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얘기를 해봅시다. 거기에는 어떻게 있었습니까?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벙커를 말하는 거군. 그, 전에 당신들도 한 반년 전쯤에 있던 테러 있잖습니까. 그거에 대해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수다. 거 쳐들어온 게 뭡니까?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저희는 되려 그쪽이 아실 줄 알았는데.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둘 다 모르는 거군.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아는 게 없지는 않습니다. 지하에 있는 거대 구역 있지 않습니까. 지하, 아니면 땅굴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지금은 그걸 Nx-50이라 부릅니다. 아마 그쪽에서 뭐가 많이 튀어나왔는데, 일단 사람은 아니에요.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흠. 구조한 사람이나, 그, 지하 쪽에 살던 사람들한테는 묻지 않은 건가?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옛 제37K기지 인원들은, 생존자들은 이미 수습을 마쳤습니다. 근데, 많이 죽어서… 예.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얼마나?
안성혁2등급 심리상담사 — 300명 정도. 기지 이사관이랑, 고위직들은 전멸인가 봅니다. 아니면 실종됐거나.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아이고, 쯧.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그래서 생존자가 적기도 하고. 보통 말단 잡역들이라서, 쳐들어온 게 뭔지 아는 눈치인 사람들도 있는데 정확히 뭔지 말을 못해요. 아는 게 없으니까. 그냥, "엄청 많았다." 정도만 간신히 말하덥니다.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지하도 상황은 비슷해서 말입니다. 아마 저희가 못 찾은 게 좀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발견한 쪽은 아주 박살이 났습니다. 그냥, 전부 폐허라던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의 없는 데다가, 길이 험해서 진입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아주 작정을 하고 쳐들어온 건가 보군. 이 얘기는 더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벙커 얘기나 해볼려고.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그곳에 왜 있었는지, 그리고 그 시설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27명이던데, 시신은 23명만 있었단 말입니다. 당신을 포함해서 나머지 4명은 실종 처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3명의 행방을 아십니까? 김승학씨, 서지훈씨, 정아영씨, 이렇게 말입니다.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어, 답해줄 수 있는 건데… 이게,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거라서 말이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반년 정도 전에… 한 3월 정도에. 뭐가 시설 지하에서부터 쳐들어왔어. 그때는 그냥 평범한 침입으로 알았지. 예전부터 가끔 있던 일이니까. 지하에는 그렇게 많거든. 꽃게, 개미, 그런 것들. 그리고 대부분 무해하단 말이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근데, 그때는 좀 다르더라. 많이 다르더라. 거기가 그렇게 큰 시설은 아니지만, 나름 사이즈가 있단 말이야. 그런데, 시설 전체에서 비상등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빨갛게 깜빡거렸어. 그런 건 처음이었어. 그때 깨달았지. "아,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무서웠어. 아무리 위험한 곳을 그리 돌아다녀도, 아무리 살인 괴물이라는 것들과 같이 있었어도, 그런 건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저건 너무 갑작스러웠어. 댁들도 그렇지?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예. 안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래, 고맙군. 여튼, 그때 난 완전히 패닉이었지. 뭐, 댁은 내가 처음에 구조되었을 때, 그 초췌한 꼴을 본 사람이니까 잘 믿기지는 않겠지만, 난 이래 봬도 그 시설에서는 신삥이었단 말이야? 그러니, 이런 일이 생에 또 있었겠냐? 시설 벽에 서서히 금이 가고, 흔들거리는 게 점점 심해질 때, 선임이 내 손목을 잡고 벙커를 향해 빠르게 뛰었어. 그, 김승학씨 말이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벙커에 도착하고, 문을 닫으니까. 그때에 딱, 밖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라. 그때 시설이 무너진 거겠지. 뭐, 별 기억은 안나. 그때는 정신이 워낙 없어서.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벙커에 도착하고 나니까 사람이 2명 더 있었어. 하나는 서지훈씨. 그, 벙커라는 게 말이 벙커지, 그냥 다목적 공간이었단 말이야? 거기 담당자였어. 그리고 정아영씨. 통합물류부 행정 인력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통합물류부쪽 사람이었어. 