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858-KO

일련번호: SCP-858-KO

등급: 유클리드(Euclid)

특수 격리 절차: 제04K기지는 D계급 반란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 최신화된 인원 관리 지침을 실행한다.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제04K기지에 구류된 D계급 인원과 합숙한 모든 인원은 타 기지로 전출될 수 없다.
  • D계급 인원 간의 모든 사회적 소통을 제한하며 모의가 의심될 경우 집중 심문을 시행할 수 있다.
  • D계급 인원의 최대 수면 시간은 하루 6시간으로 제한되며, 상황에 따라 한 번에 4시간 이상 취침할 수 없도록 통제할 수 있다.
  • 기지 내 모든 인원의 꿈 자각 지수를 측정하고 분기별로 최신화한다. 이 정보는 인사 파일 기초 신체검사 기록에 추가될 것이다.

원활한 실험 및 연구를 위해 연구진이 858-KO 실험 중일 때에는 D계급 인원의 취침을 제한한다.

설명: SCP-858-KO는 제04K기지 소속 D계급 인원들로부터 발견된 변칙적인 수면 형태를 말한다. SCP-858-KO에 영향받은 채로 수면에 취한 이들은 특정한 공간에서 깨어나는 일종의 공유몽을 경험할 수 있다. 이들이 858-KO를 겪고 있을 때 가깝고 가로막힌 벽이 없는 곳에서 수면을 취하면 그 효과를 전달받을 수 있다.

이 현상은 재단으로부터 발각되기 약 8주 전부터 시작되었고 수십 명에 달하는 D계급 인원이 감시로부터 숨은 채 작전을 모의하거나 기록을 보관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D-6001이 바로 858-KO의 기원이며 꿈을 통해 인원들을 선동하여 기지를 탈출하고자 하였다. D계급 정기 기억 소거 후에도 858-KO에 남아있던 정보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탓에 그러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858-KO에 진입한 자는 상상에 기반하여 물체나 상황을 만드는 등 꿈을 조작할 수 있으며 이는 꿈 자각 지수가 높은 피험자들에게 더 수월하게 작동하는 특징이 있다. 자각력이 낮은 피험자의 경우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진행할 수 없지만 D-6001은 꿈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다수의 인원이 진입한 상황에서는 각각 떠올려낸 물체나 장소, 상황 등이 서로 모순되어 섞이기 마련이고 논리적 모순 역시 빈번한 탓에 외부에서 개입하는 감각 전이 기술이 오작동한다. 이는 858-KO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기록이 피험자 증언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녹화 기록 ─ 라은희 박사: 858-KO 탐사 개요

시작하겠습니다. 수면변칙부서 제1과장 라은희입니다.

지금이 오전 다섯 시니까, 대략 한 시간 전에 잠에서 깼고 생각 정리를 좀 하다가 카메라를 켰습니다. 우선 이 페이지를 비롯해서 관련 문서들이 대부분 어수선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연구도 막 시작한 참이라 정보들이 파편화되어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과 연구진들이 858-KO에 노출된 채로 업무를 수행 중인데, 이게 수면 효율을 40% 가량 떨어뜨린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다들 비몽사몽한 채로 기어 다니기는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나라에 헌신 중이오니 부디 너그러이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858-KO는 일종의 공유몽입니다. 피험자들의 뇌 기능을 조금씩 할당해서 클라우드 서버 같은 것을 유지시키는 원리죠. 그렇다 보니 그날 연루된 D계급들을 처분하거나 기억 소거해버리면 그 안에 있던 정보들도 훼손되거나 소실되기 마련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연구를 끝마치고 구조까지 완료할 때까지는 위험 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기지 내 보안요원들이 아주 예민해져 있는 이유고요. 그날 지랄을 떨었던 자식들. 평소라면 죄다 쏴죽였을 텐데 아직까지 살려두는 이유가 그겁니다.

858-KO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그 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희미한 바닥면 같은 것을 딛고 서게 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거의 흐물거리다시피 하는데, 실제로 촉감이 물컹하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발에 닿는 바닥을 의식해야 바닥이 존재할 수 있단 겁니다. 제 기준으로, 어두운 배경에서 바닥을 꾸준히 집중하다 보면 꼭 기지 복도에 깔린 흰색 타일 같은 것이 수평선까지 차오릅니다. 넋 놓고 있으면 발부터 쑥 빠져버리고 떨어지다 잠에서 깨죠. 이런 과정에서부터 정신적인 에너지가 상당히 소모된단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단계만 익숙해지면 다음 것들은 쉬워져요.

라은희 박사가 분필을 들고 뒤쪽의 칠판에 그림을 그린다. 중앙에 사람 형태가 그려지자 그것을 중심으로 세 방향에 A, B, C를 메모한다.

