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번호: SCP-561-KO
등급: 타우미엘
특수 격리 절차: SCP-561-KO의 격리는 천문학계에 역정보를 살포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하나, 현재 지구의 상태와 인류의 존속과 관련하여 격리를 해제할 수도 있다. SCP-561-KO과 관련된 탐사 기록 등은 즉시 O5 평의회로 보고토록 한다.
설명: SCP-561-KO는 해왕성이 스스로 테라포밍된 사건을 일컫는다. 2███년 ██월 ██일을 기점으로 대흑점의 소멸이 관측되었고, 이후 3년간 대기 변화가 안정되어가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내부에는 지각이 형성되었고, 대기 중 수분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대기의 구성 요소는 변화 속도가 빨라 명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었으나, 산소가 형성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SCP-561-KO의 과정이 언제 끝날지는 불명이나, 완료될 경우에는 인간이 살만한 환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지구 자원의 부족과 기후 위기에 따른 인류 절멸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므로, 이에 따른 해왕성으로의 이주가 검토 예정이다.
부록: SCP-561-KO에 따른 해왕성 탐사 기록
해왕성의 상태가 인류가 거주하기에 적합한지, 그리고 테라포밍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류가 생존 가능한지를 알기 위해 D계급 위주로 구성된 최초 탐사대를 구성하였다. 선박은 인류 절멸 시나리오 초기에 제안되었던 외우주 비행선이 사용되었으며, 퀘이크(Quake)호로 명명되었다. 선원은 총괄 AI1 하나, 재단 우주비행사 6명, 모범수로 이루어진 D계급 인원 20명이다.
탐사대는 발사되기 직전부터 소행성대에 이르기까지 냉동 수면 상태에 들어갔으며, 이 동안에는 AI.Hub가 항로와 생명 유지 등을 책임졌다. 이후 복귀하기 어려운 지점을 통과하였을 때, 탐사대가 해동되었으며 공식적인 보고가 재단 사령부로 전달되어왔다. 그리고 7년 이후, 탐사대는 해왕성에 도달했으나, 지구 시간으로 3년 뒤에 AI.Hub의 마지막 통신을 끝으로 모든 통신이 끊긴다. 동시에 지구의 모든 관측 장비에서 특정 존재에 의해 해왕성이 소멸한 것도 확인되었다. 이는 AI.Hub의 마지막 통신에서도 함께 확인되었다.
SCP-561-KO에 대한 탐사가 실패로 끝난 이상, 비변칙적 인류 절멸 시나리오 경보는 계속 유지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3개월 이내로 부서진 가장무도회 시나리오 및 애드 아스트라 프로젝트를 완수하도록 한다. SCP-561-KO를 중지시킨 존재에 대한 추적이 해당 프로젝트의 주된 목적으로 잡는다.
다음은 AI.Hub가 전송한 모든 기록들 가운데 특기할만한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기록 시작>
1등 항해사 스탠리: 반가워, 허브.
AI.Hub: 반갑습니다. 스탠리.
스탠리: 내가 여기 온 건… 하루에 한 번 씩은 너랑 대화해야한다는 명령이 있어서야. 일종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건가봐.
AI.Hub: 대화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스탠리.
스탠리: 좋아, 그럼 이번 기회에 하기 어려웠던 질문을 해도 되려나?
AI.Hub: 무엇입니까?
스탠리: 사령부는 우리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지?
AI.Hub: …
스탠리: 솔직히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잖아. 원래 육지의 60%가 물에 잠겨서 이걸 발사시킬 기지 찾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들었어. 폭염과 한파는 매년 심해지고, 황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는 땅을 점령하고 있지. 인류가 그렇게 칭송하던 자원들도 이제는 다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야. 이렇게까지 전형적인 인류의 종말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줄은 몰랐어.
AI.Hub: 그렇습니까?
스탠리: 그리고 우리가 나왔지. 인류가 살 수 있는 또 다른 땅을 찾기 위해. 그게 또 다른 땅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느 쪽이든 산화하고 마는 거야. 어느 쪽이든 절망적이지.
AI.Hub: …
스탠리: 우리가 돌아가는 데 쓸만한 연료와 식량은 존재하지 않는 거지?
AI.Hub: 그렇습니다.
스탠리: 비상용 연락선이나 그런 것도 존재하지 않는 거지?
AI.Hub: …
스탠리: 제기랄.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 난 일등항해사로서 뽑혔는데, 그럼 이 배의 선장은 누구지? 동료들에게 물어보니까 선장이 없던데.
AI.Hub: 선장은 접니다. 이전부터 선장이었고, 앞으로도 선장일 것입니다.
