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2985

일련번호: SCP-2985

등급: 안전

특수 격리 절차: SCP-2985-6은 표준 안전 등급 물품함에 보관한다. 이외 SCP-2985 개체는 환경조절 금고에 보관하며, 금고 내 습도를 45~55%, 온도를 19~21℃로 유지한다. SCP-2985에 접근할 수 있는 인원은 2등급 이상 인가 보유자로 한정한다.

변칙·비변칙을 막론하고 모든 미술 전시회를 감시하며 POI-2985 "아드리안 보딘Adrian Baudin"이 출현하는지 확인한다.

설명: SCP-2985-1 ~ -5는 여러 명화들을 각기 본따 만들어진 위작 그림들이다. SCP-2985 개체들은 원작 그림과 변칙적 수준으로 정밀하게 일치한다. 붓질이나 색상, 질감 등이 거의 예외 없이 원작과 현미경 수준으로도 구별 불가능할 정도에 이른다. 다만 원작과 다른 점이 크게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전반적으로 마멸되어 가는 표시가 눈에 띄는 점, 둘째는 물감의 화학 조성이 불일치하는 점으로, 둘 다 SCP-2985가 최근에 만들어졌음을 나타낸다. 각 개체가 모사하는 그림은 다음과 같다.

개체 원작
SCP-2985-1 〈아르장퇴유의 빨간 배〉, 클로드 모네
SCP-2985-2 〈네 그루 나무〉, 클로드 모네
SCP-2985-3 〈붓꽃〉, 빈센트 반 고흐
SCP-2985-4 〈2,000야드 응시〉, 토머스 리Thomas Lea
SCP-2985-5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오노레 도미에

SCP-2985-6은 CD 여섯 장으로, 영국 그리니치Greenwich에서 열린 지하 변칙예술 전시회의 "지성의 호흡Respiration of Intelligence" 전에서 SCP-2985-1 ~ -5와 함께 회수되었다. SCP-2985-6에는 SCP-2985의 창작자 PoI-2985 "아드리안 보딘"의 음성일지와 별도 인식재해 음성 파일이 담겼다. 해당 파일은 여러 가지 합성음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파일을 들은 사람은 해당 합성음을 그림을 묘사할 때 쓰는 용어로만 기술할 수 있다.

SCP-2985-6의 인식재해 파일을 들은 사람은 "주로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졌으며 사람이 괴로움을 표출하는 얼굴을 표현주의적으로 그렸다"라고 묘사한다.

부록: SCP-2985-6 내용
각 이름은 디스크에 빨간색 네임펜으로 필기체로 쓰였다. 목소리 분석 결과 PoI-2985는 영국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디스크 1: "물"

방법을 찾은 듯하다. 미적 감각 그따위 건 전혀 아니고, 색채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기법도 아니다. 그것들 모두 무시해야 최선이다. 그런 점에서 원작은 쳐다보지도 않을 작정이다. 원작은 더 이상 내 목표도 아니고, 목표라 생각할 수도 없다. 그렇게 여겼다간 작업 자체가 무의미해져버릴 테니까. 눈 가리고 던진 다트가 우연히 꽂힌 점일 뿐이다. 목표는 절대 아니다.

제프Geoff가 찾아왔다. 당대에 사용한 페인트를 준다고 그랬는데, 내가 거절했다. 평범한 도구들만 쓰려고 한다. 제프가 밥 먹었냐고 물어봤다. 저녁을 먹으러 같이 호숫가 카페로 나갔다. 제프가 떠난 뒤 떠다니는 배를 스케치했다. 제프가 이해했을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제프는 이 늙은 친구가 별 취미가 다 생겼다고 생각할 테고, 나야 기꺼이 맞장구쳐줄 테니까.

[우지직 하는 배경소리]

텅 빈 캔버스가 아닌 데서 출발하려니 기분이 오묘하다. 뭐 때문에 이렇게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이쪽 업계에서 목이 매달려서 전시당할까봐? 아니다, 더한 짓거리도 썩어 넘치는데.

이미지가 이제 흐려졌지만 기억은 아직 남았다. 불완전하지만. 아이디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빚어진 어렴풋한 개념이고, 기억이 존재했던 것으로 빚어진 개념이라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 그대로 기억을 구현할 수도 있을까?

디스크 2: "숲"

그림을 마쳤다. 내가 예상했던 그 기분이 안 난다. 동등해졌다는 느낌이 안 든다. 옛날의 거장처럼 되었다고 해서 존경심이 딱히 우러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 기분은… 자랑스러움인가? 다른 사람 그림 같지가 않다. 기억 속에 내가 전번에 봤던 배들이 떠오른다. 이 그림과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내 기억이 그림에다 묻어나와 버렸다고 하면 왜 여전히 딱 들어맞는 걸까?

오늘 여기 오다가 넘어질 뻔했다. 콘크리트 계단에 부딪히나 했는데 다행히 난간을 제때 붙잡아서 괜찮았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손에 뭔가 묻어난 느낌이 났다. 조그만 종이조각이었다. 그런데 종이에 주름이 잡혔다. 마치… 마치 뭐랄까… 접어놓은 듯이? 그리고 그 종이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서 뭔가 띵 울린다.

