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4009

이틀이나 됐다.

당신은 이 빌딩을 몇 층째인지도 까먹은 채로 오르고, 삐삐거리는 출입문과 레이저빔 들을 몇 개째인지도 까먹은 채로 무사통과하고, 경비원들을 몇 명째인지도 모르는 채로 몰래 지나왔다. 비발디의 《사계》와 맞서고,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포화 속에서 빠져나오고,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건너왔다. 그리그의 《산왕의 궁전》을 횡단하고, 쇼팽의 《빗방울》을 가볍게 털어내 바그너의 불의 《반지》 안쪽으로 통과시켰다. 베토벤의 폭풍과 맞서고 바흐의 화음 속을 누비며 전진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도착했다. 음악부Ministry of Music 꼭대기층까지. 왠지 몰라도 산 채로. 땀에 흠뻑 절어서.

당신은 주위를 살핀다. 앞에 놓인 길쭉한 복도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나 있다. 저 문이겠지. 숱한 보안장치들과 위험천만한 음악 장벽 너머로 숨겨두던 게 바로 저 문일 테지. 설마 별것도 아닌 게 저 문 뒤에 있지는 않겠지. 일급 극비 문서. 당신의 모든 질문을 풀어줄 해답. 그걸 찾아서 당신은 여기까지 느릿느릿 전진해 왔다.

해답이라, 젠장. 난 그냥 어쩌다 이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궁금했을 뿐이라고.

당신은 스웨터에서 바닷물과 빗물을 짜내 화분에다 주고 나서 문으로 다가선다.

지문 센서 손잡이를 슬쩍 비틀어 본다. 안 잠겨 있다. 직전에 지나간 사람이 깜빡하고 안 잠가서 그런지도 모른다. 앞서 지나왔던 보안조치 때문에 잠글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당신이 너무 하찮아서 어떤 종류의 확인도 굳이 받을 것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문을 열자 작은 방이, 모차르트로 쓸데없이 꽉 차 있다. 모차르트쿠겔른 초콜릿 상자, 모차르트 악보집, 모차르트 피규어, 모차르트 포스터, 모차르트 기념품, 모차르트 전기, 모차르트 봉제인형, 모차르트 성인용품(??), 모차르트 공기인형(????), 그냥 만물이 다 모차르트다. 무슨 광신도가 만든 지하감옥 같기도 하다. 억압적인 정도를 넘어서 황당하기까지 한 모차르트 생각이 이곳에 농축되었달까.

하지만 압권은, 저쪽 벽에 붙은 거대한 모차르트 포스터였다.

brozart.jpg

풋. "빅 브로차르트가 당신을 지켜본다Big Brozart is Watching You". 아니 이 자식은 얼마나 신경과민인 걸까? 살면서 당신은 이렇게 멍청하고 오글거리는 물건은 처음 본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갖다놨을까? 너무 유치한 슬로건이라 아무 위협도 안 느껴졌다. 모차르트는 매일 아침 모차르트로서 깨어나면서 자기가 모차르트한테 관찰받는다는 상상을 할까?

그래, 저딴 건 신경쓰지 말고…

불현듯 당신은 모차르트 용품 더미 사이에서 빼꼼 불거져 나온 직사각형 하나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책상에 작은 노트북 컴퓨터가 하나 있다. 노트북은 열려 있다. 화면에 쌓인 먼지 두께를 보니 마지막으로 쓴 사람이 오래 전에 다 쓰고 안 껐나 보다.

당신은 모차트르쿠겔 박스에 걸터앉아 노트북을 살핀다. 인터넷 브라우저에 열다섯 개 탭이 열렸는데, 싹 다 모차르트 이야기다. 놀랍지는 않다. 이 자식 정말 문제가 있나 보다. 정신과를 소개해 주고 싶어진다. 그래봤자 소용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주 다른 딱 한 탭이, 눈길을 잡아끈다. 모차르트 이야기가 아니라 "SCP"라는 약어가 뜬 탭이다.

당신은 그라모폰에서 SCP 재단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최근에 SCP 재단인가 하는 곳하고 제휴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으로 방송이 한 번 나왔다. 이 SCP 재단이란 곳은 무슨 강력한 바깥세상 조직인데 인간과 초자연세계의 관계를 관리하고 비정상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라고 했나 그렇다. 방송에서는 이 조직하고 제휴했다는 사실이 별로 걱정할 만한 거리는 아니라는 말 빼고 그 밖에 별 말은 없었다.

