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972-KO

일련번호: SCP-1972-KO

등급: 안전

특수 격리 절차: SCP-1972-KO는 표준 저위험 개체 격리 금고에 보관한다. SCP-1972-KO를 이용한 실험에는 반드시 4등급 이상 인원의 허가가 필요하며, 변칙성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으로 인해 최소 C등급 이상의 내폭실에서 실험을 진행한다.

설명: SCP-1972-KO는 초상 제약업자 '다도'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흰색의 알약들이다. 일부가 실험에 사용되어 현재 14정이 남아있다. 대상은 시중 판매 중인 수면제 '슬리펠'과 유사한 포장 안에 들어있으나, 포장의 겉면에 있는 본래 상표 대신에 원문 그대로 '다도강도연의 별 되는 약'이라 적혀져 있다.

SCP-1972-KO를 복용 시 나타난 효과는 5분 이내에 나타났으며, 각 개체 간의 형태나 맛, 향, 색 등의 차이점은 구분되지 않았다. 각각의 개체마다 변칙성은 모두 다르게 나타났으나 공통적으로 별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었다. 실험은 적합한 시설이나 인원이 제57K기지 내에 없다는 점으로 인해 근처 기지에서 SCP-1972-KO를 양도받은 후 진행되었다.

복용 시 효과 비고
피험자의 신체 말단이 사라지기 시작함. 피험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약 20분이 소요됨. 이후 피험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실험실 내의 센서들을 확인한 결과, 대기 중 수소 농도가 높아진 것을 확인함.
피험자의 신체 곳곳에 오망성 모양의 반점이 생김. 반점들의 위치와 크기를 대조한 결과, 백조자리의 천체 구성과 동일한 것을 확인.
신체 내부에서 발생한 강한 빛으로 인해 피험자가 발화하여 분사함. 이후 위험성으로 인해 C등급 이상의 내폭실에서 실험하는 것으로 규정이 개정됨.
피험자의 양 관자놀이와 정수리 사이에 고양잇과 동물의 것과 유사한 청각기관이 생김. 동일한 특징을 가진 성한나 조수의 별칭에서 착안한 것으로 추측함.
피험자가 늦반딧불이(Pyrocoelia rufa) 한 개체로 변이함. 효과들 중 예외적으로 별과의 관계성이 약하다 추측했으나, 조사가 진행되며 관계성이 입증됨.

최초 발견 및 확보는 제57K기지 소속 이지해 연구원으로, 같은 기지 내 강도연 연구원으로부터 SCP-1972-KO를 받은 당일, 입수 과정의 증언과 함께 기지에 SCP-1972-KO를 제공하였다. 강도연 연구원의 정체는 '다도'로 추정되며, SCP-1972-KO를 이지해 연구원에게 넘기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기지 내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부록 1: 이지해 연구원과의 면담 기록.

면담 대상: 제57K기지 심리치료부서 소속 이지해 연구원

면담자: 제57K기지 천문학부 소속 비경조 연구원

서론: SCP-1972-KO의 입수 경위 및 강도연 연구원과 이지해 연구원의 관계에 대한 조사.

<기록 시작>

비경조 연구원: 그래. 도연이가 너한테 뭘 했다고?

이지해 연구원: 수면제를 줬지.

비경조 연구원: 그리고?

이지해 연구원: 자기한테는 필요 없대.

비경조 연구원: 그렇겠지. 불면증 있는 건 너잖아.

이지해 연구원: 그런 의미가 아니야.

비경조 연구원: 그럼 고백이야? 새벽 3시에 둘이서 오붓하게 참 감성적인 산책을 하고 오셨구만.

이지해 연구원: 내가 고민 상담이나 하자고 널 불러서 면담하고 있는 건 아닐 텐데.

비경조 연구원: 뭐, 그렇지. 하여튼 간에 재미없는 놈이라니까. 그래서 약은 어디 있는데?

이지해 연구원이 주머니를 뒤지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가벼운 물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소리가 난다.

비경조 연구원: 다도… 강도연의 별 되는 약?

이지해 연구원: 이제 무슨 의미인지 좀 알겠어?

비경조 연구원: 우리 기지 안에 스파이가 있단 거야?

이지해 연구원: 아니. 옆을 읽어봐.

비경조 연구원: 별 되는 약? 이게 뭐 어때서?

