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762-KO
평가: +10+x

일련번호: SCP-762-KO

등급: 안전 무효

특수 격리 절차: SCP-762-KO는 무속학부 산하의 사물형 변칙 개체 보관소에 보관한다. SCP-762-KO에 대한 변칙성은 무효화된 상태이나, 역사적인 가치, 무속학적인 대응 방식에 대한 적절한 예시임을 인정받아 본 문서를 유지하도록 한다.

설명: SCP-762-KO는 가로 100cm, 세로 70cm, 높이 100cm 크기의 뒤주로, 외형상 일반적인 뒤주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상부에 달린 뚜껑은 외관상 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다. 억지로 열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였으며, 하단부의 벽과 기둥, 바닥도 물리적인 파괴력에 면역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긁힌 흔적이나 소변으로 추정되는 물질에 오염된 흔적이 존재하나, 어떻게 그 흔적이 만들어졌는지는 불명이다.

SCP-762-KO의 주된 변칙성은 주변 11m 이내에서 발생한다. 불규칙적인 주기로 SCP-762-KO의 11m 이내에서는 거대한 소음이 발생한다. 그 크기는 약 70db에서 80db이나, 그것또한 규칙적이지 않다. 소음의 종류는 대체적으로는 사물놀이와 같은 한국 전통 악기 소리이나, 가끔씩 방울 소리와 같은 이질적인 소리도 함께 나타나고는 한다. 이 범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장되는 특징을 지니나, 그 속도는 매우 미미하다. SCP-762-KO가 제작된 걸로 추정된 연도를 통해 계산해 보면, SCP-762-KO가 가진 변칙성의 처음 범위는 약 50cm일 것으로 예상된다.

SCP-762-KO는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건릉1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해당 릉을 방문한 관광객들로부터 SCP-762-KO로부터 발생한 소음을 자주 얘기하였으며, 누적된 경험담을 재단이 포착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의 협조를 통해 건릉 주변 및 내부에 대한 검사를 통해 SCP-762-KO를 발견하였다. 재단은 복원 공사를 이유로 융건릉의 출입을 통제한 이후 SCP-762-KO를 발굴했으며, 이후 SCP-762-KO에 의해 발생한 소음은 개인의 착각이나 삼류 괴담 정도로 인식될 수 있도록 역정보를 살포하였다.

이후 SCP-762-KO의 정확한 변칙성 파악 및 원인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SCP-762-KO의 변칙성이 무효화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부록 참조.

부록: SCP-762-KO 무효화 기록

SCP-762-KO 개봉 시도 절차 회의록

<기록 시작>

임화이2: 싫다.

황우주: 저희 방금 녹음 시작했는데요.

임화이: 그니까 싫다고.

황우주: 아니 왜 제가 왔는지 얘기라도 들어봐야—

임화이: 내게 준 문서 보면 안 봐도 뻔하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피우기 시작한다.) 요 유명한 뒤주에다가 굿을 해달라는 거 아니야.

황우주: 그렇긴 한데 말이죠…

임화이: 내가 왜?

황우주: 무당들 중에 씻김굿을 할 줄 아는 무당이시니까요.

임화이: 염병. 출신이 죄지, 죄야.

황우주: 왜 꺼려하시는지를 물어봐도 될까요?

임화이: 내가 씻김굿 할라는 뒤주가 무슨 뒤주인지는 알지? 솔직히 정조 무덤에서 발견된 뒤주라면 뻔하지 않냐.

황우주: 그렇죠. 아무래도 유명한 그 분이죠.

임화이: 뭘 굳이 그 분이라고 불러, 피휘 따윈 좆까라 그래.

황우주: 음… 사도세자겠죠, 아무래도?

임화이: 그래, 넌 사도세자가 아직도 이 뒤주에 깃들어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황우주: 원혼은 죽은 자리에서 머물기 마련이니까요.

임화이: 그게 왜 아직도 남아있겠냐?

황우주: 예?

임화이: 정조 그 효자가 아버지를 위해 그 난리를 쳤는데 왜 사도세자의 원혼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냔 말이다.

황우주: 그럼 다른 게 들어있다는?

임화이: 글쎄, 그건 알 수 없지만… (서류 뭉치를 팔락거린다.) 이 놈 초기 조사할 때 나도 있었거든? 뿜어내는 기운을 보면 이 안에 뭔가 삿된 것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함부로 열어서 위험한 주술적 도구나 원혼이 빠져나오면 할 일이 기하급수로 는다고. 또, 여기 심층 검사 문서에서 보면, 판자 여기저기에 있는 흔적들이 보인다. 이건 사람 손톱이 긁은 흔적인데, 이 흔적이 밖에 남아 있고, 그 굵기와 크기가 다르니까, 붙은 게 사도세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황우주: 그러면 누가?

