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 이 박사. 나 이 기자예요. 이승웅 기자.
그래요, 오랜만이에요. 다니던 데는 이제 퇴직해 가지고 사실 이젠 기자도 아니긴 해요. 조만간 내가 신문사 하나 차리려고 하니까 지금은 그냥 기자라 하고, 되면 그땐 대표라 해요.
네, 네. 기자님. 무슨 일로 전화 주셨는지요?
이 박사가 연구 입안서 제출했다는 거 들어서 그거 보고 전화 줬던 거예요. 그, 격리 절차 새로 수립할 근거 찾는다던 거.
예, 그 코스티코스테론… 스트레스. 동물들이 스트레스 얼마나 받는지 측정해서 너무 높다 싶으면 격리 절차 새로 수립하는 걸 고려해야 할 거라고 했죠. 기자님이 그걸로 연락 주신 거라면… 1981들 때문이지요?
저도 입안서 쓰면서 1981들 생각하기는 했어요. 아직 저희 기지 쪽 담당도 아니다 보니, 이번 기회에 시설도 새로 뽑아서 저희 쪽이나 아니면 더 적합하게 할 수 있는 쪽 담당으로 관리 이전도 시키려고요. 저도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이 박사, 청승 맞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이야기 좀 들어줘요. 내가 그거 때문에, 덜컥 채용 당해가지고 요원 일 하면서 한 게 앉아서 신문 기사 검열하던 게 다라, 재단 일 하는 사람 치고 이런 거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게 이 박사 뿐이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얘네들 이야기를 좀 쭉 하고 싶은데, 내 예기 들어 줄 시간이 되겠어요?
예, 기자님. 1981한테 제일 관심 기울이셨던 분이니까, 기자님 이야기도 들어 드려야겠지요. 말씀해 보세요. 저 시간 많습니다.
고마워요, 이 박사. 나도 편안하게, 길게 이야기 좀 할게요, 그럼. 내가 팔 십 일년에, 광주에서 곰 때문에 난리난 뒤에 여주에서 일웅이, 브라문이 제보 받아다 취재해 가지고 보도하려던 게 걸려서 나는 재단 요원되고 브라문이는 1981이 되고 했잖아요. 내가 그때부터 마음이 편치가 않았어요. 당연히, 곰이나 되는 게 우리에서 막 나오고 그러면 위험해서라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게 맞기는 한데, 그래도.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영 편치도 않고 해서 나중에 찾아갈 수 있으면 잘 지내나 보기나 해야지 하고 있다가, 이 년 뒤에 또 누가 화성에서 곰을 봤다, 그래 가지고 달려가 봤어요. 가 가지고 보니까 거기 또 곰 농장이 있길래 찾아가서 "이 동네에 곰이 나왔다 하던데 아는 거 없냐. 위험하기도 위험할 거고 요즘 웅담도 비싸다 그러던데, 내가 아는 포수가 있어서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운을 띄워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까 이 사람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곰이 하나가 없어졌다. 문 단속은 잘 되어 있고 한 우리에 같이 있던 곰은 멀쩡히 있는데 혼자 없어져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여기에 천연기념물 곰이 돌아다닐 리가 없다. 도망간 내 곰이다." 그러곤 더 하는 이야기가, 그 해에 설악산에서 야생 반달곰이 총 맞아 죽어 놓으니까 "경찰이 오면 야생 곰이니, 사육 곰이니, 내 곰이 맞느니, 곰 관리를 제대로 했느니 하는 걸로 피곤해진다." 하면서 "죽어도 웅담이랑 고기로 팔면 되니까 경찰 몰래 그 포수를 불러다 좀 잡아줄 수 없겠냐, 곰끼리 싸우다 죽은 걸로 하고 판 값은 아쉽잖게 챙겨 주겠다." 이래요.