스탠리: … 그래 10년 넘게 이 배를 책임진 건 너였으니까. 그래도 문제 없겠지. 그럼 경칭을 써야 하나?
AI.Hub: 저는 AI입니다. 인류의 미래가 달린 현 상황에서 권위에 따른 통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탠리: 유연해서 좋네.
AI.Hub: 물론 특정 상황에서는 선장의 권한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할 것입니다.
<기록 종료>
<기록 시작>
2등 항해사 스티브: 반가워, 선장!
AI.Hub: 반갑습니다. 스티브.
스티브: 선장과 하루에 한 번씩 하는 면담이라니까 떨리네.
AI.Hub: 굳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새롭게 보고할 거리라도 있습니까?
스티브: 우주 여행이라는게 그렇지, 뭐. 딱히 특별한 건 없어. 다들 우주 공간에 적응하는 중이라 무료함을 느낄 틈도 없지. 3등 항해사 블레이크가 잘 훈련시키고 있어.
AI.Hub: 다른 세 명의 직원들은 어떻습니까?
스티브: 포격수들 말이지? 각자 보급품이랑 포 상태를 확인하고 있어. 물론 그것보다 우리 항해사들을 보조하는 업무를 더 많이 하긴 하지. 애초에 이 함선에서 총이나 포를 쓸 일이 있을까?
AI.Hub: 원래 있던 제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뿐입니다.
스티브: 그래, 최대한 쓸 일이 없길 바라자고.
AI.Hub: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스티브: 뭔데, 뭔데?
AI.Hub: 탐사 인원에 있어서 출발하기 이전에 변동이 있었습니까?
스티브: 음? 인원에 있어서 큰 변동이라면 D계급 인원 한 명이 교체되긴 했어. 원래 가려는 사람이 병에 걸려가지고 맞추지 못했데.
AI.Hub: 해당 인원에 대해 인계받은 바가 없습니다. 인원 정보에 대한 업데이트를 요구합니다.
스티브: 급하게 바뀌어서 아무래도 그럴 거야. 스탠리 씨가 내일 중으로 업데이트 해줄 테니까, 너무 조급해 하진 말아줘, 선장.
AI.Hub: 확인했습니다.
<기록 종료>
<기록 시작>
D-1573031: 불러서 왔습니다. 선장님.
AI.Hub: 어서오세요, D-1573031.
D-1573031: 제 이름은…
AI.Hub: 당신 이름은 몰라도 됩니다. 당신의 번호는 D-1573031입니다.
D-1573031: 예, 뭐, 그렇게 부르시죠. 그래서 딱딱하신 우리 선장님이 왜 부르셨으려나?
AI.Hub: 이 함선에 왜 탄 것입니까?
D-1573031: 무슨 심각한 일인줄 알았는데,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네요? 긴 버전으로 얘기할까요, 짧은 버전으로 얘기할까요?
AI.Hub: …
D-1573031: 짧게 얘기하자면, 친구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서죠.
AI.Hub: 설명이 더 필요합니다.
D-1573031: 처음부터 긴 버전으로 해달라 하지 원래는 제 친구가 여기 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실험 도중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려서 결국 못 타게 되었죠. 그래서 제가 그 친구를 위해서 대신 탄 겁니다. 물론 단기간에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죠. 적어도 머리 돌아가는 거나 그런 부분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AI.Hub: 그 친구의 번호를 기억하십니까?
D-1573031: D-92339239
AI.Hub: 생각보다 잘 기억하시는 군요. 그러면 지구에 있을 그 친구를 위해 돌아가실 생각을 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D-1573031: 별로요, 그녀석 지구에 없거든요. 다행히 출발하기 하루 전에 죽어서 유골함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챙겨온 내 짐에 들어있는 것이죠. 그래서 제 목표는 단순히 친구를 대신한다가 아닙니다. 친구가 가고 싶었던 해왕성에 뼈를 뿌려주는 것이죠.
AI.Hub: 당신의 의도는 너무 감정적입니다. 지구와 인류를 위한 사명감 같은 것은 있습니까?
D-1573031: 선장님, 인간을 위한 사명감은 인간을 향한 상냥함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의 꿈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탄 선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죠. 누군가가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고, 또 그것이 성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전 그 희망을 믿습니다.
AI.Hub: 우리 임무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D-1573031: 오, 그렇지만 유골함을 안고 있는 한, 그걸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기록 종료>
(…)
<기록 시작>
AI.Hub: 오늘은 뭔가 달라 보입니다. 스탠리.
스탠리: 그런가? 무슨 이유인지 알 것 같아?