임화이: 사도세자에게 원한이 있는 것들이겠지.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사람을 여럿 죽였으니까. 죽고 나서도 괴롭힐 마음으로 갔다 붙었을 거야.

황우주: 하지만 실제로 붙어있는 심령독립체는 없지 않습니까?

임화이: 정조가 노력한 덕이겠지. 왕권만큼이나 아버지가 중요한 왕이었으니. 덕분에 무덤도 명당으로 옮겨주고 화성이라는 성도 지어주지 않았냐.

황우주: 그러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어쨌든 조상님이 다 물리쳐줬잖아요.

임화이: 하지만 그건 사도세자 문제고, 다른 원혼들의 문제는 확실하지가 않다. 솔직히 말해서 무당 여럿 잡아먹었을 거고. (임화이가 일어나서 책장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소리) 내 선배들의 기록을 보면, 1763년3, 1776년4, 1796년5에 선배들이 상경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근데 돌아온 선배는 한 둘이었어. 그 둘이 뭐라고 고백했을까?

황우주: 사도세자의 씻김굿을 했다?

임화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적혀있네. 아무래도 뒤주에서 소리가 나니까 사도세자의 씻김굿을 할려고 했겠지. 하지만 그 전에 세자를 둘러싸고 있는 원혼들의 무리 먼저 성불시켜야 했을 거야. 중간에 그걸 알아챈 무당들은 그들의 씻김굿을 먼저 해줌으로써 목숨을 건진 거지.

황우주: 다른 무당들은?

임화이: 끽. 원혼들이 세자 혼자서만 성불하도록 둘 리가 없지.

황우주: 일단은 조상들이 어느 정도 해줬다는 거네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저희가 사도세자의 씻김굿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임화이: 선배들이 돌아온 것도 1776년이 마지막이었다. 1796년에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 때 수원 화성이 완공되었지. 아마 원혼들의 한이 다 풀렸으리라고 생각된 조정이 마지막으로 사도세자를 성불시키려고 불렀겠지만…

황우주: 뭔가 잘못되었다?

임화이: 그래.

황우주: 그래도 300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더 무슨 일 있겠어요?

임화이: 이 새끼가. (방울로 때리는 소리) 귀신은 묵을수록 강해진다는 말도 못 들어봤냐 망할 놈아!

황우주: 아! 아! 아파요! 하지만 변칙성 자체가 적대적이기 보다는 평이한 수준이라고요! 그게 일단 약해졌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요! 아니면 당신 선배들처럼 후배들을 사지로 내모실 겁니까! 상부는 그러고도 남잖아요!

(방울 소리가 멈칫한다.)

임화이: 그건 그렇지. (한숨) 약해졌다는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나?

황우주: 아뇨.

임화이: 에라이! (드롭킥을 날리는 소리)

<기록 종료>

SCP-762-KO 개봉 시도 절차 기록

<기록 시작>

황우주: 기록 시작했습니다.

뇌수종: 좋습니다. 여기는, 기지 뒷마당이고요. 어렵게 설득 성공한 저희 임화이 무당이 굿을 통해 원혼의 말을 들어보고 변칙성의 구체적인 원인을 탐구해볼 예정입니다.

임화이: (뒷마당에 들어서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윗놈들 의뢰만 아니었으면 억지로 맡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위험하면 바로 그만둡니다.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긴 하지만.

뇌수종: 얼굴이 좀 반질거리네요?

임화이: 중요한 의식이라서 목욕재계 빡세게 하고 왔습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황우주: 그정도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니깐요.

임화이: 네가 굿 하는 거 아니면 닥쳐라. 준비는 빡세게 하셨죠?

뇌수종: 초, 천, 병풍, SCP-762-KO, 경문 기타 등등, 기초적인 거는 갖추었죠. 당신 신이 좋아할만한 걸로 다 특별히 더 세팅해뒀고.

임화이: 좋습니다. (임화이가 입고있던 자켓을 벗는다. 안에 입고 있던 검은색 두루마기가 드러난다. 임화이가 준비된 제단의 초에 불을 붙이고 자세를 잡는다.) 시작하겄소. 뭔일이 일어날지 하나도 모릉께 물러나 계시고.

(임화이가 눈을 감고 방울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한다. 법사가 북을 서서히 치면서 경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임화이가 그 박자에 맞추면서 뜀뛰기를 하더니 눈을 뜬다. 눈에 초점이 없는 상태다. 법사가 외는 경문이 임화이의 입에서도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임화이가 뜀뛰기를 멈추면서 자세를 잡는다.)

임화이: 하!