당신은 이 둘이 어떤 제휴를 맺었는지, SCP 재단이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모차르트 때문에 억압받는 모두를 도울 수 있을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작곡가와 음악가를 도울 수 있을지.




.

.

.

.

.

.

.

.

.

.

.

.

.

.

.

.



SCP-4009

mozartstreet.jpg

SCP-4009 내 거리 사진

일련번호: SCP-4009

등급: 안전

특수 격리 절차: 주민들인 SCP-4009-A들의 계급 제도는 영구히 존치한다. 재단-모차르트 제휴 프로토콜을 항상 유지하여 SCP-4009 내 사회 질서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한다. 재단-모차르트 제휴 프로토콜의 상세 내용은 3/4009 등급 이상 인가를 취득한 인원이라면 접근 가능하다. 그 밖의 사항에서 SCP-4009는 자기격리 상태이므로 격리 절차는 딱히 필요치 않다.

설명: SCP-4009는 독일-오스트리아 지역의 약 900km2 면적에 위치한 여분차원 전체주의 도시국가이다. SCP-4009는 건축 양상의 측면에서 프라하와 비슷하며, 건물들의 양식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빅토리아 시대까지 다양하다. SCP-4009는 차원간 통로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다른 인간이 진입하지 못한다.

SCP-4009-A는 SCP-4009 내에 거주하는 인간형 개체들을 통칭한다. SCP-4009-A 개체의 신체는 Homo sapiens와 유사하지만, 신체의 60%는 변칙적 종파(縱波)로 이루어졌으며 영양을 필요로 하지도 나이를 먹지도 않는다. SCP-4009-A의 특징은 각 개체가 현재 사망한 유명 클래식 작곡가 또는 음악가 (ex: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프란츠 슈베르트, 리하르트 바그너 등) 에 대응한다는 점이다. SCP-4009-A 개체가 발생하는 방법은 본 글을 작성하는 현재 밝혀진 사항이 거의 없으나, 해당 인간이 사망할 때 자연히 이에 대응하는 개체가 생겨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신은 이곳에 갑자기 짠 나타난 유명한 작곡가들을 떠올려본다. 바흐, 하이든, 리스트, 그런 이들. 그렇게 나타난 이들이 음악이 태어난 이 축복받은 땅에 오다니 고향에 돌아온 것 같고, 그런 비슷한 이야기들을 꺼낸 것을 기억해본다. 그리고 음악가의 천국으로 온 이들을 환영하던 당신을 기억한다. 갑자기 당신은 자신이 몇 살인지 깨닫는다.

당신은 읽기를 멈춘다. 방금 자각한 사실을 잠깐 곱씹는다.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다시 흘러들어온다.

더 행복한 시절의 기억들. 천국을 모차르트가 집어삼키지 않았던 시절. 이 천국이 훨씬 좋은 곳이었던 시절.

시간이 흐르며 과거의 기억들은 흐릿해지고, 또 몇십 년 동안 저 모든 선전들이 귓속에 때려박혔는데도,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당신은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려본다.

잠깐 마음이 평안해진다. 이 땅은 자유롭고 민주적이었다. 작곡가도 음악가도 모두 권리도 평등하고, 발언권도 평등하고, 음악의 주류 이상[理想]에 오른 (즉 이곳을 다스리는) 자라도 현재의 예술 기류에 알맞도록 스타일과 야망을 항상 갱신했다. 음악 스타일끼리 격론을 벌일 때도 있었지만, 서로 추구하는 음악의 이상을 해칠 만큼 뜨거워진 적은 없었다. 하루하루 공정하고 즐거운 삶이었고, 하루가 끝날 때면 모두들 클래식 음악가로서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저마다의 열정으로 서로의 유대감이 더 공고해졌다.