주위를 둘러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총 세 가집니다. 하나는 꼭 파티장1 같은 공간인데, 요리나 술 같은 것을 즐긴 흔적이 있더군요. 꿈에서 술에 취하는 게 가능한가를 두고 논문이라도 쓰고 싶었는데 당장 놓인 일이 있으니 음주는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여긴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이동형 칠판을 중심으로 펼쳐진 작전실2 같은 공간. 여긴 기지와 재단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쌓여있습니다. 내부 구조를 파악해뒀달지, 직원들의 근무 형태 같은 각종 기밀들을 수집해뒀죠. 처음 들어올 D계급 인원을 위한 프로파간다도 놓여있는데, 그래서 재단 직원들이 직접 갈려야 할 일이 된 겁니다. 다른 탐사처럼 D계급을 보낼 수 없으니까요. 아무쪼록 그 양이 너무 방대해서 하루 이틀 정도로는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D-6001과 정안기 연구원의 육신입니다. 꼭 밧줄로 엮은 공처럼 뭉개진 채로 떠 있었는데 차마 만져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부위들이 안에서 밖으로 회전하곤 했는데- 입이나 성대 구멍으로 보이는 것이 겉표면으로 드러날 때마다 D-6001의 비명이나 괴음 같은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안기 연구원의 입은 침묵하고 있었죠. 이상합니다. 알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고.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혼수상태에 빠진 둘을 회복시키고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뿐입니다. 이상입니다.


녹화 기록 ─ 김고은 요원: 정안기 연구원의 행보

안녕하세요. 면담 요청한 김고은입니다. 정안기 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고 사건 당일날에 이상 행동을 관측한 바 있습니다. 질문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그게- 음. 사무적이기만 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요? 직종이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층에서 오고 가면서 얼굴도 익었고. 그 이상으로는 크게 없습니다.

그날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면서 한 대화에서요. 안기 씨가 간밤에 되게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해줬습니다. 그 꿈에서는 넓은 광장의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가만 보니 그중 몇몇은 얼굴이 낯익은 사람들이 많다고 그랬죠. 그런데 본인은 발가벗고 있던 채였댔나, 그랬답니다. 그래서 근처 책장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 숨어있으니 사람들이 죄다 본인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대요. 그- 들킨 게 아니라 한 쪽에서 볼일 다 보고 자리를 이동하듯이요. 책장 틈새로 사람들 얼굴을 훔쳐볼 때. 그러니까 정면으로 서 있는 얼굴들을 볼 때서야 그게 우리 기지 D계급 사람들이란 걸 알았답니다. 다들 사복을 입고 있으니 못 알아봤었대요.

네. 그 무리 중에 한 명이 나와서 일장 연설을 펼쳤을 때 그 사람이 리더란 걸 알게 됐다고 하고요. D-6001은 여기 말고 다른 여러 곳에도 재단 기지가 있단 걸 알고 있었고, 거기에도 D계급들이 있단 걸 압니다. 저도- 엄… 재단 기지는 강원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상황을 지켜보다 뒷목에 있는 문신을 발견했댔죠.

그렇죠. 저도 꽤 심상찮다고 느꼈는데 안기 씨가 다른 연구원이었다면 몰라도 수면변칙부서 소속이잖아요? 제 주요 업무가 D계급 관리이기도 한 만큼 식사 이동 시간 때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죠. 한 명씩 줄 세워 보내던 중에 어느 한 명이 눈에 띄었어요. 표준 방침 아시죠? 머리도 안 묶은 채로 지나가려 하더라고요. 그땐 제가 불러 세우려 했는데 안기 씨는 순간 왜 그랬는지… 그 뒷머리를 통째로 잡아 들었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달려들었습니다. 저는 삼단봉을 펼치기도 전에 뒤에 있던 놈한테 끌려가서 얼굴을 두들겨 맞았고요. 그리고 말씀드렸죠? 단순히 보복심이 아니라 계획된 거였다고. 무전기는 언제 서리했는지도 못 느꼈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바닥으로 가게 쭈그려서 권총만큼은 지켰는데… 너머에서 총성이 쩌렁쩌렁 들렸어요. 그런데도 오히려 흥분해서는 밀어붙이는 걸 보고 전- 이대로 한참 맞겠구나 싶을 쯤에 놈들이 우르르 비상구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좁은 복도에서… D-6001이 마지막으로 남아서 안기 씨를 후려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요원들한테서 뺏은 진압봉으로요. 저는 그만 눈이 돌아갔고. 총을 뽑아서 쐈어요. 어딜 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쓰러졌고.

뒤돌아보니 다른 D계급이 절 겨누다 말고 계단으로 도망가더군요. 제가 아직 안 쐈다면 ‘그 총 내려놔’의 의미였겠지만 이미 쏴버린 걸 어떡합니까? 시간도 아끼고 총알도 아낄 셈인지 그냥 위쪽으로 도망갔어요.

이후부터는 다 아실 이야깁니다. 방화 셔터로 계단 통째로 가뒀다면서요? 저나 안기 씨를 인질로 데려갔으면 일이 더 쉬웠을 텐데. 본인들 리더나 버리고 가는 놈들이니 계획이 꼬인 거겠죠.

뒷목 나비 문신요? 안기 씨가 그 모양까지 맞는지 확인해줬어야 했는데. 꿈에서 본 모양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못 들었습니다. 아무튼 정황도 그렇고 우리 기지에 뒷목 문신한 사람은 그 여자뿐이니까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녹화 기록 ─ 시설이사관보 주성환: D-6001 CCTV 자료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직원 여러분들께 늘 감사드리며 연구에 도움이 될 기록들을 좀 모아왔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 시기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정리에도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그 점은 죄송합니다. 자, 화면 띄우겠습니다.

