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
제목: SCP-1885-KO - 연지 군은 시골 딸기우유가 좋아 도시 립스틱이 좋아?
저자:romrom,
Payroy
사진:Payroy 제작,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inggrae_logo_(Korean).sv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230107_Construction_Site_Nuremberg.jpg
사용.
| 일련번호: SCP-1885-KO | 보안 인가 적용됨 |
| 격리 등급: 케테르 | 담당 부서: 악마학과/차원학부 |
특수 격리 절차: SCP-1885-KO는 현재 격리된 상태가 아니며, 지속적으로 적대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SCP-1885-KO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제14K임시공동구역이 신설되었으며, 이를 거점으로 대상을 장기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을 1차 목표로 두고 있다.
SCP-1885-KO 관련 모든 연구와 대응은 차원학부 및 악마학과가 공동으로 담당한다. 그 과정에서 격리 구역 밖으로 이탈하는 개체는 기동특무부대 알파-23(“무아아아아앙”)이 찾아내 소각 처리한다.
설명: SCP-1885-KO는 제비꽃에서 기원한 연지벌레Coccoidea와 닮은 군체 의식형 독립체다. SCP-1885-KO의 개체 수는 수백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된다. SCP-1885-KO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지니며, 생명약동에너지를 이용한 기적술을 시전할 수 있다. 개체들은 현재 한국 내에 위치한 다양한 유제품 공장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SCP-1885-KO가 인간에게 적대적인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으나, 2025년 6월 2일 기록된 최초 발견 사례 이후로 지속적으로 유제품 공장 및 농가를 습격하는 것으로 보아 인류, 최소한 유제품 생산과 관련된 행위에는 적대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록1: 내부 소집 회의
서론: 이하는 제14K임시 공동구역에서 진행된 내부 소집 회의다.
참가자:
- 차원학부장 배일호
- 차원학부 클라라 박사
- 차원학부 손기정 연구원
- 악마학과장 전지찬
- 악마학과 전지태 연구원
- 악마학과 우나은 대원
기록 시작
배일호 부장
— 와 각설이다. 죽지도 않고 또 왔어 그냥.
전지찬 과장
— 예. 압니다. 안다고요.
배일호 부장
― 내가 그때 뭐라 그랬어. 또 마주치면 죽인다고 그랬지?
손기정 연구원
― 그런 말 한 적 없으셨는데요.
배일호 부장
― 그래? 그럼 지금 말하지 뭐. 니들 뭔데 자꾸 나랑 엮이냐고. 응? 죽을래?
전지찬 과장
— 우리라고 좋다고 엮이는 줄 아세요?
클라라 박사
― 부장님… 쪽팔리게 굴지 좀 마세요.
배일호 부장
― (속닥거리며) 봐봐. 쟤 아닌 척해도 은근 소속감 같은 거 느낀다니까.
클라라 박사
― 지난 번에 했던 거 다시 해드려요?
우나은 대원
― 저, 다들요? 여기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배일호 부장
― 그래, 고양아.
우나은 대원
― …네?
배일호 부장
― 미안, 잘못 나갔다. 포지션이 비슷해서. 아무튼, 또 사람 모아놓고 뭐 하잔 거야? 이번엔 또 뭔데?
전지태 선임연구원
― 그걸 설명하려고 PPT 준비했잖습니까.
배일호 부장
― 아, 씨발. 내 고무줄.
배일호 부장이 떨어진 고무줄을 줍기 위해 책상 아래로 몸을 숙인다.
전지태 선임연구원
― 저분 원래 저럽니까?
손기정 연구원
― 성인 ADHD 같다고요? 저번에 같이 일 안 했어요?
전지태 선임연구원
― 전 그때 다른 일로 바빴죠.
손기정 연구원
― 네. (체념하듯이) 저분 원래 저래요.
배일호 부장
― 입 다물어.
배일호 부장이 손가락에 고무줄을 걸어 총처럼 튕긴다. 손기정 연구원을 빗맞힌다.
전지찬 과장
― (한숨) 지태야, PPT 켜자. 자, 그럼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전지태 선임연구원
― 네, 켰습니다.
슬라이드를 넘긴다.
전지찬 과장
― 자, 다들. 이번 사건 리포트는 읽으셨을 거고요. 이번에 저희 두 부서가 떠맡은 SCP-1885-KO가 대체 뭐냐면…
클라라 박사
― 뭐야, 연지벌레?
배일호 부장
― 저게 뭔데?
손기정 연구원
― 딸기 우유 만들 때 들어가는 색소 그거 말하는 것 같은데요.
배일호 부장
― 딸기 우유에 벌레가 들어가?
우나은 대원
― 네. 모르셨어요?
배일호 부장
― 몰랐지. 벌레를 왜 넣는데.
전지찬 과장
― 지금 그게 중요해요?
배일호 부장
― 중요하지. 소비자가 봉이냐? 내 입에 뭐가 들어가는진 알고 먹어야 할 거 아냐!
클라라 박사
― 다물어요.
배일호 부장
― 응.
전지찬 과장
― 아무튼 이 연지벌레… 그러니까 SCP-1885-KO는 개체 수가 적어도 수백만은 되는 초대형 군체입니다. 지금 원주시 공장 부지 안에 싹 깔려있고요.
손기정 연구원
― 어, 러브버그처럼요?
전지태 선임연구원
―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을 직접 갈아버리고 있거든요. 이 녀석들이 지금 서울에프엔비 원주공장에 침입해 난장판을 만들었습니다. 생산 라인은 전부 멈추고, 직원들 중 사상자도 있었답니다.
배일호 부장
―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전지태 선임연구원
― 식음료 제조 회사입니다.
배일호 부장
― 느낌오네. 왜, 딸기 우유라도 만드는 갑지?
클라라 박사
―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인 것 같네요.
배일호 부장
― 그래, 제비꽃이겠지.
우나은 대원
―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배일호 부장
― 뭔가 이상한 일 생길 때 그 새끼들 찍으면 대충 맞더라고. 생산 라인부터 털렸다는 거 듣고 감이 왔지.
손기정 연구원
― 우리까지 끌어온 것도 그래서겠죠. 근데 왜 악마학과 분들은 왜…?
우나은 대원
― 그게 말이죠…
전지찬 과장
― 이걸 보시면 이해가 좀 되실 겁니다.
드론으로 원격 촬영된 SCP-1885-KO-A.
슬라이드를 넘긴다. SCP-1885-KO로 뒤덮인 공장 부지 사진이 뜬다. 사진 한가운데 불타는 형상의 거대한 독립체가 공중에 떠 있다.
클라라 박사
― …저건 뭐죠?
전지찬 과장
― 타르타로스 독립체입니다. SCP-1885-KO 말고도 사고치는 놈이 있는 거죠.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시뮬라크르 독립체 쪽에 더 가깝게 보입니다.
배일호 부장
― 쉽게 풀어봐요.
전지찬 과장
― 쉽게 말해 관념에서 태어난 악마라는 겁니다.
배일호 부장
― 커피의 악마처럼?
전지찬 과장
― 예? 어, 뭐… 그런 거죠?
배일호 부장
― 그럼 저 새낀, 연지벌레의 악마겠네.
손기정 연구원
― 저게 어떻게 연지벌레예요. 불타고 있는데.
우나은 대원
― 연지벌레 맞아요. 불타고 있어서 그렇지, 형태나 실루엣은 연지벌레랑 거의 같습니다.
전지찬 과장
― 아무튼, 이번 사태는 꽤 심각합니다. 공장 부지에서 시작해서 영역을 점점 넓히는 중이에요. 내부에선 유기적 형태로 얽힌 적대적 독립체도 관측되고 있고. 지금은 화염방사기로 침범하는 놈들을 소각하고 있지만, 미봉책입니다. 언젠가는 뚫릴 거고요.
배일호 부장
― 저번 모기떼처럼은 안 되나?
슬라이드를 넘긴다. 공장 부지 도면 위에 SCP-1885-KO 개체 수를 표시하는 빨간 점이 빽빽이 찍혀 있다. 일대 주변을 덮고 있다.
전지태 선임연구원
― 저번에 공조했을 때랑 판 자체가 다릅니다. 계약 대상이 제비꽃 독립체인 만큼, 뿌리 째 뽑는 박멸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제대로 조사하고, 안전 확보까지 병행하려면 투입 전 준비 시간이 꽤 걸릴 거라는 거죠.
클라라 박사
― 시간 없는 거 알잖아요.
전지태 선임연구원
― 네. 역시 그 점이 문제죠.
배일호 부장
― 저 녀석들 목적은 뭔데? 그냥 인간 좆같아, 아 다 죽여야지. 이거?
전지찬 과장
― 예. 지금부턴 그걸 파헤치는 게 차원학부 몫이죠.
배일호 부장
― 뭐, 어떻게. 대화가 통할 놈은 아니지 않아?
전지찬 과장
― SCP-1666-KO 때랑 비슷합니다. SCP-1885-KO도 군체의식에 가깝거든요. 기억과 지식을 공유하는 것도 확인됐고요.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는… 가능해 보입니다. 한 개체 포획해 놓았으니, 지난번처럼 한번 잘 구워삶아 보시죠.
배일호 부장
― 그래. 그런 건 또 내 전문 필드지. 기정아.
손기정 연구원
― 왜요.
배일호 부장
― 손톱깎이랑 알코올 솜… 아, 라이터도 하나 챙겨와.
손기정 연구원
― 뭘 할지 뻔하네요. 기다리세요.
클라라 박사
― 죽이진 마세요. 변칙성도 완벽히 확인 안 됐잖아요.
배일호 부장
― 믿어봐 좀. 나 완전 레지던트 뺨치니까.
전지태 선임연구원
― 잠깐만, 정보를 캐랬지 고문을 하라는 게―
전지찬 과장
― 지태야.
전지태 선임연구원
― 어… 네?
전지찬 과장
― 넌 오늘 처음 봐서 모르겠지만…
혀 차는 소리.
전지찬 과장
― 저게 저들 방식이야.
배일호 부장
― 아, 여깄다.
손기정 연구원
― 뭐 찾으셨어요?
배일호 부장
― 고무줄.
손기정 연구원
― 아.
클라라 박사
― 기정 씨에게 그만 쏴요. 맞추지도 못하면서.
배일호 부장
― 안 쏠 건데? 별 만들려고 한 건데?
잠시 멈춤.
전지태 선임연구원
― 저 사람들. 진짜 전문직이긴 한 거죠?
전지찬 과장
― 응.
잠시 멈춤.
배일호 부장
― 짜잔. 별.
배일호 부장이 손가락을 꼬다 얼굴에 고무줄을 맞는다.
배일호 부장
― 씨발! 악!
잠시 멈춤.
전지태 선임연구원
― 고생길 훤하네 진짜.
기록 종료
비고: SCP-1885-KO의 대응 후속 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부록 2: 소통 시도
초기 회동 3일 후, 포획한 SCP-1885-KO 개체가 고강도의 통신 전파를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SCP 재단 제14K임시구역 내의 컴퓨터를 겨냥하고 있었으며, 불명의 기작을 이용하여 재단 기지 내 회선 시스템과 연결, 초상통신을 구축하였다. 재단 통신보안 구조는 이를 방어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제14K임시구역 내 통신 회선 일부가 SCP-1885-KO 군집과 염화공학적으로 연동되었다. 제14K임시구역은 즉시 3단계 차단 프로토콜을 발령했고, 연화 텔레킬 도포제1가 작동하며 임시 텔레파시 방호망을 구축했다.
2025년 8월 12일 오후 1시, 포획된 SCP-1885-KO 개체가 A형 텔레파시를 이용해 통신 장치를 가동시켰다. 악마학과 및 차원학부는 대상과의 소통을 위해 소집되었다. 이하는 그 기록이다.
서론: 이하는 제14K임시공동구역 회의실 내부에서 진행된 녹화 기록이다.
참가자:
- 차원학부장 배일호
- 차원학부 클라라 박사
- 차원학부 손기정 연구원
- 차원학부 이고양 연구원
- 악마학과장 전지찬
- 악마학과 전지태 연구원
- 악마학과 우나은 대원
기록 시작
모든 참가 인원이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스크린에는 재단 인트라넷 회선의 통신 연결 대기 화면이 송출되지만, 발신자의 이름을 표기하는 부분은 문자가 깨져 알아볼 수 없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출력된다.
클라라 박사
― 다들 정숙하세요. 현재 대한민국에 위치한 외우주생물체랑 첫 교신을 하는 상황이니까, 어떤 몸짓이나 단어가 이들을 자극할지 모릅니다. 이들의 목적도 현재 알 수 없고요.
배일호 부장
― 별거 있겠어. 침공받으면 되잖아. 어디 서울우유 공장에 지랄 천지마냥 깔려가지곤.
클라라 박사
― 제비꽃의 행동 패턴은 아직 완벽하게 정립되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선과 좌표가 제각각 분리된 차원군집이니 저 녀석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지, 어떤 종족이고 심지어는 뭘 원하는지도 알 수 없어요. 누가 알아요? 지구인들을 도와주러 온 자선단체 제비꽃일지.
우나은 대원
― 우와, 그런 제비꽃도 있었어요? 외우주독립체는 잘 몰라서.
클라라 박사
― 아뇨. 지금까지 발견된 거의 모든 제비꽃 군집들은 외부차원 침공 및 서식지 확장, 원종 제거와 자원 습득을 목표로 행동했어요.
배일호 부장
―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거잖아. 침공해서, 다 죽이고, 다 빨아먹고, 튄다. 내가 맞았네, 결국.
클라라 박사
― 부장님.
이고양 연구원
― 망했다. 박사님이 찡그리기 시작했어…
우나은 대원:
― 헉, 설마…
손기정 연구원
― 걱정 마세요. 박사님은 삼백육십오일 매일 똥 씹은 표정이거든요.
클라라 박사
― 기정 씨.
손기정 연구원
― 취소. 이거 꽤 심각한 상황이네요. 지금부터 저희가 클라라 박사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다들 아셨죠?
전지찬 과장
― 그래서 통신 받을 거예요, 말 거예요?
