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번호: SCP-292-KO
등급: 보류
특수 격리 절차: SCP-292-KO는 제202K기지 중등급 격리 구역 최하층에 위치한다. 해당 구역은 20██년에 이미 폐쇄되었기에, 별도의 접근 금지 조치는 필요치 않다. 현재 대상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원들이 일시적인 출입 허가를 받아 중등급 격리 구역에서 근무하고 있다.
설명: SCP-292-KO는 제202K기지 중등급 격리 구역의 지하 3층에 있는 세 개의 격리실을 합하여 지칭한다. 이는 격리동 입구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각각 SCP-292-KO-A(구 B307호실), SCP-292-KO-B(구 B306호실), SCP-292-KO-C(구 B305호실)로 나뉜다.
SCP-292-KO가 언제부터 그 변칙성을 발현했는지는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나, 대략적으로 추측한다면 중등급 격리 구역이 폐쇄된 일시부터 제202K기지에 유아청소년부가 설립되기 전 사이의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지하 3층에는 관리실을 제외한 B302호부터 B307호까지 총 6개의 격리실이 있었는데도 좌측의 3개 격리실만이 변칙성을 보이게 된 이유는 불명이다.
SCP-292-KO-A, B, C는 공통적으로 항밈적 특성을 띄며, 그 내부를 직접 촬영ꞏ녹음한 매체는 대부분 10분 내로 그 효력을 잃고 식별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그 내부에 진입했다가 나온 인원에게도 적용되어 그 경험을 망각하게 한다. 다만, 탐사한 인원의 증언을 토대로 묘사하는 것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부에 진입하는 인원에게 사전에 W등급 기억제를 복용시키면 망각 현상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으나,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기억부에서 대상 내부의 경험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통신 장치가 연구 중이다.
아래 표는 SCP-292-KO-A, B, C를 탐사한 인원들의 기록을 종합한 것이다. 상술한 항밈적 특성에 의해 인원들의 증언은 불확실하거나 서로 모순될 수 있다.
SCP-292-KO-A | 증언 |
이██(21세, 여, 보조 연구자) | 표준적인 크기의 격리실. 상당히 어두움. 피 냄새가 남. 두통을 느낌. |
김██(46세, 여, 연구원) | 알 수 없는 조명이 비추고 있는 격리실. 낡은 소파와 깔개로 추정되는 것이 있음. 가운데에는 거의 다 쓴 양초가 하나 놓여 있음. |
정██(33세, 남, 경호 요원) | 새와 들쥐로 보이는 작은 동물의 사체가 방 곳곳에 있음. 썩은내가 남. 내부에 약한 빛이 있으나 시야 확보는 어려움. 약한 바람이 불며 바깥과 연결된 통로가 있는 것으로 추정. 어지럼증과 멀미를 느낌. |
민██(30세, 남, 재단 내 장례지도사) | 완전히 깜깜한, 철창이 달린 작은 방. 손전등을 이용해 내부를 관찰함. 한쪽 구석에 대형 동물의 배설물로 보이는 흔적이 있음. 방 중앙에는 목이 꺾여 죽은 조류와 포유류의 사체가 존재. 사체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고 뜯어먹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의식을 위해 나열된 것으로 추정됨. 벽에는 피로 그린 원시적인 문자열들이 있음. 강한 두통과 구역질, 현기증을 경험. 안전을 위해 조기 철수함. |
제██(8세, 남, 재단 관할 민간인) | 놀이방. 화장실이 없음. |
SCP-292-KO-B | 증언 |
이██(21세, 여, 보조 연구자) | 입구가 손상된 격리실. 어둡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님. 내부에 빈 종이가 많음. 강한 오한과 구역질을 느낌. |
김██(46세, 여, 연구원) | 약한 전등이 켜져 있는 낡은 격리실. 입구 쪽의 철창이 부서져 있음. 안쪽에 작은 탁자와 흔들의자가 있는데, 탁자 위에 재단 연구원들의 개인 사진이 있음. 약한 불쾌감을 느낌. |
D-4444(27세, 여, D계급) | 밝은 빛이 비추는 격리실. 내부는 두꺼운 철판으로 막힌 구석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재단 내의 연구실과 비슷하게 꾸며진 상태임. 20:1 비율로 제작된 제202K기지 내부 지도가 탁자 가운데에 펼쳐져 있음. 누군가가 손으로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임. 방 구석에는 다양한 인물의 유효기간이 지난 기지 출입 카드들이 쌓여 있는데, 일부는 분해된 상태임. 철판으로 덮인 공간은 일종의 용접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녹인 납과 저항기가 다수 발견됨. |
김██(57세, 남, 기지이사관보) | 반쯤 파괴된 격리실. 입구의 철창은 타원형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크기는 대략 2m의 생명체가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안은 완전히 어두워서 인공 광원을 이용해도 내부를 관찰할 수 없음. 급성 알러지 반응 및 열감, 두통으로 인한 내부 탐사 불가. |
현██(10세, 여, 재단 관할 민간인) | 조용히 해야 하는 곳. 어린이는 오면 안 됨. |
SCP-292-KO-C | 증언 |
도██(55세, 남, 격리이사관보) | 기억하지 못함. |
현██(66세, 남, 시설이사관보) | 기억하지 못함. |
송██(59세, 남, 특무이사관보) | 기억하지 못함. |
박██(44세, 남, 이사관) | [데이터 손상됨] |
장██(9세, 남, 재단 관할 민간인) | 형아가 누워 있음. 안 움직임. |
부록 E292-01: 몇 차례에 걸친 탐사 결과, SCP-292-KO의 항밈적 특성은 유아 및 청소년1에게 거의 통하지 않거나 무효화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정기적으로 기지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에게 대상을 탐사시킨 뒤, 그 증언을 토대로 SCP-292-KO의 특성을 확인하자는 주장이 제안되었다. 이는 다가올 부서 4분기 결산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추가 기록: 가장 최근의 탐사에서 SCP-292-KO 내에 4구의 소아 시체가 발견되었다. 모든 탐사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으며, 현재 제202K기지 내부 윤리위원회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심사 중이다.
소년은 오늘의 마지막 자유를 즐기고 있었다. 내일은 그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 될 것이다.
그의 인생은 상당히 굴곡졌지만 소년은 그것을 구태여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장 오랫동안 자신이 정상인 척 할 수 있는 법은 침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8살 때 깨달았으니까. 그 이후로는 어떤 재단 소속 심리치료사도 그의 입을 열게 할 수 없었다.
소년은 거의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고, 대부분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자신이 그들을 불편해하는 것만큼 그들도 소년을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1년의 절반은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고 지냈고, 나머지 절반은 꼭 필요한 말만 했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고전 소설들을 조금 읽고(어린이용 성장 소설은 오래 전에 다 읽었다), 기지 내 공원에서 한가롭게 산책을 하거나 마음이 내키면 조깅을 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배급해 주는 배식을 깔끔하게 다 먹고 나서 샤워를 했다. 오후에는 영화를 보거나 모노폴리를 했고, 그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얌전히 따라가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몇 시간 후 어른들이 골치 아파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다시 돌려보내 주면, 소년은 자신의 독방으로 돌아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휘파람으로 조심스럽게 따라 부르다가 잠에 들었다. 그는 혼자가 가장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 뜻이 그가 재단 생활에 불만족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되려 재단에서의 삶은 그가 바랄 수 있는 이상적인 삶에 가까웠다. 옷과 음식을 보급해 주고, 원할 때마다 씻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예전의 삶처럼 자신을 옥죄는 부모도 없었고, 좋은 아이가 되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만족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기엔 소년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았다.
제202K기지에는 '제비뽑기 날'이 있다. 오래되고 사악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필요 때문에 아직 유지되고 있는 기지의 전통 가운데 하나다.
'제비뽑기 날'은 3년에 한 번 정월 대보름에 열린다. 그 날, 기지 내의 6살부터 11살의 어린이들과 그 가족은 모두 기지 교회에 모인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적어 커다란 공 안에 넣고, 모든 어린이들이 이름을 적어 넣으면 이사관이 공 안에 손을 집어넣어 5개의 종이쪽지를 꺼낸다. 아이들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이다.