주성환이 패널을 조작하자 D계급 수용실 내부가 비친다.

8주 전입니다. 6001은 우리 04K기지에서 대략 한 달을 채우고 해방되기로 알고 있는 날. 정확히는 그 다음 날이죠. 하지만 매달 1일은 우리 기지에서 D계급에게 투여한 소거제 약효가 잘 돌았는지 확인하는 날입니다. 보이죠? D-6001만 상황파악 하곤 이상 행동을 보입니다. 같은 호실을 쓰는 D계급 인원들은 초면에 만난 것처럼 대화하는데 이 친구만 방황하고 있어요. 기억 소거가 안 먹히는 건지, 기억을 따로 보관해두는 건지. 한 달만 봉사하면 풀어주겠단 말이 거짓말인 걸 알고 계획을 실행하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디가 되었건 앉을 수만 있으면 자리 깔고 자는 게 일상인 친구였는데 아주 능동적으로 변해요. 안전 교육 때나 아침 식사 시간, 인원 이송 중에도 졸고 있는 누군가가 보이면 노골적으로 찾아다니네요. 그렇게 확산시키고 또 확산시킵니다. 이게 겨우 몇 주 만의 일이에요. 영향받은 다른 D계급들도 전략적으로 움직입니다. 일부러 불화를 일으킨 척해서 다른 호실에 배정받는다든가.

아무쪼록 이상한 건 차고 넘치네요. 자기 산하에 둔 D계급들이 충분히 모였음에도 왜 여지껏 터뜨리지 않다가 즉흥적으로 터뜨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으실 거라 예상해보는데요. 생각해보면 D계급들도 가만 기다리고 있다간 실험 중에 죽을 지도 모르는데. 안 그래요? 보시다시피 정안기 연구원이 눈치 챈 시점에서야 본색을 드러냈잖아요. 어쩌면 우리 기지가 국내 D계급 사망률이 가장 낮다는 자랑스런 사실이 이유일 수도 있겠고. (작은 목소리로) 더 죽이자는 건 아닌데요.

아무쪼록 분명 원래 원하던 타이밍을 잡은 게 아니란 겁니다. 아마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었겠죠. 역사적으로 D계급들이 재단 기지에서 도망쳐나간 경우는 물론 적지만 그 어떤 경우에서도 줄탁(啐啄)이란 것이 없던 적은 없었습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면 어미 닭도 함께 쪼아줘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외부세력의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는 것. 지금 병아리만 들쑤시는 건 시간 낭비일 겁니다.


의료반 공고 ─ 최예서 박사:

의료반 최예서입니다.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희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정 연구원은 혈압도 안정화되고 있고 회복 조짐이 좋습니다. D계급 환자분은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뇌출혈은 어떻게든 손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수면부 연구원 여러분들이 이들에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한 정 연구원부터 의식을 완전히 회복시킨 후 D계급 환자를 치료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의료라는 것이 그렇게 제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D-6001이 꿈을 장악하는 상황 역시 고려하십시오.

직원 여러분, 최근 들어 D계급 인원을 다루다 부상당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좀처럼 제어가 힘든 상황이다 보니 과감하게 안정제를 사용하십시오. 안정제는 상급 기지에 추가 보급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올바른 매뉴얼을 따르지 않다가 다치는 경우엔 본인 과실로 처리되오니 이 점 역시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의료반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안하고 있으니 당장의 불편은 감수해주시길 바랍니다.

비고: 의료반의 조언에 따라 D계급 인원의 수면시간을 한 시간 더 줄이고 실험을 주관하는 상급 연구원의 재량에 따라 자유 시간을 더 부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녹화 기록 ─ 라은희 박사: 858-KO 탐사 기록

시작하겠습니다. 제1과장 라은희입니다.

드디어 정안기 연구원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어 달은 더 기다려야 가능할 것 같았던 것이 며칠 만에 이뤄진 셈입니다. 아무쪼록 연구원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고 지금 보고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라은희 박사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죄송합니다. 이게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라서. 코피인 줄 알았는데 콧물이네요.

858-KO에 진입하자마자 본 건 파티장에 멀쩡히 서 있는 정안기 연구원이었습니다. 공처럼 말린 D-6001은 한편에 계속 떠 있었고요. 연구원이 알몸일 거라 생각했는데 일상복 차림이긴 했습니다. 파티장 테이블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고 있더군요.

저를 발견하고는 하는 말이 몸을 자주 뒤집어달라더랍니다. 피부가 한쪽만 너무 눌려있어서 욕창 생길 것 같다고. 의료반은 이 점 확인 부탁 드릴게요.

전 궁금한 것도 넘치는 상황인데다 되게 놀란 나머지 질문 공세를 마구 쏟아내니 제 입에 큐브 스테이크를 넣으면서 입을 막더군요. 설명을 들어보니 납득이 갔습니다. 우리야 그 꿈의 바닥을 의식하질 않으면 잠에서 깨는 걸로 그만이지만 그럴 수 없는 연구원의 입장에선 저 아래가 위험구역처럼 느껴진단 겁니다. 미지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정신 사납게 굴지 않는 선에서 질문을 이었습니다.