잠시만요, 기자님. 1981 문서 좀 살펴 볼 테니까 보면서 말씀 좀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여튼. 그 이야기 듣고 아, 이거 또 브라문이 같은 게 나왔구나. 싶어서 바로 위에다 연락했죠. 그래서 재단 사람들 몇 명이서 와서 근처를 뒤져다가 이틀 간인가 만에 그 곰을 찾아서 잡아갔어요. 그게 이웅이고, 그때 담당 주임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 며칠만 보다 가자" 해서 요원들을 배치를 시켰더니 이웅이랑 같은 우리에 있던 곰이 감시서고 있던 요원 한 사람이랑 자리를 바꿔서 밖으로 나간 걸 잡았다 하더라고요. 그게 또 삼웅이였고.
그땐 이런 게 또 있을 줄도 몰라서 대비가 안 되어 있다 보니까 격리실이 부족해 가지고 조건 맞는 격리실을 찾던가, 새로 만들던가 하기 전까지 브라문이 격리실 한 칸을 나눠다 썼어요. 그래 놓으니까 한 이틀 간 안에 먹이도 못 넣어주고, 변을 치우지도 못하고 해서 완전 엉망이 되어 있었다고 그러는데, 급한 대로 컨테이너 안에다 벽 하나 더 놓고 장치를 달아서 격리실로 쓸 수 있겠다, 해서 컨테이너를 하나 구해다 이웅이를 거기다 옮겼더니 또 며칠 안 돼서 삼웅이가 덜컥 들어와 가지고. 같이 살던 애들이니까 같이 넣어도 안 되겠나 해서 격리실 두 개 더 지어다 얘네들 따로 넣을 때까지만 같이 넣어두자 해서 그렇게 했다더라고요.
여튼 그래서 삼웅이까지 격리가 되고 나서 아까 그 담당 주임, 허용평 주임이 내 일하는 곳에 찾아 왔어요. 와서 하는 이야기가, "이름에도 곰 웅(熊)자가 들어가는 게 당신이 촉이 있는 것 같으니까 곰 농장 감시를 한 번 맡아 보겠느냐, 우리가 곰 키우는 곳들 숫자는 대충 조사를 해 놨는데 이런 게 더 있는 게 증명이 됐으니 감시할 사람을 좀 뽑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하겠다 했죠. 하겠다 하면서, "내가 찾아가서 걔네들을 살펴봐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그럼 이제 같이 업무를 보는 거니까 접근 허가를 내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주 중에 바로 시간을 내 가지고 찾아 가 봤죠. 가서 봤더니,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요. 벽에 창 달린 거랑 씨씨티브이 가지고 안을 보니까 그냥 순 교도소 독방 같은 데에서 볼을 벽에 대고는 이쪽으로 쭉 갔다가 코가 모서리에 닿으면 몸을 돌려서 저쪽으로 다시 쭉 갔다가. 이러는 게 다더라고요. 그러기는 동물원 곰들도 갇혀서 할 게 없으니까 그러기는 하는데, 그런 데는 그래도 철창으로 되어 있어서 곰들이 밖은 볼 수 있잖아요. 여긴 다 벽으로 막아 놓으니까 그러지도 못해요. 브라문이 격리실 안을 봤더니 어찌나 문질러 댔는지 벽에 볼을 대고 다닌 자국이, 시커멓게 줄이 쭉 그어져 있어요.
내가 그때서야 브라문이를 처음 직접 본 거였는데, 보고 나서 허 주임한테 "이건 좀 아니지 않냐." 했더니 "위에서 제일 효율적이라고 해 놓은 거라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면서 "그래도 얘들 격리된 숫자가 늘어나고 그러면 처우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냐, 그러니 당신이 힘을 좀 써 줘라."해서, 나도 별 소리는 못 하고 돌아갔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죠. 어디서 곰 비슷한 걸 봤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바로 가 보고, 일 없을 땐 곰 농장이고, 동물원이고 돌아 다니면서 곰 숫자 파악을 해 놓고. "곰 조사하는 공무원이냐"하는 소리 듣도록 다녔어요. 그러다 또 이 년 지나서 팔 십 오년에 파주에서, 반달곰 둘이 도망을 쳤다고 그 집 아들이 나한테 연락을 했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까 잠금 장치 다 되어 있는데도 나갔다, 하니까 바로 허 주임한테 직통으로 연락을 날리고 나도 같이 파주로 갔어요.