이사관이 이름을 천천히, 또박또박 부를 때면 교회 전체가 침묵에 휩싸인다. 가끔 자신의 자식이 불릴 때면 차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 마디 신음을 흘리는 직원들도 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추첨이 끝날 때까지 정숙함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가족이 있는 아이가 추첨에서 뽑히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기 때문이다. 그 추첨에서 걸리는 대부분의 경우는 고아들이다. 챙겨줄 이 하나 없는, 제물로 바치기에 적당한 아이들.
추첨이 끝나면 비로소 교회 안에 소리가 돌아온다. 뽑히지 않은 이들은 안도하며 빠져나가고, 불운하게 당첨된 아이의 가족은 좌절을 곱씹으며 예배 의자에 주저앉아 흐느낀다. 고아들은 슬픔을 공감할 사람이 없으므로, 홀로 앉아서 이사관이 그들을 데리고 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그리고 나서, 뽑힌 5명의 아이들은, 한 달 후 SCP-702-KO의 격리실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안에서 3년 동안 버텨야 한다. 살아남는다면, 3년 후에 나올 수 있다. 뭔가 실수하거나 속임수에 빠져 금기를 어기게 되면, 죽는다.
소년은 고아였다. 그리고 '제비뽑기 날'은 단 하루 뒤였다.
그는 자신이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참고자료 E292-01: 윤리위원회 정기 회의 기록
회의 인원: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비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은 SCP-292-KO에 대해 논의하는 데 쓰였다. 심사 결과 윤리위원회는 최종적으로 SCP-292-KO에 미성년자를 투입해 내부의 사체를 회수하여 부검하는 계획을 승인하였다.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그럼,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어차피 메인 안건은 이쪽 아닙니까.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알겠습니다. 다음 의제는… 아시겠지만, SCP-292-KO입니다.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원래도 골치 아픈 문제가 많았는데, 최근에 그 안에서 뭐가 또 발견됐다고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맞습니다. 지금 SCP-292-KO-C에서 새로 소아의 시체 4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사진을 못 찍으니 확실하진 않지만 증언을 들어 보자면 아마 8~14세 사이인 것 같고요. 누가 이 아이들을 죽였는지, 시체를 어떻게 대상 내부로 반입했는지 의문점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시체를 인지할 수 있는 인원이 또래 연령의 어린아이들밖에 없단 겁니다. 따라서 미성년자들을 대상 내부에 투입해, 그 시체를 회수하고 부검을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제입니다.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아니… 잠깐만요. 방금 말한 내용대로라면 이건 기동특무부대를 소집해야 마땅한 일인데, 지금 어린아이들을 그 안에 집어넣겠다고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어쩔 수가 없습니다. SCP-292-KO의 항밈적 특성 때문에 성인이 들어간다 해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고, 외부와의 통신 역시 두절됩니다. 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전투 인력들은 대부분 안에서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거부 반응이 나타나더군요.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대상을 어린아이들만 인지할 수 있다는 게 확실한가요? 이런 변칙성은 또 처음인데요. 연구가 완전히 이뤄진 건 맞는 건가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아직 진행 중이긴 합니다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로 보면 신뢰성이 높습니다.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홛동이 불가능한' 거부 반응이란 게 무슨 의미죠, 박사님? 단순히 그 안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겁니까, 아니면 실제로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겁니까?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후자입니다. 몇 번에 걸쳐서 실험을 해 봤는데, 사람들마다 격리실의 밝기를 인식하는 정도가 다르더군요. 어떤 사람은 한낮의 야외처럼 밝다고 느껴도 다른 사람은 완전히 깜깜하게 보이는 식으로요. 그리고 방이 어두워질수록 내부에 진입하는 인원에게서 두통, 급성 고열, 구역질 등 진입이 힘들어질 정도로 강한 거부 반응이 나타나는데, 군인들은 대부분 안을 완전히 어둡게 인식했습니다.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그럼 그 부작용을 줄일 약을 개발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지금 위협이 확실히 사라진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어린아이들을 넣었다간 사상자들만 더 나올 수 있을 텐데요?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저 말에 동의합니다. 도현주 박사님, 이건 너무… 무모해요. 인명 피해가 나올 가능성도 높고, 그럴 만한 당위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네요. 재단답지 않습니다.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한숨) 사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제가 아는 평소의 박사님은 꽤나 효율주의적인 사람이었는데요. 그런 사람이 이렇게 과격한 방안을 들고 오셨단 뜻은 뭔가 사유가 있어서겠죠. 이유가 뭐죠?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저희에게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이들을 죽이고 구역을 탈출한 존재가 지금 기지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몰라요. 너무 늦기 전에 그 놈에 대한 정보를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려면 그 아이들의 시체를 부검해 봐야 합니다.
박세필, 이신별, 이준성: (침묵)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괴물이요?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 박사님.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그러니까, 아이들을 살해한 존재가 기존의 SCP-292-KO와는 다른 새로운 괴물이라는 거죠? 그게 지금 기지 내를 배회하고 있고?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네.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어, 혹시 시체 말고 다른 증거가 있나요?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그러니까,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대상을 발견하기 전부터 그 안에 있었던 시체일 수도 있고.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시체는 최근에 발견됐습니다. 그 전까지 대상 내에서 관찰된 적이 없었어요.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그야 연구가 최근에 시작된 거니까, 이전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던 걸 수도 있잖습니까. 항밈 때문에 탐사한 인원들의 증언도 오락가락한다며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글쎄요. 이걸 보면 말이 달라지실 겁니다. 이신별 행정관님?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네?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제202K기지 인사부에는 기지 관할 하에 있는 민간인들, 그러니까 어린이들의 수와 필수품 보급 목록을 정리한 파일이 있죠? 아마 유아청소년부가 설립된 2015년부터 매년 갱신됐을 거고.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있긴 한데, 이 문제랑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제가 그 문서를 가져와 봤습니다. 다들 한 번 받아서 보시죠.
부스럭거리는 소리. 3명의 사람들이 총 24페이지짜리 종이 뭉치를 각각 받고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본다.