배일호 부장
― 받아야지, 그럼.
배일호 부장이 통신 착수 버튼을 클릭한다. 텔레파시 통신이 연결되며 기지 회선과 기적학적 공명을 시작한다. 스크린이 지직거리다, SK-BIO 생물체의 내장과 유사한 모습의 공간을 비춘다. 공간 내부는 비변칙적인 연지벌레가 벽을 뒤덮은 상태로, 가끔 꿀렁거리는 소리가 발생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클라라 박사
― 아.
배일호 부장
― 아, 안 받을 거였어?
전지태 선임연구원
― 생각하고 전화를 받는게 기본적인 대응 방법 아닐까요?
배일호 부장
― 와, 혹시 너희 어머니가 형한테만 조용히 뭐 얘기하고 그러지 않았냐?
전지태 선임연구원
― 네?
전지찬 과장
― 저희 어머닌 세종시 아파트에 잘 계십니다만.
배일호 부장
― 아니, 그게 아니고. 혹시 클라라랑 숨겨진 남매 같은 거 아닌가 해서. 말투가 똑같잖아. 하는 말도 똑같고. 사실 셋이 남매인데, 산부인과에서 하나 빼먹고 데려간 거 아냐? 아님 바뀌었거나. 서프라이즈 같은 데 늘 나오는 그거처럼.
전지태 선임연구원
― 아니 이 사람 싸가지가 밥말아먹었나―
불명
― 인간. 통신. 대화. 연결. 끈. 어머니, 확신? 정상.
전지찬 과장
― 응?
통신 화면이 지직거리더니, 육벽에 달라붙은 연지벌레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며 거대한 덩어리를 이룬다. 덩어리는 완전히 녹아 뭉치고, 이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인간 여성 형태의 점액 뭉치로 변형된다. 점액은 부글거리며 점차 인간 골격과 유사한 형상을 이루더니, 얼굴 및 신체 기관을 모방하며 반투명한 녹색의 피부를 가진 동아시아계 인간 여성이 된다.
불명
― 안녕하십니까. 전지찬, 전지태, 배일호, 씨. 및. 에쓰씨, 피. 재단. 대표. 어머니는, 생존하십니까?
전지찬 과장
― 씨발?
불명
― 씨발.
우나은 대원
― …이게 무슨 일이에요?
클라라 박사
― (조용히) 다들 닥치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저희 SCP 재단 소속의 일원들이 맞습니다. 지구의 언어를 이해하실 수 있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우선, 대화를 위해 당신들을 부를 호칭을 알고 싶습니다.
꿀렁거리는 소리. 개체의 몸이 뒤틀리더니, 다시 인간 형태로 돌아온다.
불명
― 우린, 카치닐. 차원과 우주를 항해하는 종족. 지구의 우점종, 인간과 대화하기 위해, 인간의 대표격으로 보이는, 에스-씨-피-재단, 소속의 인원, 선택했다. 우리의 동포, 그쪽에서 통신한다. 우리, 텔레파시를 통해, 인간의 언어 이해했다. 우호적인 대화를 위해, 인간과 유사한 신체, 제작했다.
클라라 박사
―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클라라 박사라고 합니다. 이 대표단의 협상 담당입니다. 현재 통신에서, 모든 요청이나 대화는 제게 전해주시면 됩니다.
배일호 부장
― 와, 귀신같이 착해지는 거 봐라.
전지태 선임연구원
― 지는.
배일호 부장
― 뭐?
전지태 선임연구원
― 아뇨, 아닙니다. 그냥 남의 부모 들먹이고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처음 봐서.
배일호 부장
― 아니, 내가 뭐 범죄자라도 되냐? 순수한 궁금증의 표현이었다고! 족보에 관심 좀 가질 수도 있지!
전지찬 과장
― 이보세요. 저도 지금 좋아서 조용히 있는 줄 압니까? 업무 중이니깐―
장내 소란.
불명
― 부모를, 언급하는, 행위, 친목의, 절차인가?
클라라 박사
― 아, 아닙니다. 부모를 언급하는 건 모욕적인 언사입니다.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제 부하들인데, 잠시 다른 긴급한 업무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클라라 박사가 배일호 부장의 어깨를 툭 친다. 배일호 부장이 돌아본다. 클라라 박사는 배일호 박사를 잠시 노려보더니, 다시 스크린을 바라본다. 배일호 박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전지찬 부장과 싸우기 시작한다. 클라라 박사는 다시 배일호 박사를 건드린다. 배일호 박사가 돌아본다. 클라라 박사가 배일호 박사의 정강이를 돌려찬다. 배일호 박사는 신음하며 넘어진다.
손기정 연구원
― 와… 아프겠다.
배일호 박사가 정강이를 부여잡고 뒹군다.
불명
― 무슨 일인지.
클라라 박사
― 죄송합니다. 이건 지구인들에게만 있는 신체 이상인데, 근육에 무리가 갈 경우 가끔 남을 가격하게 됩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불명
― 알겠다. 당신의 어머니와 건강은, 언급하지 않겠다. 착각에, 사과한다.
불명
― 용건을 말하겠다. 우리 동포를 구하라.
클라라 박사
― 죄송합니다만,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불명
― 지구, 반카치닐적 절차를 시행한다. 지구의 장소, 우리 동포를 고문하고 학살한다. 우리를 먹는다. 우리를 간다. 우리를 압착한다. 우리는 이러한 반카치닐적 절차를 증오한다. 그렇기에 우린 지구, 그만할 것을 요구한다. 지구는 당장 반카치닐적 절차를 중단하라. 중단하지 않으면, 적대적인 침공 고려.
클라라 박사
― … 그 "반카치닐적 절차" 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희 재단은 최대한 그걸 멈추는 것을 돕겠습니다.
불명
― 알겠다. 그러나, 사진은 끔찍하다.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클라라 박사
―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카치닐쪽의 시점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절차인지 알아야 그걸 멈출 수 있습니다.
불명
― 우선, 끔찍한 학살, 범죄, 고문조직 중 하나의 이름을 보여준다.
스크린이 지직거리더니, 스크린에 사진이 출력된다.
출력된 사진.
우나은 대원
― 어라.
불명
― 그리고, 반카치닐적 절차의 결과를 보여준다.
출력된 사진.
이고양 연구원
― 저건… 우유?
불명
― 지구인은 이러한 절차를, 딸기우유라고 칭한다. 두렵다. 끔찍하다.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개체의 몸이 떨린다.
배일호 부장
― 그러니까, 지금 우리보고 딸기우유 공장을 다 터뜨리라고?
불명
― 그렇다.
배일호 부장
―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우리가 아무리 식물한테 근친 야설 들려주는 전지구적 비밀조직이라지만 지구 하나 지킨다고 딸기우유를 없앨 수는 없다고.
클라라 박사
― 제안 감사합니다. 저희 재단은 최대한 카치닐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길 원합니다. 가능한 한 딸기우유의 생산율을 떨어뜨려 보겠―
불명
― 제거하라.
클라라 박사
― 네..?
불명
― 모든 딸기우유 생산을 중단하라. 이는 명령이다.
클라라 박사
― 우선 저희도 시도해 보겠습니다만, 이러한 "딸기우유" 라는 것이 지구의 산업 중 하나로―
불명
― 거부 의사를 표현했나.
클라라 박사
― 아뇨, 저흰―
불명
― 거부 의사. 전쟁의 시도로 받아들인다. 이제부터 카치닐 종족은 전력을 다해 지구를 공격할 것이다. 지구를 침공하여 카치닐의 동포를 해방시킬 것이다. 카치닐 학살 행위를 멈출 것이다. 당신들의 말은 듣지 않는다. 더 이상의 소통은 없을 것이다. 오늘부로 우리 모선은 지구 침공을 선언한다. 딸기우유를 제거할 것이다. 통신은 중단한다.
클라라 박사
― 이보세요! 잠시만요!
불명
― 당신 엄마.
통신 종료됨.
배일호 부장
― 와, 쟤네 입 맵다잉.
클라라 박사
― 하…
클라라 박사가 주저앉는다.
클라라 박사
― 뭐라고 보고하냐 진짜.
클라라 박사가 드러눕는다.
클라라 박사
― 좆됐네.
배일호 부장
― 근데 쟤들도 이상한 게. (피식 웃는다) 딸기우유만 걸고 자빠졌네. 립스틱에도 쓰는데.
잠시 침묵.
배일호 부장
― 왜. 나도 공부 좀 했어.
기록 종료
비고: SCP-1885-KO에 대한 전면적 대응이 실시될 예정이다.
부록3: 제14K임시공동구역 회의록
초기 회동 7일 후, 배일호 박사가 브리핑을 실시했다.
제14K임시공동구역 회의록
<발췌문 시작>
배일호 부장: 좋아. 음. 서론부터 좀 박자. …우리 진짜 좆됐어.
SCP-1885-KO 군체 첫 발생 중심지.
배일호 부장: 연지벌레의 침략이 시작됐어. 지금 강원도 쪽 우유 공장 생산 라인 전부가 SCP-1885-KO로 뒤집혔다. 확인된 사상자는 10명 훌쩍 넘었고, 실종자는 30명 넘게 튀었고. 공장 화재 쪽으로 역정보 뿌려놓긴 했는데… (어깨를 으쓱이며) 뭐, 언제까진 먹힐진 나도 몰라.
잠시 멈춤
배일호 부장: 정리하면, 이 새끼들이 우유 공장에 환장한 거까진 확실한데, 이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모르겠다 이거야. 브리핑 끝. 질문 있는 사람?
전지찬 과장: 어련하시겠어요. 방법은 생각해 두셨겠죠? 이런 일은 그쪽 전문이잖아요.
배일호 부장: 나? 뭐, 내가 좀 똑똑하긴 하지. 근데 나는 연구자야. 세스코가 아니라고.
전지태 선임 연구원: 여기서 입만 털고 있을 순 없습니다. 화염방사에 쓸 휘발유도 다 떨어져 가는데.
배일호 부장: 그래서, 전문가를 좀 초청했지.
전지태 선임 연구원: 전문가?
회의실 내부로 SCP-529-KO가 걸어들어온다.
SCP-529-KO: 여. 한 3년 만이네요.
우나은 대원: 아뇨. 다시 만난 지 두 달도 안 됐어요.
SCP-529-KO: 아, 그랬던가.
클라라 박사: 잠깐만요. 529-KO가 있다 쳐도, 그 많은 수를 한 번에 다 소각할 수 있을까요?저 군체들, 번식 속도가 심상치 않아요.
SCP-529-KO: 뭐, 집 안 같은 밀폐된 공간이면 수만, 수억 마리가 와도 제가 이길 순 있어요. 근데 야외에서 저 정도 숫자 상대하는 건… 저도 솔직히 벅차거든요.
손기정 연구원: 어, 그럼…
배일호 부장: 저 녀석은 내 경호야. 몸빵 담당. 우린, 놈의 심장부까지 박차고 들어갈 거다.
손기정 연구원: 뭐라고요?
배일호 부장: 못 들었어? 이건 전면전이라고. 제대로 놈 면전에다 똥칠을 해야 끝난다고. 딸기우유? 걔들 말대로 생산 중단해도 사람 안 죽어. 까짓거 안 마실 수 있어, 이거야. 딸기우유 좋아하는 나인 지났으니까. 근데 우린 인간이야. 이 세계 쟁탈전에서 최종 승자. 거슬리는 것들은 죄다 절멸시키고, 멸종시키고 여기까지 온 인간이라고. 그런 우리가 저딴 벌레 노름 따위에 당할쏘냐! 안 그래? 응? 안 그러냐고, 다들!
정적.
SCP-529-KO: 아, 역시… 심장에 콕콕 박히는 명연설이군요. 심금을 울리네요.
클라라 박사: 아뇨, 529-KO. 부장님 말은… 무시하세요.
전지찬 과장: 잠깐만요. 직접 전선으로 나가는 사람이, 당신들 넷으로 끝인 거죠?
배일호 부장: 왜 그래, 섭섭하게. 전지찬 과장. 우리 쪽 대빵이 몸 하나 기꺼이 던지는 데, 그쪽도 판돈은 똑같이 걸어야지. 안 그래?
전지찬 과장: 아, 아니. 전 그쪽이랑 달라요! 저는 가능하면 멀리서, 편하게, 안전하게―
배일호 부장: 어어, 그럴 줄 알고 네 경호도 하나 들였어. 들어오라고 해.
I-I3LL가 회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I-I3LL: 안녕하십니까, 전지찬 과장님.
전지찬 과장: 하?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황승헌 씨하고 같이 임무―
I-I3LL: 투입 임무는 조기 종료되었습니다. SCP-529-KO가 추가 지원해준 덕분입니다.
SCP-529-KO: 예. 사람 한 명 더 필요하다길래요. 아니, 로봇인가… 아무튼 악마 제령이니 뭐니 좀 도와주고 왔죠.
I-I3LL: 정식 명칭은 I-I3LL입니다만, 어떻게 부르시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SCP-529-KO.
전지찬 과장이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급하게 도망친다.
배일호 부장: 잡아.
전지찬 과장: 놔! 아니, 난 못 가! 안 가! 거길 내가 어떻게 가냐고!
배일호 부장: 대빵끼리 얼굴을 맞대야 협상이 되지. 정상회담이란 게 그런 거요, 전지찬 과장님.
전지찬 박사: 과장 사퇴! 과장 사퇴할게 그냥!
전지찬 연구원: 아니, 아예 박사 학위도 뗀다 그냥! 이러면 됐냐!
배일호 부장: 에헤이, 이거 왜 이래? 나이도 먹은 양반이. 나잇값 좀 하지? 민망하게.
전지찬: 거길 내가 어떻게 가! 죽는다고! 무조건 죽어! 나 완전 민폐야! 민폐 덩어리라고!
I-I3LL: 걱정 마십시오, 전지찬 씨.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설마,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우나은 대원: 맞아요. 전지찬 씨. 왜 이렇게 찌질하게 구세요?
배일호 부장이 전지찬에게 다가가 떨어진 명찰을 주워 든다. 그가 명찰의 먼지를 털어 전지찬의 양복에 붙인다.
