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575-KO
일련번호: SCP-575-KO 보안 인가 적용됨
격리 등급: 안전 담당 부서: 수면변칙부


Poco

구재현.


특수 격리 절차

SCP-575-KO를 활용한 모든 실험은 취소되었다. 해당 개체와의 상호작용은 보안 인가 3등급 이상 인원의 허가를 요한다.

기록된 SCP-575-KO의 사본은 제12K기지에 보관하며, 관리 인원은 감정표현불능증을 앓는 이들이 선호된다. 관리 인원이 갑작스러운 수면 장애를 호소할 경우 수면변칙부의 처방을 받아야 하며, 최소 2주일 동안 SCP-575-KO와의 접촉을 금한다.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다.

  • 도덕심과 이타심의 비약적인 증가.
  • 감정표현불능증의 발병. 이는 본래 해당 증상이 없던 이들에게만 해당된다.
  • 우울증과 심리학적 결핍 등의 해소로 인한 정신 건강 완화.
  • 분홍빛 별에 대한 환각.
  • 사랑, 특히 아가페에 대한 관심 증가.
  • 특정 인물에 대한 지속적인 꿈과 상호작용.

연주되지 않는 상태의 SCP-575-KO가 위 증상을 야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으나, 만일 해당 증상이 발병한 경우에도 보고하지 않은 인원은 경우에 따라 사살이 허가된다.


설명

SCP-575-KO는 2017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변칙적 첼로 독주곡이다. 멜로디는 찰리 채플린의 〈Smile〉과 유사하며 해당 곡의 변주곡으로도 여겨지나, 상세는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인지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SCP-575-KO가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어준 곡을 연상시킨다 증언했다.

SCP-575-KO의 변칙성은 대상이 첼로가 아닌 다른 악기 및 수단으로 연주되어도 발현되나, 그 효과가 비교적 미미하다. SCP-575-KO가 연주되면 피영향자는 심신의 안정을 느끼며, 실제로 유의미한 스트레스 수치의 감소가 관측된다. 이때부터 대상의 수면변칙적 잠재의식1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SCP-575-KO에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피영향자는 타인을 향한 적개심, 불안, 공포 등 부정적인 감정이 크게 감소하며, 보편적 도덕 규범에 입각하여 행동하게 된다. 면담 시 이들 전원은 이타적 가치관과 높은 수준의 정신 건강을 피력했으며, 이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 반응에 극히 무뎌진 모습을 보였다.2 해당 단계부터 피영향자를 SCP-575-KO-1로 지칭한다.

적지 않은 경우에 따라 SCP-575-KO-1의 변칙성은 감소 및 소실되나, 이들의 수면변칙적 잠재의식은 영구 변형되어 회복되지 않는다.3 해당 잠재의식은 동일한 성분과 구조의 감각질이 검출되며, 현재 기동특무부대 오미크론-로("드림팀")가 해당 감각질이 유래된 오네이로이 독립체를 추적 중이다.

…때문에, 개개인의 꿈꾸미를 구성하는 감각질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지문 같은 거예요. 그래서 시우파니아처럼 타 꿈꾸미의 감각질을 자신의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동일한 꿈꾸미가 존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시험에 나오니까 외워두시고요.

태강 학생, 조는 거 아니죠? 요즘 성적이 크게 떨어졌던데, 집중하세요. 특히 태강 학생처럼 오네이로이 독립체에 습격당한 적이 있는 분들은 이번 내용이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몽환계를 자각하며 거닐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험입니다. 명심하세요.

무튼, 어디까지 했었죠? 그래, 감각질. 만일 자신의 감각질이 타인의 감각질로 대체되게 되면, 그 사람은 오로지 타인의 경험과 주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조종당하는 거예요, 그냥. 자기 주관이 없으니까. 좀비와 다를 게 없는 거죠.

— 청록학교 지도교사 구재현

몇몇 SCP-575-KO-1 개체들은 "밤하늘에 유난히 밝은 분홍 별이 보인다"고 증언했다. 별의 밝기, 크기, 위치 등은 증언마다 제각각이었으나, 해당 환각을 경험한 개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타인을 돕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는 주변 인물에 한한 것이 아닌, 각 개체의 능력에 맞는 봉사 단체 및 활동에 헌신하는 등 직접적인 사회 기여가 주를 이뤘다. 별개로, 이들은 노란색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호소했다.