파주에 와서 흔적을 살펴보니까 나간 둘이 같이 간 게 아니고, 농장 나오자 마자 하나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으로 갔다더라고요. 그래서 조를 짜서 수색견을 풀어 잡기는 금방 잡아갔어요. 그 둘이 사웅이랑 오웅인데, 허 주임이 농장 주인하고 얘기를 해 보니까 둘이서 서로 옆 우리를 쓰던 형제다. 그러니까 둘을 실어 가면서 내가 얘기를 했죠.
"우리가 데려가면 곰들이 혼자 있으니까 심심해서 더 그러는 게 아니겠냐, 자매 사이인 이웅이랑 삼웅이도 합방하면서 별 탈은 없었는데 둘이서 서로 보고 산 형제 사이라니까 새로 넣는 김에 한번 합방을 해서 어떤지 보자."하니까 허 주임이 한 번 해 보겠데요.
그랬죠, 한 격리실에 넣어 놓으니까 별 일은 없는데, 둘이 같은 공간에 있으려고를 안 해요. 계속 각방을 쓰려고 하니까 먹이를 주려던 변을 치우려던 안에 들어가려면 얘네 둘을 한 방으로 몰아 넣어야 하는데, 도통 그러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땐 격리실이 모자라던 건 아닌 상황이여가지고 한 이틀 정도 그러다가 "밥도 제대로 못 주니 별 수가 없다"고 해서 각방 사용으로 돌렸죠.
그래서 이게 별 수가 없구나, 하면서 일은 일대로 하면서 가끔 찾아가서 살펴보고. 그러다가 삼 년 지나서 올림픽한 해에 갑자기 허 주임한테 연락이 왔어요. "지금 인천항에 배 하나가 들어와 있는데 안에 곰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는데 차 사고가 나서 늦어질 거 같으니까 먼저 가서 좀 살펴 봐 줄 수 있겠냐." 해서 내가 바로 갔어요.
몇 년 전에 상공부가 곰 수입 못 하게 했는데 웬 곰인가, 하면서 갔더니만 상황이 좀 심각했어요. 사람이 안에서 곰한테 심하게 다치기도 다쳤고. 또 선실에 사람들이 대피를 해 있는데 곰이 밖으로 나가는 쪽 통로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하고. 한참 그러고 있다가, 허 주임이 수면 가스차를 가져와 가지고 배 안에다 쏴 넣고 해서 겨우 들어가서 축 쳐진 곰을 끌어낸 다음에 선원들하고 얘기를 해 보니까 그게 태국에서 온 배라고 그러는데, 수습하면서 화물칸에 들어가 보니까 뭔가 가려진 거, 들춰 보니까 살아 있는 곰이 수 십마리는 있어요.
상황 파악한다고 배에 올라온 항만 직원, 사실 우리 쪽 사람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태국에서 온 건 온 거고 숨겨 놓은 곰들은 다 뭐냐, 수출입 허가는 받고 가져 온 거냐."하고 따져 물으니까 이 사람들이 말을 안 해요. 말은 안 하는데 잡아 놓은 곰. 육웅이는 마취가 되어있어 놓으니 허 주임이 일단 빨리 가져다 놔야겠다. 해서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 보기로 하고 육웅이 옮기는 걸 거든다고 인천항에서 나왔죠.
