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793-KO 추가 탐사 기록
2018/03/22 스즈키 박사의 연구팀이 원격 드론을 SCP-793-KO로 진입시켜 무인 탐사를 실시했다. 탐사 결과, SCP-793-KO 내부 벚나무의 개체 수가 2012년 대비 13% 증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당시까지 재단은 오키다이토 섬 외의 다른 출입구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나, 설령 다른 출입구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개체 수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대규모 실종 사례가 지구 상의 어디에서도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변화는 불가해한 것이었다.
연구팀은 SCP-793-KO가 가진 변칙성의 근원지를 확인하기 위해 벚나무 군집의 중심부로 드론을 이동시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두절되었다. 마지막 순간 벚나무 군집 안쪽으로부터 강력한 자기 폭풍이 발생한 것을 드론이 감지했으므로, 스즈키 박사는 드론을 손실 처리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카자흐스탄에 위치한 재단 관측소에 정체불명의 여성이 스즈키 박사의 드론을 가지고 나타났다. 해당 인물은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장신의 백인 여성이었으며, 오른팔에 황금빛 사슬을 감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베로니카 브라이드'라고 밝힌 여성은 드론을 돌려주는 대신 원 주인과의 면담 기회를 요구했고, 스즈키 박사의 요청에 따라 재단 정보부는 해당 요구를 받아들였다.
2018/03/28 정보부 소속 요원들이 브라이드 양을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위치한 재단 시설로 호송했다. 스즈키 박사는 같은 날 오키다이토 섬에서 오키나와로 도착했으며,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재단 시설 내 위치한 면담실에서 만났다.
SCP-793-KO 관련 면담 기록, 나하:
일자: 2018/03/29
면담자: 스즈키 모리아키 박사
대상자: 베로니카 브라이드Veronica Bride
비고: 브라이드 양은 무장해제 요구를 받아들였고, 몸수색 역시 거절하지 않았으나 오른팔의 사슬은 스스로 감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풀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주장의 진위는 불명이나 그 자리에 있던 재단 인원들 중 누구도 사슬을 팔에서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브라이드 양은 그 상태 그대로 면담실에 들어갔다.
[기록 시작]
스즈키 모리아키 박사: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지만 일단 이것부터 묻겠습니다. 그걸 대체 어디서 찾아낸 겁니까?
베로니카 브라이드: 벚나무들 사이에서 찾아냈지.
스즈키 박사: 하지만 그곳에는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오키다이토에 왔다면 분명 제가 알아챘을 겁니다.
베로니카 브라이드: 오키다이토는 여러 출입구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출입구가 적어도 두 개는 더 있어.
스즈키 박사: 그 중 하나는 카자흐스탄에 있는 모양이군요.
베로니카 브라이드: 그리고 러시아에도. 더 있을 수도 있고.
스즈키 박사: ……그쪽도 SCP-793-KO를 탐사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곳의 존재는 어떻게 알았죠?
베로니카 브라이드: 어느날 갑자기. 나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탐사하고 있었다.
스즈키 박사: 거기서 무엇을 찾고 계셨습니까?
베로니카 브라이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탐사 도중에 강력한 신호를 포착했다는 거지.
스즈키 박사: 신호라고 하셨습니까?
베로니카 브라이드: 음, 굳이 말하자면 신호가 아니라, 그래, 어떤 강렬한 감정이 공기 중에 실려있는 것을 느낀 것에 가깝다.
스즈키 박사: 그 감정은 정확히 뭐였습니까?
베로니카 브라이드: 허기.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군. 그것은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아주 강력한 갈망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숲을 찾아냈고, 그 이상한 땅의 중심을 찾아내려다가 너희 쪽의 드론이 땅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스즈키 박사: 우리가 누군지도 알고 계셨군요.
베로니카 브라이드: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한 번쯤은 너희 재단과 접촉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꼭 만나야 한다면, 대놓고 적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드론을 손에 넣자마자 그 생각이 떠올랐었다.
스즈키 박사: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닐 겁니다. 사실 당신이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일단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그 숲의…… '중심'을 알아낸 다음에는 뭘 하실 계획이었습니까?
베로니카 브라이드: 숲을 정화할 계획이었다.