저는 바닥으로 떨어지면 깰 수 있단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지금껏 858-KO에 벌어진 일을 다 보고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제한적이지만 꿈에 진입한 것들의 대략적인 정보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구 형태로 말린 것은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습니다. 정안기 연구원은 본인이 맞고 쓰러진 날 858-KO에서 D-6001을 마주쳤다고 합니다. 혼자 있는 D-6001을 보고 어떻게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었고… 무력화시키려고 했답니다. 그리고 그게 최선의 결과였다고.

지금 의식을 되찾은 건 어떻게 가능했느냐고도 물어보려 했는데 연구원도 궁금한 건 많았는지 제 말을 끊고 물었습니다. 정안기 연구원은 D-6001이 어딜 얼마나 다친 거냐고 물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그 D계급의 수술은 일정 부분 이상 초상의학 기술이 접목된 부분이라 있는 그대로 말해서는 안 될 내용이긴 했지만, 총알이 뇌를 뚫었단 말을 어떻게 둘러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한 대로 뭉뚱그려 설명해주니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D-6001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요. 그 치료가 가능한지는 모르겠다지만 본인의 회복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가 858-KO라는 클라우드 서버를 떠맡고 있는 동안 수면 효율이 절반씩은 날아간 상황이란 건 알려 드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댑니다. D-6001의 정신적 저항력은 극도로 높아서 그 역할의 9할 이상씩은 해내고 있다는 군요. 사실, 과장 조금 보태 6001의 두뇌는 계란이라도 삶을 수 있을만큼 뜨겁습니다.

연구원을 구해오려면, 병아리의 역할만큼이나 나오려고 노력해야 할 텐데. 정작 깨워달라는 것은 D계급이라니.

우린 SCP-858-KO와 피험자 간의 연결을 끊을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 합니다. D-6001이 다시 꿈을 장악하게 되면, 우리 모두 매일 밤 유혈 낭자한 악몽을 꾸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녹화 기록 ─ 시설이사관보 주성환: D-6001 CCTV 자료 2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덜어낸 셈입니다. D-6001이 재단에 오기 전에 함께 자고 뒹굴던 인원들이 있었죠. 그럼 민간인 피해가 전국구로 퍼지지 않을까 싶었던 그 걱정 말입니다.

주성환이 패널을 조작하자 CCTV 화면이 나타난다. 화면에서 제01K기지의 D계급 오리엔테이션 장면이 나타난다.

D-6001이 04K로 배정받기 전의 일입니다. 여기 가운데에서 살짝 뒤쪽. 제가 커서로 가리키고 있는 이쪽 보이십니까? 졸고 있는 6001입니다.

이 친구는 사회에 있을 적부터 고생깨나 했던 친군데요.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면 중학생 때부터 기면증에 시달렸나 봅니다. 치료도 받겠다고 이 병원 저 병원 들렀다는 것까지 확인됐는데요. 사실 그것보다 눈길 가는 건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입니다. 고등학생 1학년쯤 됐을 땐 최면 협회나 자각몽 커뮤니티 등에서 활동한 전적이 확인 됐고 글이나 댓글 수가 조회된 것만 해도 수천 단위니 이쪽에 얼마나 심취해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게시물 내용도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가입 후 등업이니 뭐니 해서 절차가 복잡합니다. 그걸 뚫을 방법을 찾고 있고요. 뭐, 그때까지는- 화면 계속 보시죠.

보안 요원이 D-6001의 뒷목을 주무르자 놀라며 깨어난다. 요원은 D-6001을 밖으로 데려간다. 1~2분 뒤 요원과 함께 다시 들어온다.

처음 영상을 봤을 때 전 이 부분에서 섬찟했습니다. 알다시피 858-KO는 잠에서 잠으로 전달되는데 이 장면 전에서부터 다른 누군가도 졸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전국 재단 기지로 퍼질 D계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재난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아니었더군요. 858-KO에서 확인 가능한 모든 인원은 정확히 04K 안에서만 해당하니까. 아무튼 이 장면 이후로 D-6001이 더 졸지는 않습니다.

이런 기술을 D계급 수용실에서 하루 만에 만들어낸 게 아니고서야 사회에서 지니고 있었을 적도 있을 텐데. 그러니까, 우리 기지에 들어와서 선보이기 전에는 분명 연습 삼아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를 들였을 거란 추측인데요. 그렇다는 건 다시 내보낼 수 있는, 그런 영구적인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거란 추측입니다.

아무래도 그 답은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있지 않겠습니까?


온라인 커뮤니티 내역: D-6001 게시물

D-6001은 민간 시절 수년간 온라인 커뮤니티에 약 2천 개의 게시물을 올렸으며 1만 개 이상의 댓글을 올렸다. D-6001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자각몽, 최면, 몽유병 등을 다루는 정상성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으며 초상 커뮤니티인 골목길의 루드골3에 접촉하며 종적을 숨겼다.

