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427-KO

일련번호: SCP-427-KO

등급: 케테르

특수 격리 절차: SCP-427-KO는 불명의 시점 이후 전 세계의 신발 판매처에 출현한다. SCP-427-KO의 출현을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재단은 전 세계 패션 업계를 중심으로 여성 신발의 유행을 굽이 높은 구두가 아닌 스니커즈, 샌달, 부츠 등으로 유도 중에 있다. 어린 연령대에게는 SCP-427-KO의 영향력에 대하여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동화를 이용하여, 어린 시절부터 '빨간 구두'에 대한 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SCP-427-KO의 변칙성 의심 사례 발견시 재단은 제품 리콜을 이유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SCP-427-KO를 회수하고, 구매자 및 소유자를 추적한다. 재단에 의한 개체 회수 이후 또는 이전에도 SCP-427-KO와 관련된 변칙성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잠시 동안 보유하고 있었던 것 만으로 사망으로 추정되는 행방불명 사례가 확인되었다. SCP-427-KO와 관련되었던 두 인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가 요구된다.

재단은 엔카 가수 사토 유미코가 엔카 박물관을 위하여 기증했던 SCP-427-KO 개체를 가품으로 교체하고, 개체 원본을 회수하였다. SCP-427-KO의 성분 분석 결과 구두는 중국 ██성 지역에서 191█년 제작된 것으로, 공장 태그가 신발의 안쪽에 붙어있었다.

설명: SCP-427-KO는 5cm 이상의 굽이 있는 여성용 빨간 구두이다. 디자인 및 소재는 출현 시마다 차이가 있으나, 굽이 있는 여성용 빨간 구두 한 쌍이라는 점은 SCP-427-KO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SCP-427-KO는 신발 판매처에서 변칙적으로 출현한다. 해당 개체를 본 대상은 구두의 소유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며, 합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여 SCP-427-KO를 획득하여 소유하게 된다.(SCP-427-KO-1)

SCP-427-KO-1이 SCP-427-KO를 소유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판매 가격에 상응하는 금전, 혹은 이와 동일한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비합법적인 방법으로는 가장 빈도가 높은 절도를 비롯하여 상점 점원의 폭행 사태, 상점 주인의 ██ 후 탈취를 확인하였다. SCP-427-KO와 연관된 이후 SCP-427-KO-1은 SCP-427-KO의 지속적인 보유 유무와 상관없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해당 변칙성은 SCP-427-KO-1의 인생에 한정되지 않고, 개체가 존재하는 시간 선에도 영향을 끼친다.

SCP-427-KO-1로부터 SCP-427-KO를 선물 등으로 소유권을 넘겨 받은 자(SCP-427-KO-2)는 SCP-427-KO를 보유하는 것으로서 일신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겪으며 SCP-427-KO-1의 변칙성과 동일하게 시간선에 영향을 준다.

개체의 특성 상 구매시 사이즈를 알아야 하는 관계로, SCP-427-KO-1과 SCP-427-KO-2는 동일인물 혹은 선물을 주고 받을 만큼의 친밀한 관계의 사이에 있다. SCP-427-KO-1과 SCP-427-KO-2가 동일 인물인 경우, 서술한 부정적이며 긍정적인 변칙적 상황을 모두를 겪는다.


  • 부록1: SCP-427-KO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년도별 기록

1805년 :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덴마크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탄생하였다.

1813년 :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아가사 카렌이 행방불명 되었다. 당시 지역 신문에 해당 사건을 찾아볼 수 있으며, 구두 수선공이었던 안데르센 아버지의 기록으로 아가사 카렌은 SCP-427-KO로 추정되는 개체의 수선을 맡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14세였던 아가사 카렌은 거주하던 자택에서 150km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사망 상태로 발견되었고, 안데르센의 아버지가 수선해주었던 SCP-427-KO가 신겨져 있었다.

183█년 : 프랑스 파리에서 SCP-427-KO를 신은 신원 미상의 SCP-427-KO-2가, 신고 있는 SCP-427-KO를 과시하기 위하여 파리의 댄스홀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이 춤은 댄서들을 중심으로 대유행하였고, 캉캉 Can-Can 춤이라 명명되었다. 파리 화류계를 중심으로 SCP-427-KO의 출현 빈도는 유의미하게 증가하였다.

1845년 :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아가사 카렌 행방불명 사건을 계기로 집필한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빨간 구두'로 알려졌다.