스즈키 박사: 정화요?
베로니카 브라이드: 오해하고 있군. 불태우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저주받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의 욕망은 어떻게든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식물들이 그토록 강력한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즈키 박사: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브라이드 양은 자신의 팔에 감긴 사슬을 쳐다본다.]
베로니카 브라이드: 나는…… 나는 비슷한 욕망의 목표물이 되어본 적이 있다.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면 다시 먹잇감이 될 테지. 이 사슬은 내가 그 끔찍한 기억을 결코 잊지 않도록 나를 아끼는 어떤 이가 걸어 준 것이다.
스즈키 박사: 당신은 그 때처럼 이 숲도 먹잇감을 찾기 위해 뿌리를 뻗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베로니카 브라이드: 이렇게 강력한 의지와 허기가 결합되면 그 숲은 분명 그 동굴 속에서 갇혀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터. 너도 분명히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드론을 통해 눈치채지 않았나?
스즈키 박사: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제게는 당신과의 협력을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SCP-793-KO에 존재하는 벚나무 군집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만 그 원인을 정확히 모르니, 상부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주장할 근거도 부족하고요.
베로니카 브라이드: 이해한다. 하지만 그 숲은 이 세계에 있어서 매우 실제적인 위협이고, 그런 위협에 맞서 살아남은 사람은 정말 드물다는 것은 알아두도록 해라. 나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다.
스즈키 박사: '이 세계'라니, 당신은 도대체-
[베로니카 브라이드가 면담실에서 사라진다]
[기록 종료]
브라이드 양이 사라지자 대응반이 출동해 그녀의 행방을 수색했으나, 재단의 시설 어디에서도 브라이드 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키다이토 섬의 본인 사무실로 복귀한 스즈키 박사는 자신의 책상 위에 황금빛 무늬로 장식된 자주색 명함을 발견했다.
SCP-793-KO 관련 내부 통신 기록, 2018/03/30:
발신인: 디에고 알칸타라 박사, SCP 재단 형이초학부
수신인: 스즈키 모리아키 박사, SCP-793-KO 격리 총책임자
일전에 보내주신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형이초학부가 자체적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부서 자산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어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대규모의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그렇지만 박사님의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어 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 RecTex_san.txt
- RecTex_xto.txt
- RecTex_guj.txt
- RecTex_kaz.txt
…… (8)
위에 첨부한 12개의 텍스트는 몇 년 전 형이초학부에서 중앙아시아의 토착 서사층을 탐사하던 중에 회수한 것입니다. 언어도 작성된 연대도 모두 달랐지만, 12개의 텍스트 모두 의인화된 벚나무를 주인공으로 한 교훈적 서사를 담고 있었습니다. 6세기 경에 작성된 산스크리트어 텍스트가 제일 오래된 것이고,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최근에 작성된 것입니다.
내용 분석을 통해 이 텍스트들이 원본으로 삼고 있는 원형 설화의 기원을 특정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대상이 저희 목표와 밀접하게 연관된 서사층에 속한 것도 아니었고 특이성이 현저하거나 잠재적 위험성이 큰 것도 아니었으므로 저희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해두는 것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지금 이렇게 박사님께서 보내주신 소식을 받아보고 나니 그 당시 저희가 이상하게 여겼던 점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문제의 서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산에 자라난 벚나무 한 그루는 사람의 손길을 갈망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늘에서 어떤 신이 내려와서 벚나무가 백 년을 기다린다면 산처럼 크게 자라나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의 찬탄과 사랑을 받게 되지만, 만일 기다리지 못한다면 결코 사람의 손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벚나무는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가지를 팔처럼 뻗어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낚아채어 동산으로 데려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끌려온 사람들은 신의 벌을 받아 그대로 죽어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의 죽음에 슬픔과 절망을 느낀 벚나무는 꽃잎을 날려 사람들의 유해 위에 또 다른 나무의 싹을 틔웁니다. 