지금 이런 게 필요한 때가 아니다. 내 작품 만들기도 충분히 고되고, 갤러리도 그렇고, 또…

제프를 봤다. 슈퍼에서 가공식품 사서 나올 때 보였다. 손 흔들어줬는데 눈에 안 띄었던 듯하다. 어제보다 약간 무신경해진 느낌이었다. 바빠서 그러나? 뭐 작업 중인가? 모르겠다. 아예 못 봤을 수도 있겠지. 뭐… 나중에 물어보자.

내일 찾아가야지.

나는 옛날 사람이지만 거장은 아니다. 어떻게 되려는가 보자.

디스크 3: "꽃"

또 하나 마쳤다. 내가 위작 팔아먹는 데 재미를 붙였다면 저택에서 살았을지도 모르지.

제프를 못 봤다.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시장에도 있고 카페에도 있었다. 코트 입은 키 큰 남자들이 물감을 사갔다. 전시회 준비하나? 아니, 일정은 대개 몇 달 전에 끝났는데. 하긴, 모든 사람이 영원히 게을렀다간 체계 자체가 무너지는 법이다. 화가라고 모두… 물감이라고 모두 그림 그릴 때 쓰는 게 아니다. 그건 다 별개지.

접힌 종이조각을 더 찾았다. 문앞에 모여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모네 둘이다. 거장 한 사람이지만, 아직 거장은 더 있다. 내가 딱히 모네를 존경하는 것도 아니고.

거장에게는 어떤 힘이 깃들어 있다. 우리에게 표를 남기면서부터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작품에 감명받은 이들에게. 그리고 표 안에 씨앗이 있다. 씨앗 안에는 꽃이 있다. 요령은 바로… 씨앗을 찾는 거지.

[1분 동안 침묵]

기억나는 게 하나 있는-

디스크 4: "공포"

[PoI-2985가 속삭여 말한다. 노크 소리가 배경음으로 자꾸 들린다] 문에다 가구들을 기대놨다. 한 시부터 계속 노크하는대 대답 안해줬다. 문구멍으로 내다보니까 다들 깔때기랑 손잡이 같은 거 들고 있다. 축음기랑 총 같다. 다섯 명이다.

노크가 한시도 안 멈추고 오히려 갈수록 더 커진다. 책상으로 문을 막아뒀는데, 지금 페인트가 다 떨어졌다. 계속 자꾸… 편지구멍으로다가 종이조각을 밀어넣는다. 종이조각 보니까 웃음이 나온다. 너무 쿨해서. 나를 만들어주는 것들이거든.

말도 했다. 전시회 때문에 도움을 좀 달랜다.

페인트 없는데.

[50분 동안 노크 소리만 들린다]

[인식재해 음성 (위 참조)]

[3분 후 노크 소리가 멈춘다]

디스크 5: "전쟁"

[PoI-2985가 속삭여 말한다. 노크 소리가 배경음으로 들린다]

들려?

바깥에 누가 왔다. 그놈들이 아니다. 여자다. 잠시만.

[둔한 소리. 마이크 움직이는 소리로 추정]

[새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독일계 여성으로 추정. 해당 목소리는 이하 기울여 표시]

보딘 씨? 저희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들어와서 앉으세요… 여기요.

[끼익거리는 소리. 가구 옮기는 소리로 추정]

차 드릴까요?

아니에요. 저희는 보딘 씨한테 몇 가지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제 작품 때문인가요?

그건 딱히 아니고요. 이 주변에 들렀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분들에 관련해서 아시는 게 있는가 궁금하거든요. 여기 사진 보세요.

[10초 침묵]

아는 것 같긴 한데요. 예술들 하는?

어디서 보셨죠?

아, 가게 같은 데서요. 식당도 있고. 대개… 똑같은 데 있어요. 말은 안하지만.

아, 저희도 잘 알았어요. 보딘 씨, 혹시 어떤 작품을 그리고 계셨나요?

출품 준비 중이었어요, 그… 그 전시회 아시죠? 전시 주제가 그… 인간이 미치는 영향의 불가해함이거든요. 그리고 그 불가해한 영향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그런 걸로… 지금 진행 중이었어요.

흠, 저희도 알겠어요.

…왜 '저희'죠?

[10초 침묵]

그쪽을… 스케치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발 끄는 소리]

아니아니, 거기 가만히 계세요. 배경은 이따 채울게요. 그러니까… 그쪽 눈들 때문에 뭐가 있어서.

디스크 6: "바람"

내 모든 행동이 이제, 길을 따른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드디어 깨달은 듯하다. 거인들이 숲을 걸으면 자취가 남는다. 그리고 자취는, 그저 따라가며 걸으면 그만인 가장 쉬워빠진 길이다.

새로움을 위해 새로움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저기에 무엇이 이전부터 있었는지, 왜 거기 남아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힘없이 나무줄기만 할퀴는 게 아니라.

길을 따르면 진술이 제시된다. 다른 이들에게 그 길이 거기 있음을 보여준다. 정신은 그 어느 때도 무능하지 않다. 스스로 제약을 걸 뿐. 우리는 모두 어디엔가 표가 남았으며, 어떻게 그런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내가 있는 자리에 왜 있는가 이해할 수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의 정신을 뜯어볼 수 있다. 거꾸로 움직이는 거다. 그리고, 능력이 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테다.

제프가 바깥에서 기다린다. 이제 캔버스를 들고 내려가서 차를 타려 한다. 전시회가 끝나면 다시 카페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리고 이제부터 찾아올 다른 이들을 기다리는 거야.

전시회만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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