1845년~1875년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소설 '빨간 구두'의 영향으로 붉은 색의 굽 높은 구두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져 SCP-427-KO의 출현 및 영향력이 대폭 감소하였다.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75년 사망했다.

188█년 : 독일 ████시의 구두 가게에서 SCP-427-KO의 영향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 폭행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폭행 이후 사망하였다. 해당 상점의 금전적 손실은 SCP-427-KO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폭행 사건의 가해자 20대 여성 SCP-427-KO-1은 체포 바로 직전까지 SCP-427-KO-2로서 구두를 상시 착용하였고, 도박장에서 체포되었다. SCP-427-KO-1은 SCP-427-KO를 얻은 뒤 넉넉한 집안의 남성과 결혼을 하였으나, 결혼 직후 1년이 지나지 않아 배우자의 사업이 파산하여 술과 도박으로 전재산을 탕진하였다고 진술했다.

189█년~1914년 :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패션 업계에서 불명의 이유로 유럽 전역에서 빨간 구두가 크게 유행하였다. 빨간 구두의 착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SCP-427-KO의 사례가 다수 발견되었다. SCP-427-KO-1은 친구, 연인, 배우자, 가족을 포함하여 불륜 상대, 반려동물, ███ 등으로 확대되었다.

1913년 : 1901년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조피 폰 호엔베르크가 생일 선물로 모친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초테크 폰 초트코바로부터 빨간 구두를 선물받았다.

1914년 :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초테크 폰 초트코바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함께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다. 이 사건은 '사라예보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1914년~1917년 : 제1차 세계 대전의 기간 중에는 군수물자의 공급 및 상점의 파괴 등의 이유에서 SCP-427-KO로 추정되는 변칙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다.

1915년 : 유미자(사토 유미코)가 경기도 수원에서 탄생하였다.

1918년 :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었다.

1919년 : 프랑스 ███ 지역에서 재건된 상점가에 SCP-427-KO로 의심되는 사례가 출현하였다. 신원 불명의 10대 남성 SCP-427-KO-1이 상점가 쇼윈도에 전시된 SCP-427-KO를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해당 개체를 탈취하려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현장 사살되었다. SCP-427-KO-1이 사살된 현장에서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진 SCP-427-KO는, 훗날 1930년 유명 연극배우 크리스틴 마르텔이 8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현장에서 '그 동안 널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는 자필 유서와 함께 발견되어 지역신문에 실렸다.

1922년~1924년 : 미국 시카고 지역을 중심으로 화려한 캬바레가 크게 유행하며, SCP-427-KO의 출현빈도가 유의미하게 늘어났다. 특히 SCP-427-KO의 모습과 꼭 닮은 빨간 구두는 ███ 캬바레의 댄서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빨간 구두의 판매량이 늘자 SCP-427-KO-1, SCP-427-KO-2를 겸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였다. SCP-427-KO를 구매하고 보유한 댄서들은 할리우드 영화에 단역으로 캐스팅 되어 배우로 활약하였으나, 너무 이른 나이에 소모되어 말년에는 가난과 대중의 무관심 속에 죽어갔다. 해당 시기에 발생한 SCP-427-KO-1와 SCP-427-KO-2의 사례는 황색 언론지와 잡지를 중심으로 싸구려 펄프픽션의 단골 소재로 활용되었다.

1925년 : 유미자가 서울에 다녀온 오빠 유미준에게 비단으로 만들어진 붉은 SCP-427-KO를 받았다.

1926년 : 유미준은 도쿄로 가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행방불명 된다. 십 대 초반이었던 유미자는 오빠를 따라 가겠다며, 오빠의 편지와 SCP-427-KO를 가지고 일가 친척 하나 없는 도쿄로 가서 일을 하며 생활하기 시작한다.

1933년 : 유미자는 사토 유미코라는 이름으로 일본 도쿄에서 밤무대 엔카 가수로 데뷔하였다. SCP-427-KO의 영향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토 유미코는 꾸준히 붉은 구두를 신고 무대에 올라 '붉은 구두를 신은 가희'라는 가칭을 얻었다. 사토 유미코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SCP-427-KO로 의심되는 사례가 소폭 증가하였다.

1939년~1945년 :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해당 기간 SCP-427-KO의 변칙성은 별도로 관찰되지 않았으나, 군부대 위문공연 가수들을 중심으로 SCP-427-KO-2가 겪는 일신상의 긍정적인 현상이 관찰되었다. SCP-427-KO의 의심 사례를 인터뷰한 결과, SCP-427-KO-2는 SCP-427-KO를 자신에게 준 SCP-427-KO-1가 모두 이번 전쟁으로 전사하였다고 진술했다.