D-6001은 네이버 카페 한국 프로최면가 협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맥을 맺고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으며 디시인사이드 루시드 드림 갤러리에서는 자신의 변칙적인 수면 경험을 소개하곤 했다. 그러던 중 최면가 인맥을 통해 루드골에 접촉하게 되었고, 이는 루드골의 범죄 행각과 흔적을 은폐할 수 있도록 돕게 하기 위함이었다. D-6001은 자신이 청부업자라 주장하는 유저들4로부터 기술을 배우고자 요청했고 그 이유를 복수라고 설명했다.

최면가 협회 출신의 지인은 메신저를 통해 만류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역에 따르면 D-6001의 부모는 딸의 기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어느 병원에서도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상담 및 약물 치료가 강행되었음에도 불구, 경제적 부담만 안겨줄 뿐 증상은 회복되지 않자 부모는 무속적인 방법에 눈길을 돌렸다고 한다. D-6001의 부모는 거금을 들여 어느 무속인을 만났고 (해당 내용은 입출금 내역을 통해 사실로 확인됨) D-6001은 치료라는 명목하에 약 4일간 잠을 잘 수 없도록 학대 당했다고 증언했다. D-6001이 기절하고 효험도 얻지 못하자 부모는 무속인을 상대로 소송했지만 들인 돈은 돌려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곧 가정의 불화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후 루드골에서 D-6001의 행적은 완전히 사라져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가 재단에 들어오게 된 사건과 곧장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D-6001은 새벽 중에 살인 및 시체 유기를 저질렀다. 사건은 경찰 수사가 들어서기 전에 재단 현장 요원이 확보했고 변칙성이 연루되어 있음이 확인되자 즉시 D계급 인력으로 충원되었다.

여태껏 루드골에서 범죄 행각을 벌이던 유저 셋이 왜 이 사건에 협력하지 않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각 사용자를 추적한 결과 세 명 모두 혼수상태에 빠진 채 9주째 입원 중이다.


858-KO ─ 연구 포럼:

의료반 최예서입니다. 갈수록 미스터리에, 갈수록 진퇴양난이네요.

D계급을 죽이면 나머지 사람들이 858-KO을 떠안아야 하고. 살리자니 치료 중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테고. 최악의 상황이 스너프 고문뿐이었다면 뇌가 터져 죽을 바엔 밑져야 본전인 모험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도 엊그제 일입니다. 이젠 D-6001이 꿈에서 꿈으로 죽일 수 있단 것도 밝혀졌잖아요.

방법은… D-6001이 회복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는 피험자들이 잠을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것만 성공하면 일은 아주 쉬워져요. 졸음을 참는 법쯤이야 쉽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 제04K기지 의료반 최예서 박사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면 이제 방법 하나 남았잖습니까. 꿈바닥 밑이요. 정 연구원을 밑으로 탐사 보냅시다.

— 제04K기지 시설이사관보 주성환

잠시만요. 빨리 회복시켜도 모자랄 판에 그런 위험 부담을 지게 한다고요? 안기 씨는 요원도 아니고 그냥 연구원일 뿐이라고요.

— 제04K기지 김고은 요원

아이! 죄송합니다. 권한 설정이 잘못되어있었거든요. 3등급 이상끼리 대화 계속합시다.

— 제04K기지 시설이사관보 주성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젠 정말 대안이 없군요. 커뮤니티에도 858-KO 연결을 끊는 법은 찾을 수 없었죠. 아직 탐사 되지 않은 곳은 거기뿐입니다. 꿈에서 깰 수 없는 사람만 머무를 수 있고요.

— 제04K기지 수면변칙부서 제1과장 라은희 박사

정씨가 시킨다고 들어가긴 할까요?

— 제04K기지 의료반 최예서 박사

나도 같이 진입합니다. 수면제를 충분히 투여하고 내려간다면 약효가 돌 동안은 버틸지도 몰라요. 곧 실험 탐사 계획안 보고 드리겠습니다.

— 제04K기지 수면변칙부서 제1과장 라은희 박사

녹화 기록 ─ 허경욱 박사: 실험 및 탐사 녹화

피실험자: 라은희 박사, 정안기 연구원 외 3명

개요: 하나, SCP-858-KO와 피험자 간의 연결을 끊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꿈 내부의 미지 영역을 탐사할 계획이다. 둘, 피험자가 858-KO에 접속 중일 때도 꿈 외부와 실시간 통신할 수 있도록 감각 전이 시스템을 손보았고 이는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해졌다. 라은희와 정안기가 보고 듣는 시청각 정보는 해석 스캐너를 통해 전송받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구현되지 않아 음성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 셋, 실험은 수면변칙부서장 허경욱 박사와 의료반 최예서 박사가 참관한다.


<기록 시작>

라은희 박사가 858-KO에 들어선다. 이를 확인한 최예서 박사가 수면제 혼합 약물을 주사한다. 화상에 검푸른 배경과 흰 노이즈 같은 것이 들어찬다. 몇 분 후 노이즈가 걷히며 정안기 연구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정안기 연구원: 오셨군요 과장님.

라은희 박사: 그래. 왔지.

