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16세기 이탈리아어에서 번역하였다. 최대한 명료한 작성을 위해 원고 내용은 현대화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수많은 페이지가 소실되었으며 일부는 곰팡이 때문에 손상되어 판독이 불가능해졌다. 요청 시 원문을 열람 가능하다.
1590년 10월 28일:
알베리기 [신원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가신 중 한 명이라 추정]가 내게 후회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어찌 뻔뻔한 소리인가! 난 살인자 따위가 아니다. 명예만이 내 행동을 좌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돈나 마리아 다발로스와 파브리치오 카라파]는 나를 배신한 순간에 이미 죽었던 것과 다름없다. 그 뒤를 이은 사건은, 파멸, 운명, 무어라고 부르든 간에 이미 신께서 친히 확정하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받은 것이라곤 모독뿐이지 않은가.
그래,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절대 회한 따윌 품고 있진 않단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내 안의 무언가가 변했다. 내 존재 자체를 이루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이다. 경탄스러운 격노에 굴복하자, 마치 내 영혼으로 통하는 문이 경첩에서 뜯겨져 나오고, 불청객 괴한이 쳐들어온 듯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내 영혼은 그 무엇의 침입도 허락지 않는 주님의 방벽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진실로, 정신은 온전히 그 뜻대로 하게 둘 때야말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 말에 개의치 않고, 나는 다른 자의 의견 또한 들어보고자 하였다. 주치의는 담즙질choleric이라는 진단을 내리며, 단지 황담즙이 과다하게 만들어지면서 그로 인한 증상을 겪고 있을 뿐이라 결론 지었다. 나는 흑담즙이 과도해 피폐해졌건만, 내 가련한 체액은 균형을 맞추지 아니하고, 오히려 두 체액이 병적인 합종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마치 연금술과도 같아서, 두 부분의 합보다도 더욱 큰 양의 고통을 내게 안겨주고 있다.
의학이나 그 응용에 관해서 아는 바는 적으나, 나는 칼란드리 [추정컨대 제수알도의 주치의의 이름]를 신용한다. 신께서 내 영혼을 거두어들일 수도 있지만, 좋은 의사의 손에 내 건강이 붙들려 있다. 주치의 왈, 내 생각이나 감정을 써보면서 육체적 조화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1590년 11월 6일:
어젯밤, 잊힌 기억과도 같이 시커먼 바다 속에서 솟아 오르는 기괴한 도시의 꿈을 꾸었다. 흑단나무 같은 별들이 어둑히 타오르며 지독한 하늘 속을 가로지르며, 피나 포도주도 아닌 붉은 액체가 설화석고로 된 건물들에서 위아래로 흐르는 곳이었다. 그 건축 양식은 규모로 보나, 자연법칙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보나, 바빌론의 불신자들이 지닌 오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광경을 미친 듯이 들이밀고 있지 않는가!
이 변덕이 들끓는 거대한 도시에서 통일된 구석이라곤 오직 그뿐이었다. 마치 미궁 같은 구조는 고대인의 화려함이었다가, 광분 속의 망상 속에서나 언뜻 볼 법한 곳으로 어느새 탈바꿈해 있었다. 사악한 탑과 불가해한 기하학으로 가득 찬 이 도시가, 자신을 익숙하게 보이도록 애쓰기라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것은 단지 내 정신이 만들어낸 환각에 불과하단 말인가? 내가 도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던 나머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마치 천사들을 목도했을 때처럼?
잠에서 깨어나자 실로 기묘한 노래가 어렴풋이 머무르고 있었다. 미처 그 음악을 감상하기도 전에, 조화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오직 공포만이 남았다.
1590년 11월 13일:
식은땀으로 흠뻑 온몸을 적신 채, 손을 벌벌 떨면서 일어났다. 이 야경증을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발열과 피로로 극심한 고통에 빠진 채임에도, 나는 끔찍하리만치 명료하게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마치 꿈이 깨어 있는 동안의 세상보다 더욱 진짜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실로 그 초현실적인 풍경을 일상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저택의 대강당에 있을 때도, 낯선 이들이 가득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지만, 나 홀로 있는 성에 이 자들이 발을 붙이고 서 있을 장소 따윈 없단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성모독적인 괴한들의 행동거지와 색을 밝히는 모습은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났지만, 그와 동시에 부끄럽게도, 어느 정도 기이한 매력을 느끼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끔찍히도 불경스러운 광풍의 중심에, 감히 말조차 꺼낼 수 없는 행동을 취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가면! 신이시어, 그 가면! 그녀가 날 아직도 조롱하고 있다, 그 창부들의 여왕이! 그 여자는 목숨이 끊어지면서도 내게 창피를 주고 있었다! 온몸의 구멍에서는 악마 십만 마리의 씨앗이 넘쳐흐르고, 마침내 그녀의 몸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자, 자기 살갗을 찢어 열어서는 악마 놈들의 방탕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여자는 분명 자멸했지만, 내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황홀감에 젖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 이상은 쓸 수 없다. 지옥의 면면이 더욱더 암전하면서, 필멸자의 인지를 초월한 음탕한 도착증이 드러난 탓이다.