SCP-575-KO의 사본은 2019년 반장막주의 변칙예술 집단 GoI-9010 ("아나사바스") 해체 당시 최초 발견되었다. GoI-9010은 변칙예술 집단 중에서도 특히나 극단적인 성격을 띠던 집단이었으며, 2016년 창설된 이래 고도의 밈 생산 능력을 기반으로 다수의 테러 행위를 자행하였다.4

SCP-575-KO 역시 이러한 테러 활동에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습격 당시 GoI-9010의 작업실에서 회수된 기록은 SCP-575-KO가 GoI-9010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SCP-575-KO의 원 작곡가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PoI-9010 앞으로 전해진 감사 편지 한 장이 전부였다.5 해당 요주의 인물은 GoI-9010이 테러 단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새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네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건가요?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그래도 태강 학생 상태가 좋아보이는 건 사실이에요. 입학 이후 시들기만 하던 달맞이꽃이 이렇게 싱싱해진 건 처음이니까요. 쉬는 시간에 옥상에서 하는 연주도 눈에 띄게 밝아졌고요.

아, 옥상에 갈 일이 많아서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네요. 허구한 날 태희 학생이 오빠를 보겠다고 사라져 버리니, 찾으러 갈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말이죠. 그래도 요즘은 좀 덜해서 망정이지. 혹시 둘이 싸우거나 한 건 아니죠?

별… 이요? 아… 그 오네이로이가 보았다던 별 말이군요. 쉿, 목소리 낮추세요. 네, 그게 순수 오네이로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말 못 할 사유로 수색망에 걸린 참이라서요. 사람인 이상 기약 없는 옥살이를 하게 되거나 평생 쫓기게 되겠죠. 저희가 다른 무고한 이들의 삶을 망쳐놓았던 것처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변칙은 해로우며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이 얼마나 낡아빠진 사고방식인지… 음, 선생이 학생에게 하소연하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이상하네요. 태강 학생 말고는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워낙 없어서.

무튼, 별이라. 그 사람 좌우명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라", 였던가요. 흠… 불완전함에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세상. 그게 별이라는 이상향이 아닐까 싶네요. 별이 이리로 오게 될지, 혹은 그 반대일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뭐, 그러한 전제라면, 아뇨. 저는 별을 본 적이 없습니다.

— 청록학교 지도교사 구재현

Poco2

밈적 인자 AP4THY.

GoI-9010이 정확히 어떠한 방법으로 SCP-575-KO를 테러에 활용했는지는 불명이다. SCP-575-KO-1 개체들에게서 검출된 수면변칙적 밈적 인자 역시 초기에는 무해할 정도로 극소량의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SCP-575-KO의 지속적 노출에도 SCP-575-KO-1은 추가적인 변칙성을 보이지 않았으며, 이는 교차실험 2458-575KO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서 그러했다.

SCP-575-KO-1 개체들을 포함해 SCP-575-KO와 접촉한 인원들은 간헐적으로 불명의 첼로 연주와 달맞이꽃에 대한 꿈을 꾸었으며, 개중 소수는 특정 인물과의 조우 및 상호작용이 있었다 보고했다. 해당 인물은 주로 회색 눈을 가진 이탈리아계-한국계 혼혈의 젊은 남성으로 묘사된다. 대상이 별개의 오네이로이 독립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201█년 요주의 인물 습격으로 인한 SCP-███-KO 격리 파기 당시 관측된 현상과 상당히 유사하다. SCP-███-KO는 심리적 불안정성 완화를 목표로 청록학교 프로젝트에 선발되기 이전까지 제202K기지 유아청소년부 관할 변칙 개체였다.

