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 일자: 25XX/10/31
면담자: 나람 연구원
피면담자: 뇌수종 교수
나람 연구원: 신기하네요. 영상 기기에도 문제없이 기록되는 환영이라니. 이런 건 듣도보도 못했어요.
뇌수종 교수: 신통력이 그만큼 강한 거죠. 원래 주인이 그정도까지 강한 걸 수도 있고요. 비록 수명이 다해가기는 하지만, 만물은 본래 흐드러지기 전에 만개하는 법이니까요. 자신의 마지막을 알리기 위한 위대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나람 연구원: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대책 없는 감정선은 여전하시네요. 그래서 이야기는 처음 대구로로 갔을 때 시작한다고요?
뇌수종 교수: 네, 그 때 대구로 발령났거든요. 당시 대구라는 지역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간 거죠. 하지만 제가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람 연구원: 갔는데 대구 군민 전체가 홀려있었다 그런 일이라도 있었나요?
뇌수종 교수: 꽤 비슷하게 맞췄습니다. 저도 피해자에 속한다는 점이 다르지만요.
환영 속에서 뇌수종 교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관청의 건물에서 나타난다.
뇌수종 교수: 제가 이미 발령왔었던 겁니다.
나람 연구원: 여우. 보통 요호는 둔갑술을 쓴다고 알려져 있죠.
뇌수종 교수: 그 때는 여우인 줄 몰랐어요. 대소동이야 일어났지만요. (환영 속 관청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린다.) 그런데 거기 모인 아랫사람 중 한 명이 재밌는 걸 제안하더라고요? 원래 우리 사람들은 진짜 관리가 누구인지 보다는 어떤 관리가 일을 더 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둘 중 더 유능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려보자고 했습니다. 상사 정하기 경연… 이름 지어본다면 이렇게 지을 수 있겠네요.
나람 연구원: 풋.
뇌수종 교수: 네, 웃긴 건 알아요. 그래도 이상하게 그 논리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어요. 실제로 제가 진짜로 판명났는데 고을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가짜 저를 그리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승낙했죠. 내일, 둘 중 누가 더 뛰어난 관리인지 가려보자구요.
환영의 배경이 밤으로 변한다.
뇌수종 교수: 그렇게 밤이 되고.
나람 연구원: 뭔가 집중하게 되네요.
뇌수종 교수: 쫓겨간 별관에서의 잠 못이루는 밤이었어요. 내일 있을 경연을 생각하면 일찍 자는 게 나았지만 눈이 떠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척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죠. 그 가짜가 저를 찾아온 기척 말입니다.
나람 연구원: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는 거, 그런 류려나요?
뇌수종 교수: 아뇨, 제가 깨있다는 걸 이미 알았던 거 같더라고요. 오히려 할 얘기가 있다면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자기가 가짜인 것은 자기도 잘 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나람 연구원: 이건 새롭네요.
뇌수종 교수: 그리고 저의 안전과 여생은 보장해드릴테니, 자리를 자기에게 양보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만이 이 고을을 안전하게 통치할 수 있다면서요.
나람 연구원: '안전하게'라? '잘' 이라거나 '평화롭게'라는 표현도 가능할텐데, '안전하게'는 통치를 수식하는 말이라기엔 조금 어색하네요.
뇌수종 교수: 거기서 그 녀석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환영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나는 천 년을 넘게 산 여우요, 이 고을의 대부분은 이 근처에 사람을 해하던 요괴들을 홀려 데려온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들을 제어할 수 있기에 나는 여기의 수장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전임자들도 모두 나에게 정무를 맡겼으니, 너도 그러하는 게 어떻겠는가?
환영 속 관청의 별관으로부터 여러 동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 보인다. 9개가 넘어보이는 꼬리의 그림자가 그 그림자들을 감싼다.
뇌수종 교수: 이렇게 말하고, 요괴들의 허상을 보여줘서 저를 겁줬던 거죠. 하지만 저는 거기서 도망차지 않았습니다. 그보단 정체가 요괴이니 만큼 반드시 그대를 이겨서 인간을 위한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우는 아무 말 없이 두고보겠다며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박수)
환영이 밝아진다. 관청에 사람이 모여든 것이 보인다. 가장 높은 자리에는 두 형체가 의자에 앉아있다.
뇌수종 교수: 대결 자체는 별 거 없었습니다. 그냥 그 시대에 관직에 오를 사대부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겨루었죠. 시조 같은 글짓기라던가, 정신 뿐 아니라 몸을 열심히 가꿨는지를 알기 위한 활쏘기라던가, 정의로운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모의 재판이라던가, 그런 거죠 뭐.
뇌수종 교수가 말하는 동안 환영 속 사람들이 움직인다. 뇌수종 교수의 말에 따라, 높은 위치의 두 형체가 자리에 앉아 글을 쓰거나, 관청 마당에 설치된 과녁을 향해 활을 쏘거나, 마당에 읍소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판결을 내리고 있다.
뇌수종 교수: 그리고 그 결과는 싱겁게 끝이 났어요. 그 여우가 저를 일부러 봐주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거든요. 이 가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불복할까봐 걱정해야할 판이었습니다. 문제는 경연이 모두 끝났을 때 일어났죠.