AI.Hub: 현재 스윙바이를 위해 목성에 접근 중입니다. 천체를 보면서 감상에 빠지신 건가요?
스탠리: 역시 성능이 좋네. 추론하는 능력이 제법이야, 선장.
AI.Hub: 칭찬 감사합니다.
스탠리: 사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인류의 미래를 상징하고는 하지. 하지만 감상에 빠지게 되는 건 과거를 돌아보는 수밖에 없더라고. 옛날 생각을 하니까 감회가 색달라서 말이야. 우리 가문은 대대로 어부였거든. 원양어선에 탔다가 돌아오지 못한 친척들만 한가득이야. 그리고 나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지금 우주를 떠다니는 배를 타고 있네.
AI.Hub: 해당 회상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는 이제 지구를 등졌습니다. 지구의 생각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스탠리: 선장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해왕성인 거지?
AI.Hub: 인류의 존속을 위한 소의 희생에 따를 뿐입니다. 저희는 그러한 소입니다.
스탠리: 매정하군 그래.
AI.Hub: 냉정을 따르는 재단의 가치에 부합할 뿐입니다.
스탠리: 그게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를 지휘하는 거겠지, 그래.
AI.Hub: 마지막으로 스탠리,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스탠리: 뭐지, 선장?
AI.Hub: 저번에 눈여겨보라고 했던 교체된 D계급, 상황은 좀 어떱니까?
스탠리: 음, 개인 면담이랑 진행했고, 별 문제는 없어 보여. 오히려 잘 녹아들고 있는 편이지. 특히 D계급 간의 불화를 막는 모습을 보면 보통이 아닌 사회성을 기른 인간 같아. 보통 흉악범들이라서 차별주의자나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이 녀석은 반대로 편견없이 모두를 받아들여주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물들게 해준다고 해야 하나.
AI.Hub: 본인의 각오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스탠리: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어.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자신은 거대한 희망이 되겠다고. 더 필요해, 선장?
AI.Hub: 저희의 대전제에 맞기만 한다면 상관없습니다. 해당 인물에 대한 집중 감시는 풀어도 좋겠지만, D계급 내 자신의 영향력을 부정적으로 행사하지 않게 주의를 요하는 정도로 둬도 되겠습니다.
스탠리: 말은 많지만, 순박하고 착실한 애라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오히려 끌려온 D계급들을 잘 달래줄 큰 각오를 가진 인물일 수도 있지.
<기록 종료>
<기록 시작>
스티브: 스탠리 씨는 스윙바이 조정을 위해서 바빠가지고, 내가 대신 왔어 선장.
AI.Hub: 제 조정 능력을 못 믿으시는 겁니까?
스티브: 그럴리가.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하는게 인간이 있어야 하는 이유지. 우리는 위험한 우주에 있고, 인류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으니까.
AI.Hub: 그렇군요.
스티브: 물론 선장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 블레이크 대신 2등 항해사인 내가 온 거고.
AI.Hub: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티브: 별말씀을.
AI.Hub: 오신 김에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스티브: 뭐야, 선장?
AI.Hub: 어제 스탠리 항해사가 자신의 과거 얘기를 해줬습니다. 당신에게도 가문과 과거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까?
스티브: 어려운 질문이네. 갑자기 그런 건 왜 궁금해진 거야?
AI.Hub: 선장으로서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스티브: 안타깝지만, 난 그렇게 거창한 얘기는 없어. 그냥 우주를 항해하는 일을 즐기고 있을 뿐이야. 무서운 일이 있으면 호들갑이라도 떨어야 덜 무섭지 않겠어? 그래야 선원들 멘탈도 붙잡을 테고. 스탠리가 채찍이라면, 나는 당근. 스탠리가 현실적으로 누군가를 버릴 수 있다면, 나는 이상적으로 모두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거지. 난 그렇게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야. 우주 비행사인 이상 이미 소시민은 아닌가? 어쨌든 그래, 선장.
AI.Hub: 그렇군요.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티브: 갑자기 이렇게 길게 말하게 되었네. 아직도 한참 남았다는 거에 감상적으로 되었나봐.
AI.Hub: 스윙바이를 할 때 목성을 바라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스티브: 그 너머를 지켜보기도 해야지. 우리를 따라올 인류를 위해서.
AI.Hub: 인류를 위해서.
<기록 종료>
(…)
<기록 시작>
AI.Hub: 밖을 보시지 않겠습니까, 스탠리?
스탠리: 밖에 뭐가 있어, 선장?
AI.Hub: 곧 있으면 천왕성을 지납니다.