그렇게 해서 벚나무는 여러 그루로 늘어나지만, 신이 경고한 대로 최초의 벚나무는 결코 산 사람의 온기가 담긴 손길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만, 시기에 따라 벚나무가 납치한 사람들의 수가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첫 판본인 산스크리트어 이야기에서는 세 사람이었던 것이 토하라어 판본에서는 열 명, 티베트어 판본 50명, 카자흐어 판본 100명, 이런 식으로 급격히 늘어납니다. 가장 최근 기록인 간체 중국어 판본에서는 천 그루의 벚나무가 수천 명의 사람을 납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하위 서사층 내에서만 일어나는 변화라면 모르겠으나, 이야기에 적힌 것과 거의 동일한 벚나무 군집이 발견되었다는 박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과연 문제의 이야기가 우리 서사 차원과 완전히 별개일지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대상의 변칙성을 규명하고 격리 절차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박사님. 부디 우리 시대에 새로운 판본이 발견되는 일을 박사님과 동료분들께서 막을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2018/04/02 스즈키 박사의 연구팀은 상부의 허가를 받아 명함에 적힌 정보를 토대로 베로니카 브라이드와 접선했다. 다음 날 오키다이토 섬에 나타난 베로니카는 스즈키 박사와 짧게 논의한 뒤 SCP-793-KO 내부 공간 지형 파악을 위해 두 명의 재단 인원과 함께 탐사를 진행했다. 세 사람은 탐사 도중 여러 차례 벚나무 군집에 의해 공격받았으나, 군집으로부터 날아온 벚꽃잎들이 침입자들에게 들러붙는 대신 베로니카의 기적술에 의해 형성된 역장에 가로막혔다.
이틀 뒤 베로니카는 탐사를 마치고 벚나무 군집 주변부의 지형을 확인해 대략적인 지도를 작성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두 개의 출입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각 출입구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일본 오키나와현 오키다이토 섬
- 중화인민공화국 시장티베트자치구 아리 지구
- 러시아 연방 사하 공화국 올레뇨크 강 유역
- 카자흐스탄 울르타우주 카라코인 호수
SCP-793-KO 격리팀 대화 기록, 2018/04/06:
베로니카: 대략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꽤 놀랍군. 중간중간에 말라붙은 계곡이나 바위 언덕 같은 것들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어서 눈치채기 어렵다만, SCP-793-KO의 내부 공간은 완전한 원형이다. 벚나무 군집은 그 원의 한복판에 있고. 네 출입구는 원의 둘레를 따라서 서로 동일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어. 그 말은……
스즈키 박사: SCP-793-KO는 인공물이군요.
베로니카: 누가 왜 이런 걸 만들었는지는 아직 불명이지만. 내심 사람이나 다른 지적 존재의 흔적을 발견하길 기대했는데, 그런 건 나오지 않았다.
스즈키 박사: 개인적인 이유로 변칙 공간을 만든 현실조정자나 기적사들은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무수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이 악의적인 출입구 배치는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같이 생존은 커녕 접근조차 어려운 지역인데, 왜 하필 이런 곳들만 골라서 출입구를 만들어 놓은 건지 모르겠군요. SCP-793-KO를 만든 자는 그 누구에게도 이 장소가 발견되지 않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베로니카: 알아볼 방법은 하나뿐이다. SCP-793-KO에게 직접 물어보는 거지.
스즈키 박사: 진심이십니까?
베로니카: 여기를 봐. [지도에 표시된 벚나무 군집의 가장자리 한 부분을 가리킨다] 이 지점에서 벚나무의 밀도가 현저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이 낸 길 같지는 않지만, 그 사이로 걸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이 지점과 군집의 중심부가 서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스즈키 박사: 신호의 근원지를 찾겠다는 거군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베로니카: 나 혼자 들어간다면. 저번처럼 다른 사람들을 지킬 여유는 없을 것 같다. 공간도 협소하고.
2018/04/10 베로니카 브라이드는 단신으로 SCP-793-KO에 진입, 이전 탐사에서 발견한 진입 가능 지점을 통해 벚나무 군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스즈키 박사의 요청에 따라 베로니카는 자신의 옷에 저시인성 바디캠을 부착하였으며 해당 장비를 통해 포착된 영상은 실시간으로 스즈키 박사의 연구실 화면에 중계되었다.