배일호 부장: 자. 당신 직함. 잘 붙이고 다니쇼. 떨어지지 않게.
전지찬 과장: …씨발.
클라라 박사: 그러면 정리하죠. 부장님, 전지찬 과장님, SCP-529-KO, I-I3LL. 이 넷이 우선 전선에 투입되는 걸로 확정인가요?
이고양 연구원: 괜찮으시겠어요, 부장님?
배일호 부장: 그건, 쟤네에게 좀 달렸지.
SCP-529-KO: 걱정 붙들어 매세요, 부장님. 이런 날을 대비해서 파츠 업그레이드를 싹 해놨으니까요.
I-I3LL: 악마를 죽이는 일은 제 전문입니다. 허나 벌레 박멸 역시 제게 내장된 수많은 기능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나은 대원: 저, 과장님은 좀 괜찮으시겠어요?
전지찬 과장: 괜찮냐고? 이게 지금 괜찮은 사람 얼굴로 보이냐?
배일호 부장: 괜찮아 보이니까 일어나시라고 좀. 나잇값 하시고.
전지찬 과장: 당신에게 그런 말 듣기 싫다고!
배일호 부장: 유 웰 컴.
전지찬 과장: 유 웰 컴 이러네.
배일호 부장: 잇츠 오케이 유 웰 컴.
<발췌문 종료>
부록4: 투입 작전
설명: SCP-1885-KO 사태 약화 및 무력화를 시도하기 위해 인원이 직접 발생지에 투입되었다. 다음은 해당 과정의 녹화 기록이다.
투입 인력:
- 차원학부장 배일호
- 악마학과장 전지찬
- SCP-529-KO
- 악마학과 운용병기 "I-I3LL"
기록 시작
투입 인력이 탑승 중인 밴이 SCP-1885-KO의 발생지 안으로 서서히 진입한다. 주변에는 SCP-1885-KO의 군체로 추정되는 개체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클라라 박사
― (무전음) 아아, 수신 확인. 다들 잘 들리시죠?
전지찬 과장
― …죽여주세요.
클라라 박사
― 목소리 보니까 멀쩡하시네요. 좋아요. 거기가 현 목적지예요. 서울에프엔비 원주 공장.
SCP-529-KO
― 네. 초입부터 난리가 났네요. 갈아 죽일 놈들이 바로 보입니다. 아, 과장님. 지나가실 때 되도록 천천히, 지그시 밟아 죽여주세요. 타이어로.
전지찬 과장
― 안 그래도 그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보다, 왜 면허가 나밖에 없는 건데?
배일호 부장
― 나도 갖고 싶어. 보러 가게 안 해주는 걸 나보고 어째.
I-I3LL
― 전방에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I-I3LL이 차창 너머를 가리킨다. 앞에는 3m 크기의 근육질 체형의 인간형 개체가 서 있다.
클라라 박사
― (무전음) 차 세워요! 당장!
차량이 급제동한다. 타이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전지찬 과장
― 뭐야, 뭐야 저 새끼!
배일호 부장
― 뭐긴 뭐야, 연지벌레지! 529-KO! 일할 때다!
알루미늄맨
― 좋다고요! 테스트용으론 딱 좋은 상대네요!
SCP-529-KO가 문을 걷어차고 차량 밖으로 뛰어내린다.
배일호 부장
― 됐어. 우린 가자고.
전지찬 과장
― 네? 버리고 가자고요?
배일호 부장
― 쟤 하나로 어그로 다 끌릴 거야. 우린 그냥 편안하게―
클라라 박사
― (무전음) 부장님.
배일호 부장
― 알았어, 알았다고. 안 가, 안 가. 기다리면 되잖아. 창문이나 좀 열어봐요.
전지찬 과장
― 벌레 들어오는데.
창문이 내려간다. 벌레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배일호 부장
― 야! 뭐 할 건지 몰라도,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SCP-529-KO
― 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전지찬 과장
― 이제 창문 닫아요! 벌레 들어와!
배일호 부장
― 자면서도 몇 마리씩은 먹었을 텐데 뭘 그렇게 유난이야.
SCP-529-KO가 대형 독립체 쪽으로 걸어 나간다. 대형 독립체 또한 SCP-529-KO를 인지했다. 대상이 적재적 의사를 보인다. 주변의 SCP-1885-KO 개체들이 바글거린다. SCP-529-KO가 그들을 하나씩 밟아 죽이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다.
SCP-529-KO
― 똑똑히 보십쇼. 이번에 새로 단 기능이 뭔지.
전지찬 과장
― 저건 뭐야. 스타터?
SCP-529-KO
― (시동 거는 소리)
SCP-529-KO가 가슴팍에 생겨난 스타터를 당긴다. 대상의 머리에서 원형톱이 튀어나온다.
배일호 부장
― 씨발! 패러디다! 모두 엎드려!
전지찬 과장
― 네?
I-I3LL
― 저도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만, 원형톱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일호 부장
― 애매한 패러디가 더 문제라고! 따지고 들게 많아진단 말이야! 머리 숙여!
SCP-529-KO의 양팔에 원형톱이 튀어나온다.
SCP-529-KO
― 난 알루미늄맨이 아냐.
SCP-529-KO가 양팔을 뻗으며 자세를 잡는다.
SCP-529-KO
― (광소를 터뜨리며) 난 버즈소 맨Buzzsaw Man이다!
배일호 부장
― 씨발. (창문에 머리를 박고는) 둘 다 그냥 들이받아 버려. 차로 치고 가자.
SCP-529-KO가 괴성을 지르며 대형 독립체를 향해 돌진한다. 회전하는 톱날이 대상을 찢어발긴다.
대형 독립체: (식별할 수 없는 비명)
SCP-529-KO
― 네놈을 갈면 연지가 나온다지! 이 톱은 말야, 연지로 작동한다고!
SCP-529-KO가 몸을 낮춘 채 미끄러지며 독립체의 다리를 베어낸다. 독립체의 다리가 잘려 나간다. 잘린 신체 안에서 SCP-1885-KO의 군체가 쏟아져 나온다. 독립체가 팔을 휘두르며 저항한다. SCP-529-KO가 독립체의 팔을 붙잡고 버틴다. 상체를 숙이자, 머리에 돋아난 원형톱이 거칠게 피부를 찢어낸다.
대형 독립체: (식별할 수 없는 비명)
SCP-529-KO
― 우유가 돼라! 우유가 돼! 빨리 딸기 우유가 되라고!
SCP-529-KO가 독립체의 배를 찢어버린다. 내장이 쏟아지며 독립체가 뒤로 고꾸라진다.
잠시 멈춤
전지찬 과장
― 어우.
SCP-529-KO
― 하하하하! 딸기 우유다!
SCP-529-KO가 독립체의 피로 뒤덮인 채 허리를 위로 편다.
배일호 부장
― 아직 안 늦었다. 지금이라도 액셀 밟죠?
전지찬 과장
― 쓸모는 있어 보이는데.
배일호 부장
― 그게 중요해?
I-I3LL
― 제비꽃 개체는 보통 저런 식으로 처리하는군요. 하나 배웠습니다.
전지찬 과장
― 어, 아마 아닐걸?
배일호 부장
― 왜 날 봐? 나 쟤랑 잘 모릅니다.
SCP-529-KO
― 하하하하하!
잠시 멈춤
배일호 부장
― 진짜 모른다니까.
기록 종료
투입 인력:
- 차원학부장 배일호
- 악마학과장 전지찬
- SCP-529-KO
- 악마학과 운용병기 "I-I3LL"
기록 시작
공장 부지 내 차량이 도착하고 제동한다.
배일호 부장
― (차량에서 내리며) 캬. 공기 좋고!
전지찬 과장
― (따라 내리며) 좋긴 뭐가 좋아요, 벌레 천진데 지금. 걸을 때마다 벌레 터지는 소리가 난다고요.
배일호 부장
― 공기 좋은 건 좋은 거고, 벌레 많은 건 많은 거지. 난 밖에 나오는 것 자체가 귀한 몸이라고. 댁이랑 다르게.
전지찬 과장
― 러브버그 사태보다 더 역하네… 냄새 뭐야 이거. 하, 차 새로 뽑은 건데, 냄새 다 배겠네 진짜…
SCP-529-KO
― 잠깐만요. 저기 좀 보세요.
공장 부지 내 SCP-1885-KO 군체로 이루어진 기형 독립체들이 어슬렁거린다. 개체들은 각기 다른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몸의 일부는 유기적으로 엮인 무기처럼 변형되어 있다.
전지찬 과장
― 썅, 저건 대체 뭡니까? (차량 옆으로 몸을 숨기며) 아까 그 덩치도 그렇고, 저것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데요!
배일호 부장
― 낸들 압니까? 야, 너네들. 뭐 감 오는 거 없어?
SCP-529-KO
― 글쎄요. 벌레겠죠? 저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건 처음 봅니다만…
I-I3LL
― 스캔 중. 독립체 전신에서 미량의 타르타로스 에너지가 검출됩니다.
배일호 부장
― 연지벌레의 악마 짓이구만, 그럼. 그놈이 실세일 줄 알았어.
전지찬 과장
— 잠깐, 무슨 악마요?
배일호 부장
— 연지벌레의 악마. 카치닐 놈들이 지구에서 도대체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어코 악마까지 소환해서 지들 침공 작전을 돕고 있어. 내가 얘기했던가?
전지찬 과장
— …브리핑에서는 이런 대화 하나도 없지 않았어요?
배일호 부장
— 음, 까먹었나 보군. 괜찮아. 천천히 알아가면 되는 거니까.
전지찬 과장
— 아니, 이게 무슨 소개팅도 아니고…
전지찬 과장
― 그리고, 안으로는 대체 어떻게 들어갈 겁니까? 악마까지 소환한 놈들이 저 정도면 입구 자체가 지옥문일 텐데.
배일호 부장
― 말 한번 잘했습니다. 이거 받으십쇼.
배일호 부장이 원통형 무언가를 휙 던진다. 전지찬 과장이 양손으로 받아낸다.
전지찬 과장
― 이, 이건 뭐―
배일호 부장
― 딸기우유. 연지 색소가 듬뿍 첨가된, 업소용 대용량 통이지. 놈들이 앞에서 뭔가 하려 한다 싶으면 빨대 꽂고 마시쇼.
전지찬 과장
― 뭐? 이딴 게 통하겠어요?
배일호 부장
― 통하지. 쟤들 입장에선 자기 몸 갈은 건 아주 게걸스럽게 마시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역지사지로 생각해 봐. 도망 안 치고 배겨?
I-I3LL
― 진입 루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필요하다면 제가 활로를 여는 것도 가능합니다.
SCP-529-KO
― 어쩌실래요?
배일호 부장
― 어쩌긴. 너네들, 오기 전에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SCP-529-KO
― 예?
배일호 부장
― 전면전이야. 가진 거, 할 수 있는 거, 다 쏟아붓는 전쟁이라고. 모든 총력을 다 써야지.
SCP-529-KO
― 역시 끝내주게 좋은 말만 하시네요. 좋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시간을 끌고 있겠습니다. 부장님들은 안으로 먼저 진입하시죠.
전지찬 과장
― 뭐?
배일호 부장
― 운전대 잡으십쇼. 우린 갑시다.
전지찬 과장
― 아니, 뭐?
배일호 부장
― 못 들었어? 타라니까? 출발하자고, 급해!
SCP-529-KO
― 꿈 배틀이다! 새끼들아!
기형 독립체
― 그러렁?
SCP-529-KO
― (시동음) 네 꿈이 큰지 내 꿈이 큰지 대결 한번 해보자고!
배일호 부장
― (앓는 소리) 또 시작이네 하이고.
SCP-529-KO가 기형 독립체 무리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한다. I-I3LL 역시 소지한 총기를 장비한다.
I-I3LL
― 엄호하겠습니다.
전지찬 과장
― (안전벨트를 매며) 이, 이거 새 차라고!
배일호 부장
― (조수석에 탑승하며) 그러게 새 차를 왜 이딴 데 끌고 와!
전지찬 과장
― 차가 이거 하나래서… 아니, 그러니까 왜 나를 이딴 데까지 끌고 오냐고―!
I-I3LL이 차량 지붕 위로 뛰어올라 한쪽 무릎만 꿇은 자세로 고정된다. 기형 독립체 하나가 차량을 포착하고, 몸을 낮춘 채 돌진 태세를 갖춘다.
I-I3LL
― 속도 올리세요. 과장님. 절대 브레이크 밟으시면 안 됩니다.
전지찬 과장
― 앞 유리에서 비켜! 안 보이니까!
배일호 부장
― 답답하긴! 내가 운전할까?
I-I3LL
― 지금입니다.
전지찬 과장
― (이를 악물며) 씨발!
차량이 급가속하며 기형 독립체를 향해 돌진한다. I-I3LL이 총기를 겨눈 채 사격한다. 섬광이 연속적으로 작렬한다. 총탄이 기형 독립체의 가슴을 관통한다.
I-I3LL
― 멈추지 마세요. 계속 가십시오.
기형 독립체가 여전히 돌진을 멈추지 않는다. I-I3LL이 사격을 이어간다. 독립체의 신체 일부가 터져나가며 SCP-1885-KO 군체가 흩뿌려진다. 충돌 직전, I-I3LL이 차량에서 뛰어내린다. 독립체의 머리를 붙잡은 채 땅으로 내리꽂는다. 차량이 급하게 옆으로 핸들을 꺾는다. 회전하며 간신히 독립체를 스쳐 지나간다. 부지 안쪽으로 이동한다.
I-I3LL
― 진입에 도움이 되셨습니까?
전지찬 과장
― 이거 새 차라고! 흠집이―
I-I3LL
―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SCP-529-KO
― 캬하하하하! (배기음) 먼저 가십쇼! 죄다 갈아버리고 합류하겠습니다!
I-I3LL
― 저도 곧 뒤따르겠습니다.
차량이 공장 입구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간다. 정면에 철문이 보인다.
배일호 부장
― 그대로 돌진해.
