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번호: SCP-532-KO
등급: 유클리드(Euclid)
특수 격리 절차: SCP-532-KO의 종자는 현재 제42기지의 제1온실 12, 13구역에서 배양중이다. 발아 시 나온 떡잎에서 DNA를 검출하여 무슨 종인지 확인하고 각각 따로 구분하여 재배하며, 종간 교차교배실험을 제외한 수분 및 수정과정은 자동화로 이루어진다. 대상에서 나온 열매(이하 SCP-532-KO-A로 명명)의 무분별 취식 및 처리는 금지된다.
설명: SCP-532-KO는 종류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식물로, 보통 박과(Cucurbitaceae)의 형태로 발아한다. 대상은 발아된 식물의 생장 과정에 따라 성장하며 수분 시기에는 암술뿐만 아니라 꽃잎 일부분에서도 꽃가루가 분비된다. 꽃가루는 기존의 것보다 약 10배 정도 크다. 씨앗의 형태는 동양계 호박(C. moschata)의 씨앗으로, 씨앗의 DNA를 검출해본 결과 염색체의 수 혹은 염색체의 종류, 염색체에 있는 염기의 배열 및 서열이 매번 다르게 나타났다. 발아한 식물의 염색체 배열은 고정되어 있는데, 실제 식물의 염색체 배열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현재 재단이 발견한 종은 총 283종이며 계속 염색체 패턴을 분석해나가고 있다.
SCP-532-KO-A는 SCP-532-KO에서 나온 열매로, 발아된 식물에 해당하는 열매가 기존의 10배 크기로 열린다. 개체의 내부는 껍질이 제거된 또 다른 과일이 들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과일이 들어 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서로 간의 과즙은 섞이지 않으며, 내부의 과일들은 기존보다 5~8배 크기로 열려있다. 가끔 두 과일 사이의 경계에서 웨이퍼, 크래커 재질의 비스킷 층이 생성되기도 하는데 이 층 역시 과즙은 스며들지 않는다. 하나의 개체에 포함되는 과일의 종류는 최대 6종류에서 3종류로 외부에서부터 1단~6단으로 각각 구분한다. 현재 확인된 과일의 종류는 이렇게 나타났다.
- 1단: 수박, 호박, 빵나무 열매, 두리안, 파인애플, 스크류 파인.
- 2단: 파파야, 멜론, 단호박, 으름, 코코넛. 1단의 과일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 3단: 참외, 배, 사과, 복숭아, 망고, 아보카도, 바나나. 이때부터 한 개가 아니라 다수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 4단: 귤, 구아바, 레몬, 자두, 살구, 키위, 망고스틴.
- 5단: 리치, 밤, 카눈, 포도.
- 6단: 블루베리, 아몬드, 땅콩. 대부분 씨앗을 둘러싼 형태로 있다.
각각의 단의 과일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DNA는 전부 다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체의 섭취에 따른 유전적 문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SCP-532-KO는 국제 구호단체 CARE가 발표한 인도네시아 활동 보도 자료에서 나온 "거주민의 식탁에서 매우 특이한 음식을 맛봤다"라는 증언에서 존재가 파악됐다. 재단이 확인했을 때 해당 마을은 대상을 주식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거주민 면담 내용에 따르면 해당 마을에선 약 4개월 전 '만나 자선재단'의 '기아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SCP-532-KO의 종자를 제공받아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SCP-532-KO와 SCP-532-KO-A는 모두 수거했으며, 마을의 거주민과 CARE의 보도자료는 각각 B급 기억소거와 정보조작을 실시했다. 처리과정 동안 만나 자선재단과 관련인물을 추적하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해당마을 이외에도 다른 마을 혹은 다른 나라에도 대상이 있는지 계속 조사중에 있다.