정안기 연구원이 라은희 박사를 일으켜 세운다. 라은희 박사는 일어나자마자 D-6001쪽을 살핀다. D-6001은 여전히 구처럼 말린 채로 부유하고 있으나 훨씬 부푼 모습이다.

정안기 연구원: 저거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제까지만 해도 저 정도로 크진 않았는데.

라은희 박사: 오늘은 밑으로 내려갈 거야.

정안기 연구원: 밑이요? 바닥 아래 말입니까.

라은희 박사: 꿈 밖에서 많은 일이 있었어. 지금은 858-KO와 연결을 끊을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야.

정안기의 표정이 굳자 라은희 박사가 코웃음 친다.

라은희 박사: 뭔 일이 벌어질진 아무도 모르긴 하지. 내가 먼저 진입할 거야. 안전하단 게 보증만 되면 내려오면 돼.

정안기 연구원: 그게 아닙니다, 과장님. 느껴지는 바로면 이 밑에도 뭔가가 있어요. 정확히는 누군가가.

라은희 박사: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있다니.

정안기 연구원: 저 D계급이랑 비슷해요. 무의식으로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것들.

정안기 연구원이 파티장과 작전실 가운데 지점으로 이동하곤 말한다.

정안기 연구원: 바로 이 아래에서 느껴져요. 안전한 걸까요?

라은희 박사도 걸어 정안기가 말한 위치에 선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정안기 연구원: 과장님?

라은희 박사: 잠깐! 집중 좀 하게.

라은희 박사가 다시 숨을 고른다. 1분간 정적.

라은희 박사: 아이 썅! 평소엔 잘만 떨어지더니만 막상 내려가려니깐 왜 이래!

정안기 연구원: 음…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무언갈 상상하지 않으려는 행동은 오히려 그 생각에 묶인다고요.

라은희 박사: 나도 알아.

라은희 박사가 파티장 쪽으로 가서는 와인으로 병나발 한다.

정안기 연구원: 그러니까 이건 어때요? 음… 와인병을 상상하지 말자.

라은희 박사가 병을 놓고 다시 숨을 고른다. 정안기를 중심에 두고 원을 그리듯 걷자 화면에는 노이즈가 일며 바닥에 위치한 타일이 검붉어지다 반투명해진다.

라은희 박사: 윽!

라은희 박사가 바닥에 빨려 들어가듯 떨어진다.

그러다 몇 초 후 허공에서 멈춘다. 라은희가 주변을 둘러보자 발아래의 정안기를 발견한다. 머리 위에는 공처럼 말린 신체 세 개가 떠 있다. 그쪽으로 손을 뻗자 손 주위로 사다리의 형상이 나타난다.

라은희 박사: 뭐야?

무릎을 구부려 발걸음을 위로 떼자 계단의 형상이 나타난다. 라은희는 계단을 오르며 미상 구체를 가까이서 관찰한다. 터럭이 자란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대자 곧장 무작위적인 시각 정보가 화상에 겹쳐지듯 나타난다. 황급히 손을 뺀다.

라은희 박사: 이건…

정안기 연구원: 과장님! 괜찮으세요?

정안기가 위에서 소리친다.

라은희 박사: 느껴져. 이 공간 자체가 날 밀어내려 한다. 내려와!

정안기 연구원이 눈을 감자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다 미상 구체 중 하나에 부딪히곤 떨어져 나간다.

정안기 연구원: 어흑!

라은희 박사: 멍청아! 조심 안 해?

라은희 박사가 다시 손을 뻗는다. 이미지가 다시 나타나 천천히 재생된다. 정안기가 중심을 잡자 추락도 멈춘다. 몸이 뒤집힌 채로도 발걸음을 옮기자 라은희쪽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정안기 연구원: 얘네들은 뭘까요?

라은희 박사: 루드골 그놈들이야. D-6001한테 살인을 가르친 놈들. 그리고… 이렇게 기억을 훔쳐 볼 수 있어.

정안기 연구원: 드디어 실마리가 생겼군요.

라은희 박사: 위로 다시 올라가 볼 수 있겠어?

정안기 연구원: 위요? 그러니까 과장님 기준으로…

라은희 박사: 아니! D-6001쪽으로 가볼 수 있겠냐고. 난 여기서 정보를 더 캐봐야겠다.

정안기 연구원: 한 번 가보죠.

정안기 연구원이 공중에서 몸을 뒤집자 천장 쪽으로 떨어져 착지한다.

라은희 박사: 보인다. 그날 밤에 있었던 일… 재단 요원이 근처에 있단 걸 알고 내뺐었군. 그런데 이상해. 충분히 구하고도 빠져나올 시간은 있었는데?

정안기 연구원: 이거… 단단해요. 안 뚫리는데요?

라은희 박사: 못하겠으면 와서 도와!

정안기 연구원이 라은희 쪽을 올려다보자 놀란다.

정안기 연구원: 잠시만요 저기, 저거…

심박 소리가 크게 들린다.

정안기와 부딪혔던 구체가 훨씬 커다랗게 부푼 채로 회전하고 있다. 전신에 펼쳐진 핏줄이 터질 듯이 돌출되어있다.

정안기 연구원: 도망쳐요!