가짜 뇌수종으로 보이는 형체가 관청의 마당으로 끌어내려진다. 관청에 모인 무리가 그를 향해 발길질하거나 창으로 찌르는 등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뇌수종 교수: 미처 말릴 세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없는 며칠 간은 자신들을 다스린 사람인데, 쓸모가 없어졌다고 이런 유혈사태까지 일으키다니 (침묵) 만약에 제가 졌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떠올리며 소름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사지가 창에 꿰뚫린 그 요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나람 연구원: 일부러 져줬다는 건, 이런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엇던 거겠죠. 그렇다면…
뇌수종 교수: 네, 웃고 있었습니다. 미소짓는 그 얼굴 아래로 꼬리가 9개 넘게 달린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꿈에 빠져나오듯이, 아니면 다시 홀리는듯이 몽롱해지는 정신에 고개를 뒤흔들고 다시 봤을 때는 사라져있었지만요. 그리고 사람들 아래에 꼬리 그림자보다 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더 최악인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환영으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 자, 다들 보셨소? 관직이라는 그 허망한 것이 이런 것이오. 그저 저 위에 앉아있는 놈을 이겨먹어서 모가지까지 뺏어내면 되는 것이란 말이요. 어제까지는 그게 두 놈이라서 어려워보였는데, 둘이서 알아서 싸워준 덕에 일이 줄었소. 자아, 이제 한 명 남았으니, 우리도 감투 한 번 써봅시다!
환영 속 군중들이 환영 속의 뇌수종을 향해 달려든다. 처음엔 인간의 형태였으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갈수록 몸의 외형의 동물과 유사하게 변형된다. 고을 곳곳에서도 짐승으로 변한 사람들이 집을 부수고 뛰쳐나와 관청으로 향한다. 뇌수종은 건물 안을 향해 잠시 뒷걸음질 치다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고 맞선다.
나람 연구원: 무서웠나요?
뇌수종 교수: 안 무서웠겠습니까. 눈 앞의 사람이 금수로 변하여 달려든다면 누구든 그랬을 겁니다.
나람 연구원: 하지만 맞서셨네요.
뇌수종 교수: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맡은 일에 책임은 저야죠. 어찌됐건 녀석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저였으니, 예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 일을 해결해야한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나람 연구원: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뇌수종 교수: 그 때의 일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정말 무아지경으로 싸웠던 것 같네요. (환영 속에서 칼 부닺치는 소리,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형체는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 때도 뭔가에 홀렸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제 의지를 높게 산 누군가의 가호를 받았을지도 모르죠. 확실한 건 날이 다 졌을 땐 사위가 조용했다는 겁니다.
환영이 어두워진다. 관청에는 피칠갑을 한 뇌수종 혼자 서있다.
뇌수종 교수: 그리고 그게 나타났습니다.
풍경을 비추던 환영이 사라진다. 대신 인광 하나가 SCP-359-KO 위로 떠오른다. 인광에 서서히 형체가 잡히더니 셀 수 없이 많은 꼬리가 달린 여우로 변한다.
뇌수종 교수: 그리곤 말했죠.
???: 지금까지 몇 천년을 살면서 요괴 말 따위 듣지 않는다고 한 사람이 자네만 있는 게 아니었지. 하지만 처음부터 결연하게 맞선 사람은 없었어. 도망치려다 찢겨죽인 놈들만 해도 내 뱃속을 가득 채웠을 것이야.
뇌수종 교수: 말이 잘 들릴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목소리는 곧바로 머리를 향해 들이박히는 듯 했습니다. 대체 뭔 소리냐는 제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이었죠.
???: 이 꼬리가 보이나? 여우 꼬리가 9개가 되면 인생의 말년을 보내야하는데, 9개가 훌쩍 넘지 않았나. 이미 가도 이상 없을 나이인데, 여기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부득부득 생을 이어오면서 삿된 것들을 막아왔었네. 하지만 이제 나와 자네의 힘으로 요괴들은 모두 척살했으니, 나도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겠지. 그저 가기 전에 유산만 남기고 싶을 뿐이야.
여우의 형체가 SCP-359-KO에게로 들어간다.
SCP-359-KO: 이걸 삼키게. 그리고 하늘을 보면 하늘의 지혜를, 땅을 보면 땅의 지혜를, 그리고 운 좋게도 인간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인간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야. 이 중 두 가지 지혜만 있어도 누구보다 기나긴 삶을 살게 될테니, 이와 함께 살아가게.
뇌수종 교수: 어떻게?
SCP-359-KO: 그건 자네가 정해야지. 이기적으로만 살지 말게. 이 땅에 있는 오랜 혼도 그러지 않았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모든 환영이 꺼진다. 뇌수종 교수가 눈을 감는다.
나람 연구원: 그래서 삼켰군요.
뇌수종 교수: 여러 설화가 그렇듯이.
나람 연구원: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사람은 있었나요?
뇌수종 교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늘과 땅을 보고 1000년의 수명을 얻었죠.
나람 연구원: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된 건가요?
뇌수종 교수: 마을을 재정비하고, 조정에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이 사망했다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계속 살아가다가, 행정구역이 재정비된 이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죠. 이곳에 닿을 때까지.
나람 연구원: 그리고 지금은요?
뇌수종 교수: 그냥 저도 이제 좀, 지쳤을 뿐입니다. 원래의 여우처럼 오래 사는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 구슬의 힘이 점점 떨어져가는 걸 느꼈거든요. 그 여우가 그 날의 저를 보고 일종의 직감을 느꼈던 것처럼, 지금도 저는 끝이라는 것에 대한 직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나람 연구원: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고 가고자 한 거군요.
뇌수종 교수: 갑자기 죽었는데 구슬 같은 거 나오면 곤란하잖아요. 그리고 여우가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심호흡) 깔끔한 마무리를… 지금처럼…
(침묵)
나람 연구원: 그럼 이제… (뇌수종 교수를 바라본다.) 교수님? (침묵) 교수님? 의료진! 의료진!
비고: 뇌수종 교수는 해당 면담 도중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회수된 변칙 개체는 이후 면담 도중에 보였던 변칙성을 상실한 상태이다. 이를 규명하기 위하여 문헌 연구나 관련자 면담 등의 방식으로 변칙성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파악하고자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