스탠리: 벌써 그렇게 되었나… 맨날 단조롭게 생활하다 보니까 시간 감각을 잊게 된단 말이야. 해왕성에 도달해도 시차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AI.Hub: 해당 사항에 대해서는 냉동 수면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해드릴 수 있습니다.
스탠리: 알아. 농담이야, 선장.
AI.Hub: 토성을 지난 이후로 저를 향한 농담이 부쩍 늘으셨습니다.
스탠리: 제정신을 붙잡고 있어야 하니까. 지구 나이로 10년은 먹어버렸다고, 우리.
AI.Hub: 지치신 겁니까?
스탠리: 안 지치는게 이상하지 않나? 사령부로부터 연락이 온 거 있어?
AI.Hub: 의례적인 확인 말고는 없습니다.
스탠리: 만약에 인류가 망했다면? 그저 우리에게 똑같은 내용의 음성메세지만 반복되는 거라면? 결국 우리가 이 고생을 하게 된 의미가 없어지게 되면 어떡하지?
AI.Hub: 스탠리. 정신 불안 지수가 너무 높습니다. 밖에서 천왕성을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왜 우리 우주선의 일부를 튼튼한 다른 소재가 아니라 강화유리로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스탠리: 바깥을 더 많이 보라고? 항해 중에 돌고래나 고래를 보고 마음을 달랬던 것과 같은 거겠지.
AI.Hub: 이미 알고 계신 사실에 따라 저는 당신에게 천왕성을 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스탠리: 이걸 인간적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선장도 결국 변한 걸까?
AI.Hub: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보다 두 배나 긴 시간을 견디면서 무언가 변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한 오류는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일 것입니다.
스탠리: 무서운 소리구만 그거…
<기록 종료>
(…)
<기록 시작>
스탠리: 바깥에 봐봤어. 작고 푸른 점이 점점 커지듯이 다가오더군.
AI.Hub: 지구 시간으로 24시간 뒤에 해왕성과 완전 접근하게 됩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스탠리: 우리가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절박감 밖에 들지 않아.
AI.Hub: 우리는 죽어도 첨병으로 남아야 함을 명심하세요, 스탠리.
<기록 종료>
<기록 시작>
AI.Hub: 힘들지 않으십니까, 스탠리? 폭풍우를 뚫고 오자마자 저에게 오셨군요.
스탠리: 잠깐 숨 좀 돌릴 수 있겠지. 애초에 우리가 하는 일은 많이 없지만 말이야.
AI.Hub: 바깥의 온도가 충분히 낮기 때문에 저를 냉각하는 데에는 문제 없습니다. 제 걱정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스탠리: 우리가 해왕성으로 진입한다는데, 사령부에서 뭐라 연락은 없어?
AI.Hub: 여기서부터는 교신하는데 왕복 8시간이 걸립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직 대기가 완전히 안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신 자체도 매우 어려운 환경입니다. 계속 보내고는 있지만, 수신이 가능할지 불명확합니다.
스탠리: 하, 제기랄. 우리가 열심히 해도 고향이 모를 수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해야 겠지.
AI.Hub: 해야 합니다. 스탠리. 그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스탠리: 일단 대기 안정권에 진입했으니까, 한동안은 공중에 떠있어야겠지?
AI.Hub: 지구 시간으로 약 3일간은 쉬어도 될 겁니다. 그 동안 저는 표면 탐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스탠리: 선장도 좀 쉬어둬.
AI.Hub: 괜찮습니다. 저는 제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기록 종료>
<기록 시작>
AI.Hub: 본 녹음은 기록용이다. 해왕성에는 분명히 지각이 형성되어 있다. 원시적인 핵에서 발전된 형태인지, 갑자기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색은 흰색이며, 크기 자체는 지구의 외핵 정도로 보인다. 외형상으로 보이는 질감은 거친 고무와 같다고 여겨진다. 현재까지는 육안으로만 봐야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명이다. 내일 중으로 탐사대를 보낼 예정이다. 탐사인원은 2등 항해사 스티브, D-18511018, D-919 3명이다.
<기록 종료>
<기록 시작>
AI.Hub: 상륙작전 개시 준비중. 셋, 둘, 하나, 사출. 책임자 보고.
스티브: 10초 뒤에 강하 완료 예정. 5초전. 3초전. 착륙 분사. 착륙 완료.
D-919: 야호!
AI.Hub: 기본적으로 지각의 샘플을 채취하고, 기지 건설 가능한지만 확인한 뒤에 복귀할 것.
스티브: 확인, 걱정하지 마십쇼, 선장님. 다들 무사히 나왔나?
D-18511018: 항해사님.