이지해 연구원: 당장 찾아야 돼. 도연이.

비경조 연구원: 아니. 더 이해가 안 되는데. 별이 된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설마 너보고 죽으라 준 건 아닐 테고, 다도야 별명이니까 그렇다 치면 그냥 수면제일 건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지해 연구원: 도연이 아직 기지 안 들어왔지.

비경조 연구원: 그게 궁금하면 기숙사에 갔어야지. 여기 본관이 아니라.

이지해 연구원: 사라졌어.

비경조 연구원: 내가 차마 친구에게 험한 말은 못하겠고, 그냥 잠 덜 자서 이러는 거 같으니까. 야근하는 사람 두고 그냥 들어가 봐. 너도 요새 상담 가이드 한다고 잠 못 잤잖아.

이지해 연구원: 찾아야 한다고. 당장. 느낌이 안 좋아. 마치 그 때 같아.

비경조 연구원: 그 때? 잠시, 이… 아니. 피곤해서 먼저 들어간 거겠지. 수면제야 커피처럼 다들 흔히 들고 다니는 거고. 아니면 뭐 싸우기라도 했어? 그런 거야?

이지해 연구원: 아니. 전혀. 도와줄 생각 없으면 나 혼자라도 다시 찾아볼게.

비경조 연구원: 다시? 그 넓은 곳을 다 찾아봤다고? 혼자서? 도연이 걔는 괜찮을 거라니까. 제발 좀 쉬어라. 응?

이지해 연구원: 그 때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비경조 연구원: 그 때? 아니, 이 미친놈아. 아니지. 방금 건 사과할게. 원래 우리 기지는 좀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든 그런 사람들 와서 휴양하고 가는 곳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많이 힘들어서 도저히 못 버티던 한 명이 왔을 뿐이야.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도대체 왜 그런 일에 죄책감을 가지는 거야?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그냥 도연이가 진짜 다도여서 널 세뇌시킨 거라 하자. 차라리 그게 말이 되겠다. 온갖 약 다 만들었다니까 그런 약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이지해 연구원: 나가 볼게.

의자 바퀴가 밀리는 소리가 난다. 이지해 연구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소리가 들린다.

비경조 연구원: 야. 야! 어디가 미친놈아! 진짜 너랑 도연이랑 스파이냐?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진짜. 안 되겠다. 도연이 깨워야겠어. 있으면 기숙사에나 있겠지 도대체 뭔…

<기록 종료>

결론: 이지해 연구원과의 면담을 종료한 후 강도연 연구원과의 면담을 준비하려 했으나, 기지 시설 내 어디에서도 강도연 연구원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5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강도연 연구원이 나타나지 않자 비상경보를 발령하였으나, 결국 강도연 연구원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부록 2: 강도연 연구원에 관한 음성 기록.

2023년 4월 24일, 신규 인원 부임 설명회가 끝난 후 진행된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음성 기록. 강도연 연구원과 이지해 연구원의 첫 대화가 기록되어있다.

<기록 시작>

이지해 연구원: 자, 하늘 아래 으뜸이고 땅 위에 버금가는 제57K기지까지 먼 길 오신 분들 모두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제 소개는 아까 했으니 건너뛰고, 여기 오신 여러분은 모두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될 겁니다.

이지해 연구원: 프로그램 중에 있었던 일이나 대화는 모두 비밀이 보장되지만, 저랑 함께하는 중에는 항상 기록이 될 겁니다. 사생활 침해 방지를 위해 음성만이 기록되고요, 기지를 떠난 이후엔 일정 기간 동안 보관 후 기록이 삭제됩니다.

이지해 연구원: 사실 대화를 분석하면서 여러분에게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거니 너무 부담 가지진 마시고, 혹시나 불편하신 분은 저에게 말씀해주시면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여러분은 편하게 다가와 주시면 됩니다. 이제 기지를 돌아다니면서 각 시설을 설명할 건데, 궁금하신 점이나 질문 있으신 분, 그리고 화장실 가고 싶으신 분은 자유롭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기연조 보안 요원: 질문 있습니다. 제57K기지는 보안 요원의 수가 매우 적다고 들었습니다. 격리 파기 같은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합니까?