격리 당시 SCP-███-KO의 외부 인간관계는 재단의 조치로 전부 소실되었기에, SCP-███-KO와 해당 요주의 인물이 사전에 접점이 있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당시 격리 파기된 개체는 SCP-███-KO와 개체의 동생이 유일했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정황상 SCP-███-KO의 1차 격리 파기에 SCP-575-KO 혹은 유사 변칙 개체가 개입했으리라 추측되며, 일각에서는 SCP-575-KO의 제작자가 모종의 이유로 직접 간섭했을 가능성 역시 제시되고 있다. 다만 GoI-9010의 손길을 거친 밈적 인자와 사건 당시 발견된 밈적 인자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기에, GoI-9010이 해당 격리 파기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첼로요? 아뇨, 전 악기를 못 다뤄서요.

찰리 채플린 좋죠. 특히 첼로를 정말 좋아했다죠? 〈Oh! That Cello〉도 좋지만 〈Smile〉도 명곡이죠. 특히 태강 학생이 정말 좋아했었—

…실언을 했네요. 아뇨, 태희 학생에게 다소 민감한 주제였을 텐데, 제 잘못이죠.

글쎄요… 아무리 타의였다고 한들, 태강 학생과 연루된 격리 파기 사태가 두 건이나 있다 보니… 심지어 저번 크리스마스 때는— 죄송합니다. 저도 교사이기 이전에 결국은 재단 사람이라서요. 어쩔 도리가… 없네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설령 찾게 된다 하더라도…

아뇨, 그래도 전 타의라고 믿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태희 학생. 저는— 하아… 저는 학생들 편입니다, 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기만이고 위선이겠죠. 재단에게 당신들은 학생이기 이전에 변칙 개체니까. 위선이죠. 더러운 위선이죠.

네? 아뇨. 하하, 그럴 리가요. 그랬으면 저도 애진작에 아나사바스가 되었겠죠? 아나사바스… 근대 초상예술사에서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이름이죠. 그 방향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오윤희와는 언제쯤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그냥, 장막만을 위한 장막이 무슨 소용인지, 싶었달까요. 인류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을 유린하고 짓밟아왔는지. 이 학교도 그래. 결국에는 도로 격리실로 몰아넣을 거면서. 애들이 무슨 모르모트도 아니고…

재단은, 아니 세상 사람들은 "내가 틀렸었어", 이 한마디를 지독히도 할 줄 모르죠.

— 청록학교 지도교사 구재현

2022년, 당시 청록학교에서 크리스마스 행사가 진행되던 와중 SCP-███-KO가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는 추후 격리 파기 사태로 결론 내려졌다. 당시 SCP-███-KO의 지도교사였던 수면변칙부 2등급 연구원 구재현에 의해 비활성 상태의 밈적 인자 AP4THY가 현장에서 발견되었으나, 이는 청록학교 프로젝트 선발 이전부터 SCP-███-KO 체내에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SCP-███-KO와 SCP-575-KO가 접촉한 적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SCP-575-KO의 밈적 인자가 SCP-███-KO에게 전염되었을 정도로 몽환계에 만연하거나, 격리 당시 SCP-███-KO와 SCP-575-KO의 작곡가가 수면변칙적 수단으로 접촉했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다만 SCP-███-KO에게서 밈적 인자 AP4THY를 제외한 SCP-575-KO의 변칙성이 일절 발견되지 않았기에, 개체가 소실된 현재로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SCP-575-KO가 특정 인물군에 한하여 효력을 완전히 잃는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거나 확고한 가치관을 소유한 인원이 해당 인물군에 포함되었으나, 후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6

비소 중독 역시 SCP-575-KO 무효화에 효과적으로 밝혀졌으나, 밈적 인자 AP4THY의 포괄적 측면에서는 그 효과가 미미했다. 비소에 관한 효과는 GoI-9010의 변칙성 개입 과정에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칼릴 지브란이 누군지 아직 기억하는 학생? 하아… 아뇨, 이번엔 진짜로 시험이 나갈 겁니다. 네, 과제가 아니라 시험이요. 사랑의 매입니다. 달게 받으세요.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칼릴 지브란 문학의 변칙성 연구"라 하면 다들 이부자리 먼저 필 거잖아요. 옛날이야기를 조금 해봅시다. 아뇨, 첫사랑 썰 아닙니다. 누군가를 딱히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예, 예. 저 이상한 사람 맞습니다. 됐죠?