군중들이 고개를 돌아 나를 마주하고, 낄낄거리면서 조소 섞인 웃음을 오롯이 내게 집중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나는 불륜을 당한 남편이 되었다! 그 자들의 조롱이 살을 뼈에서 찢어내는 듯했고, 영혼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완전히 노출되고 말았다. 나는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인간들의 무리에 끝내 파묻히고 말았다. 내가 더욱 엉망이 될 꼴에 나름의 대비를 하던 중, 알베리기가 내 잠을 깨웠다. 한밤중에 내가 비통함에 차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다시는 잠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칼란드리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제 내가 잠에 들기 전이면 동방에서 온 쓰디쓴 팅크제와 각종 약초를 먹이고 있다. 이 약들이 견딜 힘을 줄 것이라며 말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부디 저를 이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1590년 11월 25일:
칼란드리의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악몽을 꾸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면서, 심지어는 오히려 그 내용이 한층 더 기괴해지기까지 한다. 꿈은 동일하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내 정신이 거부하는 것을 무시한 채로, 몸은 계속 고대 시대의 돌계단을 내려간다. 대강당에 들어서면 항상 가장무도회가 펼쳐지고 있다. 흑색과 백색, 적색과 황색.
칼란드리가 자주 그 색들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4체액에서부터 연금술이 좇는 궁극의 마그눔 오푸스까지, 수많은 자연과 기적 속에서 이 색상들이 고개를 내미는지 보여주었었다. 자연과학에는 견문이 좁지만, 나 역시 그의 고찰에 완전히 도취된 채로 들은 적이 왕왕 있다. 흑색, 백색, 황색, 적색, 흑색, 백색, 황색, 적색… 내가 기억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분해Nigredo - 마그눔 오푸스는 부패로 시작한다. 이 과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물질들이 검은색이 될 때까지 가열한다. 혼돈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순결Albedo - 물질에서 불순물을 정제해 내야 한다.
황화Xanthosis - 여기서부터 그는 이해했지만 나는 이해에 실패한 영역이다. 이 부분이 대부분의 연금술사들이 실패하는 지점이라고 한다. 물질이 반드시 변성을 거쳐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면의 빛, 다시 말해 모든 신의 아이들 안에 존재하는 불멸하는 신성의 불꽃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은 채 이 빛을 해방하려면 대체 어찌 해야 하겠는가? 다른 사람에게서 강탈해야만 하나?
적열Rubedo - 끝내 모든 것은 적색으로 끝난다. 그가 내게 피 얘기를 했지만, 그 목소리는 점차 멀어지며 웅웅거리기만 했다. 마치 내 머리가 물 속에 잠기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관심은 침실 저 끝 쪽으로 이동했다. 형형색색의 옷을 빼 입은 어릿광대가 춤을 추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광대의 요란한 놀자판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칼란드리는 쉴 새 없이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어릿광대는 종으로 장식된 모자를 벗더니, 모자 안쪽으로 손을 뻗어 기다란 밧줄을 꺼냈다. 나는 눈을 크게 치켜뜨고, 깜빡이지도 않은 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 광대는 밧줄에 매듭을 지어 올가미를 만들어다. 목소리가 빼앗기고, 내 전신은 마비되다시피 했다. 눈조차 감을 수 없었다. 시선을 멀리 돌릴 수도 없었다. 어릿광대는 올가미를 자신의 목에 걸더니 다른 쪽 끝은 내 침대의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는 단검을 혁대에서 꺼내 들어 공중으로 높이 들더니, 자신의 복부 깊숙이 칼날을 쑤셔넣었다. 천천히,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그는 자기 내장을 적출해 냈다. 마지막 장기가 바닥에 쏟아지자, 어릿광대는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창문으로 몸을 휙 하고 던졌다.