라은희 박사가 천장 쪽으로 뛴다. 그러던 중에도 구체의 회전 속도는 빨라진다. 속을 감싸는 피부가 붉어지더니 꼬여있는 근육들에 긴 구멍들이 뚫리며 부푼다. 뼛조각이 송곳처럼 튀어나와 자란다. 미성숙한 안구들이 각 방향에서 흘러나와 꾸물댄다.

라은희와 정안기가 밀어 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조금도 끄떡하지 않는다.

라은희 박사: 예서 씨! 어떻게 좀 해봐!

참관 중이던 최예서 박사가 전달받고 찬물바가지를 얼굴에 끼얹는다. 뺨을 여러 차례 때려가며 깨우지만 반응이 없다.

한편, 화상에 보이는 안구는 검은자위를 기준으로 눈꺼풀이 꽃 모양처럼 자란다. 신체가 다듬은 정이십면체 형태를 완성시키자 얇은 뼛조각들이 달라붙은 근육 줄기가 두 다발 튀어나와 다른 구체들을 찌른다.

최예서 박사가 화면을 확인하더니 전기 심장충격기를 꺼낸다. 참관 중이던 허경욱 박사도 거든다.

허경욱 박사: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구체 둘에서도 심장 소리가 함께 뛰면서 각각 부풀어 오른다. 최예서가 충격장치의 충전을 기다린다.

정안기 연구원: 이렇게 죽는 건가…

라은희 박사: 아직이야… 이제 코 앞인데!

세 구체가 갑작스레 쪼그라든다. 심박 소리가 빨라지고 쇠 긁는듯한 고음이 무수히 들리기 시작한다. 장치의 한도를 넘어설 때까지 커진다. 허경욱 박사가 볼륨을 낮춘다.

정안기 연구원이 고통스러워 한다. 최예서 박사가 충격장치를 작동시킨다. 라은희 박사가 858-KO에서 깨고 일어난다. 정안기의 시야에서 라은희가 사라진다.

정안기 연구원: 저기요! 과장님?

정안기 연구원이 몸을 뒤집고 천장 너머 쪽을 보자 놀란다. 구형을 띈 D-6001의 신체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근육 다발이 날카롭게 찢어지며 정안기가 위치한 면을 꿰뚫어 찢는다.

D-6001: 고맙기도 해라. 날 깨워줬어?

정안기 연구원: 잠시만-

다발 하나가 정안기 연구원의 구강을 통해 들어가 휘젓는다. 연구원이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호흡 장애를 겪는다. 가장 커졌던 미상 구체는 아래로 사라진다.

라은희 박사가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라은희 박사: 기억을 봤어. 그놈들… 저 D계급한테 갇히긴 했어도 같이 잤던 적은 없어. 858-KO로 완전히 불러들여야 해.

최예서 박사가 의무실 밖으로 나가 옆방으로 뛰어간다. 허경욱도 뒤이어 달려가자 라은희도 따라간다.

최예서가 루드골의 요주의 인물이 뉘어져 있는 이동형 침대를 끌고 나온다. 라은희가 침대를 전달받고 정안기 연구원이 있는 방으로 옮긴다. PoI의 산소 공급 장치 농도를 높이자 장치의 비명소리가 멈추며, 멈췄던 심박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최예서와 허경욱이 나머지 둘의 침대도 마저 끌며 들어온다. 라은희 박사의 가설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세 요주의 인물은 SCP-858-KO에 영향받았을 것이다.

미상 구체 중 하나가 근육을 찢어내며 거대한 손가락 형태를 뽑아낸다. 대상은 붉게 발광하며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손이 모두 빠져나오자 D-6001이 찢어낸 구멍을 통해 하늘로 솟아오른다.

D-6001은 정안기를 집어던지며 손을 공격하기 위해 근육 다발을 찔러 넣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빛의 세기는 세지며 화면에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미상 목소리: 주연화5, 배은망덕한 것!

모든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아래에 위치한 구체 하나도 꿈틀거리며 찢어지려 한다. 정안기 연구원이 밑으로 떨어지더니 구체 중 하나에 달라붙는다. 그러고는 구체가 찢어지게끔 돕는다.

허경욱 박사: 줄탁동기(啐啄同機)로군.

D-6001이 전신을 날붙이로 감싸 손을 통째로 꿰뚫어 들어온다. 구 형태였던 것이 물방울 형태를 띠며 회전한다.

D-6001: 배신한 건 너네야! 난 여태 잘 따랐다고…

정안기 쪽에서 또 다른 손의 형태가 자라나 솟으며 D-6001을 꿰뚫는다. 손가락 끝은 날카롭게 깎여있다.

미상 목소리-2: 무당 하나 죽이자고 그런 짓을 벌여?

D-6001: 누굴 탓해? 너네도 똑같은 살인범이야. 정신 차려!

미상 목소리-1: 난 내 죄에 정당함이란 이름을 붙일 생각 없다. 합리화할 생각도 없어. 하지만 우리가 여태 해온 건 복수야.

정안기 연구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요!