도현주 격리이사관보:저번 년도까지, 총 8개 버전의 페이지입니다. 보시면 년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관리하는 수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새로 아이가 입소하거나 퇴소할 때도 다 기록이 되어 있고요.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바로 핵심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는데요, 박사님. 길게 돌아가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아서.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알겠습니다. 여기 보시면… 2015년의 하계 의복 지급 목록이 보이죠? 거기 적혀 있는 숫자는 106명이고요. 이제 다시 맨 앞 장으로 돌아와서 2015년의 관할 어린이 수를 보세요. 101명입니다. 두 명이 재보급받은 걸 빼고 계산한 수치니 정확합니다.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음, 원래 이런 숫자들은 자잘하게 오류가 나기 마련이에요, 박사님. 의복은 격리용 물품과 달리 감사가 그렇게 빡빡하지 않아서-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저도 압니다, 행정관님. 하지만 이건 아이들이 받은 갯수 목록이에요. 이런 건 오차가 잘 나지 않습니다. 다른 문서도 볼까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페이지들을 넘기며) 2016, 2017, 그리고 나머지 문서 모두 의복 개수와 이불, 기타 자잘한 보급품과 무엇보다도 인식표 개수가 그 해의 어린이 정원보다 5개 많습니다.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인식표가 5개씩 차이가 나는 건 이상합니다. 그걸 재보급하는 건 인사부가 아니라 경호부라서, 만약 매년 5개의 재보급 필요가 있었다면 보충을 요청하는 문서가 있어야 하는 데 그런 문서는 아예 없었거든요.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누락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5개 정도는 문서 필요 없이 직원들끼리 구두로 요청할 만한데-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다른 문서도 있습니다. 보실까요? 매년 개최되는 제202K기지 배 체육대회 행사가 있습니다. 직원들은 자율로 참가하는 거지만, 어린이들은 인성 및 교육적 목적을 위해 타당한 사유가 없다면 필수로 참가하게 되어 있죠. 2015년 체육대회 참가 목록을 보세요.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어… 참가한 어린이 수가 86명이고, 빠진 어린이들이 15명이니까, 더하면 101명인데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이제 참가상 개수를 한 번 보세요. 이건 아이들에게만 지급되는 거라, 어른들과 혼동될 우려도 없습니다.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91개.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이쯤 되면 의심을 안 하기가 더 힘들지만, 그래도 하나만 더 말하겠습니다. 지금 저희 제1연구관에 노후화된 시설을 교체 중인 작업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그런데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이번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화 및 부분적인 균열로 인해 폐쇄된 곳이 제1연구관에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지하 식당, 이건 전전년도부터 논의가 되어 왔고 정식으로 표결까지 붙여서 지금 리모델링 중이죠. 그런데, 다른 곳이 하나 더 있습니다.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여기, 제1연구관 끝자락의 격리동이요. 문서에 따르면 아직 아무것도 격리되어 있지 않은 빈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대규모 균열과 파손이 생겼다고 보고가 올라오더니 일사천리로 폐쇄가 결정되었어요. 정식 표결도 없이요. 물론 상태가 심각하다면 표결을 건너뛸 수는 있겠지만, 몇 년 동안 빈 공간이었던 곳에 무슨 균열이 났겠어요? 그래서 조사를 좀 더 해 봤습니다.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다시 체육대회를 보세요. 2015년판, 2페이지 맨 마지막에… 네. 그림 그리기 대회에 추가로 참가한 어린이 팀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만 정원이 91명이죠. 마지막 팀의 인원 수는 다섯 명, 그리고 팀명이 뭔지 보이세요?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제1연구관팀… 어린이들 중에 거기에서 머무는 애들은 없는데.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지금은 없겠죠. 과거에도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우리가 잊은 게 아니라?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박사님 말뜻은, 지금 제1연구관에 있던 항밈성의 무엇인가가 풀려나서 기지에 깽판을 치고 나갔다는 건가요? 그 과정에서 같이 격리되던—아니면 격리 절차에 이용되던— 뭐든 간에, 5명의 아이들을 죽여서 292-KO에 버린 거고, 그 아이들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아예 지워져 우리가 인식조차 못하게 된 거고. 맞죠?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그게 조금 더 낙관적인 추측입니다. 더 부정적인 추측은, 외부의 무언가가 들어와서 격리되어 있던 것을 풀어주고 함께 탈출한 거죠. 어쩌면 지금 이 회의를 엿듣고 있을 수도 있고.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침묵) 오, 하느님.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잠깐만요. 분명 지금 SCP-292-KO 내에서 발견된 시체는 4구 아닙니까? 기록상에서 지워진 아이들은 왜 5명이죠?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모르죠. 애초에 그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마당이에요. 누구 한 명이 살아남았다면 저희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되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군요.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이마를 짚으며) 아니면 그 한 명이 사실 우리가 격리하던 존재였을 수도 있죠. 괴물이라고 체육대회에 참가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그럴 수도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당장, 어떤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미성년자를 투입해서 내부의 시체를 부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기지 전체가 항밈으로 오염되었어요. 또 어떤 정보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저는… 동의합니다.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아이들은, 어떡하죠? 대피시켜야 하나요?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괜히 관심만 끌게 할 것 같은데요. 먼저 건드리지는 않았으니, 가만히 놔두는 게 최선책일 듯 합니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요.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 안건에 동의합니다.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이사관님?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하, 다른 방법이 있겠나요? 안건에 동의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는 게 좋겠네요.
이준성 윤리위원회 의원: 만장일치네요. 그럼 이 안건은 바로 진행시키겠습니다.
박세필 제202K기지 이사관: 그래요. (창문을 보고는) 벌써 새벽이네요. 해가 떴으니 다들 조심해서 귀가하시고. 말하지 않아도 알죠?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네. 수고하셨습니다.
부록 E292-02: 회의 직후, 제비뽑기를 통해 SCP-292-KO 내의 시체를 회수하기 위한 미성년자 4명이 선발되었다. 해당 인원들은 안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 적절한 교육을 받은 후, 4번에 걸쳐 각 1명씩 투입되어 내부의 시체를 회수했다. 임무는 인명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현재 제145K기지 법의학과의 협조를 받아 시체의 검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하 기록들은 SCP-292-KO-C에 진입했던 4명의 증언을 작성한 것이다.
면담 대상: 유한나, 제202K기지 관할 민간인
면담자: 도현주 격리이사관보
서론: 인원은 첫 번째로 SCP-292-KO-C에 투입되었으며, 11살로 추정되는 남아의 시체를 회수하는 데 성공하고 복귀했다. 직후 인원의 트라우마 방지를 위한 검진 및 상담이 실시되었으나 투입 전과 비교해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에 따라 곧바로 심층 면접이 이루어졌다.
<기록 시작 - 01:30>
도현주: 몸은 좀 어떠니, 얘야?
유한나: 괜찮아요. 안 아파요. 근데 좀 졸려요.
도현주: 그래… 다행이구나. 집으로 돌아가서 쉬기 전에 아저씨랑 잠깐 대화만 해 줄 수 있니? 네가 안에서 어떤 걸 봤는지, 뭘 했는지 얘기해 주면 된단다.
유한나: 어… 본 거요? 딱히 뭐 본 건 없었는데.
도현주: 괜찮아. 기억나는 것만 얘기해 주렴.
유한나: 그러면… (잠시 침묵) 안에 들어간 뒤부터 말하면 되죠?
도현주: 그래. 한 번 천천히 생각해 보고. 굳이 억지로 떠올리지 않아도 된—
유한나: 누가 자고 있었어요.
도현주: —단다. 내가… 잠깐, 뭐라고?
유한나: 내가 들어가니까 바닥에 애들이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걔네는 안 움직였어요. 근데 침대 위에 누가 있었어요. 걔는 잘 움직였어요. 내가 말을 거니까, 날 쳐다봤어요. 근데 말은 안 했어요.
도현주: 안에 누가 있었…? 그 애 어떻게 생겼니? 네 또래야? 키는? 성별은?
유한나: 어… 키는 잘 모르겠고, 남자애였어요. 나보다 한 두 살 정도 많을라나? 되게 깡말랐던데. 불쌍해 보여서 바지에 있던 사탕 줬어요.
도현주: 혹시 그 애가, 그러니까, 손에 피가 묻어 있거나 그랬진 않았지? 아니면 어떤 무기라도?
유한나: 몰라요. 잘 못 봤어요. 나랑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했는데, 내가 가야 한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어요. 침대에서 다시 자던데요.
도현주: 생리적 활동은 필요 없는 건가… 시체들은, 아니 그러니까, 바닥에 누워 있던 아이들도 자세히 봤니?
유한나: 네. 제일 위에 누워 있던 애 데리고 왔어요. 애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서 밑에 애들은 끌고 오기가 힘들었어요.
도현주: 차곡차곡?
유한나: 네.
도현주: 그러니까… 탑을, 쌓았단 소리니? 아이들의 몸으로?
유한나: 아뇨, 아뇨. 좀 더 꽉. (손짓하며) 꼭꼭 쌓았어요.
도현주: 좀 더 꽉 쌓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나. 혹시 설명을 좀 더 부탁해도 될까?
유한나: 아, 답답하네. 말이 생각이 안 나요! 그러니까… (침묵) 그러니까… 음…
도현주: 설명하기가 힘들다면 넘겨도 된단다.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까…
유한나: 기억났다! 그거였어요. 팬케이크.
도현주: 팬케이크.
유한나: 네, 팬케이크처럼, 꼭꼭 눌러져서 탑이 쌓여 있었어요. 저 맨 위에 애만 뜯어내서 데려왔어요.
도현주: (침묵)
유한나: 그거, 살이랑 뼈가 서로 붙으니까 뜯어내기 엄청 힘들더라고요! 남자애가 도와줘서 떼낼 수 있었어요. 그나마 팔다리는 두꺼워가지고 힘을 팍 주니까 튕겨져 나왔는데, 머리카락이 옷에 붙어서 머리는 가위로 잘라야 했어요. 아, 그리고 눈알은 못 찾았어요. 어딘가로 숨었나 봐요.
도현주: (침묵)
유한나: 아마 살아 있었다면 다들 많이 아파했을 것 같은데, 죽었으니까 괜찮나 봐요. 제일 밑에 있던 애는 목이 빠졌어요. 제가 다시 끼워 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도현주: (침묵) 얘야, 너 진짜로 괜찮은 거 맞니?
유한나: 네. 처음엔 안 괜찮았었는데, 이젠 괜찮아요.
도현주: 그게 무슨 뜻이야?
