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시작>
[카메라가 켜지고, 촬영자는 야간에 야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명은 매우 약하지만, 토플마이어 요원이 SCP-4040 앞 계단에 선 것은 보인다.]
캐럴 요원: (화면 밖에서) 로버트! 로버트, 거기 얼마나 서 있던 거야? 이런 맙소사, 로버트 거기 네 눈앞에 뭐가 보이든 그건 허상이야! 네 친구가 고문당하는 건 진짜가 아니라고!
토플마이어 요원: 이젠 내 친구가 아니라 다른 게 보여.
[거대한 인간형 독립체가 SCP-4040에서 올라온다. 조명이 심히 어두워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는 없다.]
캐럴: 이런 미친!
토플마이어: 너무 늦기 전에 어서 도망쳐 앨리스.
캐럴: 로버트, 달아나란 말야 이 멍청아! (토플마이어 요원은 반응하지 않는다) 로버트!
[독립체가 오른손으로 토플마이어 요원을 움켜쥐고, 왼손을 캐럴 요원을 향해 뻗는다.]
캐럴: 맙소사!
[캐럴 요원이 도망치려 하지만 독립체한테 붙잡힌다. 캐럴 요원과 토플마이어 요원은 SCP-4040 안으로 끌려간다. 카메라 화면에 두 사람이 자유 낙하하는 모습이 보인다. 둘은 떨어지며 수차례 말하려 하지만 돌풍 때문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약 30분간 낙하한 후 그들은 SCP-4040의 바닥으로 보이는 것에 충돌한다.]
캐럴: 으아. 대체 뭐야? 떨어졌는데 안 죽었어? 우리 살았다고? 로버트, 너 괜찮아? 토플마이어, 보고하라!
토플마이어: (웃는다) "30분 동안을 떨어지고만 있었어!"
캐럴: 아오. 멀쩡한가 보네. 미친, 카메라도 여전히 작동하잖아.
[캐럴 요원이 카메라를 자신에게 향하고 헛기침을 한다.]
캐럴: 기동특무부대 시그마-10의 앨리슨 캐럴 요원, 기록 시작한다. SCP-4040 감시 교대를 위해 깨어나자, 토플마이어 요원이 구멍 앞 계단에 서서 무언가에 홀린 듯 안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로버트, 설명해줄래?
토플마이어: 음 그러니까, 네가 자러 가고 나 혼자 남자마자 머릿속에서 온갖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더라. SCP-4040 때문에 생겼는지 이런 이상한 걸 마주한 채 혼자 있으면 원래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저 아래 뭐가 있는지 알아야만 했어.
캐럴: 왜 그게 올라올 때 달아나려 하지 않은 거야?
토플마이어: 왜냐하면… 우리가 SCP-4040에 떨어져야만 이야기가 진행될 테니까.
캐럴: 뭐라고? 어쩌면 옆에서 제정신을 지키도록 지켜봐 줄 사람 없이 구덩이 앞에 혼자 있는 동안 비현실감이 심화한 것 같다. 이 영상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번에 SCP-4040 수색팀을 보낼 땐 4인조를 보내서 두 명씩 교대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권한다.
토플마이어: 앨리스, 이 구덩이를 빠져나간 건 염소인간밖에 없어. 그 영상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캐럴: 그 망할 염소인간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우리도 방법이 있겠지! 일어서라 요원! 주변 환경을 점검해야 해.
토플마이어: 우린 바닥 없는 구덩이의 밑바닥에 있어. 끝. 엔딩 크레딧이나 올려.
캐럴: 카메라 LED에서 조금 나오는 것 빼곤 빛이 없긴 하지만, 우리를 이 안에 던져놓은 그게 뭐든 간에 아무런 흔적도 없어. 바닥은 평범한 흙 같은데, 그럼 우리가 어떻게 아직도 살아숨쉬는지 전혀 모르겠네. 한 30분쯤 실제로 떨어졌으니까, 종단 속도로 떨어졌다고 가정하면 지하 약 100킬로미터 아래쯤에 있겠네.
토플마이어: 그렇다면 염소인간은 시속 2킬로미터로 기어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군. 우리가 그렇게 빨리 올라갈 수 있을 리도 없고, 게다가 염소인간은 먹지도 쉬지도 않아도 되잖아. 우리라면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전에 탈수로 죽을 테고, 그렇게 되기도 전에 힘이 빠져서 추락할 게 뻔해. 우린 여기 갇혔어, 앨리스.