이지해 연구원: 보안 담당 인원이 매우 적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인원으로도 충분할 만큼 안전한 SCP를 격리 중이고, 우주에 있는 SCP의 관측처럼 격리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격리 파기 같은 상황은 크게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 질문?

선영리 연구원: 여기 명물이 있다고 그러던데요.

이지해 연구원: 명물이라기보단 기지의 비공식 대스타죠. 아니면 혹시 자연환경이나 반딧불이 같은 걸 말씀하신 건가요?

선영리 연구원: 글쎄요. 소문만 들어서.

이지해 연구원: 둘 모두 프로그램을 잘 따라오다 보면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아, 셋 모두요. 셋 모두 마음에 드실 겁니다. 다음 질문?

김준청 현장 요원: 프로그램 진행 과정은 어떻게 되죠?

이지해 연구원: 우선 제가 담당한 일주일 중 특별한 것들만 손꼽아 말해 드리자면 오늘 밤에 계획된 은하수 관측, 삼 일째에 망원경 투어와 행성 표면 관측, 그리고 오 일째에 우주의 소리 듣기가 있고, 마지막 날에는 단체 궤적 촬영 이후 반딧불이 구경이 있습니다. 원래 마지막 프로그램은 새벽에 진행되는데, 다들 다음 날에 피곤해하니까 다음 프로그램에 차질이 자주 생겨 이번 프로그램부턴 지원자에 한해서만 진행하는 걸로 결정됐습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 있으신 분?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는 햄스터 데려와도 되는지 궁금해요!

이지해 연구원: 어… 그 부분은 전달받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동물을 이용한 프로그램도 몇 차례 논의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반려 동물을 기르는 것도 몇 가지 조건과 수칙만 잘 지킨다면 가능하니까, 네. 될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설 설명 투어를 할테니 낙오자가 생기지 않게 서로 잘 살펴주면서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기록 종료>

2023년 04월 26일, 본관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의 휴식 시간 중 이루어진 이지해 연구원과 비경조 연구원, 그리고 성한나 조수의 대화. 이 대화를 기점으로 이지해 연구원이 강도연 연구원에게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 시작>

비경조 연구원: 그래. 할 만 하냐?

이지해 연구원: 항상 그렇지. 상담하면서 상상도 못한 얘기도 많이 듣고, 밤에 연락 올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비경조 연구원: 그래도 넌 나처럼 부서 안 바꾸고 계속하고 있잖아. 너에겐 그만큼 의미가 있는 일인 거겠지.

이지해 연구원: 사람들 돕는 일이잖아. 어떻게든. 넓게 보면 너도 그렇기도 하고.

비경조 연구원: 나는 우리 기지에서 별이나 보면서 꿀 빨고 있잖아. 너랑은 차이가 있지.

이지해 연구원: 그런가. 사실 가끔은 후회하기도 해. 사실은 좀 자주.

비경조 연구원: 그래도 넌 과거에 맞서 싸우잖아? 나처럼 도망가지 않고. 그게 진짜 대단한 일이지. 쉬운 일이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니까, 힘든 일하는 사람이 진짜 대단한 거지. 너가 그만큼 대단한 사람인 거야.

이지해 연구원: 기운이 좀 나네. 고맙다.

비경조 연구원: 별말씀을 다. 아. 그 장소연이었나? 소문 좀 도는 것 같던데 혹시 네 담당이야?

이지해 연구원: 장소연? 강도연 아니야?

비경조 연구원: 맞다. 강도연. 머리도 보라색으로 염색하고 말투도 좀 이상하다던데. 알고 있어?

이지해 연구원: 우리 팀원이야. 사람이 좀 그래 보여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트라우마라던가. 역시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거잖아?

비경조 연구원: 올~ 이지해 연구원님 좀 MZ하신데요? 그런데 걔는 뭐 하다 왔대?

이지해 연구원: 의료원이었나 봐. 과거 얘기를 거의 안 하기는 한데, 제약 관련 일을 했다고 들었어.

비경조 연구원: 어. 이제 생각났다. 걔 별명으로 다도연이라고 불리지 않아? 다도라고 SCP였나 그런 거랑 닮았다던대.

이지해 연구원: 글쎄. 비슷해?

비경조 연구원: 말투 특이한 거나 약 만드는 게 다도랑 비슷하다고 들었어. 설마 강도연의 정체는 우리 기지를 염탐하러 온 스파이?!