전지찬 과장
― 으아아아! 내 차!
차량이 철문을 그대로 들이받는다. 문을 부숴버리며 공장 안으로 진입한다. 화면이 심하게 흔들린다.
기록 종료
인원:
- SCP-529-KO
- 악마학과 운용병기 "I-I3LL"
SCP-529-KO
― … 갔냐?
I-I3LL
― 간 것 같습니다.
기형 독립체가 SCP-529-KO와 I-I3LL 앞으로 몰려든다. 수십 마리의 독립체는 이내 점점 서로에게 밀착하고, 융합되어 거대한 점액 덩어리가 된다. 덩어리가 요동치고, 세 독립체로 나뉘어진다. 각각 핑크색 점액질로 이루어진 장수말벌 (Vespa mandarinia), 길앞잡이 (Cicindela chinensis), 그리고 독일바퀴 (Blattella germanica) 모양이다. 장수말벌 형태의 독립체의 배가 꿈틀거리더니, 인간의 입과 유사한 장기를 형성한다.
SCP-529-KO
― 뭐야. 쟤네 왜 저래.
점액 독립체
― 방해하는 건가.
SCP-529-KO
― 뭐, 아무래도 우리 직업이 이래서야. 너네도 알잖아?
점액 독립체
― 학살자들 주제에 말이 많군.
I-I3LL
― 이제 저희의 임무는 저 독립체들이 건물 내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뿐입니까?
SCP-529-KO
― 그런 셈이지.
점액 독립체
― 그렇다면… 좋다.
모든 독립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점액 독립체
― 막아봐라.
SCP-529-KO
― 돌겨어어어어억!!!
SCP-529-KO가 스타터를 당기고, 슈트에서 원형톱이 튀어나온다. 길앞잡이 독립체와 말벌 독립체가 동시에 대상에게 돌진하지만, SCP-529-KO가 회전하며 둘의 다리를 잘라낸다. I-I3LL은 돌진하는 바퀴벌레 독립체 위로 도약해, 개체의 앞다리를 잡아 뜯어낸다. 부위가 절단되고 으깨질 때마다 딸기우유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적신다.
SCP-529-KO
― 무한 딸기우유 분수를 완성했다고! 이걸로 노벨상은 내 거야!
SCP-529-KO가 쓰러진 길앞잡이 독립체를 원형톱으로 연타한다. 딱지날개와 내장이 갈려 나며 딸기우유가 폭발한다. I-I3LL은 바퀴벌레 독립체 위에 탄 상태로 개체의 겹날개를 반으로 찢는다.
I-I3LL
― 노벨상은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6개 분야에서만 수여됩니다.
날개가 완전히 뜯긴다. 바퀴벌레 독립체가 울부짖는다.
I-I3LL
― 이러한 행위는 노벨 평화상 정도의 후보로밖에는 꼽을 수 없습니다.
SCP-529-KO
― 허, 참. 진지해서야.
장수말벌 독립체가 SCP-529-KO를 향해 돌진한다. SCP-529-KO가 도약해 개체의 꽁무니를 잡는다. 왼팔의 원형톱이 떨어진다.
SCP-529-KO
― 아, 썅!
I-I3LL
― 조심하십시오.
SCP-529-KO
― 어, 어어! 뭐야!!
I-I3LL이 원형톱을 잡아 원반처럼 던진다. SCP-529-KO 머리맡을 스치며, 꽁무늬가 절단된다. 장수말벌 독립체가 완전히 녹아내리며 쏟아진다.
SCP-529-KO
― 아야야… 엉덩이로 착지했어.
I-I3LL
― 조금 빌리겠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I-I3LL이 원형톱을 날려보내 기어오는 바퀴벌레 독립체에 박아넣는다. 이후 도약해 원형톱을 잡고, 땅바닥으로 찍어누른다. 바퀴벌레 독립체는 머리부터 완전히 폭발하며 사라진다.
I-I3LL
― 두 마리 퇴역. 한 마리 남았습니다.
SCP-529-KO
― 내 차례다!
SCP-529-KO가 길앞잡이 형태의 독립체를 향해 질주한다. 길앞잡이 독립체도 그에 맞춰 돌진하지만, 충돌 직전, SCP-529-KO가 뛰어올라 독립체 위에 안착한다.
SCP-529-KO
― 내 체인소가 팔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했냐!?
I-I3LL
― 아닙니다. 그리고 버즈소 아니었습니까?
SCP-529-KO가 스타터를 당기고, 다리에 원형톱이 펼쳐지며 회전한다. 길앞잡이 독립체가 세 갈래로 갈리며 폭발한다.
I-I3LL
― 해치웠군요.
SCP-529-KO
― 그런 말 하지 마! 기분 나쁘게.
I-I3LL
― 죄송합니다. 어떠한 비하의 의미도 담지 않았습니―
공장 내부에서 갑작스럽게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불기둥을 공장 천장을 뚫고 하늘로 발산되며, 그와 동시에 거대한 목소리가 울린다.
불명
― 죽어간 동포에겐 애도를. 색소 비첨가. 짓밟은 자들에겐 끝없는 고통을.
SCP-529-KO
― 어라.
I-I3LL
― …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SCP-529-KO
― 그러게. 존나 그런 것 같네.
기록 종료
인원:
- 차원학부장 배일호
- 악마학과장 전지찬
기형 독립체
― (인식불가한 발성)
배일호 부장
― 야, 온다! 온다! 전지찬 과장, 시작해!
전지찬 과장
― 쪼오오옥!
기형 독립체
― (공포에 질린 발성)
배일호 부장
― 그래, 도망가라. 꺼져 이 새끼야. 다신 내 눈앞에 얼쩡대지 마!
전지찬 과장
― (딸기우유 통을 내려다보며) 썅, 이게 진짜 먹힐 줄은 몰랐는데.
배일호 부장
― 참 순진한 양반일세.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할 줄 알았어? 다 통한다니까.
전지찬 과장
― 아니 그보다, 대체 왜 우리 둘만 쳐들어온 거냐고요. 예? 이 적진에. 예? 말 좀 해보시죠.
배일호 부장
― 아까 말했잖아요. 정상회담 하러 왔다고.
전지찬 과장
― 조금 전까진 전면전이라면서요.
배일호 부장
― 거 참 그럼 둘 다 하는 거지. 머리 좋다는 인간이 그 정도 멀티도 안 돼? 대화 함 나누다가 수틀리면… 팍! (주먹을 내지르며) 파바박!
전지찬 과장
― 그게 지금 당신 작전이라고?
배일호 부장
― 개쩔지?
전지찬 과장
― 하, 씨발.
배일호 부장
― 또 왜. 한숨만 푹푹 쉬고. 나랑 있어서 그렇게 죽겠어요?
전지찬 과장
― 아까 써놓다 만 유서 생각나서요. …그나저나, 심장부는 도대체 어디랍니까. 입으로 벌레가 자꾸 들어온다고요.
배일호 부장
― 글쎄. 우리가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됐더라? (기어다니는 SCP-1885-KO 개체 하나를 집어 들며) 이것들… 자아는 없어 보이네.
전지찬 과장
― 그럼, 얘들이 제어 안되고 있단 얘깁니까?
배일호 부장
― 영역권에 벗어난 걸 수도 있겠지. 뭐, 일단은 더 밑으로 내려가 보는 수밖엔 없지 않겠습니까?
전지찬 과장
― 제가 뭐라 할 것 같은데요.
배일호 부장
― 싫다고 하겠지.
땅이 흔들리며, 묵직한 발소리가 울린다. 두 인원이 공장 생산라인 사이로 몸을 숨긴다.
배일호 부장
― 근데 여기 계속 죽치고 있어봤자, 저 새끼들한테 들키는 건 시간 문제요. 대비책도 이제 슬슬 바닥나고 있고.
전지찬 과장
― 그래서 제가 여기 오기 싫다고 했잖아요!
배일호 부장
― 근데 왔잖아! 거 찡찡대는 거 적당히 하고, 일단 따라오쇼!
전지찬 과장
― 또 뭔 개수작을 하려고요!
화면이 움직인다.
배일호 부장
― 여기있네.
전지찬 과장
― 엘리베이터? 이 공장 전력이 살아 있어요?
배일호 부장
― (엘리베이터 문을 억지로 벌리며) 으, 일단 좀 도와줘 봐요.
전지찬 과장
― 진짜 미치겠네―
전지찬 과장이 합세한다. 약 3분간 둘이서 문을 비틀어 연다.
배일호 부장
― 됐어! 타요, 빨리!
전지찬 과장
― 이거… 진짜 작동하긴 하는 겁니까?
배일호 부장
― 글쎄? 지금 시도해 보려고.
배일호 부장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힘껏 뛴다. 엘리베이터가 거칠게 흔들린다.
전지찬 과장
― 야야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쳤어?!
배일호 부장
― 당신 지금까지 줄곧 내가 정상으로 보였어? 다치기 싫으면 어디 꽉 붙잡―
엘리베이터가 추락한다.
전지찬 과장
― 씨이이바아아알―!!!
잠시 후, 긴급 제동 장치가 작동한다. 쇳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화면이 흔들린다.
전지찬 과장
― …저, 저 죽은 거 아니죠?
배일호 부장
― 멀쩡해. 죽었으면 말도 안 나와요. 경험자 말이니 믿어.
배일호 부장이 문틈에 어깨를 끼워 억지로 빠져나간다. 전지찬 과장도 따라 나온다. 두 사람은 지하층 바닥에 내려선다.
배일호 부장
― …어때? 지하에 왔잖아요. 시도하길 잘했죠?
전지찬 과장
― …어떠냐고? 어떠냐고 한 거야 나보고?
배일호 부장
― 지하로 오는 길이 이거밖에 없었잖아.
전지찬 과장
― 당신 진짜―
배일호 부장
― 쉿. 조용해 봐요. 저거 들려요?
전지찬 과장
― 또 뭘…
지하 공조실 쪽에서 낮게 웅얼거리는 음성이 새어 나온다.
불명
― (식별할 수 없는 음성)
전지찬 과장
― 저건…
배일호 부장
― 연지벌레 악마. 그리고, 그걸 부리는 새끼까지. 둘 다 저곳에 있는 모양이네.
배일호 부장이 몸을 낮춘다.
배일호 부장
― 몸 숙여요. 들킬라.
전지찬 과장
― (몸을 숙이며) 이제 어쩔 건데요? 둘이 와서 뭐 하려고, 방법이라도 있어요?
배일호 부장
― 없는데.
전지찬 과장
― 네?
배일호 부장
― 진짜 무사히 올 줄 몰랐거든.
불명
― 거기. 당신들. 다 보고 있다. 알고 있습니까?
전지찬 과장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SCP-1885-KO 개체 하나가 정면으로 시선을 맞춘다.
배일호 부장
― 아.
잠시 멈춤.
배일호 부장
― 군체의식.
불명
― 이리들 오시지요.
SCP-1885-KO 군체가 촉수처럼 뻗어 나와 배일호 부장을 끌어온다. 전지찬 과장 역시 함께 끌어간다.
전지찬 과장
― 배일호―! (기침 소리) 이 개새―! 켁켁!
배일호 부장
― 입에 벌레 안 들어가게 조심해!
카메라 화면이 SCP-1885-KO 개체들로 완전히 뒤덮인다.
암전.
카메라 작동음
배일호 부장
― 뭘 봐 새끼야! 구경났어?!
화면이 거꾸로 돌아간다. 배일호 부장이 거꾸로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다. 인간형으로 의태한 SCP-1885-KO가 그의 신체 이곳저곳을 만져본다.
배일호 부장
― 아. 아. 수치심. 시발.
SCP-1885-KO
― 흥미롭군요. 겉껍데기는 추악한데, 안은 엄연히 우리와 가깝습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배일호 부장
― 그 소리 할 거였으면 초장에 하지 그랬냐. 지금 와서 말해봤자 이거 읽는 사람들이 못 알… 으어어억―!
화면이 빙글빙글 돈다.
전지찬 과장
― 저, 저기 매달린 사람들… 다 사람이야?
SCP-1885-KO
― 네. 우리 동포가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중이었죠.
전지찬 과장
―그러니까… 그게 인간 맛 우유…
SCP-1885-KO
― 좀 더 정확히는, 인간 색소 첨가죠.
SCP-1885-KO가 웃는다.
배일호 부장
― 그래서, 니들이 카치닐인가 뭔가 그거냐? 저번이랑 말투가 좀 다른데?
SCP-1885-KO
― 우리는 배웠습니다. 시간은 많았으니까요.
배일호 부장
― 쩌네. 수능 몇 등급이야?
SCP-1885-KO
― 그래서,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이유가 뭡니까. 정상회담? 협상? 아니면, 그냥 저를 죽이러 온 겁니까?
전지찬 과장
― 저는 반대했거든요. 전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 사람이…
배일호 부장
― 이 사람 왜 이래. 이게 다 내 책임이란 거야?
전지찬 과장
― 당신 탓 맞잖아! 이게 웬 개고생인데? 난 현장 일이랑 안 맞는다니까!
배일호 부장
― 꼴에 현장대응팀 과장이라는 사람이.
전지찬 과장
― 난 댁처럼 막무가내 들이대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SCP-1885-KO
― 시끄럽군요, 둘 다.
SCP-1885-KO가 손짓하자, 군체가 움직인다. 구속된 전지찬 과장이 앞으로 끌려온다.
SCP-1885-KO
― 너. 인간.
전지찬 과장
― 어, 예? 저요? 왜요?
SCP-1885-KO
―품 안에 숨긴 건 뭐죠?
SCP-1885-KO의 촉수가 전지찬 양복 안쪽으로 파고든다.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낸다. 우유 통이다.
SCP-1885-KO
― 이 극악무도한!
전지찬 과장
― 흐아악! 사, 살려주십쇼!
SCP-1885-KO
― 감히! 카치닐의 동포를 갈아 만든 끔찍한 잔재를 이곳에 겁도 없이 들고 들어와?!
배일호 부장
― 맞아, 이 나쁜 새끼야. 그게 할 짓이냐?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전지찬 과장
― 배일호 이 개새끼야―! (천장 가까이로 거꾸로 들어 올려지며) 우아아악!