캐럴: 로버트, 이건 그냥 구덩이가 아니야, 이건 변칙존재라고. 우리가 아는 한… 잠깐, 이 소리 들려?
[누군가가 삽으로 땅을 파내는 소리, 숨소리와 힘을 주며 끙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토플마이어: 세상에, 이 아래에 다른 사람이 있잖아! 여보세요!
캐럴: 여보세요!
[캐럴 요원과 토플마이어 요원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이동한다. 약 1분간 이동하자 흙투성이 흰 와이셔츠와 멜빵을 입은 남자가 보인다. 이 독립체는 SCP-4040-01로 지정되었다. 그는 계속 땅을 파는 채 요원들을 올려다본다.]
SCP-4040-01: 좋은 아침.
캐럴: …안녕하세요. 전 앨리스고, 이쪽은 로버트라고 해요. 우리 둘은 S&C 플라스틱스 회사 소속 -
SCP-4040-01: (피식한다) 이보게, 내가 구덩이 밑바닥에 산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지는 않아. S&C 플라스틱스가 뭔진 당연히 알지, 요원 씨.
캐럴: 여기 사람들 대부분이 다 알죠. 당신 머리를 얕보며 거짓부렁이나 늘어놓지는 않을게요. 그쪽이 누구신지, 여기서 뭘 하시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SCP-4040-01: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겠다고? 실망이군.
토플마이어: 누구신지 알겠어요. 금지 안 된 강아지 공원에서 선생님 동상을 본 적이 있어요. 잭슨 슬로스 씨시죠?
SCP-4040-01: 바로 그거야 젊은이. 난 슬로스고, 이건 내 구덩이Pit야.
캐럴: 당신이 그 잭슨 슬로스에요? 슬로스스핏을 세운 그 사람? 이 아래에 130년이나 있었던 거예요?
SCP-4040-01: 오늘이 며칠이지?
토플마이어: 2018년 7월 1일, 캐나다의 날이요.
SCP-4040-01: 그렇다면 틀렸어. 난 여기 127년 6개월하고도 6일 있었지.
캐럴: 내내 땅 파면서요?
SCP-4040-01: (잠시 땅 파기를 멈추고는 위를 바라본다) 비유야 비유 (땅 파기를 재개한다).
캐럴: 어떻게 아직 살아있죠?
SCP-4040-01: 난 상상의 산물이야. 이 구덩이와 이 마을 안 모든 괴물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캐럴: 선생님이 그저 상상이라뇨. 우리 둘 다 선생님이 보이고, 카메라 화면에도 뜨는 걸요.
토플마이어: 선생님, 이 구덩이가 그냥 땅에 난 평범한 구멍이 아니란 건 아시나요? 말도 안 될 정도로 깊고, 아무도 두 번 발견할 수 없고, 사람들의 현실감각을 엉망진창으로 -
SCP-4040-01: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는 아주 정확히 안단다, 젊은이. 너희 둘 다 삽 하나씩 주우면 역사 수업을 좀 해주지.
[캐럴 요원과 토플마이어 요원이 고개를 돌려 구덩이 벽면을 바라보자, 이전에 보이지 않던 삽이 놓였다. 캐럴은 카메라를 땅에 내려놓아 촬영을 이어나가고, 두 요원은 SCP-4040-01을 도와 땅을 판다.]
SCP-4040-01: 나는 꼬마 시절부터, 상상이 진짜라는 직감이 항상 있었어. 우리가 듣고 들려주는 이야기나 우리가 꿈꾸고 두려워하는 만물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우리의 행동도 좌우하지. 현실이 상상에 지배받는 한 상상이 현실이 아니라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야. 이해하겠나?
캐럴: 우리는 그걸 형이초학이라고 불러요.
SCP-4040-01: 뭐, 나는 서사를 제작해 현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각하는 데에 재능이 있었어. 아예 말도 안 되는 거나, 그리 대단한 걸 만들 수는 없었지만, 서사의 씨를 만들어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읽은 사람의 정신에 싹 틔울 수 있었지. 모든 씨가 싹이 돋거나 모든 서사가 내 바람대로 성장하지도 않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씨를 점점 더 잘 싹 틔웠고 서사도 갈수록 영향력이 커졌어. 바로 그 덕에 내가 그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서쪽에서 벌목 마을을 세우려 떠날 수 있었고, 또 오리건이 생각보다 굉장히 멀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냥 위스콘신에 정착하자고 설득할 수 있던 거야.