유한나: 방 안에 들어갔을 때,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창피한데, 자꾸 쉬가 나오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울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좀 막 슬프고 했는데, 침대에 앉아 있던 남자애가 내 머리 쓰다듬어줬어요. 그러까 괜찮아졌어요. 이젠 안 그래요.
유한나: (목소리를 낮추며) 근데 아저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도현주: 말해 보렴.
유한나: 원래 그런 애들이랑은… 말을 걸면 안 되는 거 맞죠?
도현주: 음, 네가 말하는 '그런 애들'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침대 위의 괴물?
유한나: 아뇨아뇨. 걘 괴물 아니에요! 걔 엄청 착해요. 근데 제 말은, 그러니까…
도현주: 그러니까?
유한나: 걔는 내 상상 친구잖아요. 근데 상상 친구 같은 건 없는 거 아니에요? 엄마가 그렇게 말해 줬는데.
도현주: 음… 글쎄. 왜 걔가 상상 친구라고 생각했니?
유한나: 뭐, 말도 안 하고, 나 쳐다보기만 하고. 내 행동들을 따라하던데요. 근데 전 그래도 좋았어요! 귀엽잖아요. 사실 저 나올 때 걔랑 같이 나오려고 했는데, 걔가 나가기 싫다 했어요. 제 생각엔 상상 친구라서 거기서 살아야 하나 봐요.
유한나: 아무튼, 그래서 상상 친구랑 말하면 안 되는 이유 뭐에요? 엄마가 말 안 해 줬어요. 아저씨는 알아요?
도현주: 어… 음… 그건. (한숨) 그건 일종의… 심리학적 개념이거든. 누구나 어릴 때 경험하는 단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지는 거지. 사실, 상상 친구랑 같이 노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란다. 너무 불안하게 여길 필요는 없어.
유한나: 아저씨 어려운 말 너무 많이 써요.
도현주: 상상 친구랑 놀아도 괜찮아. 내가 약속할게.
유한나: 진짜요? 그거 엄마한테 말해도 되죠? 엄마는 맨날 그런 건 터부시되는 거라고 나한테 뭐라 하던데. 아저씨가 놀아도 된다고 하면 엄마도 뭐라 못하겠죠.
도현주: 너도 어려운 말을 쓸 줄 아는구나.
유한나: 아저씨만 할까요. 저 이제 졸린데, 집 가도 돼요?
도현주: 그래. 수고했다, 한나야.
<기록 종료 - 01:45>
비고: 면담 이후 유한나 양은 약 3일 동안 정신 상태를 집중적으로 진단받았으나, SCP-292-KO-C 내에서 겪었을 상황에 대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공감 지수가 소폭 하락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후유증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유한나 양은 차후 두 달 동안 보호관리시설에서 생활할 예정이다.
유한나 양이 회수한 11세 남아의 시체는 현재 검시실에서 보관 중이다. 시체의 항밈적 특성은 SCP-292-KO-C 내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졌으며, 현재는 성인들도 시체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2 부검은 제145K기지 법의학부의 협조를 받을 때까지 대기하기로 결정되었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 당황하지 않았다. 사실, 추첨이 너무나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갔던 탓에 그는 일말의 지루함마저 느꼈다.
그와 함께 뽑힌 아이들은 정표윤, 민주아, 김세라, 강주환이었다. 김세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아였다. 소년은 세라가 안됐다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녀가 아빠의 품에 안겨 울고불고 하는 꼴을 보고는 남아 있던 동정심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소년은 세라에게는 말을 먼저 걸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머지 세 명의 아이들은, 의지할 이 없이 홀로 역경을 거친 강인함을 선보이기라도 하듯 하나같이 의연한 표정으로 맨 앞 줄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역시 다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온 모양이었다.
소년은 그들을 쳐다보다가 가장 왼쪽에 앉아 있던 주환과 눈이 마주쳤다. 주환은 그를 보고는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듯 손을 까딱였다. 소년은 정중하게 고개를 저어 거절했고, 주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권유하지 않았다.
소년은 눈을 지긋이 감고 교회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미 다 짜여져 있었다. 안에 들어가면, 누구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지낸다. 혼자 겉돌게 되면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조금 따갑긴 하겠지만, 그 정도야 이미 여기서도 받고 있던 것이었다.
어차피 SCP-702-KO는 그들이 어린아이로 남아 있기만 하면 같이 놀든, 찌그러져 있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안에서 읽기 위해 기숙사에서 들고 갈 두꺼운 책들을 마음속으로 골랐다. '폭풍의 언덕'을 한 번 더 읽어도 좋을 것 같았고, 엄두도 못 내던 '토지'를 시도해 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신곡'? 취향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떼운다면야. 또…
"괜찮니, 얘야?" 소년은 눈을 떴다. 이사관이 앞에 서 있었다.
"이제 가자꾸나. 힘든 건 알겠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피곤에 물든 이사관 뒤로 세 명의 다른 아이들이 서 있었다. 소년은 이사관이 그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섞인 동정심을 보았다. 그도 슬픔을 느끼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닳고 닳아서 이제는 가루가 되어 버렸을 뿐.
"가죠."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한 3일 만에 처음 말을 했더니 목소리가 좀 갈라졌다. 그것을 슬픔의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이사관의 얼굴이 조금 더 굳어졌다.
소년은 한 마디 하려다가, 굳이 오해를 풀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얌전히 세 명의 아이들 뒤로 붙었다. 그들은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들처럼 아장아장 교회를 걸어나가 이사관의 대형 지프차에 한 명씩 올라탔다.
"많이 힘들 거다. 하지만 그게 너희가 죽을 거란 뜻은 아니야." 소년이 마지막으로 올라타 문을 닫자마자 이사관이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달리 좀 더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로 변해 있었는데, 소년은 그것이 평소 그가 부하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모습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알고 있겠지만, SCP-702-KO는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SCP야. 그걸 보고, 또 상호작용이 가능한 건 너희처럼 2차 성징이 끝나지 않은 어린아이들뿐이지. 다만 너희도 금기를 어기게 된다면 위험해질 수가 있는데, 자세한 건 거기 꽂혀 있으니까 빼서 하나씩 읽어 보고." 이사관이 말하는 동안, 지프차는 부드럽게 출발해 교회를 벗어나 저등급 격리구역을 지났다. 소년은 창밖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일단 안에 들어가게 되면, 바깥의 사람들과는 스피커로 소통이 가능해. 필요한 게 있으면 적어서 보내고. 위급 상황이 있으면 빨간 버튼을 누르면 경호원 아저씨가 달려올 거다. 그리고 격리실 안쪽 분위기가 정확히 어떨진 모르겠지만,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더군. 하기야, 이젠 애들도 알 건 다 아니까."
이사관은 설명하다가 잠시 딴소리를 하더니 입을 다물고 차를 운전했다. 지프차는 이제 저등급 격리 구역을 벗어나, 보안 카드로만 출입할 수 있는 예전 중등급 격리 구역(지금은 폐쇄된 곳. 지프차는 이사관이 얼굴을 한 번 보여 주자 자동으로 입구가 열렸다)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냥… 이것만 기억해라. 안에서 너희 놀 거 다 놀아도 된다. 게임을 해도 되고, 하루종일 자도 되고, 책을 읽어도 돼. 다만 이거 하나만 명심해.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하지 마. 최대한 천역덕스럽게, 애들처럼 행동해. 알겠냐?"
소년은 바깥 풍경에 정신을 팔다가, 이사관이 그들에게 대답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 박자 늦게 "네"라고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도 그제야 그를 따라 답했다. 이사관이 마뜩잖은 듯 콧바람을 냈다.
지프차는 고등급 격리 구역으로는 가지 않고, 제1연구관으로 방향을 틀어 주차장에 정지했다. 정표윤은 그새 꾸벅꾸벅 졸다가 민주아의 옆꿈치 찌르기에 움찔하면서 눈을 떴다. 아이들은 이사관의 인도에 따라 차례차례 차에서 내려,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제1연구관은 돔형 건물의 한쪽을 잡고 길게 잡아당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원형 돔의 한쪽 꼬리가 길게 늘어져 직선형의 통로를 이루었고, 꼬리 끝은 다시 부풀어 올라 정육면체 모양의 격리실이 되었다. 소년은 잠시 그 건물의 모습을 감상했다. 퍽 인상적이었다.