이지해 연구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리 기지가 규칙이 좀 느슨하긴 해도 없진 않거든. 진짜 스파이거나 그런 첩자라면 금방 잡히겠지.

비경조 연구원: 하긴 그렇긴 해. 도연이가 여자라던가? 다도는 남자라고 하던 것 같은데 그런 거 보면 다른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성한나 조수: 무슨 얘기 해?

비경조 연구원: 여. 우리 기지 대스타 한나 왔니?

성한나 조수: 그 별명 짜증 나.

이지해 연구원: 그냥 뭐 일 얘기지. 항상 그렇잖아?

성한나 조수: 이 커피 내가 마셔도 돼?

비경조 연구원: 너 같은 애한테는 쓸 텐데. 마시고 싶으면 가져가.

성한나 조수: 나 이제 애 아니야. 다 컸어. 어제 생일 지났잖아.

이지해 연구원: 그래. 우리 한나 다 컸다.

성한나 조수: 아까 얘기하던 사람이 망원경 이상하다고 도와달라고 불렀어. 나 간다.

비경조 연구원: 망원경? 나도 좀 가봐야겠다. 가는 길에 커피도 한 잔 타고.

이지해 연구원: 나도. 근데 아까 도연이 소문은 무슨 얘기였어?

비경조 연구원: 어? 아, 그냥 별거 아니야. 별명으로 다도연이라고 불리는 거 얘기였어. 왜?

이지해 연구원: 조금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좋은 별명은 아니지 않아? 당사자는 못 느끼는 것 같지만…

비경조 연구원: 당사자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여기 오는 대부분이 안 괜찮아서 오는 거긴 하다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면 스스로 말하지 않을까?

이지해 연구원: 그래… 그래도 너무 심한 별명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기록 종료>

2023년 4월 30일, 단체 궤적 촬영 및 반딧불이 구경을 위한 참여자 체크부터의 기록. 당시 프로그램 참가인원 중 강도연 연구원만이 참석해 이지해 연구원과 강도연 연구원, 단 두 명만이 공터에 모였다.

<기록 시작>

이지해 연구원: 음, 한 명뿐이네요. 늦은 시간이긴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바로 시작할까요?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는 언제든 좋아요.

이지해 연구원: 그럼 지금 시작하죠. 궤적 촬영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카메라를 세팅해놓고 반딧불이를 구경한 후, 다시 돌아와서 사진을 확인할 거에요. 중간 중간에 간단한 상담도 할 예정이고요. 이해하셨죠?

강도연 연구원: 네. 도연이는 완벽하게 이해했어요!

이지해 연구원: 좋아요. 참여자 수가 좀 많으면 직접 세팅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도연씨 한 명뿐이니까 제가 직접 해드릴게요.

강도연 연구원: 감사합니다. 지해 선배.

이지해 연구원: 저, 반드시 답해야 하는 건 아닌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해외 지부에서 오신 거 맞으시죠?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가 궁금해요?

이지해 연구원: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알아보는 사람도 없으시고, 말도 좀 어눌한 것 같아서요. 중요한 질문은 아니었어요. 괜찮다면 대신 제 이야기를 해드려도 좋을까요?

강도연 연구원: 네. 도연이는 지해 선배가 궁금해요.

이지해 연구원: 저는 어렸을 때 별들이 하늘의 반딧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반딧불이가 자주 보였거든요. 유치한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도 그 생각이 종종 떠오르곤 해요. 오늘처럼 별이 맑은 날이면 더 자주 떠오르는 것 같아요. 사실 말 못할 속사정이 있기는 한데. 그건 비밀로 해둘게요.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는 지해 선배 믿어요. 지해 선배는 도연이 믿어요?

이지해 연구원: 음… 네. 믿을게요. 원래 상담 내용은 비밀이긴 하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네. 믿어요. 도연씨는 그래도 믿을만한 것 같아요.

강도연 연구원: 그럼 도연이 얘기해도 돼요?

이지해 연구원: 그럼요. 얼마든지요.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는 지해 선배가 좋아요. 그래서 도연이는 별이 되고 싶었어요.

이지해 연구원: 예? 아뇨. 별이라니.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강도연 연구원: 하지만 지해 선배는 별 좋아 안 해요? 도연이는 별 되고 싶어요.