네, 네, 기자님. 팔 십 팔 년에 문서 상에서는 '올림픽 출전 선수 보양식용'으로 곰들을 밀수했다고 되어 있는데, 자세히 이야기 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이야기도 계속 할게요. 내가 그래도 본업은 기자고 하니까, 그게 뭔지 조사는 해야겠다 싶어서 며칠 지나서 항만 직원한테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하는 이야기가 웬 양복 빼입은 사람들이 항만에 찾아와서는 그 사람들하고 곰들을 다 데려 가면서 입단속을 시켰다 해요.
듣고는 "이게 뭐지?"싶어서 상공부, 관세청 이런 곳에 알아 본다고 전화를 몇 번 돌리고 했는데 올림픽 열리고 얼마 안 됐을 때, 일하는 중에 누가 날 찾는다 해서 나가 보니까 문 밖에 웬 양복 입은 떡대가 둘이 떡 서있더라고요.
그 둘이서 나를 딱 내려 보면서는 "당신이 이승웅 기자냐."하고 묻는 거에 "예, 내가 이승웅이다."하고 대답은 했는데 "아, 내가 민감한 걸 건드렸구나." 싶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럼 따라 와 봐라." 해서 따라갔더니 내가 일하는 건물 근처 전파상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거기 전파상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올림픽 방송 나오는 걸 딱 가리키면서 "다 좋은 일에 쓴 거다, 더 알려고 하지 마라." 하고 그리 얘기를 해요.
그래서 그걸 정확히 누가 밀수를 한 건지는 몰라도 올림픽 선수들 먹이겠다고 밀수를 했구나 싶어졌어요. 그때 곰 가격이 마리 당 몇 백 불이었는데, 그런 걸 몇 십 마리 씩 화물선을 써 가면서 밀수를 하고서는 이런 식으로 알아 보려고 하는 것까지 막는 걸 보면 내가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땐 그렇게 넘어 갔는데, 몇 년 지나서 곰 관련 해서 연락하다 알게 된 외국 사람 하나가 WWF에서 낸 곰 관련된 보고서라고 나한테 영어로 쭉 적힌 걸 하나 주더라고요. 거기 보니까 "한국에서 올림픽 선수 몸 보신시킨다고 곰 서른 마리를 밀수했다"고 태국 사람이 진술을 한 게 실려 있어요. 그걸 보고 나서 내가 본 게 그거였나 보다 싶어졌죠. 그렇게 해서 문서에 그렇게 적힌 거에요. 정확히 누가 밀수를 한 건지는 아직도 몰라도.
그런 거였어요. 육웅이 성질도 유독 사나웠고 그 뒤에 한 90년대 중반이었나, 한국 관광객이 단체로 태국에서 곰을 잡아 먹었던 게 걸려서 뉴스로 난 게 있었는데 그때 기사 보면 "야생 곰을 잡아다 물에 빠뜨려 죽이고 배를 갈라서 웅담 꺼내는 걸 보여줬다"고 했거든요. 그런 걸 보면 그 육웅이랑 다른 곰들도 동남아 야생에서 잡혀 왔었을 거예요.
그때 키우는 곰이 한국에도 수 백 마리는 있는데 굳이 그렇게 밀수를 해 온 걸 보면 뭐, 팔 십 일 년에 광주 반달곰이랑 팔 십 삼 년에 설악산 반달곰 웅담에 돈 있다는 사람들이 잔뜩 달려 들었던 거 보면 그렇잖아요. '야생' 곰이 약효가 더 좋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토종 곰은 천연기념물도 천연기념물인거고 설악산 반달곰 뒤로는 발견도 안 되는 와중에 키우던 곰을 잡아다 놓고 "야생 곰을 잡았다"고 사기를 치는 것도 있어 놓으니 그랬던 거 아니었겠어요? 다시 봐도 말도 안 되는 짓들을 한 거예요. 그냥 우루사나 사 먹으면 될 일을…
맞는 말씀입니다. 그 뒤에도 또 산 채로 웅담 채취 당하다 확보된 곰이 있었지요?