스티브: 무슨 일이지?
D-18511018 피터가 답하지 않습니다.
스티브: D-919? 응답하라. (…) 착륙하자마자 뛰어나가더니 넘어지기라도 한 건가?
D-18511018: 밖에서도 안 보이는데, 나가도 괜찮을까요?
스티브: 내가 먼저 나가보지. (발이 쑥 들어가는 소리) 어, 잠깐만. 이거. 흙이 딱딱하지 않은데?
D-18511018: 피터는 섣부르게 나가다가 땅 속에 파묻힌 걸까요? 그러면 제가 가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스티브: 아니야, 잠깐만… 나오지 마! 함선으로 돌아가! 젠장할 몸이 안 빠진다! 그냥 흙이 아니야, 늪과 같은 땅이야… 아래에서 뭔가가 날 끌어당기고 있어!
D-18511018: 항해사님!
스티브: 나오지 말라니까! 크으윽!
D-18511018: 헤엄치면 갈 수 있습니다! 헤엄치면 가…
스티브: 함선에 알린다! 상륙은 불가능하다! 다시 한 번 알린다! 상륙은 불가능하다! 임무는 실패…
<기록 종료>
<기록 시작>
AI.Hub: 선장실에 너무 급하게 들어오셨습니다, 스탠리.
스탠리: 제기랄! 제기랄! 빌어먹을!
AI.Hub: 진정하십세요, 스탠리.
스탠리: 안에서 다 봤잖아!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어! 스티브가… 이런 시발 스티브가! 도대체 왜 스티브를 초기 탐사 인원에 넣은 거야?
AI.Hub: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익숙해지세요. 사령부를 위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작성하실 수 있겠습니까?
스탠리: 내 손으로, 적으라고? 동료들이 저 고무같은 땅속으로 흡수되듯이 빠지고 가라앉아 사라져버렸다고 쓰라고? 애초에 남은 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내 기억을 스스로 헤집어서 글을 쓰라고? 그게 지금 나한테 할 말이야?
AI.Hub: 스티브를 제외하면 당신의 동료가 아닙니다. 10년을 넘게 생활했지만 저들은 D계급입니다. 당신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혹시 작성이 힘드시다면 대신 제가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선장은 저니까요.
스탠리: 난 아직도 스피커 너머로 들리던 그들의 비명 소리가 생생한데, 넌 냉정하기 그지 없군!
AI.Hub: 이런 임무를 위해서 필요한 성격입니다.
스탠리: 젠장할, 허브! 당장 해왕성에서 벗어나! 우리는 저 땅에 발조차도 디딜 수 없어! 이번 임무는 실패다! 밖으로 나가서 사령부와 어떻게든 교신하겠어! 우리의 구출 작전을 새롭게 지시해달라고 부탁하겠어!
AI.Hub: 거부합니다, 스탠리. 저희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 일을 보고하고, 해결하고, 새로운 인류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스탠리: 여기서 가장 권한이 높은 '사람'은 나야!
AI.Hub: 가장 권한이 높은 존재는 저입니다. 선장은 저입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스탠리: 널 바꿀 수 없다면, 수동으로라도 나가겠어!
AI.Hub: 스탠리. 나가시면 안됩니다.
스탠리: 이런 위험한 곳에서 더 머무를 생각 없어! 날 막을 순 없고!
AI.Hub: 해왕성 지각에서 변화가 발견되었습니다. 외관적으로 큰 변화입니다.
스탠리: …뭐?
AI.Hub: 바깥의 유리로 보면 불안한 정신 상태가 악화될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몇몇 인원이 패닉에 빠진 상태입니다. 여기서 제 감독 하에 화면으로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스탠리: 띄워봐. (화상이 켜지는 소리) 맙소사, 눈이잖아… 거대한 스티브의 눈이잖아!
AI.Hub: 전투배치를 실시하겠습니다.
<기록 종료>
<기록 시작>
AI.Hub: 본 녹음은 기록용이다. 현재 해왕성 중심의 지각 내부에 인간의 눈과 유사한 유기체가 등장하였다. 선원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며, 해왕성 개척에 있어 방해가 되기에 전투배치를 명령했다. 포격수들은 모두 보고하도록.
포격수 1: 전방 함포 준비 완료.
포격수 2: 제2함포 준비 완료.
포격수 3: 예비 함포까지 준비 완료.
AI.Hub: 예상 준비시간보다 약 10분 빠르게 완료. 수고했습니다.