캐럴: 그냥 선생님이 웅변을 잘했던 건 아닐까요?
SCP-4040-01: 어쩌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1980년 크리스마스 때 달라졌지. 난 내 서재에서 공책에 글을 끼적여대며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보내야 할 캐롤린을 위로할 서사를 창조해내려 했어. 그러다가 난 넘어서는 안 될 어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가 버린 거야. 내 모든 서사의 힘을 합한 게 일종의 임계 질량에 도달했고, 폭삭 무너져 내려버렸어. 내 집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 그 아래 땅 대부분이 상상의 산물이 되었지. 이 실종 사건에서 각종 루머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고, 이 장소는 그 소문을 전부 받아들여 사람들이 말하던 대로 바닥 없는 구덩이가 된 거야.
캐럴: 지금 선생님 집을 집어삼킨 바닥 없는 구덩이가 일종의 형이초학적 특이점이란 말씀이세요? 아 그러니까 특이점이 뭐냐면 -
SCP-4040-01: 내가 최신 과학에 뒤처지진 않았다고, 아가씨, 그리고 특이점이 딱 알맞은 용어라 생각해. 붕괴한 별이 생성하는 중력만으로도 주변 공간을 왜곡할 수 있듯, 이 구덩이가 생성하는 서사력만으로도 슬로스스핏의 현실에 심하게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해. 서사력이 하도 강해서 상상 속 생물 수백을 살아가게 하고 물리법칙을 손쉽게 위반하지.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 여섯 가지를 상상하랬나, 앨리스? 내가 아직 진짜였을 때 서사를 그렇게나 쉽게 만들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토플마이어: 그럼 우릴 여기로 끌고 온 그 괴물은 뭐예요? 대체 뭐 -
[구덩이가 흔들리며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위에서 메아리친다.]
SCP-4040-01: 언급하지 마. 진짜가 아니야, 아직은, 하지만 이야기가 충분히 쌓이면 진짜가 되겠지. 그냥 무시하고 땅이나 계속 파는 게 최선이야. 하지만 이제 자네들이 왔으니, 자네 둘만 괜찮다면 난 잠시 휴식하도록 하지.
[SCP-4040-01이 근처 바위에 걸터앉고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는다.]
캐럴: 선생님, 이 구덩이에서 나갈 방법이 존재할까요? 염소인간이 기어나간 적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곳에서 상상이 현실을 빚어낸다면 -
SCP-4040-01: 그저 상상이 대수가 아니라 이야기가 중요한 거야. 이야기가 현실을 빚어내지. 염소인간이 기어나온 건 그래야 그의 이야기가 더 좋아지기 때문이었어. 염소인간이 얼마나 독한 짐승인지 모두에게 각인시켰지. 하지만 자네들이 여기서 기어나간다면? 대부분 사람은 이야기를 믿기를 다시 그만두고 헛소리라 치부하겠지.
토플마이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SCP-4040-01: 내가 자네들이라면 계속 땅을 팔 거야. 왜 그런 말도 있잖나. 땅을 계속 계속 파다 보면…
[캐럴 요원과 토플마이어 요원 밑 땅에 금이 간다. 땅에서 구멍이 벌어져 두 요원과 카메라가 그대로 추락한다.]
SCP-4040-01: (위쪽에서 소리친다) …지구 건너편 중국까지도 간다고!
<기록 종료>
앨리슨 캐럴 요원과 로버트 토플마이어 요원은 이후 중국의 슈난 대나무 숲에서 새로 생겨난 싱크홀에서 뱉어져 나온 후 발견되었다. 이 싱크홀을 이후에 발견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캐럴 요원과 토플마이어 요원이 SCP-4040 주위에 설치한 울타리는 이후 조우했을 때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토플마이어 요원이 설치한 팻말은 여전히 정면 계단 옆에 있다.
이후 탐사에서 버크민스터 섬유와 전동 윈치를 이용해 제어된 강하를 두 번 시도했으나 캐럴과 토플마이어가 도착했어야 할 터인 100km 지점을 지나서도 바닥을 찾지 못했다. 또한, 이후 SCP-4040을 탐사하며 SCP-4040-01이나 캐럴 요원과 토플마이어 요원을 구덩이로 끌어당긴 독립체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현장 인원은 SCP-4040에서 흘러나오던 희미한 속삭이는 소리가 이제 알아들을 수 있게 변했다고 보고했다. 보고에 따르면 목소리는 다음 구절을 끝없이 반복해서 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