그래요, 칠웅이. 곰을 죽이는 게 아까워서 그랬는지, 누가 처음 그런 생각을 한 건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곰 배에 호스를 꽂아다 쓸개즙 똑똑 떨어지는 걸 모으는 게 '신기술'이다, 그러면서 신문에다 광고를 하면서 곰 농장하는 사람이랑 그걸 또 따라하는 사람들 농장들이 생겨 놓은게 MBC에서 방송을 타 가지고 경기도청에서 이건 "동물 보호법 위반이다"라고 해서 폐쇄 명령을 내린 곳에서 찾았죠.
경기도청에 있던 우리 요원이 도청에서 관할 구역에다 명령 내리기 전에 미리 나한테 귀띔을 해 줘서, 폐쇄 전에 확인은 해 보자 싶어져 가지고 나랑 허 주임이랑 갈라서 허 주임은 안양에 가고 나는 송탄에 가 봤더니 이 사람들이 곰은 또 다른 데로 옮길 궁리를 하는 모양이었더라고요. 막 시끄럽기도 시끄럽고, 아무튼 정신 없어 보이던 중에 칠웅이가 능력을 써서 달아났어요.
바로 허 주임한테 연락해 가지고 쫓았는데, 수색견으로 찾기는 금방 찾았어도 제 딴에도 이물감이 굉장했는지 바위 틈 깊숙한 데 틀어박혀 가지고 자기 배를 계속 핥고 있어서 빼 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일단 폐쇄 되기 전에 우리가 빼낸 거라 그 송탄 농장 폐쇄 되면서 거기 곰이 몇 마리가 있었다고 보도 나온 거에 칠웅이는 빠져있었을 거고… 곰 쓸개 즙을 산 채로 모아도 수지 타산이 안 맞아서 돼지 쓸개 즙을 섞어다 속여 팔았을 거다, 하는 말도 있었는데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때 또 화제가 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었는지 신문 사설에서는 "그게 돼지고기, 소고기 먹는 거랑 다를 게 뭐냐, 곰이 사람인 줄 아냐."하는 식으로 난 걸 본 기억이 있는데. 그냥 짧게 말해서 굳이 곰을 죽이느니 호스를 꽂니 안 해도 화학 합성으로 웅담이랑 성분 똑같은 우루사를 만들 수 있는데, 가축도 아닌 멀리 뛰어 다니는 게 습성인 야생 동물한테 그럴 필요도 없는 거고. 또 뭐든 덜 죽이는 게 나을 테니 안 할 수 있는 거면 안 하는 게 맞는 거죠. 난 지금도 동의 못해요. 그런 이야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살생은 줄일 수 있을 수록 좋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저하고 기자님이 처음 뵙게 된 이야기가 되려나요? 그 말레이곰…
그렇겠네요, 칠웅이 뒤에 이 박사를 만났죠. 그때 그 팔웅이를 처음 찾은 게 이 박사였죠?
예, 제가 갓 721이 담당 연구원 됐을 때에, 지금은 721이 목에 걸어 놓은 위치추적기가 상당히 정밀한데 그땐 영 문제가 많아서 직접 흔적 추적한다고 대구에 가 있었을 때네요. 전날 비가 심하게 오기도 했던 데다 날도 추워서 저도 조심해서 다니다가, 숲에서 시커먼 게 뒤뚱거리면서 다니던 게 있어서 가 봤더니 말레이곰이었지요.
말레이곰이 왜 있는 거지? 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왼쪽 앞다리 빼고 다리가 없는 채로 돌아다니다가 순간이동 하듯이 나무 위로 갑자기 올라가던 걸 보고 놀랐던 게 기억나네요. 나무 위에서 제대로 붙잡고 있을 다리가 하나 밖에 없어서 금방 떨어지고, 또 다시 올라가고, 하는 걸 반복하기는 했지만요.
그걸 보고 위에 연락을 한다고 하긴 했는데, 전파가 안 잡혀서 전파 잡히는 곳 찾느라 애 먹은 기억도 나네요.