SCP-1885-KO
― 이놈만큼은… 이놈만큼은 내가 직접 불태우겠어! 계약자여, 나타나라!
공조실 바닥이 갈라지며 불꽃으로 된 인영이 솟아오른다. SCP-1885-KO-A가 모습을 드러낸다.
SCP-1885-KO-A
― 죽어간 동포에겐 애도를. 색소 비첨가. 짓밟은 자들에겐 끝없는 고통을.
배일호 부장
― 옳거니. 네가 연지벌레의 악마군. 공장에 해처리 지은 게 너지?
SCP-1885-KO-A
― 동포? 아니, 넌 뭐지? 이 낌새… 이 탁한 기운…
SCP-1885-KO
― 오해는 접도록, 계약자. 저자도 집단의 끄나풀이다. 죽여야 할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배일호 부장
― 아잉.
잠시 정적.
SCP-1885-KO
― …뭐지. 방금 그 기묘한 소리는.
배일호 부장
― 애교. 플러팅. 구애 행위. 몰라?
SCP-1885-KO
― 애교…? 플… 러팅? 이해할 수 없다.
배일호 부장
― 왜. 나처럼 멋진 사람을 진짜 죽이게? 아깝지도 않아?
SCP-1885-KO
― 네가 우리 종들 사이에서도 제법 매혹적인 페로몬을 흘리는 건 인정하지. 그러나 그게, 널 살려둘 이유가 되진 않는다.
배일호 부장
― 알아. 나도 너 싫어. 그냥 시간 좀 끌었어.
SCP-1885-KO
― 시간? 무슨 소릴―
SCP-529-KO
― 크하하하하하!
문이 박살나며 열린다. SCP-529-KO가 원형톱을 휘두르며 돌진한다. 배일호를 붙잡고 있던 군체를 모조리 갈아버린다. 배일호 부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I-I3LL이 뒤이어 등장한다.
배일호 부장
― 짜잔. 지원군이 왔어요.
I-I3LL
― 과장님. 현기증과 두통을 참작해 주십시오.
I-I3LL이 전지찬을 구속하던 부분만 골라 사격한다. 구속이 끊기며 전지찬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전지찬 과장
― 악! 내 허리!
SCP-1885-KO
― 너, 너희는 또 뭐냐!
SCP-529-KO
― 뭐긴, 우유 배달부다! 이 새끼야! 니들 때문에 배급이 끊겼다고! 애들은 우유 먹어야 키가 큰다고, 몰라?!
전지찬 과장
― 아니, 대체 어떻게 온 거야?
I-I3LL
― 계단을 이용했습니다.
전지찬 과장
― 계단?(배일호 부장을 바라본다) 계단이라네?
배일호 부장
― 아하, 계단. 그게 있었구나.
SCP-529-KO
― 내 연료가 돼라! 립스틱이 돼라! 이 연지 놈들아!
SCP-529-KO가 달려오는 SCP-1885-KO 개체들을 갈아버린다. SCP-1885-KO가 비명 지른다.
SCP-1885-KO
― 계, 계약자여! 막아라! 얼른!
SCP-1885-KO-A
― (웅얼거리는 음성)
SCP-1885-KO-A가 타오른다. 대상이 팔을 벌리자, 주변 군체들이 하나로 모인다. 이윽고 새 대형 독립체를 빚어낸다. 독립체가 완성되는 순간, 머리가 산산이 터진다. I-I3LL의 총구가 연기를 내뿜고 있다.
I-I3LL
― 외교 절차상 먼저 사과드립니다. 저는 재단 매뉴얼을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배일호 부장
―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 섞을 필요 없어, 다 죽여버려. 싹다.
SCP-1885-KO가 비명 지른다.
SCP-1885-KO
― 이, 이럴 수는 없다. 내, 내가 갈려 죽다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전지찬 과장
― 그래, 꼴 좋다! 딸기 우유나 되어버리라고! 이 망할 자식!
SCP-529-KO
― 크하하하하!!
SCP-1885-KO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I-I3LL
― 개체의 무력화를 확인했습니다.
SCP-529-KO
― (팔을 휘둘러 연지를 털어내며)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다, 악마!
SCP-1885-KO-A
― 원념… 죽어간 동포들의, 원념…
공조실 기계장치 하나가 손에 짓눌린 것처럼 찌그러진다. 공간이 압착되며 붉은 즙이 뿜어져 나온다.
배일호 부장
― 뭐야, 방금 건? …저런 게 가능해?
I-I3LL
― 시뮬라크르 독립체의 변칙성입니다. 구역 단위의 공간을 통째로 압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험하군요.
SCP-529-KO가 뒤로 구른다. 공간이 압착된다. 붉은 즙이 뿜어진다.
SCP-529-KO
― 씨발― 짜부 될 뻔 했네…
배일호 부장
― …쩌는데.
I-I3LL
― (철컥이는 소리) 소지한 탄약을 전부 다 사용했습니다. 이제 근접전을 병행해야겠습니다.
SCP-1885-KO-A
― 찌부러져라. 색소가 돼라. 다져져라.
SCP-529-KO
― 아앙? 싫거든! 너나 되라고!
SCP-529-KO가 자세를 낮추며 돌진한다. SCP-1885-KO-A의 복부를 그대로 찢어발긴다.
SCP-1885-KO-A
― (고통에 찬 비명)
전지찬 과장
― 뭐야, 저렇게 간단히?
SCP-1885-KO가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잠시 정적.
클라라 박사
― (무전음) 상황 보고 좀 해주실래요? 어떻게 됐어요?
배일호 부장
― 어… 글쎄. 대충… 끝난 것 같기도? 나오는 건 다 죽였는데?
클라라 박사
― (무전음) 하… 다행이네요. 수고했어요.
SCP-1885-KO-A
― (미세한 웅얼거림)
SCP-529-KO
― 아뇨, 뭔가 이상해요. 느낌이 안 좋은데.
바닥에 흩어진 연지벌레 군체가 또다시 꿈틀거린다. 공조실 전체가 흔들리고, 공간이 일그러진다. 찢어진 -A의 사체 안에서 새로운 형상이 비집고 나온다.
배일호 부장
― 세상에.
SCP-529-KO
― 나가요! 얼른!
전지찬 과장
― 씨발,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배일호 부장
― 뭐기는! 당신 전문가잖아! 내가 봐도 알겠는데, 이건!
인원이 황급히 퇴각한다.
배일호 부장
― 1885-KO의 원념이랑 정체성까지 싸그리 먹어 치운 거야! 저 새끼는 지금 연지벌레 악마의, 악마라고!
전지찬 과장
― 그게 말이 되냐고!!!
I-I3LL
― 설명은 나중입니다. 일단 대피하십시오.
I-I3LL이 떨어진 파이프를 집어 든다. 부활 중인 SCP-1885-KO-A의 머리로 투척한다. 머리가 관통되지만, 다시 그 안에서 또 다른 몸이 비틀며 나온다.
배일호 부장
― 씨발, 연지벌레의 악마의, 악마의 악마―
전지찬 과장
― 알겠으니까 그쯤하고 뛰라고요!
배일호 부장과 전지찬 과장이 계단을 향해 달려간다. SCP-1885-KO-A의 몸체가 변형하며 거대한 딸기우유 덩어리가 되더니, 압축된 딸기우유를 난사한다. 순식간에 벽과 공간이 파이며 천장이 진동한다.
SCP-1885-KO-A
― 원념. 제거. 제거. 살해. 압착. 제거.
I-I3LL
― 죄송합니다. 불가능합니다.
SCP-529-KO
― 뭐, 뭐 하는 짓이야?
I-I3LL
― 전 죽어도 작전상 손실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제가 타르타로스 독립체를 막겠습니다. 어서 후퇴하십시오.
전지찬 과장
― 알루미늄맨! 뭐 하는 거야! 어서 나와!
SCP-529-KO
― 아니, 아니아니아니! 너도 나와야지! 우리같이 일했잖아! 왜 안 나가겠단 건데!
배일호 부장
― (알루미늄맨의 어깨를 당기며)야, 버즈소 맨! 정신 안 차려?
SCP-529-KO
― 아, 아니, 부장님!
배일호 부장
― 괜찮다고! 버즈소 맨은 생각 같은 거 안 해! 지금은 도망칠 궁리만 하라고!
SCP-529-KO
― 큭…!
모든 인원이 도주한다. I-I3LL과 SCP-1885-KO-A만이 서로를 바라본다. 이내, I-I3LL이 군용 나이프를 빼든다.
I-I3LL
― 모두 후퇴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럼, 끝냅시다.
SCP-1885-KO-A
― 압착.
기록 종료
비고: I-I3LL을 제외한 전원 무사 귀환하였다. SCP-1885-KO-A는 일시적으로 무력화된 것으로 간주되며, 주변 지역은 폐쇄되었다.
추가적인 대응에 관한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부록5: 제14K임시공동구역 긴급브리핑
초기 회동 8일 후 긴급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제14K임시공동구역 회의록
<발췌문 시작>
전지태 선임 연구원: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배일호 부장: 주어를 똑바로 해. 나야, 쟤야. 누구한테 말하는 건데?
클라라 박사: 당연히 둘 다요! 책임지셔야죠!
전지찬 과장: 일단… 다시 짜야죠. 계획부터.
배일호 부장: 당신, 어제부터 그 소리 했잖아. 기막힌 수 한 방이 아직도 안 떠오르셨나?
전지찬 과장: 제가 당신인 줄 압니까? 꼬인 실타래 좀 풀어볼라니까 좀 기다리세요.
SCP-529-KO: 그 벌레 놈… 아니, 악마라고 했었죠? 보통 방식으로는 안 죽을 것 같은데.
배일호 부장: 체인소 맨 모드로도 안 돼?
SCP-529-KO: 버즈소 맨이거든요.
배일호 부장: 엎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지.
전지찬 과장: 계속 그렇게 농담이나 칠 겁니까?
배일호 부장: 미안하다고. 낸들 저런 놈인 줄 알았겠어? 죽이니까 리스폰하는 게 말이 돼?
I-I3LL: 복수와 처벌 충동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타르타로스 독립체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육체가 사망 시 영혼 역시 함께 소멸합니다만…
전지찬 과장: 원념이 우로보로스처럼 꼬리를 무는 거야. 드물긴 한데, 아주 없는 유형은 또 아니거든. 보통 재귀성 개체로 분류하는 편이지.
배일호 부장: 잘 아네. 그럼 방법은? 그런 애들 처리해 본 적 있을 거 아녜요.
전지찬 과장: 지금까진 대부분 약한 개체였습니다. 공간을 찌그러뜨리거나, 괴물을 직접 빚어내지도 않았고요. 이번엔… 기존 방식으론 답이 안 나올 겁니다.
이고양 연구원: 뭔가 좋은 방법 없을까요… 이러다간 한국에 우유가 사라지고 말 거라고요…
손기정 연구원: 우유는 이제 부차적인 문제죠, 고양 씨. 여기서 못 막으면, 장막 정책이 통째로 뚫릴지도 모릅니다.
전지태 선임 연구원: 에이 씨, 고작 벌레 새끼들 때문에…
전지찬 과장: 지태야.
전지태 선임 연구원: 알아요. (혀 차는 소리) 어쩌죠?
우나은 대원: 아, 대규모 포격은 어떨까요? 아예 구역째 날려버리는 방법이요.
전지찬 과장: 무리야. 군체는 박멸하겠지만, 1885-KO-A 만큼은 다시 기어 나오겠지.
SCP-529-KO: 끝없이 죽이는 건? 지가 죽여달라고 할 때까지 계속 갈아버리는 건 어떤데요?
전지찬 과장: 안 통할 가능성이 클 거야. 두려움을 느끼는 일반적인 개체하고는 판이하니까. 그리고 만약, 죽을 때마다 원념이 더 세지는 타입이면 그땐 우리도 손 떼야 할 걸?
배일호 부장: 뭐, 음. 예. 안타까운 일이죠. 여러분들에게. 그쵸?
전지태 선임 연구원: 뭡니까, 그 말은. 설마 내빼시려는 겁니까?
배일호 부장: 제비꽃 개체는 무사히 처리했잖아? 내 임무는 끝난 거지. 기정아, 우린 제21K기지로…
잠시 멈춤.
배일호 부장: 왜. 뭔 일인데.
손기정 연구원: 부장님. 이거 보실래요.
배일호 부장: 지도네.
손기정 연구원: 네. 제21K기지죠. 오늘 아침에 위성 촬영한 거예요. 여기 이 빨간 점들 보이시죠?
배일호 부장: 응.
손기정 연구원: 다가오려는 거 보이시죠?
배일호 부장: 응.
손기정 연구원: 이게 뭘까요?
배일호 부장: 정답, 연지벌레!
잠시 멈춤.
배일호 부장: 전지찬 과장. 난 당신을 믿습니다.
전지찬 과장: 뭐라고요?
배일호 부장: 뭐 좀 해봐요! (옷자락을 붙잡으며) 내 집이 터진다고!
전지찬 과장: 아,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이거 왜 이래?!
배일호 부장: 쟤들이 어떻게 저길― 아니 시발― 내 유일한 자산이 거기 밖에 없는데! 지금 재단 자체를 터뜨리려고 하잖아!
전화 착신음.
클라라 박사: 누구 전화죠?
배일호 부장: 이사관님. 잠깐 나갔다 온다. 나 올때까지 해결책 만들어 놔. 진짜 씹…
배일호 부장이 회의실을 나간다.
SCP-529-KO: 그럼 저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일이 조금 있어서…
SCP-529-KO가 비물질화한다.
전지찬 과장: …으음.
우나은 대원: 좋은 방법 없을까요?
전지찬 과장: 클라라 박사님. 배일호 부장은, 변칙 개체로 분류됐다고 했었죠?
클라라 박사: 아, 네. 겉보기엔 저러셔도 현재 신체 기관은… 그건 왜 물어보시죠?
전지찬 과장: 죽음 말고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 … 조금 미친 생각이 떠올랐네요. 그쪽 부장이 생각할 법한.