1945년 : "미자, 하나 밖에 없는 내 동생. 오빠는 죽으러 간다. 너를 못 만나고 가버리는 게 슬픈 일이구나. 아, 조선말로 글을 쓰는 것이 이 것이 마지막이라니. 일을 한다는 이유로 널 두고 조선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은 날이구나!" 다나카 준의 메모. 다나카 준은 태평양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다나카 준이 유미준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엔카 가수인 사토 유미코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 : 엔카 가수 사토 유미코가 한국계임을 발표하였다. 사토 유미코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오기 전까지 함께였던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다며 어린 시절 유미준의 사진과 이름을 방송으로 공개하였다.

1990년 : 조피 폰 호엔베르크가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1914년 당시 조피 폰 호엔베르크가 SCP-427-KO의 영향을 받은 SCP-427-KO-2였음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조피 폰 호엔베르크의 유품 중 그가 소녀시절 선물 받았던 SCP-427-KO가 있었다는 사실이 사망 이후 밝혀졌다. 조피 폰 호엔베르크는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양친의 죽음을 겪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아왔으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중 무사히 살아남았다. 조피 폰 호엔베르크의 유족은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이 양친에 대한 그리움으로 SCP-427-KO를 간직하고 있었다고 답변하였다.

1996년 : 122번째 리사이틀을 끝으로, 엔카 가수 사토 유미코가 은퇴를 선언했다. 영원한 붉은 구두의 가희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그녀의 생애를 담은 '붉은 구두'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기획되었다.

2002년 : 사토 유미코의 삶을 담은 '붉은 구두'가 개봉하였으며, 엔카 박물관에 사토 유미코가 기증한 애장품 중 SCP-427-KO가 포함되어 있었다. 재단은 해당 개체의 확보를 위하여 위장 직원을 파견하여, 일반 전시 직전 가품과 바꾸어 두었다.


  • 부록2: 리나 요원, 사토 유미코와의 인터뷰

2003년, 일간지 기자로 위장한 재단 직원인 리나 요원이 사토 유미코와 SCP-427-KO에 관한 인터뷰를 맡았다. 인터뷰는 비공개로, 필요한 부분만 추출하여 기록한다고 사전에 안내했다. 인터뷰는 사토 유미코가 입원한 1인실 병원 침상에서 진행되었고, 사토 유미코는 노환으로 인한 치매를 포함한 여러 질병을 앓고 있어 장기간의 요양이 필요한 상태였다. 인터뷰는 일본어로 진행된 것을 기록, 한국으로 번역하였다.

(인터뷰 시작)

리나 요원 : 안녕하세요, 사토 씨. 인터뷰를 맡은 리나라고 합니다. 오늘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사토 유미코 : 아이고, 어서와요. 예쁜 아가씨. 가만 보니까, 아가씨도 빨간 구두를 신었네. 귀여운 리본도 달려있고, 아주 맵시가 있어. 예쁜 구두야. 예뻐. 눈이 이래 침침해도, 색이 선명한 구두는 잘 보여요.

리나 요원 : 칭찬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 전설의 붉은 구두의 가희를 만나러 오는데 그 정도는 예의지요.

사토 유미코 : 그래, 아가씨 나이도 나를 알어? 내가 참, 그간 인생을 잘 살기는 했나보우. 우리 때는 비단 구두가 정말 유명했지. 그래, 서울에서…

리나 요원 : 사토 씨, 저도 '붉은 구두' 다큐멘터리를 봤었어요. 서울에서 온 오빠로부터 비단 구두를 오빠로부터 선물받으셨고, 그 이후에 삶이 바뀌었다는… 시작 장면부터 정말로 영화같은 이야기였어요. 사토 씨의 삶이요.

사토 유미코 : 그, 오빠. 그래. 우리 오빠. 우리 남매는 무척 사이가 좋았어요, 아가씨. 오빠의 이름은… 유, 미, 준. 나랑 한 글자밖에 차이가 안나요, 아가씨.

리나 요원 : 유미준 씨라는 이름이었죠, 사토 씨의…

사토 유미코 :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오빠랑 난 둘만 살았었지. 선물을 준 오빠가 사라지자, 나한테 남은 건 그 구두 뿐이었어요. 친척 집에 있어봐야 무엇하겠어? 얼굴도 모르는 남자한테 시집이나 가겠지. 나는 구두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오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도쿄로 왔었지.