그때 허 주임은 다른 데로 발령나서 없고 박원일 주임이라고, 신참 주임이 와 있었어요. 주임은 주임인데 경험도 없고 거리도 있으니까 이 박사 연락 받고 제일 빨리 갈 수 있는 대구 쪽 동물 SCP 담당 요원이 그쪽으로 가고, 나는 근처에 있는 곰 농장들 뒤져서 출처 파악했죠. 제일 가까운 데부터 가서 계속 캐물어 가지고 예기를 들어 보니까 "곰이 없어지긴 했는데 크기도 작은 말레이곰이 다리도 하나 뿐인 완전 불구라 누굴 해치지도 못 할거다."하고 실토를 하더라고요.
그건 또 어쩌다 그렇게 된 거냐, 하니까 말레이곰이랑 반달곰이 서로 옆 우리를 썼는데, 어떻게 넘어간 건지는 몰라도 그 팔웅이가 어릴 때 반달곰 우리에 들어갔다가. 덩치부터 상대가 안 되는 통에 있는 대로 다 물어 뜯겨서 숨만 붙어 있던 걸 겨우 빼내서 살린다고 살린 거다, 그래서 다리 하나만 겨우 살렸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이야기 듣고 나서 다른 사람들한테 뒷처리 부탁하고, 나는 최초 목격자 면담한다고 이 박사 만났던 거죠.
이 박사도 알테고, 문서에도 그리 젹혀있겠지만. 팔웅이는 기지로 옮기고 하루만에 안락사됐어요. 그런 몸으로 전날에 비란 비는 다 맞고 돌아다니면서 저체온증에 걸린데다 옮기는 동안 이게 더 악화된 건지, 마취제가 풀릴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깨어나질 않았다더라고요. 말레이곰은 동남아에 살아서 동면도 안 한다니까 동면하는 것도 아니었을테고, 그래서 결국 이건 못 살리겠다. 하고 안락사를 했죠.
이것 때문에 격리실 새로 확보한다고 기존에 있던 개체를 합사를 시도했다가 부상을 입었다고도 되어 있는데, 그 이야기도 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그때 대구서 이 박사 만나고 있었을 때라 직접 보진 못했고 이야기만 들었는데, 막 "곰이 하나가 더 오고 있다" 그래서 격리실 새로 만들어 놓은 것들 미리 점검을 했는데 만들어만 놓고 몇 년 째 쓰질 않았더니 문 쪽이 잘 안 열리고, 열쇠가 없고, 뭐 그런 식으로 하자가 몇 개 발견이 됐다 해요. 그래도 당장 격리실 하나는 만들어야 하니까 예전에 같이 지낸 이웅이랑 삼웅이를 같이 넣어서 격리실 하나를 공실로 만들자, 해서 둘을 몇 년 만에 합방을 시켰는데, 그래도 중간문이라도 닫아두고 각방을 쓰게 했으면 괜찮았을 건데, 그래버리면 사람이 안에 못 들어 가서 밥도 못 주니까. 괜찮겠거니 하고 문을 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더니만 둘이서 마주 보다가 싸움이 났어요. 원래 곰들이 같이 놔 두면 서로 씨름하듯이 앞다리로 잡고 엎치락뒤치락거리기는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완전히 이를 다 드러내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큰일 났다 싶어서 마취총 총안구로 안에 물을 쏴 넣어 보려고도 하고, 아무튼 그랬다는데. 밖에서는 뭘 제대로 할 수도 없어 놓으니까 지켜만 보다가 둘이 떨어졌다 싶으니까 바로 문 닫고 분리를 시켰다고 했죠.