추가 보고: 이전에 발생한 ████ 사건에 대해 조사하던 중에 BE와 대상과 접점이 있었단 내용을 발견했다. 대상은 단체에서 개인 연구원들이 몰래 개발한 것이며 도중에 검사관에게 발각되어 폐기될 예정이었는데, 마샬, 카터 & 다크 유한회사의 한 회원이 연구원과 연락을 취해 대상을 넘겨받고 다른 회원들에게 팔아버렸다. 개발 연구원들은 유한회사관리하에 자취를 감췄으며 만나 자선재단의 입수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회원 중 한 명이 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BE는 대상을 재단이 확보하고 있단 사실을 상부에서만 알고 있는 듯하며 이에 대해 대외적으로 크게 반응을 보이진 않으나 대부분 불쾌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 ████ 사건 조사 중 대상과 관련된 문서 및 녹음기록
(화면이 켜지고, 윤곽이 서서히 뚜렷해진다. 화면 속 배경은 SCP-532-KO가 약 15개체가 심어진 온실이며, 한쪽 구석엔 각종 절단용 도구가 즐비된 테이블이 보인다. 장화와 장갑을 낀 인원 3명이 톱과 수레를 가지고 한 개체 주변으로 모인다.)
남성 연구원 1: ..이거 기획한 애가 누구였냐.
여성 연구원 1: 최종 기획은 우리가 뭉쳐서 했지만, 처음 아이디어는 아마 너였었지?
남성 연구원 2: 뭐 그렇지.
남성 연구원 1: 우리 능력이 대단한건지 이놈들의 생명력이 대단한건지.. (혀를 차며 들고 있던 톱을 어깨너머로 걸친다) 언제봐도 이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남성 연구원 2: 그만큼 우리가 고생한 걸 알아줘서 행운이 따라 준 거 아니겠냐. 솔직히 이번에 염기서열 재조합하는데 애먹었고 발아 자체가 되는지부터가 의문이었는데, 이렇게 잘 컸으니 대박이지.
여성 연구원 1: 물론 안쪽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와야 하는데 말이지.
남성 연구원 2: ….
남성 연구원 1: 솔직히 여태까지 지도부한테 안 들킨 것도 용해.
남성 연구원 2: ….
남성 연구원 1: 이제 와서 늦은 말이기도 하고, 같은 한 배를 탄 입장이지만, 이 연구는 결코 여기서 할 만한 주제가 아니었고, 또 해서도 안 됐었어. '숯' 때문에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며 같이 연구해보자고 니가 꼬셨었고 나도 반재미로 동참을 했다만.. 윗놈들한테 들키면 그 날 바로 끝장이야. 알아? 특히나 이번에 새로 짜인 검사관 녀석들 대부분이 GMO에 G만 들어도 아주 쌍욕을-
여성 연구원 2(촬영자): 흠흠, 저 미안한데 슬슬 시작하면 안 될까?(남성 연구원 1은 화면 쪽을 잠시 쳐다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화면 속 인원들은 개체를 분리하기 전 10초 정도 기도하며 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분리된 개체는 수레에 담겨 테이블로 옮겨진다.)
(전략) M-29는 M-18,25,27와 함께 현 연구의 목표와 거의 가깝게 실현되었다. 네 개체 모두 기존의 과채류에서 거의 5배 크기로 성장하였으며 내부 구조는 일정 간격으로 다른 과채류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당도는 각 해당하는 과채류와 일치했고, 외관상 현 배열구조를 제외하고 특기할만한 사항은 없었다. 성장 과정에서도 이 네 개체는 다른 개체들에 비해 같은 배양환경에서 수월히 자랐으며 병충해가 거의 없었다. 과육을 채취하여 정밀검사를 해보니 우려한 것과 다르게 알레르기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으며 변성된 비타민이나 영양소가 검출되지 않았다. 맨 처음으로 발아에 성공한 M-4에서 있는 염색체보다 수가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는데(이는 네 개체를 제외한 M-14~30에 같이 적용된다.) 이들은 C-14CF1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염색체의 변형 및 추가가 (후략)
참고: 본 기록은 개체가 심어진 온실에서의 녹음기록으로, 연구원 개인의 녹음이 아닌 온실 탁자 밑에 붙여진 녹음기로 판명됐다.
(탁자를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
남성 연구원 1: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남성 연구원 2: 뭐가?
남성 연구원 1: 열매도 다 맺혔겠다. 검사했는데 크게 이상도 없겠다. 저걸 그대로 버리긴 그렇잖아? 뭐 어차피 검사관한텐 숨겨야 하는 건 변함없지만.