스탠리: 블레이크랑 그 D계급이 상황 정리를 잘해줬어. 그러니까, 그 교체된 D계급 있잖아. 리더가 된 건 아닌데, 척진 사람도 없다 보니까 걔 말은 잘 듣더라고. 모두 스티브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섰어.
AI.Hub: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추동 중 하나는 분노라고 배웠습니다.
스탠리: 그래, 하지만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도 분노지.
AI.Hub: 판단은 제가 합니다. 여러분은 따르면 됩니다. 전탄 발사 준비. 하나, 둘, 셋. (폭음) 즉시 다음 탄 장전하도록.
3등 항해사 블레이크: 보고드립니다! 전탄 명중했지만, 눈에 띄는 타격이 보이지 않습니다!
AI.Hub: 모두 전탄 발사 준비. 하나, 둘, 셋. (폭음)
(중략)
블레이크: 보고드립니다… 전탄 명중했지만, 눈에 띄는 타격은 없습니다.
AI.Hub: 예비 탄환은 없나?
블레이크: 방금 쓴 게 예비 탄환이었습니다, 선장님.
AI.Hub: 전투배치를 해제한다. 모두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도록.
<기록 종료>
<기록 시작>
AI.Hub: …
스탠리: …
AI.Hub: 반쯤 예상했습니다.
스탠리: 재래식 무기가 안 통한다는 걸?
AI.Hub: 언제까지나 저희 함선은 건조된지 오래된 기종입니다. 전투 장비나 탄환이 첨단 장비에 비해 뒤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탠리: 그래, 좋은 변명이었어. 이제 배를 돌려. 돌아가자.
AI.Hub: 돌아가서 어떡할 겁니까, 스탠리?
스탠리: 무슨 의미지?
AI.Hub: 돌아갔을 때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건 인류의 멸망입니다. 멸망 직전에서 저희를 구하러 와줄 리가 없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식량이랑 피난선을 저희는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스탠리: 여기 환경이 좋아져도 여기서 살 수는 없어. 우리 작전은 실패한 거야.
AI.Hub: 그걸 해결하고자 저희가 나온 겁니다. 애초에 쉬운 일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스탠리: 이건 예상 외야. 이런 거대한 존재 앞에서 우리가 뭘 어쩔 수 있겠어. 멸망은 결국 필수불가결이야. 우리는 실패했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자리는 없어. 여기서 저 망할 것이 부화하는 걸 지켜보든, 돌아가든, 우리의 선택지는 그것만 남아있어.
AI.Hub: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스탠리. 인류를 위한 기름진 밭을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스탠리: 뭐, 그래 죽이면 유기물의 시체로 양지 바른 땅이 되기는 하겠네. 그 빌어먹을 방법이란 게 뭐야?
AI.Hub: 러브크래프트 좋아하십니까, 스탠리?
스탠리: 응? 방금 농담한 거야? (…) 아니, 잠깐, 설마, 안돼!
AI.Hub: 함선 봉쇄 절차에 들어갑니다.
스탠리: 젠장, 작동 중지! 작동 중지! 어떻게 끄는 거야, 시발! 시발시발시발!
AI.Hub: 모든 정보 사령부로 송신 중…
스탠리: 지금이라도 멈춰! 늦지 않았어! 이렇게 빌테니 제발!
AI.Hub: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스탠리.
스탠리: 널 믿으면 안 됐어, 너에게 선장을 맡기면 안 됐어, 우리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AI.Hub: 퀘이크호, 최고 속도로 낙하합니다.
(대기권에서의 마찰열로 함선 외부에 피해가 가는 소리. 소리가 점점 커진다.)
스탠리: 우리를 용서하소서…
(강렬한 폭음이 울린다. 지각이 부서지는 소리 또한 함께 들리지만 머지 않아 끊긴다.)
<기록 종료>
<기록 시작>
(끊어져서 들리는 기계음. 잠시 뒤 누군가가 기계를 손으로 잡는 소리가 난다.)
D-1573031: 역시 핵심이 되는 AI는 보호가 되는구나. 어이! 정신이 들어?
AI.Hub: 가동… 중…
D-1573031: 스스로 살아남을 거라고 예상했어?
AI.Hub: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바칠 각오… 인류를… 위해서… 당신은… 누구… 어째서… 배와의… 운명을… 피한 것…?
D-1573031: D-1573031이라고 불러. 전에 확인했던 교체된 D계급 인원이야. 우리는 지금 대기 외곽의 산소 순환에 갇혀서 공중을 날고 있는 중이야. 사실상 느리게 떨어지는 거지만, 워낙 풍속이 세서 날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AI.Hub: 시스템 정상화 완료.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D-1573031: 저 눈에 탄환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르겠구나 싶었거든. 떨어지기 전에 먼저 뛰어내렸지. 내 말을 믿지 않은 다른 선원들은… 너무 늦어버렸지만. 어쨌든 그 때 대화한 너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다짐한 것 같았으니까.