그래 놓고 살펴보니까 이웅이가 다리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 다리를 절었다 그래요. 들어가서 보니까 물려서 인대가 살짝 나간 모양이었다는데,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 적당히 조치를 해 줬는데 얘가 치료해 놓은 쪽을 계속 물고, 빨고, 긁고 해서 치료가 제대로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이웅이가 다리를 절면서 걷게 됐어요. 팔웅이도 안락사 돼 놓으니까 둘이 다시 각방을 썼고. 결과만 보면 괜히 이웅이만 절름발이 된 거 뿐이었죠.
안타깝네요. 그런데 그렇게 합사 관련 사고가 나고도 그 다음에도 바로 또 합사를 시도했다가 더 크게 사고가 났다는데, 이것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용인에서 왔던 구웅이랑 십웅이. 팔웅이 일 있고 며칠 안 돼서 용인에 또 곰이 돌아다닌다 해서 바로 출동해서 잡은 게 구웅이였죠. 또 내가 근처에 있는 곰 농장 찾아가서 예기를 들어 보려 하는데 농장 주인이 영 협조를 안 하고 대답도 건성건성으로 해요. 그래도 곰이 거기서 없어진 건 맞다 해서, 그땐 박 주임도 와서 전에 허 주임 하던 데로 더 없는지 확인한다고 며칠 간 요원을 배치시켜 놓겠다고 하는데 농장 주인이 그것도 막 거부를 하더라고요.
어차피 다 기억 소거하고 장부도 적당히 조작할 거였긴 한데, 이 사람 기세에 박 주임이 영 밀려요. 그래서 얘기가 길어지겠다 싶어서 내가 농장 직원 한 사람한테 슬쩍 새해 떡값이다 생각하라고 쥐어주면서 뭔 일 생기면 나한테 바로 얘기해 달라고 하고 철수했고, 구웅이는 하자 있던 격리실 하나가 다 보수되어 가지고 거기 넣었는데, 능력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그, 문서에 적혀 있는 대로 철창 문만 닫아 놓고 그걸 통과하는지 실험을 해 봤는데. 딱히 통과를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구웅이 얘는 능력이 있는 게 맞나, 하고 있었는데 며칠 지나서 곰 하나 없어졌다고 내가 떡값 쥐어준 그 직원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다시 가 가지고 그 직원만 따로 만나서 얘기 들어 보니까 구웅이랑 같이 있던 구웅이 딸이 없어졌다 하더라고요. 다행히 멀리 안 가서 찾기는 바로 찾아서 데려갔는데, 문제는 하자 보수가 왜 그리 오래 걸리는지, 또 남는 격리실이 없어요. 그래도 구웅이랑 십웅이가 모녀 지간에, 같이 있었다 하고, 또 며칠 만에 다시 보는 거니까 괜찮지 않겠나,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서 합방을 시키기로 했죠.
그래도 직전에 이웅이 건도 있었으니까, 최대한 조심한다고 각방에 넣어 두고 철문을 조금만 열어서 일단 얼굴부터 서로 보게 하는 식으로 조심했는데, 문이 슬쩍 열리니까 십웅이랑 구웅이가 서로 막 자리를 바꿔요. 둘이서 그러고 있으니까 누가 능력을 쓰는 건지는 모르겠고, 딱히 경계하는 눈치도 아니어서 계속 지켜보다가 "이쯤이면 괜찮은 거 같다."하고 문을 다 열었는데, 십웅이가 바로 구웅이한테 대뜸 달려들더니 목을 물어버렸어요.
워낙 순식간이라 뭘 할 것도 없었고, 구웅이 몸이 축 쳐지니까 십웅이가 놓고 가더라고요. 큰일 났다 싶어서 십웅이가 다른 방으로 가고 나서 문 닫고 구웅이 상태를 살피니까 목이 피범벅이 돼서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기는 하는데 일어나질 못해요. 그래서 마취시키고 치료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하루 만에 죽었어요.