이지해 연구원: 아니요. 안 돼요. 안 돼. 허락 못 해.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별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강도연 연구원: 그러면 도연이는 별 안 될래요. 도연이는 이제 별 되는 약 필요 없어요. 지해 선배가 가져요.

이지해 연구원: 네?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에요? 이거 수면제 아니에요?

강도연 연구원: 만들었어요. 도연이는 약 잘 만들어요. 카메라 끝났어요? 도연이 먼저 가볼게요.

이지해 연구원: 잠깐. 잠깐만! 별 아니어도 괜찮아요! 기다려요! 가지 마!

<기록 종료>

2023년 4월 30일, 면담 이후 기지 밖을 돌아다니던 이지해 연구원이 강도연 연구원을 조우했을 때의 기록. 기록 중 나타난 음성은 이우주 연구원으로 식별되었으나, 해당 인물은 음성 기록 전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비경조 연구원이 수면 중인 이지해 연구원을 발견한 시점에서 강도연 연구원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으므로 이우주 연구원의 음성은 SCP-1972-KO의 변칙성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기록 시작>

이지해 연구원: 강도연씨, 강도연씨! 거기서세요! 도대체 말도 안 하고 어디 가셨던 거에요!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는 반딧불이가 궁금했어요. 먼저 가서 죄송해요.

이지해 연구원: 저는 도연씨가 걱정됐어요.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고요. 도연씨가 죄송해하실 필요는 없는데. 몸은 다 괜찮으신 거죠? 다행이다. 다행이야…

강도연 연구원: 지해 선배 슬퍼요? 눈물이 나요.

이지해 연구원: 네? 아뇨. 슬프다기보다는… 안도의 눈물이죠. 도연씨 무사한 거 봐서.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는 영양제 먹어서 건강해요. 지해 선배 걱정 안 해도 돼요.

이지해 연구원: 그래요. 숨이 차서 그런데, 조금 앉아서 쉴 동안 기다려 주실래요?

강도연 연구원: 알겠어요. 도연이는 기다릴게요.

이지해 연구원이 헐떡이는 소리가 잠시 반복된다.

이지해 연구원: 반딧불이가 많이 보이네요. 어때요, 좋아요?

강도연 연구원: 네. 반딧불이 신기해요.

이지해 연구원: 도연씨. 괜찮다면 얘기 하나 더 해드려도 될까요?

강도연 연구원: 네. 좋아요.

이지해 연구원: 비밀 지켜줄 수 있어요?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는 지해 선배 믿어요. 지해 선배도 도연이 믿어요.

이지해 연구원: 알겠어요.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건데, 사실 이 일이 너무 힘들어요. 오늘처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데 누굴 돕겠다고 이러는지, 이제는 포기하고 싶어요. 모두 다 떠나버리고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오늘 같은 날이면 하루에 수백 번씩 드는데. 그만 싸움을 포기하고 싶고. 가능하면 기억도 지우고 싶고요. 더 이상 버티고 있기가 이젠 너무 버거워요. 하고 싶은 말은 이것보다 많았는데 떠오르는 건 이것뿐이네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강도연 연구원: 도연이가 준 약 가지고 있어요? 도연이 약 먹어요. 그럼 괜찮아질 거에요.

이지해 연구원: 약이요? 가지고는 있는데… 그래요. 도연씨도 절 믿어 줬으니까, 저도 한 번. 도연씨를 믿어 볼게요.

작은 물체가 흔들리는 소리. 이지해 연구원이 SCP-1972-KO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지해 연구원: 여기서 자면 안 될 텐데. 피곤하네요.

이우주 연구원: 크게 문제 될 거 있어요? 예전엔 야외 취침도 했잖아요.

이지해 연구원의 숨소리가 가빠진다.

이지해 연구원: 우주야? 너야? 진짜 너야?

이우주 연구원: 네. 이우주에요. 오랜만이에요, 선배.

이지해 연구원: 아니… 어떻게…

이우주 연구원: 잘 지냈냐고 물어보기엔… 그러지 못한 것 같네요. 죄송해요. 이런 건 생각 못했는데.

이지해 연구원: 아니야. 다 내 잘못이지. 내가 널 좀 더 이해해줘야 했는데.

이우주 연구원: 이미 다 지난 일인 걸요.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이지해 연구원: 괜찮다고 말해도 좀 더 챙겼어야 했어. 내가 너무 무관심했지?