아마 둘이 거기서, 물자나 보급 관련 얘기를 하던 때에 우리가 운 좋게 들어간 거겠지. 또, 때마침 시설이 무너지고.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같이 계셨군요.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어, 뭐. 감이 오지? 죽었어. 아니면 없어졌거나. 둘 다 비슷한 거지.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서지훈씨랑 정아영씨는 상황을 몰랐어서, 우리가 상황 전달을 했지. 당시에는 이렇게 결론 내렸어. "곧 중앙기지에서 구조하러 올 거다." 중앙기지면, 그거 있잖아. 중간에 끼어든 물류잡놈들이 있는 데 말고, 원래부터 있던 가장 큰 데. 아마 지상에 있던 건물은 무너져 내린 거 같으니까 그걸 직접 파내거나 땅굴로 오는 방법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어림잡으면, 몇주는 걸리겠지.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래도 버틸만했어. 상황을 보면 말이야, 일단 사람은 4명. 그걸로 거기 있는 필수품들 분배해보면 한 1년은 버틸 수 있더라고. 그리고, 아무리 폐쇄되었다고 해도 공기는 멀쩡하고, 수도도 멀쩡했고, 전기랑 가스 같은 건 망가졌는데.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다시 생각해보면은… 처음에는 좀 괜찮았던 것 같아. 그래도 곧 구조대가 올 거란 확실한 믿음이 있었고. 물자도 넉넉하잖아?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그렇죠. 아직도 거기에 갇혀 있다 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양이네요.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렇지. 근데… 사람이. 그, 자연광이라는 게 있잖아? 그걸 못 보고 살더니 성격이 괴팍해지더군. 서서히… 음, 안으로부터의 위기, 그런 게 생긴 거지. 한 2달 넘게 구조대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까 점점 초초해지는 거야. 절대적인 시간으로는 꽤 많이 남았음에도. 나는, 가장 하급자였으니까… 아무 말도 않았는데. 내 선임이랑, 나머지 두 사람은 기수가 같단 말이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평소에 거리낌 없게 지내던 사이였고. 워낙 좁은 곳이라서. 친한 만큼 쉽게 대하는 거지. 다들 그렇잖아? 어느 날에, 한 3달 정도 되는 때에, 선임이랑 나머지 둘이 대판 싸운 적이 있어. "더 이상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물자도 최대 기간으로 잡은 거지, 영양 불균형, 필수 영양소,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건 쌩깐거거든. 그런 거랑, 물 문제까지 합치면 얼마나 더 줄어들지 알 수가 없다는 거지. 요점은, 우리끼리 알아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였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근데, 생각을 해봐. 지진으로 무너진 것도 아니고. 아예 적색 경보까지 들어오면서 무너진 거란 말이야. 밖에 얼마나 위험한 게 도사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아? 그래서 나머지 둘은 미친 짓 않겠다고 빠졌지. 난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어. 선임이 그러더라. 너라도 같이 하자고. 혼자서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나는, 그냥, 내 생각에는 정중하게, 못하겠다고 빠졌지.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선임은 그냥 벙찐 표정으로 입만 다물더라. 그러더니,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다. 미안하다." 이러면서 자기 방, 원래 창고로 쓰이던 데에 들어갔어.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지. 어쩌면, 하룻낮일 수도 있고.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다음 날에, 벙커에서 그나마 부수기 쉬운 곳, 원래 망가져서 구멍이 뚫린 데를 철판 같은 거로 덧댄 거에 삽으로 후려친 흔적들이 여럿 보이더니, 선배가 보이지 않더라.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방으로 들어갔는데, 죽어 있었어. 천장에 목을 매서. 끔찍하더군. 죽은 사람이랑, 죽은 사람 비슷한 건 많이 봤는데. 그런 느낌은 처음이더라. 이제는 그마저도 무뎌진 게, 웃긴 일이지만.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폐쇄된 환경이고, 벙커의 방들 중 그 어느 곳에도 죽은 걸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밖으로 빼야 했어. 그래서 나랑, 남은 사람들이 그걸 대강 수습하고, 그나마 부수기 쉬웠던 그곳을 깐 다음에 밖에다가 버렸지. 그리고 다시 막아뒀어. 웃긴 일이야. 죽어서야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자 했던 일을 해주다니.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솔직히 말하자면, 선임이 죽은 건 심리적인 문제 말고는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어. 좀 독단적인 사람이었어서 말이야. 나머지 두 사람들이랑 다툼이 잦았거든. 오히려 더 분위기 험악해질 일만 없어진 거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근데, 일이 이렇게 평탄하게 흘러갔으면 서지훈씨랑 정아영씨도 지금 내 옆에 있었겠지. 일이 터졌어.