일단 일은 그렇게 된 거고, 나는 솔직히 우리가 구웅이 능력 쓰는 모습을 본 것도 딱히 없고 해서 얘가 능력이 있었던 건지, 또 그걸 써서 도망간 게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럽긴 해요. 혹여 곰 도축한다고 꺼냈다가 달아난 걸 수도 있고, 그냥 관리 실수로 달아났는데 우리가 "문이 잠겨 있었는데 나간 거냐" 하는 식으로 물으니까 그렇다고 한 걸 수도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마찬가지로 구웅이랑 십웅이가 같이 산 모녀 관계라는 것도 그 직원 이야기만 들은 거다 보니까, 사실은 그냥 남남인 곰들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 뒤로는 딱히 큰 일은 없었을까요?
그 뒤로는 별 일은 없었어요. 일이 저렇게 되어 놓으니까 처음부터 같이 데려온 거 아니면 합방 같은 거는 되도록 하지 말자 하는 분위기가 되긴 했고, 몇 년 간 별 일 없다가… 한 오 년인가 지나서 강원도 원주에 있는 동물원 하나에서 곰이 도망쳤다고 신고 들어온 걸로 십일웅이, 원래 이름이 '고미'인 애를 데려 오긴 했죠. 그런데 그간 있던 애들은 다 반달곰이고, 브라문이만 반달곰이랑 불곰 잡종이고 한 식이었는데 고미는 그냥 불곰에다 수컷이었거든요. 덩치가 전에 있던 애들 배는 되니까 격리실이 영 좁아 보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고미 데려오고 얼마 안 돼 가지고서, 이번에는 브라문이가 뒷다리를 절면서 걷기 시작했어요. 왜 이러나 하고 검진을 계속해 보니까 그게 관절염 같은데, 나이도 있어서 슬슬 퇴행성 질환이 올 법한 데다 추가로 원인을 더 찾아 보니까 거의 한 이 십 년째 딱딱한 바닥에 공간도 좁아서 운동도 제대로 못 하고 살아 놓으니까 관절염이 빠르게 온 것 같더라고요. 치료한다고 약을 쓰긴 썼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딱히 차도도 없는 거고.
대충 브라문이가 다리 절기 시작한 때부터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처음에는 내가 나름대로 쓰다가, 나중에는 내가 이 박사한테 정보를 얻어다가 저 위에다 격리 절차를 이런 걸 해 보자, 저런 걸 해 보자하고 여러 개 계속 써 올리기는 했는데 보낼 때 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는 식으로 답신이 내려와요. 그런 식으로 계속 가니까 나중에 가서는 나이 있는 애들부터 거의 다 관절염이 오더라고요.
그러다가 브라문이는 나중에는 뒷다리를 쓰지도 못하고 질질 끌고만 다녀서, 그러다 다리에 상처 난 게 덧나서 죽었어요. 브라문이가 그렇게 죽고 나서는, 나 때문에 저렇게 된 거 같다 싶어서. 참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뭘 해도 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돼서 결국 1981 담당 업무는 그만 두겠다고 하고 나 대신 곰 농장 감시할 후임 찾아다가 인수인계 해 주고, 그러곤 나왔어요. 부서가 달라져서 딱히 직접 보지는 못하고 가끔 이야기만 후임한테서 전해 듣고 했는데, 들을 때마다 곰 농장이고 우리 격리 방침이고 별 바뀐 게 없다 하니까 안 좋죠. 안 좋아요.
기자님 노력하신 건 제가 제일 잘 압니다. 너무 낙담하지 마시고, 이렇게 길게 예기도 해 주셨으니 제가 최대한 나아지게 해 보겠습니다.
이 박사가 박사 달기 전에, 나 처음 만났을 때 그랬잖아요. 갇혀 있는 거 보기 싫어서 풀려나서 돌아 다니는 거 쫓아다니는 거라고. 이제는 나도 딱 그래요. 이런 식으로 하는 거, 그만 끝 좀 나게 해줘요.
아, 그리고 이 박사.
브라문이, 이 박사 있는 곳에 있어요? 동물 SCP들은 죽으면 거기로 보낸다고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