이우주 연구원: 무슨 소리에요. 선배 덕분에 행복했는데요. 제가 운이 좀 나빴을 뿐이지.

이지해 연구원: 그렇구나… 운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어땠을까.

이우주 연구원: 어쩌면 지금이 가장 운이 좋은 걸지도 몰라요. 저는 사고로… 사고를 당했지만, 그 뒤로 여기 생태공원에서 난간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적은 없잖아요. 선배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저는 그래도 기뻐요.

이지해 연구원: 사고? 사고라… 그래. 그렇구나. 하지만 나는 아직 죄책감을 버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웃기게도.

이우주 연구원: 저를 위한 게 더 이상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 잘 알고 계시잖아요. 선배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도와주셔야죠.

이지해 연구원: 그래. 역시 그래야겠지.

이우주 연구원: 선배.

이지해 연구원: 응. 듣고 있어.

이우주 연구원: 경조 선배랑 한나가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리고 내일 아침 프로그램 마무리도 준비해야 하셔야죠.

이지해 연구원: 오늘은 일요일인데. 귀찮네.

이우주 연구원: 그래도 사람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거잖아요. 선배 덕이에요. 그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도록 마음먹을 수 있게 된 것도요.

이지해 연구원: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걸까?

이우주 연구원: 그럼요. 선배가 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선배가 잘못된 길을 걷지 않았단 증거겠죠.

이지해 연구원: 그럴지도.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이우주 연구원: 커피 심부름만 아니라면요. 농담이에요.

이지해 연구원: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다시 만나자. 기다리기 지루하겠지만, 그래도 기다려 줄래?

이우주 연구원: 얼마든지요.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할테니까, 너무 급하게 오지는 마세요.

이지해 연구원: 그래. 고마워. 다음에 보자.

<기록 종료>

부록 3: 이지해 연구원에 대한 조사 및 징계 기록

진행자: 제57K기지 이사관 성운한 박사

대상자: 제57K기지 심리치료부서 소속 이지해 연구원

서론: 이지해 연구원과 강도연 연구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재확인 및 징계 사유에 대한 결정.

<기록 시작>

성운한 박사: 안녕하세요, 이지해 연구원. 심란할 텐데도 협조해줘서 고마워요.

이지해 연구원: 별일 아닌 걸요. 일주일은 더 지났으니까요.

성운한 박사: 그래요. 연구원님 담당이었던 다도, 그러니까 강도연 연구원에 대해 말해주시겠어요?

이지해 연구원: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죠. 뭐랄까, 상담사와 환자.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성운한 박사: 그렇다면 물론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니까 이전의 행동들도 이해는 갑니다만, SCP-1972-KO의 투여에 대해선 조금 더 설명해 주셔야겠습니다.

이지해 연구원: 자포자기죠. 지금으로선 저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때는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뭐, 제 잘못이죠.

성운한 박사: 변칙성에 대해선 알고 있었고요?

이지해 연구원: 글쎄요. 다도라고 적었다가 취소선을 그은 건 장난이라고 생각했었죠. 적어도 그 때에는요.

성운한 박사: 그렇군요. 그럼 단순 수면제라 생각했던 거겠군요.

이지해 연구원: 그렇죠. 뭐.

성운한 박사: 사실 연구원님이 무관하고, 또 무고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이우주 연구원 건은 생각이 정리되었을까요?

이지해 연구원: 죽은 사람은 떠나 보내야죠.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산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사관님도 아내분을… 그렇잖아요. 그래서 새로 취임하신 뒤에 심리치료부서를 만들고, 복지도 생각해주시고. 지금의 기지를 만들게 되었겠죠.

성운한 박사: 연구원님이 잘 이겨낸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을까요?

이지해 연구원: 미련은 보내줘야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것도 아닌데요. 뭐. 더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

성운한 박사: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기록 종료>

결론: 이지해 연구원은 본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는 선에서 강도연 연구원과의 관계를 구축했으며, SCP-1972-KO을 복용한 점에 대해선 변칙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과 당시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업무상 상담 대상과의 신뢰를 보여주기 위함을 감안하여 경고를 주는 선에서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이지해 연구원은 몇 차례의 상담과 일주일간의 휴가 후 복귀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업무를 성실히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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