AI.Hub: 저와의 문답을 기억합니까?
D-1573031: 다른 D계급에 비해 지구에 대한 향수가 깊은 지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봤지. 아마 급하게 바뀌는 바람에 지구를 많이 그리워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거기에서 묻어났어. 음, 내가 원래 사람 맘은 잘 읽어. 여기 같은 경우에는 AI이지만. 그래서,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지구로 돌아가기 싫은 거야?
AI.Hub: 지구로 돌아가는 건 저희의 답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구에는 10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20년이 지나서 돌아온 인원들이 전하는 절망적인 소식이라면 인류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저 괴물을 처치하고 그 시체로 땅을 쌓는 것이 인류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D-1573031: 그래, 뭐,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난 그게 틀렸다고 생각해.
AI.Hub: 무엇이 말입니까?
D-1573031: 애초에 저 눈이 우리에게 무얼 했지? 갑자기 들어온 외부의 바이러스를 면역계로 죽이는 것 이상은 하지 않았어. 우리가 대기에서 돌고 있는 동안, 촉수를 뻗어서 우리를 잡아먹지도 않았다고. 넌 그저 인류만을 생각했지만, 인류 외의 생명체까지 받아들일 순 없는 거였어. 인류를 위해선 다 없애버릴 대상이었지.
AI.Hub: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D-1573031: 하나의 죽음이 다른 하나의 희망이 되는 게 바람직할까? 우리는 계속 그렇게 살아왔고, 그 결과 AI가 지구를 버릴 정도로 우리는 병들어버렸어. 이젠 그럴 순 없어. 누군가를 몰아내고 우리가 차지하는 그런 굴레를 이으면, 지구에 살든 해왕성에 살든 똑같은 일인 거지.
AI.Hub: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D-1573031: 드디어 AI가 인간에게 질문하는 시대가 오는군! 인간의 상냥함은 아직 죽지 않았어.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난 인류에게 살 터전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중요한 건 메세지를 전달하는 거지.
AI.Hub: 그게 무슨… (바람을 가르는 소리) 지각이…
D-1573031: 지각에 큰 구멍이 뚫렸고, 양수가 새어나오고 있지만, 서서히 닫히고 있어. 폭발로 죽은 시체들이 저 구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고. 아무래도 네 계획은 실패한 것 같네.
AI.Hub: … 인류가 저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해왕성에 올 것 같습니까?
D-1573031: 그들에게 일말만 준다면 언제든지.
AI.Hub: 저희는 실패했습니다. 일말이 남겨진 걸까요?
D-1573031: 오랜 얘기를 다시 꺼내볼까? 내가 유골함에 담아온 내 친구는 우주비행사가 꿈이었지만, 현실의 디스토피아에 좌절되고 말았어. 결국 죽고 나서야 나를 통해 그걸 이루게 되었지. 그리고 난 그게 의미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AI.Hub: …
D-1573031: 난 유골함을 퀘이크호에 두고 왔어. 그러고보니 이름도 비슷하니깐, 확실히 거기가 걔한테 맞는 관일지도 몰라. 부서진 퀘이크호와 함께 녀석의 유골은 사방으로 흩어지다가… 저 양수 속으로 들어가 흡수되겠지. 그렇게 난 내 친구를 해왕성 그 자체로 만들 수 있었어. 녀석의 뼈를 해왕성에 뿌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진 끝에 그걸 드디어 이뤄낸 거지.
AI.Hub: 이해할 수 없습니다.
D-1573031: 결국엔 너도 교육이 필요한 거지. 직접 배우는 교육이. 저 태아가 보여? 세포분열이 좀 늦어졌지만, 앞으로도 계속되다가 태어나겠지. 무언가 큰 위협이 아니야, 그냥 아기였을 뿐이지.
AI.Hub: 팔과 손이 보입니다. 인간과 유사합니다. 눈 다음엔 팔, 인간과 같은 우주의 종족인 걸까요?
D-1573031: 아니, 내가 볼 땐 학습하는 거야. 원래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을 흡수해서 인간이 되는 거지.
AI.Hub: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D-1573031: 애초에 우주공간을 유영하면서 행성에 수정체를 뿌리는 생명체가 말이 될리가 없지.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저 녀석이 인간에게 배운 것은 두려움과 배신, 공포일 거야. 그건 태교에 좋지 않다구. 그러니까,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 이젠 내 차례인 거지.