무튼, 오늘 할 이야기는 〈The Wise King〉, 그러니까 "현명한 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옛적에, 아주 막강하고 지혜로운 왕이 있었더래요. 그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우물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마녀가 찾아와 우물에 독을 풀었더라지 뭡니까.

다음날, 왕과 시종장을 제한 나라의 모든 사람이 독으로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왕과 시종장이 미쳤다고 말했고, 급기야 미친 왕 아래 살아갈 수 없다며 왕을 몰아내려 했죠. 그리하여 왕과 시종장은 도망쳤으나, 둘은 지독히도 외로웠습니다.

저녁, 왕과 시종장은 결국 우물의 독을 마셨고, 사람들은 정상으로 되돌아온 그들을 환영하며 밤새 잔치를 열었더랬죠. 춤추고, 짐승처럼 우짖으며, 평생을 광기에 물든 채로.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글쎄요, 저야 당연히 독을 마시고 싶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선택지는 없으니까요.

— 청록학교 지도교사 구재현

당신과 저는 언제쯤 그 을 들이킬 수 있게 될까요?


부록

20██년 ██월 ██일, 교차실험 2458-575KO의 진행을 위해 SCP-2458이 위치한 제██기지에서 SCP-575-KO가 연주되었다. SCP-2458은 18세기 초에 제작된 첼로로, 연주되는 곡에 따라 연주자를 제외한 청취자들에게 특정 행동들을 강제하는 변칙성을 지녔다. 이는 특정 성향의 강제라는 SCP-575-KO의 변칙성과도 유사했기에, 두 개체의 보다 세밀한 변칙성 연구를 목표로 교차실험이 진행되었다.

SCP-2458의 연주자로서 과거 여러 차례 해당 개체와 접촉했던 D-72947가 투입되었다. D-7294는 SCP-575-KO를 음악으로 정의할 수 없는 소음 내지 불협화음으로 인지했으나, D-7294를 제외한 청취자 전원은 SCP-575-KO를 찰리 채플린의 〈Smile〉과 완벽한 동일곡으로 인지했다.

실험 시작과 동시에 청취자들은 심신의 안정을 호소했으며, 한동안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는 간단한 동작만을 수행하였다. 이후 이들은 겸손한 태도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잘못을 고해하는 등 SCP-575-KO-1과 동일한 증상을 보였다. 이러한 반응에 불쾌감을 표출하던 D-7294이 즉흥적으로 다른 곡을 연주하려 시도했으나 저지되었다.

아뇨, 저는 다섯째주의자가 아닙니다.

손을 빌렸을지언정 저는 녹색 우상의 노예가 아닙니다.

당신들의 고통, 증오, 혐오를 저는 느끼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타인의 감정만을 느낄 수 없겠지만, 저는 제 감정조차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아닌 당신들이 서로 더불어 살아가길 포기한 까닭을, 저는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만 들리는 건가? 하, 이거 속 편한 소리를 하는 형씨로구먼그래.

이딴 소음에 숨어있을 정도로 음침한 양반이 별 멍청한 소리를 다 하는군.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축복이야, 형씨.

— D-7294

연주가 지속되는 와중 청취자들은 격리실 곳곳에서 달맞이꽃이 급속도로 개화하는 환각을 지속적으로 보고했다. SCP-575-KO를 포함한 격리실 내부 소음이 일절 차단되었음에도, 실험을 관찰하던 인원들 중 소수도 비슷한 현상을 겪기 시작했다.

청취자들은 갑작스러운 피로를 호소하며 수면을 취하고자 했으나 구재현 연구원에 의해 거부되었다. 같은 시각 제██기지의 인간형 개체 다수가 동일한 현상을 호소했음이 추후 확인되었다.

우리는 이웃이 아닌 자를 해하는 것을 참으로 즐기죠.

나와 닮은 이들은 정상, 그렇지 않은 이들은 변칙.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혐오하라 배운 이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법칙일 겁니다.

D-7294, 당신도 결국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 수면변칙부 2등급 연구원 구재현

사람 웃기는 데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사랑은 욕망이다. 난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을 사랑해 줬을 뿐이라고.