이제는 다 달라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되니, 당신은 어리둥절해진다. 이제 온 천지가 모차르트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세계대전 직후라고 추측은 해 보지만, 어쩌면 그 2년 전, 아니 5년, 10년, 20년, 50년 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모차르트"라는 이름이 들린다. 얼마나 영재였는지 하는 이야기. 그는 4살 때 처음으로 협주곡을 작곡했습니다. 첫 교향곡은 7살 때, 첫 대규모 오페라는 12살이었죠. 얼마나 다작을 잘 했다는 이야기. 35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면서도 모차르트는 626가지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하나같이 걸작이 아닌 작품이 없죠. 그 음악들을 들으면 사람들이 더 똑똑해지고 그렇다는 이야기. 신이 주신 그 천재성은 다른 어떤 작곡가하고도 비교를 불허한다는 이야기. 클래식 음악사를 통틀어 최고의 작곡가라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몇 번씩을 되풀이하면서 끝도 없이 들린다. 어떤 연주회를 가도 모차르트 음악이다. 라디오에서도 스피커에서도 모차르트 음악이다. 영화, 연극, 어떤 예술, 어떤 문학이든 모차르트다. 모차르트, 모차르트, 또 모차르트. 모차르트한테서 숨을 곳이 없다.

빅 브로차르트가 당신을 지켜본다.

맞는 말 하는 슬로건이었다.

더 많은 정보가 있을까, 당신은 문서를 계속 읽는다.

SCP-4009-A 개체 대개는 현실조정 능력이 있는 종파를 의지에 따라 방출할 수 있는데, 이 종파의 강도는 해당 작곡가/음악가의 대중 인지도에 정비례한다. 현실조정 효과는 각 인물의 개인 선호나 창작의 열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SCP-4009-A 주민들은 일종의 계급 제도를 이루는데, 각 인물의 사회 내 위치는 현실 세계에서 작곡가/음악가로서 상대적으로 유명한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SCP-4009-A의 최고위 인물은 가장 유명한 작곡가에 해당하며, 각 인물의 지위는 2년마다 다시 바뀐다. 각 인물들은 지위에 따라 생활양식이 바뀐다. 고위급 인물은 고급 음식 및 술을 자유로이 즐기고 SCP-4009의 인프라, 통치, 예술 등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며, 낮은 지위의 인물은 평범한 자원만 이용할 수 있고 또한 문지기 등 천대시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옛날에 자신이 고평가받는 작곡가였던 시절을 기억한다. 심지어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당신의 이름은 요한 파헬벨, 과감한 오르가니스트이자 탁월한 작곡가, 다재다능한 모범 인물이었다. 그 위대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당신의 작품을 미처 모르고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으리라고 말한 적 있었다. 당신은 스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인정받고 또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인간의 기본 품위를 갖춘 사람이었다. 다른 예술가들이 마찬가지로 받아 마땅한 만큼을.

이제 당신은 요한 파헬벨, 눈부신 수재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그런 음악가도 있었지 하면서 기억되는 별것 아닌 놈이다. 기억도 못 받는 평범한 삼류, 서양 음악사를 통틀어 남긴 족적이라고는 과대평가된 졸작 《카논 D장조》뿐이다. 지금 "D장조 카논맨"을 빼고 당신의 특징이라고는 문지기인 것, 그리고 가끔 투명인간 취급받는 것뿐이다. 사회적 위치 재배치 시기에도 당신의 위치는 바뀐 적 없다. 항상 계급 맨 아래에 처박혀 있었을 뿐이다. 지금보다 더 떨어질 곳이 없다는 사실만이 그나마 서글픈 위안이 되어줬다.

당신과 주변 이들을 휘어대는 이 계급제도가 어땠는지 당신은 다시 생각해 본다. 오래전부터 이 계급들은 음악의 이상이 바뀔 때마다 이에 맞춰서 달라져 왔다. 유동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었던 이 이상이 언젠가 변질되어서 딱 하나가 됐고, 그 꼭대기를 한결같이 차지하는 셋이 생겨났다. 베토벤, 바흐, 그리고 모차르트 그 사람. 베토벤과 바흐는 클래식 음악 세계를 어떻게 갈고닦았는지 알면 이유가 훤히 보인다. 새롭고도 색다른 베토벤의 작곡관은 클래식 음악에 대변혁을 일으켰으며 또한 클래식을 기술을 넘어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바흐는 조율법과 건반 기교와 능란한 기술적 구성으로 존경을 살 만하고, 특히 멘델스존이라는 작곡가가 그 작품들을 세상에 알린 덕에 더 널리 숭상을 받는다.

하지만 모차르트? 저렇게 높은 데 있을 만큼 중요한 일 했던 게 뭐가 있지? 아니 애초에 왜 저렇게 높은 데 있지?

