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6455

일련번호: 6455
Level3
격리 등급:
케테르
2차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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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등급:
암흑
위험 등급: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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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의 이글록 마을. SCP-6455 살인사건의 주된 발생지.

특수 격리 절차: 재단은 아직 장기간 SCP-6455를 격리 가능한 전략을 발견하지 못한 실정이다. 격리팀은 현재 SCP-6455를 영구적, 혹은 장기간 격리할 잠정 수단을 고안하고 있다.

화장한 SCP-6455-N의 유해는 제19기지 시체 안치소 내의 현실성 닻이 설치된 구역에 매장한다.

설명: SCP-6455는 계속 재발하는 일련의 변칙적 살인사건으로, SCP-6455-N과 동일한 특징 및 방식으로 자행된다. SCP-6455-N은 1965년부터 1976년 재단에 잡히기 전까지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했던 변칙적 연쇄살인범이다. 예전에는 SCP-6455-N이 SCP-6455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1984년 자살한 뒤로 SCP-6455-N으로 재지정되었다.

SCP-6455 사건은 평균 세 달에 한 번 발생한다. 최초 발현 이래로 사건 발생률은 점차 증가 추세다. 대개 SCP-6455 사건은 로스앤젤레스 대도시권에 한정하여 일어나지만, SCP-6455과 관련된 사건들은 북쪽으로는 워싱턴주 시애틀, 동쪽으로는 콜로라도주 덴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확인된 모든 SCP-6455 사건은 미국 국내에서 일어났다.

SCP-6455의 일환으로 발생하는 살인사건에선 범인의 신원을 밝혀주지는 못하는 증거가 자주 발견되며, 범행 현장을 물질적으로 변형하거나 어지럽혀 마치 살인범이 있었던 것처럼 만든다. 그러나 SCP-6455 사건에는 실제 실행범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관련 증거는 SCP-6455가 저절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신원을 특정 가능한 증거, 가령 지문, 생물학적 증거, 개인 소지품 등이 현장에 남은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SCP-6455-N (1941~1984)은 백인 남성인 미국인으로, 대중적으로는 "이글록 도플갱어"Eagle Rock Doppelganger 내지는 "로스앤젤레스 미믹"Los Angeles Mimic (ERD/LAM)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SCP-6455-N은 1960년, 자신이 살던 애리조나주 유마에서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다. 이후 추가 살인은 일으키지 않던 SCP-6455-N은 1965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 후, 연쇄살인 및 폭행 사건을 자행했다. SCP-6455-N은 약한 항밈성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범죄와 연관된 주요 증거가 간과되거나, 잘못 기억되거나, 잘못 해석되도록 만들었다. 이 항밈성은 경찰관과 형사에게는 특히 더욱 강력하게 작용했다.

SCP-6455 최고 조사관
이전 SCP 항밈학과 소속
유세프 사예드Youssef Sayed의 진술

저희가 사건에 관여하기 전까지는, 모두들 ERD/LAM이 미국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살인범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망할, 사실 SCP-6455-N은 전혀 그런 명석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놈은 9년 동안 확인된 살인사건만 35건, 살인미수는 16건을 저질렀습니다. 연쇄살인범으로서는 엄청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 녀석은 개빡통이었습니다. 범인이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경찰이 단서를 종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 뿐이었습니다.

놈의 범죄 현장 중 한 곳을 조사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사건이 항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막 알아낸 뒤였죠. 기억제도 잔뜩 접종받고 의식도 온전한 채로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까지 날아왔습니다. 기억제는 마치 숫돌처럼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죠. 덕분에 저는 온종일 모래 한 알까지 날카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조사반에는 네 명이 있었는데, 저희는 그때 마치 한 무리의 개가 된 것마냥 ERD/LAM이 남긴 아주 작은 단서까지 찾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마 현장에 무엇이든 남아 있었다면 그걸 찾아내서 끈질기게 분석했을 겁니다.

저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문 옆에 놓인 작은 탁상을 살펴보았습니다. 탁상 위에는 도서관 카드가 놓여 있었는데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료 중 한 명이 슬쩍 보더니, 그 카드가 집 주인 것이 아니라고 하덥니다. 도서관 카드 주인을 신속하게 확인하니 바로 다음날 ERD/LAM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놈을 찾아가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자백하더라고요.