나는 비명을 내지르고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창가에 다다랐을 때 그 얼간이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악몽은 이제 잠을 잘 때만 나타나지 않았다. 신이시어 제발! 칼란드리는 더 이상 자신이 손쓸 수 없을 수준으로 고통이 커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 공포는 악마가 원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날이 밝으면 아벨리노의 주교에게 서신을 보낼 것이다. 이제 무언가 사악한 존재가 내 성에 머리를 들이밀고, 내 영혼을 송두리째 지배하려 한다는 사실에 한 점 의심이 없다.
1590년 12월 3일:
오늘 흥미로운 편지를 받았다. 보낸 기억조차 전혀 없는 편지한테 온 답장이다. 적힌 글귀는 해괴한데, 이해 가능한 단어와 완벽하게 낯선 기호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다. 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알베리기에게 읽을 수 있나 물어보았다. 알베리기 말로는 편지는 평범한 이탈리아어로 작성되었으며, 유려한 서체와 평범한 문체를 제한다면 그 무엇도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이 없다고 한다.
편지는 알라가다의 대사라는 자한테서 온 것이다. 들어본 적도 없는 먼 곳의 왕국인 모양이다. 대사는 내가 초청해 준 것에 대해 분명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정확히 이번 달 30일에 도착할 것이라 알렸다. 이 소식은 평소 내 반사회적인 성정을 고려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심하게 불가해한 공포감을 커다랗게 불어넣었다. 알베리기는 내가 10월에 초청장을 보냈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대체 왜 내게는 기억이 없는 것인가?
1590년 12월 10일:
가면을 쓴 마귀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밤에는 나를 미행하다가 거울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가신들은 하나같이 내 정신이 빚어낸 함정일 뿐이라 일축한다. 더 이상 현실을 공상과 분간할 수가 없다. 안전을 위해 내 성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을 눈에 띄는 대로 깨부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1590년 12월 16일:
아벨리노의 주교에게서 서한이 도착했다. 주교는 동정심을 드러내며 자기 휘하의 가장 훌륭한 고위 성직자 여럿을 보내리라 맹세했다. 드디어 희망의 불씨가 어둠을 향하여 불타오르니라. 그 빛 속에서 나는 안식을 찾으려 노력하리라. 그 불꽃이 아무리 희미해도.
그 다른 편지, 내가 보낸 적도 없는 초청장에 온 답장의 건은 잊지 않았다. 예정된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공포가 되어 내 심장을 옥죄어 온다. 천천히 포식을 즐기는 데에 만족하며, 내 고통을 음미하고, 끝내 나의 영혼을 집어삼키려 도래하고 있다.
1590년 12월 18일:
내 세상이 가장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으로 진동하는구나! 헌데 하인들은 내 잔 안에서 떨리는 와인 말고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한다! 이 소음은 이제 더 시끄럽고, 더 깊게, 날마다 심해지고만 있다. 귀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뼈가 부러지기 시작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 고통은 저주의 탈을 쓴 축복일지도 모른다. 끔찍한 수면이 날 감싸 안는 것을 참을 수 있도록 도우니 말이다. 그 꿈을 다시 마주할 수는 없다! 이 꿈들이 불경한 충동과 특이한 자기파괴적 본능으로 내 혼을 채우려 든다. 아, 내가 얼마나 죽음이라는 달콤한 해방을 갈망하고 있는가! 신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사제들은 어디 있는가? 모든 성인과 모든 천사께 고하노니, 부디 저를 광기에서 구하소서!
1590년 12월 23일:
성직자들이 정오 즈음에 도착했다. 성을 철저히 조사해 보니, 무언가 불경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성직자들의 지도자 왈, 내가 겪는 고통은 단순히 내면의 문제나 사소한 악마의 짓이 아니고, 사탄이 직접 개입한 흔적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거기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내가 신실하게 보내온 지난날이 사탄의 표적이 되었다고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그들이 성 안을 성수로 축성하면서 기괴한 불협화음을 신성한 종소리와 기도 소리로 바꾸어 놓았다.
밤이 되면 성직자들이 내 몸에서 악을 구마할 것이다. 신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나는 구원받으리라!