"저기가 SCP-702-KO의 격리실이다. 한 달 후에 너희가 지낼 곳이지." 이사관이 말했다.
"구역질나게도 생겼네." 표윤이 중얼거렸다. 주아가 다시 한 번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표윤은 뭐라고 궁시렁거리면서 팔짱을 꼈다.
소년은 작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그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
면담 대상: 성세윤, 제202K기지 관할 민간인
면담자: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서론: 인원은 두 번째로 SCP-292-KO-C에 투입되었으며, 11살로 추정되는 여아의 시체와 함께 복귀했다.
인원은 심각한 트라우마 증세와 쇼크 상태를 보였으며 SCP-292-KO-C를 나온 직후 병동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인원의 상태를 고려해, 면담은 투입 4일 후에 실시되었다.
<기록 시작 - 02:11>
이신별: 그럼… 지금 면담을 해도 괜찮을까, 얘야?
성세윤: 네, 뭐. 근데 누구세요?
이신별: 난 이신별이야. 원래는 도현주 박사님이 오셔야 했는데, 그분이 바쁘셔서 아마 앞으로는 내가 너희를 면담하게 될 거야.
성세윤: 면담이요?
이신별: 그래. 미리 말하겠지만 네가 원한다면, 이 면담은 언제든지 중지할 수 있어. 이건 강제로 하는 게 아니야.
성세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 진짜 자유롭게 해 주는 사람은 없던데.
이신별: 음, 네가 원한다면 난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갈게. 그걸 바라니?
성세윤: 아… 아뇨.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이신별: 좋아. 그럼 시작해도 될까?
성세윤: 아, 네. 저, 그럼 뭐부터 말해야 해요? 제가 잘…
이신별: 편하게 생각해. 그냥, 안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줘.
성세윤: (침묵)
이신별: 얘야?
성세윤: 아뇨, 전 괜찮아요. 그냥… 좀, 그래서요.
성세윤: 음, 안에서 경험한 건… 일단 그게 있었어요. 죽은 아이들. 몸이 눌려서 압착된 애들.
성세윤: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던데요. 보는 순간 숨이 막혔어요. 몸이 덜덜 떨리고. 그냥…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아시죠? 끔찍했어요.
이신별: 무슨 말인지 알아. 계속할 수 있겠니?
성세윤: (웃음) 한 번에 끝내야죠, 안 그래요? 괜히 여러 번 할수록 기분만 더러워질 텐데.
이신별: 그건… 그렇지.
성세윤: 그래서… 일단 그 시체 더미로 갔어요. 위에서부터 서로 엉킨 시체를 뜯어 내려고 해 봤죠. 근데 그거, 더럽게 안 떼지더라고요. 살이랑 살이 엉겨붙은 채로 부패해서, 약간 피자 조각 분리하듯이 떼네야 했어요. 아마 중간에 다섯 번 정도 토했을 거에요.
이신별: …미안하구나.
성세윤: 괜찮아요. 어차피 아주머니가 저한테 그걸 가져오라고 시킨 건 아니잖아요. 아무튼, 그렇게 시체를 떼내고 있는데, 눈가 한쪽에서 자꾸 뭐가 어른거리더라고요. 고개를 돌려 보니까 뭔 시꺼먼 진흙 더미 같은 놈이 절 쳐다보고 있는 거에요.
이신별: 진흙 더미?
성세윤: 네. 저보다 앞서 들어간 애는 그걸 상상 친구라고 표현하던데, 제 상상에 그런 놈이 나왔다면 저는 울면서 도망쳤을 거 같은데요. 진흙이 몸에서 뚝뚝 흘러내리고, 계속 이상한 신음을 내고… 삼단봉으로 몇 번 위협을 하니까 다가오진 않더라고요. 침대 쪽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성세윤: 안 그래도 힘든데, 그 놈을 견제하면서 하려니까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중간부터는 포기하고 두 손으로 시체를 파냈어요. 그 진흙 더미도 그냥 절 구경했고요.
이신별: 아… 혹시, 그 더미가 너에게 말을 하진 않았니?
성세윤: 말이요? 우리가 대화한 기억은 없는데요. 그냥, 다 끝나고 제가 시체를 안고 나갈 때, 저한테 손을 흔들어 주긴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나쁜 놈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했던 게 기억나네요.
이신별: 그렇구나. 안에서 다른 건 없었고? 수상했던 점이라거나?
성세윤: 뭐, 일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방 안쪽까지는 잘 못 봤는데요. 뭐가 있어야 하나요? 엄청 큰 침대가 있는 건 봤어요.
이신별: 침대? 그 남자애… 아니, 진흙 더미가 누워 있던 곳 말이니?
성세윤: 네. 근데 신기한 게, 분명 진흙 더미는 몸에 막 뭐가 묻어 있었는데, 침대는 엄청 깨끗하더라고요. 흠… 사실 진흙이 아니라 다른 거였을까요? 뭐가 됐든, 이제 볼 일은 없겠지만.
이신별: 그렇지. 그럼, 딱히 더 할 말은 없는 거지?
성세윤: 아,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나요?
이신별: 음? 당연하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들어 줄게.
성세윤: 저… 그러면, 소금 한 꼬집만 주세요.
이신별: 소금? 소금은 왜?
성세윤: 그거 해야 되잖아요. 죽은 사람 집에 갔다 오면 등 뒤에 소금을 뿌려야 하는 거. 저 여기로 급하게 와서 그걸 못 했거든요.
이신별: (웃음) 아하, 그거였구나? 걱정하지 마. 그런 건 다 미신이야. 지금 너만 봐도 아무런-
성세윤: 해야 해요. 꼭.
이신별: …반드시 하고 싶은 거야?
성세윤: 네. 그리고 이거 미신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건… 음, 미신이랑은 다른 건데… 아빠가 말해 준 거에요. 미신보다는 좀 더 정교한 거고. 신앙보다는 부정적인 거.
이신별: 음… 금기? 떠오르는 게 그거밖에 없는데.
성세윤: 아뇨. 금기랑은 좀 달라요. 이건 우리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에요.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거죠.
이신별: 갑자기 수수께끼를 하는 기분인데.
성세윤: 아, 생각났다.
성세윤: 그래? 정답이 뭐니?
이신별: 터부. 소금을 안 뿌리는 건 터부시되는 짓이에요. 저 소금 뿌려야 해요.
성세윤: (한숨) 그래, 알겠다. 소금 가져다 줄게.
<기록 종료 - 02:19>
비고: 면담 이후, 성세윤 군은 증세가 차차 호전되었으며 일주일 후에는 거의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 성세윤 군 역시 유한나 양과 함께 보호관리시설에서 생활할 예정이다.
성세윤 군이 회수한 11세 여아의 시체는 훼손 정도가 심각하여, 자료로써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소각되었다. 일부 추출한 DNA 샘플을 토대로 기지 내에서 아동의 직계 가족을 파악하려 시도 중이나, 현재까지 진전은 없다.
솔직히 말해서, 격리실에서의 생활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SCP-702-KO와 함께 격리된 지 한 달째 되는 느지막한 아침, 소년은 조립식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폭풍의 언덕'을 재독한 뒤 막 '토지' 1권을 끝내 가는 참이었다.
11시가 되자 격리실의 전등은 딸깍 소리와 함께 최대 밝기로 올라갔고, 소년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전등이 최대 밝기가 되면 눈이 아파지기 때문에 그는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만 독서를 하고 있었다. 소년은 기지개를 펴며 읽고 있던 책에 책갈피로 표시를 해 둔 후, 의자에 책을 올려놓고 공용 공간으로 나왔다.
"좋은 아침, 형아…" 바닥에 누워서 졸고 있던 강주환이 그를 보며 인사하다가 하품을 했다. 소년은 손을 흔들어 답해 주고는 자신의 지정석에 털썩 앉아 요가 매트를 펴기 시작했다.
"새우깡 먹을 사람?" 그가 막 요가 매트를 다 편 순간 저 안쪽 창고에서 민주아가 소리쳤다. 곧바로 세 개의 목소리들이 자기에게도 새우깡을 달라고 요청했다. 소년은 주아의 질문을 무시하고 매트 위로 올라가 몸을 쭉 뻗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5개 가져간다. 딴말하기 없기."