당신은 맨 먼저 멘델스존을 의심해본다. 몇 가지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들은 말로는 멘델스존은 음악사를 연구하고 보존해야 할 중요성을 확립하는 데 노력했고, 또 음악적 이상이란 무엇인지 초석을 깔아줬다고 그랬다. 모차르트도 그 점을 들면서 누누이 멘델스존을 칭찬했다. 심지어 우리는 모두 멘델스존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당신은 멘델스존을 본 적도 없고, 방송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아니 여기 실존하는지조차 모른다. 모차르트가 선전공작 때문에 날조한 가공의 작곡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정황이 그렇다. 방송에서 소개하는 멘델스존은 이런 식이었다. 모차르트만큼이나 일찍부터 싹튼 전설의 영재. 10대 때부터 명작을 작곡하고 모차르트처럼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인물. 19세기의 모차르트. 누가 봐도 모차르트 자캐라는 생각은 당연히 안 들겠지?

모차르트의 선전공작이 참 웃긴 짓이라고 당신은 생각해본다. 공교롭게도 문서의 다음 문단은 이 도시의 작곡가들에게 선전공작을 퍼뜨릴 때 모차르트가 사용하는 기술 이야기다. 당신은 계속 읽는다.

고위 계급을 차지하는 SCP-4009-A는 모종의 변칙기술들을 고안해 냈으며, 이들은 SCP-4009 안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보인다. SCP-4009-A가 개발한 해당 기술의 예시로는, 주위 환경 흄 안정장치, 기억영역 도서관, 동전 크기 판으로 접어서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 등이 있다. SCP-4009 내 널리 퍼진 변칙기술 중에서, 라디오 비슷한 기능을 하면서 내이(內耳)에 삽입할 수 있는 '그라모폰gramophone'이라는 이식형 장치가 있다. 이 장치는 변칙적 종파 방송을 수신하고, 또한 한 인물의 생각을 같은 장치를 이식한 다른 수많은 인물들에게 텔레파시로 전달할 수 있다. 해당 장치는 대개 클래식 음악이나 뉴스를 방송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 방송은 뇌음 수용장치Cerebral Sound Receptor Device(CSRD)에 연결된 개체 하나가 자신의 생각을 대규모 송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SCP-4009의 변칙기술을 재단의 기술 및 격리도구 개발에 이용하는 연구가 현재 승인되어 진행 중이다.

그라모폰. 어떻게 생겼는지도 언제 처음 귓속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아주 잘 감을 잡고 있다. 그라모폰이 클래식 음악과 뉴스를 틀어준다는 점에서는 이 문서는 정확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또한 그라모폰은 틀어준다. 그 부분이 최악이었다. 작곡가들이 받는 피드백은 대개 긍정적인 내용이지만, 당신 같은 경우는 웬만하면 인신공격 아니만 마음에도 없는 칭찬이었다. 무가치해. 첼로 혐오자. 원히트 원더. 이런 언사들을 당신은 기억 속으로 언제라도 주루룩 펼칠 수 있을 만큼 자주 들었다. 요즘은 그렇게 욕설을 들어도 기분은 무덤덤하지만, 가끔 심장이 조금이나마 저릿해져 오는 느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볼륨을 줄였을 때는.

방송에서는 보통 슈베르트라는 작곡가의 목소리가 뭉툭한 테너 소리로 들려왔다. 슈베르트는 동그란 안경 쓴 친절하게 생긴 작곡가였는데, 모차르트를 숭배하고 모차르트를 아주 노래했다. 당신이 느끼기에 슈베르트는, 마찬가지로 좀 많이 나간 자였다. 하는 말은 아주 쾌활하고 애교를 떨었지만, 말하는 방식이 뭔가 가장된, 로봇 같은 데가 있었다. 하는 말이 대본을 읽는다는 느낌도 있었다.

당신은 슈베르트를 조금 더 생각해본다. 컴퓨터 같은 자였다. 아무 자율성 없이 자동기계처럼 하루 24시간씩, 일주일에 7일씩 휴식시간도 없이 말만 하면서 기분 나쁘다는 기색도 하나 없었다. 슈베르트가 말을 더듬은 적도 지친 적도 기분 나빠한 적도 없었음을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그리고 당신이 들었던 말들, 슈베르트가 생각하는 소리 아니었나? 생각이 왜 그렇게 뻣뻣하고 생기 없었을까? 그 머릿속으로 정보가 바깥에서 얼마나 밀려들어가는 걸까? 스스로 생각은 하고나 있는 걸까?