1590년 12월 25일:
이 성스러운 날에, 나는 마침내 구원받았다! 몹시도 고된 작업이긴 했지만, 사제들이 내 몸을 구속해 두고 온당한 고행을 통해 사탄을 쫓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일기를 계속 쓸 이유도 거의 없어진 듯하다. 품위를 되찾고 음악의 향취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물론 알라가다에서 온 편지에는 아직 궁금증이 남아 있다. 내 책상 위에 아직 남아 있는 또 다른 망상이라 추정하고 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 특이한 봉인에는 몇 번이고 눈길이 끌린다. 편지를 감히 다시 읽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 존재 자체가 내 회복에 방해가 될 것이 뻔하니 당연한 일이다.
밤이 되면 편지는 태워버릴 것이다.
1590년 12월 26일:
말이 안 되지 않나.
내 눈 앞에서 재로 변했거늘.
그런데도 다시 여기, 내 책상 위로 돌아와 있다. 아무 손상도 없다. 완전히 새것 같다.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다.
1590년 12월 29일:
교회는 실패했다. 신께서 날 버리셨다. 눈으로 보였던 희망은 언제나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 성 안의 사람들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그것들이 나를 해하려 알 수 없는 사악한 음모를 계획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완전히 혼자다.
잠에 들지 못하는데도 악몽은 여전하다. 내 집을 집어삼키고, 모든 것에 섬망이 전염되었다. 어둠이 창문에 결집하며, 바깥 세상으로부터 내 눈을 완전히 가리고 말았다. 벽은 불룩 튀어나오면서 깨지고, 검은 기름에 더해 내장과 익사한 쥐들이 새어 나온다. 방 안은 일그러지며, 위 아래의 구분조차 뒤엉킨다. 초상화 액자 속에서 나의 선조들께서 고통스럽게 몸을 비트시고, 일제히 애통한 비명을 지르신다.
탈출하려고 애를 써봤지만 내 힘보다 강한 외력 때문에 나가는 길은 막혀 있다. 나는 약해 빠졌다. 언제나 나약했다.
그 힘이 나를 망가뜨리고, 내 자율을 완전히 박탈당하고는, 거짓된 희망과 어리석은 신앙심으로 내 길을 환히 밝히고 있다.
더 이상 맞서 싸울 수 없다. 종언을 환영한다. 예견된 날이 왔다.
1590년 12월 30일:
불가능한 음악이 아래쪽에서 울려 퍼진다. 알베리기가 출입구 쪽에 서 있다. 그 얼굴은 도자기 변장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움직임 하며 자세가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닮았다. 그의 골격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을 괴한이 두렵다. 목소리도 무언가 잘못되었다. 마음 속에선 이 남자가 이미 영혼을 잃었음을 직감했다.
대사가 도착했다고 그가 알렸다. 신이시어, 부디 자비를.
1591년 1월 12일:
[다른 사람들이 읽게끔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음에도, 이 시점부터 일기의 문체가 급격히 개선되고, 서체 역시 아주 뛰어난 수준으로 변한다.]
그들이 도착할 것을 두려워했던 내가 멍청이였다. 내 고통은 의미 없지 않았다. 즉, 내가 보냈던 인고는 단지 영혼을 일깨우기 위한 진통에 불과했던 것이다. 알라가다의 비밀 의식에 입문한 나는, 선택받은 소수의 인간 중 한 명이 되었다.
처음으로 놀랐던 사실은 칼란드리가 그들 중 한 명이었단 것이다. 가면 변장 때문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칼란드리는 내 쪽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오더니 친숙하고 차분하게 내 걱정을 덜어 주었다. 그리고는 가면을 주더니, 알라가다의 관습이라면서 이 가면을 쓰라고 말하였다. 이제야 그가 내 각성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눈치챘다. 내 멘토,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처럼 지옥의 심연 속에서 나를 안내하게 될 이였음에 틀림이 없다.
대사가 내 성에 들어오며 감히 비할 데 없는 휘광을 내뿜었다. 수행원으로서 공중제비와 저글링을 하는 곡예사, 음유시인과 가수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대사는 우아하게 인사하며, 직책으로만 자신을 소개했다. 머무는 동안 진명만큼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기묘하게 발뒤꿈치 쪽으로 중심이 가 있는 '초핀'에서 뾰족한 모자까지, 그의 전신을 황혼빛 비단이 감싸고 있었다. 비단 천은 마치 이미 오래 전 죽은 이집트 왕들의 붕대처럼 팽팽히 감긴 모습이었다. 설화석고로 된 가면, 루비가 덮인 금은보석, 갖은 염료로 염색된 더블릿과 판탈롱 같이 화려한 복식을 차려 입은 대사의 수행원들에 비한다면, 예상 외로 단출한 옷차림이었다.