리나 요원 : 구두를 그 때도 챙겨서 오신 거군요, 오빠가 주신.

사토 유미코 : 그럼! 그 것만 있으면 오빠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 조선말 쓰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 같았고. 얼마나 멋진 도시였던지, 그 때의 내 눈에 도쿄는. 눈 뜬 상태에서 코 베여 갈 도시였던 줄은 몰랐던게지, 내가.

리나 요원 : 영화에도 나와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영화 상의 각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정말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셨던 건가요, 사토 씨.

사토 유미코 : 당시에 오갈 곳 없는 애가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지가 않았지. 난 갈 곳이 없어 무작정 술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었고. 일본말이 서툴어서 일이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오. 추근덕거리는 남자들도 많았고 말이지. 다행히, 내가 배워먹은 건 없어도 태생은 명랑한 성격이지 않겠어요? 일이 힘들면 서빙하며 배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게 점점 인기를 끌며 손님들이 나를 보러 와줬다구. 그래서 가수가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은 날, 난 가수를 대신해서 급히 무대에 서라고 지시를 받았어요. 거기에서 빠르게 내 조선 이름에서 따와서 이름을 만들었고, 그게 지금 내가 쓰는 이름이 된거지.

리나 요원 : 그 무대가 전설의 가희의 데뷔 무대가 된 거군요.

사토 유미코 : 그런게지. 내 인생은… 운이 좋았어요, 아가씨. 나는 얽매일 것도, 거리낄 것도 없이 살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시절은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었고. 다 옛날 이야기야. 구두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고 했었지? 첫 무대에서도 나는 붉은 구두를 신었어요. 비록… 오빠가 줬었던 구두는 이제 작아졌고, 내 발은 그 것보다 커졌으니 신을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그 이후에도 줄곧, 계속.

리나 요원 : 마음이 중요한 거죠, 그런 건. 사토 씨는 붉은 색을 좋아하시나요?

사토 유미코 : 솔직히 붉은 색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아요. 평소에도 무대가 아니라면 파란 계열의 옷이나 악세서리를 훨씬 선호해 왔어요. 다만… 이 구두를 신고 있으면, 특히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신는다면 그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뭔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노인의 오래된 버릇 같은 거라우. 어쩐지 나만의 특징 같은 게 되어버린 것 같지만 말이지, 응. 해석하기 나름이겠지. 아가씨 말대로 마음이 중요한거지, 그런 건.

(이 대목에서 사토 유미코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고, 눈물이 주름진 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리나 요원 : 사토 씨. 혹시 많이 힘드시면, 인터뷰를 중단하셔도 괜찮아요.

사토 유미코 :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한 건데… 왜 내 오빠에게는 와닿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언제나 무대에 오르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난 언제나 무대에서 오빠가 나한테 사다줬던 그 색의… 예쁜 빨간 구두도 신었는데… 저 많은 관중들 사이에 오빠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왔는데. 방송에 나가서까지 얘기 했는데 와주지 않았어요. 안타까웠죠, 좀.

리나 요원 : 사정이 있으셨던 것이라고 믿어요. 그 분도 사토 씨를 지켜보셨을 거에요.

사토 유미코 : 그렇겠지요? 오빠가 나보다 나이가 제법 많은 편이니, 뭐, 지금이라면 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오늘 아가씨를 따라서 나에게도 와 주었으면 좋겠네~ 마침, 아가씨도 예쁜 빨간 구두를 신고 있지 않아요?

리나 요원 : …예?

사토 유미코 : 저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오빠. 아마도… 내 눈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오늘은 볼 수 있을지도 몰라. 붉은 구두가 나에게 왔으니까 행운이 올거야, 틀림 없이.

리나 요원 : 사토 씨? 사토 씨?

(사토 유미코는 허공을 응시했고, 리나 요원의 질문에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인터뷰 종료)

리나 요원과의 인터뷰 종료 2일 이후, 사토 유미코는 지병이 악화되어 병실에서 사망했다. 일가 친척 하나 없이 도쿄로 왔으며 살아간 날 동안 결혼을 하지 않아 후손이 없었던 사토 유미코의 장례는 엔카 관계자들의 손에 의해 치러졌다. 사토 유미코는 '유미자' 라는 한국 이름으로 도쿄 인근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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