"슈베르트는 신경계를 실험실 배양 트레포네마 매독균으로 보강함으로써 1만 가지에 이르는 생각들을 한 번에 처리하고 전송할 수 있답니다! 슈베르트는 가장 믿음직한 뉴스 진행자, 피드백 알리미, DJ로서 항상 최신을 유지합니다! 지금 당장 그라모폰을 슈베르트와 연결하세요!"

슈베르트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사전 녹음되어 나오는 슈베르트의 대사들 중 하나가 그라모폰에서 마침 흘러나왔다. 당신은 우연이겠거니 생각하지만, 그래도 오싹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차라리 그건 아니었잖아, 당신은 생각한다. "5분간 불협화음Five Minute Cacophony"만큼 불안한 일은 적어도 아니었다. 5분간 불협화음 시간은 생각만 해도 당신이 몸을 움찔하는,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모두가 강제로 최대 볼륨으로 들어야만 하는 방송이었다. 이 방송은 5분 동안 "이단자"를 엄중하게 경고하고, 과거에 심각한 무례를 저질러서 모차르트를 상처 입한 사람들 이야기를 틀었다. 이 무례함은 대개 질투와 혐오 때문에 기획된 방해공작 모습이었고, 증거는 보통 모차르트 비평이나 행정 집행의 형태였다. 범인들은 항상 조리돌림당하면서 신랄한 독설을 받았고, 듣는 자들은 프렌치혼처럼 몸속 모든 곳이 곤두섰다. 불협화음 시간에 당신 이름이 등장한 적은 없었지만, 한 번이라도 나온다면 공포와 수치가 마음속에서 온통 불어날 건 뻔했다.

불협화음 시간에 가장 많이 조리돌림당한 범죄자는 살리에리라는 작곡가였다. 살리에리는 질투에 눈이 멀어 모차르트의 발목을 잡으려던 음모를 꾸민 숱한 자들 중에서도 최초이자 제일 악랄한 자라고들 했다. 살리에리는 잔혹하고 영악하고 냉랭하고 심지어 자기도취 끼도 있는, 음악에 진정한 열정 따윈 없고 오직 관심만 끌기 좋아한 남자라고들 했다. 살리에리가 붙잡혀 감옥에 처박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신은 기뻐했다. 그렇게 고약한 인물인데 어딜 가더라도 그딴 자하고는 꿈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당신은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당신의 마음 한구석, 5분간 불협화음 시간에 나온 말을 믿지 못하는 곳이 있다. 옛날에 살리에리를 만났던 기억이 당신은 어렴풋이 떠오른다. 기억나는 안에서 살리에리는 점잖은 사람이었으며 의심쩍은 일을 할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라지만, 당신은 살리에리가 선전공작 때문에 부당하게 악마 취급을 받는다고, 지금 같이 대역죄인 대접을 받을 짓은 한 적 없다고 느낀다. 생각해 보니 당신은 살리에리가 이 문제를 가지고 죄를 고백하거나 어떤 식이든 언급했다는 말을 들은 적 없다. 방송을 탄 내용은 그저 살리에리를 가지고 당국이 말했던 내용일 뿐. 살리에리가 무고를 당했을 가능성을 당신은 내심 기대한다. 또는 이용당했을 공산을.

당신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사회가 바뀌면서 주민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생각하는 데까지 이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든 작곡가가 살리에리가 되든가, 아니면 자율을 빼앗겨 조종당하면서 떡고물을 누리는 저 슈베르트처럼 되든가였다. 이들 모두 각자 색다른 재능을 지닌 독립되고 독특한 존재였는데, 이제 모두 한 사람의 변덕에 맞춰 고분고분 굴복하고 영합했다. 모두들 담대하고 자신감에 넘쳤는데, 이제 한 사람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처신했다. 당신은 몸을 움찔한다. 이건 말도 안 돼. 잘못됐어. 하지만 이에 맞서 뭔가 해본 자는 없었다.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져 살라고 강요당했기 때문이겠지, 당신은 확신한다. 모차르트가 너무 강력하고 너무 착하게 굴어서 아무도 털끝 하나 까딱 못할 뿐이라고 당신은 느낀다. 끓어오르는 피를 느낀다.

침착하자, 요한. 지금 화냈다간 안될 말을 하고 안될 짓을 하겠지. 실수했다가는 나도 끝장이야. 감정을 숨겨놓고 있어야 해.