그 자식은 자기 도서관 카드를 범죄 현장에 놔두고 간 겁니다. 그것도 아주 뻔히 보이는 데에요. 경찰은 단지 눈치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토록 오랜 기간 일으킨 범죄에서 달아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축복이 놈 곁을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축복은 경찰한테 더욱 강하게 작용했는데, 그것조차 녀석한테만 도움이 됐죠. 그 모든 교묘한 범죄를 운, 그저 운이 좋았던 덕에 저지를 수 있었단 말입니다.

SCP-6455-N의 범행 수법은 피해자와 그들의 거주지를 오랜 기간 미행해, 피해자가 집을 출입하는 시간을 확실히 알아내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보통 다른 동거인이 없는 미혼자였다. 피해자가 집을 나서면 SCP-6455-N은 그 집에 침입하여, 피해자가 귀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권총으로 살해했다. 희생양의 집을 점거한 SCP-6455-N은 피해자인 척 평범하게 생활했다. 그리고 이들의 인생을 흉내내면서 애완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식물에 물을 주거나, 빨래를 하는 등 집안일을 대신 했다. 이러한 행동 때문에 SCP-6455-N은 대중매체에서 처음에는 이글록 도플갱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이후 활동 영역이 더욱 넓어지자 로스앤젤레스 미믹이라고 불렸다.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SCP-6455-N은 아주 엉성했어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요. 그는 피해자들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를 목격했지만, 변칙성 때문에 목격자들은 모두 그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SCP-6455-N의 지문은 집안 구석구석에 완전 덕지덕지 찍혀 있었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장갑 따위 끼지 않았으니까요. 몇 번은 피해자 집 안의 개들이 침입자인 걸 눈치채고 그를 무는 바람에, SCP-6455-N의 피가 카펫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그냥 그 흔적을 무시했습니다. 조금도 은폐 같은 건 되지 않았지만, 단지 눈치챌 수 없었단 거죠.

그가 모든 범죄를 성공했던 것은 아닙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그게 저희한테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SCP-6455-N을 마침내 붙잡았을 때, 저는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을 찾아가 무슨 일이 있었나 물어보려 했습니다. 그녀는 당황하긴 했지만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려 했죠. 그런데 범인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범인은 하다못해 마스크조차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총으로 쏘고 도망가기 전,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더라고요. 그녀 말로는 범인의 얼굴을 분명 똑똑히 보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녀 자신도 그 사실에 무척 당황해 했습니다. 분명 그녀도 범인을 목격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또렷하게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본인도 왜 그 얼굴을 기억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하더군요. 단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리려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면서 마스크도 안 쓴 범인이라니 상상이 가십니까? 그리고 피해자한테 빤히 얼굴을 목격하게 만들고, 진짜 피해자가 죽었는지 확인조차 안 한다니? 황당한 일이지만, 혐의를 확실히 피할 수만 있다면 굳이 흔적을 지울 필요도 없었다는 거겠죠.

SCP-6455-N은 1976년 새로 설립된 항밈학과가 최초로 발견한 항밈적 변칙존재 중 하나다. 잠정 변칙존재를 검토하던 중, ERD/LAM 사건이 항밈과 어느 정도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살인자의 습관을 감안했을 때 신원을 식별할 만한 증거가 있을 여지가 충분했고, 나중에 밝혀졌듯 그러한 증거가 실제 남겨졌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유세프 사예드를 비롯한 항밈학과 요원들이 살인사건 조사를 목적으로 로스엔젤레스 경찰국에 잠입했다. 요원들이 SCP-6455-N의 신원을 신속하게 판명한 덕에 재단이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일반 대중은 SCP-6455-N의 정체를 발견했다는 사실, 그리고 범인을 체포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

부록 A: SCP-6455의 발현

SCP-6455-N 체포 이후 3년 동안, 추가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9년, 동일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항밈학과가 조사를 위해 파견되었으나, 강력한 기억제를 사용한 채로도 아무런 근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죠. 현장의 모습은 기억제를 투여 안 받고서 봤을 때 범죄 현장이랑 거의 판박이였으니까요. 마치 우리가 경찰이 된 것처럼. 증거 비슷한 것조차도 없었습니다. 믿기 힘들 정도로.