가령… 그래,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하기 편하겠지. 게임 좋아하나?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결국 나를 담그지 못해 안달 난 괴물들. 반면 그 괴물들을 입맛대로 가지고 놀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큼 재밌는 게 또 없지. 맛도 꽤 좋고 말이야.

악과 야만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이 도덕이라는 알량한 사슬에 묶여 총알받이가 된다. 원숭이들이 나를 물어뜯는 동안 가만히 있어주는 것도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거든.

이 음악은, 뭐 그런 건가? 반대로 모두를 사슬에 묶어 본성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 형씨, 어디 동물 조련사로 일해보는 거 어때? 꽤 재능 있어 보이는데.

— D-7294

하하, 전 사람을 더 좋아해서요.

사랑은 욕망이라… 제 옛 제자도 그렇게 말했었죠.

제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이라. 적어도 그 아이의 일상을 처참히 부숴버린 저희가 쓸 말은 아닌 것 같군요.

사람을 평준화시키는 이 음악이나, 평준화되지 않은 이들을 부숴버리는 우리들이나.

— 수면변칙부 2등급 연구원 구재현

교차실험 2458-575KO 외부의 제██기지 인원들 또한 극심한 환각을 호소하기 시작하자 담당관의 실험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D-7294가 명령을 무시하고 연주를 지속하자 강제 진압을 위해 보안 요원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수면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깨어난 청취자들이 보안 요원과 충돌하였으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진압을 방해했다. 무력 제압 과정에서 청취자 한 명이 사살되자, 남은 이들의 식도에서 SCP-575-KO의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신에서는 달맞이꽃이 자라나 무덤과 유사한 형태로 전신을 뒤덮었다.

이후 보안 요원 역시 체내에서 SCP-575-KO가 연주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전염은 D-7294와 구재현 연구원을 제외한 이들에게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감염자들은 조우하는 제██기지 인간형 개체의 격리를 모두 해제했으며, 격리 파기된 개체들 역시 극도로 비폭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인간형 개체는 일방적인 진압으로 손쉽게 재격리되었다.

총알받이라 했었죠. 역시,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공격받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허나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는 것 이상으로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 또한 그렇죠. 알아도 느끼지 못하는 것. 때문에 행할 수 없는 것.

저는 사랑을 좇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합니까?

개소리.

형씨는 말마따나 신의 사랑을 듬뿍 받고 태어난 것 같군. 축복받았어. 인간의 생물학적 결함을 극복했으니 말이야.

끔찍한 고통에도 원숭이들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그 결함. 형씨는 모르겠지.

— D-7294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옛날에 이런 말을 했었죠.

죄악Sin은 실패חָטָא의 동의어. 즉 사람답게 살아가길 포기하는 것.

그쪽 비유로 돌려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저마다 별의 상을 담고 있으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죠.

존중이라.

장막의 고통을 없애겠다며 사람을 죽이는 아나사바스. 인류를 지키겠다며 장막을 위해 인권을 유린하는 재단. 결국 모두 사랑하는 법을 모르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실패한 죄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수면변칙부 2등급 연구원 구재현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니까요.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정상성을 향해 나아가면 되는 겁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었죠. 노력하는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결국 을 마셔야 하는 건 남들과 다른 우리니까요.

제██기지 대규모 격리 파기 사태는 기지 단위의 기억 소거 절차가 실시되고 나서야 임시적으로 안정되었다. 기지는 봉쇄되어 실종자 수색과 감염 인원의 치료가 행해졌다. 수면변칙적 잠재의식이 완전히 변이된 SCP-575-KO-1 개체는 회생 불가능으로 판단되어 사살되었다. SCP-575-KO-1과 탈주한 변칙 개체로 인한 사상자는 없었다.

D-7294와 구재현 연구원은 해당 사태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기를 거부했다. 이후 구재현 연구원은 지속적으로 상부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모두 반려되었다. 이는 구재현 연구원이 MTF 오미크론-로에 자진해서 입대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구재현 연구원은 SCP-575-KO 관련 오네이로이 독립체 추격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남기고 탈영했다.

Poco a poco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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