당신은 심호흡으로 분노를 가라앉힌다. 마지막으로 읽은 문단 아래로 공백이 길게 있다. 잠시 동안 당신은 화면을 스크롤해 내려본다.



.

.

.

.

.

.

.

.

.

.

.

.

.



알림: 본 파일은 일반 배포 목적으로 공식 SCP-4009 파일을 요약한 자료입니다. 전체 문서 접속은 재단-모차르트 제휴 프로토콜에 따라 3/4009등급 이상의 인원에게 제한됩니다. SCP-4009에 관련된 추가 문의는 프로젝트 택임자 프랜시스 슈어드Frances Seward 박사에게 이메일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끝이야? 이게 이 파일 끝이라고? 나중에 언젠가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전체 파일의 그냥 요약본이라고? 당신은 사기 당한 기분이다. 불공평해. 하지만 곧바로, 그 가발쟁이 높으신 분들이 애초에 당신을 공평하게 대접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먼지 한 톨 취급받는 신세였으니. 당신은 웹페이지를 샅샅이 뒤져본다. 프랜시스 슈어드, 아무래도 어느 정도 책임을 맡았을 그 재단 인사의 메일 주소가 페이지 맨 밑에 조그맣게 쓰여 있다. 여기로 연락해야 해. 당신은 이 미친 전체주의를 멈추고 모두를 구출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하고 합의를 맺은 모차르트가 사실 잔악한 독재자라는 걸 알려야 해. 모차르트가 시민들을 끔찍한 생활조건으로 내몬다는 걸 알려야 해. 모차르트가 우리 머릿속에 절망을 불어넣어서 우리가 절대-

"오늘도 좋은 하루입니다, 여러분! 하늘은 창창하고 시스템은 원활하고, 주위에는 온통 아름다운 음악까지? 오늘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기분이 조금 안 좋은 날이라도 괜찮아요, 좀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더 행복해질 테니까요!"

꼬리에 꼬리를 물던 당신의 생각이, 평소의 그 생글생글한 목소리 때문에 마침맞게도 끊긴다. 오늘 똑같은 소리를 적어도 다섯 번은 들었다. 저 자식은 언제쯤 닥칠까? 그 입에 지퍼라도 채웠으면 생각하고 있는 누구 방해하진 않을 텐데.

당신은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해 본다. 머리 산만해졌다가 한 번이라도 발목 잡히면 바로 그 자리에 거꾸러지고 말 테니까.

"아, 잠시 옆길로 샜네요. 다음으로 틀어드릴 곡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서곡입니다. 이 곡은 작곡가가 초연 전날 밤에 몰아서 작곡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그런데도 이 곡은 세기를 넘어서는 걸작이고, 또 과제를 벼락치기로 하더라도 열심히만 하고 타고난 재능만 잘 활용할 줄 알면 충분히 걸출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어라라, 이런… 지금은 틀어드릴 수가 없겠네요. 제 신호가 방해받고 있어요! 어어… 그러니까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어디가 문제인 걸까… 아하! 여덟 음표로 된 패턴이 저한테 들려오네요! 그것도 D장조로요. 으흠, 아무래도 파헬벨의 카논인 걸까요? 아, 아니네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인간 무선국에서 엉뚱한 음파를 제가 잡았나 봐요! 죄송합니다 여러분. 저 슈베르트는 다음부터 이런 실수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뒤 한 30분쯤 있다가 여러분은 슈베르트의 방송을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안녕!"

당신의 몸이 굳어진다. 뭔가 잘못됐어. 그리고 그 뭔가가 당신을 엄습한다.

그가 찾아냈어.

도망쳐.

도망치려 했지만, 방 바깥에서 부츠 소리가 쿵쿵 들려오자 당신은 발을 떼지 못한다.

함정 속에 빠져버렸다. 도망칠 곳이 없다. 이제 곧 잡힌다.

문이 데꺽 열린다. 예복 차림에 망토를 드리운, 포스터 속 그림을 빼닮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들어온다. 누군가 곧장이라도 베어버릴 듯이 칼 하나를 빼들었다. 그리고 당신을 쳐다본다. 당신의 눈을 똑바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무릎 꿇고 구차하게 사느니 쓰러져 죽는 게 나을지도.