큰 진동과 함께 바닥 전체에 붉은빛이 퍼진다. 정안기 연구원이 넋 놓고 보자 붉은 손 하나가 집어 공중으로 끌어올린다. 두 손 모두 하늘로 뻗어나와 공중에 부유한다. D-6001도 몸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가시 다발이 나선의 팔을 만들어 하늘을 덮기 시작한다.

미상 목소리-3: 그 무당년 품엔 갓난 애도 있었지…

바닥에서 거대한 형태가 느린 속도로 올라오며 안개를 흩트린다. 흐릿한 상이 아래에서 똑바로 드러난다. 경계를 가르던 바닥이 통째로 부서지고 곰벌레의 주둥이와 같은 것이 솟아오른다. 내부엔 수십만의 어금니가 달려있다.

미상 목소리-3: 귀빠지고 나서도 꿈만 꾸던 무고한 애가 있었다고!

D-6001: 무고? 무고한 건 나야! 아무 죄 없는 내 인생은…

D-6001이 가시다발로 붉은 주둥이를 찌른다. 주둥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솟으며 D-6001을 통째로 삼킨다.

라은희 박사: 어. 잠깐.

D-6001의 심박수가 정지한다. 최예서가 고개를 저으며 급히 확인한다. 머리의 상처에서는 거의 끓을 듯이 뜨거운 혈액이 쏟아져 나온다. 최예서 박사는 이 시각 기준으로 D-6001이 사망했음을 진단한다.

손과 주둥이 형태가 사라진다.

루드골의 세 요주의 인물이 잠에서 깬다.

<기록 종료>


면담 기록

면담자: 김고은 요원

피면담자: PoI-8581, 8582, 8583


<기록 시작>

(중략)

PoI-8581: 여러분이 소문으로만 듣던 비밀 결사군요. 저희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아시나요?

PoI-8582: 이런 취급을 받는 건 부당하단 말입니다.

김고은 연구원: 여러분. 앞으로 질문이라곤 수백 가지쯤 할 텐데 이런 식으로 시간 끌어봤자 서로 피곤할 겁니다.

PoI-8581: 질문요? 궁금하실 만한 건 다 저희 커뮤에 쓰여 있어요.

PoI-8583: 잠깐-

김고은 연구원: 아하?

PoI-8581: 잠깐이 아니고 형님, 이 사람들 소문 들으셨잖아요. 괜히 입 다물다 고문당한다고요.

PoI-8583: 그렇긴 해도. 벌써 그렇게 다 불어버리면 배신자 같잖아.

PoI-8582: 아이- 이제 사람 없는 망골에 무슨 배신입니까! 우리 셋 말고 거기 상주하는 애들이 또 있어요?

김고은 연구원: 고문이라니… 저희가 그렇게 비윤리적인 단체는 아닙니다.

PoI-8581: 그럼 뭐, 이 기지에 윤리위원회라도 있어요?

김고은 연구원: 나야 모르죠! 아이, 또 당했네. 시간 끌 필요 없다니까요. 결국 다 뱉게 될 테니까. 아니지, 아까 어디 커뮤니티라고?

PoI-8582: 지금 이 수갑만 풀어 드리면 바로 로그인 해드리겠습니다. 잠금된 게시물이 많거든요.

김고은 요원이 코웃음 친다.

김고은 연구원: 여러분들이 쓸모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PoI-8583: 애들은 건들지 마요. 당해도 내가 당합니다.

김고은 연구원: 평생 수면제 투여받으면서 그 꿈 유지시킬 자원으로 이용당할 걸요.

잠시 침묵

PoI-8583: ID 불러 드려.

면담자가 PoI-8582의 안내에 따라 뒷골목 커뮤니티의 루드골 권한을 인계받는다. 김고은 요원이 커뮤니티 정보글을 둘러본다.

김고은 연구원: 허어… 이 정도면 정말 면담은 여기서 끝내도 될 정도군요.

PoI-8582: 면담관님? 맞습니다. 우리는 살인을 저질렀죠. 하지만 사정을 설명하라면 스스로 부끄럼 없이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사람들 일을 복수해주고 다녔으니까.

김고은 연구원: 그래요. 나라고 그렇게 윤리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썰들 하나하나 듣다 보면 통쾌한 일도 있을 수 있겠다고도 생각해요.

김고은 연구원이 노트북을 덮는다.

김고은 연구원: 그 꿈에서도 말했듯이. 무고한 생명을 해치진 않았다고 하셨죠?

PoI-8581이 끄덕인다.

김고은 연구원: 그런데 여러분은 그 애를 범죄의 길로 끌어들였어요. 겨우 스무 살짜리 무고한 애를.

PoI-8583이 가만히 듣다 고개를 떨군다.

김고은 연구원: 당신들도 나름의 죗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기록 종료>


비고: PoI-8581 ~ 8583은 변칙적인 수련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CRV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SCP-858-KO를 맡게 되자 다른 피험자들의 수면 효율이 거의 정상화되었다. 이들은 SCP-858-KO 격리 용도로 보관될 것이며 동면실에서 낮은 단계의 기억소거제를 주기적으로 주사 받을 것이다. 이 절차는 858-KO에 영향받은 모든 피험자가 사망할 때까지 보존될 예정이다.

정안기 연구원은 2일 후 의식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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