우리는 각종 주제들, 예술, 음악, 철학을 숨겨진 영역까지 깊숙이 토론했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지만, 나는 매료된 채 그의 말을 들으며 모든 금지된 언어를 음미했다. 마침내 대사는 목매달린 왕을 입에 담았다. 그의 신비로움과 지고한 힘에 대해 말이다.
대사의 방문은 오래도록 머무르는 꿈결을 추억하듯 기억 속에 남았다. 떠나면서 그는 자신의 무언가를 남겼고, 나도 보답 삼아 무언가를 건넸다. 우리가 정확히 무얼 주고받았는지는 전혀 떠올릴 수 없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아마 이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했을 터이다. 대사는 내게 그들만의 징표를 표시해 주었다.
이 페이지를 얼룩지게 한 눈물은 그의 영광을 증명함이라, 이는 곧 그가 내 영혼에 우주의 음악을 새겨 넣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를 찾아 인류에게 진정한 천체들의 조화를 보여줘야만 한다!
1591년 2월 7일:
오, 나란 놈은 얼마나 무지했던가! 이제서야 참된 명징한 눈으로, 당신의 더없는 행복이 속임수에 불과함을 깨닫는구나! 우리가 현실이라 지껄이는 것은 엄격하게 제어되는 공연에 불과함이라. 삶은 비애와 고통 중 하나일 뿐인지라, 이 세상의 무수히 많은 거짓 아래에 숨이 막힐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교회와 그 치들의 거짓, 그들이 내가 아기일 적부터 먹여온 극독에 놀아나지 않으리라.
이리도 맑은 음악 소리가 이제 들려오지 않는가. 내가 필요한 단 하나의 진실이라.
1591년 2월 24일:
명석하다는 사실이야 애진작부터 쭉 알아왔던 일이나, 칼란드리는 생각보다도 더욱 박식하다. 내가 받은 교습은 금술로 지정된 점성술, 교회가 오래토록 짓밟아 온 우주의 비밀에서부터 시작했다. 교회란 작자들은 별, 그 별의 공포스러운 전조와 무한한 불가해함을 얼마나 두려워해 왔는가!
우리는 이 근래, 청동과 윤이 나는 유리, 광학 기구로 된 괴상한 도구를 조작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왔다. 칼란드리는 몇 년 안에 이 도구가 흔히 쓰이게 될 것이라 확언했다. 이 장치로 우리는 명이 다한 세상을 찾으며, 공허의 번성을 기록한다. 종종 칼란드리가 알라가다, 잠든 도시, 검은 별들이 만세 동안 그 비밀을 부르짖는 그곳에 관한 얘기를 하곤 한다.
우리 결사 같은 곳은 이미 수도 없이 존재한다. 우리의 지배자께선, 황제들마저도 공손히 받들어 모시는 지엄한 왕일지어다.
1591년 4월 6일:
칼란드리는 완벽한 강의를 보여주었고, 나 역시도 그에 맞춰 잘 따라 배웠다. 그의 마법서는 연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낡았고, 책의 페이지는 철제 자물쇠와 쇠고랑으로 봉인되어 있다.
오늘 나는 선생에게 지고한 알라가다에 관해, 그리고 어디서 알라가다가 탄생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칼란드리가 이르길, 잠든 도시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존재하였으며, 그 고아한 사원들은 신들이 한갓 공상에 지나지 아니하였을 때도 이미 고대의 유물이라 일컬을 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1591년 5월 15일:
나만의 마그눔 오푸스가 될, 첫 작곡을 갈무리 지었다. 흥분에 가득 차서, 내 영지 안에서 가장 훌륭한 가수들을 초빙했다. 너무나 기대되어 참고 있기 어려울 지경이다.
1591년 5월 17일:
[서론은 매우 난잡한 서체로 쓰여 있다.] 모든 놈들이 날 실망시켰다. 이 머저리들이 날 조롱하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따위로 무능했던 것인가? 내 요구가 말이 안 된다고 항의하면서, 지시 사항도 알아먹을 수가 없다 지껄이지를 않나! 내가 바라는 것은 그냥 단순히 불가능하다면서!