말하기가 무섭게 주아가 새우깡 4봉지와 오렌지 주스를 달고 민주아가 등장했다. 김세라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던 정표윤이 환호하며 달려들었다. 유탕 처리된 탄수화물의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그리고…" 민주아가 방 한쪽을 흘긋 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레 합류하는 존재가 꼭 하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존재는 긴 팔을 흐느적거리며 공용 공간으로 기어나왔다.
"그래, 너도 먹을 거지? 그럴 줄 알고 다섯 개 가져왔어." 민주아가 조심스럽게 새우깡 하나를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놓았다. SCP-702-KO는 기다란 손톱으로 새우깡 봉지를 갈기갈기 찢은 후, 안의 내용물을 게걸스럽게 섭취하기 시작했다.
"너 주스는 안 먹어?" 정표윤이 옆에서 봉지를 뜯다가 SCP-702-KO에게 물었다. SCP-702-KO는 비닐봉지를 우물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래, 뭐." 정표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의 새우깡으로 주의를 돌렸다. 김세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었고, 민주아는 편안히 양반다리로 앉아 TV를 켰다. 강주환이 가장 좋아하는 TV 쇼가 나오자 그가 탄성을 질렀다.
허리 세우고, 천천히 내리고. 소년은 몸을 굽히며 플랑크 자세를 유지했다. 적절한 강도에 알맞게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옆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아, 오빠 사기치지마 진짜! 어떻게 12가 연속 세 번 나와?!" "사기라니, 엄연한 실력이야."
김세라와 정표윤은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민주아와 강주환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SCP-702-KO는 바닥을 의미 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딱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플랑크 자세를 마무리하고 몸을 풀며 다음 자세를 준비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를 흘긋 쳐다보기만 할 뿐, 딱히 그에게 말을 걸거나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서운할 법도 했지만, 소년은 딱히 그렇진 않았다. 애초에 먼저 벽을 친 쪽은 자신 아니던가.
그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서로 얼마나 쉽게 친해지는지를 보고 감탄했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과 저리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지? 사람보다 돌덩이와 더 깊은 교우 관계를 나눠 온 소년으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김세라와 정표윤의 게임은 정표윤의 승리로 흘러간 모양이었다. 정표윤은 잘난 체 하며 으스댔고, 김세라는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다가 민주아에게 딱 달라붙어 칭얼대기 시작했다. 민주아와 강주환은 그러거나 말거나 TV 삼매경이었고. SCP-702-KO는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아니면 흐느적거리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거나.
소년은 다시 요가를 하는 척하며 옆쪽을 흘긋거렸다. SCP-702-KO는 다시 흐느적대는 춤을 추며, 바닥을 기어다니거나 가끔 의미 없는 동작을 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그 행동의 의미가 보였다.
지금 괴물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은 민주아가 새우깡과 오렌지주스를 들고 오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이다. 몸을 빙빙 돌리는 건 정표윤이 으스대는 것을 흉내낸 것이고, 심지어 바닥을 기어다니는 것마저 강주환이 잠이 덜 깬 모습을 베낀 것이다.
소년은 갈란드 포즈 상태로 15초 동안 버티기에 돌입했다. 정확히 10초 뒤, 괴물은 양 다리를 엉거주춤 오므리며 팔을 모았다. 소년의 동작을 흉내낸 것이다.
저 괴물은 우리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 격리된 지 한 달째, 소년의 결론이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SCP-702-KO는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흉내내고 있었다.
갈란드 포즈를 하던 괴물이 고개를 들더니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았다.
표정 없던 괴물의 얼굴에 약한 미소가 처음으로 나타나자 소년은 강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동족 혐오에 가까운 기분이었을 것이다.
면담 대상: 장수호, 제202K기지 관할 민간인
면담자: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서론: 인원은 세 번째로 SCP-292-KO-C에 투입되었으며, 9살로 추정되는 여아의 시체와 함께 복귀했다.
인원은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으나, 투입 이후 지속적인 우울감과 악몽, 불면증을 호소했다. 인원에게는 수면유도제와 진정제가 처방되었으며, 심층 면담은 이틀 후 실시되었다.
<기록 시작 - 00:49>
이신별: 안녕, 네가 장수호지?
장수호: 아, 안녕하세요…
이신별: 어때, 잠은 좀 잘 잤니?
장수호: 네… 어제보다는…
이신별: 다행이네. 그럼 혹시 지금 면담을 진행해도 괜찮을까?
장수호: 면담…이요? 어떤 걸 물어보시는 거에요?
이신별: 음… 네가 그 안에서 겪었던 일들. 보았던 것들. 그냥 솔직하게만 말해 주면 돼.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중지할 수 있고. 이건 강제가 아니니까.
장수호: …알았어요. 할게요.
이신별: 고마워.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 볼래? 그 안에 들어갔을 때, 뭘 봤니?
장수호: …시체요. 두 개가… 서로 섞여서 엉킨… 반죽된 시체들.
이신별: (침묵) 힘들었겠구나.
장수호: 아뇨, 그건 별로 안 힘들었어요.
이신별: 그래, 나도- 잠깐, 뭐라고?
장수호: 아… 그러니까, 그건… 그냥 시체잖아요. 그래서 그건… 별로 안 무서웠어요. 그래서 제 힘으로, 하나씩 떼어냈어요.
이신별: …? 그럼 뭐가 힘들었니? 아, 설마 너도 진흙 괴물을 본 거니?
장수호: 아뇨…? 거기서 진흙 같은 건 못 봤어요. 차라리 그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장수호: 안에서 시체를 떼어내고 있는데… 제 머리를 누군가가 만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장수호: 그래서 무시하고 계속 작업하려고 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계속 저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라고요. 그래서 벌떡 일어났는데…
이신별: 일어났는데?
장수호: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 계속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소름이 끼치고, 몸의 모든 털이 쭈뼛 서는 느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느낌. 내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내가… (침묵)
이신별: 수호야. 수호야? 진정해. 지금 패닉이 온 것 같은데, 간호사에게-
장수호: 터부시되는 짓을 한 느낌.
이신별: …터부?
장수호: 네. (약한 웃음) 이상하죠? 전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사람도 있었나 봐요.
이신별: 음… 잠시만. 아니, 아니야. 아무튼 그래서 넌 바로 나온 거지?
장수호: 네… 그냥, 시체만 들고 나왔어요. 차라리 시체가 더 따뜻하더라고요. 방 안은 너무 추웠어요.
이신별: 그래… 대답해 줘서 고맙다, 수호야. 정말 큰 도움이 됐어. 혹시라도 내가 필요하다면, 간호사에게 얘기하면 바로 날 찾을 수 있을 거란다.
장수호: 알겠어요. (침묵) 그런데 행정관님.
이신별: 응?
장수호: 터부가 뭐에요?
이신별: 터부가 뭐냐니, 그건… 잠시만, 너 터부의 뜻을 몰라?
장수호: 네.
이신별: 그럼 아까는 그 단어를 어떻게 쓴 거야?
장수호: 그냥…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갑자기. 원래 아는 단어가 아닌데도.
이신별: (침묵)
장수호: 그래서 터부가 뭐에요?
이신별: 그건… 일종의 금기야. 어겨서는 안 되는 것. 우리 공동체가 합의한, 일종의 문화적 법률이지. …너무 어렵게 말했나? 미안하구나.
장수호: 아니에요. 알아들었어요. 그러니까 양치질하지 않고 자는 것, 늦게까지 꺠어 있는 것, 옷 안 입고 읍식 먹는 거 같은 게 터부 맞죠?
이신별: 아, 그거랑은 좀 다르긴 한데… 뭐, 됐다. 대충 그 비슷한 거야.
장수호: 그럼 행정관님의 터부는 뭐에요?
이신별: 응?
장수호: 행정관님이 터부시하는 행동이요.
이신별: 어디 보자…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밖에 돌아다닐 수 없고, 죽은 사람의 집에 들렀다 오면 등 뒤에 소금을 뿌려야 하고, 잊힌 사람을 입에 담으면 안 된다? 뭐가 더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나네.
장수호: 아직도 안 풀린 거에요?
이신별: 응?
장수호: 아… 아니에요. 저 피곤한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안 될까요?
이신별: 그래, 알겠다. 잘 자렴.
장수호: 네.