안성혁2등급 상담심리사 — 무슨 일이었습니까?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선임이 죽고 한 몇주 정도 뒤에, 시신을 처리한 그 구멍이 강하게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가끔, 바깥이랑 통로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구역들이 있단 말이야. 그런 곳에서는 밖의 바람도 자주 불어오기 때문에, 그냥 그런 거려니 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 그런 것 따위, 신경 써봐야 "이렇게 가까운 곳이라면 왜 아직도 구조대가 오지 않은 거지?" 같은 생각만 들어 버리니까. 너무 안일했지.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어, 그 꽃게들 있잖아. 그것들이 덧댄 철판 사이를 비집어 들어오더라고. 그리고 그건 문제가 아니야. 꽃게 정도야 보기 쉬운 거고, 그렇게 위험한 것들도 아니거든. 그것들이 왜 이곳으로 오고 있느냐가 문제야. 살면서 그렇게 많은 꽃게, 아니, 그렇게 많은 기계들이 같은 장소에 있는 건 처음 봤어. 그것들이 비집고 들어오던 틈새는 점점 벌려지기 시작했고, 끝내 완전히 뜯어졌어. 그렇게 되니까 벙커 안은 기어 다니는 작은 기계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그게 못해도 무릎 높이까지는 쌓여 있어서 도통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리고, 그거. 난 그걸 봐버렸어. 꽃게들이 대체 뭘 피해 이곳으로 도망 온 건지 알아버렸다고. 그건 선임이었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선임이라고는 더 이상 부를 수 없겠지. 아마, 그건 사람을 뒤집어 쓴 무언가일 테니까. 지하엔 그런 것들이 많거든. 그건 선배의 시신을 뒤집어 쓰고, 등 뒤에는 장총을 맸어. 몸은 이미 사람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었어. 시신의 자연적 부패는 제하더라도, 몸에서 살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갈변해서 뾰족하고 단단해졌고, 나머지 부분에는 이상한 철심 같은 게 자라 있었으니까.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순식간에, 그 괴물은 등에 맨 총을 쥐어 들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서지훈씨를 총 끝에 달린 칼로 꿰뚫고 낚아 채갔어. 물론 서지훈씨도 저항했겠지. 근데, 이미 그때는 바닥에 가득 들어찬 꽃게들 대문에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어. 그렇게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람 하나가 잡혀갔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렇게 사람이 잡혀갔는데, 그 괴물놈은 곧장 사라져 버렸어. 벙커에는 오직 핏자국만 남기고. 시설 안으로 쳐들어온 꽃게들은 몇시간이 지나니까 다들 알아서 밖으로 나가던데. 그 이후에 그 괴물이 들어온 구멍을 들여다 보니까. 앞이 어두컴컴하니 한치도 보이지 않는 거야. 사람 한 명이 간신히 기어서 지나다닐 법한 환풍구 정도만한 크기더라. 바닥에는 곰팡이 자국이랑, 시취가 베었고, 또 그 괴물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알 수가 없어서 새로이 보강하고 완전히 막아버렸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렇게 해서, 고작 4달만에, 분명 1년이 지나도 끄덕 없을 거라던 사람들이 2명이나 없어져 버렸어. 남은 사람은 나랑, 정아영씨. 음, 그리고 정아영씨는 그 4달 동안 많이 바뀌었었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정아영씨는 통합물류부 사람이야. 나머지 사람들이야 전부 무장 인원이거나, 지하로 내려갈 일이 잦았는데. 정아영씨는 주로 밖에서 행정 업무를 하던 사람이라 제일 비위도 약하고 많이 심약했어. 그리고 그런 사람이 이런 극한 상황에 몇달 넘게 쳐해 있다 보니까, 많이 신경질적이게 되었지. 하, 아직도 생각나는군. 나머지 두 사람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사람이 점점… 어, 이상해지더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난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았으니까. 전부 나보다 상급자기도 했고. 그냥 태생적으로 이렇게 태어난 모양이야. 