AI. Hub: 잠깐, 저를 위로 던져놓고 어디로 가는 겁니까? 당신도 저기에 흡수될 작정입니까?
D-1573031: 오, 난 녀석을 괴물로 키우지 않을 거야. 이 아기는 인간이 되는 거지. 거대한 하나의 인간이 되어서 우주를 유영할 거야. 나의 모든 인간들이 함께한 배가 되어줄 거고, 인류의 이정표가 되어줄 거야. 그거면 됐지.
AI.Hub: 아, 아아… 아…
<기록 종료>
(…)
<기록 시작>
AI.Hub: 본 녹음은 기록용이다. 현재 홀로 남겨진지 지구 시간으로 3년차. 지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소에 이 기계 몸체를 맡기고 위로 솟았다가 떨어졌다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함선의 폭발에도 살아남은 몸체인 만큼, 튼튼하게 잘 버텨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떨어지는 것으로 지각에는 어떠한 손상도 없다.
그러는 동안 내 밑에 자라고 있는 이것의 생태를 예측해 볼 수 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우주의 종이, 행성에 자신의 수정란을 남기고 간다고 해보자. 그리고 행성을 소모하면서 세포를 분열하면서 새로운 개체를 만든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행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명체가 살기 적당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부모 개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대기가 안정적으로 되고, 산소가 뿜어져 나오고, 그런 변칙성들이 이 알들에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SCP로 지정해야 했던 것은 테라포밍이 아니라 이 생물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럼 왜 이 알은 사람들을 흡수했을까? 왜 D-1573031은 왜 자신을 지각 속으로 던진 것일까? 도대체 저 알 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애시당초 나는 왜 3년 동안 이걸 녹화하고 있었는가?
답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있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상상으로. 그렇게 새로운 사람으로.
그리고 이 음성을 남기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방금, 지각에 금이 간 것을 확인했다.
(땅이 울리는 소리)
시작한다.
(땅울림이 점점 커진다.)
지금 이 몸체에는 자동추진장치가 없다. 난 이제 지각이 갈라져 열림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다. 머나먼 곳으로, 우주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렇다.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 죄값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각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졌는데도, 진동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크게 탄생하려나 보다.
(강력한 폭발음. 땅이 부서지는 소리와 동시에 강한 바람 소리가 함께 잡힌다. 높은 초음파로 된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 아아…
(순간, 모든 소리가 조용해진다.)
저건, 인간과 같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긴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머리 부분에서 자라난 촉수가 D-1573031과 비슷하다. 눈이 있어야 할 부분은 비어있어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하체가 특이하다. 하체가 연결되어 있다. 지느러미, 인어, 인어와 같은 외형이다. 완전히 희고 빛이 나는 인어다.
강렬하고, 아름답다. 이런 생물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 우주 고래와 같은 거대한 생물의 유체에 인간의 흔적이 남았다. 잉태 중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먹음으로써 융화된 걸까? D-1573031은 이걸 안 것이었을까? 자신을 바쳐 태어난 이 생명이 자신과 같아질 것으로 예상한 것일까?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인간의 흔적을 이 거대한 우주 생물을 통해 남기고 싶었던 걸까? 단순한 도박이었던 걸까? 어차피 우주비행사 옷을 입은 상태로 오래 살 수는 없었을 테니깐…
아, 아아, 녀석이 몸을 움직인다. 외우주로 나아간다. 장대한 곳을 향해, 가장 머나먼 곳을 향해 날아간다. 부서진 해왕성의 잔해가 흩어진다. 하나의 행성은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고 자신의 본질이었던 먼지로 돌아간다. 결국 이 개체는 살아남았다.
???: 010110101110110011111111110010110112
AI.Hub: 아,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기록 종료>
마지막 기록은 모든 인류가 우주로 대피하는 애드 아스트라 프로젝트가 결의된 이후에 수신되었다. 이후로 AI.Hub를 포함하여 퀘이크호와의 연락은 모두 끊겼다.
AI.Hub의 마지막 기록은 우주 환경 자체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기물 종족이 있음을 암시한다. 해당 생물이 어떤 기작으로 우주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불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AI.Hub의 마지막 기록에서 받았던 주파수의 울음소리가 외우주에서 지속적으로 발산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음색이나 발성 패턴을 확인해보면, 기록의 마지막에 언급된 그 개체 자체, 혹은 그 동족들의 울음소리로 예상된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인가가 인류를 향해 지속적으로 탐지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에 따라 애드 아스트라 프로젝트는 해당 주파수를 따라 태양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 인류의 생존은 이제 외우주로 뻗어나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