<기록 종료 - 01:11>
비고: 면담 이후, 장수호 군은 강한 두통을 호소했으며 '머릿속에 뭐가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라고 진술했다. 무속학부의 도움을 받아 빙의의 흔적이 있는지 검사했으나, 아무른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성세윤 군이 회수한 10세 여아의 시체는 현재 부검실에서 보관 중이다. 부검 결과, 시체의 직접적인 사인은 압사가 아닌 심장마비였으며 사후 신체 변형이 이루어진 것임이 확인되었다.
대상의 DNA 검사 결과 제202K기지 내에 직계 가족 두 명(부부 관계)을 찾을 수 있었다. 해당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부부는 자신들이 아이를 낳은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현재 항밈의 효과를 지워낸 후 부부의 기억을 확인하기 위한 기억제 투여가 대기 중이다.
오후 10시, 격리실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이제 자야 한다는 신호였다.
소년은 어스레한 빛에 읽고 있었던 책을 덮은 후, 바깥의 비상구 등에 의지해 침대로 이동해 이불을 펴고 누웠다. 경량 솜이불의 편안한 느낌이 그를 가득 감쌌다.
원래 재단 기숙사에서는 이 시간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휘파람을 불다 잠들었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방음이 잘 되어 있던 기숙사와 달리 이 격리실은 문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방음이 싸구려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격리실으로써의 보안 때문에 그렇게 된 거겠지만, 막상 이 안에서 살고 있는 소년에게는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지금도 옆방에서 강주환과 민주아가 속삭이는 소리가 다 들렸다.
-누나, 경비 아저씨 새로 바뀐 거 봤어?
-응, 착해 보이던데, 왜?
-그냥. 어쩐지 좀 무서워서.
-걱정하지 마. 경비 아저씨들 다 착했잖아. 기억나?
-그건 그래. 이번 아저씨도 착하겠지?
-그래. 이제 자자, 아니면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날 거야.
-자기 싫은데…
-지금 안 자면 내일 아침 TV 못 볼 걸?
-알았어.
그래 놓고 한 시간은 더 떠들 거 다 안다. 소년은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뺐다. 내일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서 '토지' 마지막 권을 마무리해야 했으니까.
소년은 마음속으로 '토지' 1권을 언제 읽었는지 잠시 헤아려 보다가, 이제는 격리실 바깥에서 살았던 시간이 흐릿해졌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그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 생활에 꽤나 적응한 듯 했다.
예전이었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했을까? 소년은 예전과 지금의 삶을 잠시 비교해 보았다. SCP-702-KO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시작했던 요가는 이제 스스로 재미를 붙여 중급자 코스로 나아가고 있었고, 고전 소설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읽고 있었다. 매일 하던 공원 산책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건 아쉽긴 했지만, 다른 아이들이 스스로 떠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참, 이제는 소년도 가끔씩 다른 4명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주된 대화 대상은 주환이었지만, 주아나 표윤, 심지어는 김세라와도 몇 마디를 나누기도 했다. 아무래도 같이 부대끼며 산 시간이 오래된 만큼 서로 정이 어느 정도 들긴 한 모양이었다.
서로 미묘한 관계도 형성된 것 같고. 소년은 최근 민주아가 정표윤을 볼 때마다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것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이 그룹의 최연장자 둘이고 서로 대화할 일이 많다 보니 감정이 싹트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소년으로써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그녀가 선은 안 넘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아무래도 불안하단 말이지. 주아가 평소엔 얌전한데 한 번 눈깔이 돌아가면 앞뒤 안 보고 달려드는 성격이라서…
-달칵.
작은 소리에 그의 상념이 끊겼다. 소년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암적응 때문에, 실낱같은 빛만 들어오는 방 안도 무리 없이 둘러볼 수 있었다.
그의 방에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달칵 소리는 오른쪽 방에서 난 모양이었다.
강주환이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나? 소년은 조금 더 귀를 기울였지만, 옆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미 방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소년은 도로 자려고 눈을 감고 돌아누웠다가, 다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수상했다.
그 애가 이렇게 조용히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소년은 조용히, 이불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천천히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 앉았다. 여전히 옆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달칵. 다시 한 번, 문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왼쪽이었다.
소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화장실은 그의 방을 기준으로 오른쪽 끝에 있다. 그러면 주환이 화장실을 간 건 아니란 소리다. 그의 방 왼쪽에 있는 건 공용 창고, 김세라의 방, 그리고…
정표윤의 방. 소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그는 스스로의 상상력을 저주하며 이불을 완전히 젖히고 바닥에 일어섰다.
그가 지금보다 더 어릴 적, 재단에 들어오기 전에, 그는 흰색 방음재로 꾸며진 감옥에서 살았다. 사이코 부모님의 실험적인 학습법에 따라 그는 거기에서 자신의 두상을 본따 만든 동상에서 흘러나오는 스피커로 인간 세상의 예절과 지식을 학습했다.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그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어떤 물질로 성장했다. 그를 실패작이라고 여기며 경멸하던 부부는 옆집에 살던 청년에 의해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교도소로 끌려갔다.
이 기억하기 싫은 시절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배운 지식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으면, 하루종일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AI 스피커가 그가 자는 것으로 판단하고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앉아 있거나 걸을 때, 심지어 먹을 때도 소리 없이 먹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되었다.
소년은 우아한 발걸음으로 방을 성크성큼 가로질러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어떤 소리도, 심지어 미풍조차 불지 않았다. 소년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공용 공간은 바깥의 비상구 등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주위를 한 번 살펴보았다. 수상한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정표윤의 방을 보았다. 곁보기에는 잘 닫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두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하자, 소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옆방을 나온 건 민주아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밤에 몰래 찾아가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소년은 얌전히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SCP-702-KO의 커다란 눈동자가 그를 마주보자, 소년은 멈칫했다.
괴물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정자세로 그를 보고 있었다. 움직임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동상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소년은 괴물을 노려보다가 옆으로 피하기 위해 몸을 살짝 틀었다.
괴물은 의외로 얌전히 서서 그가 지나갈 수 있게 비켜주었다. 소년은 더러운 게 묻은 느낌이 들어 옷을 탈탈 턴 후 다시 뒤쪽을 바라보았다.
SCP-702-KO는 정표윤의 문 앞에 바짝 붙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엿듣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소년의 불쾌감이 다시금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는 기어이 안쪽의 사람들의 잠을 깨우는 한이 있더라도 한소리를 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니?" 다른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소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격리실 바깥, 관찰 창구에서 경비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익숙치 않은 걸 보니 새로 왔다는 그 사람인 듯했다. 밤중에 혼자 바깥으로 나온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한 모양이라, 소년은 다급히 손짓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그래. 얼른 들어가서 자렴." 경비 아저씨는 소년 옆에서 꿈틀거리는 SCP-702-KO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SCP-702-KO를 한 번 째려본 후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방문을 닫는 순간, 소년은 정표윤의 방 쪽에서 희미한 신음소리 같은 것을 들은 것 같았다. SCP-702-KO가 무언가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무시하고 잠이나 자기로 했다. 벌써 피곤했다.
면담 대상: 한성화, 제202K기지 관할 민간인
면담자: 이신별 인사이사관보
서론: 인원은 마지막으로 SCP-292-KO-C에 투입되었으며, 9살로 추정되는 남아의 시체와 함께 복귀했다.
인원은 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유지했으며, 별다른 후유증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투입 직후 심층 면담이 실시되었다.
<기록 시작 - 04:01>
이신별: 좋아, 그러면… 면담을 시작해도 될까?
한성화: 네!
이신별: 음, 그 안에서 뭘 봤니?
한성화: 어, 시체요! 그거밖에 못 봤어요.
이신별: 그래? 음, 진흙 더미나 깡마른 남자애 같은 건 못 봤니?
한성화: 네! 그냥 침대랑, 시체밖에 없었어요… 시체는 좀 녹아서 흐물흐물하긴 한데, 그래도 옮길 수 있긴 하더라고요.
이신별: (침묵) 그래,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아무튼, 그럼 진짜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한성화: 네! 완전 텅 빈 방에, 저랑 시체랑 침대밖에 없었다니까요? 솔직히, 시체 없었으면 전 제가 완전 싸구려 호텔에 와 있는 줄 알았을 걸요.