남성 연구원 2: 음.. 그냥 계속 키우려고.
남성 연구원 1: 키운다고? 뭐 때문에?
남성 연구원 2: 먹으려고, 니도 알잖아. 여기 급식 엿 같은거.
남성 연구원 1: 아아.
남성 연구원 2: 아니 동물보호 다 좋다 이거야. 근데 고기를 먹으려면 식비가 2, 3배로 내라는 건 도대체 누구 생각인 거야? 그것도 콩고기나 밀고기도 똑같이 취급하고 말이야.
남성 연구원 1: 그나마 생선은 요새 들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비싸긴 마찬가지지. 트레이시나 마느린은 별말 없이 먹긴 하지만.
남성 연구원 2: 정말이지 해도 너무해. 기본 식사가 오트밀하고 샐러드 한주먹이 끝. 말이 되냐고. 단백질이 진짜 요만큼도 없어. 그나마 식비와 똑같은 값에 쳐주는 게 있기는 하지만..
남성 연구원 1: 지도부 나부랭이나 어느 미치광이 아니면 영웅심 쩌는 초짜들만 먹는다는 그거? 나 그거 맨 처음에 소문인 줄로만 알았다.
남성 연구원 2: 하아..
남성 연구원 1: 그래서, 너는 여기 있는 걸로 배 채우려고? 솔직히 성에 안 찰 것 같은데?
남성 연구원 2: 키우면서 야채쪽으로도 개발할 생각이야. 더 가서 곡류도 할 생각이고.
남성 연구원 1: 얌마. 여기가 니 농장이냐. 지금 여기 온실이나 연구실 전부 교수님꺼잖어.
남성 연구원 2: 괜찮아. 교수님은 지금 대외활동하느라 바쁘시고, 앞으로 적어도 1년간은 여기 올 일은 없으셔. 나한테 전부 다 맡긴다고 말해뒀기도 했고.
남성 연구원 1: 뭐..알아서 해라.
남성 연구원 2: 니도 좀 거들어줘. 얘네 키우는 거 나 혼자론 벅차.
남성 연구원 1: 알았어 시꺄.
(전략)…이윽고 오늘 오후에 교수진들은 테드비스 교수 소유 온실에 다녀갔다. 예상대로 거기엔 몹시 당황한 연구원들이 있었고 그 뒤로 커다란 수박과 호박들이 눈에 띄었다. 연구원 중 한 명은 병충해에 강하고 성장이 활발하도록 개량한 것이라고 허둥지둥 둘러대고 있었지만,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인지 정말 몰랐을까. 다들 아무 말 없이 듣긴 했지만 듣는 내내 표정이 썩어있던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으리라고 본다. 그나마 오늘 교수진들이 대부분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is)2이라 망정이지, 프루테리안(Fruitarianism)3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그 날 풍경은 참 볼만하지 않았을까. (생략)
(기록 3와 같은 녹음기이다.)
(긴 한숨 소리. 이어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된다.)
남성 연구원 1: 여봐들.
(10초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않았다.)
남성 연구원 1: 일단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제 앞으로 어떡할지 생각해야지. 이렇게 꿀먹은 벙어리마냥 가만있으면 뭔 소용이냐?
여성 연구원 2: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있어?
남성 연구원 1: 여길 떠야지. 여기서 더 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테드 교수님도 전화 듣고 내일모레 바로 달려오실 텐데, 그 전에 우리가 사표 쓰고 나가야지.
여성 연구원 1: 윗분한테 찍힌 상태로 우리가 달리 갈 수 있는 데가 있을라나.
여성 연구원 2: 유전자 연구하는 데야 많지만, 여기도 나름 과학에서 뛰어난 분들이 위에 계셔서, 이미 그쪽에도 말을 해놓지 않았을까?
남성 연구원 1: 이런 씨, 우리가 무슨 핵폭탄을 재배했어? 그렇게까지 손을 쓸 리가 없잖아?