(임화이가 뜀뛰기를 재개하면서 제자리에서 한 바퀴씩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무는 모습이, 얼마 뛰지도 않았으나 땀 여러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보인다. 물속을 움직이는 듯이 임화이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둔해져 보인다. 임화이가 공중에 한 번 높게 뛰어올랐다가 안정적으로 착지한다. 착지하면서 다리를 한 바퀴 돌리면서 땅을 긋는다. 그녀가 얼굴에는 미소가 보인다.)

임화이: 보통 놈이 아니어라. 요놈에게는 미안허지만, 조금 흥이 오르는 게 좋구마잉. (광소하면서 더 격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황우주: 완전 다른 사람 같네요.

뇌수종: 다른 사람 맞습니다. 저렇게까지 깊게 강신하다니, 보통 일이 아니네요.

황우주: 저 뒤주가 그 정도로 위험해요?

뇌수종: 다른 원혼들을 다 떨쳐낼만큼 굿을 해도 남아있는 원혼입니다. 대하기 어려울 법 하죠. 근데 저희 악기 중에 태평소가 있었나요?

(SCP-762-KO에서 발생하는 소리다. 기존에 보고되었던 소리에 비해서 음량이 더 커진 상태다. 그와 동시에 천둥소리와 함께 SCP-762-KO를 향해 번개가 내리친다.)

뇌수종: 저게 뭔…

(SCP-762-KO에 불이 붙더니 치솟아오른다. SCP-762-KO에서 기대되는 불꽃 크기보다 훨씬 거대하다. 동시에 임화이의 몸이 푹 숙여지더니, 입에서 피를 토해낸다. 법사와 황우주가 놀라서 임화이를 구출하기 위해 접근한다. 한 쪽 눈에 초점이 돌아온 임화이가 손을 들어올려 이 둘을 막는다.)

황우주: 사도세자는 말라죽은 거 아니었어요? 왜 불이 나오는 겁니까?

임화이: 해갈(解渴)이 안되서 그라제. (임화이가 제단에 다가가 놓여있던 돼지머리를 물어뜯고는 살점을 삼킨다. 불에 의한 열로 알맞은 정도보다 살짝 더 익은 상태이다. 임화이가 소매로 입가를 쓱 훔친다.) 흐, 이런 놈과 한 판 출 생각 하니까 달아오르는구만.

황우주: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뇌수종: 일단 지켜보죠. 화이 씨가 생각하기에 해볼만하다고 판단했기에 저렇게 반응하는 걸 겁니다.

황우주: 그렇지만— (방울소리가 들린다. 임화이의 방울에서 나왔다기엔 너무나도 큰 방울소리다. 그러나 녹화 화면에는 분명히 임화이가 방울을 흔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임화이의 방울 소리인지, SCP-762-KO의 방울 소리인지는 불명확하다.)

(임화이가 춤을 춘다. 이번에는 뜀뛰기는 하지 않는 대신, 발끝으로 땅을 그으면서 유려하게 춤춘다. 모든 동작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황우주: 춤이, 달라졌어?

임화이: 방향을 잘못 잡았어. 다른 혼을 성불시키고 있었으니 하마터먼 선배들 따라갈 뻔했구만. 천!

(법사가 임화이에게 천을 전달해준다. 임화이가 천을 잡고 빙빙돈다. 도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천이 SCP-762-KO에서 발원한 불에 닿는다. 천이 불에 닿음과 동시에 타오른다. 임화이는 도는 속도를 멈추는 대신 그 속도를 더 높인다. 임화이 주변으로 불의 원이 형성되더니 그게 점점 더 짧아진다.)

(불에 타오르는 천이 임화이의 손에 닿기 전에 임화이가 천을 놓는다. 공중에서 천이 완전히 불살라지는 동안 임화이는 계속 돈다. 이 순간부터 하늘에 빠르게 먹구름이 지기 시작한다. 천이 전소해서 그 마지막 재까지 임화이에게 닿는 순간, 임화이가 돌기를 멈춘 그 순간,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 굵은 빗줄기에 SCP-762-KO에 붙은 불이 서서히 꺼진다.)

임화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이렇게 크게 울음을 터트리요… 이제 편히 쉬시오.

(SCP-762-KO에 붙은 불이 완전히 진화됨과 동시에 두 눈에 초점이 돌아온 임화이가 쓰러진다. SCP-762-KO가 불에 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황우주가 임화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온다. 뇌수종은 SCP-762-KO를 확인한다. 황우주가 바닥에 내려놓은 카메라를 통해 SCP-762-KO의 뚜껑이 열리는 모습이 보인다.)

임화이: 살았다, 시발… 죽는 줄 알았네…

<기록 종료>

SCP-762-KO 개봉 시도 사후 기록

<기록 시작>

임화이: 태워.

황우주: 병문안 온 사람에게 다짜고짜 할 소리입니까? 그리고 여기 금연입니다.