손기정 연구원: 잘 됐어요. 그게 해결책이네요.
전지태 선임 연구원: 뭔진 몰라도 불안한데요.
전지찬 과장: 나도 그래.
잠시 멈춤.
전지찬 과장: 그래도,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있을지도.
중략.
배일호 부장: 나왔어.
손기정 연구원: 이사관님이 뭐래요?
배일호 부장: 아, 별 얘기 없었어. 날 죽여버리겠다나. (코웃음 치며) 항상 하던 말씀이지, 뭐.
전지찬 과장: 때마침 잘 오셨네요. 배일호 부장. 이번 계획에 당신이 최중요 인물입니다.
배일호 부장: 뭐, 나? 내가 잘나긴 했지. 근데 뭔 일인데?
전지찬 과장: …놈이 "무리" 라고 하던 거 기억하십니까?
배일호 부장: 우리 사전에 무리 따윈 없거든? 작전이 빡세다고 해서 대놓고 무리라고 포기 선언은―
전지찬 과장: 아뇨. 놈이 군체라는 소리 말입니다. 말 좀 똑바로 들으세요.
배일호 부장: 기억 안 나는데?
전지찬 과장: 잘 들으세요, 일호 씨. 저희가 놈은 못 죽입니다.
배일호 부장: 옳거니, 씨발 결국 이 소리가 나왔네. 그래서, 노래마인 구두라도 핥으면서 '우리도 알파-88 빌려주세요 누님~' 이러자고?
전지찬 과장: 그런데, 일호 씨는 죽일 수 있어요.
배일호 부장: 면전에서 이러기야? 날 죽이자고? 이 박쥐 같은 새끼들. 내가 쟤들 편인 줄 아나―
전지찬 과장: 아니, 닥치고 들으세요 좀. 연지벌레의 악마는 개념적인 존재입니다. 그니까 놈의 정체성이 완전히 뒤집히면 얘기가 달라진다고요.
전지찬 과장: 그리고 현재 놈의 정체성은 벌레 군집입니다. 물리적으로 형상화되어 있고요. 그 군집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 수 있다면… 아니, 또다른 벌레 군집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배일호 부장: … 뭐?
전지찬 과장: 놈이 연지벌레 대신… 배일호 씨를 생산해 낸다면요?
배일호 부장: 지랄.
전지찬 과장: 배일호 씨의 몸은 완전체 군집이에요. 온몸이. 손상되면 서로 번식하고, 먹어 치우고, 재생하는, 생태계를 방불케 하는 군집이라고요. 그렇다면, 그 군집을 유지 가능한 선에서만 악마 안에 주입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배일호 부장: 내가… 번식하겠지. 거기서.
배일호 부장: 아니야. 이건 아닌 것 같아. 진짜 미안한데, 나도 못 해 먹겠다 이건. 씨발, 작전이란 게 정도가 있지. 요약하면 이거잖아. 연지벌레의 악마 속에서… 날 복제한다는 거.
전지찬 과장: 진정한 의미의 복제는 아니죠. 일호 씨랑 비슷하게 생긴 껍데기일 뿐이에요. 당신의 기억도, 관계도, 습관도 없어요. 그저 그쪽 악마의 본래 형상과 기호학적 정체성이 배일호 모양으로 재구성되는 것뿐이죠. 굳이 따지자면, 당신 일부가 교미해서 나온… 자식 같은 느낌이려나요.
배일호 부장: 미친 소리하네. 어제부터 머리 싸매고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전지찬 과장: 당신도 연구자라면 알 거 아닙니까? 해볼 만하다고요.
배일호 부장: 한다 치고, 거기까지 가는 건. 그건 어떻게 할 건데?
전지찬 과장: 그건… 당신이 생각해야죠.
배일호 부장: 뭐?
전지찬 과장: 그쪽 주특기잖아요. 남 정신 쥐흔드는 거. 제가 판은 짤 수 있어도, 이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배일호 부장: 아니, 아무리 나라도 바로 답은… 아, 모르겠다. 알았어요. 일단 해본다 치고, 까짓거 가면서 생각해보죠 뭐.
우나은 대원: 좋은 결과로 끝나면 좋겠네요, 부디.
전지찬 과장: 있길 바라야죠.
배일호 부장: (헛웃음) 사람이 참 무책임하게 말하네?
전지찬 과장: 글쎄요. 누구랑 같이 다니며 옮았나 보죠.
배일호 부장: 난 아닐 거라 믿어요.
전지찬 과장: 댁입니다.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린다. SCP-529-KO다.
SCP-529-KO: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부장님을, 뭐, 번식?!
배일호 부장: 뭐야 넌.
SCP-529-KO: 저 시켜주시죠! 천직이거든요! 제가 맡겠습니다! 유전적 바이오는 이미 마스터했다고요!
배일호 부장: 아니 잠깐, 애초에 어떻게 들은 건데? 너 회의실 나갔잖아.
I-I3LL이 배일호 부장 코트에 걸린 펜을 잡아 뜯어, 바스러뜨린다. 내부 회로가 드러난다.
I-I3LL: 도청 장치 감지. 제거합니다.
배일호 부장: …이거 너냐?
SCP-529-KO: 어.
SCP-529-KO: 아마도요?
<발췌문 종료>
부록6: 무력화 작전
초기회동 10일 후 SCP-1885-KO-A의 무력화를 위한 작전이 실시되었다. 기동특무부대 알파-23(“무아아아아앙”)이 효과적인 구역 격리를 위해 참가하였다. 차원학부와 악마학과가 주둔하여 지휘했다.
설명: 다음 기록은 SCP-1885-KO-A 무력화 작전의 녹화기록이다.
투입 인력:
- 차원학부장 배일호
- 차원학부 손기정 연구원
- 악마학과장 전지찬
- 악마학과 우나은 대원
- SCP-529-KO
- 악마학과 운용병기 "I-I3LL"
기록 시작
이하 소통은 현장에서 무전을 통해 진행되었다. 화면 1 송출 중.
배일호 부장
― 좋아. 모두들. 작전대로 포지션은 잡았지?
손기정 연구원
― 저희에게 작전이 있었어요?
전지찬 과장
― 예. 지금 알파-23이 화염방사기로 SCP-1885-KO의 진로를 틀고 있습니다. 산불까지 내가면서요. 그곳에 SCP-529-KO… 어, 그러니까…
SCP-529-KO
― 알루미늄맨이 배치돼 있단 소리죠. 하하!
배일호 부장
― 뭐야, 언젠 버즈소 맨이라며?
SCP-529-KO
― 언제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알루미늄맨이었습니다.
배일호 부장
― 그 모드 안 쓰기로 한 거야?
SCP-529-KO
― 파츠 효율이 좀 구려요. 괜히 몸만 아프고. 안 씁니다.
배일호 부장
― 그치. 표절이니까.
SCP-529-KO
― 그쯤 하시죠?
우나은 대원
― 여러분들! SCP-1885-KO를 포착했습니다!
손기정 연구원
― 좋아요. 다들 부장님 백신은?
SCP-529-KO
― 걱정 마세요. 소중하게 모시고 있습니다. 탄환으로 가공한 건 어때요?
우나은 대원
― 안성맞춤이에요.
I-I3LL
― 저 역시 소지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SCP-1885-KO에게 투약을 시도하겠습니다.
배일호 부장
― 내 새끼들… (훌쩍이며) 다들 하나뿐이라는 거 알지? 떨어뜨리지 말고, 아껴 써. 시작하자고, 그럼.
땅이 흔들린다. 화면 밖에서 새 떼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윽고 산 능선 위로 초대형 인간형 로봇2이 상체를 일으킨다.
SCP-529-KO
― 출전 준비 끝! 작전대로 시선 좀 끌어볼게요!
전지찬 과장
― 저 큰 로봇을 운용하는 건… 장막정책에 안 걸릴 수가 없을 텐데요?
배일호 부장
― 문제없어. 고립성이거든. 우린 이미 보고 들었잖아. 그래서 이렇게 멀쩡한 거고.
SCP-529-KO-G가 움직인다. 대상 전방에 모기의 머리를 가진 초대형 인간형 독립체가 빚어진다.
SCP-529-KO
― 그래. 이 맛에 전쟁하는 거지! 덤벼봐, 이 벌레 새끼야!
전지찬 과장
―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됐군요. 우나은, SCP-1885-KO-A의 위치는?
우나은 대원
― 지금 좌표 보내드릴게요. (잠시 멈춤) 윽―!? (잡음)
전지찬 과장
― 우나은? 나은아? 괜찮은 거야? 대답해 봐!
I-I3LL
― 네, 우나은 씨는 무사합니다. 넘어졌을 뿐입니다.
전지찬 과장
― 다행이네. 거기 보내길 잘했다. 둘이서 잘 해봐. 다치지 말고.
우나은 대원
― 네 도움 없어도 알아서 잘 일어났거든?
배일호 부장
― 기정아, 우린 우리대로 시작하자.
SCP-529-KO-G가 독립체를 향해 주먹을 내리꽂는다. 독립체가 울부짖는다. SCP-1885-KO-A가 반응한다.
SCP-1885-KO-A
― 원념. 지배. 끝없는 공포. 압착.
SCP-529-KO-G의 주변 구역에 붉은색 영역이 생성된다. 공간이 압착된다. 붉은 즙이 뿜어진다. 529-KO-G의 오른팔이 찌그러진다.
SCP-529-KO
― 씨발. 이거 보이죠? 미끼를 물었어요.
배일호 부장
― 알아. 근데 여기도 문제거든!
화면2로 전환. 화면이 심하게 흔들린다. 배일호 부장이 전력으로 질주 중이다. 다수의 SCP-1885-KO 개체가 화면 안에 들어온다. 들개형 독립체가 배일호 부장을 추격한다.
배일호 부장
― 손기정 이 씨발롬아!
손기정 연구원
― 저도 노력 중이라고요!
배일호 부장
― 차! 차 끌고 와! 차!
차량이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제동을 걸어 급회전하고, 배일호 부장 앞에 차량이 멈춰선다. 뒷좌석 문이 열린다.
손기정 연구원
― 타세요!
배일호 부장
― 슬라이딩!
배일호 부장이 뛰어올라 뒷좌석으로 몸을 던진다. 뒷좌석 문이 닫히고, 차량이 가속한다.
손기정 연구원
― 어땠어요?
배일호 부장
― 좆 돼. 더 못 붙어, 저기 괴물 새끼들 천지라고.
손기정 연구원
― 계획 잘못 짠 거 아녜요? 이제 어떡하죠?
전지찬 과장
― 저 괴물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합니다. 누가 도맡아서요.
손기정 연구원
― 하. 제가 할게요.
배일호 부장
― 기정아?
손기정 연구원
― 변칙친밀도 높은 편이잖아요, 저. 이런 구실에는 또 제가 맞겠죠. 부장님은 전지찬 과장님이랑 합류하세요. 여긴 제가 나서볼 테니까.
배일호 부장
― 죽지 마라. 너 죽으면 부서 해체니까.
손기정 연구원
― 알거든요. 빨리 가세요.
화면1로 전환. SCP-529-KO-G가 대형 독립체의 머릴 붙잡고 있다. 이어 폭발이 일어난다.
SCP-529-KO
― 붐!
독립체의 머리가 터진다. 붉은 과즙이 사방으로 튄다. 곧바로 또 다른 대형 독립체가 근처에서 빚어진다.
SCP-529-KO
― 리필? 좋아. 계속 와라. 계속 죽여줄 테니까.
화면3으로 전환. I-I3LL이 돌진하는 적대 독립체를 향해 총을 발포한다. 발포한 탄환이 독립체의 머리를 관통하여 터뜨린다. 곁에 있던 우나은 대원이 성수탄을 투척하며 지원한다.
I-I3LL
― 탄환 재장전. (돌진하는 독립체를 걷어찬다.) 탄약이 잔량이 적습니다. 이후부터는 근접전을 병행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나은 대원
― 어쩌지? 변신할까?
전지찬 과장
― 아니, 그 수는 마지막까지 아껴야 해.
그때, 차량이 두 인원 앞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들개형 독립체 한 개체를 치여 압살한다.
손기정 연구원
― (창문을 열며) 다들, 안녕하세요? 무사하시고요?
우나은 대원
― 기정 씨!
손기정 연구원
― 후우, 여기 분위기 장난 없네요.
I-I3LL
― 연구 인력이 나설 구역이 아닙니다. 위험합니다.
손기정 연구원
― 알고 있거든? 걱정 마, 지금 나 세뇌 중이거든.
우나은 대원
― 네? 세뇌?
손기정 연구원
― 마인드 컨트롤인 거죠. (잠시 멈춤) 여기서부턴 제가 붙들고 있을게요. 두 분은 1885-KO-A에게로 가세요.
우나은 대원
― 괜찮으시겠어요?
손기정 연구원
― 퍽이나요. (피식 웃으며) 빨리 가세요.
차량이 출발하며 떠난다. 상당수의 독립체가 차량을 쫓아 이동한다. 그 사이 활로가 열린다.
I-I3LL
― 길이 열렸습니다. 갑시다, 우나은 씨.
우나은 대원
― …네!
화면 1로 전환. 전지찬 과장이 상황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위치 좌표가 단말기로 전송된다. 배일호 부장이 옆에서 보조한다.
배일호 부장
― 알파-23 퇴각했답니다. 휘발유가 다 떨어졌다는군요.
전지찬 과장
― 수고했다고 전해줘요. 그리고 괜찮아요. 진로만 틀어놨으면 제 역할은 다한 거니까.
배일호 부장
― 산불 때문에 근처 소방대가 출동했고요. 이건, 제가 어떻게든 최대한… 늦춰보죠.
전지찬 과장
― 좋아요. 현재 전황은요?
배일호 부장
― 529-KO, 정면에서 교전 중. -G의 손상 상태 보면 오래 못 버텨요. 길게 15분 정도 잡아봅니다. 손기정 연구원이 잡몹 절반 이상을 어그로 끌고 있고, 우나은 대원과 로봇놈이 목표 쪽으로 접근 중. 제일 좋은 그림은 저 둘이 내 백신을 놈에게 꽂는 겁니다.