여성 연구원 2: 나도 피해망상이란건 알지만, 다들 여기서 나간 사람들은 거의 좋은 꼴은 못 봤잖아? 그 왜 저번에 폐품처리활용부서에 있던 자만씨, 그 사람이 그 부서에서 개발한 '대나무 양초'4를 몰래 들고 가다 걸려서 거리에 나앉고 아무도 안 받아줘서 결국 객사하셨다며?
남성 연구원 1: 아 그건 그 아저씨가 또라이… 하아, 썅 몰라. (약 7초간 침묵) 얌마, 토머스. 너도 좀 뭐라 말 좀 해봐.
남성 연구원 2: …생각 중이야.
남성 연구원 1: 뭘 더 생각할 게 있다고. 우린 걸렸고, 담당 교수는 오고 있고, 여기서 더 있을 순 없고, 그러니 우린 여길 떠야해. 그게 다야.
남성 연구원 2: 누가 그걸 몰라? 그 후가 문제.. 어 잠깐만, 전화 왔다. (달칵) 네, 여보세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남성 연구원 1: ..뭐지, 이 상황에 전화를 받을 여유가 있나.
여성 연구원 1: 모르는 번호인가보지..라고 하기엔 쟤도 참 실없긴 하네. (헛기침) 자, 이제 여길 나간다 치고, 당분간 살 곳은 마련해야 하잖아? 호치, 네가 살았던 곳에 좁은 단칸방이라던가 있어?
남성 연구원 1: 뭐.. 찾아보면 있겠다만 남자 둘 여자 둘이 살기에 적당한 데는 없을걸?
여성 연구원 1: 지금 그런 걸 따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될 수 있는 대로 해봐야지.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돈으론 아마 대략 적어도 1년쯤은 살 수 있을 테니 그 안에 직업을 구하든지 하고.
여성 연구원 2: 꽤 힘들어지겠네..
여성 연구원 1: 이런 사태를 바란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각오를 했으니까, 앞으로의 생활도 버텨내야지.
남성 연구원 1: 흠….(40초간 아무런 말이 없는 채 흙을 발로 차는 소리만 미약하게 들렸다.)
남성 연구원 2: 얘들아. 좋은 소식과 더 좋은 소식이 있어.
남성 연구원 1: 좋은 소식하고 나쁜 소식이 아니라? 뭐 좋아, 좋은 소식은 뭔데?
남성 연구원 2: 아까 통화한 분이 나하고 이전에 알고 지냈던 부호분이신데, 그분이 우리한테 집을 공짜로 주시겠데!
여성 연구원 1: 뭐?
여성 연구원 2: 갑자기 뭔 소리야? 너야 잘 알겠지만 우리가 생판 모르는 남이 선뜻 우리한테 집을 준다고? 그걸 어떻게 믿냐?
남성 연구원 2: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우리가 거기서 열심히 일만 한다면 집세 걱정할 필요가 없대!
남성 연구원 1: 일? 집세? 얘 아까부터 뭔 헛소리야? 좀 정리하고 말해.
남성 연구원 2: 아아, 미안. 그게 바로 더 좋은 소식 때문이야.
여성 연구원 1: 더 좋은 소식? 그래, 그래서 그게 뭔대?
남성 연구원 2: 그게 바로..(6초간 아무 말이 없는 채 약간의 탄성만이 작게 들렸다. 정황상 '남성 연구원 2'가 SCP-532-KO-A를 가리킨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 연구원 2: 저 과일을 팔아주겠대.
(전략)…이윽고, 저는 연구소로 돌아온 즉시 바로 제 개인연구실 겸 온실로 뛰어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책상 위에는 제 제자들의 사직서가 놓여 있더군요. 교수님께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며 이만 저희는 물러나겠다고 쓰여 있더군요. 텃밭에 있던 녀석들은 치워놨다고 하면서요.
뭐, 전 그렇습니다. 호기심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고, 그 호기심을 통한 탐구는 오직 인간만이 가진 덕목이며, 그걸 방해하면 안 된다고 말이죠. 물론, 이번 일은 이후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검사관들의 의견에 대해선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가 이들의 탐구심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게 한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사태에 대해 교수진과 임원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헌데, 열매가 잘린 흔적만 있고 처리한 흔적은 없으니 어떻게 된 걸까요…
- H.G 테드비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