모차르트가 바닥에다 칼을 떨구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런 이런, 믿을 수가 없군요! 제가 판 함정 속으로 걸어들어오시다니! 표정이 아주 볼 만했습니다. 세상에, 정말 놀라웠어요… 그런데 모차르트 성인용품 때문에 왜 약이 오르셨는지는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제 친구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감사하셔도 좋습니다. 그 친구 아이디어였어요. 리하르트 이 영악한 천재 같으니… 오호라! 이 포스터까지 만들어 줬군! 이 멋진 곳을 리하르트가 다 설계해 줬으니, 나중에 고맙다고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아시겠죠?"

그러고는 다시 웃는다. 불안만 더해진다.

"세상에… 이런 똥간까지 행차하게 해 드려서 정말정말 유감이군요. 오늘 방송에 아주 멋진 게스트로 특별출연해 주셨는데. 단연 최고였어요. 진심으로! 아주 배꼽 빠지는 줄…"

"거기 리하르트? 한 가지만 더 해주겠나? 너무 웃어서 똥구멍 하나 못 움직이겠네."

리하르트? 바그너도 저쪽 편이었다고?

아무 생각이라도 해보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모든 악기를 단번에 연주하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

.

.

.

.

.

.

.

.

.


이틀, 사흘, 나흘쯤 됐을까?

당신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아파트로 돌아왔다는 사실 빼고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모두가 불쾌한 꿈 같다. 휘익 끼익거리는 종소리와 울림소리가 귓속에서 불협화음을 이룬다. 벽에 난 균열들이 일그러져 춤을 춘다. 당신은 손으로 주변을 더듬어보지만, 아래에선 바닥만이 겨우 느껴지려 한다. 몸이 여기 있지 않는, 동시에 모든 곳에 있는 느낌이다. 피곤하고 아리송하고 완전히 혼란스럽다.

어떻게 소파까지 몸을 끌고 올라왔는지 당신은 생각나지 않는다. 누워 잠을 청해보려 하지만, 따끔거리는 고통이 척추를 주욱 타고 오른다. 지지대 삼아 소파를 잡아보려 하지만, 팔 근육까지 그 고통이 찔러댄다. 손목이 아프다. 손가락 관절도 아프다. 귀도 아프다. 머리다. 안 아픈 곳이 없다. 신이여, 제발 멈춰주소서.

고통이 조금씩 가신다. 등뼈는 아직도 불타는 듯하고 눈과 귀는 딱풀을 처바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당신은 한결 편안해진다.

모차르트가 무사히 자신의 집과 직장을 보존해 주다니, 당신은 운이 좋았다. 다른 적대자들은 감옥에 끌려가 그곳에 영원히 처박히고, 이리저리 불려가 두들겨 맞는 생활을 영원히 이어간다. 어쨌거나 그럴 만했잖아? 모차르트를 시샘하고 질투해서 흠집 내려고 그런 모략을 꾸몄는데. 더욱 발전하고 변화하기를 거부하던 놈들인데. 적어도 자기가 한 짓을 반성할 줄 안다는 품위를 지키고 있는 점에서 당신은 자신이 그런 놈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고장난 감각이 돌아오고 몸이 아프기가 가시면 당신은 바로 나가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됐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렇게 진심으로 맹세한다.

희미한 기억 속에 살리에리가 언뜻 눈앞에 비쳐오려 한다. 바로 쓸어버린다. 감성팔이 하나는 끝내주는 놈 같으니라고. 모차르트의 능력을 질투나 할 줄 알고, 더 노력해서 수작을 내놓는 고생은 하기 싫으니까 동정이나 사 보고 싶었겠지. 살리에리가 결백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니 당신은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진다.

기억이 머릿속에 천천히 조금씩, 다시 뿌려진다. 나 참, 나도 참 바보야. 행정부를 의심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모차르트를 의심하다니 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 모든 것에 의심을 품었다니 또 어떻게 그럴 수가.

당연히 모차르트의 적대자들은 몰아내야 한다. 인생을 살아오며 모차르트는 너무 많은 고생과 고통을 감내했고, 어릴 때 음악가가 되면서부터 그 모두를 견뎌야 했다. 험난한 인생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사랑만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재능이 탁월하니, 이제는 찬사만 받아야 했다. 그 모든 업적을 성취하느라 모차르트는 정말 노력했다. 당연히 그렇게 높이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이였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아무도 탄압한 적이 없고, 누구보다 많은 공적을 이룩한 만큼, 모차르트는 어느 누구보다 더 높은 영예를 받아 마땅하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