브라이드 양의 영상 기록, 2018/04/10:
[기록 시작]
[베로니카는 벚나무 가지와 뿌리 사이를 헤치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벚나무 군집의 밀도가 매우 높아 속도는 느리지만 더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벚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내부는 어두침침하다. 음성 기록 장치에는 베로니카의 숨소리와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나는 소음, 바닥에 가득한 벚꽃잎 위를 밟으면서 나는 부드러운 소리만 잡힌다.]
[수십 분 뒤 벚나무의 밀도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한다. 베로니카의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햇빛이 들면서 잠시 바디캠에 밝은 빛만 감지된다.]
[베로니카는 주변을 둘러본다. 벚나무 군집이 대략 지름 10m 정도의 평평한 원형 바위 하나를 둘러싸고 있다. 바위 위에는 벚나무가 존재하지 않아, 바위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베로니카: 그러니까 여기가 폭풍의 눈인 셈이군.
[베로니카는 바위의 한가운데로 향한다. 그녀는 주변을 잠시 돌아본 뒤, 왼팔을 뻗고 일종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베로니카의 왼손 끝에서부터 황금색 빛이 나타나더니 곧 그 크기가 커지면서 베로니카의 왼손을 감싸는 원기둥 형태의 광원으로 발달한다. 주변의 벚나무들이 광원에 반응해 베로니카를 향해 가지를 뻗기 시작한다.]
베로니카: 너희들이 아는 것을 내게도 알려다오.
[급성장한 벚나무 가지들은 베로니카의 팔과 접촉한 다음 멈춘다. 황금빛 광원이 베로니카의 팔을 축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가지들에서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수 분이 지난 뒤, 갑자기 베로니카의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체불명의 여성: 그래, 천오백 년이 지나도 여기저기 쏘다니는 건 여전하구나.
[베로니카가 뒤를 돌아본다. 검은 옷을 입은 젊은 백인계 여성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베로니카: 말도 안 돼.
정체불명의 여성: 참 이상하지? 너와 관련해서는 좋은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네가 나를 기억해줄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아.
베로니카: 넌 여기에 있을 수 없어.
정체불명의 여성: 그래? 그렇지만 나는 여기에 있는걸.
베로니카: 불가능해, ████는 너를 용서해주지 않았어. 천 년 동안 그가 마음을 바꾼 게 아니라면 너는-
정체불명의 여성: 나는?
베로니카: 너는, 너는 여전히 그의 입 속에서-
정체불명의 여성: 그의 입 속에서 으스러지고, 쥐어짜이고, 소화되고 있지. 맞아, 용서받은 신부. 너와는 다르게 나는 여전히 ████ 아래서 고통받고 있어.
베로니카: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너는 실제 그녀가 아니야. 너는 숲이 내 기억을 읽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고. 그저 숲이 그녀의 모습을 빌려서 말하는 거야.
정체불명의 여성: 그런데?
베로니카: 뭐?
정체불명의 여성: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거야? 내가 허상이라면 너는 나를 동정하지 않을 수 있는 거야? 네 기억 속에서 걸어나온 나, 지금 ████에게 마지막 체액 한 방울까지 짜이고 있을 나, 그것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네가 지금 여기에 선 나를 거부할 수 있을까?
베로니카: 그만해, 내 동정심과 슬픔은 네까짓 허깨비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냐.
정체불명의 여성: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네가 멋대로 그 동정을 거둬들일 수 있을까?
[베로니카가 비명을 지른다.]
정체불명의 여성: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베로니카: 날…… 날 가지고 놀지 마……!
정체불명의 여성: 싫어. 난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 놀이에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어.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손을 댈 때마다 죽었어. 너는 달라. 너는 죽지 않아. 그리고 여기까지 왔잖아. 이제 놀이에 참여해.
베로니카: 원하지…… 않아……
정체불명의 여성: 아니야, 너는 원하게 돼. 그걸 좋아하잖아, 그렇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당하게 되는 거.
베로니카: 너…… 이 자식이……
정체불명의 여성: 쉬잇, 이제 거의 다 됐어. ████가 누구인지, ██가 누구길래 그런 사악한 주인에게 학대당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는 ██에게 모든 걸 바친 적이 있어. 지금도 ██를 위해 많은 걸 걸려고 하고 있고. 그러니 너는 나와 놀아줄 수 있어. 날 위해 지쳐 죽을 때까지 같이 뛰놀 수 있어.
