 또 따사로운 밤에는 풀밭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이 몇 개 떴는지 세어보곤 했습니다. 아아, 별이 정말 그립군요.

그러나 그런 나날은 끝났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어도 모두 과거에 잠들었죠. 대전복이 일어난 직후에는 물론 당연히 우리가 세상을 다시 뒤집으려 노력할 만했습니다. 그 비밀을 1년 안이라든가, 길면 2년만에 찾았으면 바로 SCP-2000을 가동하고 온 세상을 기억소거해서 유유히 정상 생활로 돌아갔겠죠.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세월이 흘러갔고, 그동안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파랑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터널을 팠습니다. 저는 이사관 평의회에 막 발을 딛을 때 대책도 없는 몽상만을 즐겼습니다. 젊은 시절의 세상을 상상하며 거푸집 삼아 세상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본을 떴습니다. 시간이 지나 보니 제가 얼마나 순진해 빠졌는지 여실히 깨닫습니다.

후임자님,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톱사이드를 성공하도록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전복 이전의 인류를 재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지 생각해보십시오. SCP-2000은 그 시점의 인류만을 재현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태어난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전 지구의 인구량을 생각한다면 재단에게 남을 현실적 해법은 하나뿐입니다. 제가 믿건대 분명히 그 해법을 실행할 테고요. 우리 자식 세대가 대전복 이후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는 모습은 차마 보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톱사이드를 단번에 멈춰세울 수는 없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조용히, 영예롭게 죽음을 맞이해야 해요. 사람 위에 펼쳐진 하늘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 프로젝트가 피 흘리며 죽어가도록 하세요. 그때 멈춘다면 인기는 못 살지언정 평화가 만연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무슨 잔인한 기억으로 프로젝트 톱사이드가 알아서 멈추기 전에 성공해버린다면 즉시 행동에 나서기 바랍니다. 성공하는 순간에 엘리스Ellis 이사관이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테죠. 메시지를 받는 대로 엘리스의 책상에 숨겨둔 폭탄을 기폭시킨 다음, 제41정착지에서 준비한 핵탄두로 제2000정착지를 파괴하세요. 그쪽 정착지 이사관도 이 계획을 아니 은폐해줄 겁니다.

이런 계획이 재단의 원칙을 배반한다고 생각하실 줄 압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재단은 이 세상을 안전히 지키기를 목적으로 자처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정상성을 고수하는 데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계획은 지금 여기의 정상성을 71년 전의 정상성보다 우선시할 뿐이고요. 또다시 대전복이 닥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인류는 한 번을 간신히 살아남았는걸요.

행운을 빌며,
제19정착지 이사관
아멜리아 발로우Amelia Barlow


그리고 바람이 당신의 귓가에 소용돌이쳤다.

온몸이 돌아가며 팔다리가 나부꼈다.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져갔다.

공기가 희박해졌다.

정신을 잃었다.

땅이 너무나도 멀어졌다.

옷에 불이 붙었다.

당신이 환하게 타올랐다.

살이 녹아내리고 거품지고 타들어갔다.

갑자기, 너무나도 추워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영원히 떨어졌다.

평가: +1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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