이신별: 음… 그렇구나, 그러면… (한숨) 딱히 면담할 게 없네, 이젠.
한성화: 그러면, 제가 행정관님한테 질문해도 돼요?
이신별: 음? 그래, 물어보렴.
한성화: 그거, 그게 뭐에요?
이신별: 어떤 거?
한성화: 터부요. 터부가 뭐에요?
이신별: (침묵) 너 그 단어를 어떻게 안 거야?
한성화: 들어가자말자 알았어요. 온 방이 그 단어를 속삭이고 있더라고요. 터부, 터부, 터부…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 있죠! 그래서 행정관님한테 물어보려고 했어요. 터부가 뭐에요?
이신별: 음… 그건, 금기 같은 거야. 해서는 안 되는 것. 해가 뜨면 어른들을 밖으로 나갈 수 없거나, 뭐 이런 거 있잖아.
한성화: 왜요?
이신별: 뭐라고?
한성화: 왜 해가 뜨면 어른들은 밖으로 나가면 안 돼요?
이신별: 음, 그야… 그게 터부시되는 행동이니까?
한성화: 우리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은 어른들이 정하잖아요. 그럼 어른들이 하면 안 되는 행동은 누가 정하는 거에요?
이신별: (침묵)
한성화: 왜 어른들은 해가 뜨면 밖에 못 나가요?
이신별: …왜냐하면…
한성화: 네?
이신별: …왜냐하면, 보이니까.
이신별: 그것에게 보이니까. 어른들은 숨어 있어야 해.
이신별: 근데 그게 뭐지? 기억이 안 나.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숨어 있었던 거지?
한성화: 제1연구관에 무너진 건물이 있지 않았어요?
이신별: (침묵)
한성화: 네?
이신별: 너 누구야?
한성화: 행정관님, 터부시되는 행동이에요.
이신별: 이 개… 하, 제 1연구관… (고개를 들고) 어차피 지금 널 족쳐도 나올 건 없겠지? 이렇게 나온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뜻이니까.
한성화: 현명하시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이신별 행정관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기록 종료 - 01:11>
비고: 면담 직후, 이신별 행정관은 제1연구관 끝자락의 붕괴된 부분으로 향했다. 아래는 그 부분이 녹화된 영상 기록이다.
그 일은 오후 1시에 일어났다. 멸망이 찾아오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할 시간이었다.
발단은 SCP-702-KO가 길게 울부짖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다 함께 TV를 보고 있던 아이들은 얼어붙어서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SCP-702-KO가 소리를 저렇게 크게 내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
"어, 야, 괜찮냐?"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괴물은 말없이 물부짖기만 했다. 소년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먹던 과자를 내려놓고 다릉 아이들에게 중앙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너무 겁먹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쟤, 쟤 왜 저래? 멈춰 봐!" 김세라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강주환은 민주아 뒤로 숨었고, 민주아는… 정표윤 손을 잡고 있었다. 소년은 상황을 파악하려 눈을 굴렸다. 그러다가-
격리동이 완전히 깜깜해지자, 소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민주아가 속삭였다. 지금 시간은 오후 1시였다. 절대로 전등이 꺼져서는 안 되는 시간이었다.
"누나?" TV를 보고 있던 강주환이 불길하게 속삭였다. 보드게임을 하고 있던 정표윤과 김세라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모두 겁먹은 표정이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숨을 위치를 찾다가, 이곳이 훤히 개방된 격리실임을 깨닫고 바로 그만두었다. 대신 소년은 다른 이들을 그러모으고 한 자리에 모이도록 유도했다.
"지금 다 여기 있지?" 소년의 거친 목소리에 민주아가 움찔했다. 정표윤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래, 아마도 그냥 정전인 것 같아.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 이대로만 있자. 그러면-"
"그, 근데." 민주아가 파리한 얼굴로 소년의 말을 끊었다. 소년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그…" 민주아가 말끝을 흐리더니 눈을 꼭 감았다.
"그거 어디 있어?"
"뭘 말하는 건데. 정확히 얘기해 봐." 말하는 동안에도 소년은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뇌를 지배하고서 징징 울렸다.
"SCP-702-KO. 그거 어디 있어?" 민주아가 말하자, 벌벌 떨고 있던 김세라가 답했다.
"우리 뒤에 있잖아, 언니, 안 보여?"
"아, 그, 그랬구나. 미안, 못 봤네, 어두워서…" 민주아는 안심한 듯 말했지만, 다음 말에 얼어붙었다.
"안 보여?" 소년도, 민주아도 아니었다. 그건 괴물의 입에서 나왔다. 그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안 보여?" 괴물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소년은 그것의 따뜻하고 역겨운 입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 아냐, 보여! 보여! 나 너 보여!"
민주아가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괴물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안 보여?"라고 물어봤다. 그리고는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민주아, 솔직히 말해 봐. 너 뭐 했어?" 소년은 다급하게 물었다. 민주아는 금방이라도 흐흡곤란이 올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 아무 것도 안 했어, 아무 것도-"
"너 그날 밤에 뭐 했지. 강주환 몰래 방 나가서 정표윤 방에 갔잖아. 둘이 뭐 했어?" 소년이 따지자 민주아는 얼어붙었다. 대답할 의지를 잃어버린 그녀 대신 정표윤이 입을 열었다.
"진짜, 별 거 안 했어. 그냥 키스만 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소년은 오히려 침착해지는 감정을 느끼며 대답했다. 일단 원인을 찾아내긴 했으니, 진전이 있긴 했다.
"그, 경비 아저씨가 해도 된다고 했어. 진짜로…! 그래서 우린 해도 되는 줄 알고…!"
"어느 경비 아저씨?" 소년이 물었다.
"그, 새로 온 경비 아저씨. 내가-"
"그럼 너도 안 보여?" 소년이 말을 끊고 물었다. 그는 정표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응, 안 보여." 그 말에 소년은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두 명이 어른이 되었다. SCP-702-KO를 막을 어린아이가 셋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SCP-702-KO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 다음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체구가 가장 작던 강주환이 제일 먼저 잡아먹혔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흩어졌고, 소년은 현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냥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화장실에 숨었던 김세라가 잡아먹혔다. 세라는 아빠와 엄마를 끝까지 외치다가 죽었다. 그 다음으로는 공용 창고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민주아와 정표윤이 죽었다. 그들은 소년에게 미안하다고 외치면서 죽었다. 그리고 소년만이 남았다.
SCP-702-KO가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도 그것을 바라보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소년은 격리 창구 바깥을 텨다보았다. 새로 온 경비 아저씨가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안녕?" 그가 말했다.
"스파이 짓을 참 티 나게도 하셨네요." 소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넌 이 친구가 별로 두렵지 않니?" 그가 SCP-702-KO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려워해야 하나요?" 소년이 맞받아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거세당한 채로 자라났다. 이제 와서 굳이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빨에 물어뜯길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 굳이 두려워해야 할 필요는 없지."
경비 아저씨의 말과 함께, 소년은 그를 물어뜯는 이빨 대신 산산조각나는 유리 소리를 들었다. 그는 눈을 뜨고 바깥을 보았다. 경비 아저씨와 SCP-702-KO가 함께 밖에 서 있었다.
"꼬마야, 넌 미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구나." 경비 아저씨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요?" 소년이 물었다. 경비 아저씨가 웃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SCP-702-KO도 같이 웃었다.
"너에게는 다행인 일이지. 이 기지에서 유일하게, 너만이 아무런 믿음이 없으니까… 아마도 네 특별한 과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경비 아저씨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소년은 그제서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룸메이트에게 인사해야지, 친구." 인간의 탈을 쓴 터부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자 SCP-702-KO가 입을 열었다.
"잘 있어. 좋은 아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마침내 망가진 격리실을 떠났다.
그리고 소년은 그에게 영원히 남겨질 저주가 남았음을 깨달았다.
이신별 박사가 제1연구관으로 뛰어들어온다. 그녀가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린다.
박사가 주변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주워 든다. 옷가지는 한 벌을 제외하고 모두 혈흔이 묻어 있다.
박사는 몇 분 동안 파괴된 현장을 보며 단서를 찾으려 하다가, 포기하고 돌아선다. 박사의 등에 작은 메모가 붙는다.
박사가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그녀가 쪽지를 읽는다.
'안녕히 계세요.' 쪽지는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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