전지찬 과장
― 최악의 수는?
배일호 부장
― 제 계획을 쓰는 거죠. 아직 꺼낼 타이밍은 아닌 것 같고요.
전지찬 과장
― 좋습니다. 안전어는?
배일호 부장
― 기억하니까 걱정마쇼.
화면3으로 재전환, I-I3LL이 SCP-1885-KO-A의 약 5m 지점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인원은 나무 뒤에 은폐한 상태로 대상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I-I3LL
― 목표까지 접근 완료.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전지찬 과장
― 문제라고? 뭔데?
I-I3LL
― 보호벽입니다. 독립체의 주변으로 미약한 공간 왜곡이 확인됩니다. 멀리서 사격했다간 탄환의 경로가 크게 일그러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배일호 부장
― 뭐? 그게 말이 돼?
전지찬 과장
― 우리가 줄곧 말이 되는 걸 상대했습니까. 방법을 한 번 찾아봐야죠. I-I3LL, 방법은 있나?
I-I3LL
― 원거리 사격은 무의미합니다. 최대한 접근해야 합니다.
우나은 대원
― 뭐? 접근? 무리야, 불타고 있는데―
I-I3LL
― 계획이 있습니다. 제가 정면에 나가 독립체 시선을 끌겠습니다. 그 사이 우나은 씨가 가능한 한 가까이 접근해 백신을 투약해 주십시오.
우나은 대원
― 그 수밖에 없는 거지? …좋아. 해볼게.
I-I3LL
― 그럼, 작전 개시합니다.
I-I3LL이 엄폐에서 벗어나 SCP-1885-KO-A 정면으로 뛰어나간다. 주변에 생성된 독립체가 I-I3LL을 향해 달려든다.
I-I3LL
― 타겟 목표 확인. 교전 시작.
I-I3LL이 사격한다. 총성이 들린다. 돌진하던 독립체들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SCP-1885-KO-A가 인원을 인식한다. 우나은 대원이 측면으로 움직인다.
SCP-1885-KO-A
― 착즙. 색소. 우유.
I-I3LL
― 사전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재단의 매뉴얼을 먼저 우선합니다.
I-I3LL 주변의 일부 공간이 압착된다. 붉은 즙이 뿜어진다. I-I3LL이 뒤로 물러난다. 작은 단위의 공간 압축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I-I3LL
― 패턴 파악했습니다. 공간이 압축되기 직전, 미약한 붉은 잔류가 사전에 나타납니다. 변칙성을 사용하기 위해선 정해진 절차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공간이 압착된다. I-I3LL이 회피한다.
I-I3LL
― 붉은 잔류.
주변 공간이 압착된다. I-I3LL이 앞으로 돌진한다.
I-I3LL
― 그리고 압착.
SCP-1885-KO-A
― 복수. 원념. 해당 제품에는 색소가 첨가되었습니다.
I-I3LL
― 예상대로입니다.
우나은 대원이 SCP-1885-KO-A 방향으로 몸을 낮춘 채 접근한다. 허리춤에서 백신이 장전된 권총을 꺼내 장비한다.
SCP-1885-KO-A
― 색소 비첨가. 무수한 압착.
I-I3LL
― 우나은 씨, 지금입니다.
우나은 대원
― 말하지 않아도 알아!
우나은 대원이 SCP-1885-KO-A에 완전히 접근한다. 사격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긴다.
SCP-1885-KO-A
― 발화.
우나은 대원
― 으악?!!
갑자기 SCP-1885-KO-A 전신이 크게 발화한다. 불길이 우나은 대원에게로 치솟는다. I-I3LL이 급히 도약해, 우나은 대원을 감싸 보호한다.
우나은 대원
― 어, 어쩌지?! 탄환이―
I-I3LL
― 네. 저도 녹은 걸 확인했습니다. (무전음) 전지찬 과장님, 독립체가 열기를 토해냈습니다. 1차 시도 실패했습니다.
전지찬 과장
― (혀 차는 소리) 알았다. 더 붙어서 뭐 할 생각 마. 위험하니까 거기서 물러서.
배일호 부장
― 물러서긴 어딜 물러서! 야, 너희들! 후퇴하지 마!
전지찬 과장
― 뭐? 당신 제정신이야? 계획 실패한 거 당신도 확인했잖아! 후퇴해야지!
배일호 부장
― 후퇴할 필요가 없으니까!
화면1로 전환, 배일호 부장이 다가오는 SCP-1885-KO 개체들을 향해 키보드를 휘두르며 버티고 있다.
배일호 부장
― 이놈들 이미 왔다고! 후퇴할 곳이 없다고!
전지찬 과장
― 아, 썅―
잡과 함께 SCP-1885-KO가 카메라를 뒤덮는다.
잠시 정적.
화면1 송출 중단.
차량이 제14K임시공동구역 입구 앞에 정차한다.
손기정 연구원
― 씨발…
구역 주변으로 SCP-1885-KO 개체들이 다수 관측된다. 화면이 회전하며 산 전경을 잡는다. SCP-529-KO-G는 가동을 중지한 상태로 불타고 있다.
손기정 연구원
― 씨발, 씨발… 이제 어떡하면 좋지?
손기정 연구원이 입구로 진입한다. 주변 SCP-1885-KO 개체를 발로 차며 이동한다.
손기정 연구원
― 부장님! 살아계시죠?! 부장님!
정적.
손기정 연구원
― (무전을 시도하며) 다들? 다들 어딨어요?! 대답 좀 해봐요!
우나은 대원
― (무전음) 대, 대피 중이에요… 지금, 어떻게 된 거예요?
손기정 연구원
― 이미 전선까지 밀고 들어왔어요! 여기 죄다 깔렸다고요!
우나은 대원
― 아―
손기정 연구원
― 여기 오지 마세요! 그대로 다른 기지와 접선하시고―
우나은 대원
― 꺄악!
손기정 연구원
― 우나은 씨?! 나은 씨!!
무전이 두절된다. 손기정 연구원이 멈춰 선다.
잠시 정적.
손기정 연구원
― …부장님?
배일호 부장
― 안녕, 기정아.
손기정 연구원
― 하… 역시 살아계셨네요. 아니, 지금 웃을 때가 아닌데. 이거, 완전 실패한 거 아녜요? 계획 다 파토난 거죠?
배일호 부장
― 계획? 애초부터 상관없었어, 그건.
손기정 연구원
― 네? 뭐라고요?
배일호 부장
― 솔직하게 말할게. 니네 팔았다, 기정아.
손기정 연구원
― 그게 무슨―
카메라 화면이 SCP-1885-KO 개체로 가득 찬다. 손기정 연구원이 비명 지른다.
손기정 연구원
― 부장님?! 부장님―!!
배일호 부장
― 배신은 타이밍이거든.
정적.
1시간가량 화면 암전.
손기정 연구원
― 커헉―!
이고양 연구원
― 기정 씨!
손기정 연구원이 바닥을 구른다. 구역 내부는 SCP-1885-KO 군체로 가득 차 있다. SCP-1885-KO-A가 중앙에 위치해 있다. 카메라에 이고양 연구원, 클라라 박사, 전지태 선임 연구원, 우나은 대원이 포착된다. 전원 SCP-1885-KO 군체에 의해 구속되어 있다.
손기정 연구원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SCP-1885-KO-A
― 계약자여. 아 자들인가.
배일호 부장
― 그래. 내 선물. 제물들.
배일호 부장이 군체 사이로 걸어 나온다.
전지태 선임
― 씨,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클라라 박사
― 부장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배일호 부장
― 뭘 하긴. 말 그대로지. 니네 팔았다고.
클라라 박사
― 지금 그런 농담할 상황이―
배일호 부장
― 농담 같아?
배일호 부장이 짧게 웃음을 내뱉는다.
배일호 부장
― 농담 같냐고. 난 변칙 개체야. 언젠간 처분될지도 모르는 입장이라고. 이런 달콤한 기회를 내가 걷어찰 것 같아?
이고양 연구원
― 부, 부장님…
배일호 부장
― 그 좆같은 부장 소리 좀 집어치워. 씨발, 진짜 질린다고.
배일호 부장이 손짓한다. 천장에서 SCP-1885-KO 군체가 낙하한다. 개체들이 흩어지며, 구속된 전지찬 과장이 드러난다. 입은 재갈로 봉해져 있다.
전지찬 과장
― 읍읍―!!
손기정 연구원
― 지금 이게 대체 뭐 하시는 건데요! 처음부터 이러실 계획이었어요?!
배일호 부장
― 아니. 처음부터 이랬을까 봐? 니들 팔 생각도 없었고, 재단을 배신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잠시 멈춤.
배일호 부장
― 근데 있잖아. 곱씹어보니까, 난 원래 괴물이야. 어디서든 괴물 취급을 받는다고! 내 장기는 전부 벌레고, 변칙 개체로 취급되며 서류 업무나 보는 신세라고! 근데 눈앞을 봐. 시발, 저그 찍어내는 놈이 떡하니 서 있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얘랑 계약만 한다면, 누가 시발 날 건드릴 수 있겠어. 어? 안 그래?
SCP-1885-KO-A
― 그대는 나와 같다. 본질이. 강렬한 열망. 그것은 복수. 그것은 후회. 그것은 훈육. 그것은 압착.
잠시 멈춤.
SCP-1885-KO-A
― 게다가… 그대의 내면은 기름지고 추잡하고 더럽더군. 의심할 여지 없이, 내 다음 계약자로 손색이 없다.
배일호 부장
― 들었지? 얘기 나눈 지 몇 분 됐다고, 벌써 깐부가 됐다니까.
손기정 연구원
― 그래서요. 결론이 뭐예요. 우릴 진짜 제물로 쓸 거예요?
배일호 부장
― 응.
손기정 연구원
― 이 개새끼가― 컥!
배일호 부장이 손기정 연구원을 걷어찬다. 고통 섞인 신음이 들린다.
배일호 부장
― 내가 늘 말하잖아. 너 입조심하라고. 이사관보가 만만해? 네가 맨날 내 뒷담하는 거 모를 줄 알았어?
이고양 연구원
― (눈물을 터뜨리며) 부장님, 제발 이러지 마요…
배일호 부장
― 이거 왜 이래? 나만 좆같냐? 니들 다 좆같아! 너도 좆같고, 너도 좆같고, 너도!
배일호 부장이 손기정 연구원을 가리킨다.
배일호 부장
― 이거 봐.
손기정 연구원
― 노트…?
배일호 부장
― 네 노트, 새꺄. 네가 여기다 뭘 썼는지, 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보라고.
배일호 부장이 노트를 펼치고 손기정 연구원에게 들이민다. 노트에는 '이 대화는 알루미늄맨이 듣고 있다'가 적혀 있다.
손기정 연구원
― 하?
배일호 부장
― 얼마나 욕을 처썼는지. 깜지야, 깜지 개새끼가.
SCP-1885-KO-A가 발화한다.
SCP-1885-KO-A
― 그럼, 계약을 시작한다. 인간 여섯을 제물로 바치면, 그대는 나의 능력을 사용할 권리를 얻는다.
배일호 부장
― 좋아. 계약서는 어딨어?
클라라 박사
― 당신! 진짜 이러기야? 내가 어떻게 당신을 구했는데!
SCP-1885-KO-A
― 이곳에 서명하라.
1885-KO-A가 조그마한 종이를 들어 올린다.
배일호 부장
― 안 보여. 좀 더 가까이 해봐.
SCP-1885-KO-A
― 이렇게 하면 되나.
배일호 부장
― 더.
그때, 구역 내 문이 박살 난다. 연기구름 뒤로 SCP-529-KO가 모습을 드러낸다.
SCP-1885-KO-A
― …학살자여.
SCP-529-KO
― 이 벌레 새끼들…
클라라 박사
― 529-KO!
배일호 부장
― 어, 이미 늦었어. 나 펜 들었거든. (SCP-529-KO를 가리키며) 저놈 막아. 계약 파토나기 싫으면.
SCP-1885-KO-A
― 압축. 색소 첨가.
SCP-529-KO
― 다 조져버리겠어, 이 개새끼들!
SCP-1885-KO-A가 능력을 사용한다. 동시에 배일호 부장이 코트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낸다. SCP-1885-KO-A에게 접근한 후 지체 없이 사격한다.
SCP-1885-KO-A
― (식별할 수 없는 음성) 계약자여?
배일호 부장
― (웃음을 터뜨리며) 연기 어땠냐?
SCP-1885-KO-A
― 지, 지금 내게 뭘 투여한 것이냐!
배일호 부장
― 나.
SCP-1885-KO-A의 신체가 공중에서 격렬히 진동한다. 대상이 벽면에 충돌하며 제어력을 상실한다. 구속에 사용되던 SCP-1885-KO 군체가 해체된다.
이고양 연구원
― 꺄악!
클라라 박사
― SCP-1885-KO가… 녹아 사라지고 있어요.
SCP-529-KO
― 박사님! 괜찮으신가요!
SCP-529-KO가 클라라 박사를 향해 접근한다. 부서진 문 너머에서 I-I3LL이 진입한다.
I-I3LL
― 추정. 배일호 씨의 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전지태 선임 연구원
― 계획? 이게 다 계획이었다고? 우릴 악마에게 파려던 게 아니라?
I-I3LL
― 확신할 순 없으나, 현재 상황을 판단했을 땐 배일호 씨의 전략적 접근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배일호 부장
― 보라고, 다 속았잖아. 안 그래? 기가 막히지? 송강호 뺨을 쳤지 아주.
전지찬 과장
― (재갈을 스스로 풀어내며) 당신 역시 제정신 아냐.
배일호 부장
― 하, 자기도 동의했으면서. 이제 와서 왜 이래?
전지찬 과장
― 필요악이었으니까. 뭐하려나 했더니, 이런 식으로 악마를 속여넘겨?
배일호 부장
― 이런 게 재능이지. 인정하면 개추.
우나은 대원
― 과장님? 알고 계셨던 거예요?