무능함의 대가로 그 자식들을 고문에 처했다! 비통에 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가장 매력적인 선율을 뽑아낼 수 있었지! 구멍 뚫린 폐가 쌕쌕거리는 소리 하며, 튀어나온 내장이 덜그럭거리는 죽음의 소리까지! 놈들의 망가진 몸에서 더 이상 취할 것이 없을 때까지, 온갖 가사와 음표가 흘러나오는구나! 음악! 황홀경! 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 인간이 파괴되는 모습을 찬미할 때 그런 것쯤 극히 사소한 문제 아닌가!
마지막 순간에는, 숨을 쉬는 것조차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피와 담즙에 휩싸여서- 오오, 이 어찌나 성대하고 향락적인 교향곡이란 말이냐!
[이 아래로는 의도적으로 잉크를 덮어 가려버린 내용이지만, 현대 이미지 복구용 스캔을 이용해 복원했다.] 나는 결코 그들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그놈들이 우주 자체에 죄를 짓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 생각들이 정말 내 것은 맞단 말인가? 대사가 내 옆에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내 안의 어둠을 어루만진다.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증오심! 하늘까지도 닿을 만큼 거대한 증오가.
1591년 6월 20일:
내가 잠시 길을 잃긴 했었지만, 끝내 칼란드리가 나를 찾아내 우리 안으로 돌려보냈다. 죄라는 질병에서 우화한 어리석음에 나는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칼란드리가 폭력으로 나를 치료해 주었다. 죄악, 자비, 동정. 내 영혼을 옭아매고 있는 사슬들이다. 이를 부숴 버려야만 한다.
고통은 필연적이다. 내가 창조하려는 것은 필시 이 모든 것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을 터이다. 우리의 왕께서 뜻하시는 바에 의문을 품지 말지어다. 유다조차도 그가 수행해야만 할 역할이 있었지 않나.
음악이 내 안에서 자라난다. 마치 순결을 잃은 자궁과 같다. 하지만 살코기로 된 자궁은 추악한 것들, 오염된 벌레 같은 인간들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신을 낳을 것이다. 내 고통에는 목적이 존재한다.
1591년 6월 25일:
대사가 내 꿈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후원자 한 분을 약속하시었다. 그 후원자라는 분은 내게 굉장한 흥미를 갖고 지켜보고 계신다 한다.
나는 환시, 그 외 수많은 환영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장막 뒤편에 이토록 괴물 같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칼란드리는 내가 우리 현실의 진실을 주시하는 증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공포에는 묘한 아름다움이 존재하여, 시선을 뗄 수가 없도록 한다. 세계는 우리가 거사를 일으키면 그대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 장막을 조각조각 찢어버린다면 더없이 좋지 않겠는가.
음악이 곧 내가 된다. 살갗을 자를 땐 가사가 피의 형태로 쏟아진다. 군가와도 같이 분노가 육성된다. 내 영혼은 그 분노로 타오른다. 살아 있음은 곧 이런 일을 의미함이라! 오오, 내 주변에는 꿈을 꾸지 않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체들뿐이로구나!
세상에 이런 불필요한 인간들이 썩어 넘치고 있다. 내 장작더미의 불쏘시개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들이로다.
1591년 8월 4일:
그가 들어왔을 때 나는 내 옥좌에 앉아 있었다. 뒤로는 메뚜기 떼와 악취가 진동하는 공기를 이끌고, 성스러운 역병으로 나의 성 안을 빛내고 있었다. 가면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들끓는 대부, 황색 궁의 군주.
그는 내게 후원 의사를 밝혔고 나는 물론 기쁘게 받아들였다. 대부의 오염된 손길에 잠시 움찔 했지만, 놀랍도록 비뚤어진 그 계획이 내 마음 속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래. 이제야 알겠구나. 육신과 청동으로 된 지옥의 기계. 우주의 언어로 쓰인 작품.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다. 인간의 필설 따위는 내게 더는 가치가 없다. 나는 그것을 이미 초월하였다. 별들이 내 승천을 노래하는구나. 나도 그 별만큼 밝게 타오르리라.
불순함을 모두 태워 없애겠다.
창조에 끼어든 역겨운 것들을 모두 태워 없애겠다.
남은 페이지는 SCP-6624와 관련된 해독 불가능한 메모와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사용된 문자는 현재까지 알려진 그 어떤 체계와도 일치하지 않으며, 미미한 인식재해 요소가 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