[베로니카는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여성: 베로니카, 나는 누구야?
베로니카: ██, 너는 ██야.
정체불명의 여성: 맞아, 나는 ██야. 드디어 나를 찾아줬구나.
베로니카: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너를 찾아다녔어. 널 구해내고 싶었어……
[정체불명의 여성은 무릎을 꿇고 베로니카를 끌어안는다.]
정체불명의 여성: 이제 우리는 함께야.
베로니카: 맞아, 우리는 함께야, 그때처럼, 그때처럼 함께……
[베로니카의 팔을 감싸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더욱 뻗어나가 그녀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여성: 어린 신부, 나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베로니카: 너를 절대 버리지 않을게, 너와 영원히, 영원히 같이 있을게.
[나뭇가지들이 베로니카의 옷 속으로 파고든다. 그녀는 머리를 뒤덮기 시작하는 나뭇가지들에 저항하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여성: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베로니카, 내게 맹세해. 나를 네 안에 받아들여. 내가 너의 안으로 파고들게 해 줘.
베로니카: 맹세하겠어. 너를 내 안에 받아들일게, 너는 내게 뿌리를 내리고, 나는 너의 잎이 되어주는 거야. 너의, 이 숲의, ██의 일부가 되어서 내 몸이 썩어 스러지는 날까지 너를 위한 놀이에 참여할 것을 약속해.
정체불명의 여성: 고마워, 어린 신부. 너는 맹세했고, 나는 기뻐. 그러니 된 거야.
목소리: 그렇지 않다. 너는 내 의사도 물었어야 했어.
[나뭇가지들이 멈춘다. 베로니카의 팔에 감긴 사슬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여성: 누구야?
목소리: 모르는 척 말도록. 너 건방진 벚나무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내 신부의 기억을 그토록 교묘한 기만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똑바로 읽었다면 말이지.
베로니카: 이, 이건……
목소리: [한숨] 칠칠맞은 신부여, 언제까지 자고 있을 셈이냐?
정체불명의 여성: [속삭임] 베로니카, 저 목소리는 듣지 마. 너는 이미 맹세했어, 그러니까 내 거야.
목소리: [비웃음] 미안하지만 그 아이는 내 거다. 종종 주인의 허가 없이 다른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취미가 있는, 정신머리 없고 한심한 나의 신부이지. 그러고보니 아까도 계속 그 아이를 신부라고 부르지 않았느냐?
[베로니카는 눈물을 훔친다. 정체불명의 여성은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목소리: 이거 알면 알수록 우습군. 그러면 너는 그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감히 신부라는 호칭을 입에 담은 것이구나?
정체불명의 여성: 누군지 모르겠지만 사라져 줘. 나는 나와 놀아줄 사람이 필요해.
목소리: 그러냐? [웃음]
[베로니카의 사슬이 작열하며 사슬에 닿아 있던 나뭇가지들이 타들어간다. 정체불명의 여성이 비명을 지른다.]
정체불명의 여성: 뭐하는 짓이야?
목소리: 왜, 놀아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장난이라면 나도 좋아하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주마.
[사방에서 베로니카를 향해 돌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한다. 바디캠의 화면은 금세 무수한 벚꽃잎들로 가려진다.]
정체불명의 여성: 그만해! 아니면 베로니카도 너도 묻어버릴거야!
목소리: 시끄럽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내가 사랑하는 신부를 건드리지 말도록. 언젠가 이 아이를 다시 보낼 테니 그때는-
정체불명의 여성: 베로니카를 내놔! 내놔! 내놓으라고! 당장 내놓-
목소리: [포효한다] 버릇없는 애새끼! 그 입 다물어라! 어른께서 말씀하시고 계시지 않으냐!
[바람이 더욱 거세져 바디캠의 초점이 매우 흔들리기 시작한다.]
[기록 종료]
베로니카는 영상 신호가 끊긴 지 30분 뒤에 스즈키 박사의 연구실 앞에 의식을 잃은 채로 나타났다. 그녀는 재단 인원들에 의해 회수될 당시 200 킬로그램의 벚꽃잎 아래 깔려 있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