그래서 저희는 현장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면서 증거 쪼가리 하나라도 최대한 찾아냈습니다. 현장 어딘가에는 진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서로서로 말은 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죠. 혹시 이번에 뭔가 누울 자리 안 보고 발 뻗은 거 아닌가,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기억제를 무언가가 결국 극복해낸 것인가, 하는 그런 상상이 계속 들었습니다. ERD/LAM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혔었죠. 저희 손으로 감옥에 처박아 놔서 그놈은 앞으로 평생 빛 볼 일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Z급 기억제. 가장 강력한 기억제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에게 치명적이죠. 그 대신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D계급 몇 명한테 이걸 투여한 뒤에 현장에서 일하도록 해보았습니다. 눈 뒤에서 윙윙거리는 뭔가가 현장에 있었나? 아니면 잊을 수도 없는데 초고해상도로 보이기까지 하는 시야에서, 무언가 없는 거라도 있었나? 하지만 애초에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실마리 따윈 하나도 없었던 겁니다. 우리가 이들을 SCP-6455의 피해자로 쳐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우리가 저지른 실패의 책임을 회피해보려는 구차한 시도였을 뿐인 걸까요?

항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증거는 정말 단지 사라졌던 것뿐이었고, 돌아오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슨 짓을 저질렀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뭉개버렸든 말이죠.

항밈적 영향이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사예드 요원은 항밈학과를 떠나, 다양한 재단 부서 인원들로 구성된 SCP-6455 조사 전담 합동대책본부를 이끌게 되었다. 대책본부에서는 계속되는 범죄 계획을 설명할 만한 여러 가설을 초기에 내놓았으나, 각 가설은 심각한 문제가 있던 탓에 모두 폐기되었다. SCP-6455 발생 이후 첫 10년 간 (1979~1989) 제안된 가장 설득력 있는 초기 가설들은 아래와 같다.

재단이 제창한 최초 이론은 SCP-6455-N이 스스로 새로운 능력을 계발해, 물리적으로 닿는 곳보다 멀리까지 변칙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처음에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당시 알려져 있던 SCP-6455-N의 변칙성인 '약한 항밈성'과 잘 맞지도 않고, SCP-6455-N은 변칙적 작용이나 기적술에 관해선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SCP-6455-N의 격리실을 현실성 닻이 장착된 방으로 바꾸어도 SCP-6455는 약화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SCP-6455-N은 새로 발생한 SCP-6455 사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이론은 1984년, SCP-6455-N이 자신의 격리실 내부에서 자살한 이후로 공식적으로 기각되었다. SCP-6455 사건이 계속 발생하자 상기한 이론은 근거가 충분치 못하다고 추정되었다. SCP-6455-N이 영체가 되었다는 의심이 잠깐 제시되었으나, 범죄 현장에 어떠한 심령질이나 심령적 간섭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로 이 추정도 기각되었다.

다음 이론은 SCP-6455-N과 능력이 비슷하지만 더욱 강력한 모방살인범이 등장했다는 내용이다. 그러한 살인자가 만일 존재한다면, 이 인물은 현재까지 개발된 어떤 기억제보다도 강한 능력을 가져야 하므로, 이 가설은 그다지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 후 로스앤젤레스, 피닉스, 라스베가스에서 살인이 같은 날 벌어지는 일이 세 번 발생한 이후로 이 가설 역시 기각되었다. 항밈학과는 관련된 항밈 능력을 가진 인물 여러 명이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10년 넘게 밝혀낼 수 없었단 말입니다. 처음에는 항밈학과에서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있다 보니 이 사건 전담 조사하는 합동대책본부 생길 때 저도 차출되어 일하게 되었죠. 저희는 재단 각 분야에서 나온 최고 중의 최고 인원들이었습니다. 거기에 UIU랑 GOC까지 공조했고요. 이 사건의 가장 밑바닥까지 샅샅이 파헤치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뭣도 없었습니다. 쭉. 증거 따윈 없었어요. 고통, 괴로움, 계속 그뿐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쌓여가는데 범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물론, 일반 대중한테도 살인범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지금도 알고 있고요. 예전부터 이미 놈은 비밀 따위 아니었고, 당시 저희는 범인의 존재를 은폐해봐야 아무 득 볼 게 없다 생각했습니다.

새 희생양이 발견된 때면 — 전 장례식에 가서 밤을 지새웁니다. 몇 달에 한 번은 그러죠. 드물게 소강 상태가 될 때는 빼고요. 그리 활동을 멈췄을 때가 가장 무섭지만 말입니다. 또 대책본부에서는 일반인들한테도 얼굴이 알려진 멤버가 나가서, 이번에는 반드시 ERD/LAM을 잡겠다, 그놈의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테러 집권기도 끝이다, 하면서 공수표를 던져 댑니다. 이번에야말로 사건을 해결하겠다, 이런 말을요. 가장 최근에 살해된 피해자의 부모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그리고 가장 오래 전 살해된 피해자들의 부모님 앞에 가서도 그런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합니다. 늘 반복해도 말하기 쉬워지진 않더군요.