배일호 부장
― 악마를 속이기 위해선, 우선 아군부터 속여야 하잖아. 내가 설마 재단을 진짜 배신할까 봐? 이 꿈의 직장을?
SCP-1885-KO-A
― 이, 이 벌레 같은 놈이…!
배일호 부장
― 이제 악마의 악마의 악마의… 뭐라냐. 하여튼 몸 새로 갈아끼진 못하겠지? 그건 죽이는 게 아니거든. 그냥 나처럼 만들 뿐이지.
SCP-1885-KO-A
― 이 말도 안 되는―
배일호 부장
― 사냥감이 사냥꾼의 말을 믿으면 어째? 좆 까시고 빨리 나로 변하라고!
손기정 연구원
― 정확히는 부장님 자식에 가깝지만요… 부장님 내부에 벌레들을 이용한 거니까… 하, 부장님,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다고요…!
SCP-529-KO
― 제가 도청하고 있단 사실도 알고 계셨던 겁니까…?
배일호 부장
― 그래, 이 변태 새끼야. 처음부터 계산에 넣어놨지. 딱 적당한 타이밍에 튀어나왔어. 아주.
전지찬 과장
― 거짓말은 하지 맙시다. 제가 중간에 정리 도와줬잖아요. 그건 빼먹고.
배일호 부장
― 그래, SCP-529-KO한테 일부러 빡치게 떠들어대라 한 건 당신이긴 했지. 쩜오는, 당신 지분으로 가져.
SCP-1885-KO-A
― 이, 이럴 순 없어! (고통스러운 비명) 증오가! 분노가! 원한이! 색소가―!
SCP-1885-KO-A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대상의 신체가 급속하게 변이된다. 방독면이 머리 부위에 돋아나며, 팔과 다리가 인체와 유사한 형태로 변형된다. SCP-1885-KO-A는 배일호 부장과 유사한 외형으로 불완전하게 변이하며, 쓰러진다.
배일호 부장
― 어우, 끔찍해. 이딴 미친 발상을 잘도 했네.
전지찬 과장
― 예. 떠올린 제가 봐도 끔찍하네요.
SCP-1885-KO-A
― (식별할 수 없는 음성)
클라라 박사
― 그렇군요. 이게 다 계획이었던 거군요. 부장님의…
잠시 정적.
배일호 부장
― 애들아. 악감정 같은 건 없지? 공익을 위해서였잖아.
손기정 연구원
― 아뇨. 존나게 드는데요.
클라라 박사
― 이번만큼은, 저도 못 참겠네요. 허락할게요.
배일호 부장
― 뭘 허락해. 뭘 허락한 건데.
전지태 선임 연구원
― 죄송합니다, 배일호 씨. (손가락을 꺾으며) 입에 벌레가 몇 마리나 들어갔는지 모르겠걸랑요.
인원 전원이 배일호 부장을 향해 접근한다.
배일호 부장
― 이사관보다. 나 이사관보라고. 이거 하극상이야!
전지태 선임 연구원
― 기지 다르면 그냥 아저씨죠.
전지찬 과장
― 뭐, 상황도 대충 정리됐겠다. (어색한 웃음) 이제 카메라 끌게요.
배일호 부장
― 뭘 꺼! 끄지 마! 끄면 뒤― (고통스러운 비명) 끄아아악! 끄지 마! 끄지 말라니까!
카메라 화면이 꺼진다.
손기정 연구원
― 밟아!
우나은 대원
― 우 씨!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요!
이고양 연구원
― 이번만큼은 부장님이 잘못했어요! 진짜로요!
배일호 부장
― 나 죽어! 나 진짜 죽어! 아아아아악―!!!
기록 종료
비고: 작전 종료 후, 제14K 임시공동구역에 사후 현장 처리팀이 파견되었다. 변이된 SCP-1885-KO-A 개체를 회수하였으며, 작전 투입 인원을 대상으로 추가 검진을 실시하였다. 배일호 박사를 제외한 전 인원에게서는 특이 소견은 없었다.
배일호 박사는 물리적 외상으로 인한 전치 1주를 진단받았다. 배일호 부장이 제출한 구타 관련 징계 건의는 기각되었다.
부록 7: 후일담
서론: 이하는 사건 종료 이후 제14K임시 공동구역에서 진행된 내부 소집 회의다.
참가자:
- 차원학부장 배일호
- 차원학부 클라라 박사
- 차원학부 손기정 연구원
- 차원학부 이고양 연구원
- 악마학과장 전지찬
- 악마학과 전지태 연구원
- 악마학과 우나은 대원
- 악마학과 운용병기 "I-I3LL"
- SCP-529-KO
기록 시작
배일호 부장
― 아니, 잠깐만. 우리 또 모이는 거야?
클라라 박사
― 당연하잖아요. 부장님이 맡던 사건이 종료되었으니 후속 대처를 의논해야죠. 서류도 작성해야 하고요, 당신이 이사관보니까 당연히 허가 도장도 찍어야죠.
SCP-529-KO
― … 그런… 행정적인, 네. 절차라면… 전 왜 여기 있는 건가요?
배일호 부장
― 난 모르지. 낸들 아나?
손기정 연구원
― 그런데 이거, 후속 회의라고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요?
손기정 연구원이 주변을 둘러본다. 회의실은 이미 꽉 차서 자리가 없다.
전지찬 과장
―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연지벌레의 악마를 끝내야 하니까 말입니다.
손기정 연구원
― 이유라뇨..?
SCP-529-KO
― 잠깐, 연지벌레의 악마를 끝낸다고요?
전지찬 과장
― 네.
전지태 연구원
― 아니, 과장님 왜 그걸 지금 말하는―
우나은 대원
― 연지벌레의 악마는 이미 죽은 것 아니었어요? 분명 배일호 씨가 배일호-액기스를 주입해서… 그, 유사 배일호가 된 걸로 아는데?
배일호 부장
― 배일호-액기스라고 하지 말아줄래. 존나 드러우니까.
이고양 연구원
― 솔직히 말하자면, 혈액이나 샤워하고 남은 물 같은 거 아니겠어요?
배일호 부장
― 넌 샤워하고 남은 물 악마한테 쏴 재끼고 다니냐?
이고양 연구원
― 샤워를 안 하는데요?
전지태 연구원
― 네?
이고양 연구원
― 진짜겠냐고요. 당연히 매일 씻죠. 나도 사람인데.
정적.
전지찬 과장
― 크흠. 아무튼. 나은아, 악마가 진정으로 죽는 걸 본 적 있어?
우나은 대원
― … 아뇨?
전지태 연구원
― 못 보겠죠. 애초에 악마는 안 죽으니까.
전지찬 과장
― 정답이야. 타르타로스 독립체는 우리 인간의 욕망이 만든 개체. 결국 본질물리학적으로 우리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소멸하지 않아.
탁자 내리치는 소리.
SCP-529-KO
― 그럼 그 연지벌레의 악마 자식이 살아있다는 겁니까!?
I-I3LL
―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마는 죽이지 못할 뿐, 무력화는 시킬 수 있습니다. 그 개념의 성질에 맞춰 대응하거나, 공격하거나, 절차를 밟으면 대부분 악마는 구마 되죠. 거기다 현재 연지벌레의 악마는 자신을 구성하는 개념의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 가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SCP-529-KO
―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죠?
전지찬 과장
― 녀석을 무력화시키는 데 필요한 마지막 절차가 남았으니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린다. 문 앞에는 지속가능격리개발과 임찬미 과장이 서 있다. 두 손 가득 코스트코 쇼핑백을 들고 있으며, 쇼핑백 안에는 락앤락 용기가 가득 담겨있다. 락앤락 용기 안에서 갑작스레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임찬미 과장이 가방을 한 번 걷어차자 줄어든다.
임찬미 과장
― 배달이요!
배일호 부장
― 어머나 씨발.
우나은 대원
― 어, 과장님? 출장 나가신 거 아니었어요?
임찬미 과장
― 편하게 찬미라고 불러. 나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타입이야.
클라라 박사
― 찬미..? 찬… 미? 아! 들어봤어요! 요즘 뜨고 있는 재단-ESG 논문 저자시죠!?
배일호 부장
― 와, 책벌레 냄새. 저 사람 논문은 왜 읽어본 거야?
클라라 박사
― 저 복수전공 환경공학인데요? 곤충 쪽으로 연구하다 여기 온 거잖아요.
임찬미 과장
― 알아봐 주니 고맙네. 그럼 내가 요즘 뭘 연구하는지도 알고 있나?
클라라 박사
― 지속가능한 초상식품 연구 중이시잖아요? 그래서 지난번에는 급양부랑 협력해서 초콜릿 도넛이나 재사용 수자원 공급도 하셨고…
전지태 연구원
― 아, 그 도넛…
임찬미 과장
― 후후. 그럼 오늘 여기서 내 또 다른 연구 성과를 보게 되겠네?
클라라 박사
― … 네?
임찬미 학과장이 락앤락 통을 차례대로 꺼내 회의실 책상에 내려놓는다. 상당한 양의 밥이 담긴 통 두 개를 제외하면 모두 다양한 지역과 문화의 고기 요리이다. 비변칙적인 것으로 보이는 마파두부, 돈까스, 튀김, 야채볶음 등등이 나열된다.
전지찬 과장
― 분명 연지벌레의 악마는 배일호가 됐지. 하지만 그 본질 또한 남아있어. 먹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본질. 딸기우유가 되고 싶지 않은 원념에서 나온 힘. 그렇다면, 그런 개념적 성질은, 그 욕망에 맞는 행위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지.
우나은 대원
― 도대체 무슨 소리세요 과장님.
전지찬 과장
― 말 안 하고 데려온 건 사과할게. 그런데 말하면 안 올 것 같았어.
우나은 대원
― 그러니까 지금― 연지벌레의 악마를… 먹어서 구마 시킨다는 말이잖아요…?
전지태 연구원
― 아니, 나 빼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한 거야!? 너 대신에 내가 말할 수도 있었잖아?
전지찬 과장
― 누가 말하든 이걸 아는 순간 회의에 올 것 같진 않더라. 미안.
배일호 부장
― 아니. 아니, 야.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저게 전부…
배일호 부장이 주변을 둘러본다. 통에 담긴 고기 요리가 가득하다.
배일호 부장
― 내 고기라는 거야?
전지찬 과장
― 어찌 생각하자면… 그렇죠. 클론 정도로 생각해 보세요. 연예인 배양육이라던가 그런 거 파는 회사 있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일호 씨와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고, 신체적인 외형만 똑같은―
배일호 부장
― 이 사탄마귀 새끼야.
배일호 부장이 락앤락 통을 살짝 흔든다. 카레 안쪽에서 방독면 조각 모양의 살점이 떠오른다.
배일호 부장
― 느그 얼굴 가죽으로 카레 만든다고 생각해 봐라. 입에 들어가게?
임찬미 과장
― 일호 씨, 진정하시고, 일단 잠시 자리에 앉아서 딱 한 입만 드셔보시면…
배일호 부장
― 됐어. 난 안 해. 안 먹어. 나갈 거야. 다들 알아서 드쇼.
배일호 부장이 일어나 회의실 문손잡이를 당긴다. 쩔걱거리는 소리.
배일호 부장
― 어랍쇼.
손잡이는 바깥에서부터 잠겨있다.
배일호 부장
― 지랄. 지랄. 지랄.
임찬미 과장
― … 여기 모두가 다 먹을 때까지 아무도 못 나갑니다.
클라라 박사
― 부장님이 당황하는 건 오랜만이군요.
이고양 연구원
― 아니, 그런데 사실 부장님을 먹기도 조금…
임찬미 과장
― 부장님이 아니라 연지벌레의 악마라고 불러주세요. 헷갈리잖아요.
SCP-529-KO
― 아니, 그렇긴 한데, 그, 조금…
배일호 부장
― (문을 두들기며) 미친놈들아 어서 열어!! 이거 직원 윤리 위반이야!! 윤리위에 신고한다!!
I-I3LL
― 윤리위원회 수칙에 직원실 문을 잠그는 것에 대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윤리적으로 알맞습니다.
전지찬 과장
― 미안합니다. 제가 잠그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안 먹을 것 같아서. 어차피 지금 안 먹으면 이 녀석, 어딘가 다른 딸기우유 공장에서 갈린 원념들 때문에라도 부활할 거예요.
배일호 부장
― (조용히 흐느낌)) 내가 왜… 뭘 잘못했다고…
임찬미 과장
― 그럼, 식사할까요?
인원들이 모두 각자의 앞접시에 밥과 음식을 담아가며 식사를 시작한다. 임찬미 박사와 전지찬 과장은 모든 인원에게 일회용 식기를 나눠준다. 배일호 박사는 여전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인원들을 바라보는 중이다. 이고양 연구원이 밥과 마파두부를 말아 떠먹더니, 감탄한다.
이고양 연구원
― 배일호 부장님은 이런 맛이구나.
손기정 연구원
― 본인이 있는 곳에서 그런 말은 하기는 좀 그렇지 않냐.
이고양 연구원
― 아.
식사 소리.
배일호 부장
– 내가 그렇게 맛있냐? 어휴…
배일호 부장은 주머니에서 우유갑을 꺼낸다. 서울우유 브랜드의 딸기우유다.
전지찬 과장
― 안 드십니까?
배일호 부장
― 됐어. 입맛 없어.
배일호 부장은 딸기우유를 바라본다. 그는 턱을 괴며 무언가를 고민한다. 곧 그가 빨대를 꺼내 우유갑에 꽂는다.
배일호 부장
― 헤, 싫어할 만했네.
배일호 부장은 딸기우유를 마신다.
기록 종료
비고: SCP-1885-KO-A는 이상의 기호학적 절차를 거쳐 완전히 구마되었다. SCP-1885-KO의 무효 등급 배정이 대기 중이다.
배일호 박사는 본인의 사망을 사유로 경조휴가를 신청하였으나, SCP-1885-KO-A가 초상법상 도플갱어 및 클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SCP 재단의 고용규약상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자신의 복제품의 사망으로는 경조휴가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에 의거해 기각되었다.