임화이: 내가 폐암으로 쓰러진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이 정도야 링거 하나로도 충분해. 다들 호들갑은.

황우주: 근데 어떻게 아신 겁니까?

임화이: 나 무당이야, 새끼야.

(황우주가 임화이 병실 침대 옆 탁자에 SCP-762-KO로부터 나온 내용물을 내려놓는다. 제웅 두 개다. 하나는 목에 밧줄이 둘러져 있다. 하나는 가슴에 말뚝과도 같은 나무 토막이 박혀있다.)

임화이: 예상했던 대로네.

황우주: 그래서 뭘 예상하신 겁니까? SCP-762-KO의 변칙성도 사라졌습니다. 정말 중간에 해볼만하다고 생각한 건가요?

임화이: 생각을 조금 다르게 했을 뿐이야. 우선 이거는 확실히 해두지. 정조 대왕이 생각보다 잘해놨어.

황우주: 그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귀신들을 씻김굿 해준 거요?

임화이: 그건 당연하고. 지 아비 원한도 끌어안은 거.

황우주: 하지만 사도세자의 한을 풀려는 시도는 거의 실패했잖아요. 저희도 실패할 뻔했고요. 도대체 무슨 한이 남은 건가요?

임화이: 외부를 향한 원한은 대부분 정리가 됐어. 다만 거기에 남은 거는 이제— (임화이가 말뚝이 박힌 제웅을 가리킨다.) 이해는 하되 용서는 할 수 없는 자기의 마음 그리고— (목에 밧줄이 둘러진 제웅을 가리킨다.) 그에 따른 자기혐오지.

황우주: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임화이: 좀 더 쉽게 타임라인으로 정리해볼까? 임오화변에서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불러서 뒤주에 가두었을까? 그렇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세초가 되어서 아무도 알 수 없다지?

황우주: 영조를 죽여버리겠다, 뭐 그런 짓을 했겠다는 추정이 있고는 하죠.

임화이: 이것들을 보면— (임화이가 두 제웅을 가리킨다.) 직접적인 저주의 형태인 무언가가 있었음은 분명해. 그게 제대로 안되서 그 살을 자신이 대신 맞은 거지. 어쨌든 그렇게 죽은 데에 대한 원한은 많지는 않았을 거야, 억울함은 아들이 풀어줬을 테니. 결국 남은 거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저주라는 형식에 대한 원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볼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씻을 수 없는 감정, 그럼에도 끝끝내 좋은 아들이,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해서 남는 후회 등이지.

황우주: 그럼 그것들이 한 데 뭉쳐져서 이 인형이라는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고.

임화이: 그 영향으로 열리지 않고 부서지지도 않는 뒤주가 된 거지. 그래서 우리는 죽은 자가 바깥으로 품는 원한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을 용서할 수 없던 마음을 달래줘야 했다는 거야.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슬퍼한다. 참으로 적절하게 지은 이름이야.

(침묵)

황우주: 이제까지의 무당들이 실패한 거는 사도세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그런 거군요. 외부의 원혼과 한이 아니라, 내부의 한을 달래줬어야 한 거였어요. 정조는 이를 알았을까요?

임화이: 모르겠어. 확실한 건 아버지를 괴롭히는 한들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거겠지. 원령들도 다 성불했고, 아버지를 위한 성을 지어 한이 다 풀렸으리라고 생각된 1796년, 어떤 짓을 해도 한이 풀리지 않았으니까. 결국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황우주: 그래서 자기 무덤에 같이 넣었다.

임화이: 영혼끼리의 대화랄까? 아마 거기서 아버지 자신을 봤을 테고. 그렇게 옆에서 아버지를 달래줬지만, 효심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뭐, 그런 거지. 오히려 가족들이 헌신할수록 낫지 않는 자기혐오도 있는 법이야. 그래도 최대한 걷어낸 덕분에 내가 제대로 된 원인을 찾고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정조가 헛짓거리 한 건 아니라고 하자.

황우주: 좋네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요. 아까 이것들은 태우라고 했잖아요. 왜 그렇죠?

임화이: 망자의 것은 태우면서 한을 달래줘야지. 맘 같아선 뒤주도 태우고 싶다만, 주술을 거는 데에 좀 특이한 방식이라서 우리 쪽에서 더 연구할 것 같네. 이의 없지?

황우주: 고생해주셨는데, 당연하죠.

임화이: 좋아 그럼. (담배를 꺼낸다.) 마침내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넓은 하늘로 날아간 세자를 위해.

황우주: 병원에선 금연이라니까요.

(황우주가 임화이에게서 담배를 뺏으려고 한다. 두 사람이 몸싸움을 하는 동안 카메라가 떨어져 자동으로 녹화가 종료된다.)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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