부록 B: SCP-6455 관련 유효 가설

SCP-6455 사건이 최초 발현한 지 12년째인 1991년 당시까지만 해도, SCP-6455 발생을 설명할 만한 가설은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재단 컨퍼런스 중, 유세프 사예드는 숙련된 정신권 연구자인 솔로몬 켈러 박사와 만났다. 켈러 박사는 근래 정신권이 물질로 교차하는 현상, 즉 물질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하거나 발전된 정신권의 사념형태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사예드 요원은 켈러 박사의 가설과 살인사건 간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지 모르니, 조사를 위해 켈러 박사에게 SCP-6455 대책본부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켈러 박사가 팀에 참여한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SCP-6455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이 가능성을 확증할 만한 중대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범죄 현장에 남아 있던 증거는, 켈러 박사의 가설에서 주장하는 정신권 간섭의 흔적과 일치했다.

켈러 박사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이 증거를 가지고, SCP-6455 대책본부는 사건의 원인이 된 사념형태에 관한 조사를 개시했다. 그 덕에 SCP-6455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정신권에서 전이된 복합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는 1991년이었죠. 저는 언제나처럼 대책본부에 합류할 만한 새 인선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학문의 새로운 세부 분과, 새로운 각도를요. 저희의 방식으로는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그것 때문에 모두가 참석할 법한 커다란 컨퍼런스 중 하나에 저도 참가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저는 바에 앉아서, 술 한 잔을 마시면서, 솔로몬 켈러 박사에게 지금 당면한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화에서 뭔가 얻어내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느낀 좌절감을 좀 터뜨리고 싶었을 뿐이었거든요.

박사가 잠시 침묵하더니 그가 아이디어 하나가 있다덥니다. 제 전공은 항밈학입니다.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에 대처하죠. 그걸 기억하는 데에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켈러 박사는 저희가 처한 문제는 아마 악명, 즉 ERD/LAM이 모두의 집단 무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생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혹시 자기가 팀에 들어가서 조금 조사해볼 수 있겠냐고 박사가 물어봤죠. 사건에 응용할 수 있을 법한 가설이 좀 있다면서요.

일주일. 그가 팀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리고 진상은 우리 예측보다 안 좋았어요.

사념 복합체는 ERD/LAM을 중심으로 한 공포심과 두려움의 집합체입니다. SCP-6455-N과는 아무런 활동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지요. 실상, 저희가 SCP-6455-N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가 사념 복합체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N이 저지른 살인 행적, 그리고 저희가 그를 붙잡은 뒤에 벌어진 살인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념 복합체란 것은 살인사건이 벌어지고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상상 속에 남아 있는 어떤 형체, 어떤 정체불명의 독립체로서 형성된 것입니다.

전체 조사 기간 동안 저는 가해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뭔가를 찾아냈는데, 살아 있는 생물조차 아니란 것을 알게 됐죠. 그렇지만 켈러 박사 왈, 이 사념형태는 쭉 활동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됐다!" 싶었습니다. 저희는 그저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인간을 잡으면 되겠구나, 하고 실제로 그 사람들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생각은 의도가 아니었어요. 그걸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피해자들의 친인척들이었습니다. 혹은 사건을 거의 잊고 지내던 희생자들. 열몇 명쯤 되는 생존자들. 그리고 저, 저희 대책본부 사람들이었어요. 범인을 잡겠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영원히 추격전을 벌이면서, 저희 모두가 두려워했던 거예요. 그리고 그 공포가 축적되면서, 이 괴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켈러 박사의 연구 끝에, SCP-6455의 발생 원인은 SCP-6455-N이 정상세계에서 체포된 적이 없어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SCP-6455-N을 처음 체포했을 때 이후로 재단은 체포 사실을 공개하거나 공표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SCP-6455-N은 잡히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초기 SCP-6455 살인사건들은 이 믿음을 더욱 굳건히 만들어, SCP-6455-N이 아직도 활동 중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굳혔다.