지금 내가 입에 담아두고 있는 것들은, 그 지하에서 6개월 동안 모아둔 것들이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서지훈씨가 죽고 1달 정도 뒤에, 이번에는 정아영씨가 그러더라. "이러다가 정말 영영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진지하게, 다른 탈출로를 찾아봐야 한다." 뭐, 뻔하잖아. 선임이 말하던 거를, 2달이 지나서야 다시 하자고 하더군. 근데, 끄대는 나도 별 수가 없었어. 아니면 생각이 없었거나. 정아영씨랑 괜한 불화까지 만들어 가고 싶지도 않았고, 나도 슬슬 불안해지던 참이었거든.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구조대를 기다리는 거 말고 가능한 방법은 3가지였는데. 하나, 닫힌 벙커 문을 다시 열기. 둘, 그 덧댄 철판 다시 뜯어내기. 셋, 아예 새로운 곳으로 가기.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닫힌 벙커 문을 다시 여는 건, 정말 쓸모없는 짓일 거야. 처음에 갇힐 때 그곳 입구 바로 앞까지 무너진 걸 똑똑히 봤으니까. 아마, 문틀이 미세하게 뒤틀리기만 했어도 제대로 열 수 없었겠지. 설령 연다고 해도 문 앞에는 그냥 콘크리트와 흙더미만 있을 게 뻔했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렇다고 덧댄 철판을 다시 뜯어내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야. 서지훈씨를 잡아간 그 괴물이 거기로 왔었고, 다시 들여다 봤을 때 선임의 시신도 없던 걸 보면 거긴 그 괴물이 우연히 들른 곳이 아니라 원래부터 사냥터로 삼던 곳이었을 거야. 그리고, 통로 자체도 너무 좁아서 거길 통해 탈출한다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었어.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가장 불확실하지만, 그나마 안전하고, 또 현실성 있던 건 세 번째 안이었어. 아예 새로운 길을 뚫는 것. 천장으로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해봐야 어차피 막혀 있을 테니까 별 의미도 없지. 그냥, 이것도 다른 바닥을 뚫는다는 소리였어. 근데, 시설 아래에는 지하로 향하는 통로나, 아니면 지하 공동이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아래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그런 것들이 나올 테고, 그게 나오면 그냥 사람 사는 데까지 가거나 곧장 밖으로 향하면 그만이라는 거였지.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꽤 그럴싸해 보여서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말이야.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 한 9일 동안은 계속 땅만 팠어. 처음에 벙커 바닥을 뚫는 게 시간이 제일 오래 걸렸으니까. 그거만 뚫고 난 이후부터는 그냥 쭉쭉 뚫었지.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10일째 되는 날에, 정아영씨가 그 깊은 곳에서 삽으로 땅을 파고 있는데, 뭐가 걸리는 소리가 나는 거야. 뭐가… 막, 플라스틱, 유리 같은 게 깨지는 소리가 나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땅만 팠어. 난 그때 위에 있었는데, 아래에서 크게 깨지는 소리가 나는 거야. 뭔가 하고 쓱 살펴보닌까, 정아영씨는 이미 없어지고, 땅굴에 붉은색 덩어리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위로 올라오는 게 보여. 엄청 당황해서, 그냥 손에 쥐는 건 뭐든 그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어. 막으려고. 그렇게, 주변 뜯어낸 철판이랑, 흙더미랑, 2개월치 물자를 거기다 전부 던져 놓으니까 잠잠해지더라.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그 이후로는 그냥, 그렇게 있었어. 의욕을 잃은 거지. 다시 생각해보면 그 단말기를 가져오는 거였는데 말이야. 그럼 못해도, 3명은 살았을 테니까. 우리는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때마침 구조대가 온 거고. 그렇게 되었지.
신재형舊제37K기지 직원 — 아직도 생각하고 있어. 선임의 시신은 왜 그렇게 된 거지? 그건 또 왜 서지훈씨를 잡아갔고, 또 정아영씨를 잡아먹은 그 붉은색 덩어리는 뭐였지? 그러니까, 저 벙커 아래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거지? 아, 내가 조금 더 여기 일찍 입사했다면 알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