SCP-6455 사건을 일으키는 사념형태 복합체는 SCP-6455-N 자체로부터는 거의 떨어져 나왔다. 대중들한테는 SCP-6455-N과 관련한 정보가 거의 풀리지 않았다 보니, 일반인이 대체로 ERD/LAM에 대해 가진 인식은 실제 행적보다는 그가 저지른 살인 범죄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게다가 이것이 되풀이되면서, 2022년 기준 사념 복합체는 SCP-6455-N에게 받은 영향보다 자기 자신이 재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추가로, 실제 범죄를 주제로 다루는 매체에서 ERD/LAM 관한 추측을 쏟아내면서 사념형태 복합체는 더욱 악화되어 왔다. 이러한 매체는 SCP-6455-N의 범죄 신화를 부풀려서 보도했고, 이 때문에 사념 복합체가 그 크기와 범위를 키울 수 있었다. SCP-6455 사건의 범위, 규모, 수법은 SCP-6455-N이 본디 저질렀던 범죄 행각의 패턴보다 넓어졌다.

부록 C: 현황

SCP-6455의 보조 조사관
SCP 정신권학과 소속
솔로몬 켈러Solomon Keller의 진술

그래서 이제 무얼 해야 되나, 그런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범인은 잡았는데, 그래서 저희가 뭘 해야 할까요? 저희가 어떻게 피해자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말입니다. 격리에 관한 질문은 완전 부적절한 주제는 아니지만, 일단 잠시 접어 둡시다. 대신 어떤 도움을, 구원을 줄 수 있을지 간략하게 논의해 봅시다. 어떻게 저희가 피해자의 힘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우리가 꿰어야 할 첫 단추입니다.

어찌 됐거나 이건 저희의 잘못입니다. 이 개판은 저희 책임입니다.

사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한들, 시간을 거슬러서 이 개판을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1976년 ERD/LAM을 붙잡았을 때, 재단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떨지 않아도 된다고, 일반인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어요. 공포가 남고 말았습니다. 고통도 사라지지 않았고요.

그리고 이제서야, 저희는 범인이 남기고 간 상처가 아직 그대로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 좋은 점은, 그 자가 아직 흉터를 새기면서 무덤 너머에서 활개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건 SCP-6455-N은 아니지만, 그의 잔재죠. 그 자의 모습대로, 인상대로 구축된 사념이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가 이걸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미 옛날 옛적에 ERD/LAM을 잡아넣었었다는 사실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이미 수십 년 묵은 얘기고, 저희는 맨 처음에 이 진실을 덮었었습니다. 이것을 공개하는 것만이 사념체를 효과적으로 말살 가능한 단 하나의 비책임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있어서 그 방법은 선택지조차 아니었습니다. 가장무도회에 너무 발목을 잡혀서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니 말입니다.

저희는 예전에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습니다. 최소한 일부 사건에 대해서요. D계급 한 명을 감방에서 빼내서, 기억을 망가뜨릴 정도로 약을 투여한 뒤에, 가장 최근 벌어진 살인사건 중 몇몇의 진범이라고 거짓 모함해 보았습니다. 모든 살인 혐의를 다 뒤집어씌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SCP-6455의 살인 중 일부는 서로 충돌하다 보니, 인간이라면 양쪽 모두를 저지르는 것이 불가능했거든요. 처음에는 이게 효과가 있었습니다. 살인이 점차 줄어들더니 2년 동안은 아무 사건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깨달아 버렸습니다. "야. 붙잡힌 용의자가 LA랑 베가스에서 같은 날 두 명을 죽였을 수는 없잖아. 다른 범인이 있는 게 분명해." 결국 그 사념형태가 되살아나 울부짖으면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사념을 솎아내서 손상시키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어디서부터 그 작업을 시작해야 하겠습니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 중 한 명인 인물의 기억을, 모든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서 제거해야 될까요? 실제 범죄 사건을 조명하는 매체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를 없애버리려고? 제가 지난번에 확인해봤을 때, 이 사건 하나 가지고 인기 팟캐스트가 십수 개 넘게 만들어져 있더군요. 관련 다큐도 몇 개나 나와 있었고, 내년에는 또 HBO에서 새로 하나 나온다 합니다. 그 하나하나가 저희의 실패를 쿡쿡 찔러옵니다.

아니면 희생자들에게 기억소거라도 해야 할까요? 트라우마는 그대로 남긴 채로, 그 트라우마가 왜 생겼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 내버려두면서? 이미 1979년에도 이 모든 난장판을 일으킬 정도로 충분히 많은 피해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심지어 그때보다도 희생된 이들의 수가 많습니다. 저흰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상처가 아무는 것을 최선을 다해 저희 손으로 방해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그 상처에서 피가 나니 충격 먹은 것마냥 행동하고 있는데, 저희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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